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외편) 천도 1 - 고요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비춰진다
하늘의 도는 움직이고 있어 멈춰 쌓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만물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제왕의 도 또한 움직이고 있어 멈춰 쌓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온 천하가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도 또한 움직이고 있어 멈춰 쌓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온 나라가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대해 밝고, 성인에 대해 통달하고, 제왕의 덕에 대해 완전히 트인 사람은 그 자신을 간수함에 있어서 자욱하며 고요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성인이 고요한 것은 고요한 것이 훌륭하기 때문에 고요한 것이 아니다. 만물에 그의 몸을 굽힐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고요한 것이다. 물이 고요하면 눈썹과 수염도 밝게 비추며, 완전한 수평이 되어 위대한 목수라 해도 그것을 법도로 삼는다.
물이 고요해도 맑은데, 하물며 정신이나 성인의 마음이 고요하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하늘과 땅을 비추는 거울이며, 만물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 장자(외편) 천도 2 - 고요히 마음을 비워야 올바른 삶을 누린다
텅 비고 고요하며 적막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의 기준이며 도덕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제왕이나 성인은 그런 경지에 머문다. 거기에 머물면 텅 비게 되고, 텅 비면 모든 것이 차게 되고, 모든 것이 차면 이치가 생기게 된다.
텅 비게 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움직이게 되고, 움직이면 제대로 되게 된다. 고요하면 곧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모든 것을 제각기 맡아하고 그 책임을 지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즐겁게 되어 걱정이나 근심이 없게 되어 생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텅 비고 고요하며 적막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만물의 근본인 것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임금이 되었던 것이 요임금이 세상을 다스릴 때였다. 이것을 잘 알고 임금을 섬겼던 것이 순임금이 신하노릇을 할 때였다. 이런 방법으로 윗자리에 처하는 것이 제왕이나 천자의 덕이다. 이런 방법으로 아랫자리에 처하는 것이 현묘한 성인과 왕위에 오르지 않고 왕도를 행한 이의 도이다.
이런 방법으로 물러나 살면서 한가하게 노닐면 강이나 바다나 산림에 숨어 사는 선비들이 따를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나아가 세상을 다스린다면 공로가 커지고 이름이 드러나며 천하가 통일될 것이다.
고요히 있으면 성인이 되고, 움직이면 임금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경받고, 소박한 채로 있어도 천하에 그와 아름다움을 다툴 자가 없을 것이다.
♣ 장자(외편) 천도 3 - 천락이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의 덕을 분명히 체험하여 얻은 것을 만물의 위대한 근본이고. 위대한 조종(祖宗)이라 부르며, 이것이 바로 하늘과 조화되는 것이다. 온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고 사람들이 화합하게 하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을 인락(人樂)이라 부르고, 하늘과 조화되는 것을 천락(天樂)이라 부른다.
장자가 말했다.
“도의 조화는 만물을 부숴 버리고도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되지 않고, 은혜와 혜택이 만세에 미치지만 어짊이 되지 않고, 상고시대부터 살고 있으면서도 장수라 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위와 아래에 있게 하고, 만물의 형상을 조각하여 놓고도 교묘하다 하지 않는다. 이것을 두고 천락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락을 아는 사람의 삶은 천체의 운행과 같고, 그의 죽음은 물건의 변화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고요히 있을 때에는 음(陰)과 같은 덕을 지니게 되고, 움직일 때에는 양(陽)과 같은 율동을 지닌다.
그러므로 천락을 아는 사람은 하늘에 대한 원망이 없고, 사람에 대한 비난이 없고, 물건에 의한 재난이 없고, 귀신에 의한 책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움직이는 것은 하늘과 같고 그가 고요히 있는 것은 땅과 같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안정되어 천하를 다스린다. 따라서 귀신도 그에게 화를 입히지 못하고, 영혼은 지치는 일이 없다. 한결같이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서 만물이 복종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텅 비고 고요함으로 하늘과 땅을 미루어 이해하고 만물의 이치에 통달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을 천락이라 말하는 것이다. 천락이라는 것은 성인의 마음으로 천하를 양육하는 것이다.
♣ 장자(외편) 천도 4 - 임금은 무위 백성은 유위?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을 조상으로 삼고 도와 덕을 주인으로 하며, 무위를 법도로 삼는다. 무위란 천하를 다스리는데 쓰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유위란 천하를 위해 쓰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무위라는 것을 귀중히 여겼었다.
임금이 무위이고 백성 또한 무위라면 그것은 백성들과 임금이 같은 덕을 지닌 것이다. 백성들이 임금과 같은 덕을 지니게 되면 신하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백성들이 유위한데 임금도 역시 유위하다면 이것은 백성과 임금이 같은 도를 지키는 것이 된다. 임금과 백성이 같은 도를 지키면 임금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임금은 반드시 무위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백성들은 반드시 유위로써 천하를 위해 쓰이는 것,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도인 것이다.
♣ 장자(외편) 천도 5 - 무위는 근본이고 나머지는 말단이다
옛날에 천하를 다스리던 임금은 지혜가 비록 하늘과 땅을 덮을 만큼 넓다 해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말재주가 비록 만물을 두루 변호할 만하다 해도 스스로 말하지는 않았다. 능력이 비록 온 세상에서 으뜸이라 해도 스스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하늘이 생산하지 않아도 만물은 변화하고, 땅이 생장시키지 않아도 만물은 자라나며, 제왕은 무위하여도 천하는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보다 신묘한 것은 없고, 땅보다 더 풍부한 것은 없고, 제왕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의 짝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을 타고서 만물을 달리게 하며 사람들을 부려쓰는 도인 것이다.
근본은 위에 있고 말단은 아래에 있다. 요점은 임금에게 있고, 자세한 것은 신하들에게 있다.
3군과 여러 가지 무기의 사용은 덕의 말단이다. 상과 벌과 이익과 손해와 다섯 가지 형벌에 관한 법은 교화의 말단이다. 예의와 제도와 형식과 명칭 및 자세한 비교는 다스림의 말단이다. 종과 북과 소리 및 새의 깃과 소의 꼬리를 들고 추는 춤은 음악의 말단들이다. 곡하고 울면서 여러 가지 상복을 입는 것은 슬픔의 말단이다.
이 다섯 가지 말단적인 것은 반드시 정신의 작용이나 마음과 지혜의 활동이 있은 뒤 그에 따라 써야 하는 것이다. 말단적인 학문은 옛사람들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을 앞세우지는 않았다.
♣ 장자(외편) 천도 6 - 다스림의 극치는 태평이다
임금이 앞서면 신하가 따라간다. 아버지가 앞서면 자식이 따라간다. 형이 앞서면 아우가 따라간다. 어른이 앞서면 어린이가 따라간다. 남자가 앞서면 여자가 따라간다. 남편이 앞서면 부인이 따라간다.
모든 높고 낮은 것과 앞서고 뒤서는 것은 하늘과 땅의 운행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그 모양을 본뜬 것이다.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은 것은 천지의 신명의 위치인 것이다. 봄과 여름이 앞서고 가을과 겨울이 뒤따르는 것은 사계절의 질서인 것이다. 만물이 변화하는데 있어서 펴지고 굽어지는 모양의 차별이 있고, 성해지고 쇠해지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이 변화의 양상인 것이다. 하늘과 땅은 지극히 신령스러운 것인데도 높고 낮고 앞서고 뒤서는 순서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도에 없을 수 있겠는가?
종묘에서는 가까운 친척이 받들어지고, 조정에서는 지위 높은 사람이 받들어지고, 마을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받들어지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현명한 사람이 받들어지는데 이것이 위대한 도의 질서인 것이다.
도를 얘기하면서도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은 참된 도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도를 얘기하면서도 참된 도가 못된다면 어디에서 참된 도를 가져오겠는가?
그러므로 옛날에 위대한 도를 밝히던 사람들은 먼저 하늘의 도를 밝히고 도와 덕을 그 다음에 밝혔다. 도와 덕이 밝혀진 뒤에는 어짊과 의로움이 그 뒤를 따랐다. 어짊과 의로움이 밝혀진 뒤에는 분수가 그 다음에 따랐다. 자기 분수가 밝혀진 뒤에는 형체와 명칭이 다음에 따랐다. 형체와 명칭이 밝혀진 뒤에는 일에 따른 책임이 그 다음에 따랐다. 일에 대한 책임이 밝혀진 뒤에는 살피고 생각하는 일이 그 다음에 따랐다. 살피고 생각하는 일이 밝혀진 뒤에는 옳고 그른 판단이 그 다음에 따랐다. 옳고 그른 판단이 밝혀진 뒤에는 상과 벌이 그 다음에 따랐다. 상과 벌이 밝혀진 뒤에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사람이 적절한 위치에 처하게 되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어질고 현명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모두가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고, 반드시 자기 능력에 따른 할 일을 지키고, 반드시 형식과 내용이 들어맞았다.
이런 방법으로 임금을 섬겼고, 이런 방법으로 백성을 양육했다. 이런 방법으로 만물을 다스렸고,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닦았다. 지혜와 계책을 쓰지 않아도 반드시 천연으로 되돌아 갔다. 이것을 두고 태평이라 말하는 것이니, 다스림의 극치이다.
♣ 장자(외편) 천도 7 - 형체와 명칭, 내용과 형식은 지엽적인 것이다
옛 글에「형체가 있으면 명칭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형체와 명칭은 옛사람들에게도 있었지만 내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옛날의 위대한 도를 얘기하던 사람들은 다섯 번째로 형체와 명칭을 들었었고, 아홉 번째로 상과 벌을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형체와 명칭을 얘기해도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상과 벌을 얘기한다면 그 시작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를 거꾸로 얘기하고, 도에 어긋나게 논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아야할 사람이니, 어찌 남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갑자기 형체와 명칭이나 상과 벌을 얘기한다면 정치의 수단에 대해서는 알 수 있겠지만 정치의 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천하에 그가 쓰여질 수는 있겠지만 그를 천하를 다스리는 데 쓰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이런 사람을 두고 변사로서 한가지 재주만 있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다.
예의 제도와 형체와 명분 및 자세히 살펴 비교하는 일은 옛사람들에게도 있었다. 이것은 아래 백성들이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지, 임금이 백성들을 양육하는 방법은 아니다.
♣ 장자(외편) 천도 8 - 임금은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순이 요임금에게 물었다.
“천자는 마음을 어떤 곳에 써야 합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나는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에게 오만하지 않고, 궁한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죽은 사람을 가슴 아파하고, 어린 고아들은 돌보아주고, 과부들은 가엾게 여겨주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마음을 쓴 일들입니다.”
순이 말했다.
“훌륭하기는 하지만 위대하지는 못하십니다.”
요임금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순이 말했다.
“하늘의 덕이 있으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해와 달이 제대로 비추면 사철이 올바르게 바뀝니다. 낮과 밤의 법도가 있고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나는 사물에 집착하여 번거롭게 했습니다. 당신의 덕은 하늘과 합치되고, 내 덕은 사람에게 합치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옛부터 위대하다고 받든 것이며, 황제와 요임금, 순임금이 다 같이 훌륭히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천하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따를 뿐이었다.
♣ 장자(외편) 천도 9 - 어짊과 의로움도 본성을 벗어난 것이다
공자가 서쪽 주나라 왕실 서고에 책을 넣어두려 했다. 자로가 그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제가 듣기에 주나라의 서고를 관리하던 노담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돌아가 집에 살고 있다 합니다. 선생님께서 책을 넣어 두시려면 가셔서 부탁을 해보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가서 노담을 만났으나 청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십이경을 펼쳐 놓고서 설명을 했다. 노담은 그의 설명에 동의하면서 말했다.
“너무 장황합니다. 요점만 말해주십시오.”
공자가 말했다.
“요점은 어짊과 의로움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어짊과 의로움은 사람의 본성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군자는 어짊이 아니면 이룩되지 않고, 의로움이 아니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짊과 의로움은 참된 사람의 본질입니다. 그밖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무엇을 어짊과 의로움이라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마음속은 부드럽고 사사로움이 없이 모두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어짊과 의로움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뒤에 하신 말씀은 더욱 위험합니다. 모두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이 바로 사사로움입니다. 선생은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생육을 잃지 않도록 하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늘과 땅에도 본래부터 법도가 있고, 해와 달에도 본래부터 광명이 있고, 별과 성좌에도 본래부터 배열이 있고, 새와 짐승들에게도 본래부터 무리가 있고, 나무에게는 본래부터 서서 자라는 본성이 있습니다. 선생도 그런 자연의 덕을 본받아 행하시고, 자연의 도를 따라 나아간다면 이미 목적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어짊과 의로움을 애써 들고 나와 북을 치고 다니면서 잃어버린 자식을 찾듯 하십니까? 선생은 사람들의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 장자(외편) 천도 10 -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치 없는 것이다
사성기가 노자를 찾아가서 물었다.
“저는 선생님이 성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뵙고자 했습니다. 백 날을 여관에서 묵고, 발에는 물집이 겹으로 생겼어도 오는 길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뵙고 보니 성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쥐 굴 앞에도 남은 곡식이 있는 법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을 버려 두고 길러주지 않는 것은 어짊이 아닙니다. 날것이나 삶은 것이 눈앞에 무진장인데도 한없이 긁어모아 쌓고만 있습니다.”
노자는 모르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성기가 다음날 다시 찾아와서 말했다.
“어제는 선생님을 공격했었는데 오늘은 마음이 달라졌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교묘한 지혜를 지닌 신성한 사람의 경지를 나는 스스로 초탈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제 당신이 나를 소라고 불렀다면 나는 소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를 말이라고 불렀다면 나는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런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명칭을 붙여주는데 받지 않는다면 거듭 그 재액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의 행동은 언제나 같은 행위입니다. 나는 어떤 행위를 위해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사성기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노자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신을 신은 채로 방안으로 들어가서는 몸을 닦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물었다.
노자는 말했다.
“당신의 얼굴은 돋보이고, 눈은 번들번들하며, 이마는 넓고, 입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몸집은 훤칠한데, 뛰려는 발을 묶어 놓은 듯합니다. 행동은 의젓하고 움직임은 쇠뇌를 퉁긴 것처럼 빠르고, 일을 잘 살펴 자세히 알며, 지혜 있고 교묘하며, 오만한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성실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변경에 사는 도둑질하는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 장자(외편) 천도 11 - 도를 체득한 사람이 지극한 사람이다
노자가 말했다.
“도는 크기로는 끝이 없고, 작기로는 없는 곳이 없어 세상 만물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 넓이는 한없이 넓어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그 깊이는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다. 덕을 어짊과 의로움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신의 말초적인 일이다. 그런 것이야 지극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가 결정지을 수 있겠는가? 지극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다면 역시 위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일 때문에 자기에게 장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온 천하가 권세를 두고 다툰다 해도 그는 거기에 끼여들지 않는다. 도란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익을 따라 뒤쫓지 않는다. 만물의 참됨을 추구하며 그의 근본을 잘 지킨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을 도외시하고 만물을 잊으면 그의 정신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도에 통하고 덕에 합해지며 어짊과 의로움을 물리치고 예의와 음악을 멀리한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의 마음은 안정됨이 있게 되는 것이다.”
♣ 장자(외편) 천도 12 - 말과 글로 도를 표현할 수는 없다
도를 배울 때 세상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은 글이다. 글이란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말이 귀중한 것이 된다. 말이 귀중한 것은 뜻이 있기 때문인데, 뜻이란 추구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뜻이 추구하는 것은 말로는 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그 때문에 말을 귀중히 여기며 글을 전한다. 세상에서는 비록 그것들을 귀중히 여기지만 귀중히 여길 것이 못된다. 세상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은 귀중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형체와 색깔이다.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명칭과 소리이다. 세상사람들은 그 형체와 색깔과 명칭과 소리로 그것들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형체와 색깔과 명칭과 소리로는 절대로 그것들의 진실을 파악할 수 없다.
게다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그것들을 알 수 있겠는가?
♣ 장자(외편) 천도 13 - 글이란 옛사람의 찌꺼기이다
제나라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뜰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던 목수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와서 환공에게 물었다.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에는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성인의 말씀이시다.”
“성인은 살아 계신 분입니까?”
“이미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임금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겠습니다.”
환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에 대해 수레바퀴나 만드는 자가 어찌 거론하느냐? 올바른 근거가 있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여버리겠다.”
목수는 말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로 미루어 그 일도 관찰한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히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꼼꼼히 깎으면 빠듯해져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꼼꼼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의 감각에 의해 마음의 호응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입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법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저의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고, 저의 아들은 그것을 저에게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과 그의 전할 수 없는 정신은 함께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