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장자

장자(내편) 응제왕

rainbow3 2019. 10. 14. 11:51


장자(내편) 응제왕 1  - 얽매이지도 않고 아무 것도 모른다

 

설결이 왕예에게 가서 네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네 가지를 다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설결은 크게 기뻐하고, 포의자에게 가서 그 얘기를 했다.

포의자가 말했다.

“이제야 그것을 알았는가? 유우씨는 태씨에게 미치지 못하는 분이었다. 유우씨는 그래도 어짊을 지니고 사람들을 구하여 사람들을 얻기는 했으나, 처음부터 물건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했다. 태씨는 잠잘 때는 평화스러웠고, 깨어났을 때에는 멍청했다. 어떤 때는 자신을 말이라 했고, 어떤 때는 자신을 소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진실로 믿음이 있고, 그의 덕은 매우 참되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물건에 얽매이지 않았었다.”

 

 

장자(내편) 응제왕 2  - 세상은 강압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

 

견오가 광접여를 만났다. 광접여가 말했다.

“일중시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였습니까?”

견오가 말했다.

“내게 말하기를「임금 된 사람이 자기 맘대로 법령과 제도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어떤 사람이 감히 따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접여가 말했다.

“그것은 덕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바다를 걸어서 건너가거나 땅을 파서 큰 강물을 만드는 것처럼 힘들고,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는 것처럼 힘든 일입니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릴 때 겉을 다스리겠습니까? 자신을 올바르게 한 다음에 행동하며, 확실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줄 따름입니다.

새는 높이 날아서 화살의 위험을 피하고, 생쥐는 큰 언덕 아래 깊은 굴을 파서 불에 타고 집이 파헤쳐지는 환란을 피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전혀 지혜가 없는 짐승입니다.”

 

 

장자(내편) 응제왕 3  - 사람은 편안히 생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천근이 은양 땅을 가다가 요수가에 이르러 어떤 이를 만나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사람이 말했다.

“돌아가시오! 어째서 귀찮은 질문을 하는 것입니까? 나는 지금 조물주와 벗이 되어 있습니다. 싫증이 나면 아득히 나는 새를 타고 이 세상 밖으로 가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노닐며 한없이 넓은 들에서 살려던 참이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세상을 다스리는 일로 내 마음을 흩트리려 하는 것입니까?”

그래도 다시 물으니 그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마음을 담담한 곳에 노닐게 하고 기운을 막막한 곳에 모으고, 만물의 자연스러움을 따라 사사로움이 없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입니다.”

 

 

장자(내편) 응제왕 4  - 세상은 저절로 다스려지게 해야 한다

 

양자거가 노자를 만나서 말했다.

“한 사람이 있는데, 동작이 빠르고 몸이 튼튼하며, 생각도 트이고 밝은 데다 도를 배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밝은 임금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런 사람은 성인이 되기에는 너무 앎에 헛갈리고 자기 몸에 걸리어 몸을 번거롭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에 있는 무늬는 사람들에게 사냥을 하도록 충동질하고, 원숭이의 날램이나 삵쾡이를 잡는 개의 재주는 사람에게 끌려 다니며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밝은 임금에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양자거는 감동한 듯이 말했다.

“밝은 임금의 다스림은 어떤 것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밝은 임금의 다스림은 공로가 천하를 뒤덮을 만해도 자기 힘으로 한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지 않으며, 교화가 만물에 베풀어져도 백성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훌륭한 정치가 행해져도 형용할 길이 없으며,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만듭니다.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서서 아무 거리낌없는 경지에 노니는 것입니다.”

 

 

장자(내편) 응제왕 5  - 운명은 있으나 볼 수는 없다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통한 무당이 있었다. 사람들의 생사존망이나 화와 복,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일들을 년·월·일·시까지 귀신 같이 알아냈다. 정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죽는 날을 알아맞힐까 두려워 그를 보기만 하면 모두 서둘러 달아났다. 열자가 그를 만나보고 반하여 돌아와 호자에게 말했다.

 “처음에 저는 선생님의 도가 지극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더 지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나는 너에게 형식에 대해서는 다 가르쳤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다 가르치지 못 했다. 너는 본시부터 도를 터득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느냐?

암컷이 많다 해도 수컷이 없으면 어찌 새끼가 있겠느냐? 네가 도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다투는 것은 너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남으로 하여금 네 관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시험삼아 데리고 와서 내 관상을 보게 해라.”

다음날, 열자가 그를 데리고 와 호자를 만나보게 했다.

무당이 호자를 만나고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 선생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열흘을 못 넘길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젖은 재의 상을 보았습니다.”

열자가 들어가 옷깃이 흠뻑 젖도록 울면서 그 얘기를 호자에게 했다.

호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나는 그에게 지문(地文)의 상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멍하니 움직이지도 않고 멎어 있지도 않는 것이다. 그는 아마 덕의 발동을 막는 경지를 보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다시 무당을 데리고 와 호자를 보게 했다.

무당이 호자를 보고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선생이 나를 만난 것은 천만 다행입니다. 병이 다 나았습니다. 이제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그의 생명의 싹이 솟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열자가 들어가 그 얘기를 호자에게 하니, 호자가 말했다.

“조금 전 나는 그에게 천양(天壤)의 상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이름도 형태도 없는 상태로 생기가 발뒤꿈치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 천지 사이에 선한 생기가 점차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시험삼아 다시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다시 계함과 함께 열자가 호자를 만나 보았다.

계함이 호자를 만나고 나와서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선생은 무슨 까닭인지 일정하지가 않기 때문에 나로서는 관상을 보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일정하게 하도록 전해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 한번 관상을 보아드리겠습니다.”

열자가 들어가 그 얘기를 호자에게 전하니 호자가 말했다.

“나는 좀 전에 그에게 태충막승(太沖莫勝)의 상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빈 마음 그대로 일체를 받아들여 우열의 차별을 두지 않는 경지이다. 그는 아마 생기를 고르게 하여 일체를 평등하게 하는 심경을 보았을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물이 모여 못이 되고, 정지한 물이 못이 되며, 흐르는 물이 모여 못이 된다. 못에는 아홉 가지가 있지만 나는 그 중 세 가지만 들었다. 그를 다시 한번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다시 열자가 계함과 함께 호자를 만났다.

계함은 서 있을 새도 없이 넋이 빠져 달아났다.

호자가 말했다.

“그를 따라가 보아라.”

열자가 그를 따라갔으나 따라잡지 못하고 되돌아와 호자에게 말했다.

“이미 없어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나는 그에게 미시출오종(未始出吾宗)의 상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자기의 근본에 있는 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지이다. 이 경지에서는 자기를 공허하게 하고, 오직 사물의 움직임에 맡기어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다만 흐름에 맡기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 도망친 것이다.”

열자는 자기의 학문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문밖을 나오지 않고, 그의 아내 대신 밥을 짓기도 하고, 돼지 먹이기를 사람 먹이듯 했다.

차별하는 마음을 버리고 특정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인위를 버리고 소박한 상태로 돌아가 마치 생각도 마음도 없는 흙과 같은 모습을 한 채 우뚝 서서 모든 것을 혼돈에 맡기고 그대로 평생을 마쳤다.

 

 

장자(내편) 응제왕 6  - 마음 쓰기를 거울과 같이 해야 한다

 

명예의 우상이 되지 마라. 모의(謀議)의 중심이 되지 마라. 일의 책임자가 되지 마라. 지혜의 소유주가 되지 마라.  무궁한 도를 철저히 터득하여 아무 조짐도 없는 경지에 노닐어라.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을 다하여 이득을 찾지 마라. 언제나 마음은 텅 비워야 한다.

지인(至人)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가는 것은 가는 대로 두고 오는 것은 오는 대로 둔다. 변화에 호응하되 감추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물을 견뎌내면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장자(내편) 응제왕 7  - 인위가 가해지면 자연은 죽는다

 

남해의 제왕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제왕을 홀이라 하고, 중앙의 제왕을 혼돈이라 했다.

어느 날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혼돈이 이들을 매우 잘 대접해 주자, 숙과 홀은 혼돈에게 보답할 것을 의논했다.

“사람들은 일곱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는데 혼돈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에게 구멍을 뚫어주도록 합시다.”

그래서 혼돈의 몸에 하루에 한 개씩 구멍을 뚫어주었는데, 칠일만에 혼돈이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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