荀子의 “心”論
朴 天 翼
[한글 요약]
荀子는 孔子와 孟子가 주장한 하늘의 意志的 側面을 부정하고, 하늘은 하나의 自然 현상에 지나지 않는 客觀的이고 物理的인 實體로 본다.
荀子는 인간의 특성을, 태어나면서 갖는 自然的인 性과 後天的으로 배우고 익히는 人爲的인 僞로 나누고, 양자의 補完的 統合을 통해 사회 관계에서의 調和와 秩序를 이루고, 개인적으로는 완성된 人格體로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荀子에 있어 性은 感覺 기관과 情과 慾望을 포함하는 것인데 비해, 僞은 聖人에 의해 만들어진 禮儀이다. 그리고 性과 僞는 相補的 관계를 갖는다. 荀子는 利己的 本性을 가진 인간이 後天的 敎育을 통해 聖人이 만든 僞를 실현하는 化性起僞를 주장하였다.
孟子는 性과 心을 하나의 槪念으로 보면서 性善說을 주장하지만 荀子는 心과 性을 分離시켜 인간은 利己的 本性을 가지며, 인간 본성은 善의 缺乏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荀子의 心論의 特徵은
첫째, 心을 논함에 있어 그 本體와 本質은 모두 形而上學的 精神物이고, 이는 인간의 영관이 된다.
둘째, 心은 身體의 主宰 기능을 가진다. 이는 인간의 학습이며, 인지적 관능 및 문화적 생산의 근원이 된다. 이것은 主宰 및 探究의 能力을 가지고, 인간 의지의 관능에 존재한다.
셋째, 心은 인간의 道德 및 禮儀의 출발점이다. 心 속에는 道德 指向性이 있고, 道德 規範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는 禮儀法度의 기원으로 化性起僞를 가능하게 한다.
넷째, 心은 정서적 의의를 포함하며, 이는 인간의 喜怒哀樂과 같은 感情의 근원이다.
다섯째, 荀子는 性을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천성으로 보아 心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즉 心은 내재하고 性은 외재한다고 본다.
여섯째, 心의 認識 機能에 대해 중요시 한 것이다. 이는 이기적 본성을 가진 인간이 선을 추구하는 인간 되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과도 관련이 된다.
주제 분야 : 동양철학. 선진 유학
주 제 어 : 荀子, 心
1. 서론
孔子, 孟子, 荀子로 이어지는 先秦 儒學은 그 이후 아시아의 사상을 지배해 왔던 儒學 思想의 基礎가 확립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先秦 儒學에 대한 硏究는 孔子에 있어서는 ‘仁’ 사상에 대한 것과 孟子에 있어서는 人性論에 대한 것이 主流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사상에 대해 共通된 主題를 가지고 硏究한 成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측면에서 검토해 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先秦 사상의 硏究에 있어서 그들의 空間的 差異를 認定하면서 각 思想家의 思想만을 檢討하거나 對立된 見解를 가진 사람에 대한 斷片的인 硏究가 全部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先秦 시대의 思想家들은 心을 그다지 중요한 槪念으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心’이라는 글자는 『論語』의 경우에는 6차례 등장할 뿐이고, 『論語』보다 후대의 저술인, 『墨子』에서는 心에 대한 언급은 제법 많지만, 人性論을 설명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心이 사용되었을 뿐, 心을 人間 理解의 哲學的 主題로 浮刻시키지는 않았다. 이후 孟子와 荀子에 이르러 心은 인간 이해의 主題로 登場되었고 특히 修養論의 관점에서 硏究되었다. 그렇다면 이 당시에 왜 마음이 중요해졌을까? 시대적 社會的 環境의 變化에 그 原因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理由가 있다면 그 理由는 무엇인가?
현재까지 “心”이 어떤 過程을 거쳐 哲學的 範疇로 登場했는지에 대한 만족할 만한 硏究 成果는 없다.
先秦 儒學에서 孟子를 제외하고 心을 중시하는 사상가로는 荀子를 들 수 있다. 孟子와 荀子의 “心”論은 自己 修養을 强調하는 共通點이 있다. 그리고 自己 修養의 過程에서 마음을 중심 문제로 부각하고 있다. 孟子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不動心)”이나, 荀子의 “마음을 비우고 한결같이 하며 고요히 하기(虛一靜)” 등이 이에 해당한다.
先秦 儒學에 대한 종래의 연구는 주로 人性論과, 敎育思想, 政治思想에 치우쳐 왔다. 이러한 硏究는 겉만을 맴도는 연구라 할 수 있다. 人性論의 연구에 있어서 孟子의 性善說과 荀子의 性惡說의 진정한 意味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근저에 위치한 心과 性에 대한 論議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일이다. 本考에서는 荀子의 心에 대한 해석과 기능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이는 荀子의 人性論을 포함한 사상의 이해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荀子의 “心”論
1) 人間 主體로서의 心
人間이 動物과 區別되는 것에 대해 荀子는 心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사상에서 心이라는 말은 『詩經』, 『書經』 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이때의 心은 道德的 意味에서의 善惡의 구분은 없었다. 유학에서 心에 대한 本格的 論議는 孟子부터라고 할 수 있다.
孟子가 주장한 心은 先天的으로 人間에게 賦與된 것으로 靈明함이 있고, 善端이 있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孟子는 人間의 本性은 善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荀子는 心이 性이 되는 것과 性善說에 反對하여, 인간의 心은 認識 能力과 學習 能力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心에 의해 人間의 道德은 實現되며, 道德的 行爲 및 禮儀 法度가 “心”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물과 불은 기는 있어도 생명은 없고, 풀과 나무는 생명은 있어도 지각은 없고, 금수는 지각은 있어도 의가 없다. 사람은 기도 있고 생명도 있고 지각도 있고, 그리고 또 의가 있다. 그러므로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이다. " 1]
1]『荀子』,「王制」. 水火有氣而無生 草木有生而無知 禽獸有知而無義 人有氣有生有知亦且有義 故 最爲天下貴也.
"사람이 사람다운 특색은 무엇인가?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하고 싶고, 고단하면 쉬고 싶고,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있는 것이다. 배워서 된 것이 아니다.
… 무릇 금수는 부자는 있어도 부자의 친함은 없으며, 암수도 있되 남녀의 분별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도리는 분별의 있음에 있고, 분별은 명분보다 큰 것이 없으며, 명분은 예보다 큰 것이 없다. " 2]
2]『荀子』,「非相」. 人之所以爲人者 何已也? 曰 以其有辨也. 飢而欲食 寒而欲煖 勞而欲息 好利 而 惡害 是人之所生而有也 是無待而然者也
… 夫禽獸有父子而無父子之親 有牝牡而無男女 之別. 故人道莫不有辨. 辨莫大於分 分莫大於禮.
荀子의 基本 立場은 人間을 포함한 萬物의 形狀과 性質은 각기 다르며, 그 중에서 하늘로부터 氣稟과 形狀을 가장 적절히 부여받은 것이 人間이라고 본다. 人間은 물과 불의 氣와 초목과 같은 生命과 금수와 같은 感覺을 가지며, 아울러 獨自的 理性과 思慮를 가지고 있다. 이런 원인으로 人間은 知識을 가질 수 있고, 分別이 있으며, 區分이 있고, 義가 있으며 禮가 있다. 인간은 心을 가짐으로써 만물의 靈長으로 존중되며, 다른 만물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荀子는 또 말하기를
"상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을 논하는 것은 그 사람의 도를 논하는 것만 못하다. 외형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이 도를 이기지 못한다.
도가 바르고 마음이 순하면 외형이 아무리 나빠도 심술이 착하므로 군자가 되지 못할 리 없다. " 3]
3]『荀子』,「非相」. 故相形不如論心 論心不如擇術 形不勝心 心不勝術.
術正而心順之, 則形相雖惡 而心術善, 無害爲君子也,
人間과 動物은 外形에 있어 差異가 있으며, 개인 사이에도 다르다. 荀子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간이 마음을 가지는데 비해, 동물에게는 이것이 없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差異로, 역시 인간 마음 속의 知識과 善惡의 같지 않음에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心은 인간의 主體가 되는 것이다.
2) 荀子의 “心” 해석
心에 대한 荀子의 기본 입장은 心을 具體的 實體의 意味로 본다는 것이다. 荀子는 心을 칭해서 ‘虛壹而靜’이라고 했다. 여기서 ‘虛’는 心의 本性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心의 機能은 앎에 있고, 이런 앎은 形而上學的인 것이다. 그러므로 心은 當爲的으로 形而上學的 精神的 實體이다. ‘壹’과 ‘靜’은 心의 性格 및 機能을 말한 것으로, 그 性格은 統一性에 있다고 할 수 있다. 荀子는 말하기를,
"귀․눈․코․입․몸이 외계의 사물에 접하면 제 각각 맡은 작용이 있어서 서로 동요되지 않는다. 이것이 천관, 즉 자연적인 관능이다. 마음은 체내의 중심으로서 오관을 통제하는 천군 즉 자연적인 지배자다. " 4]
4]『荀子』,「天論」. 耳目鼻口形 能各有接而不相能也 夫是之謂天官.
"마음은 어떻게 해서 알 수 있는가? 허와 일과 정에 있다.
마음은 항상 무엇인가 지니고 있으면서도 공허할 수 있으며, 마음은 항상 여러 가지가 차 있으면서도 통일될 수 있으며, 마음은 항상 움직이면서도 고요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나면서 지각이 있고, 지각하면 기억이 있으니, 기억이란 마음에 지닌 것이다. 그러면서도 허가 있는 것은 이미 지닌 것으로써 새로 받아들일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허의 상태라 한다.
마음이 생기면 인식의 능력이 있고, 사물을 인식하면 구별이 생기니 구별이란 것은 많은 것을 한꺼번에 아는 것이요, 한꺼번에 알면 마음은 여럿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 즉 하나일 수 있는 것은 이 하나로 저 하나를 해치지 않는 까닭이니, 이것을 일의 상태라 한다.
마음이 잠자면 꿈을 꾸고, 한가하면 방종하고, 마음을 쓰면 여러 가지 계략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항상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요할 수 있는 것은 몽상이나 복잡 빈번한 생각도 인식 능력을 흐리게 하지는 못한다. 이것을 정의 상태라 하는 것이다. " 5]
5]『荀子』,「解蔽」.
心何以知 曰 虛壹而靜.
心未嘗不臧也 然而有所謂虛 心未嘗不滿也 然而有所 謂 一 心未嘗不動也 然而有所謂靜.
人生而有知 知而有志,志也者,臧也 然而有所謂虛不以所 已臧 害所將受謂之虛.
心生而有知 知而有異 異也者 同時兼知之 同時兼知之 兩也
然而有所 謂一 不以夫一害此一謂之壹
心 臥則夢 偸則自行 使之則謀. 故心未嘗不動也 然而有所謂靜 不以夢 劇亂知謂之靜.
荀子에서 “心”은 形而上的 靈官, 혹은 內在的 精神 機能이며, 인간의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心에 대한 認識을 慾望하지만, 이는 身體의 다른 機能 및 活動에 의한다.
荀子의 견해에 따르면 心은 세 종류의 현상 및 성격이 있는데,
첫째는 虛이다. 心이 어떻게 虛가 되는가?
그 理由는 心은 貯藏의 能力이 있는데, 이 能力은 事物에 대한 認識의 能力과 記憶하는 能力, 一切의 보고 들은 것을 마음에 쌓아서 貯藏하는 能力이다. 이는 마음속에 이미 貯藏되어 있는 事物로서가 아니라 貯藏되어 있는 事物에 방해가 되지 않으므로 ‘이미 들어 지닌 것으로 새로 받아들이는 것을 拒否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心이 지니고 있는 能力은 마땅히 虛이다. 이러한 虛는 兩面性을 가지는데, 하나는 그 所藏된 壹의 理致로 보면, 事理로서의 理는 抽象的, 形而上學的이며, 다른 存在와 달리 人間의 感性이 되어 虛가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事物에 대한 窮理의 結果와 같은 虛로서 事物을 認識할 수 있는 心官이며, 그 本體는 당연히 ‘虛’가 되고, 이 ‘虛’의 本體는 形而上學的인 것이며 精神的인 實體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心은 壹이다. 荀子가 心에 대해 壹이 된다고 한 理由는 心이 兼知의 能力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兼知는 心이 記錄할 수 있다는 것이고, 個別的인 것이나 다양한 知識을 記憶할 수 있는 能力이며, 이는 서로 排除하지 않고, 서로 損害되지 않으며, 서로 害를 끼치지 않는다.
西洋 哲學의 認識論에서 人間은 精神 및 肉體의 結合體이다. 아울러 人間은 마음을 가짐으로서 하나의 理性的 存在가 되며, 이런 이유로 人間은 하나의 人格體가 된다. 主觀的 認識 能力에 따라 보면 하나의 人格的 認識 主體는 이 ‘壹’이다. 다시 知識 形成의 效果로 보면 人間은 事物을 認識할 수 없고, 事物이 人間의 感性的 認識 範疇에 있어도 다른 存在는 ‘雜’이 되고 ‘多’가 된다. 다른 經路로 人間의 心에 들어가면 心으로부터 抽象的 機能이 由來하며, 雜多한 現象의 變化나 普遍的 觀念 및 統一的 壹의 理致가 되며, 이때의 壹은 變化를 취하여 하나가 된다. 이처럼 동일한 作用이 하나의 共同 觀念을 形成하여 서로 衝突하지 않고, 서로 混亂 되지 않는다.
셋째로 心은 靜이 된다. 이른바 靜이라는 能力은 ‘夢想이나 複雜 빈번한 생각도 認識 能力을 흐리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처럼 心은 본래 항상 움직이는 것이다. 단지 움직임 가운데 靜을 지키는 能力이 있는데, 그 움직임이 있을 때도 그 知識을 混亂하지 않는다. 이런 知識을 混亂하지 않는 현상은 움직임 가운데 靜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荀子의 기본 입장은 心은 物質的 實體가 아니며 人間의 性의 부분으로 把握된다. 이런 결과로 다른 物質的 實體와 달리 心은 藏의 機能이 있고 兼知 및 夢想을 받아들이므로 憂患과 混亂 시에도 빈 것이 아니므로 壹이며 靜이 된다. 心은 非物質的 實體 혹은 人間의 自然的 天性이며 性과 달리 存在하고, 性보다 高貴한 것이다.
『荀子』에서는 心은 事物 認識의 能力이며, 人間 身體를 主宰하는 能力인 동시에, 人間의 感覺 行爲를 統制하는 것으로 理解된다.
3. 心의 機能
1) 認識 機能
心은 事物과 知識에 대한 認識 機能을 갖는다. 이는 心이 事物을 認識하게 되는 것을 말한 것이며, 知識 獲得의 일정한 作用을 말한 것이다. 西洋 哲學의 認識論에서는, 知識의 根源을 先天的인 理性과 後天的인 經驗으로 구분해서 理論을 展開한다. 動物은 心을 가지지 못함으로서 學問과 思想을 포함한 文化가 있을 수가 없다. 感性의 知識과 관계가 있고 心志가 다른 것에 대해, 荀子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區分하여 把握하였다. 이는 感性의 知識에 대한 것과는 달리 이런 樣相으로 말하는데
"귀․눈․코․입․몸이 외계의 사물에 접하면 제 각각 맡은 작용이 있어서 서로 동요되지 않는다. 이것이 천관 즉 자연적인 관능이다. 마음은 체내의 중심으로서 오관을 통제하는 이름하여 천관이다. " 6]
6]『荀子』,「天論」. 耳目鼻口形 能各有接而不相能也 夫是之謂天官
"눈으로 흑백을 가리며 아름답고 추한 것을 분별하고, 귀로 음성의 청탁을 구별하고, 입으로 짜고 시거나 달고 쓴 것을 구별하며, 코로 향기로운 것과 비리고 퀴퀴한 것을 맡고, 피부로 차고 덥고 가려운 것을 아는 것은, 이 또한 나면서부터 가진 것이다. " 7]
7]『荀子』,「榮辱」. 目辨白黑美惡 耳辨音聲淸濁 口辨酸鹹甘苦 鼻辨芬芳腥臊 骨體膚理辨寒暑疾養 是又人之所常生而有也.
荀子는 人間의 感覺 기관은 物體의 認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보는데, 이러한 입장은 孟子의 “귀와 눈이 맡은 것은 생각지 못하여 물욕에 가리게 되어 外物이 이 귀와 눈과 서로 接觸하면 이것을 誘惑할 뿐이다.” 8]를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귀와 눈은 사물을 인식할 때, 사물을 접하는 것이며, 사물의 性質과 狀態를 分別할 수 있다. 눈은 흰 것과 검은 것 아름다움과 악함을 區別하며, 귀는 음성의 청탁을 구분하고, 입은 짜고 시거나 달고 쓴 것을 區別하며, 코는 향기로운 것과 비리고 퀴퀴한 것을 맡는 등의 단지 다른 것들과는 달리 事物의 本質을 認識할 수 있는 能力은 없는 內的으로 涵養된 것이다.
인간의 감각 기관은 각각 맡은 작용이 있어서 서로 混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 맡은 작용이 있는 것’은 단지 각각의 감각 기관이 대상 및 그 성질과 상태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또 ‘눈은 흰 것과 검은 것 아름다움과 악함을 분별하며, 귀는 음성의 청탁을 구분하고’ 등이며, 단지 또 다른 ‘서로 동요되지 않는다’이며, 즉 이것은 눈이 보는 능력은 듣는 능력이 아니며, 입의 맛보는 능력은 코의 냄새 맡는 종류의 능력과는 다르다. 따라서 感性은 完全한 綜合 意識이 없고, 또 綜合 統一된 知識을 파악할 수는 없다.
8]『孟子』,「告子上」. 耳目之官 不思而蔽於物 物交物則引之而已矣.
귀와 눈 등의 感覺的 認識은 心에 의한 認識의 출발점이 된다. 事物은 먼저 오관에 의해 드러나며, 五官을 빌러 知識의 材料를 획득하며, 오관은 다시 이러한 것과 더불어 材料의 性質을 形成하며, 心官에 의해 전해지고 둘러싸인다. 心은 이러한 機能을 통해서 事物의 形象을 把握하거나 觀念을 形成한다.
귀와 눈의 감각기관과 心의 관계에 대해, 荀子는 말하기를
"마음에는 징지 즉 밝은 인식이 있는 것이다. 인식이란 귀가 듣는데 작용하고 눈이 형태를 보는데도 작용한다. 그러므로 징지 즉 인식이란 천관이 전에 느꼈던 기억을 찾아서 이것을 유별하는 것이다. " 9]
9]『荀子』,「正名」. 心有徵知 徵知 則緣耳而知聲可也 緣目而知形可也 然而徵知必將待天官之當 簿其類然後可也.
荀子가 말하는 바의 ‘마음에는 徵知, 즉 밝은 인식이 있는 것이다’라는 것은 즉‘귀가 듣는데 작용하고 눈이 형태를 보는데 작용한다’의 지식이다. 이는 감각 기관의 지식을 빌려서 된 것이다. 個別的 知識을 구하는 과정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事物의 認識 및 知識을 구하는 機能에 있다. 事物을 認識할 수 있는 것은 材料의 賦與이며, 五官의 接觸이 媒介體가 되며, 이럴 때 인간의 心은 ‘認識 主體’이며, 知識은 ‘認識 效果’이다.
즉, 五官을 통해 感覺으로 經驗한 雜多한 事實들을 해석하고 정리하여 통일된 認識에 도달하게 하는 것으로서, 개별적으로 경험된 것들의 전체적 의미를 분명히 해 줌으로써, 五官의 作用을 完成시키는 것이 바로 心의 徵知 10]인 것이다.
인간은 이런 徵知가 있음으로서 일의 원인을 알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으며, 겸지와 추리가 가능하다. 이는 지식과 학문의 필요 원인 내지는 조건과 과정이 된다.
心은 事物의 失體나 理致를 해석하는 기능을 가지는데. 귀와 눈은 事物의 性質과 형상을 관찰하지만, 사물의 이치를 해석하는 능력은 아니다.
『易經』의 “形而上者를 道라고 하고 形而下者를 器라고 한다.” 11]에서 器는 事物의 物理的 實體를 지칭하며, 道는 事物의 存在 혹은 理致를 意味한다. 인간의 감각 기관은 사물의 물상, 외체 혹은 그 형상을 感覺할 수 있다. 그리고 事物의 存在 혹은 理致에 대한 認識은 心의 活動에 의해 이루어진다.
10]荀子 사상에 나타나는 ‘徵知’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에 대해 楊倞은 『荀子註』에서 “徵은 부른다․모은다는 말로서, 徵知란 心이 만물을 불러모아서 이를 인식하게 됨을 말한다”(徵召也 言心能召萬物而知之)고 보고 있다. 그 이후 胡適의 ‘證明’, 牟宗 三의 ‘知用, 즉 知性’, 蔡仁厚의 ‘理解’, Watson의 ‘全般的 悟性’, Dubs의 ‘감각적 인상에 대한 의미부여’ 등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종합해 보면, 徵知란 지식을 근거있게 하는 것으로, 잡다하게 받아들인 감각 또는 인상을 수집하여 조리있게 정리하고, 해석하며, 증명해 주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11] 『周易』,「繫辭傳 上」. 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心은 어떻게 사물의 이치를 해석할 수 있는가? 앞에서 논의했듯이 心은 精神的 實體의 原因이 되며, 虛壹而靜의 本性을 가진다. 다만 虛를 원인으로 하여 形而上의 理致의 理解를 可能하게 한다.
달리 壹을 원인으로 하여, 兼知를 가질 수 있으며, 事物의 正體를 이루는 것을 觀察할 수 있고, 理解 및 統一시키는 기초적 機能이 주어진다. 그리고 靜이 되는 원인으로 事物의 理致를 볼 수 있는 淸明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쟁반의 물과 같아서, 똑바로 놓고 움직이지 아니하면 흐린 잔채는 아래로 가라앉고 위의 물은 맑고 맑아, 얼굴의 수염이나 눈썹까지 보이지 마는, 미풍이라도 불면 밑의 가라앉았던 것이 떠오르고 위의 맑은 것이 흐려져, 큰 형태도 똑바로 볼 수 없으니, 사람의 마음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러므로 바른 조리로 인도하고 맑은 상태를 길러서 외부의 사물에 기울어지지 아니하면 족히 시비 선악을 판단하고 의혹을 해결한다. " 12]
12]『荀子』,「解蔽」. 故人心譬如槃水,正錯而勿動,則湛濁在下而淸明在上,則足以見鬚眉而察理 矣.微風過之,湛濁動乎下,淸明亂於上,則不可以得大形之正也.心亦如是矣.
故導之以 理,養之以淸,物莫之傾,則足以定是非,決嫌疑矣.小物引之,則其正外易,其心內傾, 則不足以決庶理矣
心은 인간 행동의 원인이 되는데, 스스로나 혹은 외부로부터의 刺戟에 의해 이루어진다. 事物에 대한 認識은 明確해야 한다. 인간 心이 流動的이거나 外部的 사물의 實體가 제대로 認識되지 못하면 事物의 理致 또한 명확하게 파악될 수 없다. 그러므로 荀子는 인간이 ‘바른 조리로 인도하고, 맑은 상태를 길러서, 외부의 사물에 기울지 않음’을 중요시했으며, 인간의 心은 항상 그 바름을 지키도록 하였는데, ‘이는 족히 얼굴의 수염이나 눈썹까지 볼 수 있다’이나, ‘족히 是非 善惡을 判斷하고 疑惑을 解決한다’가 바로 이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心이 虛壹而靜에 도달한 것을 荀子는 大淸明이라고 한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하여 도를 구하는 자에게는 마음을 공허하고 전일하게하여 고요함을 얻도록 일러 법칙을 삼게 할 것이다.
도에 따르고자 하면 공허해야 들어갈 것이요, 도를 실천하고자 하면 전일하면 될 것이요, 도를 생각하고자 하면 고요하면 분명해질 것이니, 도를 분명히 인식하여 실천하는 이는 도를 체득한 사람이니, 허하고 일하여 정을 얻은 것을 대청명이라 부른다. " 13]
13]『荀子』,「解蔽」. 未得道而求道者 謂之虛壹而靜 作之則
將須道者之虛則入 將事道者之壹則盡 盡將思道者靜則察 知道 察知道 行體道者也. 虛壹而靜 謂之大淸明.
心은 비어 있어 늘 道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心이 하나에 이르는 것이며, 그 이치는 다함이 없는 능력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생각을 정숙히 하는 것인데, 그 의의를 명석히 하는 능력이다. 道를 아는 것은 능력을 밝게 살피는 능력이며, 道를 아는 것은 힘써 행하는 능력이고, 이것의 진정한 재능은 道를 체득하는 공부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虛壹而靜’에 도달하는 것을, 즉 ‘大淸明’이라고 한다.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사물의 실체에 대해 명확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명확한 견해가 없는 것은 진술될 수 없는 것이다. 진술될 수 없는 것은 선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비록 작은 방에 앉아 있어도, 天下의 일을 다 볼 수 있고, 현재에 있으면서도 과거의 역사에 대해 말할 수 있다. 萬物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그 性理의 明晳한 능력이며, 亂을 다스리는 것을 보고 살핌으로서, 그 原因을 밝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道德的 行爲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道를 認識하는 것이 必要한데, 道를 認識하기 위한 能力은 心과 관계 있다. 이에 대한 『荀子』의 論議는 많은데,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 와서 마음에 안착되고, 사지에 퍼져서 행동에 나타난다. " 14]
14]『荀子』,「勸學」. 君子之學也 入乎耳 箸乎心 布乎四體 形乎動靜.
"그러면 무엇이 저울이 되는가? 도가 곧 저울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도를 모르면 아니된다. … 마음으로 도를 안 연후에야 도를 좋아 할 것이요, 도를 안 연후에야 도를 실천하고 도 아닌 것을 금할 것이다. " 15]
15]『荀子』,「解蔽」. 何爲衡? 曰道 故心不可以不知道 心不知道 則不可道而可非道.
"변설이라는 것은 마음의 사고를 진행시키는 방도이니, 마음이란 도의 주재이다. "16]
16]『荀子』,「正名」. 辨說也者 心之象道也. 心也者 道之工宰也.
道는 즉 理이고, 道를 아는 것은 理致를 아는 것이다. 『荀子』에서 道에 대해 말한 것은 君主와 君子의 道를 논한 것으로 戰國 時代의 상황에서 그 의의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 道德的 行爲 機能
心은 人間 行爲의 마땅한 행위와 그렇지 못한 행위를 判斷하고 도덕적 행위를 하게 하는 機能이 있는데, 이런 의미의 心을 道德心이라 할 수 있다.
荀子에 있어서 心은 인간 행위의 출발점이고, 이는 인간의 利己的 本性으로부터 善을 향하는 推進力이다. 이리하여 말하기를,
"그러면 지나가는 행인도 다 우 임금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말하자면, 우의 우된 소이는 그 인의와 올바른 규범을 실천한 까닭이다. 그러면 인의와 바른 규범은 누구나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 인의와 규범을 알 수 있는 소질과 행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든 즉 누구든지 다 우임금처럼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17]
17]『荀子』,「性惡」. 塗之人也. 皆有可以知仁義法正之質 皆有可以能仁義法正之具, 然則其可以爲 禹明矣.
이 글에서 仁義와 規範을 알 수 있는 素質은 人心을 지칭하며, 才能은 인간의 五官 및 身體上 여러 가지의 機能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道德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道德을 행하는 機能이 있다. 이는 事物에 있어서나, 인간에 있어 서로 같다. 다만 心이 유래되는 것은 天君이며, 오관은 天官이 되고, 心은 五官을 主宰하며, 이를 原因으로 인간의 五官은 심의 主宰와 統制를 받음 없이 行爲할 수 있다는 것이다.
心의 道德的 機能에 대해, 荀子는 여러 곳에서 말하는데,
"소인의 마음은 호랑이나 이리 같고, 행실은 금수같다. "18]
18]『荀子』,「修身」. 小人反是致亂 而惡人之非己也. 致不肖 而欲人之賢己也. 心如虎狼 行如禽獸.
"어진 마음으로 남에게 말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남의 말을 듣고, 공평한 마음으로 변론한다. "19]
19]『荀子』,「正名」. 以仁心說 以學心聽 以公心辨.
荀子는 心의 道德 機能은 基本的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善하게 되는 것을 認定한다. 荀子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 행동의 善을 향한 志向으로서의 心의 機能이라고 할 수 있다.
心의 道德的 行爲 機能에 대한 『荀子』에서의 言及은 「仲尼編」, 「君道編」, 「臣道編」, 「不筍編」, 「禮論編」, 「樂論編」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 身體의 主宰 機能
인간의 心은 身體를 主宰하는 機能을 갖는다. 이는 身體的 活動과 行爲를 統制 제어하는데 있다. 心은 身體 및 行動을 主宰할 수 있으며, 자기가 뜻하는 바의 能力을 선택할 수 있는 自律性을 갖는 두 가지 意味를 가진다
心의 身體的 主宰 機能에 대해, 荀子는
"육체의 군주요, 신명의 주체다. 스스로 명령을 발하고 남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20]
20]『荀子』,「解蔽」. 心者 形之君也而神明之主也 出令而無所受令.
"걸은 애희 매희와 간신 사관에 가려서 관용봉의 충성을 보지 못하여 그 마음을 현혹하고 그 행실을 어지럽혔다. 주는 애희 달기와 간신 비렴에 가려서 미자계의 어진 것을 못 보고, 그 마음을 현혹하고 행실을 어지렵혔다.
… 성탕은 걸을 경계 삼아 그 마음을 지키고 다스림을 삼가며, 문왕은 주를 경계 삼아 그 마음을 지키고 다스림을 삼갓다. "21]
21]『荀子』,「解蔽」.
桀蔽於末喜斯觀 而不知關龍逢 以惑其心而亂其行
紂蔽於妲己·飛廉 而不知 微 子啓 以惑其心而亂其行
… 成湯監於夏桀 故主其心而愼治之 文王監於殷紂 故主其心而 愼治之.
"자연의 생성 작용에 의해서 사람의 육신이 태어나고, 정신이 생기면 좋아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깃들게 마련이니 이것이 천정 즉 자연적인 감정이다.
귀 눈 코 입 몸이 외계 사물에 접하면 제 각각 맡은 작용이 있어서 서로 동요되지 않는다. 이것이 천관 즉 자연적인 관능이다. 마음은 체내의 중심으로서 오관을 통제하는 천군 즉 자연적인 지배자다. '22]
22]『荀子』,「天論」. 形具而神生 好惡喜努哀樂臧焉 夫是之謂天情
耳目鼻口形 能各有接而不相能 也 夫是之謂天官 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
心은 인간의 신체상에 있어서의 權威性 및 主宰性은 어떤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것이 아닌 先天的인 것이다. ‘육체의 군주’에서 육체는 인간 신체의 五官 혹은 天官을 지칭한다. 心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主宰할 權利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心은 自律的 能力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荀子는 말하기를
"스스로 금하고, 스스로 부리며, 스스로 빼앗고, 스스로 취하고,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은 억지로 말을 시킬 수도 있고 다물게 할 수도 있으며, 사지는 억지로 펴게 할 수도 꾸부리게 할 수도 있지마는 마음은 억지로 뜻을 바꾸게 할 수는 없다. 옳으면 받고 그르면 물리친다.
그러므로. 마음의 자태는 그 선택을 남이 금하지 못하며 스스로 보고 선택하는 것이요, 아무리 사물이 잡다해도 그 정수는 둘이 아닌 통일되어 갈려지지 않는 것이다. "23]
23]『荀子』,「解蔽」. 自禁也 自使也 自奪也 自取也 自行也 自止也.
故口可劫而使墨云 形可劫而 詘申 心不可劫而使易意 是之則受 非之則辭.
故曰 心容 其擇也無禁必自見 其物也雜博 其情 之至也不貳.
이처럼 인간의 心은 自主的, 自律的, 自治의 能力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억지로 뜻을 바꾸게 할 수는 없다. 옳으면 받고 그르면 물리친다.’ 및 ‘마음의 자태는 그 선택을 남이 금하지 못하며’에서 自律性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금할 수 없다’는 제한된 의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며, 어떤 事物도 制限된 自由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自由가 가능하다.
다만 荀子가 보는 바의 自律는 絶對的, 無限的인 것이 아니며, 相對的, 制限的인 것이다. 心은 스스로의 規律과 法則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荀子가 말하는 바의 自由는 心理的 혹은 意志的 思想的 自由이다. 이런 種類의 自由는 心의 同意 與否 및 選擇에 의해 드러난다.
心의 自主性 및 自律性에 대해 荀子는 심을 意志라고 칭하는데,
"그러기에 안 보이는 어둠 속에 힘을 기울여야 밝은 명예를 얻고, 안 보이는 깊은 속에 노력을 쌓아야 혁혁한 성공이 올 것이다. "24]
24]『荀子』,「勸學」. 是故無冥冥之志者 無昭昭之明 無惛惛之事者 無赫赫之功.
"군자는 가난하고 천해도 뜻은 너그러우며, 어진 것을 숭상한다. "25]
25]『荀子』,「修身」. 君子貧窮而志廣 隆仁也.
"수양이 완전하여 덕행에 이르고 지려가 명민한 것은 천자가 천하를 취하는 조건이요. "26]
26]『荀子』,「榮辱」. 志意致修 德行致厚 智慮致明 是天子之所以取天下也.
"중니는 송곳을 꽂을 땅도 없었으나, 의로 그 의지를 성실하게 하고, 의로 그 실천에 옮기고, 이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 그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해진 것이다. "27]
27]『荀子』,「王覇」. 仲尼無置錐之地 誠義乎志意 加義乎身行 箸之言語 濟之日 不隱乎天下 名垂 乎後世.
위에서 보듯이 인간의 意志를 제외하고, 荀子는 또 ‘慾求’ 및 ‘情緖’를 主宰 혹은 意志의 영향을 지닌 것으로 표현한다.
荀子는 인간의 많은 情은 慾望이 보이면 人性의 內的 涵養 및 表現이 된다고 하였다. 단지 늘 ‘情’이 인간의 ‘以性之情’이 되는 것을 보면, 이런 種類의 情은 人心이 善을 향한 情을 취하게 된다.
예를 들면
"공경함을 몸가짐으로 하고 충신을 마음 가짐으로 하며, 예의를 처세술로 삼고 애인을 정으로 한다. "28]
28]『荀子』,「修身」. 體恭敬而心忠信 術禮義而情愛人.
"남이 싫어하는 것은 나도 싫어한다. 무릇 부귀한 자에게는 일괄적으로 거드름을 피우고, 빈천한 자에게는 애써 순종하려는 것은 어진 사람의 본래 심정이 아니다. 간사한 자가 장차 난세에 헛된 명성을 도둑질 하려는 것이니, 그 보다 음흉한 짓은 없다. "29]
29]『荀子』,「不苟」. 人之所惡者 吾亦惡之. 夫富貴者則類傲之 夫貧賤者則求柔之 是非仁人之情也 是姦人將以盜名於晻世者也 險莫大焉.
위에서 말한 心의 身體의 主宰 機能은 인간의 精神的 機能이며, 理智와 意志에 따라 形相的 存在를 가지며, 그 性格은 완전히 精神的 形而上學的이다.
4) 感覺的 生理的 欲求 機能
인간의 心은 理智的이고 理性的인 것만을 追求하는 것이 아니며 生理的 慾求를 추구하는 면도 있다. 이러한 감추어진 것을 말하는 바의 情慾과 겉으로 드러나는 바의 의지 慾望은 다른데, 荀子가 말하는 것은 情慾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제사는 추모하는 마음의 정리요, 충신애경의 극진함이요, 예의 절차의 성대함이다. 성인이 아니면 이를 모른다. " 30]
30]『荀子』「禮論」, 故曰, 祭者, 志意思慕之情也, 忠信愛敬之至矣, 禮節文貌之盛矣, 苟非聖人,莫 之能知也.
"본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요, 정이란 성의 본질이요, 욕망이란 정의 반응인 것이다. "31]
31]『荀子』,「正名」. 性者, 天之就也, 情者, 性之質也, 欲者, 情之應也.
하늘로부터 취해진 性은 人間에겐 天性이 된다. 天性의 내부에는 본래 心이 包含되어 있지 않으며, 心의 思慮나 慾望의 選擇 등 理智와 意志的 活動이 包含되지 않는다. 情으로부터 緣由된 이 性은 本質이고, 또 慾으로부터 緣由된 것은 情의 感應이며, 이런 이유로 荀子가 말하는 바의 情과 慾, 性은 한 모양으로 숨어있으며, 나란히 形而下的 位置를 차지하며, 形而上的 性格은 包含하지 않는다.
다만 荀子에 있어서, 情은 慾과 비슷하다. 情은 性의 本質이며, 이것의 內容 範圍는 비교적 넓다. 그리고 慾은 情의 感應이며, 그 內容 範圍는 비교적 좁으며, 이는 마치 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慾望에 대해 荀子는 ‘情이 감응한 것“이라 했다. 이런 종류의 慾望은 또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性에 필요한 慾이고, 하나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바라는 바의 貪慾이다.
食慾과 性慾은 인간의 天性的인 慾望이다. 食慾은 인간의 生存을 維持하기 위한 것이고, 性慾은 인간의 種族 保存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신체에 있어서, 이러한 것은 인간이나 식물에 있어 서로 같이 生命을 갖는 것이며, 동물의 感性과 같은 것이며, 이런 慾望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
인간이 가진 生命을 추구하는 慾望에 대한 설명은 『荀子』에 많이 나타나는데,
"쇠고기 돼지고기 쌀 기장에 오미의 조화를 얻은 음식은 입맛을 기르는 것이요, 숙 난 분필의 향기는 코의 즐거움을 기르는 것이요, 금옥 기물의 조각과 장식이며 색채 문양의 아름다움은 눈의 즐거움을 기르는 것이요, 종고와 관경과 거문고 비파 생황 피리같은 음악은 귀의 즐거움을 기르는 것이요, 큰 방과 높은 궁전, 방석과 자리며 평상은 몸의 즐거움을 기르는 것이다. "32]
32]『荀子』,「禮論」. 芻豢稻粱, 五味調香, 所以養口也, 椒蘭芬苾, 所以養鼻也, 雕琢刻鏤黼黻文章, 所以養目也, 鐘鼓管磬琴瑟竽笙, 所以養耳也, 疏房檖貌越席床第几筵, 所以養體也.
"불구 폐질자는 관에서 수용하여 기르고, 그 재질에 따라 일을 시키며, 관비로 먹이고 입혀서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통치한다. 그 성격이나 행동이 시세에 상반되는 자는 용서 없이 처형해 버린다. 이것을 천덕이라 한다. 이것이 곧 왕자의 정치인 것이다. "33]
33]『荀子』,「王制」. 五疾上收而養之, 材而事之, 官施而衣食之, 兼覆無遺. 才行反時者死無赦.夫是 之謂天德. 是王者之政也.
인간은 先天的으로 生命을 구하는 慾望과 本能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價値 槪念에서 보면, 인간의 삶에 有益한 것은 善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惡이라고 말해진다. 인간은 天性的으로 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하는데, 이런 이유로 인간은 天性的으로 生을 추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음식, 옷, 집, 행동, 의약은 모두 인생에 이로운 것이며, 이런 이유로 인간은 이것을 중시하고 구하기에 힘쓴다. 질병, 재화, 늙음은 모두 생명에 有害하므로 인간은 이것으로부터 도망하거나 피하려 한다. 인간에 있어 이런 종류의 生을 구하는 天性 및 本能은 동물과 별 차이가 없다. 동물도 이런 종류의 天性과 本能을 가지고 있다.
生을 구하는 것을 제외하면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慾望과 本能을 구하고 탐하는 것으로 되돌아온다. 이런 종류의 욕망은 본래 인간의 基本的 慾望이다. 이런 결과로 이것은 인생에 附合되며,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정당하며 완전하다. 이에 대해 荀子는
"인간의 본성은 배고프면 배불리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싶고 고단하면 쉬고 싶은 것이 본성이다. "34]
34]『荀子』,「性惡」. 今人之性, 飢而欲飽, 寒而欲煖, 勞而欲休, 此人之情性也.
"부자가 얻지 아니하면 친할 수 없고, 형제가 얻지 아니하면 우애할 수 없고, 남녀가 얻지 아니하면 즐길 수 없고, 젊은이가 성장하고 늙은이가 보양받는 것도 그것이다. 그러므로 천지가 낳고, 성인이 기른다는 것이 이것이다. "35]
35]『荀子』,「富國」. 父子不得不親, 兄弟不得不順, 男女不得不歡. 少者以長, 老者以養. 故曰..天地 生之, 聖人成之, 此之謂也.
感性的 觀點에서 보면, 快感은 인간에게 맞으므로 善이고, 추위와 더위와 질병은 인간에게 苦痛이 되므로 惡이다. 인간의 天性은 快感을 求하고 貪하며, 苦痛을 두려워한다. 快感 중에서도 性慾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食慾과 性慾은 인간의 基本的 慾求이다. 이 慾望의 滿足과 不滿足은 인간의 道德的 判斷과 行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爲政者들은 백성들의 이 慾望의 滿足을 위 노력해야 하는데, 荀子는 이를 칭해서 天德이라 하였다. 天德이 실현되는 정치는 王政이라고 칭한다.
인간은 때로 이러한 것에 대해 過分하거나 혹은 不正當한 食慾, 性慾을 구하기 위한 慾求를 탐하며, 그것을 누리려한다. 이에 대해 荀子는 말하기를
"그런데 사회적 지위가 같고서, 현자와 우자가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해도 벌이 없고 욕심대로 방종해도 제재가 없으면 민심은 분발해서 경쟁은 하지만 그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스리지 못하면 공명을 이룰 수가 없고, 공명을 이루지 못하면 군중을 분계 지울 수 없고, 분계가 아니 서면 군신관계도 성립되지 않고, 군주가 신하를 지배할 수 없고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제어 할 수 없다. 그러면 천하의 해독은 욕심대로 방종한 데서 온다. "36]
36]『荀子』,「富國」.
埶同而知異,行私而無禍,縱欲而不窮,則民心奮而不可說也。如是,則知者未得治也;
知者未得治,則功名未成也;功名未成,則群眾未縣也;群眾未縣,則君臣未立也。無君以制臣,無上以制下,天下害生縱欲
"군자는 그 도를 즐기고, 소인은 그 욕망을 얻음을 즐긴다. 도로서 욕심을 절제하면 즐거워도 난잡하지 않고, 욕망으로써 도를 잊으면 혼란해서 즐겁지 못한 것이다. "37]
37]『荀子』,「樂論」. 君子樂得其道, 小人樂得其欲. 以道制欲, 則樂而不亂, 以欲忘道, 則惑而不樂.
慾은 이와 같이 貪慾 혹은 嗜慾인데, 荀子는 인간의 慾望을 抑制해야 하는 必要性을 이유로 禮樂을 重視했다. 「禮論」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욕망을 채우지 못할 때, 이것을 추구하게 되고 추구하는데 제한과 절도가 없으면 서로 다투게 된다. 다투면 사회는 막다른 데로 치닫게 된다.
옛날의 성왕이 이 사회의 혼란을 미워한 까닭에 예의 즉 사회의 규범을 세워서 분별이 있도록 하여, 사람의 욕망을 기르고 또 만족시키면서, 물욕에 궁진하지 않고 물욕에 굴하지도 않게 하여, 둘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있게 발전시키려고 한 것이 예의 발단이다. 그러므로 예란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38]
38]『荀子』,「禮論」.
人生而有欲, 欲而不得, 則不能無求, 求而無度量分界, 則不能不爭 .爭則亂,亂 則窮,
先王惡其亂也, 故制禮義以分之, 以養人之欲, 給人之求, 使欲必不窮乎物, 物必不屈於 欲,兩者相持而長, 是禮之所起也. 故禮者, 養也.
이로 볼 때 荀子가 주장하는 慾望은 근본적으로 惡한 것은 아니다. 惡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慾望의 過分 혹은 부당한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荀子는 인간의 本性에 대해 性惡說을 주장하는데, 荀子가 말하는 惡은 善의 缺陷 혹은 善의 없음이다. 이것은 인간의 天性 중에 적극적 善의 없음을 말한 것이며, 인간에게 필요한 善을 後天的 敎育과 努力 및 修養으로 善함을 實現해야 한다는 것이다.
荀子는 孔子와 孟子가 주장한 天의 意志的 側面을 否定하는데, 인간의 思慮를 중시하고, 인간의 後天的 努力과 實行을 중시하며, 天性 혹은 自然的 不足한 天性을 補充하고 개인 道德을 세우고, 社會의 禮儀와 法治를 세우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情緖는 주위 환경의 影響을 받은 外的 刺戟으로 내재된 心理 反應의 狀態를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의 情緖는 일종의 감정 상태의 표현으로 심의 하나의 기능이다.
儒家에서는 인간의 情緖를 喜, 怒, 哀, 樂, 愛, 惡, 慾으로 나눈다. 오늘날 인간의 심리를 慾望과 情緖로 나누는데, 즉 情緖와 여섯 가지의 감정이 있다.
荀子는 본래 情緖를 여섯 종류로 나누어 慾을 情에 귀속시킨다.
"성의 미워하고 좋아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정이라 한다. "39]
39]『荀子』,「正名」. 性之好·惡·喜·怒·哀·樂謂之情.
"무릇 백성들이 좋고 미운 감정이 있으니 이 감정을 기쁘고 성냄으로써 응하지 못하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40]
40]『荀子』,「樂論」. 夫民有好惡之情而無喜怒之應, 則亂.
"말이나 사건, 희, 노, 애, 락, 애, 오, 욕은 마음으로 구별된다."41]
41]『荀子』,「正名」. 說·故·喜·怒·哀·樂·愛·惡·欲, 以心異.
七情은 인간의 일곱 가지 情緖 혹은 心理感受의 상태와 표현이며 이런 마음을 情緖心이라 할 수 있다.
情緖心은 인간 心理의 感受이며, 이는 心理 現象의 總體로 形而下的, 物質的, 心理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情緖 및 情緖心은 인간의 삶에 매우 중요하고 복잡한 상태를 갖는 것이 특색이다.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情緖的 影響을 받는다. 이것을 소홀히 생각하면 삶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곤경에 이르기도 한다. 情緖는 心의 한 부분에 속하며, 心의 여러 機能들과 더불어 하나의 완전한 人間 心理를 이룬다.
4. 結論
지금까지 荀子에 대한 연구는 天論을 중시하여, 性惡 및 그 禮樂 法治思想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고, 그의 사상의 근저를 이루는 심에 대한 연구는 적은데, 이는 荀子 思想의 全般을 理解하는데 하나의 障碍物이었다고 할 수 있다.
荀子는 하늘을 自然的 實體라고 보고, 天의 性格 속에는 적극적인 善의 의미는 포함되지 않다. 또 性惡說의 주장은 인성 중에 善이 缺乏된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善을 지향하기 위해 化性起僞 및 禮儀法度의 사상이 유래되었다. 이러한 입장에는 道德的 行爲를 選擇하고 實踐하려고 하는 根源으로서의 心을 제외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荀子의 사상에 있어서 心은 중요한 위치를 가짐을 알 수 있다.
荀子의 心論은 다음과 같은 特徵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첫째, 心을 논함에 있어 그 본체와 본질은 모두 形而上學的 精神物이고, 이는 인간의 靈官이 된다.
둘째, 心은 認知 및 主宰의 能力이 있다. 認識論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인간의 學習이며, 認知的 관능 및 문화적 생산의 근원이 된다. 意慾心의 각도에 따라 보면 主宰心이 있고, 主宰 및 探究의 능력이고, 이는 인간 意志의 관능에 존재한다.
셋째, 心은 인간의 道德 및 禮儀의 출발점이다. 心 속에는 道德的 價値 判斷 能力이 內在되어 있고, 이로서 化性起僞가 가능하고 禮儀法度의 기원이다.
넷째, 心은 情緖的 의의를 포함하며, 이는 인간의 喜怒哀樂의 根源 혹은 결정의 근원이다. 荀子는 天을 적극적 의식과 道德性이 없는 하나의 自然物로 보는데, 인성은 天으로부터 취한 것이지만, 性 가운데에는 생각함이 없고, 道德도 없다. 이는 心이 존중되는 바의 원인이고, 엄연한 모든 능력의 주재이다. 善함이 없으므로 性 가운데서 완전을 이루며 性을 다스림이 가능하고, 그 이룸으로 善이 된다.
다섯째, 心의 存在 및 含意에서 荀子는 性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天性으로 보아 性을 心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여섯째, 心의 認識 機能에 대해 중요시 한 것이다. 이는 利己的 本性을 가진 인간이 善을 추구하는 인간 되기 위한 敎育의 중요성과도 관련이 된다.
일곱째, 心과 性에 대해 荀子의 性 가운데는 心이 없고 心은 內在하고 性은 外在한다고 본다.
참고 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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