동양사상/일반

연암집 - 원사(原士), 퇴계-잡저

rainbow3 2019. 9. 18. 00:50

연암집 > 연암집 제10권 별집 > 엄화계수일 잡저(罨畫溪蒐逸雜著)

 

원사(原士)

 

선친의 글을 살펴보니 유실된 것이 많았다. 이 편(篇)은 연암협(燕巖峽)의 묵은 종이 모아 둔 곳에서 발견한 것으로서, 글뭉치가 터지고 찢어져 윗부분에 몇 항목이 빠지고 중간에도 왕왕 빠진 데가 있으며, 또 편의 이름도 없었다. 그래서 조목 중에001] ‘원사(原士)’란 두 글자를 취하여 편명(篇名)으로 삼았다.

아들 종채(宗采)가 삼가 쓰다.002]

 

무릇 선비〔士〕란 아래로 농(農) · 공(工)과 같은 부류에 속하나, 위로는 왕공(王公)과 벗이 된다. 지위로 말하면 농 · 공과 다를 바 없지만, 덕으로 말하면 왕공이 평소 섬기는 존재이다.003] 선비 한 사람이 글을 읽으면 그 혜택이 사해(四海)에 미치고 그 공은 만세에 남는다. 《주역》에 이르기를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온 천하가 빛나고 밝다.〔見龍在田 天下文明〕”004]고 했으니, 이는 글을 읽는 선비를 두고 이름인저!

 

그러므로 천자는 ‘원래 선비〔原士〕’이다. 원래 선비라는 것은 생민(生民)의 근본을 두고 한 말이다. 그의 작위는 천자이지만 그의 신원(身元)은 선비인 것이다. 그러므로 작위에는 높고 낮음이 있으되 신원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며, 지위에는 귀천이 있으되 선비는 다른 데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작위가 선비에게 더해지는 것이지, 선비가 변화하여 어떤 작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를 ‘사대부(士大夫)’라 하는 것은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요, 군자를 ‘사군자(士君子)’라 하는 것은 어질게 여겨서 부르는 이름이다. 또 군졸을 ‘사(士)’라 하는 것은 많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사람마다 사(士)라는 점을 밝힌 것이요, 법을 집행하는 옥관(獄官)을 ‘사’라 하는 것은 홀로임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천하에 공정함을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공정한 말을 ‘사론(士論)’이라 이르고, 당세의 제일류를 ‘사류(士流)’라 이르고, 사해(四海)에서 의로운 명성을 얻도록 고무하는 것을 ‘사기(士氣)’라 이르고, 군자가 죄 없이 죽는 것을 ‘사화(士禍)’라 이르고, 학문과 도를 강론하는 곳을 ‘사림(士林)’이라 이른다.

 

송 광평(宋廣平)이 연공(燕公)더러 이르기를 “만세에 존경을 받는 것이 이 일에 달려 있다.” 했으니,005] 어찌 천하의 공정한 말이 아니겠는가? 환관이나 궁첩(宮妾)들이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006] 어찌 당세의 제일류가 아니겠는가? 노중련(魯仲連)이 동해(東海)에 몸을 던지려고 하자 진(秦) 나라 군사가 스스로 물러갔으니007], 어찌 사해에서 의로운 명성을 얻도록 고무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어진 사람이 죽어 가고, 온 나라가 병들었네.〔人之云亡 邦國疹瘁〕008]”라고 했으니, 이 어찌 군자가 죄 없이 죽은 것을 애석히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하많은 선비들이여, 문왕(文王)이 이들 덕분에 편안하셨네.〔濟濟多士 文王以寧〕009]”라고 했으니, 학문과 도를 강론하지 않고서야 능히 이와 같이 될 수 있겠는가?

 

무릇 선비란 다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천자가 태학(太學)을 순시할 때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의 자리를 마련하여 조언을 구하고 음식을 대접한 것은 효(孝)를 천하에 확대하자는 것이요, 천자의 원자(元子)와 적자(適子)가 태학에 입학하여 나이에 따른 질서를 지킨 것은 공손함〔悌〕을 천하에 보여 주자는 것이다.011] 효제(孝悌)란 선비의 근원〔統〕이요, 선비란 인간의 근원이며, 본디〔雅〕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니, 천자도 오히려 그 본디를 밝히거든 하물며 소위(素位)의 선비012]이랴?

 

아아! 요순(堯舜)은 아마도 효제(孝悌)를 실천한 ‘본디 선비〔雅士〕013]’요, 공맹(孔孟)은 아마도 옛날에 글을 잘 읽은 분인저!

 

누군들 선비가 아니리요마는, 능히 본디〔雅〕를 행하는 자는 적고, 누군들 글을 읽지 아니하리요마는 능히 잘 읽는 자는 적다.

 

이른바 글을 잘 읽는다는 것은 소리 내어 읽기를 잘한다는 것도 아니요, 구두(句讀)를 잘 뗀다는 것도 아니며, 그 뜻을 잘 풀이한다는 것도 아니고, 담론을 잘한다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효제충신(孝悌忠信)을 갖춘 사람이 있을지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모두 사사로운 지혜로 천착(穿鑿)한 것이요, 아무리 권략(權略)과 경륜(經綸)의 술(術)이 있다 할지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모두가 주먹구구로 맞힌 것이니, 내가 말한 ‘본디 선비〔雅士〕’는 아니다. 내가 말한 본디 선비란, 뜻은 어린애와 같고 모습은 처녀와 같으며 일 년 내내 문을 닫고 글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어린애는 비록 연약하여도 제가 흠모하는 것에 전념하고 처녀는 비록 수줍어도 순결을 지키는 데에는 굳건하나니, 우러러봐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봐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은 오직 문을 닫고 글을 읽는 그 일인저!

 

참으로 고아(古雅)하도다, 증자(曾子)의 독서여! 해진 신발을 벗어던지고 상송(商頌)을 노래하니 그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여 마치 종이나 경쇠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도다.014] 또한 공자가 말씀하신 바는 《시경》, 《서경》과 지켜야 하는 예(禮)이니 이 셋에 대해 평소 늘 말씀하셨다.015]

 

어떤 이가 묻기를,

“안자(顔子 안회(顔回))는 자주 굶주리면서도 그 즐거운 마음을 변치 않았다016]고 하는데, 안로(顔路)017]가 굶주릴 때에도 여전히 또한 즐거웠겠습니까?”

한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쌀을 짊어지고 올 곳이 있다면 백 리도 멀다 아니 했을 것이며,018] 그 쌀을 구해 와서 아내를 시켜 밥을 지어 올리게 한 다음 대청에 올라 글을 읽었을 것이다.”

 

무릇 글을 읽는 것은 장차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문장술(文章術)을 풍부히 하자는 것인가? 글 잘 짓는다는 명예를 넓히자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학문과 도(道)를 강론하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다.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은 이러한 강학(講學)의 내용이요,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은 강학의 응용이니, 글을 읽고서도 그 내용과 응용을 알지 못한다면 강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강학을 귀히 여기는 것은 그 내용과 응용 때문이다. 만약 고상하게 성(性)과 명(命)을 담론하고, 극도로 이(理)와 기(氣)를 분변하면서 각각 자기 소견만 주장하고 기어이 하나로 일치시키고자 한다면, 담론하고 분변하는 사이에 혈기(血氣 감정)가 작용하게 되어 이와 기를 겨우 분변하는 동안 성(性)과 정(情)이 먼저 뒤틀어질 것이다. 이는 강학이 해를 끼친 것이다.

 

글을 읽어서 크게 써먹기를 구하는 것은 모두 다 사심(私心)이다. 일 년 내내 글을 읽어도 학업이 진보하지 못하는 것은 사심이 해를 끼치는 때문이다.

 

백가(百家)를 넘나들고, 경전(經傳)을 고거(攷據)하여 그 배운 바를 시험하고자 하고, 공리(功利)에 급급하여 그 사심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독서가 해를 끼친 때문이다.

 

천착(穿鑿)하는 것019]을 미워하는 것은 그 속에 사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창 천착할 때에는 언제나 경전(經傳)으로써 증거를 삼고, 천착하다 막힌 데가 있으면 또 언제나 경전으로써 유추해 본다.020] 유추하기를 그만두지 않다가 마침내 경문(經文)을 고치고 주(註)를 바꾼 뒤에야 후련해한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주례(周禮)》는 아마도 주공(周公)의 저술인저!” 021] 

하고,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왕망(王莽)은 명예를 좋아하여 천하를 해쳤고, 개보(介甫 왕안석(王安石))는 법을 좋아하여 천하를 그르쳤다.”022]

한다.

 

덕보(德保 홍대용)가 말하기를,

“구차스레 동조하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요, 억지로 남과 달리하려는 것은 해를 끼치는 것이다.” 하였다.

 

글을 잘 읽는다는 것이 어찌 훈고(訓詁)에만 밝고 마는 것이겠으며, 이른바 선비란 것이 어찌 오경(五經)에만 통하고 말겠는가.

 

무릇 성인의 글을 읽어도 능히 성인의 고심(苦心)을 터득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중니(仲尼)가 어찌 지극히 공정하고 피나는 정성을 쏟은 분이 아니겠으며, 맹자가 어찌 거친 주먹을 휘두르고 크게 발길질한 분이 아니겠는가?” 023]

 

하였으니, 주자 같은 이는 성인의 고심을 터득했다 할 만하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는 것도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春秋)》일 것이다.” 024]

하였고, 맹자가 말하기를,

 

“내 어찌 구변(口辯)을 좋아해서 그렇겠느냐? 나는 마지못해 그러는 것이다.” 025] 

하였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읽어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그렇기에, “나를 몇 해만 더 살게 해 준다면 제대로 《주역》을 읽을 수 있을 텐데.”라고 하였다.026] 그러나 공자는 《주역》에 십익(十翼)027]을 달았으면서도 일찍이 문인(門人)들에게 《주역》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맹자는 시서(詩書)에 대한 해설은 잘 하면서도 일찍이 《주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중니(仲尼)의 문하에서 《주역》에 대해 들은 이는 오직 증자(曾子)일 것이다. 왜냐하면 증자는, “부자(夫子)의 도는 충서(忠恕)일 따름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028] 《주역》으로 칭찬을 들은 이는 오직 안로(顔路)의 아들 안자(顔子)일 것이다. 안자는, 한 가지 좋은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늘 간직하여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029]

 

어질지 못하도다, 자로(子路)의 말이여! “거기에는 사직(社稷)도 있고 인민도 있으니, 어찌 꼭 글을 읽어야만 학문을 한다 하겠습니까.”030]라고 했으니 말이다.

 

군자가 종신토록 하루라도 폐해서는 안 되는 것은 오직 글을 읽는 그 일인저!

 

그러므로 선비가 하루만 글을 읽지 아니하면 얼굴이 단아하지 못하고, 말씨가 단아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된다. 장기 두고 바둑 두고 술 마시고 하는 것이 애초에 어찌 즐거워서 했겠는가?

 

자제(子弟)들이 오만하고 방탕하며 빈둥대면서 제멋대로 온갖 짓을 다 하다가도, 곁에서 글 읽는 사람이 있으면 풀이 죽어 그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다.

 

자제들이 아무리 총명하고 준수해도 글 읽기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부인네나 농사꾼일지라도 자제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군자의 아름다운 말 속에도 혹 뉘우칠 만한 말이 있고, 착한 행실 속에도 혹 허물이 될 만한 것이 있다. 그러나 글을 읽는 경우에는 일 년 내내 읽어도 뉘우칠 것이 없으며, 백 사람이 따라서 행하더라도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명분과 법률이 아무리 좋아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고, 쇠고기 돼지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많이 먹으면 해가 생긴다. 많을수록 유익하고 오래갈수록 폐단이 없는 것은 오직 독서일 것이다.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요망스럽게 되지 않고 늙은이가 글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귀해져도 해이해지지 않고 천해져도 제 분수를 넘지 않는다. 어진 자라 해서 남아돌지 않고 미련한 자라 해서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집이 가난한 이가 글 읽기 좋아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부자로 잘 살면서 글 읽기 좋아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대숙(大叔)031]이 《시경(詩經)》을 읽느라 삼 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 하루는 대청에서 내려와 소변을 보는데 집에서 기르던 개가 그를 보고 놀라서 짖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어도 때에 따라 귀가 따갑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경우가 있지만, 글을 읽는 경우에는 그 소리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글을 읽는 것이다. 어린 아들이 글 읽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도 글을 읽으면, 부모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자 없다. 아아! 그런데 나는 어찌 그리 읽기를 싫어했던고.

 

도연명(陶淵明)은 고아(高雅)한 선비였다.032] 하지만 그는 살아 있을 때 술을 많이 못 마신 것을 한스러워했을 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033]” 하였는데, 도연명은 어찌 글을 많이 읽지 못하였던 것을 한스러워하지 않았던가?

 

글 읽는 법은 일과(日課)를 정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질질 끄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

 

많이 읽으려도 말고, 속히 읽으려도 말라. 읽을 글줄을 정하고 횟수를 제한하여 오로지 날마다 읽어 가면 글의 의미에 정통하게 되고 글자의 음과 뜻에 익숙해져 자연히 외게 된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의 순서를 정하라.

 

잘 아는 글자라고 소홀히 하거나 쉽게 여기지 말고, 글자를 달리듯이 미끄러지듯이 줄줄 읽지 말며, 글자를 읽을 때 더듬거리지 말며, 글자를 거꾸로 읽지 말며, 글자를 옆줄로 건너뛰어 읽지 말라.034] 반드시 그 음을 바르게 읽어야 하며, 반드시 그 고저가 맞아야 한다.

 

글 읽는 소리가 입에 머무르되 엉겨붙지 말게 하며, 눈으로 뒤쫓되 흘려 보지 말며, 몸은 흔들어도 어지럽지 않게 한다.

 

눈썹을 찌푸리지 말고, 어깨를 잡지 말고, 입을 빨지 말라.

 

책을 대하면 하품도 하지 말고, 책을 대하면 기지개도 켜지 말고, 책을 대하면 침도 뱉지 말고, 만일 기침이 나면 고개를 돌리고 책을 피하라. 책장을 뒤집을 때 손가락에 침을 바르지 말며, 표시를 할 때는 손톱으로 하지 말라.

 

서산(書算)을 만들어 읽은 횟수를 기록하되, 흡족한 기분이 들면 접었던 서산을 펴고, 흡족한 기분이 들지 않으면 서산을 펴지 않는다.

 

책을 베개 삼아 베지도 말고, 책으로 그릇을 덮지도 말며 권질(卷帙)을 어지럽히지 말라. 먼지를 털어 내고 좀벌레를 없애며, 햇볕이 나는 즉시 책을 펴서 말려라. 남의 서적을 빌려 볼 때에는 글자가 그르친 데가 있으면 교정하여 쪽지를 붙여 주며, 종이가 찢어진 데가 있으면 때워 주며, 책을 맨 실이 끊어졌으면 다시 꿰매어 돌려주어야 한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눈을 감고 꿇어앉아 이전에 외운 것을 복습하고 가만히 다시 음미해 보라. 그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곳은 없는가, 그 뜻이 통하지 않는 곳은 없는가, 글자를 착각한 것은 없는가? 마음속으로 검증하고 몸으로 체험해 보아 스스로 터득한 것이 있으면 기뻐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등불을 켜고 옷을 다 입고서 엄숙하고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책상을 마주한다. 이어 새로 읽을 글을 정하고 묵묵히 읽어 가되 몇 줄씩 단락을 끊어서 읽는다. 그런 다음 서산(書算)을 덮어 밀쳐놓고, 가만히 훈고(訓詁)를 따져 보며 세밀히 주소(註疏)를 훑어보아 그 차이를 분변하고, 그 음과 뜻을 깨우친다. 차분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며 제멋대로 천착하지 말고 억지로 의심하지 말 것이며,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반복해서 생각하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하늘이 밝아지면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곧바로 부모님의 침실로 가서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기침 소리가 들리거나 가래침 뱉고 하품하는 소리가 들리면 들어가서 문안을 드린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혹 무슨 일을 시키면, 급히 제 방으로 돌아가서도 안 되고 글을 읽는다는 핑계로 거절해서도 안 된다. 바로 이것이 글을 읽는 것이니, 혹 글 읽기에 열중하느라 혼정신성(昏定晨省)도 제때에 하지 아니하고, 때 묻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로 지내는 것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물러가라고 말씀하시면 물러나 제 방으로 돌아와서 책상 위의 먼지를 털고 책들을 가지런히 바로 놓고 단정히 앉아 잡된 생각을 가라앉히기를 얼마쯤 한 연후에 책을 펴고 읽되, 느리게도 급하게도 읽지 말 것이며 자구(字句)를 분명히 하고 고저를 부드럽게 해서 읽는다.

 

긴요한 말이 아니면 한가하게 응답하지도 말며, 바쁜 일이 아니면 즉시 일어나지도 말라. 부모가 부르면 책을 덮고 바로 일어나며, 손이 오면 읽는 것을 멈추되 귀한 손님이 오면 책을 덮는다. 밥상이 들어오면 책을 덮되 반쯤 읽었으면 그 횟수는 끝마치며, 밥 먹고 나면 바로 일어나 천천히 거닐고, 밥이 소화되고 나면 다시 읽는다.

 

부모가 병이 나면 일과(日課)를 폐하고, 재계(齋戒)를 할 때는 일과를 폐하고, 상(喪)을 당하면 일과를 폐한다. 기공(朞功)의 상(喪)에 이미 성복(成服)했으며 집이 다를 경우는035] 일과를 시작한다. 친구의 상사(喪事)에는 아무리 멀어도 학업을 같이 하던 사람이면 달려가 조문하고 일과를 폐한다.

 

글을 읽다가 예전에 잘 몰라서 질문을 한 적이 있던 대목을 만나면 탄식하고, 잘 몰라서 의심이 나는 대목을 만나면 탄식하고, 새로 깨닫게 된 것이 있으면 탄식한다.036]

 

삼년상에는 장례를 치른 뒤에 예서(禮書)를 읽고, 동자(童子)는 평상시와 같이 글을 읽는다.

 

어떤 이가 묻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아버지가 보던 책을 선뜻 읽지 못하는 것은 손 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037]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집에 전해 내려오는 책은 다 선반에 얹어 두고 읽지 않아야 하는가?” 하였는데, 답하기를,

 

“옛날에 증석(曾晳)이 양조(羊棗 고욤)를 즐겨 먹었으므로 그 아들인 증자(曾子)는 양조를 먹지 않았다.038]”

 

하였다. 마치 부모의 명을 들으면 머뭇거리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친구와 더불어 약속을 하면 곧바로 실천할 것039]을 생각하듯이,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글 읽는 방법이다.

 

천하 사람들이 편안히 앉아 글을 읽을 수 있게 한다면, 천하가 무사할 것이다.

 

 

퇴계집 > 퇴계선생문집 제41권 > 잡저(雜著)

 

책문(策問)

 

문(問) : 맹자가 말하기를, “선비는 뜻을 숭상한다.” 하였다. 무릇 선비의 숭상하는 바는 시대의 성쇠에 관계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동한(東漢)의 선비들은 절의(節義)를 숭상하여 세도(世道)를 부지하였고, 조송(趙宋)의 선비들은 도덕을 숭상하여 인심을 맑게 하였다. 그러나 세도를 부지하던 자들은 끝내 사직(社稷)을 호위하지 못하고, 인심을 맑게 하려는 자들은 간사하고 사특함을 감화시키지 못하였으니, 이같이 도덕과 절의가 국가에 무익하단 말인가.

서한(西漢) 말기에는 선비들이 아첨을 숭상하여 천하를 망치고, 진(晉)나라ㆍ송나라 사이에는 선비들이 청허(淸虛)를 숭상하여 천하를 어지럽히며, 이당(李唐) 때에는 선비들이 문사(文詞)를 숭상하여 천하를 피폐하게 하였다. 당시엔들 어찌 우뚝이 서서 홀로 가는 선비가 그 사이에 전혀 나오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물결에 휩쓸리고 궤도에 뒤섞여 온 세상이 쏠리듯이 치달려 간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삼군(三軍)의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으나 필부(匹夫)의 뜻을 빼앗을 수 없는 것인데, 저 풍성(風聲)이 백대에 떨치고 만 길의 절벽같이 우뚝하게 서서 문왕(文王)을 기다리지 않고도 흥기하는 자가 어찌 그리 잠잠하게 소식이 없단 말인가.

우리 동방은 문헌의 아름다움이 유래가 있었다. 전조(前朝)의 선비들이 숭상한 바에 사(邪)와 정(正)이 있었는데, 안 문성공(安文成公)이 학교를 창설하고 유술(儒術)을 숭상하였다. 비록 노(魯)나라가 변하여 도에 이르게001] 하지는 못했지만, 말엽에 가서 도덕과 절의의 아름다움을 겸한 정포은(鄭圃隱) 같은 분이 나온 것이 아마 그 힘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큰학자와 큰선비로서 사림(士林)의 영수가 되어 스스로 이 도(道)의 책임을 맡았다고 말하는 자들도 그 행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도덕의 실상이나 절의를 지키는 면에서 모두 사람들의 뜻에 차지 않으니, 그렇다면 문사(文詞)로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친 것뿐인가.

천명(天命)을 귀와 눈에 붙여 두고 입에는 이치를 달고 다니면서 “내가 도덕을 숭상한다.” 하고, 평소에는 큰소리를 치고 고상한 이론을 펴다가 변을 만나면 이(利)를 쫓고 해(害)를 피하면서 “내가 절의를 숭상한다.” 하면, 저 문사를 숭상하고 청허를 숭상하며 아첨을 숭상하는 자들과 어찌 우열을 가리겠는가.

그렇다면 인심은 어떻게 하면 맑아지며, 세도는 어떻게 하면 부지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큰 운수를 열어 성스러운 임금이 잇달아 나와 호오(好惡)의 올바른 것으로 인도하고 시서(詩書)의 은택으로 젖어 들게 하시니, 문왕을 기다려서 흥기하는 것은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렇다면 본조의 선비들이 숭상하는 바를 들을 수 있겠는가?

도덕을 말하기는 하나 참됨을 얻기 어렵고, 절의가 높기는 하나 혹 변절을 걱정하며, 문사(文詞)가 비록 성하나 점점 쇠퇴해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제군들은 장차 과거로 말미암아 입신할 사람들이니, 문사를 숭상함을 실로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도덕을 지니고 절의를 닦으며, 뜻을 숭상하고 논의를 고상히 하는 데 대해서는 가슴속에 정해진 지가 오래일 것이니, 각자 숨김없이 진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