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장자

장자(잡편) 경상초

rainbow3 2019. 10. 22. 22:08


♣ 장자(잡편) 경상초 1 - 지극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자의 제자 중에 경상초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자의 도를 어느 정도 터득하고 북쪽 외루산에 살고 있었다. 그의 하인 중에서 똑똑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그를 떠났고, 그의 첩들  중에서 온후하고 어진 사람들은 그를 멀리 했다. 못난 자들만 그와 함께 살고 멍청한 자들만 그의 부림을 받았다. 삼 년이 지나자 외루산 일대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외루산 일대의 사람들은 서로 얘기했다.

“경상초가 처음 왔을 때 우리는 놀라며 그를 이상하게 여겼었다. 하루하루 그가 한 일을 따져보면 별 것이 아닌데, 일년을 두고 따져보니 큰일을 해 놓았다. 아마도 그는 성인일 것이다. 우리가 어찌 그 분을 임금으로 윗자리에 모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상초는 그 얘기를 듣고 남쪽으로 앉은 채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경상초가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이상하게 보이느냐? 봄기운이 퍼지면 온갖 초목이 싹트고, 가을이 되면 모든 열매가 익는다. 봄이나 가을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것은 자연의 도에 의해 그렇게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듣기로 지극한 사람은 작은 방안에 조용히 숨어살고, 백성들은 멋대로 날뛰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곳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나를 어진 사람으로 떠받들려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노자의 말에 어긋나게 된 것이므로 좋지 않게 생각한다.”

 

 

♣ 장자(잡편) 경상초 2 - 인위적인 일이나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경상초의 제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의 작은 도랑에서는 큰 고기는 몸을 돌릴 수도 없지만 송사리나 미꾸라지는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한길 높이의 언덕에서는 큰 짐승들은 그의 몸을 감출 곳이 없지만 여우는 그곳에서도 신출귀몰합니다. 또한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며, 착한 것과 의로운 것을 앞세우는 것은 요순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외루산 지역의 백성들만이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경상초가 말했다.

“수레를 한 입에 삼킬 만큼 큰 짐승도 홀로 떨어져 산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물과 올가미의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배를 삼킬 만큼 큰 물고기도 뛰어올랐다가 잘못하여 물 밖으로 나오게 되면 작은 개미들도 그를 괴롭히게 된다.

그러므로 새와 짐승들은 높은 곳을 싫어하지 않고, 고기와 자라들은 깊은 곳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그처럼 그의 육체와 생명을 완전하게 하는 사람들은 그의 몸을 숨김에 있어서 깊고 먼 것을 싫어하지 않는 법이다.

또한 요순 같은 이들에게 칭찬할 만한 점이 어디 있느냐?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으로 함부로 집의 담을 뚫게 하고 그 안에 쑥대를 무성하게 만든 것과 같다. 그들은 머리칼을 한 올 한 올 골라 빗질을 하고, 쌀알을 세가며 밥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을 했다. 그런 작은 일에 얽매어서야 어떻게 세상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현명한 사람들을 등용하면 백성들이 서로 다투게 되고, 지혜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면, 백성들은 서로 도둑질을 하게 된다. 이런 몇 가지 일로는 백성에게 인정이 두텁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방법은 백성들에게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게 하여, 자식 중에서 아버지를 죽이는 자가 생겨나고, 신하 중에서는 임금을 죽이는 자가 생겨나게 만들 것이다. 대낮에 도둑질을 하고, 한낮에 남의 담을 뚫고 들어가는 일이 생기게 만들 것이다.

큰 혼란의 근본은 틀림없이 요순시대에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 것은 결국 천 세 뒤까지 존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천 세 뒤에는 반드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3 - 마음을 번거롭게 쓰지 말아라

 

경상초의 제자 남영주가 크게 감동하여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저처럼 이미 나이가 든 사람은 어떻게 수양을 해야 말씀하신 것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경상초가 말했다.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하고 자신의 삶을 보전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삼 년만 지나면 내가 말한 것처럼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영주가 말했다.

“눈의 형체로 말하자면 장님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장님은 보지 못합니다. 귀의 형체로 말하자면 귀머거리도 우리와 다를 바 없지만 귀머거리는 듣지 못합니다. 마음의 형체로 말하자면, 미친 사람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만 미친 사람은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형체와 형체들은 서로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기능에는 차이가 나는 것은 어떤 물건이 그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기 때문입니까?

도를 추구해 보려 해도 도를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제게 말씀하시기를「형체를 완전히 하고, 삶을 보전하며, 생각을 이리저리 쓰지 마라」라고 하셨는데, 저는 억지로 도에 관해 듣기는 하였지만 겨우 귀에 들어만 왔을 뿐 마음으로 깨우치지는 못했습니다.”

경상초가 말했다.

“말로는 다 설명되었습니다. 작은 나나니벌은 큰 벌레를 자기 새끼로 길러내지 못하고, 작은 닭은 큰고니의 알을 부화시키지 못하지만, 큰 닭은 그것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닭과 닭을 놓고 볼 때 그 덕은 모두가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은 가능하고 한편은 가능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재능에 본시부터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재능은 작아서 당신을 교화시킬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남쪽으로 가서 노자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장자(잡편) 경상초 4 - 지혜나 어짊과 의로움은 자신을 괴롭힌다

 

남영주가 양식을 챙겨 짊어지고, 칠일 밤낮이 걸려 노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노자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경상초가 있는 곳에서 오지 않았습니까?”

남영주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어째서 함께 온 사람들이 그리도 많습니까?”

남영주는 놀라며 그의 뒤를 돌아보았다.

노자가 말했다.

“내 말뜻을 모르겠습니까?”

남영주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 하다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 저는 대답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려던 말도 잊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남영주가 말했다.

“저에게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할 것이고, 지혜가 많으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어질지 않으면 곧 남을 해치게 될 것이고, 어질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의롭지 않으면 남에게 해를 가할 것이고, 의롭고 보면 도리어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처지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 가지가 제가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경상초의 소개로 선생님께 이것을 물으려고 왔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좀 전에 나는 당신의 두 눈썹 사이를 보고 당신의 문제를 알았습니다. 당신의 말을 듣고 나의 추측이 확실한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골똘히 앉아서 고민하기를 자기 부모를 여읜 것처럼 하고, 장대를 들고서 바다 깊이를 재려는 사람처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기 본성을 잃은 사람입니다. 멍하니 당신은 당신의 성정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지만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안됐습니다.”

 

 

♣ 장자(잡편) 경상초 5 - 자아를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되어라

 

남영주는 노자 밑에 머물기를 자청하여, 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추구하고,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버리자 열흘만에 근심이 멎었다. 그리고 나서 노자를 만나니 노자가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원숙한 기운이 서려 있는 듯하군요. 그러나 아직도 마음속에 얼마간의 악한 기운이 남아 있는 듯합니다. 밖의 일에 마음이 얽매어 있는 자는 마음이 번거로워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안으로 마음의 작용을 닫아야 합니다. 자기 안의 마음에 얽매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뒤엉키어 자제를 할 수 없을 것이니, 밖으로 보고 듣는 것을 닫아야 합니다. 밖이나 안으로 얽매여 있는 자는 도덕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위대한 도를 따라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남영주가 말했다.

“마을 사람이 병들어 다른 사람이 문병을 갔을 때, 앓고 있는 사람이 그의 병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면, 그의 병은 아직 대단한 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선생님께 위대한 도에 대해 듣는다는 것은, 마치 약을 먹음으로써 병을 도지게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삶을 보양하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

노자가 말했다.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란 위대한 도 하나를 지니는 것이며, 자기 본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점치는 것에 의해 자기의 길흉을 판단하려 들지 않아야 하고,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인위적인 행위를 그만둘 수 있어야 합니다. 남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자기를 충실히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행동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마음은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아이처럼 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그것은 자연과 지극히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루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데 그것은 자연의 덕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보면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는데 밖의 물건에 대해 치우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앉아 있어도 할 일을 알지 못합니다. 밖의 물건에 순응하고 자연의 물결에 자신을 맡깁니다. 이것이 삶을 보양하는 방법입니다.”

남영주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이 지극한 사람의 덕이라는 것입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름이 풀려 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은 상태를 얘기한 것입니다. 지인이란 사람들과 더불어 땅 위에 함께 어울려 살고, 자연을 함께 즐기는 사람입니다. 사람과 물건이나 이익과 피해 때문에 남과 다투지 않으며, 남들에 비해 괴상한 짓을 하지도 않고, 어떤 모의도 하지 않고, 어떤 일도 이루려 들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갔다가 아무 거리낌없이 돌아옵니다. 이것을 삶을 보양하는 방법이라고도 말합니다.”

남영주가 말했다.

“그러면 그것으로 극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아직 충분하지 못합니다. 내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기를 아이와 같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란 움직이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걷지만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몸은 마른 나무의 가지와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재난도 닥칠 수 없고, 행복도 찾아올 수 없습니다. 재난도 행복도 있지 않은데 어찌 사람의 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 장자(잡편) 경상초 6 - 태연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 태연하고 안정되어 있는 사람은 자연스러운 빛을 발한다. 자연스러운 빛을 발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음이 닦인 사람은 언제나 일정한 덕을 지니고 있다. 일정한 덕을 지닌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귀의하게 되고, 하늘이 그를 돕게 된다. 사람들이 귀의하는 사람을 천민(天民)이라고 한다. 하늘이 도와 주는 사람을 천자(天子)라고 한다.

학자란 그가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려 한다. 일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가 실행할 수 없는 것을 실행하려 한다. 이론가는 그가 이론으로 밝힐 수 없는 것들을 논하려 한다.

그가 알 수 없는 경지에 처신할 줄 안다면 그것이 지극한 앎인 것이다. 만약 이런 경지에 처신하지 못한다면 자연의 도를 무너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7 - 외물에 의해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야 한다

 

물건의 변화에 대비하여 형체를 기르고, 물러나 잡된 생각을 하지 않아 자기 마음을 살리며, 자기 속에 지닌 성정을 공경히 하여 밖의 변화에 통달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갖가지 악한 일이 닥치는 것은 모두가 천명일 뿐 사람 탓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으로 안정된 마음을 어지럽힐 것은 못 되며, 자기 마음속에 그 불행이 끼여들게 해서는 안 된다.

마음에는 지탱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므로 자기 자신이 지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정성 되게 하기도 전에 행동을 한다면, 행동을 할 때마다 자연의 도에 어긋나게 될 것이다. 밖으로부터의 작용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어 와도 그 작용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제나 자기의 본연을 잃게 될 것이다.

선하지 않은 짓을 여러 사람들이 똑똑히 보는 가운데서 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잡아 벌할 것이다.  선하지 않은 행동을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데서 한다면 귀신이 그를 잡아 벌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해 분명하고 귀신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된 후에야 스스로 도에 알맞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기 내부에 대해 충실한 사람은 이름을 바라지 않는 실행을 할 것이고, 외부에 대해 추구하는 사람은 재물에 대한 뜻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무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언제나 변함 없는 빛이 있을 것이다. 재물을 추구하는 데 뜻을 둔 사람은 장사꾼과 같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발돋움하여 자신을 크게 보이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자신은 혼자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구하는 사람은 물건이 그의 마음에 끼여들게 된다. 물건에 대해 구차한 사람은 자신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인데 어떻게 남을 용납할 수가 있겠는가? 남을 용납할 수 없는 자는 친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친한 사람이 없는 자는 남과 아무 관계도 없게 될 것이다.

아무리 예리한 무기도 뜻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심한 손상을 끼치지는 못한다. 막야 같은 명검도 뜻을 손상시키기에는 무딘 것이다. 사람의 피해는 음양의 기에 의한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그 재해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음양의 기 자체가 해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8 - 도에 어긋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도는 만물에 통하면서도 분별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이루어지는 것도 무너지는 것도 모두 도에 의해 행해진다. 다만 분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분별함으로써 모든 것이 자기에게 갖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갖추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밖에 존재하는 것이 자기에게만 모두 갖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밖으로만 나가고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는 죽어 귀신이 될 것이다. 밖으로만 나가고도 얻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을 얻을 것이다. 이미 그의 본성이 멸망되었다면 실제로 살고 있어도 이미 죽어 귀신이 되어 있는 것과 같다. 형체가 있는 몸으로써 형체가 없는 도를 본받아야 안정되는 것이다.

만물이 태어나지만 그 근본은 없는 것이며, 이승을 떠나는 것도 들어가는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고는 있지만 차지할 장소는 무한하고, 영원히 존재하여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다. 태어나기는 하지만 들어갈 구멍이 없기 때문에 존재가 있는 것이다. 존재는 하고 있지만 차지할 장소는 무한하다는 것은 상하사방의 공간을 뜻한다. 영원히 존재하며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시간을 뜻한다.

도는 삶에도 작용하고 죽음에도 작용하며, 생겨나는 데도 작용하고 없어지는 데도 작용한다. 없어지고 생겨나게 하면서도 그 형체는 드러나지 않는데, 이것을 천문(天門)이라 부른다. 천문이란 존재로서는 무(無)인 것이다.

만물은 존재가 무인 데서 생겨난다. 존재는 존재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반드시 존재가 무에서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존재가 무인 것은 한결같이 존재가 무인 것이다. 성인은 이 경지에 몸을 두고 있는 것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9 - 마음이 쉽게 옮겨다녀서는 안 된다

 

옛사람 중에 그의 지혜가 지극한 경지에 도달했던 이가 있었다. 그의 경지는, 첫째로 처음부터 물건이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는 지극하고 완전한 경지여서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물건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삶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고, 죽음이란 되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것과 저것의 분별이 이미 생긴 것이다. 그 다음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뒤에 삶이 있게 되었고, 삶도 곧 죽게 된다는 것이다. 존재가 없는 것을 머리로 삼고, 죽음을 궁둥이로 삼는 것이다. 있고 없는 것과 죽음과 삶이 한결같은 도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는 그 사람과 벗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셋은 비록 차이는 있지만 같은 족속이라 할 수 있다. 초나라 왕족인 소씨와 경씨는 성이 다르고 사는 곳과 집안과 봉해진 지명이 다르기는 하지만 다 같은 왕족이 아닌가?

살고 있다는 것은 먼지가 묻어 있다는 것과 같다. 어지러이 바람에 불리는 것을 옮겨감이라 한다.  옮겨감이란 말로써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렇게 말은 하지만 알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납제에는 내장과 발톱까지 붙어 있는 소를 제물로 쓰는데, 먹지 못할 것들을 떼어버릴 수도 있지만 완전한 소가 못되기 때문에 떼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집을 구경하는 사람은 정전과 조당을 두루 보았다 해도 그 집의 변소까지 가 보아야 집을 완전히 구경한 것이 된다. 이 때문에 옮겨감에 대해서도 들어 논하는 것이다.

옮겨감에 대해 다시 논하여 보면, 그것은 자기 삶을 근본으로 삼고 자기 지혜를 스승으로 모시기 때문에 시비를 따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명분과 내용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위주로 하여 남들로 하여금 자기의 명분을 따르게 하려 들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죽음으로 명분을 보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유용한 것을 슬기롭다 하고, 무용한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뜻이 통하는 것을 명예롭다고 하고, 궁지에 몰리는 것을 치욕이라 한다. 옮겨감이란 지금 사람들의 태도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큰 붕새를 비웃었던 것과 같은 일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10 - 지극한 도리는 구별을 초월한다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잘못을 사과하지만, 친형의 발을 밟았다면 이크 하는 정도의 소리를 내고, 아주 친한 사람인 경우에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지극한 예는 자기와 남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지극한 의로움은 자신과 물건을 구분하지 않고, 지극한 슬기는 꾀하는 일이 없고, 지극한 어짊은 각별히 친한 이가 없고, 지극한 신의는 금전이 개입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11 - 마음의 혼란을 버리고 도를 터득하는 법

 

뜻의 움직임을 버리고, 마음의 속박을 풀고, 덕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고, 도를 막는 물건을 치워버려야만 한다.

귀해지고, 부유해지고, 저명해지고, 존경받고, 명예를 얻고, 이익을 얻는 여섯 가지는 뜻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용모와 동작과 얼굴빛과 논리와 기분과 정의(情意) 이 여섯 가지는 마음을 속박하는 것이다.

악과 욕망과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이 여섯 가지는 덕을 해치는 것이다.

떠나는 것과 나가는 것과 취하는 것과 주는 것과 지혜와 능력 이 여섯 가지는 도를 막는 것이다.

이 네 종류의 여섯 가지 것들이 가슴속을 어지럽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올바르게 될 것이다. 올바르게 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텅 비게 되고, 텅 비게 되면 무위하면서도 자연의 생성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12 - 도와 덕과 본성의 관계

 

도란 덕이 늘어선 것이다. 삶이란 덕의 빛이다. 본성이란 삶의 바탕이다.

본성이 움직이는 것을 행위라고 말하는데, 행위가 인위적이면 본성을 잃은 것이라 한다.

앎이란 물건과의 접촉에서 생겨난다. 앎이란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은, 곁눈질로는 물건의 전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행동을 하되 자연을 따라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것을 덕이라 말한다. 행동을 하되 자기의 본성을 잃는 일이 없는 것을 다스림이라 말한다.

명성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과 반대가 되지만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 장자(잡편) 경상초 13 - 벌레들은 벌레 노릇을 하여 자연스럽다

 

명궁이었던 예는 작은 것을 정확히 맞추기는 잘했지만,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지 않게 하는 일은 잘 못했다.

성인은 자연스러운 일은 잘하지만 인위적인 일은 잘하지 못한다. 자연스러운 일에도 뛰어나고 인위적인 일에도 뛰어난 사람은 오직 완전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벌레들은 오직 벌레 노릇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가 있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 자연을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위적인 자연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처럼 자연과 인위적인 것을 엄연히 구별하는 자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 장자(잡편) 경상초 14 - 천하로 새장을 삼으면 도망칠 곳이 없다

 

새 한 마리가 예에게로 날아가면 예가 그 새를 쏘아 잡겠지만 어쩌다 실패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하를 새장으로 삼는다면 새들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나라 탕임금은 이윤을 요리사라는 직분으로써 새장에 가두었고, 진나라 목공은 다섯 장의 양가죽으로 백리해를 새장에 가두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삼지 않고서는 새장에 가두어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장자(잡편) 경상초 15 - 고요하려면 마음을 평온히 지녀야 한다

 

형벌을 받아 다리를 잘린 사람이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밖의 명예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죄수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죽음과 삶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반복하여 공부함으로써 마음속에 부끄러운 것이 없게 되면 사람에 대해 잊게 된다. 사람에 대해서 잊게 되면 자연과 합치되는 천인(天人)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공경해도 기뻐하지 않고, 그를 모욕해도 성내지 않는 것은 오직 하늘의 조화와 합치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낼 경우를 당해도 성내지 않으면 성내지 않음으로 귀결되고 만다. 행동함에 무위하면 행동은 무위로 귀결되고 만다.

고요하고 싶으면 마음을 평온히 지녀야 한다. 신명스러워지려면 마음이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그의 행동이 합당하게 되고 싶으면 자연에 따라 부득이 하게 행동해야 한다. 자연에 따라 부득이하게 행동하는 것이 성인의 도이다.



'동양사상 > 장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잡편) 칙양   (0) 2019.10.22
장자(잡편) 서무귀   (0) 2019.10.22
장자(외편) 지북유   (0) 2019.10.20
장자(외편) 전자방   (0) 2019.10.20
장자(외편) 산목  (0) 2019.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