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의 장자관
- 그 기본 입장에 관한 시론적 모색 - *이종성(충남대)
[한글 요약]
‘한국의 간디(Gandhi: 1869∼1948)’라 불리는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이 『장자』를 독해하게 된 계기는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 8월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1년 간 옥고를 치를 때였다. 옥고를 치르는 도중에 읽었던 『장자』로부터 함석헌은 도가의 평화주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함석헌이 특히 『장자』에 주목한 이유는 종교의 역할과 불의한 정치적 권력과의 관계를 골똘히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본고는 함석헌의 장자관에 관하여 세 가지 기본 입장에 관해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첫째, 바보새라 불리는 ‘알바트로스(Albatros)’와 『장자』에 등장하는 봉황새의 비유를 상호 연결해 봄으로써 바보스러움에 대한 역설의 의미를 찾아보고, 또한 이로부터 대인과 소인의 대별적 차별성에 관하여 검토해 보았다.
둘째, 죽음으로 살아나기, 영혼의 변화 또는 들사람 얼에 관하여 살펴보는 과정에서 함석헌이 『장자』의 변화관념에 주목하였던 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 철학적 의의를 고찰해 보았다. 여기에서 진정한 영혼의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리적 달라짐보다는 심리적 죽음의 역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할 수 있었다. 셋째, 정치철학적 비판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관한 함석헌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함석헌은 장자의 무위정치적 이상과 방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하여 불의한 정치적 현실에 맞서기 위해서는 강권적 국가주의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고 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인간세에 만연한 갖가지 정치주의적 행태들로부터 탈정치화하는 방법은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상의 논의는 함석헌 장자관의 기본 입장에 대한 시론적 모색의 성격을 지닌다. 함석헌이 독해한 『장자』에는 독창적이고 긍정적인 면모도 있지만, 『장자』의 원의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 요소들이 또한 일정 부분 발견된다. 이러한 측면은 함석헌 장자관의 한계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검토는 향후의 연구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주제분야 : 한국철학, 한국현대철학, 한국도가철학
주 제 어 : 함석헌, 장자, 알바트로스, 무위정치,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
1. 함석헌 『장자』읽기의 기원을 찾아서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한국의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라는 말을 위시하여 ‘행동하는 신비주의자’, ‘실천하는 평화주의자’ 등으로 불린다. 이외에도 그를 수식하는 말들은 너무나 많다. 김성수의 연구에 따르면, 함석헌이 장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였던 1940년 8월 ‘공산주의 및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는 혐의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1년 간 옥고를 치를 때였다.1]
함석헌은 이른바 ‘감방 대학’에서 『장자』를 읽고 도가의 평화주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년의 감옥 생활에서 풀려난 다음에도 계속하여 『장자』를 열심히 읽었다. 그가 특히 『장자』에 주목한 이유는 종교의 역할과 불의한 정치적 권력과의 관계를 골똘히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2]
사실 함석헌 이외에도 사상가로서의 장자와 저서로서의 『장자』를 좋아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다. 예컨대, 중국 고전 번역가로 유명한 아서 웨일리(Arthur Waley: 1889∼1966)는 『장자』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심오하고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고, 선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일본인 선사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도 장자가 중국 철학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 했다.
그 외에도 20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유대인으로 세계적 철학자로 꼽히는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 독일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하버드 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소장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1916∼2000)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장자에 매료되었다고 한 목소리로 고백하였다. 3]
1] 김성수, 『함석헌 평전』, 도서출판 삼인, 서울, 2011, 159쪽 참조. 일제 강점기를 살면서 함석헌은 네 번의 옥고를 치렀다. 함석헌은 이 시기의 삶에 대하여 “나의 유일한 범죄는 내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근본적 곤경에 처해 있었다. 김성수, 『함석헌 평전』, 194쪽 참조.
2]김성수, 『함석헌 평전』, 166~167쪽 참조. 함석헌은 이 시기에 『장자』와 더불어 『노자』를 함께 읽었고, 이들 도가사상으로부터 깊은 감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노자』와 『장자』를 같은 범주로 묶어 도가사상으로 분류하는 것이나, 양자의 철학적 특질을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모두 전통적 도가관에 입각한 독해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3]오강남, 『종교, 심층을 보다』, 현암사, 서울, 2011, 334~335쪽 참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장자』를 읽어왔지만, 『장자』에 대한 독해방식이 획일화되어 있지는 않다. 사람들이 2천 여 년을 두고 『장자』를 읽어왔음에도 『장자』에 대한 비평과 해석은 아직까지 종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장자』에 대한 해석의 방식은 다양성을 띠고 상호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문제는, 그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우리는 무심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통해 시대적 고민을 함께 하였던 뚜렷한 목소리들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 목소리들을 외면해 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함석헌의 『장자』독해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본다. 함석헌은 누구보다 인상적일만큼 자신의 관점에서 『장자』를 고쳐 씹은 후 우리말로 다시 토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국가주의의 전횡으로 나타난 폭력적 전쟁의 야만성을 보면서 장자로부터 평화의 사상을 독해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점은, 당대의 시대적 상황이 특정한 사상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함석헌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특히 1942년과 1943년에 걸쳐 점점 가혹해지는 일제의 탄압을 지켜보면서 무력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는 국제 관계에 있어 약육강식 논리를 정당화시키고 세계를 국가주의로 몰아간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힘의 지배질서를 믿는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함석헌의 『장자』읽기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4] 특히,『장자』읽기에 몰입한 함석헌의 의식적 지향은 무엇보다도 당대 현실의 ‘탈정치적 정치철학’ 5]의 제안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제안의 핵심에는 장자와 같은 종류의 무위정치의 철학적 담론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함석헌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훗날 북한의 소련 군정,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조직화된 힘과 권력이 얼마나 ‘씨알’ 6]에게 가혹한 폭력을 남용하는가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를 지켜보면서 함석헌은 인간의 정신적 자유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결코 포기해본 적이 없었다.7] 함석헌이 새롭게 만난 장자의 사상은 하나의 빛이었고 구원의 메시지와도 같았다.
다음과 같은 술회는 함석헌이 장자로부터 얼마나 많은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얻게 되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 몇 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노자ㆍ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 아침저녁으로 장자를 따라 무용(無用)의 대수(大樹)를 아무도 없는 동리나 넓은 광야(無何有之鄕 廣莫之野)에 심어 놓고 그 옆에 한가히 서성이며 그 밑에 거닐며 누워 잘 줄을 몰랐던들(『장자』, 「소요유」), 이 약육강식과 물량 퇴폐의 독한 공기 속에서 벌써 질식이 되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8]
함석헌은 살아생전에 『장자』를 완독하여 강의하였고, 그 내용의 일부는 『함석헌 전집』 중 『씨알의 옛글풀이』라는 이름으로 선역 출간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함석헌의 『씨알의 옛글풀이』에 상재되어 있는 『장자』를 주된 텍스트로 삼고, 함석헌의 장자관에 대한 일단의 사유체계를 검토해보기로 하겠다. 다만, 본고는 함석헌 장자관의 시론적 검토를 위한 기본 입장을 모색하고자 할 뿐, 함석헌의 장자관과 관련된 보다 심층적인 다양한 주제적 접근과 비평에 대해서는 향후의 연구 과제로 미루어둘 예정이다.
4]김성수, 『함석헌 평전』, 175~176쪽 참조.
5] 함석헌이 볼 때, 장자는 애당초 정치를 하자는 생각이 없었고 그 정치적 이상을 논의하였기 때문에 크게 정치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함석헌이 장자에게서 본 탈정치적 정치철학은 오히려 우주 근본의 깊은 곳을 파고들어간 것으로서 현실정치 이상의 큰 생명을 가진 것이었다고 한다. 함석헌, 『함석헌전집』(한길사, 서울, 1988, 이하 『전집』으로 약칭한다) 20, 『씨알의 옛글풀이』, 「노장을 말한다」, 32쪽 참조.
6]함석헌은 ‘씨알’의 개념이 사회ㆍ정치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개념이기도 하다고 본다. 특히, 유동식은 함석헌의 말을 인용하여 ‘씨알’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씨’는 생명을 내포하고 있어 새로운 생명을 촉발시킴과 동시에, 그것이 자라고 무르익은 후 다시 씨를 열매 맺게 한다. 생명의 영원한 순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씨이다. 그리고 ‘알’에서 ‘ㅇ’은 극대 혹은 초월적 하늘을 표시하고 ‘ㆍ’은 극소 혹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하늘 곧 자아를 표시하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이다. 유동식, 「풍류도인 함석헌」,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 도서출판 삼인, 서울, 2001, 36쪽 참조.
7] 김성수, 『함석헌 평전』, 181쪽 참조.
8]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노장을 말한다」, 26쪽.
* "알"의 옛글표기인 아래 아 ㆍ 가 입력이 안되어 "알"이라 했음.
2. ‘알바트로스’의 은유와 새의 비상
자, 너의 세상으로 돌아가 너무 늦기 전에/
날아라, 하늘을 두려워마/
더 높이, 세상을 너의 눈 아래/
더 멀리, 부는 바람을 타고서/
그래 넌, 날기 위해 태어난 거야 /
날기 위해 넌 태어난 거야
(안치환, 「알바트로스」, 『안치환 9집』 중에서)
함석헌은 자신을 ‘바보새’에 비유하였다. 바보새를 한자로 하면 ‘신천옹(信天翁)’이요 영어로는 ‘알바트로스(Albatros)’라고 부른다. 9] 요즘은 골프 용어로도 사용되는, 이 알바트로스라는 새는 날개를 편 길이가 3∼4m이며 활공을 통해 날개짓을 하지 않고도 몇 미터에서 몇 십 킬로미터까지 비행한다고 전해진다.10]
알바트로스는 워낙 높이 날기 때문에 인간의 육안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새로서, 가장 높이 날아오르는 새이다. 11] 그럼에도 일설에 따르면 알바트로스는 그 바보스러운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알바트로스는 흰 빛깔의 커다란 날개를 치며 어떤 새보다 높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뭍으로 내려오면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더할 수 없는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다. 뭍으로 나온 알바트로스는 단지 한 마리의 바보새에 지나지 않는다. 지상에 나온 알바트로스는 물고기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는 새라고 한다. 알바트로스의 뭍과 같았던 현실에서 함석헌 역시 바보처럼 살았다. 그래서 함석헌은 자기 스스로 신천옹이라 자임하였던 것이다. 12]
9]이치석, 『씨알 함석헌 평전』, 시대의창, 서울, 2005, 35쪽 참조.
10]신천옹과의 알바트로스는 날개를 펼치면 조류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은 「신천옹과[알바트로스]」에 관한 다음의 인터넷 자료를 참고하라. (위키백과, 「신천옹과[알바트로스]」 참조).
11]이어령, 『말 속의 말』, 동아출판사, 서울, 1995, 264쪽.
12] 이치석, 『씨알 함석헌 평전』, 35쪽 및 이태영, 「바보새 함석헌 선생」(김용준 엮음,『나의 스승 함석헌』, 해동문화사, 서울, 1991), 52쪽 참조.
함석헌은 생전에 자신의 호를 만든 일이 없고, 또 누구에게서 지어 받은 일도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함석헌 ‘옹(翁)’이라고 했다. 이 칭호에 부담을 느낀 함석헌은 ‘신천옹’이라는 새를 생각해 내고는 짐짓 자신을 바보새라 자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13]
평생 호를 짓지 않았던 함석헌은 노장과 같은 ‘무명(無名)’론의 입장에 선다. 우리는 호와 관련된 함석헌의 삶의 논리에서 노장적 분위기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생각은 “호명된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14] 라는 노자적 사유에 그 맥이 닿아있다. 물론 노자의 무명론은 장자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함석헌의 사유는 장자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특질은 기독교적 사유와도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다. 모세가 당신이 누구십니까 했을 때 온 대답이 ‘네가 왜 내 이름을 묻느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했다. 천지 만물은 자기주장을 아니 하는 이, 자기를 무한히 내주는 이, 스스로 희생하는 이가 있어서만 있을 수 있다.” 15]
이는 「출애굽기」 3장 14절의 내용이다.
13]유동식 「풍류도인 함석헌」,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 23쪽 참조.,
14]『노자』, 제1장, “名可名非常名.”
15]『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46쪽.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3장 15절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여호와’(야훼, Yahweh)라 명명하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비규정적 규정으로서의 무명론의 입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호와’는 본래 히브리어의 ‘스스로 존재하다’라는 말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치석은 『씨알 함석헌 평전』에서 프랑스의 시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가 알바트로스의 모습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그린 적이 있다고 소개한 뒤 그 시의 전문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16] 이 시에는 알바트로스의 바보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함석헌이 직접 알바트로스를 언급하면서 이 새를 자신과 비교한 것은 스승이었던 남강(南崗) 이승훈(李昇薰: 1864∼1930)의 죽음 앞에서였다. 함석헌은 이승훈의 죽음 앞에서 자기 자신을 알바트로스에 비유하고, 이 새가 ‘하늘바라기 새’인 것처럼 자신도 신천옹에 지나지 않음을 명시하였다.
16]“뱃사람들은 자주 장난거리로/
항해의 벗인 양/
뱃길따라 미끄러지는 선박을 뒤쫓는/
아주 커다란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갑판 위에 막 던져진 순간/
이 창공의 임금님은 힘들게 노를 젓듯/
조롱을 받으면서/
그 큼직한 흰 날개를 질질 끌어댄다.//
정말 어색하고 무기력하구나!/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흉한 일인가!/
그토록 아름답던 이 항해의 벗에게/
이 놈은 파이프 담뱃대로 부리를 지져대고/
저 놈은 절룩대며 꺾인 날개 흉내 낸다!//
시인도 저 푸른 하늘의 왕자 같지 않으랴/
폭풍도 뚫고 사수도 놀렸는데/
온통 야유뿐인 지상으로 쫓겨오니/
도리어 거인의 날개는/
걸리적거릴 뿐이로구나.”
이치석, 『씨알 함석헌 평전』, 36~37쪽.
"제 모습은 마치 저 유명한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시에 그려진 장난꾸러기 뱃군한테 잡혀 갑판 위에 퍼득이는 신천옹 같이 불쌍했습니다.
… 신천옹이라 이름한 이유는 이 놈이 날기는 잘해 태평양의 제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기를 잡을 줄은 몰라서 갈매기란 놈이 잡아먹다가 이따금 흘리는 것을 얻어먹고 살기 때문이랍니다.
…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 바보새란 이름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사는 꼴도 바보새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해방 후의 제 살림은 그렇습니다. 마음은 푸른 하늘에 가 있으면서 밥벌이 할 줄은 몰라 여든이 다 되어 오는 오늘날까지 친구들의 호의로 살아가니 그 아니 바보새입니까?
제가 이북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 속에는 여름 구름산 같이 떠오르는 말을 품으면서도 말해줄 어느 얼굴 하나를 못 찾아내어 방바닥을 치며 퍼득이는 것도 이 하늘바라기와 갈매기의 관련 비슷한 무슨 미묘한 모순이 있어서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17]
17]함석헌, 「남강 선생님 영 앞에」, 『씨알의 소리』, 1979년 3월호
유동식에 따르면, 알바트로스는 ‘사욕을 거절하고 천명에 순응하는’18]바라기 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알바트로스는 함석헌에게 있어서 그 어떤 사회적 칭호보다도 자신의 속을 가장 실감나게 드러내는 이미지였다. 알바트로스는 삶의 진실을 왜곡하고 바보 취급하는 흉악한 시대의 본색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역설적 상징이기 때문이다.19] 장자가 말하는 바보스러움과 어리석음에 역설이 존재하는 것처럼 알바트로스의 바보스러움과 어리석음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에서 알바트로스는 우리에게 진정한 바보스러움과 어리석음에 관하여 재고해 볼 것을 요청하는 상징적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함석헌의 『노자』풀이에서도 이 점은 잘 드러난다. 함석헌이 동양식 「이사야」 53장에 빗댈 수 있다는 노자의 언명은 다음과 같다.
“나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 듯 멍멍하고나. 세상사람 또렷또렷, 나 홀로 어득. 세상사람 깔끔깔끔, 나 홀로 멍청. 가물가물 그믐(바다)인 듯. 괴괴해 끊일 줄 없는 듯. 뭇사람 다 씀 있는데 나 홀로 굳고 더러운 듯하니, 나 홀로 남과 달라 어머니 먹기 좋아.” 20]
18]유동식, 「풍류도인 함석헌」, 24쪽. 그런데 유동식이 말한 ‘천명에 순응하는’ 것이란 종교적 또는 인격적 존재의 하늘에 순응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적인 것에 순응한다는 장자의 입장과는 구별되는 종류의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을 인정할 경우, 장자와 함석헌 사이에는 서로 뜻을 같이 하면서도 입장을 달리하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19] 이치석, 『씨알 함석헌 평전』, 38쪽 참조.
20]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노장을 말한다」, 32쪽. 이는 『노자』제20장의 뒷 구절에 대한 함석헌의 한글 풀이이다. 이에 대한 『노자』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노자』, 제20장,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飂兮若無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함석헌이 알바트로스를 봉황새에 빗대어 비유한 적은 없지만, 알바트로스는 많은 측면에서 봉황새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21] 장자가 말하는 봉황새는 「소요유」의 ‘대붕’(大鵬)과 「추수」의 ‘원추’(鵷鶵)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세속의 권력과 명예에는 전연 관심이 없다. 특히, 장자가 묘사하는 원추라는 봉황새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감로천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는다.” 22] 그럼에도 세속의 사람들은 이러한 봉황새를 이해하지 못한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은 도리어 권력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을 보고도 모두 자신의 정적(政敵)으로 생각한다.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사에서도 상대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쓸데없이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자기를 해치거나 불리하게 하는 행동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속에 잠재한 열등감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수가 많다. 23]
이러한 점에서 『장자』로부터 발견되는 새의 은유는 본원세계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24] 『장자』에서 은유를 사용하는 이면에 깔린 전략은 정신의 직관적이고 전일적(全一的, holistic)인 인지 능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다.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인지적 파악을 『장자』전체의 메시지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축소판으로 간주한다면, 은유는 전일적인 이해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은유든 간에 그 은유를 이해하는 인지 행위는 전일적인 포착이다. 그러므로 『장자』의 메시지를 인지하고 싶다면 전일적인 인지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은유는 설명의 대상이기보다는 이해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25]
21]이어령에 따르면, 알바트로스는 봉황이나 불사조 같은 새와는 달리 실재하는 새이다. 어떤 독수리, 어떤 갈매기보다도 멀리 그리고 높게 나는 새가 알바트로스이다. 이어령, 『말 속의 말』, 264~265쪽 참조.
22]『장자』, 「추수」,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23]오강남, 『장자』, 현암사, 서울, 1999, 367쪽.
24]진중권에 따르면, “은유는 하나의 사물을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것으로 표현한다”고 한다(진중권, 『미학오디세이』 2, 휴머니스트, 서울, 2004, 235쪽). 이런 이유 때문에 은유는 잠재의식적인 함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 함의는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추상적인 지성의 혼자 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전체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25] 로버트 앨린슨, 김경희 옮김, 『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 도서출판 그린비, 서울, 2004, 76~77쪽 참조
일상의 세계에서 은유가 포착하고자 하는 전일성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함석헌은 대붕의 소요를 독해하는 과정 중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속의 알음알이가 지닌 한계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리고 “장자는 대붕 같은 초탈한 사람에 대해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는 세속의 소소한 현실주의자들의 비난을 그린” 26] 것이라고 한다. 함석헌은 장자가 말하는 큰 것과 작은 것의 변별을 통하여 크고 작음의 식견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러한 식견의 차이는 바보스러움과 어리석음에 대한 가치의 평가를 전도시킨다. 작은 식견을 가진 사람들의 왜곡된 관념이야말로 극복되어야 할 진정한 바보스러움이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작은 식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바보스럽고 어리석으며 우스운 사람인 것처럼 비쳐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알바트로스는 세속의 관점에서 ‘소인’(小人)에 비견되는 존재라고 말해진다면, 그는 도리어 하늘의 관점에서 볼 경우에 있어서는 ‘군자’(君子)에 해당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세속적인 가치와 하늘의 가치는 상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 때문에 장자는 일상적 가치를 초탈하여 사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畸人)이라고 명명하고, 하늘의 소인이 사람에게는 군자요 사람의 군자가 하늘에는 소인이라고 하였다. 27] 그러나 하늘의 군자는 일상인과 비교하여 세상의 척도로 잴 때 이상할 뿐이지 하늘의 사람들, 즉 자유로운 사람들에는 하등 이상할 바가 없다고 강조한다. 28]
요컨대, 알바트로스의 영혼을 가진 함석헌의 정신은 걸림 없는 자유를 위하여 웅대한 비상을 기획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성을 초탈하는 비상이었을 뿐 일상을 저버리는 비상은 결코 아니었다. 세속의 일상과 함께 하는 것이 장자의 정신이었던 것처럼 29] 함석헌 역시 일관되게 일상의 문제 상황을 직시하였고, 30] 그 문제의 해법을 위해 끊임없는 (비폭력적) 저항의 삶을 살았다. 함석헌의 저항정신은 자유정신의 힘이었고, 일상의 일상성을 파탈하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마치 봉황새가 결연히 힘주어 일어나 창공으로 비상하는 것처럼 31] 함석헌의 자유의식에는 삶의 실천성이 배제된 적이 없었다.
함석헌의 알바트로스적 저항정신은 당대의 막강한 권력의 축을 담당한 군부조차 훼멸시키지 못한 강인한 것이었다. 당대의 권위주의적 군부정치 시대에 함석헌은 알바트로스처럼 바보스러운 외길 하늘바라기의 삶을 살았다. 그는 시대가 만든 질곡의 가치들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무엇에의 자유’보다는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취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의 비상으로 은유된 알바트로스의 진실이다.
26]『장자』 20, 『씨알의 옛글풀이』, 81쪽.
27] 『장자』, 「대종사」, “天之小人, 人之君子; 天之君子, 人之小人也” 참조.
28]『장자』, 「대종사」, “畸人者, 畸於人而侔於天.” 이에 대한 해석은 오강남의 풀이 『장자』, 305쪽을 참조함.
29]『장자』, 「천하」, “以與世俗處.”
30]함석헌은 장자철학의 핵심이 현실 초월에 있다고 하면서, 초월한다는 말이 결코 내버린다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함석헌은 초월의 대상 세계인 현상 세계를 가리켜, “이 현상계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양으로 꿈도 아니요, 허망한 것도 아니요, 내버려야 하는 악한 것도 아니다. 노자ㆍ장자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지도 않았다. 이 현상 세계는, 따라서 그 안에 태어난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피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함석헌, 「노장을 말한다」,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26쪽.
31]『장자』, 「소요유」,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참조.
3. 죽음으로 살아나기, 영혼의 변화 또는 들사람 얼
함석헌이 『장자』에 주목한 이유 중에는 영혼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시사적 언급이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곤(鯤)이라고 하는 물고기가 붕(鵬)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고, 함석헌은 『장자』에서 인식의 변화 내지는 의식의 혁명을 발견한다. 이 시대의 장자 연구가로 잘 알려진 홍콩 중원대학의 로버트 앨린슨(Robert E. Allinson, 愛蓮心)은 『장자』의 주요한 근본 주제를 ‘영혼의 변화’(Spritual Transformation)에서 찾고 있는데, 32] 함석헌 역시 장자가 말하는 변화의 원리를 인간의식의 과정에 적용하여 해석하는 특징을 보인다. 로버트 앨린슨의 주장처럼, 영혼의 변화는 의식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바뀜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과 관점의 변화를 겪는 체험이다. 33] 영혼의 변화는 갑작스러운 통찰의 체험이며, 자신의 사고 과정 전체가 어떻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홀연히 이해하는 것이다. 철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34]
32]로버트 앨린슨, 김경희 옮김, 『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 17쪽.
33]로버트 앨린슨, 김경희 옮김, 『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 21쪽.
34]로버트 앨린슨, 김경희 옮김, 『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 22쪽 참조.
함석헌은 『장자』에 나타난 ‘곤ㆍ붕 변화’에서, 그 ‘질적인 달라짐’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리고 그 ‘질적인 달라짐’은 ‘변’과 ‘화’의 두 가지 달라짐의 양상 중에서 유독 ‘화’의 달라짐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함석헌은 또한 ‘화’의 달라짐이 죽음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고 하는 독특한 견해를 제시한다. 함석헌은 ‘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변(變), 화(化)가 다 같이 달라진다는 뜻이나, 화(化)는 화학(化學)이란 경우와 같이 아주 질적으로 달라진다는 뜻이다. 누에번데기라 할 때의 그 변화됨이 곧 그것이다. 본래 화(化)자는 인(人)변에다 그 인(人)을 거꾸로 놓은 것을 가져다 붙여서 사람의 죽은 것을 표시하는 글자다. 우리말에 뒈졌다라는 ‘뒈졌다’이다.” 35]
실제로 죽음은 하나의 변화이다. 이전의 상태로부터 새로운 질적 변화를 이루었을 경우에 있어서 이전의 상태는 새로운 질적 변화에 이르는 하나의 죽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때의 죽음이란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심리적 현상이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해 심리적인 얽매임에서 벗어나서 생사를 뛰어넘은 보다 높은 정도의 생명에로 들어가게 된다. 36]
거기에서는 죽어도 죽음이 아니게 되는37] 역설이 존재한다. 그래서 함석헌은 “나를 죽이고 전체에 돌아가 뭇사람의 힘을 내 힘으로 여긴다”38] 라고 말하기까지 한 것이다. 이것이 『장자』에 나타난 ‘화’의 논리를 죽음의 문법으로 풀이한 함석헌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의 장자』풀이에서 곤이 붕으로 화한 것이 생리적인 죽음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함석헌이 풀이하고 있는 ‘곤’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래 ‘곤’은 물고기 이름과 물고기의 알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함석헌은 이것이 알이라고 한다면 좀 더 재미있다고 보면서, 알의 크기가 몇 천 리라고 하는 장자의 생각은 엄청난 상상이요, 그 아래의 화하여 새가 된다는 말과도 잘 맞는다고 한다.39] 곤이 물고기의 알과 질적으로 달라진 것처럼 붕도 곤과는 그 차원이 달라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A의 A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비유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비유는 존재 당체의 문제를 생리적 변화로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혁을 일깨우기 위한 체험적 이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화’가 의미하는 질적인 달라짐이란 심리적 의식현상의 변혁과 관련되는 의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35]『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76쪽.
36]『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63쪽 참조.
37]『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64~165쪽 참조.
38]『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79쪽 참조.
39]『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76쪽 참조.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물고기가 될 수 없고, 물고기가 화하지 못하면 새가 될 수 없다. 인간도 심리적 현상의 질적인 달라짐이 없다면 자신의 무한한 가능태를 현실태로 바꾸어낼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함석헌이 본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죽음이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근원적 부정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구태의연함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데 그 의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구각을 벗는다는 것은 곧 심리적 현상의 죽음을 말한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라는 유명한 말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뱀은 껍질이 단단하고 질기다. 그래서 뱀의 몸을 보호하여 준다. 그런데 뱀은 자신의 껍질을 주기적으로 벗고 새 껍질이 돋아나곤 한다. 만일에 어떤 병이 걸리거나 좋지 못한 먹이를 먹었을 경우에 껍질을 스스로 벗지 못하는 병에 걸린다. 그렇게 되면 뱀은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게 된다. 그래서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뱀은 자신의 껍질을 벗으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자신의 성장을 이루어 나가듯이 사람의 경우도 비슷하다. 뱀처럼 껍질을 벗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고정관념을 바꾸어 나간다. 그렇지 못하고 기존의 생각과 습관과 고정관념에만 머물러 있게 되면 결국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40]
그런데 함석헌에게 있어서 ‘뒈진다’는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죽음은 우리의 영성을 가로막는 지극히 제한적인 감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감각적 구속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라고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서, 의식의 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41]
함석헌은 장자가 절대 초월적인 정신에 이르려면 작고 작은 감관의 작용과 그것이 전통으로 되고 역사적 제도로 되어 인간을 아주 근시적인 사고방식에 얽매이도록 만들어놓은 데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비유를 들어 이야기한 것이 다름 아닌 엄청나게 큰 붕과 그 붕의 운동이라고 보았다. 42]
40]두레원, 『김진홍의 아침묵상』, 「탈피(脫皮)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2008년 2월 28일 자 인터넷 자료.
41]이진용은 생명을 해치는 원인의 하나로서 장자가 ‘앎의 추구’를 문제 삼는다고 본다. 그는 장자에게서 앎의 추구가 문제가 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앎의 추구는 내가 대상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여 나의 목적을 충족하는 기나긴 과정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의 과정에서 종종 나 자신만의 특수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상세계뿐 아니라 나 자신을 왜곡하고 특수한 관점 안에 가두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나의 욕망과 감정을 충족하고자 대상세계를 재단하려는 목적에서 인식기관을 활용하는 것이다. 장자는 이러한 앎의 추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 결과로 생의 의지뿐 아니라 생명조차 상실할 수 있음을 경계한다.”
(이진용, 「양생사상의 정당화 가능성 문제: 장자, 혜강, 갈홍의 관점을 중심으로」, 『철학논총』, 제65집, 새한철학회, 2011, 357쪽). 이와 같은 앎의 추구가 가져오는 한계에 관해 장자가 본 관점은 함석헌에 의하여 재확인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42]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79쪽 참조.
함석헌은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또한 감관에 기초한 지나친 욕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욕심이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에 관하여 경고한다.
“그 욕심이 결국은 무엇이냐? 그렇게 옳고 그르고, 얻고 잃고, 곱고 밉고에 마음을 쓰노라면 욕심의 사나움이 타고난 바탕의 참되고 어진 모습을 해하는 것이 마치 가을바람 겨울 눈서리가 초목을 후려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날로날로 시들고 부스러져서 마침내 그 바탕을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니, 이것은 그 욕심에 너무 빠져들었기 때문이요, 또 혹은 늙어갈수록 욕심에 빠져들기 때문에 올바른 바탕의 정신이 아주 꼭꼭 꿰매어 밀폐해버린 듯 가리워지고 눌려버리기도 하니, 그렇게 되면 다 죽게 된 그 생명의 양기를 회복할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43]
욕심은 경우에 따라서 잔걱정을 유발하기도 하고, 커다란 걱정을 유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시비논쟁에서 반드시 이기고자 하는가 하면, 또 ‘속에 꼭 지키고 놓지 않기’를 마치 원수를 위해 한 저주나 남과 맺은 맹세를 지키듯이 하기도 한다. 이것은 기어코 남을 이기려고 애써 달라붙는 욕심의 작용적 양태이다. 44]
감각의 제한적 차별과 욕심의 갖가지 분별작용을 일으키는 심리적 의식현상은 부정되고 극복되어질 대상이다. 함석헌은 이를 죽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 죽음의 대상이 심리적 의식현상이었기 때문에 심리적 의식현상은 새로운 차원의 삶의 반전을 노정한다.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죽음은 ‘거닐어 노님’(逍遙遊)을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함석헌은, “장자의 생각으로 한다면, 사람은 이 육신과 그 감각에 기초를 두는 심리적 제약을 깨치지 못하는 한, 참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깨치고 벗어나자는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 해탈, 하늘나라, 정토(淨土)라는 것을 장자는 이 ‘거닐어 노닌다’는 말로 표시했다”45]고 한다.
그렇다면 구각을 벗고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함석헌은 그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소요유」에 등장하는 ‘무기’(無己)이며, 「제물론」의 ‘상아’(喪我)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함석헌은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라고 한 것일까? 그것은 내가 나서야, 내가 무엇을 해야만 잘될 것처럼 생각하는 그 ‘내’가 바로 망령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46]
이에 함석헌은 「제물론」이 비판하는 시비논쟁의 중심에도 ‘나’라는 것이 뿌리 깊게 관여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이를 ‘상아’의 논리로 비판한다.
“참을 밝히기 위해서 하는 시비토론이지만, 토론하면 할수록 진리는 가리워진다. 까닭은 다만 하나, 사람들의 ‘나’란 것 때문이다. 저마다 나를 옳다 하고 주장하는 한, 객관적인 표준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끝없이 하는 모든 시비토론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나를 초월하는 것이 중요하다.” 47]
즉, ‘상아’의 의의는 나를 초월하는 데 있다. 장자가 말하는 ‘무기’와 ‘상아’가 동일한 맥락의 개념임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함석헌의 논의는 그대로 ‘무기’에도 적용될 성질의 것이다.
43] 『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18쪽.
44]『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18쪽 참조.
45]『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77쪽.
46] 『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72쪽 참조.
47] 『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12쪽.
‘무기’의 상태가 되면 하늘땅과 하나가 되어 그와 친구가 된다. 함석헌은 ‘무기’와 ‘상아’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들사람’이라고 하였고, 그 영혼을 ‘들사람 얼’이라고 불렀다. 들사람에게는 체제니, 법령이니, 재판이니, 상벌이니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들사람은 정치하자는 생각 같은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직 영원한 생명에 살려고 하는, 근원적인 ‘무’(無)의 세계를 본 사람이다. 그래서 들사람이야말로 천지의 벗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48]
"그런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는 것도 아니요,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요, 절대 자유하여 독왕독래(獨往獨來)하는 사람이다. 그런 독(獨)을 가지니 정말 독유(獨有) 아닌가?
그것은 압박과 착취와 죽임으로 민중을 내 손아귀에 영원히 두자는 따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흉내내려 해도 낼 수 없고, 뺏으려 해야 빼앗을 수도 없는 정말 참호올로다. 그런 호올로니 그야말로 ‘독유지인’(獨有之人) 아닌가?
그런 사람은 민중으로 더불어 하는 사람, 민중 속에 몰입하는 사람이지 결코 높임을 받자는 사람 아니다. 그렇지만 높임을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민중이 그를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지귀(至貴) 아닌가? 소위 정치한다는 것들은 이것을 모르니 슬프다 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정말 위대한 사람은 도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큰 사람, 곧 한 사람은 누구를 자기 생각대로 끌어넣으려 하지 않는다. 왜? 자기란 것이 없으니 자기 생각이란 것이 있을 리 없고, 자기 생각이 없으니 강요 강제가 있을 수 없다. " 49]
그런데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영혼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생사의 법칙에서 해방되어야만 한다. 들사람이란 무극의 들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이를 가리킨다. 그는 「소요유」에 등장한 허유(許由)와 같은 야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50] 장자가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한 ‘다시없는 이’(至人), ‘검스런 이’(神人), ‘성인’(聖人), ‘참사람’(眞人) 등을 말한다고 볼 수도 있다. 들사람은 온갖 외물에 초연하며, 생사를 넘어서 있다.
48]『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81쪽 참조.
49]『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80쪽.
50]함석헌은 “소부ㆍ허유ㆍ장자ㆍ디오게네스ㆍ엄자릉 등으로 대표되는 ‘들사람’과” 소위 문명인을 대별한다(『전집』 2, 『인간혁명의 철학』, 「들사람 얼(野人精神)」, 135쪽 참조). 그리고 그것을 ‘글월’(文)과 ‘바탈’(野)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전집』 2, 『인간혁명의 철학』, 「들사람 얼(野人精神)」, 140쪽).
함석헌은 생사의 초월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사생이 일체가 되는 마음에는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 삶을 죽음 같이 여긴다면 죽음은 삶 같은 것이다. 그러면 어디서나 어느 때나 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홀로 산다’(人其盡死而我獨存乎)고 한다.
… 사람들은 다 죽는데 나 홀로 살아남는 무슨 비법이라면 그리 높을 것이 없다. 모든 사람을 다 살리는 것이 아니고는 진리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죽어버린 막막한 빈들에 홀로 서는 사람이 무슨 장생하는 사람일 수 있겠는가? 여기 사람이란 자기 안에도 있고 모든 사람 안에도 있는 죽을 수 있는 사람(mortal),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 안에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다 죽어버린 후, 그래도 홀로 남는 것이 곧 참나다.
홀로란, 남은 다 없어지고 나만 남는 외로운 홀로가 아니라 생도 사도 다 초월하고 이겼기 때문에 얻는 그 홀로다.” 51]
이때 함석헌이 말하는 두 번째 ‘홀로’의 의미는 인간의 영혼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순수 경험의 당체 또는 절대정신의 주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장자가 내세우는 들사람이 물화에 들어간 상태가 다름 아닌 ‘홀로’이기 때문이다. 52] 그것은 자타의 대립을 넘어선 ‘홀로’이다. 이런 까닭에 그것은 타자에 의하여 분별(distinguish)되는 대상적 ‘홀로’가 아닌 것이다.
들사람이 얻은 홀로됨이란 도와 하나가 된 상태의 홀로됨을 의미한다. 이 상태가 되면 감각의 제한성을 가지고 세계를 둘로 갈라보지 않는다. 들사람은 도리어 세상을 보자는 생각도 없이 그저 보게 된다고 한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으로 보는 것 아니라 네가 보는 것이요, 네가 보는 것 아니라 사람이 보는 것이요, 사람이 보는 것 아니라 생명이 보는 것이요 도가 보는 것이다. 푸른 것 붉은 것을 보는 것 아니라 빛을 보는 봄이요, 빛을 보는 것 아니라 있음을 봄이요, 있음을 보는 것 아니라 그저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봄은 보는 줄 모르게, 보자는 생각 없이, 내가 세상을 보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나와 우주가 하나로 되어 있는 때에만 있다.” 53]
함석헌이 본 들사람의 얼은 늘 맑고 투명하다. 하나의 온전한 바탈에서 자아와 우주가 무매개적인 소통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54] 듣고 봄의 목적성이 배제된 상태의 무매개적 감응 55]에 친숙한, 진정으로 살아있는 ‘영’, 또는 들사람들은 일상성으로부터 초월적이다. 그들은 생명의 빛과 영원의 숨결을 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그 빛과 숨결이 들사람의 빈들과도 같은 바탈에 온전하게 들어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상태가 바로 참 홀로됨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함석헌의 장자관은 형이상학적 깨침과 초월을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당대의 계몽주의적 사조를 반영 56]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51]『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65쪽. 함석헌은 장자가 말하는 ‘장생’이 생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 현상임을 밝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생(長生)이란 반드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장생불사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깊고 높은 체험을 속된 마음이 제 멋대로 해석해 듣고 하는 말이다. 죽음이란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심리적 현상이다. 장생이란 심리적인 얽매임에서 벗어나서 생사를 뛰어넘은 보다 높은 정도의 생명에 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63쪽.
52]김충열, 『노장철학강의』, 예문서원, 서울, 1995, 298쪽 참조.
53]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39쪽.
54]이에 반하여 일상의 개별적 존재자들은 관계의 매개성을 통하여 세상을 보기 때문에 일상의 일상성을 초월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함석헌은 이러한 일상성을 파탈하여야만 들사람 얼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55]함석헌은 이것이 ‘절대의 고요’를 몸으로 직접 느끼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감응은 마치 『주역』에서 적연부동(寂然不動)에 감이수통(感而遂通)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14쪽.
56] 칸트는 “계몽은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미성숙에서 사람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미성숙은 남의 도움 없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계몽주의의 이념은 성숙한 인간에 있고 성숙한 인간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하는 인간이다. 모든 타율적 지배와 맹목적 신앙에 대한 비판과 거부가 계몽주의의 표어였다.
박재순, 「씨알 사상의 핵심: ‘스스로 함’, ‘맞섬’, ‘서로 울림’」,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 105쪽 참조.
4. 정치철학적 비판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
그렇다면, 장자는 영혼의 변화에만 관심을 가졌던 단순한 초월론자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연 그렇지 않다. 함석헌은 장자의 ‘질적 달라짐’을 개인 영혼의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ㆍ정치적 현실에까지 적용한다. 분명 함석헌이 살던 시대의 사회ㆍ정치적 현실은 ‘질적 달라짐’을 위한 변혁의 대상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함석헌에게 있어서 영혼의 변화와 사회ㆍ정치적 현실의 변화는 별개의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 연동성을 갖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함석헌은 의식의 변화가 정치의 변화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석헌은 심리적 현상으로서의 의식의 혁명은 사회ㆍ정치적 변화까지 일구어 낸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짐승에게는 없는 정치가 사람에게는 왜 있을까? 생각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하늘에 오르지만, 생각은 하지 않아야 생각이다. 생각은 첨부터 잘못이다. 생각을 죽여야 생각이다. 죽음으로 산다는 이치는 여기도 적용된다.” 57]
함석헌에게서는 정치도 결국 생각의 산물이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우리는 잘못된 생각이 죽으면 잘못된 정치도 죽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장자가 살던 시대나 함석헌이 살던 시대나 인간세의 정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간들이 서로 대립하여 파벌을 만들고 분쟁을 일삼는 일이나 상호간의 모함과 시기와 질투, 투쟁, 함정의 사슬들이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얽혀져 각계각층에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인간 사회에서, 인간의 목숨이란 한낱 헌신짝과 같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던 것이 그 불의한 시대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58] 그 불의한 시대적 현실은 장자에게 마치 문둥병 환자처럼 비쳐졌다. 그럼에도 문둥병 환자가 야밤에 아이를 낳으면 황급히 등불을 들고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처럼, 59] 크게 병든 세상에서 일망정 후손들이 살아야 할 새로운 세상은 반드시 건강하여야 한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 장자였다. 그것은 문둥병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애끊는 사랑과도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함석헌도 이러한 장자의 철학에 깊이 공명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 불의한 시대의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이 너나없이 ‘작은 도둑’이거나 ‘큰 도둑’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함석헌은 이를 안타깝게 경고한다. 60]
함석헌이 볼 때, 특히 도둑의 기원은 국가의 형성과 궤를 같이 하며, 이로부터 수행되는 그 ‘정치’라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통째로 먹어치우는 도둑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역사적 실례를 보면 지식인, 도덕가, 종교가들이 어리석게도 도리어 그 큰 도둑을 돕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61]
그 지식인, 도덕가, 종교가들은 근본악이 무엇인지 가늠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설령 그 근본악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부정하거나 없애버리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들은 짓눌린 씨알만을 보고 ‘부지런해라’, ‘속이지 마라’, ‘참아라’, ‘사랑해라’라는 주문만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이렇게 되니, 인간세는 점점 지배자만을 돕게 되고 씨알의 바탈을 약하게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62]
57]『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46쪽.
58]陳鼓應, 『老莊新論』, 中華書局, 香港, 1991, 175쪽 참조.
59]『장자』, 「천지」, “厲之人夜半生其子, 遽取火而視之, 汲汲然唯恐其似己也” 참조.
60]장자의 눈으로 보면 유사 이래의 모든 도둑들의 마음은 적극주의적인 성향을 띄는데, 이들은 마치 「누가복음」의 탕자와도 같다는 것이 함석헌의 생각이었다.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43쪽 참조.
61]『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26쪽 참조.
62]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27쪽 참조.
함석헌은 지배자의 통치 이데올로기보다 심각한 것은 다시 없다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도둑질과 정치를 서로 등치시킨다. 역사적으로도 정치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도둑이 없었다고 한다. “그 좋은 예가 제주도다. 소위 삼무(三無)란 것이 어째 있을 수 있었던가? 별것 없다. 정치권에서 멀었기 때문이다.” 63] 뿐만 아니라, 본래 우리나라에는 도둑이 없었다고 하는 함석헌의 주장에 귀 기울인다면, 64] 신선 지향적이었던 마음의 현실 정치화가 세상의 혼란을 야기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함석헌의 관점은 전연 낯설지 않다.
왜냐 하면, 인간세에는 큰 도둑이 나타남으로써 작은 도둑들이 마치 족제비처럼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족제비란 놈이 쥐를 잡으려고 할 때 납작 엎디어서 쥐란 놈이 나와 노는 것을 기다린다. 작은 놈들의 소견과 하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경제라, 정치라, 출세라, 성공이라 하는 것이 족제비가 쥐를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일이 되기 위하여는 양심도 도리도 체면도 돌아볼 것이 없다. 마치 납작 엎디어 기회를 노려 남을 덮치는 족제비의 일 아니냐? 그 쾌락이 얼마나 가느냐? 이익을 얻고 이름이 나기 위하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가 족제비란 놈이 쥐에만 눈독이 올라 동으로 서로 뛰며 위험을 가릴 겨를 없이 분주한 것과 같지 않은가? 그러다가 갑자기 고동이 튀어 덫에 떨어지고 그물코가 죄어들면 그만 아닌가? " 65]
족제비의 비유는 욕망의 성취를 위한 치열한 행위와 관련이 되는 것이지만, 그 성취를 위한 행위가 도둑질과 다를 바 없음을 암시한다. 요컨대, 자신의 욕망성취를 위하여 족제비처럼 납작 엎드려서 기회와 형세만을 엿보다가 양심도 도리도 체면도 돌아볼 것이 없이 타자의 생명을 덮치는 행위가 다름 아닌 도둑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는 것이 함석헌의 입장이다.
63]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27쪽.
64]함석헌에 따르면 우리말엔 도둑질이란 말이 없었고, 오히려 자연의 큰 조화 속에서 신선 지경에 이르자 한 것이 그 근본이었다고 한다.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26쪽.
65]『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05쪽. 이에 대한 『장자』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장자』, 「소요유」, “莊子曰: 子獨不見狸猩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避高下; 中於機辟, 死於罔罟.”
그런데 도둑들의 정치, 경제, 출세, 성공 등의 바람은 모두 욕망의 분화구로부터 발생되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강남은 ‘손에 꼭 쥐고 놓지 않는 욕망’의 양상을 비유하여, 세간에 잘 알려진 다음 같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원숭이 잡는 틀이 생각난다. 남태평양이나 아프리카에서는 코코넛에 원숭이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땅콩이나 과자를 넣어서 나무에 묶어 놓는다. 그러면 원숭이가 냄새를 맡고 다가와서 코코넛 속에 있는 땅콩을 꺼내겠다고 손을 쑤셔 넣어 땅콩을 한 줌 쥔다. 일단 주먹을 쥔 손은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땅콩이 아까웠거나 일단 잡은 것을 놓았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혹은 그렇게 주먹을 쥐고 있는 자체가 자기를 얽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손을 펴지 못한 채 그대로 붙들려 있게 된다. 그러면 원숭이 사냥꾼이 유유히 다가가서 원숭이를 사로잡게 된다.” 66]
66]오강남, 『움켜쥔 손을 펴라』, 예담, 서울, 2008, 82쪽.
위의 인용문은 움켜쥔 손을 펴야만 살 수 있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교훈적 경구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인용문은 일상인의 일반적인 욕망의 체계를 비유한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욕망의 양상은 씨알 일반보다는 그 씨알 들을 손 안에 움켜쥐고 통치해보겠다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 정치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만일 함석헌에게 있어서 ‘손에 꼭 쥐고 놓지 않는 욕망’의 양상을 논의하라고 한다면, 그는 서슴지 않고 당대의 권위주의적 군부 정치인들의 욕망의 체계에 대해 비판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함석헌은 『장자』를 빌어 자신의 정치철학적 비판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선구적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함석헌이 ‘문명인’과 ‘들사람’을 상호 대비하여 논의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문명인과 들사람의 경계에는 언제나 욕망의 유무가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순에 따르면, 함석헌의 정치철학적 비판의식은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있다. 함석헌의 국가주의 문명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힘과 부를 추구하는 국가주의는 씨알에 대한 폭력적 지배로 귀결된다. 부와 권력이 집중된 국가주의 문명의 특징은 사치와 권력투쟁, 전쟁 등이다. 국가 문명은 편리와 쾌락을 추구한다. 함석헌은 힘들고 괴로운 일은 씨알에게 떠맡기고 지배자는 편하게 쾌락을 즐기자는 것이 국가주의 문명의 기본 원리이고, 이 원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둘째,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국가주의는 자연과 다른 인간에 대한 정복과 파괴로 귀결된다. 그 결과 씨알은 근심과 불안으로 가득차고, 서로 불신하며 적대하는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67] 이러한 함석헌의 국가주의 비판은 지배자 중심의 관점을 탈각하고 철저히 씨알의 관점으로부터 논의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함석헌은 씨알의 생명이 보존되고, 모든 씨알이 질곡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지배자들에게 하루속히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라’(在宥天下)고 제안한다. 그것은 손대지 말라는 것이며,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모든 만물은 제 스스로의 이법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둬둔다는 것은 그 까닭이 뭐냐 하면 민중이 제 바탕을 어지럽힐까봐 하는 말이다. 만물은 그 자성(自性)이 제 생을 제가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제 일은 제가 잘 아는 것이므로, 밖에서 그것을 건드리면 그 본성이 잘못되기 쉽다.” 68]
이것은 『장자』 「재유」 편의 핵심적 내용이기도 하다. 함석헌은 특별히 이 「재유」 편의 내용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씨알의 옛글풀이』에서 그 전문을 온전하게 소개하고 이를 우리말로 풀이해 냈다. 「재유」 편에 대한 함석헌의 관심은 그만큼 비중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장자』의 「재유」 편은 정치적 행위에 대한 비판적 담론서라고 할 수 있다. 함석헌은 이를 통해, 자연과 정치는 양립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함석헌은 자연과 정치의 양립 불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의 하는 일의 가장 잘된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정치하면 민중이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다.”69]
그래서 그는 무단적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나 사랑을 실천해보겠다는 의욕적인 정치는 모두 자연을 훼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함석헌은 장자의 자연에 대한 모색을 시도함에 있어서 정치철학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장자 철학이 현실 방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관점이다. 도리어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적극적 비판이 개입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67]박재순, 「씨알 사상의 핵심: ‘스스로 함’, ‘맞섬’, ‘서로 울림’」, ?함석헌 사상을 찾아서?, 117~118쪽 참조.
68]『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32쪽.
69]『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33쪽.
예컨대, 소위 사랑한다는 행위, 또는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에도 가만두지 않음, 즉 건드림이 개입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자연을 이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함석헌은 이와 관련하여 새의 봉양에 관련된 하나의 비유를 들고 있다.
“그러므로 새를 잘 기르려면 내 입에 좋은 것으로 먹이려 말고 새 제가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게 산림 속에 놔주라는 것이다. 정치는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민중을 기르는 일이다. 어리석고 잔혹한 일이다.”70]
이처럼 타자를 고착된 자의식에 근거한 인식의 대상으로 삼으면, 타자와 공생하는 삶은 결국 파괴되고 만다. 따라서 타자성에 근거해 타자와 소통한다는 것은, 주체가 타자를 삶의 짝으로 받아들이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말이다. 71]
통치자가 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이른바 ‘유위(有爲)’의 정치를 포기하여야 한다. 정치하겠다는,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의식의 과잉은 결과적으로 개별적 자아의 고착된 자의식을 확대 재생산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통치자가 “유위주의에 기울어질 때 사람의 마음은 표준을 잃고 각기 제 나름으로 제게 좋은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천하는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72] 고 한다.
그 ‘유위’를 행하는 마음의 양태를 장자는 ‘난권창낭’(臠卷愴囊)이라는 말로 묘사하였다. 함석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뜻풀이를 한다.
“난(臠)은 고기를 저밈이요, 권(卷)은 졸라 묶음이다. 사람의 마음이 옹글게 제대로 있지 못하고 찢기고 찌그러지고 작고 갇히어 너글너글한 모습이 없음을 형용한 것이다. 창낭(愴囊)은 어지럽고 바빠 어수선함이다. 맘씨가 그렇기 때문에 천하는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73]
이상의 논의는 『장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의 정치철학적 함의를 함석헌이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고쳐 풀이한 것이다. 함석헌은 장자가 말하는 ‘무위’가 일종의 무위도식과 같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보면서, 무위는 “멍청하게 앉았다는 말 아니다” 74]라고 강조한다.
함석헌은 씨알의 관점에서 정치화되어 있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기 위해 장자가 ‘무위’를 말하였다고 본다. 그리고 정치를 담당한 사람들은 마음을 텅 비워 무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욕심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높이는 일’(喬)이나, ‘잘못을 지나치게 따지는 일’(詰)이나, ‘남을 무시할 정도로 교만한 행위’(卓)나, ‘새매처럼 사나운 행위’(鷲)만을 일삼을 뿐이다. 이러한 정치는 어리석음의 정치를 모면하지 못한다.75] 어리석음의 정치는 갈수록 각박한 환경을 양산해 낸다. 그 결과는 인심과 사회가 짓밟은 듯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이른바 엉망진창이다. 그러나 그 원인을 따지면 사람의 마음을 가만두지 않고 건드려 어지럽혔다는 한 마디에 있을 뿐이라고 한다.76]
따라서 함석헌은 ‘씨알의 마음을 건드려서 구속하거나 어지럽히지 말라’(無攖人心)는 장자의 정신이 무위정치의 전제조건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무위의 정치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멍청히 있으란 말이 아니다. 말을 바꾸어 한다면 그것은 자치 정치다. 씨알들이 스스로 자기를 다스려갈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이다. 재유(在宥)란 그런 뜻이다.
둬두라, 둬두면 저절로 바로 된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은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위주의는 요샛말로 하면 자치주의다.” 77]
함석헌은 장자의 ‘무위’의 정치철학적 입장을 빌어, 78] 씨알의 자치를 모색한 것이다.
70]『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33쪽. 함석헌의 이 같은 언급은『장자』의 다음과 같은 우화와 관련이 있다. 『장자』, 「지락」,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71]강신주, 『장자&노자』, 김영사, 파주, 2006, 47쪽.
72] 『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43~144쪽.
73]『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44쪽.
74]오강남, 『움켜쥔 손을 펴라』, 예담, 서울, 2008, 82쪽.
75]『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30쪽 및 132쪽 참조
76]『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54~155쪽 참조.
77]『전집』 20, 『씨알의 옛글풀이』, 184쪽.
78] 장자의 주장은 한 마디로 ‘무위의 정치’라는 것이 함석헌의 생각인데(『전집』20, 『씨알의 옛글풀이』, 184쪽), 이러한 관점은 장자의 자치주의적 입장이 당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정신으로부터 제시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함석헌의 이와 같은 관점은 장자 철학에 대한 일반적 오독과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 장자 철학에 대한 일반적 오독이란 대체로 세상이 혼란할수록 그러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직 ‘마음의 안정’만을 찾는 철학자들이 있는데 장자가 그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안광복, 『철학, 역사를 만나다』, 웅진 지식하우스, 서울, 2011, 173쪽 참조)고 보는 입장으로부터 비롯된다.
함석헌의 장자관은 장자 철학이 현실 도피적 성향을 갖는다는 일반적 오독으로부터 탈피하여 현실 초월적 비판론에 있었음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5. 미봉적 글 맺음, 또는 남겨진 몇 가지 문제들
장자와 그의 저서 『장자』에 대한 함석헌의 애정은 매우 컸다. 그는 장자에게서 영혼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적 계기를 감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씨알의 자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었다. 그는 『장자』의 문자에 얽매이지 않았고 살아있는 장자의 영과 직접적인 감응과 소통을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그래서 함석헌은 장자가 되고 장자는 함석헌이 됨으로써,79] 주체적 성향을 지닌 『씨알의 옛글풀이: 장자』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씨알이 중심이 되어 풀이된 『장자』였고, 특히 ‘무위의 정치’라는 일관된 시각에서 독해된 『장자』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인정된다.
본고는 함석헌 장자관의 다양한 주제들을 모두 수렴하여 한 자리에 모아놓고 체계적으로 검토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매우 제한적인 지면 안에 많은 논의의 주제들을 다양하게 직조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몇 가지 남은 문제들을 제시해보는 것으로서 글 맺음에 대신해보기로 한다.
79] 이러한 점 때문에 본고에 나타난 장자와 함석헌의 사상은 상호간의 경계를 드러내기보다는 상호 혼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특징이 있다. 즉, 어느 것이 장자 본래의 사상이고 어느 것이 함석헌 자신의 사상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본고는 다만 양 사상가의 사유의 접점에 관하여 주목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상적 차이점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는 새로운 후속연구를 기약하기로 한다.
[1] 함석헌은 장자를 만난 이후 장자에 대한 뿌리 깊은 애정이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함석헌에게 있어서 여전히 장자는 절대적 믿음의 대상라든가 최고의 존재의 위격을 담지한 존재로서 말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함석헌이 ‘하나님의 발길에 차여 죽을 때까지 한 걸음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저절로 밝혀진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늘 노자, 장자를 많이 말한다고 그런다지만, 내가 내 주님이라 한다면야 예수가 내 주님이지 노자, 장자겠어요? 사상으로 한다면 거기 좋은 점이 있으니까 그러지만.” 80]
함석헌의 사유의 중심에는 언제나 씨알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함석헌이 본 씨알의 으뜸 씨알이 바로 예수였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함석헌의 관점은 그의 『장자』풀이 곳곳에도 반영되어 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기독교적 관점에서 논의된 장자관의 종교적 특징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함석헌은 장자에게서 생명과 평화의 사상을 발견해 낸다. 그리고 많은 함석헌 연구가들은 이러한 주제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석헌이 장자에게서 발견한 생명과 평화의 사상은 어떠한 이유 때문에 제안된 것이고, 또한 구체적으로 어떠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현대적 의의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함석헌이 ‘무위의 정치’를 철학적으로 담론화한 것이 장자였다고 간주하기는 하지만, 그 정치철학적 입장에서 모색 가능한 현대의 생명사상과의 비교라든가, 생태환경윤리 등에 기여할만한 사상적 요소는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3] 함석헌의 『장자』풀이에서는 함석헌이 참조한 장자 이외의 또 다른 인물들의 사상과 저작들이 남기고 간 텍스트적 사유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물론 본고는 이 점을 논외로 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함석헌의 장자관을 비평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보고자 할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다양한 사유의 흔적들을 유형별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공자와 맹자의 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주자와 같은 신유학자가 남긴 사유의 흔적들이 관여되어 있기도 하다는 점은 여전히 시사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몇명의 제자백가에 대한 함석헌의 이해방식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장자』의 최고주석가로 알려진 곽상의 장자관을 함석헌이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해명 역시 중요하다.
[4] 이외에도 서양의 철학과 문명에 대한 함석헌의 대응방식이라든가, 종교적 다원주의, 계몽주의, 민족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또는 역사 영웅주의 등등에 대한 입장에 대해 고찰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소소한 문제처럼 비쳐질지는 모르지만 서지사항과 관련하여 참고문헌 인용의 정확성 문제라든가, 또는 『장자』의 주요개념어에 대한 함석헌 풀이의 정확성 문제와 같은 지엽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짚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필자는 거칠게나마 몇 가지 측면을 통해 함석헌 장자관의 기본 입장에 관하여 모색하여 보았다. 그러나 함석헌 장자관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검토는 여전히 뒤로 남게 되었다. 본고는 아직 완료되지 못한 미완의 시론적 논고일 뿐임을 밝혀두면서, 이상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써 그 미봉적 글 맺음을 변명하는 데 대신하고자 한다.
80]『전집』 15, 『말씀, 퀘이커300년』, 79쪽.
참고문헌-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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