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장자

장자(외편) 거협

rainbow3 2019. 10. 15. 00:47


♣ 장자(외편) 거협 1 - 방비가 역으로 도둑을 돕는다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를 여는 도둑에 대비하기 위해서 끈으로 꼭 묶고 자물쇠와 고리를 단단히 거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세상의 지혜이다. 그러나 큰 도둑이 오면 궤를 짊어지고, 상자를 둘러메고, 주머니 째 들고 달아나면서, 오직 끈과 자물쇠와 고리가 약하지나 않을까만을 걱정한다.

그러니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바로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꾸려놓은 꼴이 되지 않겠는가?

 

 

장자(외편) 거협 2 - 성인이란 큰 도적의 보호자에 불과하다

 

세상의 지혜 중에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꾸려놓는 것이 아닌 것이 있는가? 이른바 성인이란 큰 도적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닌 이가 있는가?

옛날 제나라는 이웃 고을이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소리가 서로 들리도록 인가가 많았고, 고기 그물, 새그물이 쳐지는 곳과 쟁기와 괭이로 일궈지는 땅이 사방 이천여 리나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방 국경 안에 종묘와 땅의 신, 곡식의 신의 사당을 세우고 마을을 다스리는 방법이 어느 하나 성인을 본뜨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전성자가 하루아침에 제나라 왕을 죽이고 나라를 도둑질했다. 도둑질한 것이 어찌 나라뿐이겠는가? 성인의 지혜에서 나온 법까지도 도둑질했다. 그래서 전성자는 도둑이라는 명성은 붙여졌어도 몸은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편안히 지냈다. 조그만 나라는 감히 그를 비난하지 못하였고, 큰 나라도 감히 그를 처벌하지 못했으며, 12대에 걸쳐 제나라를 차지했었다.

그처럼 제나라와 함께 성인의 지혜에서 나온 법까지도 훔침으로써 그 도적의 몸이 지켜지지 않았던가?

 

 

장자(외편) 거협 3 - 성인이 없어져야 도적도 없어진다

 

세상에서 말하는 지극한 지혜로서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쌓지 않는 것이 있던가? 이른바 지극한 성인으로서 큰 도적을 위해 지켜주지 않는 것이 있던가?

옛날에 용봉은 목이 잘리고, 비간은 가슴이 갈려지고, 장홍은 배를 찢기고, 오자서는 강물에 던져졌다. 이 네 사람은 현명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다.

도척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

도적이 대답했다.

“어디를 간들 도가 없겠느냐? 남의 집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마음대로 알아내는 것은 성인이다.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기이다. 남보다 뒤에 나오는 것은 의로움이다. 도둑질을 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를 아는 것은 지혜이다. 그리고 나누어 갖는 것은 어짊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서 큰 도적이 되었던 사람은 없었다.”

착한 사람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서지 못하고, 도척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행세하지 못한다. 세상에 착한 사람은 적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많으니, 성인이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점은 적고 해롭게 하는 점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노나라 술이 묽어 조나라 수도 한단이 포위 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성인이 생겨나자 도둑이 일어났다. 그러니 성인을 쳐 없애고 도둑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상은 비로소 다스려질 것이다.

냇물이 마르면 골짜기가 생겨나고, 언덕이 평평해지면 연못이 메워진다. 성인이 죽어버리면 큰 도적은 생기지 않고, 세상은 평화로워져 아무 탈도 없게 될 것이다. 성인이 죽어버리지 않으면 큰 도적은 멈추지 않는다. 비록 성인을 존중하며 세상을 다스린다 해도 그것은 바로 도적을 존중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다.

 

 

장자(외편) 거협 4 - 성인의 법도에 따라 나라를 훔친다

 

세상을 위해 말과 되를 만들어 물건을 되면, 곧 말과 되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 세상을 위해 저울을 만들어 물건을 달면, 곧 저울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 세상을 위해 부신과 도장을 만들어 그것을 믿게 하면, 곧 부신과 도장에 따라 물건을 훔친다. 세상을 위해 인의로써 그릇됨을 바로잡으려 하면 , 곧 인의를 따라 물건을 훔친다.

허리띠의 고리를 훔친 자는 처형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의 문안에는 인의가 존재한다. 그러니 이것은 인의와 성인의 지혜까지 훔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큰 도적의 방법으로 제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인의와 되와 말과 저울, 부신과 도장의 편리함을 훔치는 것은 높은 벼슬을 상으로 줘도 막을 수 없는 것이며, 도끼로 위협을 해도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도적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것을 금지시킬 수 없는 것은 바로 성인의 잘못인 것이다.

 

 

장자(외편) 거협 5 - 인위적인 도덕과 기교가 세상을 어지럽힌다

 

물고기는 못을 벗어나면 안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 편리한 기구는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성인이란 세상의 편리한 기구다. 세상에 드러낼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성인을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 큰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옥을 버리고 진주를 깨버리면 작은 도적이 사라질 것이다. 부신을 태워버리고 도장을 없애버리면 백성들이 순박해질 것이다. 말을 부수고 저울을 꺾어버리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될 것이다. 천하의 성인이 법을 없애버려야만 백성들이 비로소 서로 토론하게 될 것이다.

음악의 음정도 어지럽히고, 악기들은 태워버리고, 사광 같은 이의 귀를 막아버려야 세상 사람들의 귀는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무늬를 없애고, 다섯 가지 채색을 흩트리고, 이주 같은 이의 눈을 막아놓아야 세상사람들의 눈은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갈고리와 먹줄을 없애버리고, 그림쇠와 굽은 자를 버린 다음, 공수 같은 이의 손가락을 꺾어 버려야 세상사람들은 비로소 재주가 교묘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기교는 졸렬한 듯이 보인다고 했던 것이다. 증삼과 사추의 행실을 깎아버리고, 양자와 묵자의 입을 틀어막고 인의를 버려야 세상사람들의 덕이 비로소 현묘한 도와 함께 어울리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눈이 밝아지면 세상에는 눈부시어 보이지 않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세상사람들의 귀가 정말로 밝게 되면 세상에는 들리지 않아 걱정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지혜롭게 된다면 세상에는 미혹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말로 덕을 지니게 된다면 세상에는 한 쪽으로 치우친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저 증삼, 사추, 양자, 묵자, 사광, 공수, 이주 같은 사람들이란 모두 겉으로만 자기 덕을 내세워 온 세상을 눈부시고 어지럽게 만든 사람들이다. 올바른 법도로서는 아무 소용없는 것들이다.

 

 

장자(외편) 거협 6 - 지혜의 발달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

 

오랜 옛날에는 새끼로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사용했으며, 먹는 음식을 달게 여겼고, 입는 옷을 아름답게 여겼고, 풍속을 즐겼고, 거처를 편안히 여기며 지냈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였고, 닭과 개의 소리가 이웃나라에까지 들렸다.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도 하지 않았다. 이런 때를 지극히 잘 다스려지던 때라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백성들이 목을 빼고 발돋움하여 기다리다가 어디에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들리면 양식을 싸 짊어지고 그에게 달려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안으로는 그의 어버이를 버리고, 밖으로는 그의 임금을 섬기는 일을 버리는 것이 된다. 그들의 발자취는 제후들의 국경에 줄지게 되고, 수레바퀴 자국은 천리 밖에까지 연결이 된다. 이것은 바로 임금이 지혜를 좋아하는 데서 생긴 잘못이다.

임금이 정말로 지혜만 좋아하고 도를 알지 못하면 천하는 큰 혼란에 빠진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하면 활, 쇠뇌, 그물, 주살, 덫, 올가미 등의 지혜가 많게 되자, 새들은 곧바로 하늘 위를 어지럽게 날게 되었다. 낚시, 미끼, 그물, 투망, 전대, 통발 등의 지혜가 많아지자 곧바로 고기들은 물 속을 어지러이 헤엄치게 되었다. 덫, 함정, 그물 등의 지혜가 많아지자 곧바로 짐승들은 진창을 어지러이 뛰어다니게 되었다. 지혜, 거짓, 속임수, 원한, 궤변, 논쟁, 의견차이 등이 많아지자 곧바로 세상의 습속은 이론에 집착하여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언제나 크게 어지럽다. 그 죄는 지혜를 좋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은 추구할 줄 알면서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은 추구할 줄 모른다. 모두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비난할 줄 알면서도, 이미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비난할 줄 모른다. 그래서 크게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을 어기고, 산과 내의 정화를 녹여버리고, 가운데로는 사철의 변화를 무너뜨렸다. 숨쉬며 움직이는 벌레나 날아다니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들의 본성을 잃게 되었다.

지혜를 좋아하는 것이 이토록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 것이다. 하와 은과 주나라의 3대 이후로는 언제나 이와 같았다. 농사짓는 백성들은 버리고 교활하고 간사한 자들을 좋아하며, 고요한 무위는 버리고, 남을 속이기를 즐기는데, 그런 거짓은 이미 천하를 어지럽히기에 충분한 것이다.

 


'동양사상 > 장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외편) 천지   (0) 2019.10.15
장자(외편) 재유   (0) 2019.10.15
장자(외편) 마제   (0) 2019.10.15
장자(외편) 변무   (0) 2019.10.15
장자(내편) 응제왕   (0) 2019.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