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ㅡ
여기 내가 감동한 한 도인의 이야기를 쓰려 한다.
대구에 있는 성지원이란 고아원에 십년넘게 매달 거액의 후원금을 보내면서도
자신은 쓰러져가는 판자집에서 월 25만원 정도의 생활비만으로도 풍요롭게 살다간 도인...
죽음에 임박해서는 수백억원에 상당하는 자신의 전재산을 성지원에 기부하고,
쓸쓸하게 한줌의 재로 돌아간 성자.
결혼도 하지 않고,
가난했던 시절 어머님과 같이 살았던 판자집이 그리워,
모든 부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어느 도인과 작가가 나눈 이야기들을 간단히 옮겨보려 한다.
"혹 불교 신자이신가요?"
"신자는 아닙니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철학으로 공부하는 학자이고 싶었습니다.
지적 호기심이랄까. 저 같은 사람을 사치로 불교 공부하는 사람이라 하죠."
"어머님이 굉장한 불교 신자이셨습니다.
뭐든지 절에 들고 가 불상 앞에 갖다 놓으면 얼굴이 환해지곤 했지요.
그래서 절과 친숙하다 보니 성지원에 마음이 끌렸나 봅니다.
어머님의 마음이 그랬을 겁니다.'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하지요"
ㅡ받아서 감사하지 '주면서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논리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주면서 '내가 준다'는 相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경지가 아닐까.
"선생님께선 자비를 실천하고 계시는군요."
"아닙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 주는 것은 아부성이 있게 되고 뭔가 기대가 들어갑니다.
또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줄 때는 우월 내지는 동정하는 마음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건 진정 자비는 아닙니다.
사람이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선뜻 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이몸도 예외는 아닙니다만 ,
돌아가신 어머님의 마음이라면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하게 주었을 겁니다.
어머님의 그 마음으로 주려고 합니다."
"청계천 쪽에서 봉재 공장을 하여 삼십대 초에 엄청난 돈을 벌었는데,
성공하니 덜컥 겁이 난 게지요.
돈 관리에 잠도 못 자며 뒤척이고 고민하고,
돈 쓸 시간도 없는데 쏟아져 들어오는 돈 때문에 불안한 지옥의 세월이었습니다.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점점 어머님만 더 그리웠어요."
청계천 말기에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습니다.
좋다는 것은 뭐든지 먹고, 돈으로 여자도 사고 뭐든지 할 수 있었지요.
내가 돈에 한이 맺혔던 만큼 돈을 물 쓰듯 쓰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가치로 따지면 하루에 몇백만 원을 쓰고도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로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돈이 있어도 허전하니 그 빈 자리를 메우려고만 했었지요.
막 서른이 넘은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머쥐니 자연히 고독해지더군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도 집에 오면 혼자이듯이...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에 허무하고, 허전하고 ,허탈했습니다.
돈만으론 살 수 없었습니다.
'가져 본 사람만이 아는 경험입니다만 이 몸이 이렇게 사는 이유는....
세상 사람이 쫒아다니는 그것이 다 소용없고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유혹하는 성공과 출세, 행복 모두 돈과 직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기준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람에게 돈이 너무 많으면 동물처럼 됩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왜냐구요? 큰 돈이 생기면 사람의 정신이 흐트러집니다.
돈은 대단한 힘을 가졌지만 돈이 주는 편함에는 정신이 치러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할 줄 알았는데 막상 돈이 생기면
불행도 같이 따라온다는 이치를 모릅니다.
돈이 주는 안락함에는 반드시 해악이 따릅니다."
"한 번 가져 보았기에 압니다. '이 몸' 에 한 가지 칭찬할 일이 있다면
아마 한창일 때 접었다는 그 사실뿐입니다.
가장 높이 있을 땐 추락할지도 모르니 빨리 내려오는 것이 최상책입니다."
"생각하는게 아니라 잠시 느끼고 있었습니다.
'느낌'과 '생각'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저는 가슴으로 많이 느끼기를 좋아해 머리로는 생각을 안 하는 편입니다.
느낌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마음이 예민하지요.
극도로 예민한 그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삽니다.
이 몸이 세상과 어울려 살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서둘며 사니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어서지요.
보시다시피 말도 행동도 아주 느리거든요.
그래서 '바쁜 사람은 먼저 가게나. 이몸은 천천히 가려네' 그럽니다.
"난 이 세상에서 갖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ㅡ그는 고승도 아니었고 성직자도 아니었다.
황혼기에 접어든 평범한 초로의 노인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그는 삶의 안락함보다는 충만함을 몸으로 만끽하는,
그래서 정신과 영혼이 함께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늙으면 잠이 줄어듭니다. 대체로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납니다.
일어나면 간단하게 요가를 하고 좌선을 합니다.
아침은 미숫가루로 대신하고 점심 때까지 책을 봅니다.
아직 봐야 할 책이 많은데 시간은 자꾸 흐릅니다.
점심 먹고 책을 보다 또 죄선하고, 좌선하다 또 책 보고,
지루하다 싶으면 108배 하고 염불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무엇을 하든 삼매가 되면 그것이 바로 선의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삼매에 있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그런 날의 연속이다가 일주일에 한 번 대구에 나갔다 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지나가고, 한 달이 쓰러지고,
일 년이 떨어지고, 십 년이 저물어 갑니다."
"이젠 염불이 곧잘 됩니다.
믿음은 확신입니다.
확신은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이런 확인 작업이 기도이고 108 배이고 염불입니다. 자신을 조복받는 훈련이지요.
석가모니가 가르쳤습니다. 108 배,기도, 염불은 자기가 자기에게 하는 것이라구요.
반드시 참회의 대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자신의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고 추한 곳을 굴복시키는 일입니다.
기도 중에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사와 겸손입니다.
저기 저 불상은 단지 기도하는 사람의 거울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마를 땅에다 댄다는 것은
곧 자만심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라는 말입니다."
"보살은 어떤 사람인가,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을 남으로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보살은 온 우주의 어머니로서 다 감싸 줍니다.
관세음 보살이 관세음인 이유는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여자 신도를 보살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보살님은 많지를 않더군요.절에 가 보면 법당에서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켜 있는 촛불을 끄고 다시 켭니다.
그 행동은 즉 남의 복을 죽이고 자기 복만 빌어 복 받겠다는 행동입니다.
복 지으려다가 복을 까먹고 마는 일만 하는 거죠"
"아마도 이 몸에 아내가 있었다면 이렇게는 못 살았을 겁니다.
여자는 절대로 이렇게 못 삽니다.
갖고 싶은 게 많고, 소유를 하려니 자연히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요.
그 집착 때문에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큰 희생을 할 수 있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결혼 생활이야말로 정말 도를 닦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지요.
아내와 자식에게 줘야 했을 사랑이 지금 성지원 아이들에게 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자를 깊이 사랑해보진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그거 마음 아픈 거 아닙니까?"
"내가 스님은 못 됐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스님과 다르지 않잖아요.
가족 있는 사람, 부럽진 않습니다.
너무 흔한 말이 되겠지만 누구든 혼자 왔다 혼자 갑니다.
누구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신이 짊어진 고독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고해의 바다'를 헤엄쳐 가야 하는 데는 혼자가 좋습니다."
ㅡ결국 혼자 왔다 혼자 가는 한 세상,
끈끈한 인연은 저절로 이미 떠나 갔으니 자신의 의지로 새 인연을 만들지 않은 것은
아마도 사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려는 그만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다 버려라! 이렇게 표현하면 될까요?
버리면 버린 세상이 온통 다 내 것이 됩니다.
가질수록 멀어지고, 버릴수록 다 내 것이 되는 이치입니다.
작은 것을 버리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것이 찾아옵니다.
그 무게는 새털같이 가벼워집니다.
세상을 버리면 마음이 비워지고 대자유가 찾아옵니다.
몸까지 비우면 온세상을 자기 것처럼 하고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버려라!'
저의 경험에서 나오는 부작용 없는 만병 통치약입니다.'
"방을 비우듯 마음을 비우세요.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 비워집니다.
다 버리고 나면 그자리에 충만이 가득하게 됩니다."
"후회 없이 잘살았습니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잘 살고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ㅡ내가 (김나미)이 도인을 알게된 동기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성지원의 원장이신 비구니 정인 스님에 의해서다.
정인 스님 말에 의하면 ,성지원에 도통 알 수 없는 아주 '요상한'후원자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0년부터 십 년 동안 단 한 달도 빠짐없이 매달 후원금을 보내 주는 분이 있는데,
아이들이 감사 편지를 보내고 싶어 해도 중간 매개자가 절대 비밀로 붙이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유언장 작성을 위하여 만나자고 그 쪽에서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되었는데...
"글쎄 청도 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지 .
난 무슨 기사 딸린 자동차에서 내릴 줄 알고 기다리는데 시외버스에서 내리는 거야.
처음엔 놀랐다가 속으로 감탄만 연발하다 돌아왔지"
그분은 마땅한 기부처를 찾기 위해 2년동안 이나 각 자선 단체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적합한 곳을 선정하셨다 한다.
그의 사후 장례식은 성지원에서 조용하게 검소한 다비를 했고 ,
도인의 어머님 산소에 재를 뿌렸다 .조문객이라고는 성지원 아이들,
도인의 재정을 보살펴 주셨다는 대구 스님이 전부였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비가 새는 도인의 판자집이 떠올랐다.
그러면 거기에 파도 같이 잔잔하고, 아련한 마애불 같은 미소도 같이 있었다.
그가 또 한없이 그립다.
다시 한번 도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