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장자

장자(외편) 천지

rainbow3 2019. 10. 15. 18:07


♣ 장자(외편) 천지 1 - 도와 덕과 의로움과 일과 재주의 관계

 

하늘과 땅이 비록 크다고 하나 그 조화는 고르고, 만물의 종류가 많다고는 하나 그 다스림은 하나에 의한 것이며, 백성이 비록 많다고는 하나 그 주인은 임금이다. 임금은 덕을 근거로 하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태고적 임금은 천하를 다스림에 무위로 하였고, 하늘의 덕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도로써 명분을 보면 천하의 임금은 올바르다. 도로써 분수를 보면 임금과 신하의 뜻은 분명하다. 도로써 능력을 보면 천하의 벼슬들은 잘 다스려진다. 도로써 모든 것을 보면 만물의 기능은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하늘과 통하는 것이 도이며, 땅에 따르는 것이 덕이며, 만물에 행하여지는 것이 의인 것이다.

위에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일이다.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주이다. 재주는 일에 지배되고, 일은 의에 지배되고, 의는 덕에 지배되고, 덕은 도에 지배되며, 도는 하늘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므로 옛날에 세상사람들을 양육하던 사람들은 아무런 욕망도 없이 온 천하가 만족하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온 만물이 변화하고 고요히 있기만 해도 백성들이 안정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옛날 기록에도「하나에 통합됨으로써 만사가 다 이루어지고, 아무런 마음도 없게 됨으로써 귀신들도 굴복한다」고 했다.

 

 

♣ 장자(외편) 천지 2 - 군자란 어떤 사람인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란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는 것이다. 얼마나 넓고 큰가! 군자들이 그의 마음을 비게 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것이다.」

무위로써 일하는 것을 하늘이라고 말한다. 무위로써 말하는 것을 덕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인이라고 말한다. 같지 않은 것들이 같이 합쳐진 것을 크다고 말한다. 행동이 남들과 달리 어긋나지 않는 것을 너그러움이라고 말한다. 만 가지 같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라고 말한다. 굳게 자기 덕을 지키는 것을 기망이 있다고 말한다. 덕을 이룩하는 것을 입(立)이라고 말한다. 도를 따르는 것을 비(備)라고 말한다. 사물로 인해 뜻이 꺾이지 않는 것을 완전하다고 말한다.

군자로서 이 열 가지 것들만 분명히 알면 크게 그의 지닌 마음이 커질 것이며, 널리 만물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산에 금을 저장해 두고, 못에 진주를 저장해 둔 것과 같다. 재물을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고 부귀를 가까이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일찍 죽는 것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 재물을 얻은 것을 영화롭다 생각하지 않고, 궁핍한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 평생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분수에 따를 것이다. 천하의 임금이 되는 것도 영예로운 자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영예로운 것은 맑게 드러난다. 만물은 한 가지 세계에 놓여 있고 죽음이나 삶이나 같은 모양이다.

 

 

♣ 장자(외편) 천지 3 - 지극한 덕을 지닌 사람이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의 모습은 심연처럼 조용하고, 맑은 물처럼 맑다. 쇠나 돌은 울리지 않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쇠나 돌은 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만물의 이런 성질은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큰 덕을 지닌 사람들은 소박하게 행동하면서도 마음은 모든 일에 통달해 있다. 근본적인 도에 입각해 살고 있어서 그의 지혜는 신묘에 통달한다. 그러므로 그의 덕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의 움직임은 밖의 물건에 의해서 결정한다. 그러므로 모든 형체는 도가 아니고는 생성되지 않으며, 모든 생성은 덕이 아니고는 밝혀지지 않는 것이다.

형체를 보존하면서 생성을 다하고, 덕을 세우고 도를 밝힌다면 큰 덕을 지닌 사람이 아니겠는가?

널리 어디에나 불쑥 나타나 갑자기 움직이는데도 만물이 그것을 따른다면 그를 두고 큰 덕을 지닌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보아도 까마득하고, 들어도 아무 소리가 없는데, 까마득한 가운데서 홀로 밝음을 보고, 소리 없는 가운데서 홀로 화(和)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깊고도 깊으면서 만물을 존재하게 할 수 있고, 신묘하고도 신묘하여서 정묘한 작용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물과 접촉함에 있어서는 지극한 무(無)에 있으면서도 만물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때때로 달려가지만 그의 알맞은 자리를 되찾는다. 크고도 작고 길고도 짧고 가깝고도 먼 것이다.

 

 

♣ 장자(외편) 천지 4 - 무위, 무아, 무심의 경지에서 도를 터득할 수 있다

 

황제가 적수의 북쪽에 들러 곤륜산 언덕에 올라갔다가 남쪽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검은 진주를 잃어버렸다. 지혜에게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이주에게 찾게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고, 끽후에게 찾게 하였으나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상망을 시켰더니 곧 찾아냈다.

황제가 말했다.

“이상하다. 상망 만이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 장자(외편) 천지 5 - 세상은 지혜로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

 

요임금의 스승은 허유였고, 허유의 스승은 설결이었고, 설결의 스승은 왕예였고, 왕예의 스승은 피의였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물었다.

“설결께서는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될만한 분이시지요? 저는 왕예를 통하여 그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허유가 말했다.

“위험합니다. 천하를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설결의 사람됨은 총명하고 지혜가 밝으며 일을 잘하면서도 민첩합니다, 그 분의 성품은 남보다 뛰어나서 인간의 지혜로써 하늘을 떠받들려하고 있습니다. 그 잘못을 금하는 일은 잘 알고 있지만 잘못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되게 하면 인위적인 행동으로써 하늘을 무시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근본으로 하여 다른 것들에 차별을 둘 것입니다. 또한 지혜를 존중하여 날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에 부림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에 구속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물건들에 대처하기에 바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려 바쁠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을 쫓아 변화함으로써 처음부터 일정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늘의 짝인 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가족이 있으면 선조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한 집안의 아버지는 될 수 있지만 한 집안의 선조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의 다스림은 혼란의 근본이 될 것이니, 그것은 신하로서의 재난인 동시에 임금에게도 해로울 것입니다.”

 

 

♣ 장자(외편) 천지 6 - 자연스럽다는 것은 무엇인가

 

요임금이 화땅에 놀러 갔었는데, 화땅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오래 오래 사시기를 빕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말했다.

“성인께서 부자가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경계지기가 다시 말했다.

“성인께서 많은 아들을 낳게 하여 주십시오.”

요임금이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경계지기가 말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많은 아들을 낳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입니다. 홀로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 것들은 덕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어서 사양하는 것입니다.”

경계지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군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모든 사람을 낳고 그들에게 합당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무슨 근심이 되겠습니까?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적게 먹으면서도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하여지면 모두가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천년이나 세상을 피해 살다가 세상을 떠나 신선 세상으로 올라갑니다.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서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앞의 세 가지가 환란으로써 닥쳐올 수가 없으며 몸에는 언제나 재앙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경계지기가 떠나가자, 요임금이 뒤따라가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국경지기가 말했다.

“물러가시오.”

 

 

♣ 장자(외편) 천지 7 - 인위적인 정치로는 세상이 혼란해 진다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리게 되자 백성자고를 제후로 삼았다. 그 후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자자리를 물려주고,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천자 자리를 물려주자, 백성자고는 제후자리에서 물러나 농사를 지었다.

우임금이 그를 찾아가니 그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우임금은 아래쪽으로 서서 물었다.

“옛날 요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는 선생님께서 제후로 계셨습니다. 요임금께서 순임금께 천자자리를 물려주셨고, 순임금께서는 저에게 천자자리를 물려주자 선생님께서는 제후자리를 물러나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백성자고가 말했다.

“옛날 요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는 상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일에 힘썼고, 벌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두려워했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상을 내리고 벌을 내리는데도 백성들은 어질지 않습니다. 덕은 이로부터 쇠하고, 형벌은 이로부터 확립되어 있습니다. 후세의 혼란은 이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해서 당신은 물러나지 않으십니까? 내 일이나 방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한가한 모습으로 돌아보지도 않고 밭을 갈았다.

 

 

♣ 장자(외편) 천지 8 - 태초에는 無만이 있었다

 

태초에는 무(無)만이 있었다. 유(有)도 없었고 명칭도 없었다. 하나(一)가 여기에서 생겨났는데, 하나만 있고 형체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건은 하나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 그 작용을 덕이라 한다. 아직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나로부터 나뉘어져 가는 것이 잠시도 끊이지 않았는데, 이것을 명(命)이라 한다. 하나가 유동함으로써 물건을 생성시키며, 물건이 생성되어 생리가 갖추어지면 그것을 형체라 한다. 형체는 정신을 보존하게 되며 제각기 원칙을 지니게 되는데 그것을 본성이라고 한다. 본성이 닦아지면 덕으로 되돌아간다.

같아진다는 것은 텅 비어진다는 뜻이며, 텅 빈다는 것은 곧 커진다는 뜻이다. 새가 주둥이로 우는 상태와 합치되는데, 새가 주둥이로 우는 상태와 합치된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자연에 합치된다는 뜻이다. 그 합치되는 상태는 딱 들어맞지 않아서 어리석은 듯도 하고 흐리멍덩한 듯도 하다.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 말하는 것이며, 크게 순조로운 상태와 같은 것이다.

 

 

♣ 장자(외편) 천지 9 - 성인은 인위적인 지혜에 힘쓰지 않는다

 

공자가 노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를 다스려 만약 그 도를 본뜬다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하게 될 것입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한 개의 돌에서 굳다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을 분리시켜 놓으면 허공에 달아매어 놓은 것처럼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성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것은 지혜로 일을 처리하고 기교에 얽매여서 몸을 고생시키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짐승을 잘 잡는 개는 마음을 쓰게 되고, 날렵한 원숭이는 산과 숲 속에서 잡혀 끌려오게 됩니다.

당신에게 당신이 들어보지도 말해보지도 못했던 일을 알려 주겠습니다.

대체로 머리도 있고 발도 있지만, 마음도 없고 귀도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형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들과 같이 있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움직이고 멈추는 것과 죽고 사는 것과 망하고 흥하는 것은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 같은 근거에 의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물건을 잊고 하늘을 잊으면 그것을 자기를 잊었다고 부릅니다. 자기를 잊은 사람을 하늘로 들어간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 장자(외편) 천지 10 - 최상의 정치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장려면이 계철을 만나 말했다.

“노나라 임금이 저에게 가르침을 청해 사양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아 말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었는지 그른 말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한 말을 말씀드릴 테니 한 번 들어주십시오. 제가 노나라 임금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공손함과 검소함을 실행하고 공손하고 충실한 사람들을 뽑아 쓰되, 사사로움에 기우는 일이 없다면 백성들이 어찌 화합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계철이 웃으면서 말했다.

“만약 선생의 말을 제왕의 덕에다 비추어 본다면 마치 사마귀가 앞다리를 벌리고 수레바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어서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높은 누대는 가지게 될 것이지만 일이 많아질 것이고, 그에게 몰려드는 사람만 많아질 것입니다.”

장려면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간단하게나마 가르침을 주십시오.”

계철이 말했다.

“위대한 성인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가르침에 따라서 풍속을 훌륭하게 만들도록 합니다. 백성들의 악한 마음을 완전히 없애 모두가 도를 얻으려는 뜻을 밀고 나가도록 합니다. 사람의 본성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과 같아서 백성들은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정치를 어찌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백성들을 가르치던 경지에 견주겠으며, 아무 생각 없이 모두가 같은 정치라고 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같은 덕을 지니고 마음이 편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장자(외편) 천지 11 - 기계가 발달하면 기계에 지배당한다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여행하고 진나라로 돌아오다가, 한수 남쪽을 지나는 길에 한 노인이 채소밭을 돌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땅을 파고 우물로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 들고 나와서 물을 주고 있었다. 힘은 무척 많이 들이고 있었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자공이 말을 걸었다.

“기계가 있다면 하루에 상당히 많은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그 효과는 클 것인데 왜 기계를 쓰지 않으십니까?”

노인이 머리를 들어 자공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습니다. 손쉽게 물을 풀 수 있는데 빠르기가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밭을 돌보던 노인은 성난 듯 얼굴빛이 바뀌었으나 잠시 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리 선생님께 듣기로는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생기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에 대해 마음을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에 대한 마음 쓰임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기계의 쓰임을 알지 못해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몸을 굽힌 채 말대꾸도 못했다.

잠시 후 밭을 돌보던 노인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는 분입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공자의 제자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당신의 선생은 많이 배움으로써 성인의 흉내를 내고, 허망한 말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홀로 악기를 연주하며 슬픈 노래를 함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팔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당신도 당신의 정신과 기운을 잊고 당신의 육체를 버린다면 거의 도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몸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만 가시오.  내가 하는 일이나 방해하지 마시오.”

자공은 부끄러워 얼굴빛이 하얗게 되고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30리를 가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조금 전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님께서는 그 분을 만나고 나서 무엇 때문에 얼굴빛을 잃고 종일 정신이 없으십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나는 천하에 훌륭한 분은 우리 선생님 한 분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었다. 내가 배운 선생님의 가르침은 일이란 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결과는 완성을 추구하며, 힘은 적게 들이고 드러나는 공로가 많은 것이 성인의 도라 배웠다.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구나.

도를 지키는 사람은 덕이 완전해야 되며, 덕이 완전한 사람은 몸이 완전해야 되고, 몸이 완전한 사람은 정신이 완전해야 된다. 정신이 완전한 것이 성인의 도이다.

삶을 타고나서 백성들과 나란히 행동하면서도 갈 곳도 알지 못하고 망연하면서도 순일하고  완전해야 한다. 공로와 이익과 기교 같은 것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서 잊혀져야만 한다.

그런 사람은 그의 뜻이 아니면 가지 않고, 그의 마음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비록 온 천하가 그를 칭찬하고 그의 말대로 된다고 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온 천하가 그를 비난하고 그의 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그는 마음을 비운 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도 그를 손상시키거나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덕이 완전한 사람이라 하는 것일 것이다. 나 같은 자는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같은 사람이다.”

자공이 노나라로 돌아와 공자에게 그 얘기를 하니 공자가 말했다.

“그는 혼돈씨의 술법을 배워 닦은 사람이다. 절대적인 도 하나만을 알지 상대적인 둘은 알지 못한다. 그의 속만을 다스리지 그의 밖은 다스리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밝게 하여 소박함으로 들어갔고, 무위함으로써 질박함으로 되돌아갔으며, 본성을 체득하고 순수한 정신을 지니고서 속세에 노닐고 있는 사람이다. 너는 무엇을 그리 놀라고 있느냐? 혼돈씨의 술법을 너와 내가 어찌 알겠느냐?”

 

 

♣ 장자(외편) 천지 12 - 성인(聖人)과 덕인(德人)과 신인(神人)

 

순망이 동쪽의 대학으로 가다가 동해 가에서 우연히 원풍을 만났다.

원풍이 말했다.

“어디를 가시는 길입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학으로 가는 길입니다.”

원풍이 물었다.

“무엇 하러 가십니까?”

순망이 말했다.

“대학은 물이 흘러들어도 차지를 않고, 퍼내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풍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뜻이 없으십니까? 성인의 다스림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순망이 말했다.

“성인의 다스림이란 관청에서 정치를 시행함에 있어서는 그 합당함을 잃어서는 안되며, 사람을 등용함에 있어서는 능력 있는 사람을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또 실정을 완전히 살피어 백성들의 행동에 따라 정치를 합니다. 말은 자신부터 실천해야 천하가 교화됩니다. 손짓하고 손가락질만 해도 사방의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인의 다스림이라 합니다.”

원풍이 말했다.

“덕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순망이 말했다.

“덕 있는 사람이란 들어앉아 있을 때도 생각이 없고, 행동함에 있어서도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옳고 그르다거나 아름답고 추하다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온 세상을 아울러 이롭게 하는 것을 기쁨이라 생각하고, 온 세상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안락이라 생각합니다. 모습은 의지할 곳이 없는 듯하여 마치 어린아이가 그의 어머니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멍청하여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쓰는 재물에는 여유가 있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음식은 충분히 먹으면서도 그것이 나오는 곳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덕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원풍이 말했다.

“신인(神人)에 대해 말씀하여 주십시오.”

순망이 대답했다.

“신령스러운 훌륭한 분은 해와 달과 별의 빛을 타고 다니며, 몸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조광, 즉 널리 비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운명대로 따르고 실정대로 다하여, 하늘과 땅도 녹아 없어지고 만사가 사라져버린 듯 합니다. 만물과 함께 진실한 형태로 되돌아가는데 이것을 혼명, 즉 뒤섞이고 어둡다 하는 것입니다.”

 

 

♣ 장자(외편) 천지 13 - 다스리는 것은 다스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

 

문무귀와 적장만계가 무왕의 군사들을 보러 갔다. 적장만계가 말했다.

“순임금의 정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전쟁의 환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무귀가 말했다.

“천하가 고루 다스려지고 있던 것을 순임금이 다스린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어지러웠던 것을 뒤에 다스린 것입니까?”

적장만계가 말했다.

“천하가 고루 다스려지고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순임금에게 다스리게 했겠습니까? 순임금은 머리 종기에 약을 쓸 때 머리를 모조리 깎게 하고서 다리꼭지를 붙이게 합니다. 병이 나야 의사를 구하는 것입니다. 효자가 약을 가져다 아버지에게 드릴 때 근심스런 얼굴을 하지만, 성인은 그처럼 병이 나게 한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지극한 덕이 펴진 세상에서는 현명한 사람도 숭상하지 않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쓰지 않습니다.

임금은 솟아난 나뭇가지 같고, 백성들은 들의 사슴과 같습니다. 행동이 바르지만 그것이 의로움인 줄은 알지 못하며, 서로 사랑하지만 그것이 어짊인지 알지 못합니다. 충실하지만  그것이 충성인지 알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들어맞지만 그것이 신용인지 알지 못합니다. 꿈틀거리면서 움직여 서로를 위해 일하지만 그것이 은혜로움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행해도 흔적도 없게 되며, 일해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 장자(외편) 천지 14 - 세상 사람들의 판단은 미혹되어 있다

 

효자는 그의 부모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충신은 그의 임금에게 아첨을 하지 않는데, 그것이 신하와 자식의 훌륭한 태도이다. 부모가 말씀하신 것이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부모가 행한 일이면 훌륭하다고 인정하면 세상에서는 못난 자식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말한 것이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임금이 행한 것이면 훌륭하다고 인정하면 세상에서는 그를 못난 신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고,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하면 곧 아첨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듣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습속이 본시 부모보다 엄하고 임금보다도 존귀하단 말인가? 자기를 아첨꾼이라고 말하면 곧 성난 듯이 얼굴빛을 바꾸고, 자기에게 눈치꾼이라고 말하면 화난 듯이 얼굴빛을 바꾼다. 그러면서도 평생토록 아첨꾼 노릇을 하고 평생토록 눈치꾼 노릇을 한다.

이유를 들면서 말을 꾸미는 것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작과 끝, 근원과 결과가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아름다운 채색으로 꾸미고, 갖은 용모를 써가며 온 세상에 아양을 떨면서도 자신은 아첨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더불어 무리를 이루고, 같이 옳고 그른 판단을 내리면서도 자신은 보통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극히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의 어리석음을 아는 사람은 크게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그의 미혹됨을 아는 사람은 크게 미혹된 것은 아니다. 크게 미혹된 자는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하고, 크게 어리석은 자는 평생토록 깨닫지 못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사람이 미혹되어 있다면 목적지로 갈 수 있다. 그것은 미혹된 자가 적기 때문이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미혹되어 있다면 고생만 하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것은 미혹된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어 있으니, 내가 비록 가려는 방향이 있다 해도 갈 수가 없다. 그러니 슬프지 않은가.

위대한 음악은 천한 귀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절양이나 황과 같은 속된 음악을 들으면 좋아서 웃고 법석을 떤다. 그러므로 고상한 말도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는 멈추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극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속된 말들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두 갈래로 모두가 미혹되어 있어서 목적지로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처럼 지금은 온 천하가 미혹되어 있다. 내가 비록 갈 곳이 있다 해도 어떻게 그 곳에 도달할 수가 있겠는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억지를 쓰고 있는 것 또한 한 가지의 미혹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버려 두고 밀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밀지만 않는다면 그 누가 근심을 할 것인가?

문둥이는 밤중에 자기 자식을 낳고서 바로 불을 가져다 비추어보면서 초조히 그 애가 자기를 닮지 않았을까 두려워한다.

 

 

♣ 장자(외편) 천지 15 - 사람은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

 

백년 묵은 나무를 쪼개어 제사 때 쓰는 술잔을 만들려면, 나무에 색을 칠하고 무늬를 조각한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는 도랑에 버린다. 제사에 쓰고 남은 술잔을 도랑에 버려진 부스러기와 견주어 본다면 아름답고 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성을 잃었다는 데 있어서는 같은 것이다. 도척과 증삼, 사추는 의로움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본성을 잃은 것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본성을 잃게 하는 것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다섯 가지 빛깔은 눈을 어지럽혀 눈을 어둡게 만든다. 둘째, 다섯 가지 소리는 귀를 어지럽혀 귀를 잘 들리지 않게 만든다. 셋째, 다섯 가지 냄새는 코를 찔러 콧속을 메이게 만든다. 넷째, 다섯 가지 맛은 입안을 흐려놓아 입을 병나고 상하게 만든다. 다섯째,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마음을 어지럽혀 본성을 날아가 버리게 만든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삶에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양주와 묵자는 자기의 주장을 드러내놓고 스스로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되는 것에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데도 제대로 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비둘기나 부엉이가 새장 속에 있는 것도 역시 제대로 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소리와 빛깔은 그의 마음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가죽 관이나 비취새 깃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홀을 꽂고, 큰 띠와 긴 바지를 입는 것은 그의 외모를 제약하는 것이다. 마음은 울안에 가득 차서 막힌 듯하고, 외모는 여러 겹으로 줄에 묶인 듯하다. 눈은 감긴 듯하고, 몸은 줄로 묶여진 가운데 있는 듯한데도 스스로는 제대로 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인이 팔을 뒤로 돌려 묶이고 손가락에 깍지가 껴져 있거나, 호랑이와 표범이 우리 속에 갇혀 있다 해도 역시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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