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외편) 전자방 1 - 완전한 덕 없이는 모든 외물이 재해의 원인이 된다
전자방이 위나라 문후와 앉아 있었는데 여러 번 계공의 훌륭함을 얘기했다. 그러자 문후가 물었다.
“계공은 선생의 스승이십니까?”
전자방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의 마을 사람입니다. 그의 도에 대한 얘기는 매우 합당하므로 제가 훌륭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문후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선생께는 스승이 없습니까?”
전자방이 말했다.
“있습니다.”
문후가 물었다.
“선생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전자방이 대답했다.
“동곽의 순자입니다.”
문후가 말했다.
“그런데도 선생은 어째서 한번도 그분의 훌륭함을 말하지 않으십니까?”
전자방이 말했다.
“그 분의 사람됨은 참되어, 사람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하늘처럼 텅 비어 있으며, 자연을 따름으로서 참됨을 기르며, 맑은 마음으로 만물을 포용합니다. 남이 무도한 짓을 해도 자기 모습을 올바로 지님으로서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며, 모든 개인의 뜻은 자연히 사라지게 합니다. 제가 어떻게 그분의 훌륭함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전자방이 나간 뒤에도 문후는 하루종일 멍하니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신하를 불러 말했다.
“완전한 덕을 지닌 군자는 정말 멀리 있는 듯하구나. 처음에 나는 성인과 지혜 있는 이의 말과 인의의 행동을 지극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전자방의 스승 얘기를 듣고 나서 몸이 풀려 움직이기도 싫어지고 입이 닫혀 말하기도 싫어졌다. 내가 배워온 것들이란 흙이나 먼지 같은 것이었다. 위나라는 나에게 재해가 되고 있을 뿐이다.”
♣ 장자(외편) 전자방 2 - 사람의 행동은 절도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온백설자가 제나라로 가다가 노나라에 머물렀다. 노나라 사람 하나가 그를 만나기를 원하자 온백설자가 말했다.
“중국의 사람들은 예의는 밝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데는 어둡다고 들었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제나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노나라에서 머물렀는데, 전의 그 사람이 다시 만나주기를 요청했다.
온백설자가 말했다.
“전에도 나를 만나려 했었고, 지금도 나를 만나려하고 있으니 반드시 나를 깨우쳐줄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가 손님을 만나고 들어와 탄식을 했다. 다음 날도 그 손님을 만났는데 또 들어와 탄식을 했다.
그의 하인이 물었다.
“어쩐 일로 그 손님을 만나고 들어오실 때마다 탄식을 하십니까?”
온백설자가 대답했다.
“전에 내가 너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중국사람들은 예의는 밝지만 사람의 마음을 아는데는 어둡다고. 어제 내가 만났던 사람은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이 가늠쇠나 자를 댄 것처럼 일정한 규칙이 있고, 점잖은 모습은 용이나 호랑이 같았다. 그가 나에게 말하는 태도는 자식과 같았고, 나를 인도해 주는 태도는 어버이와 같았다. 그래서 탄식을 했던 것이다.”
공자도 그를 만났던 일이 있었는데, 공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온백설자를 만나보려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도 어찌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런 사람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도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말을 할 필요도 없다.”
♣ 장자(외편) 전자방 3 - 자연이 변화하는 근본 원리가 중요하다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고,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고,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달립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먼지도 내지 않고 달려버리시면 저는 뒤에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안회가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걸으시면 저도 걷는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저도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빨리 걸으시면 저도 빨리 걷는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이론을 펴시면 저도 이론을 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달리시면 저도 달린다는 것은 선생님께서 도를 말씀하시면 저도 도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지도 내지 않고 달려버리시면 저는 뒤에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다는 말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남에게 믿음을 받고, 남과 친하려 하지 않으셔도 남들이 친하게 따르고, 벼슬이나 권력이 없어도 백성들이 굴복해 오는데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슬픔 중에 믿음이 죽는 것 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 사람의 죽음은 그 다음 가는 슬픔이다. 해는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들어가는데 만물은 모두가 이에 따라 방향을 정한다.
눈이 있고 발이 있는 사람들은 해를 기다렸다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해가 뜨면 세상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세상일도 그치는 것이다. 만물도 역시 그러니, 그것에 의해 죽기도 하고 그것에 의해 살기도 한다. 우리는 한번 형체를 타고난 이상 스스로를 멸망시키지 않고 되어 가는 대로 맡겨두어야 하고, 밖의 물건에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 변화는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으므로 그것이 끝나는 곳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만물이 다 같이 형체를 타고났지만 운명을 미리 알아 그 앞날을 규정해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날이 자연의 변화를 따라갈 뿐이다. 내가 평생토록 너와 팔을 끼고 지낸다 해도 결국은 서로를 잃게 될 것이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너는 드러나 보이는 나의 겉의 것을 그대로 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그것이 현재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텅 빈 시장에 가서 말을 사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도 매우 빨리 잊게 될 순간적인 것이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도 매우 빨리 잊게 될 순간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너는 무엇을 걱정하느냐? 비록 옛날의 나를 잊어버린다 해도 나에게는 언제나 잊혀질 수 없는 참된 나도 그 중에 존재하는 것이다.”
♣ 장자(외편) 전자방 4 - 지극히 즐거운 인생의 경지란
공자가 노자를 만나러 가니, 노자는 머리를 감고 나서 머리를 풀어 흩트린 채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꿈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람 같지 않았다.
공자는 비켜서서 기다리다가 말했다.
“제 눈이 어두워진 것일까요? 아니면 제대로 본 것일까요? 조금전의 선생님의 형체는 뻣뻣한 것이 마른 나무 같았고, 밖의 물건은 잊고 사람들을 떠나 홀로 우뚝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나는 만물이 태어나던 처음의 경지에 노닐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물었다.
“그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마음이 곤하여지기만 하지 알 수는 없고, 입이 닫혀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을 위해 대략 말을 해보겠습니다.
지극한 음기는 고요하고 지극한 양기는 동적인 것입니다. 고요함은 하늘로부터 나오고, 움직임은 땅으로부터 나오며, 이 두 가지 기운이 서로 통하여 조화를 이룸으로써 물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누가 그 법도를 다스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형체도 본 일이 없습니다. 만물은 생겨나고 없어지고 하며 가득 찼다 비었다 하기도 하며 한번 어두워졌다가 한 번 밝아집니다. 날로 바뀌고 달로 변화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이 현상이 지속되지만 그 조화의 공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만물의 발생은 싹이 튼 곳이 있으며, 죽음은 귀결되는 곳이 있습니다. 만물의 시작과 끝은 서로 끝없이 반복되어 그 끝나는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런 경지에 노닌다는 말의 뜻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런 경지로 들어가면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즐겁습니다. 지극한 아름다움을 얻고 지극한 즐거움에 노니는 이를 지인이라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풀을 먹는 짐승들은 풀밭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물에 사는 벌레들은 물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생활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을 뿐이지 큰 법도를 잃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쁨이나 노여움·슬픔·즐거움 같은 감정들이 가슴속에 스며들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란 만물이 한결같이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거기에 일체가 되어 동화될 수만 있다면 사지나 육체는 먼지나 때와 같은 것이 될 것이며, 죽음과 삶, 시작과 끝을 밤이나 낮과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그를 어지럽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상의 이해득실이나 화복 같은 작은 일들이야 어떻겠습니까?
노예를 버리는 사람이 노예를 흙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이 노예보다 귀하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도는 나에게 있으며, 변화에 의해 잃게 되지 않으며, 또한 만물을 변화하게 하여 영원무궁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내 마음에 걱정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이미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덕은 하늘과 땅의 짝이 될만한데도 지극한 말씀을 빌어 마음을 닦고 계십니다. 옛날의 군자라도 누가 이보다 뛰어날 수 있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물이 맑은 것은 무위하지만 그 성격이 자연히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인이 덕을 지니고 있는 것도 의식적으로 덕을 닦지 않아도 만물들이 떨어질 수 없이 화합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높고, 땅은 스스로 두터우며, 해와 달은 스스로 밝은데 그것들이 무슨 덕을 닦는 것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물러 나와 안회에게 말했다.
“내가 지닌 도라는 것은 독 안에 든 바구미와 같은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나의 몽매함을 깨우쳐 주지 않았다면 나는 하늘과 땅이 위대하고 완전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장자(외편) 전자방 5 - 세상에 진실한 도를 체득한 사람은 드물다
장자가 노나라 애공을 만났을 때, 애공이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학자들은 많지만 선생의 학문을 닦는 사람은 적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는 유학자가 적습니다.”
애공이 물었다.
“온 노나라 사람들이 유학자의 옷을 입고 있는데 어찌 유학자가 적다는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제가 듣기로, 유학자가 둥근 관을 쓰고 있는 것은 하늘의 때를 안다는 표시이고, 모난 신을 신고 있는 것은 땅의 현상을 안다는 표시이고, 오색실로 구슬을 꿰어차고 있는 것은 일을 하게 되면 결단을 내린다는 표시라고 했습니다.
군자가 그런 도를 지니고 있다면 굳이 그런 복장을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도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굳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어째서 나라 안에 명령을 내려「그런 도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런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공포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애공이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그 후 닷새가 지나자 노나라에는 감히 유학자의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없게 되었다. 다만 한 사나이가 유학자의 옷을 입고서 궁궐 문 앞에 서 있었다. 애공이 곧 그를 불러 나라 일에 대해 물어보니 천 가지로 바뀌고 만 가지로 변화하는 문제들에 대해 막히는 것이 없었다.
장자가 말했다.
“노나라에 유학자는 한 사람 뿐입니다. 어찌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장자(외편) 전자방 6 - 형식을 초월해야 참된 기교가 발휘된다
백리해는 벼슬과 녹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소를 먹이면 소가 살이 쪘으며, 진나라 목공에게 그의 천한 신분을 잊고 그와 더불어 정치를 하도록 만들었다.
순임금은 죽고 사는 것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감화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송나라 원군이 나라의 지도를 그리려고 했다. 여러 화공들이 모두 달려와 명령을 받자 읍하고 서서 붓을 빨고 먹을 가는데, 방에도 못 들어오고 밖에 밀려나 있는 사람들이 반이 넘었다.
한 화공은 늦게 와서도 유유히 빨리 걷지도 않고, 명령을 받고도 읍하고 서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원군이 사람을 시켜 그를 살펴보게 하니 그는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어 두 발을 쭉 뻗고 앉아 있었다.
원군이 말했다.
“됐다. 그가 정말로 잘 그릴 사람이다.”
♣ 장자(외편) 전자방 7 - 특별한 의식으로는 무위의 다스림이 어렵다
주나라 문왕이 장 땅에 구경을 갔다가 한 남자가 낚시질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낚싯대를 들고는 있지만 고기를 낚지는 않고 있었다. 그는 낚싯대를 들고 고기를 낚으려는 것이 아니라 낚시질로 자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왕은 그를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려 하였으나 대신들과 부형들이 불안을 느낄까 두려웠다. 그대로 버려 두자니 백성들이 훌륭한 정치가를 잃게 되는 것을 차마 그대로 덮어둘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대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어젯밤에 나는 훌륭한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검은 얼굴빛에 구레나룻이 났고, 한쪽 발굽만 붉은 얼룩말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장땅의 노인에게 정치를 맡기면 백성들의 고통이 덜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 대부들은 얼굴빛이 바뀌면 말했다.
“돌아가신 임금님이신 것 같습니다.”
문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점을 쳐보도록 하시오.”
여러 대부들이 말했다.
“돌아가신 임금님께서 임금님께 직접 명하신 것인데 어찌 의심하여 점을 치겠습니까?”
마침내 장 땅의 노인을 맞이하여 그에게 정치를 맡겼다. 그는 법령을 바꾸지도 않았고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삼 년 만에 문왕이 나라를 시찰하니 조정의 신하들은 당파의 우두머리를 없애고 파벌을 없애버렸고, 관청의 우두머리들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았고, 단위가 다른 도량형기들이 감히 사방의 외국으로부터 들어오지 않았다.
조정의 신하들이 당파의 우두머리를 없애고 파벌을 없앤 것은 대중과 함께 화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관청의 우두머리들이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었다. 단위가 다른 도량형기들이 외국으로부터 들어오지 않는 것은 제후들이 각기 다른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왕이 그를 태사로 모시고 제자의 예로써 북쪽을 향해 앉아서 물었다.
“이 정치를 온 천하에 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장 땅의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사직을 하고는 아침까지 명령을 내리다가는 밤에 사라져 평생토록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문왕은 아직 도를 터득하지 못한 것입니까? 어째서 꿈을 빌렸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 문왕께서는 능력껏 다한 것인데, 어찌 그것을 논하고 비판하느냐? 그분은 다만 임시로 대세를 따랐을 뿐이다.”
♣ 장자(외편) 전자방 8 - 외물과 이해를 초월해야 참된 기교가 발휘된다
열자가 백혼무인을 위해 활쏘기를 했다. 활시위를 완전히 잡아당기고는 그의 팔꿈치 위에 물이 담긴 그릇을 올려놓고 쏘는데, 활을 쏘아 화살이 나가자마자 화살이 다시 깍지에 끼어져 있었고, 둘째 화살이 나가자마자 다시 세 번째 화살이 시위에 매겨져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나무인형과 같았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이것은 기술적인 활쏘기이지 기술을 쓰지 않는 활쏘기는 아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치솟은 바위를 밟고 백길 깊이의 심연을 앞에 두고서도 네가 잘 쏠 수 있는지 보기로 하자.”
백혼무인은 높은 산에 올라가 높이 치솟은 바위를 밟고 백 길의 심연을 앞에 두고, 등을 대고 더듬거리며 나아가는데 발의 삼분의 이는 허공에 놓여 있었다. 열자에게 손짓하여 그곳에 나오게 하니, 열자는 땅에 엎드린 채 발뒤꿈치까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지인이란 위로는 푸른 하늘을 들여다보고 아래로는 황천바닥까지 들어가며, 팔방으로 멋대로 날아다니되 정신이나 기백이 변치 않는 것이다. 지금 너는 두려움에 눈까지 가물거리는 모양이니, 지금 활을 쏜다면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 장자(외편) 전자방 9 - 참된 사람은 변화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견오가 손숙오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세 번이나 초나라 영윤이 되었었지만 그것을 영화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 자리를 떠날 때에도 근심하는 빛이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선생님을 이상하다 의심했었지만 지금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기쁘고 즐거운 듯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까?”
손숙오가 말했다.
“내가 남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닥쳐오게 되어 있는 것은 물리칠 수 없고, 떠나는 것은 멈추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얻고 잃게 되는 것이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심하는 빛이 없을 뿐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한 내가 존경을 받는 것이 영윤이라는 벼슬 때문인지 나 자신 때문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벼슬 때문이라면 나 자신 때문이 아닐 것이고, 나 자신 때문이라면 벼슬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바로 만족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가 있는데, 어찌 사람들이 귀하고 천하게 여기는 것에 마음을 쓸 틈이 있겠습니까?”
공자가 그 얘기를 듣고 말했다.
“옛날의 진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해도 설득시킬 수 없었고, 미인이라 해도 유혹할 수가 없었으며, 도적들도 겁탈할 수가 없었다. 복희나 황제도 그와 벗할 수가 없었다. 죽고 사는 것이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하물며 벼슬과 녹이 문제가 되겠느냐? 그런 사람의 정신은 큰산을 지나야 해도 방해가 되지 않고 깊은 못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낮고 천한 지위에 놓여도 고달프지 않다. 언제나 하늘과 땅에 충만하여 남에게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데도 자기는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 장자(외편) 전자방 10 - 외물의 변화는 진실한 나의 존재와는 상관이 없다
초나라 임금이 범나라 임금과 마주앉아 있었다. 잠시 후 초나라 임금과 신하가 범나라가 망했다고 세 번이나 말을 했다. 그러나 범나라 임금은 말했다.
“범나라의 멸망이 나의 존재를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범나라의 멸망이 나의 존재를 없앨 수 없는 것이라면, 초나라의 존재도 나의 존재를 존재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범나라는 처음부터 망한 일이 없고, 초나라는 처음부터 존재한 일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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