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正易因' 에서 본 李贄의 易學과 그 세계관
-乾坤의 道를 중심으로-
김 연 재
【주제분류】중국철학, 심학, 역학
【주요어】구정역인, 동심설, 도학관, 건곤의 도, 건의 으뜸, 무심, 직심
【요약문】본 논문에서는 이지 철학의 방법론을 그의 역학의 이론에서 찾아보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논지는 그의 역학서인 『구정역인』을 분석하여 그의 의리역학의 성격을 밝히고 그의 학문적 성향을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의 세계관의 내용은 대체로 童心說과 道學觀으로 집약된다. 그는 乾坤의 道와 그에 대한 義理學的 해석을 통해 인간 마음의 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특히 ‘乾의 으뜸(元)’의 속성을 인간 마음의 본체로 파악하고 이것을 이른바 童心說의 존재론적 토대로 삼는다. 또한 우주의 조화의 논리, 즉 乾과 坤의 상관성을 활용하여 당시에 경직화된 朱子學的 道學을 비판했다. 특히 그는 곤괘에 대한 「문언전」의 해석을 통해 최초의 일념으로서의 直心의 본질을 강조하고 이를 개인의 주체적 위상의 문제로 설정했다. 그러므로 그의 세계관에서는 道나 인륜과 같은 사회적 질서의 근원을 개체성의 문제로 귀속시키게 된다. 그는 인간의 자율적 주체의 다양성과 정당성을 인정하고 이를 왜곡됨이 없이 사회적 구조 속에서 수용되기를 기대했다. 이는 당시에 자유와 평등, 개체의 권리와 공동체의 안녕, 公利와 道義의 양립성 등과 같은 근대의식의 의미에서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적 윤리, 즉 도덕적 합리성과 개인의 주체성 혹은 인륜의 공공성과 개인적인 욕구의 대립적 구도를 해소하려 했던 것이다.
Ⅰ. 들어가는 말
동아시아문화권의 전통에서 역학은 철학체계의 사유방식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왔다. 유학자들은 종종 철학적 체계를 설명하거나 논증하는 데에 역의 이치와 그 해석의 방식을 활용했다. 이것을 철학적 방법론의 일환, 즉 일종의 ‘역학적 방법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른바 역학적 방법론이란 철학체계 속에서 역학적 사유가 어떠한 의미, 내용 및 의의를 제공하고 있는가를 밝히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정주학의 體用一源說, 양명학의 致良知說 등을 논의하는 데에 역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많은 용어와 개념, 명제 등이 사용된다.
본고에서 논하려는 이지(1527년-1602년,명나라)의 역학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의 이론은 철학적 측면에서는 陸王心學의 계열로 분류되고,1) 역학적 측면에서는 義理學에 속한다.
그의 역학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 『구정역인』이다. 이 책은 그가 말년에 병환에도 불구하고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던 최후의 저작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의 철학의 중요한 측면을 대변하며, 그의 철학을 평가하는 데에 중요한 전거가 된다. 이처럼 그의 학문세계에서 『구정역인』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철학사에서 중요한 논변2) 중의 하나가 천리와 사욕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천리와 사욕은 각각 공익과 사익을 대변하는 말로서 전통적으로 공익이 사익에 우선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先秦시대부터 사욕을 부정하면서 節欲이나 過欲 심지어 無欲까지도 내용으로 하는 주장들이 많았다. 현대적 관념에서 볼 때, 이는 도덕성과 욕망, 공공성과 개체성, 사회적 질서와 개인적 욕구의 대립적 구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구도 속에서 양자 간의 충돌 혹은 갈등이 어떻게 자의식으로 표출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논변이 역사적으로 지속되면서 학파나 계파 간의 문제의식으로 제기되어왔다.
1) 이지의 철학은 바로 양명학 좌파에 속한다. 양명학 좌파는 양명후학 중의 하나인 泰州學派의 진보적 성격을 상징하는 말이다. 태주학파는 명대의 중기와 후기에 심학의 한 분파이다. 이 학파의 창시자인 왕간(王艮)이 태주 지역의 안풍장(安豊場, 지금의 江蘇省, 東台縣) 사람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왕간은 왕양명의 제자로서, 왕양명이 질병으로 사망한 후에 안풍장에서 이른바 태주학파를 형성했다. 특히 이지는 왕간의 계보에서 왕동(王棟), 왕벽(王襞), 임춘(林春), 서월(徐樾), 안균(顔鈞), 나여방(羅汝芳), 하심은(何心隱) 등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그 대표적인 논변으로는 천인(天人) 논변, 언의(言意) 논변, 유무(有無) 논변, 명실(名實) 논변, 의리(義利) 논변, 이욕(理欲) 논변 등이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지의 철학에 관한 연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그의 철학세계는 중국의 근대의식의 태동기에 기반을 둔다. 그것은 명대 말기에 상공업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경향들과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사회전반에 걸쳐 계층들 간의 갈등이 팽배해지면서 사회규범과 같은 공공의 질서의식보다는 개인적인 욕구와 그 충족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3) 제도나 규범과 같은 사회적 조직이 와해되면서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현실적인 욕구 혹은 욕망이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등장하고 이를 긍정하면서 개체성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적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세계관이 형성되었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道學觀과 그에 따른 童心說로 집약된다. 그는 이미 경직되어 박제화된 주자학적 道學을 비판하고, 사욕 즉 개인의 욕구를 인간 본연의 성격으로 파악하여 동심설을 주장했다. 이는 사회의 공공질서 속에서 개체성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이해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분서』와 『장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童心說을 논변의 대상으로 삼았다.4) 이에 따른 그의 철학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유가의 정통성, 특히 공자의 사상을 부정하는 이단자로 불린다.5) 다른 한편, 그의 철학은 인간의 본래의 내면적 성향인 개인의 주체적 욕구에 주목하고 이를 긍정했다고 높이 평가되고 있다.6) 특히 후자의 경우는 서양의 근대적 개인 개념에 비견되는 ‘근대적 개인의 발견’의 가능성,7) 즉 근대적 의미의 개체성의 옹호라는 의의가 부여되기도 한다.
본 논문에서는 『구정역인』의 분석을 통해 그의 철학이나 학문적 성향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에 대한 평가를 확인할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즉 그의 역학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그가 비난했던 道學 체계에 대한 그의 이론적 논점을 밝히기 위한 일종의 해석적 전거를 모색할 것이다. 이는 그의 철학에 관한 연구에 새로운 토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3) 박재술, 「明末 陽明學의 개체 욕망 긍정 경향 - 李贄를 중심으로」,「시대와 철학」14집, 153-154쪽.
4) 그의 철학에 관한 논문으로는 이상호의 「이지의 사욕긍정과 다욕부정의 논리 - 동심설과 무위설을 중심으로」, 유동환의 「이지李贄의 동심설童心說 연구」, 이현주의 「이탁오의 동심설 試析」, 정인재의 「이지의 심성론 -동심설을 중심으로」, 박재술의 「明末 陽明學의 개체 욕망 긍정 경향 - 李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5) 이상호, 「이지의 사욕긍정과 다욕부정의 논리 - 동심설과 무위설을 중심으로」, 중국철학 13집(2005), 157-158쪽.
6) 김혜경, 「李卓吾의 인식세계」, 중국어문학지 10집(2001), 127-129쪽.
7) 이상호, 「이지의 사욕긍정과 다욕부정의 논리 - 동심설과 무위설을 중심으로」, 중국철학, 158-159쪽.
Ⅱ. 『구정역인』의 체제와 義理學的 논점
1. 『易因』과 『九正易因』의 체제
이지의 역학과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책이 『역인』(1600년)이다. 이 책은 그가 말년에 3년간 전념하여 지었다. 그가 『역인』이라는 제목을 어떤 의미로 설정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아마 그가 다른 사람이 『주역』을 강의하는 것을 들으면서 스스로 만족해하지 못하여 『주역』의 본래의 뜻을 따르겠다는 취지로 ‘역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추측할 수 있다.8)
그는 죽기 직전인 75세(1602년)에 2년 동안 그 내용을 수정했고 책 제목을 『구정역인』으로 정정했다.9) 특히 그가 감괘(坎卦), 돈괘(遯卦)의 두 괘에 관한 해설에서 부록 다음 부분에 “병환중에 집필을 계속하다(病中續筆)”라는 소제목과 내용이 들어있다. 이를 보건대, 그는 말년에 노환에도 불구하고 『구정역인』을 끝까지 수정하고 보완도 했던 것 같다.
또한 그가 책 제목을 바꾼 이유에 관한 내용을 보면, 그가 『구정역인』에 얼마나 몰두했는지를 알 수 있다.10) 『구정역인』을 출판하면서 달아놓은 서문에서는 이지의 말을 인용하여 책 제목의 함의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음악은 반드시 아홉 곡을 연주한 후에 갖추어지고 연단(煉丹)은 반드시 아홉 번 제련한 다음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역은 아홉 번의 수정이 있은 다음에 정해진다.11)"
이 구절은 이지 자신이 『구정역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단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역인』을 아홉 번이나 수정하여 『구정역인』으로 완결지었다. 여기에도 일종의 역학적인 사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상수역학에서 원래 9(九)수는 수의 변화 중에 가장 궁극적인 수를 가리킨다.12) 예를 들어, 음악에서 9번의 연주법과 연단술에서 9번의 제련법이란 바로 많은 각고의 노력의 과정을 거쳐서 최종의 단계에 이르러 완성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이지도 『역인』이 수 많은 수정의 과정을 거쳐서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러한 역학적 함의의 측면에서 최종의 완성본을 『구정역인』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정역인』이라는 책 제목만을 보더라도 그의 사상이나 철학의 체계에서 그 책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의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8) 李贄, 『九正易因』, 「序」를 참조할 것.
9) 容肇祖, 『李贄年譜』, (北京: 三聯書店, 1957), 「부록2: 記李贄“九正易因”」을 참조할 것.
10) 이 내용은 『九正易因』의 「序」 부분에 나타나 있다. 張建業의 『李贄評傳』(福建: 福建人民出版社, 1981) 231-232쪽도 참조할 것.
11) 李贄, 『九正易因』, 「序」, “樂必九奏而後備, 丹必九轉而後成. 易必九正而後定.”
12) 1, 2, 3, 4, 5, 6, 7, 8, 9 수 가운데 1은 불변하는 원천적인 수이고 그 나머지는 변하는 수이다. 2, 3, 4, 5, 6, 7, 8을 홀수와 짝수로 나뉘면 각각 3,5, 7과 2, 4, 6, 8이다. 홀수든 짝수든지 간에 변화를 다 설명할 수 없다.그 중에서 9가 홀수와 짝수 모두를 아우르면서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9는 변화의 궁극적인 수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역인』과 『구정역인』은 어떠한 체계를 지니며 그 양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는 그의 역학의 특징을 살펴보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인』과 『구정역인』은 둘 다 『주역』 원문을 주석한 책이다. 그것은 64괘의 순서에 따라 괘마다 『주역』의 경문과 전문을 열거하고 자신의 해설을 달아놓았다. 그 해설의 뒷부분에는 부록이 있는데 기존의 유학자들의 견해들을 붙여놓았다.
『역인』과 『구정역인』은 전체적으로 64괘의 항목에 따라 구성되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그들은 매괘마다 서술한 내용, 즉 경문에 대한 전문의 배열순서나 그 수록의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역인』과 『구정역인』 사이에 구성상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몇가지 사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역인』은 『주역』의 통행본처럼 상경과 하경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경은 건괘(乾卦)부터 리괘(離卦)까지이고, 하경은 함괘(咸卦)부터 미제괘(未濟卦)까지이다. 그러나 『구정역인』에서는 이처럼 상경과 하경의 구분이 없다.
둘째, 『역인』도 『주역』의 통행본 순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행본 『주역』의 순서는 괘상, 괘사, 「단전」, 「대상전」, 효사,「소상전」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건괘와 곤괘 두 괘에서만 「소상전」 다음에 「문언전」을 부가해 놓고 있다.
『역인』에서도 매 괘마다 괘상과 괘사를 놓고 그 다음에 「단전」, 「대상전」, 「소상전」을 배열했다. 특히 건괘와 곤괘에만 있는 「문언전」13)도 원래의 순서대로 배열해놓고 있다.
『역인』에서처럼 『구정역인』에서도 매 괘마다 먼저 괘상과 괘사를 놓고 그 다음에 「단전」14)을 우선적으로 배열한다. 이는 아마 ‘십익(十翼)’, 즉 『역전』이 형성된 연대순을 고려했다기보다는 그 해석상의 내용과 관련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괘사를 해석한 것이 바로 「단전」이고, 효사를 해석한 것이 바로 「상전」, 특히 「소상전」이며,
「대상전」은 64괘의 괘 이름과 그 뜻을 해석한 것으로 생각된다.15) 이지도 이러한 입장에서 자신의 해설 순서도 정한 것 같다.16) 그가 「단전」을 중시하고 이를 앞에 배열했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義理의 측면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의 해설은 괘사와 괘상 및 그 양자의 관계 속에 담겨진 함의, 즉 의리를 해석하는 데에 치중하고있다. 따라서 그의 역학은 상수역학보다는 의리역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17)
셋째, 특히 「소상전」과 「대상전」의 순서에 관해 『역인』과 『구정역인』은 명확히 다르다. 『역인』과 달리 『구정역인』에서는 「소상전」을 「대상전」 앞에 배열해 놓았다.18) 이지가 보건대, 문왕이 지은 효사들을 설명한 것이 「소상전」이고 「대상전」은 괘사나 효사에 대한 전체적 의리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대상전」 보다는 「소상전」을 먼저 배열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넷째, 『역인』에서는 건괘 부분에 관한 「문언전」의 전문과 그 해석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구정역인』에서는 이를 정리하여 완전히 없앴다. 또한 건괘와 곤괘에서 이지는 「설괘전」의 取象說의 내용을 소제목으로 삼고 있지만, 그 내용상 取義說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역인』에서는 「단전」과 「문언전」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서술하는 반면에, 『구정역인』에서는 주로 「단전」의 내용만을 서술하고 있다.
다섯째, 이지는 『역인』에서는 괘마다 대부분 마경륜(馬經綸)과 자신의 제자인 방시화(方時化)나 왕본아(汪本鈳)의 말을 인용하면서 해설하고 있다. 반면에 『구정역인』에서는 이들 대부분을 삭제하고 대부분 자신의 해설만을 달아놓았다. 또한 자신의 해설 다음에 있는 부록에서는 『역인』과 『구정역인』이 별다른 차이가 없다.
13) 「문언전」은 64괘 중에서 건괘와 곤괘에만 붙어있는 해설이고 그밖에 62개의 괘들에는 없는 것이다.
14) ‘단’이란 본래 卦辭를 가리키므로 「단전」은 괘사를 해석한 내용을 지닌다. 『주역』에서 괘의 이름은 종종 괘사에 포함되거나 함께 연관시키기 때문에, 「단전」에서도 괘의 이름도 함께 해석하며 괘의 이름과 괘사를 시작으로 하여 괘의 의미를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연관, 정치관, 인생관 등을 피력하고 있다.
15) ‘십익’이 형성된 연대와 그 해설의 내용에 관해서는 高亨의 『周易大傳今註』, (山東: 齊魯書社, 1988), 2-14쪽을 참조할 것.
16) 통행본 『주역』에서 「단전」은 매 괘마다 괘사의 다음에 붙여 있다. 乾卦에서만 특별히 「단전」이 괘사와 효사 다음에 붙여 있다. 일반적으로 괘사 다음에 효사와 用辭가 있고 용사 다음에 「단전」이 있다.
17) 일반적으로 『역전』에서 『역경』을 해석하는 방식은 괘효상과 괘효사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는 데에 달려있다. 역학사의 흐름에서 볼 때, 그 양자의 상관성을 밝히는 데에 象數의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義理의 부분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학자들 혹은 학파들 간에 입장의 차이가 많았다. 특히 「단전」과 「상전」은 『역경』을 해석하는 데에 이러한 방법상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단전」의 내용은 取義說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반면에, 「상전」의 내용은 取象說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대 이후로 전자를 위주로 논하는 역학을 의리역학이라고 부르는 반면, 후자를 위주로 논하는 역학을 상수역학이라고 부른다.
18) 「상전」은 「대상전」과 「소상전」으로 나뉜다. 「대상전」에 있는 64종류는 각각 주역에 있는 64개 괘들의 이름과 뜻을 해석한 것이다. 반면에 「소상전」에 있는 384종류는 『주역』에 있는 384개 효들의 爻辭와 用辭를 해석한 것이다. 통행본의 『주역』에서 「대상전」과 「소상전」은 각각 매 괘들의 卦辭 아랫부분(「단전」의 아랫부분)과 爻辭의 아랫부분에 놓여있다. 그러나 乾卦만은 대상전」과 「소상전」이 함께 놓여있다.
2. 『구정역인』의 義理學的 성격19)
이지의 역학은 전반적으로 볼 때 역학의 전통적 관점을 따른다. 그는 『역전』이 공자의 저작이라는 입장을 수용하고 공자의 입장을 존중한다. 그는 「독역요어」편에서 문왕이 괘사와 효사를 지었고 공자가 「단전」을 지었다고 본다.20) 구체적으로 말해, 문왕이 괘사와 효사를 지었는데, 그 말은 간략하나 그 뜻이 깊다고 찬양한다. 그리고 그 말을 후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는데, 공자가 『주역』의 문리를 터득했다고 칭찬한다.21) 이지는 「주역」의 매력에 빠져 공부하면서22) 공자의 학식에 감탄했다.23)
그는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제자의 예를 다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그에 대한 나쁜 평가인 광기와 오만의 표현은 적어도 그의 말년에 대해서는 조금 과장된 것 같다.24) 더군다나 그는 공자가 말한 것처럼25) 『주역』이 점치는 책이 아니라 큰 과오를 적게 하는 책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지는 『분서』나 『장서』에서 기존의 도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과는 달리, 『구정역인』에서는 각 괘들마다 자신의 의리학적 해설과 그에 따른 윤리관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각 괘들마다 기존의 도학자들의 견해, 이를테면 소식, 왕필, 장재, 정이천, 주희, 양간, 왕기, 장막산(張藐山)26) 등의 견해들이 부록으로 달려있다. 이처럼 부록을 달아놓은 까닭은 이지의 견해가 이들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취지가 담겨있을 것이다.
『구정역인』에는 대체로 「문언전」,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 등의 傳文들에 관한 서술이 없다. 다만 이지는 건괘와 곤괘의 부분에서 「설괘전」의 취상설의 내용, 즉 “건은 하늘이다”, “곤은 땅이다”라는 구절을 소제목으로 달고 서술을 이어가고 있다.27) 실제로 그는 『역인』에서 있었던 「문언전」의 내용을 『구정역인』에서는 없애버렸다.
19) 『주역철학사』에서도 이지의 역학을 ‘명대의 의리파 송역’으로 분류해놓고있다. 廖名春/康學偉/梁韋弦, 『주역철학사』(심경호 역, 예문서원, 1995), 575쪽.
20) 사실, 팔괘는 복희가 지었고 64괘는 문왕이 지었으며 공자와 그 후학들이 『역전』, 즉 ‘십익’은 공자가 시작하여 그의 후학들이 완성했다는 것이 최근에 학계의 정설로 굳어졌다.
21) 李贄, 『九正易因』, 「讀易要語」, “文王彖辭爻辭, 其言約, 其旨深, 非夫子讀而傳之, 後之人終不可得而讀也. 唯夫子於易終身焉, 是故擧其象, 指其義, 陳其辭, 以至聖之心, 合前聖之心, 而後羲畵文理燦然詳明, 厥功大矣.”
22) 이지의 제자인 왕본아는 스승이 말년에 『구정역인』을 수정하는 데에 전심전력했던 상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張建業, 『李贄評傳』, (福建: 福建人民出版社, 1981), 231-232쪽.
23) 『四庫全書總目』에서도 이지가 『분서』나 『장서』와 달리 『九正易因』에서만은 공자를 비판하지 않고 그를 엄격히 따르고 평하고 있다. 四庫全書總目(永瑢 等 撰, 北京: 中華書局, 1965)의 55쪽을 참조할 것.
24) 鄢烈山/朱健國, 이탁오 평전(홍승직 역, 돌베게, 2005), 520-521쪽.
25) 『논어』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에게 수년이 더 있다면, 오십에 『주역』을 배우니 큰 과오가 없을 것이다.(『論語』, 「述而」,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26) 장막산에 관해서 그가 누구인지는 당대에 어떠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지의 당대에 학문적으로 상당히 비중있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이지는 매 괘의 끝에 있는 부록에 거의 매번 장막산의 견해를 붙여놓고 있다.
27) 容肇祖의 『李贄年譜』 (北京: 三聯書店, 1957)에 있는 「부록2: 記李贄“九正易因”」편에 이지가 「문언전」과 「계사전」에 관한 했던 언급이 있다. 이지가 「계사전」을 연구할 것이지만 「문언전」은 건괘와 곤괘만을 해설하여 성인의 經文과 傳文을 망가뜨리므로 연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곧 사망했으므로 『구정역인』에는 「문언전」과 「계사전」의 부분이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한 이지의 말이라는 것은 건괘의 부록에 있는 이자(李子)라는 사람의 글인데, 이 사람을 이지로 보고 그의 말로 서술하고 있다.(123쪽을 참조할 것) 이 말은 『역인』에는 없고 『구정역인』에서 새로 추가된 것이다.
다른 한편, 이지가 ‘십익’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방향, 즉 역학사의 흐름과 심학의 맥락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역학사에서 보자면, 이는 아마 『역전』의 전문들이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는 소수의 학자들28)의 주장을 일부분 수용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송대에 구양수(歐陽修)는 일반 경학자와는 달리 전통적 관점을 과감하게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왕필의 의리학(義理學)을 계승했지만, 「하도」와 「낙서」의 해설을 통해 역학을 신비화했던 도서학파(圖書學派)의 상수학(象數學)을 부정했다.
이는 그가 人道의 문제를 중시하고 天道의 문제를 경시했음을 암시한다. 그는 『역동자문(易童子問)』에서 송대 역학에 대한 회의를 표명했다. 특히 그는 한대 이후로 정설로 여겼던, 공자가 ‘십익(十翼)’(역전)을 지었다는 전통적 관념을 부정했다. 그는 「단전」과 「상전」의 내용을 중시하고, 문헌상에서 최초로 「계사전」과 「설괘전」이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도서학파의 논거를 반박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자나 그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지의 의리역학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심학의 전통에서 보자면, 이지의 학맥의 주류인 왕간의 계보와는 별도로 태주학파 중에서 왕기29)의 역학이론이 『구정역인』의 부록에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이지의 역학이 육왕심학의 계열, 즉 정호, 육구연, 양간, 왕양명, 왕기로 계승되는 심학의 발전사의 흐름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들의 전통에서 보면 『주역』 책 전체에 관한 전문저술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마 『주역』 책이 전적으로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는 공감대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楊簡은 「단전」, 「상전」, 「문언전」만 해설하고 「계사전」, 「서괘전」 등의 전문들은 해설하지 않았다. 그는 「계사전」, 「서괘전」 등의 전문들이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 그의 후학들의 저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주역』을 해석하는 데에 太極의 문제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는 乾卦에 함축된 본체의 의미를 인용하여 자신의 심본론의 체계에 활용했다.30)
이러한 심학의 계보에서 나타나는 역학적 특색은 이지에게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대체로 「문언전」,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 등에 관한 상세한 해설이나 서술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해설에서 종종 ‘부자왈(夫子曰)’이라는 표현을 써서 이들 전문의 몇몇 문장이나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비괘(賁卦)의 「단전」을 해설하면서 “부자는 ‘음과 양이 서로 얽히고 강과 유가 서로 섞인다’고 말한다”31)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이는 乾道로 대변되는 변화의 본질이나 양상을 공자의 논점으로 보고 제시한 것이다.
또한 그는 무망괘(无妄卦)의 「단전」을 해설하면서 “부자는 ‘회복하면 망령됨이 없다’고 말한다.”32)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이는 「서괘전」에서 복괘 다음에 무망괘가 나오게 된 논거를 설명한 부분이다.
또한 그는 동인괘를 설명하면서 「계사전」33)에서 인용한 공자의 말을 활용하기도 한다. 즉 “이는 부자가 「문언전」에서 단언하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함이 쇠를 끊는다는 말과 같고, 한 마음이라는 말은 난초의 향기와도 같다는 말인 것이다.”34)
이 구절에서는 이지가 「계사전」의 내용을 「문언전」의 내용으로 착각하기는 했지만, 분명 「단전」과 「상전」 이외의 전문들도 드러나지 않게 활용하고 있다. 또한 그는 간괘(艮卦)를 해석하면서 「계사전」에 있는 “처음을 본원으로 하고 끝으로 되돌아가므로 삶과 죽음의 설을 안다”35)는 구절을 인용한다.36)
또한 그는 觀卦에서 『논어』의 양화편37)에 나오는 공자의 말, 즉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사시가 진행된다”38)는 구절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28) 『역전』은 전통적으로 공자의 저작이라고 생각되어왔으며, 최근의 일부 학자들조차도 여전히 관행적으로 이를 굳게 믿고 있다. 역학사에서 볼 때, 소수의 학자들은 이러한 관행을 부정함으로써 학계에서 이단시되었는데,그 대표적인 인물이 송대의 구양수와 청대의 최술이다.
구양수는 『역동자문(易童子問)』에서 「계사전」이 공자의 저작이라는 점을 의심했다.
최술은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에서 『역전』이 공자가 지은 것이 아니라 70명의 제자들 이후의 유학자들이 지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학자들은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여 『역전』이 전국시대 중기 혹은 전국시대 말기 혹은 진대와 한대 사이에 혹은 서한시대의 소(昭)왕과 선(宣)왕 이후에 제작되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29) 왕기는 『역전』, 특히 「대상전」에서 제시한 군자관(君子觀)의 의리적 내용을 대단히 중시한다. 그의 저작 「대상의술(大象義述)」에는 군자의 덕성을 중심으로 한 도덕수양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어 있다. 김연재, 「王畿의 心本論과 그 易理的 해석 ― 太極으로서의 ‘양지’ 본체」, 『양명학』제16호(2006), 7-8쪽.
30) 김연재, 「楊簡의 心學에 있어서 ‘心卽道’의 원칙과 그 修養經」, 동양철학26집(2006), 129-130쪽.
31) 李贄, 『九正易因』, 賁卦, “夫子曰, 陰陽交錯, 剛柔相雜.”
32) 李贄, 『九正易因』, 无妄卦, “夫子曰, 復則不妄矣.”
33) 「계사전」 상편에서는 “동인은 먼저 부르짖어 울고 그 뒤에 웃는 것이다. 공자는 군자의 도가 혹 나가고 혹 머물고 혹 침묵하고 혹 말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니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으며 한 마음으로 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도 같다. (同人, 先號咷而後笑. 子曰, 君子之道, 或出或處, 或黙或語. 二人同心, 其利断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말한다.
34) 李贄, 『九正易因』, 同人卦, “此夫子于文言所以斷以二人之同如斷金, 同心之言如蘭臭也.”
35) 『周易』, 「繫辭上傳」,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説.”
36) 李贄, 『九正易因』, 艮卦 부분을 참조할 것.
37) 『論語』, 「陽貨」, “天何言哉? 四時行焉,百物生焉,天何言哉?”
38) 李贄, 『九正易因』, 觀卦, “夫曰觀則聲臭俱無一如其天, 天何言哉, 而四時行焉. 觀者自以爲神, 而何敎之可設, 何化可服? 無敎之可設, 故曰神道設敎. 無化可服, 故曰神道而天下服.”
Ⅲ. 乾坤의 道와 그 세계관
『주역』의 구성에서는 건괘와 곤괘 및 그 상관성은 기본이 되는데, 철학자들은 그 상관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우주관 혹은 세계관을 드러내며, 이를 자신의 사유체계의 중요한 단초로 삼는다. 그들에게 『주역』 책은 한편으로는 하늘과 땅 및 만물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그대로 투영한 산물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우주 혹은 세계를 보편적으로 인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은 이지의 道學觀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 乾道와 그 존재론적 본령
이지는 건괘를 해설하면서 「설괘전」39)에서 제시한 건괘의 첫 구절, “건은 하늘이다(乾爲天)”라는 부제를 달아 설명한다. 그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첫 번째 부분은 『역인』과 『구정역인』에서 모두 동일하고, 두 번째 부분과 세 번째 부분은 『역인』에 있지만 『구정역인』에서는 삭제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첫 번째 부분에서는 「단전」의 내용40)을 풀이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문언전」의 내용41)을 해석한다. 이지는 여기에서 ‘원형이정’을 性情의 문제로 환원시켜 일반인의 性情, 하늘의 性情 및 성인의 性情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건과 곤은 하나이다(乾坤一也)”라는 구절로 시작하는데, 곤괘를 해석한 내용의 두 번째 부분과 중복된다. 그래서 『구정역인』에서는 이를 삭제했다.
39) 『역경』을 해석하는 방식에 관해 「설괘전」에서는 취상설과 취의설을 함께 거론하고 있다. 특히 만물의 생성의 문제에서 8괘의 성격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건은 하늘, 둥근 것, 군주, 아버지, 옥 등으로, 곤은 땅, 어머니,포백, 가마솥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40) 「단전」에서는 ‘원형이정’의 괘사를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도다! 건의 원이여. 만물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시작하니 바로 하늘을 통괄한다. 구름이 운행되고 비가 내리니 각종의 사물들이 형태를 이루며 크나큰 밝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고 있다. 여섯 가지 위치가 때에 맞게 이루어지고 때가 여섯 마리의 용을 타니 하늘을 거느린다. 건의 도가 변화하여 각각 본성과 수명을 정당화하고 크나큰 화합을 이루어내니 바로 이정인 것이다.
(「彖傳」, 乾卦, “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云行雨施. 云行雨施, 品物流形, 大明終始, 六位時成, 時乘六龍, 以御天. 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 乃利貞.”)”
여기에서는 ‘원형이정’의 과정은 天道가 본성과 천명의 덕성을 발휘하여 만물을 형성하는 역량과 일치되고 있다. 건의 도(道)는 생명성의 본원의 표출로서 만물의 본원이 되고 ‘때’에 따라 운행되어 만물의 본성으로 구현됨으로써 ‘정(貞)’이라는 조화의 경지를 드러낸다. 「단전」에서는 ‘원형이정’의 과정을 건괘가 생명성의 역량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통일적이고도 완결적인 과정으로 여기고, 이러한 完整的과정이 만물을 형성한다고 본 것이다.
41) 「문언전」에서는 ‘원형이정’의 내용을 인도의 덕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원은 선의 으뜸이고 형은 아름다움의 모임이고 이는 의로움의 화합이고 정은 일의 줄기이다. 군자는 어짊을 체득함으로써 사람을 거느릴 수 있고 모임을 아름답게 함으로써 예의바름에 합치할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의로움에 화합할 수 있고 굳셈을 바르게 함으로써 일을 할 수 있다. 군자는 이 네 가지 덕을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그러므로 건은 원형이정이라 말한다.
(『周易』, 「文言傳」, 乾卦, “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干也. 君子, 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干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 乾, 元亨利貞.”)” 이는 군자 혹은 성인의 덕성이 천도의 덕성과 화합하고 있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주역』에서 건괘의 괘사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중요한 의미를 담는다. 그것은 天道의 운행의 원리와 방식, 즉 우주의 생명성의 원천이자 그 역량을 함축한다. 이지는 ‘원형이정’ 중에서 내용상 ‘으뜸(元)’의 성격에 주목하고 이를 만사만물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시작과 끝의 본령이 된다고 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개 하늘이란 만물 중에 하나의 품물이지만, 乾의 으뜸(元)을 가지고 통괄하지 않으면 어떻게 구름을 가게 하고 비를 내리게 하며 품물을 유통시켜 형체를 드러나게 하여 이처럼 형통할 수 있겠는가?42)"
42) 李贄, 『九正易因』, 乾卦,
“夫天者萬物之一物, 苟非統以乾元, 又安能行雲施雨, 使品物流通, 形著而若是亨乎?”
取象說에서 하늘은 삼라만상 중의 하나이지만, 이를 取義說로 설명하면 건이며 그 중에서도 으뜸의 속성을 지닌다. 즉 하늘은 때에 따라서 변화하는 현상일 뿐이고 그 본질인 ‘건의 으뜸’이야말로 그 변화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건대, 건괘에서 ‘으뜸’은 우주의 원천으로서, 만사만물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일종의 존재론적 본원 혹은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乾道의 세계를 만물의 본원과 생성의 원리라고 본다.
"하나의 사물은 각각 하나의 건의 으뜸을 지니는데, 이는 性命이 각기 바르게 한 것이니 억지로 동일할 수가 없다. 만물의 통일체는 하나의 건의 으뜸인데, 이는 太和가 보존하고 합일한 것이니 억지로 차이가 있을 수 없다.43)"
43) 李贄, 『九正易因』, 乾卦,
“一物各具一乾元, 是性命之各正也, 不可得而同也. 萬物統體一乾元, 是太和之保合也, 不可得而異也”
‘건의 으뜸’은 모든 존재의 본원과 생성의 원천이자 공명정대함의 본바탕이다. 그 개별성을 말하면 개체사물에게 性命의 이치를 올바르게 하며, 그 통일성을 말하면 모든 사물들의 관계에서 太和의 통합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건의 으뜸’은 세계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설명하면서도 그 양자의 상관성을 포용하는 존재론적 본질로 해석된다. 이지는 이른바 天理의 보편성을 삼라만상의 개체성으로 수용하면서도,다른 한편으로는 이 개체성이 획일화 혹은 동일화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개체성과 보편성, 공공성의 의미와 그 양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관계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각각 그 하나의 건의 으뜸을 바르게 하여 각각 많은 사물들보다 앞선 본바탕을 지닌다. 이에 하늘을 통괄하는 것은 건괘에 귀결시키고 때를 타서 하늘을 거느리는 것을 성인에게 귀결시키면서
스스로는 달콤하게 많은 사물들과 함께 썩어간다면, 어찌 서글프지 않겠는가?44)
44) 李贄, 『九正易因』, 乾卦,
“然則人人各正一乾之元也, 各具有首出庶物之資也.
乃以統天者歸之乾, 時乘御天者歸之聖,
而自甘與庶物同腐焉, 不亦傷乎?”
이는 모든 ‘건의 으뜸’이 각각의 개인들의 자신에게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인간성의 본질을 ‘건의 으뜸’으로 보고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다는 인간존재의 합당성을 피력한다.
‘건의 으뜸’이라는 말은 심학에서 인간 마음의 본체로 보고 이를 여기고 수양의 방법의 일환으로 삼는다.45)
이를 道學의 전통적 논점, 즉 道心과 人心의 관계의 맥락에서 보자면,46) 양명학의 전통처럼 이지는 인심의 본질과 그 의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는 程朱學에서 강조했던 윤리도덕의 가치론적 본령, 즉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앤다(存天理遏人欲)’는 명제를 부정한 것이다.
45) 심학에서 건괘의 효사와 「상전」의 문장은 수양의 법칙, 즉 수양경(修養經)이 된다.
예를 들어, 왕기는 “원형이정”의 괘사를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사람이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서 놀라서 측은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최초의 무욕한 일념이다. 이것이 이른바 원이다. 일념이 바뀌어 교제하고 명예를 필요로 하고, 그 명성이 나빠지면서 욕심으로 흐르게 된다. 으뜸이란 시작이고, 형통하여 이로워 마침내 바르게 되는 것은 모두 최초의 일념이 하늘을 통괄하는 것을 근본으로한다.(『龍溪王先生全集』 卷1, 「語錄ㆍ南雍諸友鷄鳴凭虛閣會語」,
“今人乍見孺子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乃其最初無欲一念, 所謂元也. 轉念則爲納交要譽, 惡其聲而然, 流于欲矣. 元者始也, 亨通利遂貞正, 皆本于最初一念統天也.”)”
이는 무욕의 일념으로써 맹자의 측은지심을 해석하고 더 나아가 ‘으뜸(元)’을 해석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최초의 일념이 있어야 인간의 본성과 情이 모두 그 바름을 얻는다고 생각한다.(주백곤의 『역학철학사』 제3권, 252쪽)
46) 전통적으로 주자학과 양명학에서는 완전한 인격체로서의 인간의 도덕적 수양원칙, 즉 ‘內聖外王’ 혹은 ‘合內外之道’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그들은 『서경』의 「대우모」편에 있는 이른바 ‘16자심전(十六字心傳)’의 내용을 중시한다. 그들은 이 내용을 道統論의 입장에서 성인의 道를 밝힐 수 있는 근거로 삼았다.
「대우모」편에서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 오로지 정교해야 하고 오로지 전일해야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는다.(『書經』, 「大禹謨」,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인심’은 사욕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위태로운 반면에, ‘도심’은 쉽게 성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은미하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마음의 작용이 미묘하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도심’과 ‘인심’이 통일 혹은 합치될 수 있는 마음의 中道 혹은 中庸의 원칙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송대 유학자들에게 인격체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특히 주자학과 양명학은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인격의 수양방법에 관한 입장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는 인욕, 즉 개인적 욕구가 공공의 사회적 질서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천리의 정당성, 즉 도덕적 합리성을 부여받은 개인의 주체성임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분서』의 「동심설」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을 옳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진정한 마음을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동심이란 거짓을 끊고 순수하고 진실하여 가장 처음 갖게 된 본래의 마음이다.
만일 동심을 잃으면 진심을 잃게 되고 진심을 잃으면 참된 사람을 잃게 된다.
사람이면서 참되지 않은 것은 완전히 처음의 마음이 있음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47)"
47) 李贄, 『焚書』 卷3, 「童心說」,
“夫童心者, 眞心也.
若以童心爲不可, 是以眞心爲不可也.
夫童心者, 絶假純眞, 最初一念之本心也.
若失却童心, 便失却眞心, 失却眞心, 便失却眞人.”
동심은 “가장 처음 갖게 된 본래의 마음”으로서, 최초의 일념이라는 의미에서 ‘건의 으뜸’에 해당한다. 이는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체의식의 본래성, 즉 진정한 인간성의 근원 혹은 본원으로 본 것이다. 이지는 동심을 개인적 가치의 규준으로 보고 性善說의 전통적 맥락에서 인간의 본성, 감정 등을 진솔하게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주체의식을 확립하는 방법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사람이면서 참되지 않은 것은 완전히 처음(의 마음)이 있음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48)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동심은 심학에서 강조했던 최초의 일념으로서 無欲의 성격을 지닌다.49) 그러므로 근대적 이념의 맥락에서 개체성의 의미와 그 의의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에 지배계층의 이념이었던 道學의 聖人觀, 즉 보통사람과는 달리 성인의 우월성과 그 입지를 강조했던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구정역인』에서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48) 李贄, 『焚書』 卷3, 「童心說」, “人而非眞, 全不復有初矣.”
49) 김연재의 「왕기(王畿)의 심본론(心本論)과 그 역리(易理)적 해석― 태극(太極)으로서의 ‘양지’ 본체」(양명학 16호, 2006), 10-11쪽을 참조할 것.
"모든 나라들이 화합하는 것이 이 건의 으뜸의 덕에 있으니, 어찌 하루라도 모두 평안치 못한 날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건을 하늘로 여기고 모든 존재를 사물로 여겨서 聖人이 모든 나라들을 평안할 수 있으며 모든 나라들은 반드시 성인에 의해서만 평안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찌 더욱 서글프지 아니하겠는가?50)"
50) 李贄, 『九正易因』, 乾卦,
“萬國保合有是乾元之德也. 何嘗一日不咸寧也?
乃以乾爲天, 以萬爲物,
以聖人能寧萬國, 以萬國必咸寧于聖人, 不益傷乎?”
乾의 속성을 義理로 해석해 보면, ‘건의 으뜸’이라는 덕성은 모든 삼라만상의 근본이 된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에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공통의 본질이 되므로 특히 聖人만이 탁월한 능력이나 특권을 지닌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道學에서 추구하는 이른바 大同사회의 가치관이 여기에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治國平天下의 궁극적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지는 道學의 본령이 ‘동심’의 원초적 성격에 있다고 본 것이다. 양명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함축된 인간의 존재론적 강령과 그 필연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주체적 위상을 확립하고자했다. 이것이 이지의 道學觀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스레 때의 마땅함을 타고 하늘을 거느려 우주가 내 손에 달려있고,
자연스레 크게 밝아 乾道의 시종일관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으뜸이 하늘을 통괄하니 온갖 변화가 몸에서 생겨난다.51)"
51) 李贄, 『九正易因』, 乾卦,
“自然時乘御天, 而宇宙在吾手矣.
自然大明乾道之始終一元統天, 而萬化生于身矣.”
이 부분은 용구(用九)의 내용을 설명한 부분인데, 『九正易因』에 새로이 추가해놓은 구절이다. 그는 우주 전체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근본이 모두 개체인 인간 자신, 특히 ‘하나의 으뜸’에 있음을 말하고 이 ‘하나의 으뜸’이 동심이 됨을 강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하나의 으뜸이 하늘을 통괄하니 온갖 변화가 몸에서 생겨난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내용 역시 심학의 논지와 일치한다.
중국철학사에서 육왕심학(陸王心學)에 대한 평가는 인간의 고유한 마음(本心)을 최고의 범주로 삼고 이를 통해 통일된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고자 했던 심학의 강령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즉 인간은 자신의 본심을 다스리기만 한다면 결국에는 우주와 융합 혹은 일체가 되는 완전한 인격의 단계에 이를 수 있으며, 도덕의식과 그 함양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마음 본체가 ‘天理’의 방식, 즉 자연스레 합당하게 발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2. 坤道와 그 존재론적 본령
이지는 곤괘의 해설에서 「설괘전」에서 제시한 곤괘의 첫 구절, “곤은 땅이다(坤爲地)”는 구절로써 부제를 달아 설명하고 있다. 곤괘의 서술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부분은 건과 곤의 조화를 논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건과 곤의 일체를 강조한다. 특히 두 번째 부분은 『역인』의 것과 『구정역인』의 것과 차이가 있다. 『역인』에 들어있던 ‘최초의 일념(最初一念)’에 관한 내용을 『구정역인』에서는 삭제했다.
아마 이는 ‘최초의 일념(最初一念)’의 성격을 ‘건의 으뜸’의 속성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곤괘에서는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곤괘에 관한 논의에서 이지는 건괘와 곤괘의 상관성52)을 논한다.
그 양자의 관계를 人道의 순리를 조화와 균형의 원리로 풀이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건과 곤이 바탕을 정하면 하나의 강건함과 하나의 유순함이 있게된다.
만일 강건함에 유순함을 요구하고 유순함에 강건함을 요구하면, 강건함과 유순함은 모두 그 바탕을 잃는다. 건과 곤 두 가지 괘가 이치를 뒤집게 되면 하늘이 높고 땅이 낮다는 올바른 理가 아니다.53)
53) 李贄, 『九正易因』, 坤卦,
“乾坤定質, 則一健一順.
苟責健以順, 責順以健. 健順皆失其質也.
乾坤兩卦卽爲反常, 非天尊地卑之正理也.”
52) 「계사전」에서는 만사만물의 존재론적 강령을 함축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한번 음이 되면 한번 양이 되는 것을 일러 道라고 하고, 그것을 잇는 것을 善이라 하며, 그것을 이루는 것을 性이라 한다.(『周易』, 「繫辭上傳」,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天道는 “한번 음이되면 한번 양이 되는” 과정으로써 천체의 운행을 표상한다. 그리고 그것은 음과 양의 이치를 합당하게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바로 ‘善’ 관념으로 표현된다. 또한 음과 양의 합당한 구현체가 바로 만사만물의 본성이 된다. 그러므로 『역전』에서는 天道의 운행을 음과 양이라는 한 쌍의 속성과 그 조화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이로써 만사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했다. 이것이 天人의 道를 위한 존재론적인 방식이 되는 셈이다.
건괘와 곤괘에 대한 道學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건과 곤의 속성, 즉 음과 양 및 강건함과 유순함의 관계를 중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괘의 속성을 더 중시한다. 이지도 건과 곤의 속성을 강건함과 유순함의 상호 관계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해석과는 달리 ‘올바른 理’ 즉 건과 곤의 균형과 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건과 곤이 위치를 정하면 하나의 남편과 하나의 아내가 있게 된다.
만일 남편에게 아내의 도리를 요구하고 아내에게 남편의 도리를 요구하면, 남편과 아내는 모두 그들의 직분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건과 곤의 두 가지 괘가 모두 위치를 잃어버리면 군주가 존귀하고 신하가 낮다는 올바른 道가 아니다.54)
54) 李贄, 『九正易因』, 坤卦,
“乾坤定位, 則一夫一婦.
苟責夫以婦, 責婦以夫. 夫婦皆反其分矣.
乾坤兩卦總爲失位, 非君尊臣卑之正道也.”
이 구절에서는 건과 곤의 상호 관계에 따라 군주와 신하 혹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一夫一婦)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직분의 차이와 그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55)
이러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는 천지의 理나 인간사의 道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건과 곤의 상호보완적 관계가 천도(天道)뿐만 아니라 인간사의 본령인 인도(人道)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55) 남녀의 불평등 문제에 관해 실제로 그가 매담연(梅澹然)이라는 여자와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은 내용을 담은「관음문(觀音問)」에서도 잘 보여준다.
김혜경의 「李卓吾의 인식세계」, 중국어문학지 10집(2001), 141-146쪽.
이러한 맥락에서 우주생성관을 내용으로 하는 성리학적 구도를 비판한다. 「부부론」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하늘과 땅은 하나의 부부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있어야 만물이 있다.
그렇다면 천하의 만물은 모두 하나에서 나오지 않고 양의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가 둘을 낳고 理가 기를 낳으며 태극이 음과 양을 낳는다고 하니 이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단지 음과 양의 두 가지 기와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천명이 있었을 뿐 애당초 하나라든가 理라고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또 무슨 태극이 있었겠는가?56)"
56) 李贄, ?焚書? 卷3, 「夫婦論」,
“極而言之, 天地一夫婦也. 是故有天地, 然後有萬物.
然則天下萬物皆生於兩, 不生於一, 明矣.
而又謂一能生二, 理能生氣, 太極能生兩儀, 何歟?
夫厥初生人, 惟是陰陽二氣, 男女二命, 初無所謂一與理也. 而何太極之有?”
그는 모든 존재의 원리는 하늘과 땅으로 대표되는 음과 양, 혹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는 현실세계의 실체적 맥락에서 음과 양의 조화의 원리를 수용하지만, 태극이나 理 개념을 전제로 하는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구도를 반박한다. 이 때문에 그는 「부부론」에서 “하나는 둘과 짝이 되며 리는 기와 짝이 되며 음양은 태극과 짝이 되며 태극은 무극과 짝이 된다.”57)라고 말한다.
57) 李贄, 『焚書』 卷3, 「夫婦論」,
“一與二爲二, 理與氣爲二 陰陽與太極爲二, 太極與無極爲二.”
그는 건곤의 道가 바로 人道의 존재론적 원리라고 생각한다. 이는 전통적 규범의 문제에 관해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적 세계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적인 세계를 중시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과 악이 대립하는 것은 음과 양, 유와 강, 남자와 여자가 대립하는 것과 같다. 대개 양의가 있으면 대립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양의가 있으므로 그 추세가 텅 빈 거짓 이름을 세워 그것을 분별할 수밖에 없으니 이를테면 장삼과 이사의 부류와 같다.58)"
58) 李贄, 『焚書』 卷1, 「又答京友」,
“善與惡對, 猶陰與陽對, 柔與剛對, 男與女對.
蓋有兩則有對. 旣有兩矣. 其勢不得不立虛假之名以分別之, 如張三李四之類也.”
그의 논점을 이성과 욕망이라는 근대적 의식의 구도에서 보자면,59)
이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욕구를 자연적 속성으로 인정하는 일원론적 구도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차별성과 동일성의 관계로 환원될 수 있다. 즉 하늘과 땅의 두 가지 氣가 위와 아래로 서로 교차하는 것처럼, 사물들 중에 어떤 한 쪽에서는 뜻밖에 서로 어긋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서로 합치되기도 한다. 만일 사물들에 차별성이 있지만 동일성이 없다면 단지 대립할 뿐 합치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은 사물들의 관계에서 혹은 그 내면적 구조에서 대립의 통일성을 인식하고 이를 人道의 존재론적 원리로 본 것이다. 이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공공의 사회적 질서와의 상관성에서 보면, 인간 욕구의 표출은 인간의 내면성의 발현으로서 공동체의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59) 박재술, 「明末 陽明學의 개체 욕망 긍정 경향 - 李贄를 중심으로」(시대와 철학 14집, 2003), 165-170쪽을 참조할 것.
그는 「문언전」의 곤괘의 내용60)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의 태어남이 곧바름(直)이다. 곧바름이 반듯하지 않을까 의혹한다.
오늘날 곧바름을 말하고 또한 반듯함을 말하는 것은 사람이면서 단지 곧바름을 알지만 곧바름이 반듯하지 않음이 없음을 알지 못할 따름이다.
대개 땅의 본성이 넓고 두터우며 곤의 덕은 끝이 없어서 홀로 외로울 수가 없다.
대개 이와 같으니 곧바름이란 반듯함을 바르게하는 것이고 의로움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61)"
61) 李贄, 『九正易因』, 坤卦,
“人之生也, 直. 直疑不方矣.
今言直而又言方者, 以人但知直而不知直之無不方耳.
蓋地性博厚坤德無彊, 其不可孤.
蓋如此也, 直者爲正方者, 爲義正者.”
60) 「문언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바름은 그 바르게 함이고 반듯함은 그 의로움이다. 군자는 공경함으로써 내면을 곧바르게 하고 의로움으로써 외면을 반듯하게 하니 공경함과 의로움을 확립하여 그 덕이 홀로있지 않게 된다.
(『周易』, 「文言傳」, 坤卦, “直, 其正也. 方, 其義也. 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이는 인간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에서 일종의 합일적 경지를 제시한다. 즉 ‘곧바름(直)’과 ‘반듯함(方)’, ‘바르게 함(正)’과 ‘의로움(義)’, ‘공경함(敬)’과 ‘의로움(義)’의 관계에는 내적 함양과 그것의 외적 표출이라는 상호 보완과 합치의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균형 혹은 조화의 합일적 경지를 함축한다. 특히 “공경함과 의로움을 확립하여 그 덕이 홀로 있지 않게 된다”는 말은 군자가 안과 밖, 내면과 외면의 인품을 두루 갖추어야 됨을 강조한 것이다.
이 단락에서는 곤의 덕성상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말한다. ‘곧바름(直)’은 인간 욕구의 본연의 성격인데 인간의 욕구가 자기 본위로 혹은 이기적으로 흐르는 것을 균형잡는 기준이 된다. 그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인격의 개체성이라는 합당한 본질을 역설한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진정한 모습의 발현은 인간이 자발성에 의존할 경우에 지나치게 독담으로 흐르지 않게 하는 남과의 소통의 기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62)
62) 김세서리아, 「양명좌파와 이탁오 사상에서의 개별 주체와 공동체 주체」, 오늘의 동양사상 16호, 99-100쪽.
그렇다면 그 본령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듯함을 행하는 것과 곧바름에 그치는 것이 공경함이다.
공경함은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단지 그 내면이 곧바른 것일 뿐이다.
반듯함은 의로움인데, 의로움은 관습적으로 취하지 않고 행하는 데에 이로울 따름이다.
이것이 어찌 학습에 기대어 이롭겠는가?63)
63) 李贄, 『九正易因』, 坤卦,
“以行方者, 以直者是敬,
敬非著意, 唯其內之直而已.
方者是義, 義非襲取, 唯其行之利而已.
此豈有待於學習而後利哉?”
그는 ‘곧바름(直)’의 마음을 지니면64) 자연스레 천하의 ‘공정한 이치(天下之公理)’에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65) 그러므로 『분서』의 「답경중승」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64) 이른바 ‘직심(直心)’의 문제는 양간과 왕기의 심학에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마음의 본체, 즉 無心의 속성을 표현한 말이다. 김연재의 「王畿의 心本論과 그 易理的 해석 ― 太極으로서의 ‘양지’ 본체」, 양명학16호, 31-33쪽을 참조할 것.
65) 李贄, 『焚書』 卷4, 「八物」,
“夫君子非無怨也, 不報怨也, 非不報怨也, 以直報怨也.
苟其人可惡而可去, 則報之以可惡可去之道焉.
苟其人可好而可用, 則報之以可好可用之道焉.
其惡而去之也. 好而用之也, 直也. 合天下之公是也.
其或天下不知惡而去之, 好而用之也, 而君子亦必去之, 必用之, 是亦直也, 合天下之公理也.”
"무릇 본성의 진정함을 좇아서 그것을 미루어 확충하여 천하와 더불어 공정함을 이루는 것을 일러 도라고 한다.
이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이를 좇고자 한다면 그것이 두루 포괄하고 다양하게 성취하는 공정함은 크도다.66)"
66) 李贄, 『焚書』 卷1, 「答耿中丞」,
“夫以率性之眞, 推而擴之, 與天下爲公, 乃謂之道.
旣欲與斯民之共由之, 則其範圍曲成之公大矣.”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공적인 영역을 사회적 관계에서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논의하고 있다. 그는 개인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삶 자체가 사회질서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오직 마음이 머무는 바를 없애야만 마음이 비어있게 되고 비우면 폭넓게 크나큰 공적인 것을 이루게 된다. 이는 마음에 사물이 없는 것이다.”67)
그러므로 그는 사회적 성취의 문제를 자아와 타자의 관계, 개체와 공동체의 연대 등과 같은 맥락에서 포용하려고 했다. 즉 그는 개성의 자아의식에서 출발하여 道學에서 추구하는 공동체의 윤리의식도 수용하려 했다.
따라서 이지는 건괘와 곤괘의 내용을 義理的으로 해석하면서 모든 존재를 건과 곤, 남자와 여자 혹은 남편과 아내 등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근대적 세계관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즉 도덕과 욕망, 도덕적 본성과 사욕, 공공성과 개체성, 사회적 질서와 개인적 욕구의 대립적 구도보다는 그 양자 사이의 충돌 혹은 갈등을 막고 모두가 함께하는 현실적인 삶의 세계를 추구했던 것이다.
67) 李贄, 『續焚書』 卷2, 「金剛經說」, “惟無所住則處, 處則廓然大公, 是無物也.
Ⅳ. 나오는 말
본 논문에서는 이지 철학의 방법론을 그의 역학의 이론에서 찾아보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지의 역학을 근거로 하여 그의 세계관을 보자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道學의 전통적 논점, 즉 道心과 人心의 관계의 맥락에서 보자면, 양명학의 전통처럼 이지는 인심의 본질과 그 의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는 程朱學에서 강조했던 윤리도덕의 가치론적 본령, 즉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앤다(存天理遏人欲)’는 명제를 거부한다.
그는 인욕, 즉 개인적 욕구가 공공의 사회적 질서를 위해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천리의 정당성, 즉 도덕적 합리성을 부여받은 개인의 주체성임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도나 인륜의 근원을 개체성의 문제로 귀속시키고 개별적 존재의 다양성과 정당성을 인정하고자 했다.
둘째, 시대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그는 전통적인 강상윤리가 강요한 봉건적 전체주의 혹은 사회적 획일화를 부정하고 더 나아가 신분제도, 특히 남녀의 차별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개별성 기존의 사회적 질서로 대변되는 주자학의 경직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사회적 질서란 개인의 개별성에 기초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여기에는 명대 말기의 시대적 현실성을 직시하고 인간의 진실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셋째, 역학사의 맥락에서 보자면, 그는 철학적 방법론의 하나로서의 역학적 방법론적 특성을 잘 보여 준다. 그는 역의 이치(易理)를 빌어 심학의 사상을 밝혀놓았거나 혹은 심학의 관점으로써 ?주역?의 義理를 해석했다. 특히 그는 마음 혹은 良知가 세계의 본원이라는 心本論의 강령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을 최고의 범주로 삼고, 이것을 우주가 변화하는 이치의 중심 혹은 만사만물이 운행되는 본원으로 상정해놓음으로써 주관인식의 내면적 경지를 우주의 본체라는 지향성의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상적 흐름 혹은 학술적 사조를 설명하는데에 당시의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는 기본적으로 생산관계나 신분관계의 변동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며 따라서 개인적 욕구와 집단의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반영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관에는 이처럼 시대적 요청을 탄력적으로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정통과 이단의 양분법으로 대변되는 보수와 개혁, 전통과 혁신 등의 대립과 모순이 존재한다. 이러한 대립과 모순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일종의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 화합의 길을 모색하고 발전적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지의 세계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도덕적 합리성과 개인의 주체성 사이에 존재해왔던 모순과 갈등, 즉 인륜의 공공성과 개인적인 욕구의 대립적 구도를 해소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인간의 개체성을 인정하고 이를 왜곡됨이 없이 사회적 구조 속에서 수용되기를 기대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신념은 진정한 인간에 대한 믿음 즉 人文主義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는 당시에 중국의 근대의식의 맥락에서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적 윤리, 즉 자유와 평등, 개체의 권리와 공동체의 안녕, 公利와 道義의 양립성 등의 맥락에서 고려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지의 세계관은 64괘를 해석하는 가운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투영된 역학적 사유방식은 그의 역학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 그것은 그의 道學觀을 조망하는 일종의 통로가 된다. 이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다음의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참고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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