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배철현

배철현의 성서 오디세이-신14 : 마지막회

rainbow3 2019. 10. 12. 01:47


배철현의 성서 오디세이 -신의 위대한 질문⑭ 마지막회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폴 고갱)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서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

 

 

화가 폴 고갱이 추구한 이상적 삶을 향한 갈망…어린아이 같은 청명한 마음이 삼라만상과 인간존재의 비밀에 접근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 폴 고갱 작 .고갱은 이 필생의 역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심연과 신의 관계를 절실하게 표현했다.

 

 

폴 고갱(1848~1903)은 19세기 후반 세잔과 고흐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위대한 화가다. 그는 처음에는 잘나가는 주식 중개인이었고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리스도교의 이상적인 삶을 갈망했고 35세에 이르러 회화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리라 결심하고 사업과, 심지어는 가족까지 포기한다.

 

당시의 프랑스 제3공화정(1870~1940)과 프랑스 지식인들의 정신을 지배한 철학은 실증주의(혹은 긍정주의, positivism)였다. 종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배격하고 인간의 오감이나 실험으로 증명 가능한 지식만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철학사조다.

 

지식인들은 실증주의의 자연과학적 방법과 성과에 열광했고, 사회도 그러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분석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이 당시 ‘사회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배태되었다.

고갱은 당시 프랑스 지식인의 우상이 된 실증주의, 그리고 그 안에 기생하는 이기심과 물질주의를 통해 서양의 문명은 파산직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그가 파리와 같은 세상의 중심을 떠나 브르타뉴 지방이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이주한 것은 단순히 도시 문화를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독창적이지 않은 예술세계를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림의 왼편 상단에 세 개의 질문이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Doù Venons Nous? Que Sommes Nous? Où Allons Nous? 이 세 질문의 번역이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 이다.

 

 

고갱에게 ‘원시적’이 된다는 의미는 문명에 의해 물들지 않은 예술을 구축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었다.

 

브르타뉴, 브르타뉴 여인들과 농부들, 타히티, 타히티의 원주민들은 고갱에게 ‘원시적’이었으며, 이들을 접하며 형성된 ‘원시적인 환상’은 현대 예술가들이 지향해야 하는 독창적이며 진실한 환상이라 생각했다.

 

이 환상의 깊이가 점점 더해가면서, 급기야는 타히티에서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림은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이 담긴 유언장이었다.

 

“신과 싸워 이긴 자,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

 

그는 1888년 인간의 이기적인 문명사회에 물들지 않은 이상적인 원시상태의 장소를 찾았는데, 그곳이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Pont-Aven)’이란 곳이다. 이곳은 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이민자들이 사는 목가적인 시골마을이다. 고갱은 이곳에 살면서 이들의 삶에서 종교가 삶의 축이 된다는 것을 목격했다. <설교 후의 환상>(1888년)에서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개척한다.

 

고갱은 퐁타방 지방 여인들의 강렬한 신앙심을 당시 유럽 화가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한 일본 그림, ‘구분’을 중시하는 르네상스시대 스테인드글라스의 영향을 흡수해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을 발전시킨다.

클루아조니즘이란 ‘구분’을 뜻하는 프랑스어 ‘클루아종’에서 유래한 용어로, 대상을 단순화시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윤곽선을 강조해 그리는 방법이다.

 

<설교 후의 환상>은 ‘창세기’ 32장에 등장하는 야곱과 천사와의 씨름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 이 그림은 퐁타방 여인들이 교회에서 ‘창세기’ 32장 ‘야곱의 천사와의 씨름’ 설교를 듣고 난 후, 영감으로 가득 차 떠오른 환상을 표현한 것이다.

 

야곱은 다음날 아침 형 에서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받아야 할 모든 재산을 갈취한 후 목숨만은 구하기 위해 20년 동안 도망 다녔다. 앞에 놓인 얍복강만 건너면 죽을 수도 있는 인생의 위기 앞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그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낯선 자’가 등장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야곱과 씨름하기 시작한다. 인생의 바닥을 친 야곱에게 이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자’는 신(神)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가장 취약한 모습이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강을 건너 형을 편안히 대면할 수 없었다. ‘낯선 자’는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야곱을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칙을 쓴다. 그는 야비하게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부러뜨린다. 엉덩이뼈가 부셔졌음에도 자신에게 달려드는 야곱에게 그는 질문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세기 32:27) 야곱이라 하자 낯선 자는 “네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왜냐하면 너는 신과 씨름하여 이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대각선으로 그림을 구분하는 나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주제들을 표현한다. 오른편 위쪽에는 날개 달린 천사와 야곱이 씨름한다. 푸른색 망토를 입고 노란색 날개를 단 천사가 검은색 망토를 입은 야곱을 과열된 붉은색 땅 위에서 제압하고 있다. 왼편 앞쪽에는 ‘야곱의 씨름’ 설교를 듣고 난 후, 브르타뉴 여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인상주의는 실내에서 대상을 정밀하게 그리는 사실주의와는 달리 자연 안에서 태양의 광선이 사물에 비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예술적 시도였다. 인상주의자들은 객관적인 묘사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이며 찰나의 깨달음을 화폭에 담으려 했지만 여전히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노력이 지배적이었다.

 

고갱은 르네상스시대 이후 지켜온 대상에 대한 색깔과 원근의 구분을 무시하였다. 그는 앞에 있는 브르타뉴 여인들을 크게 그리는 반면 야곱과 천사를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그렸다. 특히 그림의 중심이 천사와 야곱의 싸움이라면, 그 대상을 감상하기 위한 어떠한 방해물로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최선의 원칙이었다.

 

고갱은 그 원칙을 과감히 무시하고 여인들을 크게 그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이 그림에 대한 고갱의 생각은 그의 친구였던 빈센트 반 고흐(van Gogh)에게 보낸 1888년 9월 26일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The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The Yellow Christ (in French: Le Christ jaune)

 

 

 

 

추상을 통해 영성을 전달하고자 했던 고갱 

 

“내가 종교화를 하나 그렸어. 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작업하는 동안 즐거웠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야. 그래서 퐁타방에 있는 교회에 선물하고 싶었는데 받지 않겠다는 거야. 그거 참….

앞에 모여 있는 브루타뉴 여인들은 기도하고 있지. 옷은 아주 시커먼 검정이야. 그들이 쓰고 있는 챙 없는 모자인 보닛은 노란색과 하얀색인데 너무 눈부셔. 오른쪽에 있는 두 개 보닛은 무시무시한 헬멧과 같지.

 

사과나무가 화폭을 가로질러 있지. 검은 자주색으로 에메랄드 연두색 구름처럼 매우 풍성한 나뭇잎이야. 태양빛이 노란색과 연두색을 내면서 그 사이로 빛나지.

땅은 짙은 붉은색이야. 교회에선 그 색이 붉은 갈색이 되지. 천사는 강렬한 군청색 옷을 입고 야곱은 암녹색 옷을 입었어. 천사의 날개는 크롬 옐로우(황연) 1번 색이고 천사의 머리는 크롬 옐로우 2번 색이야.

 

그리고 발은 주황색이지. 나는 이 인물들에서 위대한 시골풍의 단순함과 미신적인 단순함을 이루었다고 믿어. 이 전체는 매우 가혹하지. 나무 밑에 있는 암소는 원래 크기에 비해 조그맣고 껑충거리고 있어.

이 풍경과 씨름에는 설교 후 기도 중인 사람들이 나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거야. 그래서 이 그림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과, 실제가 아니어서 비율이 맞지 않는 ‘씨름하는 인물’과의 대비가 있어.” 

 

브르타뉴 여인들은 실제이지만 이 그림의 진정한 대상은 아니다. 고갱은 ‘환상’을 그리고 싶어했고 여인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이 마음속에 상상하는 삶의 투쟁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고갱은 이 그림의 장식적이며 추상적인 표현으로 인상주의와 결별하고 짙은 윤곽표현과 평면도를 통해 좀 더 환상적이며 상징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고갱은 추상을 통해 영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는 자연 앞에서, 현실 앞에서 꿈꾸는 환상을 그림으로 자신의 신념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갱은 왜 자신의 독특한 예술적인 창조를 ‘야곱의 씨름’으로 시작했을까? 그는 야곱의 이야기가 머나먼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고갱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안내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야곱이 천사와의 씨름에서 더 이상 형 에서의 ‘발뒤꿈치’나 잡고 다니는 비겁자나 모방자가 아닌 것처럼, 고갱은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유럽 회화의 시대정신인 인상주의를 넘어서는 ‘상징주의(symbolism)’와 ‘종합주의(syncretism)’의 창시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획득한 것이다.

 

야곱은 질 수밖에 없는 신과의 싸움에서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즉 “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죽음을 경험하는 영적인 싸움을 통해 자기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신을 이긴 자’라는 의미를 가진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고갱은 이 그림을 통해 상징주의와 추상주의의 새로운 장르를 더듬어 현대예술과 철학의 디딤돌이 되었다.

 

독자적인 예술의 형태인 종합주의와 상징주의의 실험작은 <설교 후의 환상>을 완성하고 그 다음해에 그린 <황색의 그리스도>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살은 노란색이며 그의 몸은 파란색으로 윤곽을 그려 마치 중세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과 같은 효과를 거두었다.

 

십자가 뒤에 그린 풍경은 거리감이나 음영감을 무시하고 첩첩이 묘사했다. 고갱은 브르타뉴에서 중세기 종교가 살아있는 듯한 브르타뉴 여인들의 의상 묘사를 통해 고딕 양식, 즉 비자연적인 색깔과 중세시대의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현실을 묘사하려 했다.

 

“색채에만 민감한 인상파, 이성만능의 나락에 떨어져”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예술세계를 융합하려는 시도는 고갱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영적 세계의 발견이었다. 그 영적 세계가 바로 고갱의 현실에 대한 메타포이다. 그는 <황색의 그리스도>에서 성서의 어떤 구절과도 연관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는 이미지들을 검정색 윤곽으로 두껍게 구별된 순수한 단색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 이후 교리처럼 여겨졌던 원근법과 색의 그러데이션(계조, 階調)을 무시했다. 형태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이미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현실과 가상, 두 개의 세계를 종합하는 ‘종합주의’를 지향했다.

 

브르타뉴 여인들의 의상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여 그대로 묘사했고 빛은 브르타뉴의 청명한 빛을 그렸으며 들판은 연두색, 고동색과 노란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이 그림의 십자가는 퐁타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트레말로라는 마을의 교회에 설치된 십자가 조각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갱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인상파 화가들은 색깔만 공부하지. 자유가 없어 항상 가능성이란 필요에 의해 묶여 있어. 그들에게 이상적인 풍경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아. 그들은 눈만을 의지하여 보고, 사고의 신비한 중심을 무시하지.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과학적인 이성의 나락에 떨어지는 거야.”

 

이 그림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영국 예술사학자 기젤라 폴락(Griselda Pollock)은 예술작품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내용인 레퍼런스(reference), 그 예술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파격적인 내용인 데퍼런스(deference), 그리고 현재의 예술과는 미학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인 디퍼런스(difference)라는 층위를 사용한다.

고갱은 <황색의 그리스도>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신을 그렸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자화상인 셈이다.

 

실제로 <황색의 그리스도>와 유사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 존재한다. 자신을 그리스도로 그린 이유는 자신은 독립적이고 용기가 있는 예술가이며 아직 대중은 그의 정신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린치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갱은 자신을 아방가르드(avant-garde), 즉 전위적 예술가로 여겼다.

 

이 그림의 ‘레퍼런스’는 아직은 인상주의나 후기인상주의의 밝은 색깔과 짙은 색의 윤곽, 그리고 작은 붓질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림의 중간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쓴 남자가 담을 넘어가는 모습에서 19세기 예술가들이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원시로 돌아가려 한다는 점을 묘사한다. 또한 고갱 자신이 당시 주류 예술세계를 떠나 새로운 예술을 탐구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데퍼런스’는 고갱이 상징과 추상을 사용하려는 파격적인 노력이다.

 

먼저 그리스도의 몸의 색깔이 자연스럽지 않다. 너무 노란색이다. 그 뒤의 나무들도 자연스럽지 않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배열되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대충 그렸고 현실적이지도 않으며 전체적으로 비율이 맞지 않는다.

<황색의 그리스도>를 통해 고갱은 현대예술은 도시생활이나 상류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그림에 그려진 브르타뉴 여인들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볼 수 있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형태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디퍼런스’ 즉 ‘차이점’은 그가 종합적이며 주관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갱은 장식적인 표현을 통해 선, 색깔, 그리고 형태를 과장하거나 왜곡 혹은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고갱은 자신을 십자가에 달리 그리스도로 표현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2000년 전 새로운 삶에 대한 가르침으로 당시 종교인과 지식인의 미움을 샀다.

그는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들의 잘잘못을 일일이 검사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이 땅의 인간 안에, 이웃 안에, 심지어는 사회의 약자들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행할 때 신은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극형에 처해졌다.

 

고갱도 이러한 삶을 지향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당시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예술을 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려는 노력과 그것을 감히 표현하려는 용기가 바로 그 지향점이다. 고갱은 이러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상징과 주관이라는 전위적인 방식으로 대담하게 말하고 있다. 고갱의 이러한 생각은 그가 죽고 나서야 사람들이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폴 고갱의 자화상. 세잔, 고흐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그리스도교의 이상적인 삶을 갈망했고, 35세에 이르러 회화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리라 결심했다.

 

 

타히티에서 그린 고갱의 명작, 그 심오한 진리의 세계

 

고갱은 브르타뉴에서 <설교 후의 환상>과 <황색의 그리스도> 같은 작품을 그리면서 번민에 빠진다. 그는 브르타뉴의 순박한 여인들의 신앙심에 대해 간접적으로 그렸을 뿐, 그들과 같은 신앙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황색의 그리스도>는 1899년에 그렸는데, 2년 후인 1891년에 자신이 스스로 원시적인 삶을 통해 단순하고 강력한 삶의 가치를 스스로 습득하기 위해 남태평양 타히티로 떠난다.

 

타히티는 폴리네시아인들의 주요 거주지였지만 17세기 이후 유럽인들에 알려져 1844년 프랑스가 전통왕가를 멸망시키고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는 창작에 필요한 고독과 자유를 위해 이 섬에 왔다. 그는 63일의 긴 항해 끝에 1891년 6월 8일 드디어 타히티 섬에 도착한다.

 

그의 나이 43세. 맨 처음에는 영감과 타히티 여인들과 나눈 쾌락으로 섬에 적응하는 듯했지만, 오래지 않아 향수병이 나 프랑스로 돌아간다. 1894년 6월 4일 파리로 돌아가는 배에 승선했다. 2년 남짓 된 타히티에서의 삶은 그의 예술을 변화시켜 이전과는 전혀 다른 60여 점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남겼다.

 

고갱은 파리로 돌아왔지만 그가 아는 예술가들 특히 반 고흐 형제가 사망했고 당시 미술계의 유행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을 전시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경제적인 어려움은 가속화되었다. 타히티에서의 삶이 인정받지 못하는 프랑스의 삶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1895년 6월 파리를 떠나 9월 초 다시 타히티에 도착한다. 그는 인간의 이기적인 문명사회를 등지고 결연한 마음으로 이곳 타히티에 도착했다.

 

몸은 망가지고 돈도 없고 심지어 매독이 재발되어 우울증이 빠진 고갱은 극단적인 결심을 한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다름아닌 ‘자살’이었다. 이곳에서 자살노트를 하나 남기기로 했다. 그 노트 형식은 그림이었고, 그 그림의 제목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이 그림은 세로가 139.1㎝, 가로가 374.6㎝ 규모의 대형작품이다. 거의 한달 동안 매달린 이 작품은 고갱이 일생을 통해 하고 말하고 싶었던 ‘선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그림에는 타히티 원주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부분 푸른색과 초록색 풍광에 대비되도록 오렌지색 옷을 입었다. 이 걸작은 성서에 등장하는 중요한 모티브, 특히 에덴동산에 등장하는 ‘모든 지식의 나무’의 모티브를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담고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중 단연 중심은 가운데 두 팔을 하늘로 길게 뻗어 과실을 따는 한 원주민이다. 이 원주민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원시상태 최초의 인간, 성서의 ‘아담’과 같은 모습이다. 이 그림의 다른 모든 인물들은 모두 땅을 보거나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 인물만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듯한 ‘하늘의 과실’을 따려고 하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온 과실을 다시 하늘로 올리려 하는지 그 모습을 분간하기 힘들다.

 

그 왼편에는 전통적인 타히티 복장을 한 아이가 앉아 왼손으로 그 과실의 향기를 맡고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 동물들, 그리고 자연풍경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의 주제들과 타히티의 일상생활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고갱은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면서 삶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절실하게 깨달은 삶의 진리를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D'ou venons-nous Que sommes-nous Ou allons-nous

English: 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 going?

 

 

자살노트에 반복해 썼던 신의 위대한 질문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는 고갱이 일생 동안 집착했던 질문이다. 이 그림을 완성한 후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살에 실패하고 6년을 더 산다. 일생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이 작품은 인생에 관한 깊은 통찰력과 철학이 담긴 최고의 대표작이다. 이 질문은 성서에 등장하는 첫 번째 질문인 창세기 3장9절에 언급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에 대한 해설이다.

 

예술비평가들은 오랫동안 고갱의 삶을 분석하여 그의 성격과 철학에 대하여 좀 더 잘 알려고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했다. 오늘날 고갱이란 천재화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관찰해야 하며 그림의 왼편 상단에 세개의 질문들이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Doù Venons Nous? Que Sommes Nous? Où Allons Nous? 이 세 질문의 번역이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이다.

 

이 세 질문에 대한 내용과 대답을 화폭에 왼쪽부터 차례로 담았다. 이 질문은 ‘창세기’ 16장8절에 등장하는 신이 하갈에게 한 질문과 유사하다. 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의 딜레마는 부인 사라가 불임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신의 역사를 펼치기 위해서는 자식을 낳아야 하는데, 그 원천이 막힌 것이다. 그러자 사라는 자신의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임신하게 했다. 아브라함이 임신한 하갈을 너무 좋아하자 사라는 질투심에 하갈과 그 자식을 사막으로 내쫓았다. 하갈은 임신한 몸을 이끌고 사막으로 도망하는 중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서 하갈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랐다. 그때 천사가 등장하여 하는 질문이 “사라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이다. 천사가 하갈에게 한 질문을 자세히 보면 두 가지 질문이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와 “너는 어디로 가느냐?”이다.

 

이 질문들은 신이 ‘창세기’에서 질문한 첫 질문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와 두 번째 질문,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와는 사뭇 다른 질문이다. 고갱은 이 그림의 질문을 신이 하갈하게 던진 두 질문과 유사하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로 전환했다.

솔직히 그가 신이 하갈에게 한 질문을 미리 알았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고갱은 신의 위대한 질문들을 자신의 자살노트 그림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세 명의 여인과 어린아이가 있다. 이 부분은 삶의 시작을 의미하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해당한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은 청년과 장년 시기의 일상생활을 상징하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묘사다.

 

그리고 그림의 왼쪽에 앉아 있는 할머니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깊은 상념에 빠져있다. 할머니 앞에는 하얀 새는 인간 말들의 부질없음을 상징한다. 그림의 뒤편에 자리 잡은 석상은 피안의 세계를 표현한다.

고갱은 이 그림에서 이전에 그리스도교 종교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타히티의 여신인 히나(‘소녀’라는 의미)를 그린 동상으로 과감하게 대치하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은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무슨 경로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우리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왜 지구에 태어났는가? 우리는 대한민국이란 영토에 태어나 살고 있는가?

어떤 존재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어떤 존재는 애완견으로 태어나는가?

어떤 이는 부잣집 자녀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가난한 집 자녀로 태어나는가?

우리에게 종교가 있다면 우리는 왜 한 종교를 신봉하고 다른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왜 무신론자가 되었고 혹은 불가지론자가 되었나?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질문은 ‘욥기’ 38장 3절에 신이 욥에게 한 질문과 유사하다. 폭풍 가운데 신이 등장하여 욥에게 묻는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 질문과 응답의 과정이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이지만, 이 질문만큼 삶에 중요한 것은 없다.

 

 

2006년 소더비 경매에서 한화 207억원에 팔린 고갱의 ‘두 여자 친구’. 고갱이 타계하기 1년 전인 1902년에 완성한 것으로, 반라의 타히티 여자 둘이 마주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자신을 흙으로 돌아갈 인간으로 그린 고갱

 

이 질문에 대한 표현으로 고갱은 오른편에 앉아 있는 세 명의 타히티 사람들과 간난아이, 그리고 그 옆에 웅크려 앉아 있는 검은 개를 그렸다. 세 명의 타히티 사람 중 왼편 두 명의 여성은 그림의 관찰자인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그 옆에 등을 돌린 원주민은 노란색 살갗의 여인들과는 달리 짙은 갈색 살갗의 남성이다. 아마도 고갱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이전에 브르타뉴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로 표현한 것과는 달리 자신을 흙으로 돌아갈 인간으로 그렸다. 그 옆에는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누워 자고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림의 두 번째 부분인 오른편 상단 사과를 따는 타히티인의 모습과 왼편 상단 세 명의 타히티인은 그림 전체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숨겨져 있다. 분홍색 긴 치마를 입은 두 명이 어깨동무하며 자궁과도 같은 검은색 동굴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검은색 동굴 옆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중간에 등장하는 사람이 사과를 따는 모습에서 유추해보면, 이들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이며, 이들이 거니는 장소는 에덴동산이다. 고갱은 타히티를 지상의 에덴동산으로 해석하고 그 그림의 인물들을 인간에게 던지는 원초적인 상징으로 표현했다.

 

검은 동굴에서 나오는 두 명, 아담과 이브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다. 아담이 왼손을 가지런히 들고 오른손으로는 이브의 어깨를 감싸고 있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여성은 해산의 고통을, 남성은 노동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고 전한다. 고갱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이 그리 편하지 않았음을 아담과 이브의 표정을 통해 표현한 것 같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은 대각선으로 세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그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 가운데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려고 양팔을 높게 뻗은 인물이다. 그 인물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알 수 없도록 모호하게 그렸다.

 

이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인물은 그 오른쪽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어둠 속에서 나오는 아담과 이브를 응시하고 머리를 긁는 인물이다. 그는 묻는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그럭저럭 살다가 시간이 되면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존재인가?

 

머리를 긁는 원주민과 사과를 따는 원주민은 동일인이다. 고갱은 인간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아주 오래된 주제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금단의 열매 주제를 사용했다. ‘창세기’에 의하면 에덴동산의 수많은 나무 열매 중 신은 두 그루의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한 나무는 그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영생하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나무는 ‘모든 지식의 나무’이다. ‘모든 지식의 나무’는 ‘선악과’로 잘못 번역되어 해석되어온 나무이다.

 

‘창세기’ 저자는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이 생명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도록 서술했다. ‘모든 지식의 나무’는 그것을 먹는 순간 인간이 왜 사는지, 신은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우리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짧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중앙에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인 사과를 따는 타히티인의 얼굴에는 결연함과 평온함이 깃들어져 있다.

 

죽음에 대한 묵상과 준비가 필요하다

 

중앙의 사과를 따는 사람 왼쪽 밑으로 두 마리 고양이가 장난을 치고 있고, 그 옆에 한 아이가 그 열매를 입에 가져가 향기를 맡고 막 먹을 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직시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은유가 아닐까!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유는, 한 개인을 그 사람 자체로 보지 못하고, 그 사람과 인위적으로 연관된, 사회가 부여한 ‘페르소나(가면)’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사람이 지닌 학력, 명예, 권력, 부가 아니라 그 사람일 뿐이다. 우리가 삼라만상의 의미와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기 위해선 어린아이와 같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청명한 마음과 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인 사과를 먹을수 있게 된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인생은 죽은 후에 그대로 마치는 것인가? 죽음에 대한 묵상과 준비는 오늘 우리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살만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지막 왼편 그림은 바로 ‘죽음’에 관한 묵상이다.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어린아이가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오른손으로는 땅을 디디고 있고 왼손은 왼쪽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이 여인은 음부만 가렸을 뿐 나체이며 관찰자인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땅을 짚은 오른손이 그 왼편에 있는 노파의 그림자와 맞닿아 있다. 고갱은 아마도 화살처럼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이 경계로 표현한 것같다. 노파는 살갗이 고동색과 검은색으로 죽음이 임박했음을 표현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노파의 눈길이 그 오른쪽에 앉아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눈빛과 같다는 점이다. 시간은 지나면 모두 한 찰나(刹那)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갱은 노파 앞에 하얀색 새를 그려 넣어 우리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한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깊이 생각하라는 명령이다.

 

왼편 상단에는 타히티의 달의 여신인 ‘히나’가 제단 위에서 죽음에 다다른 인간을 보고 강복(복을 내림)하고 있다. 고갱은 히나 여신의 몸 전체를 옅은 파란색으로 칠했다. 히나 여신은 양손을 바깥 쪽으로 들고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 히나 여신 옆에는 또 다른 타히티 여인이 아담과 이브가 나왔던 동굴의 뒤편을 응시하면서 생로병사의 삶의 순환과정을 표현했다.

 

필자는 지난 14회에 걸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의 위대한 질문들을 연재했다. 이번호에서는 그런 신의 질문들이 위대한 화가 고갱의 작품을 통해 어떻게 승화했는지 살펴보았다.

다음 호부터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위대한 질문’을 통해 우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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