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외편) 지북유 1 - 도를 말하는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한다
지가 북쪽의 현수가에 노닐다 은분의 언덕에 올라가는 길에 무위위를 만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사색하고 어떤 것을 생각하면 도를 알게 됩니까?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행동하면 도에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됩니까? 어떤 것을 따르고 어떤 길로 가면 도를 얻을 수 있습니까?”
세 번이나 물었으나 무위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지는 물음에 대답을 얻지 못하고, 백수의 남쪽으로 되돌아와 호결산 위에 올라갔다가 광굴을 만났다.
지는 같은 말을 광굴에게도 물었다.
광굴이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말하려하니, 마음속으로 말을 하려하다가도 하려던 말을 잊게 되는군요.”
지는 물음에 대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와 황제에게 같은 것을 다시 물었다.
황제가 말했다.
“사색도 없고 생각도 없어야 비로소 도를 알게 된다. 처신하는 곳도 없고 행하는 것도 없어야만 비로소 도에 편안히 지내게 된다. 따르는 것도 없고 가는 길도 없어야만 비로소 도를 얻게 된다.”
지가 황제에게 물었다.
“저와 임금님은 도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무위위와 광굴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옳은 것입니까?”
황제가 말했다.
“무위위가 진실로 옳은 것이다. 광굴은 그와 비슷하다. 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했던 것이다.”
♣ 장자(외편) 지북유 2 - 도란 말이나 인위로 이루어질 수 없다
“도는 말로 이룰 수 없고, 덕은 인위적인 행위로 얻을 수 없다. 인은 그대로 행해도 괜찮으나, 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고, 예는 서로를 속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뒤 덕이 나오고, 덕을 잃은 뒤 인이 나오고, 인을 잃은 뒤 의가 나오고, 의를 잃은 뒤 예가 나오는 것이니, 예란 도의 열매 없는 꽃이나 같은 것이고, 혼란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은 매일같이 버려야 한다. 그것을 버리고 또 버림으로서 무위에 이르러야 한다. 무위하게 됨으로서 모든 변화와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이미 물건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면서 근본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위대한 사람뿐이다.”
♣ 장자(외편) 지북유 3 - 천하는 하나의 기로 통한다
“삶이란 죽음과 같은 것이며, 죽음이란 삶의 시작인 것이다. 누가 그것의 법도를 다스리고 있는지 아는가? 사람의 삶이란 기가 모인 것이다. 기가 모이면 탄생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 것이다. 만약 죽음과 삶을 같은 것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만물은 일체인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신기하다고 하고, 추하게 보이는 것을 흉하고 추하다고 한다. 그러나 흉하고 추한 것은 변하여 신기한 것이 되고, 신기한 것은 다시 변하여 흉하고 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는 한가지 기로써 통달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성인은 그래서 통일을 귀하게 여긴다.”
♣ 장자(외편) 지북유 4 - 도란 극히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가 황제에게 말했다.
“제가 무위위에게 물었을 때 무위위는 제게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제게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제가 광굴에게 물었을 때 광굴은 마음속으로는 제게 얘기해 주려 하면서도 얘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제게 얘기를 해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얘기해 주려 하면서도 얘기할 말을 잊었던 것입니다. 지금 제가 임금님께 물으니 임금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도에 가깝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황제가 말했다.
“무위위가 진실로 도를 알고 있다는 것은 도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굴은 도에 거의 가깝다고 한 것은 그의 도에 대해 잊고 있기 때문이다. 자네와 나는 끝내 도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도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광굴이 그 얘기를 전해 듣고서 황제는 사리에 맞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 장자(외편) 지북유 5 - 우주만물의 존재와 변화는 도에 의한 것이다
하늘과 땅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사계절은 밝은 법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논의하지 않고, 만물은 생성의 원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성인이란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을 근원으로 삼고 있고 만물의 원리에 통달한 사람이다.
지인은 무위하며 위대한 성인은 작위가 없는데 하늘과 땅의 원리에 달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신령스럽고 밝은 도는 지극히 정묘하여 자연만물의 변화와 물건과 우리들이 죽고 살며 모나고 둥근 형체를 갖게 하고 있지만 그 근원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만물은 옛날부터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크다고 하지만 도의 내부를 떠나지 못한다. 가을 짐승의 털이 작다고 하지만 그 또한 도에 의해 형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변화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있지 않는다. 음양과 사계절은 올바로 운행되어 모두가 그 질서를 잃지 않는다. 어두컴컴하여 없는 듯하면서도 존재하며, 자욱하니 형체가 없으면서도 신령스러운 것이 도이다.
만물은 도에 의해 자라고 있지만 알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이것에 의해 자연을 달관할 수가 있는 것이다.
♣ 장자(외편) 지북유 6 - 도를 터득한 사람이란
설결이 피의에게 도에 관해 물으니, 피의가 대답했다.
“당신의 형체를 바르게 갖고 시선을 통일한다면 자연의 조화가 이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지혜를 버리고 태도를 통일하기만 한다면 신명이 당신의 몸에 와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덕이 당신을 아름답게 해 줄 것이며, 도가 당신의 생활을 이룩해 줄 것입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듯이 갓 낳은 송아지처럼 되어 모든 일의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설결은 잠이 들었다. 피의는 기쁜 듯 노래를 부르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형체는 마른 해골과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네. 진실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스스로 뽐내지도 않네. 흐릿하고 컴컴하게 무심하여 함께 얘기할 수도 없네. 이 사람은 어떻게 된 사람인가.”
♣ 장자(외편) 지북유 7 - 도란 인식하여 지닐 수 없는 것이다
순임금이 승에게 물었다.
“도란 터득하여 지닐 수 있는 것입니까?”
승이 말했다.
“임금님의 몸도 임금님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거기에 도를 지닐 수 있겠습니까?”
순임금이 말했다.
“내 몸이 내 소유가 아니라면 누가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승이 말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부속되어 있는 형체입니다. 삶도 임금님께서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부속되어 있는 조화입니다. 생명도 임금님께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부속되어 있는 순리인 것입니다. 자손들도 임금님께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부속된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걸어가면서도 갈 곳을 알지 못하고, 살고 있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하늘과 땅이 운동하는 기에 의해 되는 것인데 어찌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 장자(외편) 지북유 8 - 지극한 도는 만물과 자연변화의 근본이다
공자가 노자에게 물었다.
“오늘은 한가해 보이시니 지극한 도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노자가 말했다.
“제계를 하여 당신 마음을 깨끗이 씻고, 정신을 맑게 씻어내고, 지혜를 없애야 합니다. 도라는 것은 아득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 중요한 부분만 대충 얘기해 주겠습니다.
분명한 물건들은 어둑어둑하여 보이지 않는 것에서 생겨나고, 형체를 지니고 있는 것들은 형체가 없는 것에서 생겨납니다. 사람의 정신은 도에서 생겨나며 육체는 정기의 화합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만물은 형체로부터 형체들을 서로 생성합니다.
그러므로 몸에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짐승들은 태생을 하고, 여덟 개의 구멍을 가지고 있는 새나 물고기들은 난생을 하지만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자취도 없고 그것이 어디로 가는 지는 한계도 없습니다. 드나드는 문도 없고 들어가 머물 방도 없으며, 사방으로 통달하여 넓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런 도를 따르는 사람은 신체가 건강하고 생각이 두루 통달되며, 귀와 눈이 총명합니다. 그의 마음 씀은 수고롭지 않고, 밖의 물건의 변화에 대한 호응은 자유롭기만 합니다. 하늘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높을 수가 없고, 땅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넓을 수가 없으며, 해와 달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운행될 수가 없고, 만물도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이루어져 생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입니다.”
♣ 장자(외편) 지북유 9 - 도란 지식과 이론을 초월한 만물의 근원이다
“도에 대해 널리 안다는 것이 반드시 옳은 지식이 아니며, 거기에 대해 잘 논한다는 것이 반드시 옳은 지혜는 아닙니다. 도를 터득한 성인들은 그런 지식과 이론을 끊어 버립니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어도 늘어나지 않고, 덜어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성인이 보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깊기는 바다와 같고, 지극히 높으며 끝나는가 하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갑니다. 만물을 운행하게 하고 성장시키면서도 빠뜨리는 것이 없으니, 군자의 도가 그 밖에 멀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물은 모두 이에 의해 성장하고 변화하면서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도입니다.”
♣ 장자(외편) 지북유 10 - 죽음은 도에 따른 자연변화의 한 현상이다
“이 땅에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은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니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잠시 동안 사람으로 존재하지만, 결국은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근본에서 본다면 삶이란 것은 기가 모여 있는 물건에 불과합니다. 비록 오래 살고, 일찍 죽는 차이가 있다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짧은 시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어찌 요임금은 성인이고 걸왕은 폭군이란 시비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나무 열매나 풀의 열매도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논리는 다 추구하기는 어렵지만 역시 그 원리에 의해 서로 어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은 그 원리에 의한 변화를 당하게 되면 어기지 않고, 변화가 눈앞에 지나가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 조화함으로써 순응하는 것이 덕이며, 거기에 짝이 되어 순응하는 것이 도인 것입니다. 이 덕과 도에서 제왕이 생겨나고 왕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은 마치 날쌘 말이 틈 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적인 일에 불과합니다. 만물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모두가 생겨나고, 자연의 변화에 의해 모두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연의 변화에 의해 태어나기도 하고 또 자연의 변화에 의해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물들은 서러워하고 인간들은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활집에서 활을 풀어놓는 것과 같은 자연의 변화이며, 책의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은 자연의 변화인 것입니다. 육체에서 혼백이 떨어지는 것인데, 혼백이 어디론가 가 버리면 육체도 이를 따라 위대한 귀착점인 도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형체도 없는 상태에서 형체가 이룩되고 형체를 지닌 물건은 형체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다 같이 알고 있는 일이지만, 지극한 도에 이르려는 사람은 그 구별에 대해 힘쓸 것이 못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논하는 것이지만 지극한 도에 이르려는 사람은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 논하면 지극한 도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란 분명히 보려고 하면 만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론을 펴는 것은 침묵을 지키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도란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 못 되며, 거기에 대해 듣는 것은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와 감각을 떠나 도에 합치되는 것을 위대한 터득을 했다는 뜻에서 대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 장자(외편) 지북유 11 - 도는 어디에나 있고 모든 현상은 도에 의한 것이다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도라는 것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장자가 말했다.
“어디에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있는 곳을 지적해 주십시오.”
“개미에게 있습니다.”
“어째서 그처럼 하찮은 곳에 있습니까?”
“강아지풀이나 논에 자라는 피에도 있습니다.”
“어찌해서 더욱 하찮은 것에 있습니까?”
“기와나 벽돌에도 있습니다.”
“어찌해서 더욱 심해집니까?”
“오줌과 똥에도 있습니다.”
더 이상 동곽자는 아무 말도 못하게 되었다.
장자가 다시 말했다.
“당신의 질문은 본래가 본질적인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시장의 관리인이 시장을 감독하는 사람에게 돼지를 밟아 보고 그 살 찐 정도를 조사하게 할 때도, 살 찌기 어려운 곳을 밟아 내려 갈수록 그 정도를 더욱 잘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꼭 어디에 있는가 하고 한정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건은 무엇이나 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극한 도는 이와 같은 것이며, 위대한 이론 역시 이런 것입니다.
두루, 언제나, 모두 이 세 가지 표현은 도에 대해 말은 다르지만 같은 뜻이며 그 표현하는 것은 한가지인 것입니다.
시험삼아 당신과 더불어 무하유의 궁전에 노닐어 봅시다. 그리고 함께 자연의 도에 합치되어 도를 얘기해 보면 그 무궁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험삼아 무위의 경지에 들어가 봅시다. 그러면 담담히 고요해지고 깨끗이 맑아져서 만물과 조화되어 한가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뜻은 텅 비게 되어, 마음은 가려는 곳 없이 자연에 맡겨두어 그 이르는 곳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되는 대로 갔다 왔다 하며 그 멈춰지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미 왔다갔다하고 있지만 그 끝나는 곳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텅 빈 광대한 곳에 거닐고 있어서 위대한 지혜를 써도 그 궁극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물건을 물건의 존재대로 인정하는 사람은 물건과 한계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물건에 대해 한계를 긋고 구별하는 사람은 물건에 의해 자기 한계를 지니게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건과의 한계가 없다는 것은 상대적인 한계대로 순응하는 것이며, 물건에 대해 한계를 긋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한계대로 순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찼다가 비고, 모였다가 없어지는 것으로 말한다면, 어떤 물건이 차고 비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차고 비는 것이 아니며, 어떤 물건이 모이고 없어지고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모이고 없어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물건의 근본과 말단도 절대적인 근본과 말단이 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물건이 쌓이고 흩어지고 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쌓이고 흩어지고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 장자(외편) 지북유 12 - 도에 대한 이론은 진실한 도를 뜻할 수 없다
아하감이 신농과 함께 노용길의 밑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신농이 안석에 기대어 문을 닫고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하감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네.”
안석에 기대어 있던 신농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가 지팡이를 내던지고 웃으며 말했다.
“하늘은 내가 편벽되고 고루하면서도 허망한 자라 하여, 나를 버리고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계발시켜 줄 지극한 말씀도 한 마디 없이 돌아가셨구나.”
엄강조가 그 얘기를 듣고 말했다.
“도를 체득한 사람이란 천하의 군자들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신농은 도에 대해 털끝의 만분의 일도 터득하고 있지 못하면서 그 분이 지극한 말을 품은 채 죽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하물며 도를 체득한 사람이야 도가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임을 얼마나 잘 알겠는가? 도란 보아도 형체가 없고 들어도 소리가 없다. 사람들 중에 그것을 논하는 사람들이 도를 캄캄하다는 뜻에서 명명(冥冥)이라 부르고 있으나, 도에 대한 이론은 진실한 도를 뜻할 수 없는 것이다.”
♣ 장자(외편) 지북유 13 - 도란 형용하고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태청이 무궁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를 아십니까?”
무궁이 말했다.
“모릅니다.”
다시 무위에게 물으니 무위가 말했다.
“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태청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아는 도에는 법도라는 것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 법도란 어떤 것입니까?”
“내가 아는 도는 귀해질 수도 있고 친해질 수도 있으며, 모여들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도의 법도입니다.”
태청이 이 얘기를 듣고 무시에게 물었다.
“무궁은 알지 못하였고, 무위는 알고 있었는데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무시가 말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심오하고, 그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천박한 것입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내면적인 것이고 안다는 것은 외면적인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태청이 탄식하며 말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입니까? 안다는 것이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누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임을 알겠습니까?”
무시가 말했다.
“도란 들을 수 없는 것이니 들은 것은 도가 아닙니다. 도란 볼 수 없는 것이니 본 것은 도가 아닙니다.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말로 표현되었다면 도가 아닙니다. 형체를 지닌 물건들의 형체를 지니게 하는 것이 도임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도란 이름을 붙여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시가 다시 말했다.
“누가 도에 대해 물었을 때 대답을 하는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에 대해 질문한 사람도 역시 참된 도에 대해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란 물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묻는다 하여 대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을 묻는 것은 헛된 질문입니다.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대답하는 것은 진실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이 없이 헛된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밖으로는 우주의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고, 안으로는 태초의 오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곤륜산 같은 고원한 경지에 가 보지도 못하고 태허의 거침없는 세계에 노닐어 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 장자(외편) 지북유 14 - 무(無)도 없는 절대적인 무의 경지
광요가 무유에게 물었다.
“당신은 존재하는 것입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무유는 대답 않았다. 광요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무유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득하고 텅 비어 있어 하루 종일 그를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고, 그의 소리를 들으려 하였으나 듣지 못했으며, 그를 잡아보려 하였으나 잡을 수가 없었다.
광요가 말했다.
“지극하다. 누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나는 무의 존재는 인식할 수 있었지만 무도 없는 경지는 인식할 수가 없었다. 무와 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야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 장자(외편) 지북유 15 - 정신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신기에 이를 수 있다
대사마의 띠 갈고리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팔십이 되어서도 작은 실수조차 없었다.
대사마가 말했다.
“기교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특별한 도가 있는 것입니까?”
띠 갈고리를 만드는 사람이 말했다.
“저에게는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나이 스물에 띠 갈고리를 만들기를 좋아하였는데,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띠 갈고리가 아니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기술의 사용에 있어서 정신을 다른 곳에 쓰지 않는 방법으로 늙도록 기술을 발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쓰지 않는 것조차 없는 경지의 도야 어떻겠는가? 만물은 어느 곳이고 이에 힘입지 않는 것이 있는가?
♣ 장자(외편) 지북유 16 - 도는 시작도 끝도 옛날도 지금도 없다
염구가 공자에게 물었다.
“하늘과 땅이 있지 않았을 때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알 수 있다. 옛날도 지금과 같았다.”
염구는 완전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물러났다가 다음날 다시 찾아와 말했다.
“어제 제가「하늘과 땅이 있기 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선생님은 「알 수 있다. 옛날도 지금이나 같았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제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어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텅 비우고 신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오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장애가 있어 신명하지 못한 마음으로 뜻을 구하려 했기 때문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자손이 있지도 않은데 자손이 있는 것으로 따져 가면 되겠는가?”
염구가 대답도 하기 전에 공자가 다시 말했다.
“그만두어라. 말하지 마라. 삶의 원리로서 살고 죽게 하는 것도 아니며, 죽음의 원리로서 죽고 살게 하는 것도 아니다. 죽음과 삶이 의지하는 물건이 있겠느냐? 모두가 스스로 변화해 가는 자연현상으로서 일체의 것인 것이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겨난 물건이 있는 것일까? 물건을 물건으로써 존재하게 한 것은 물건이 아닌 도인 것이니, 물건이 생겨난 것이 다른 물건에 앞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건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물건의 존재는 끝이 없는 것이다. 성인은 사람들을 사랑함에 있어 끝내 끝이 없는데 역시 여기에서 법도를 취한 것이다.”
♣ 장자(외편) 지북유 17 - 외물과 융화하여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라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사라져가는 것은 전송하지 말고 닥쳐오는 것을 마중하지도 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뜻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밖의 물건이 변화해도 거기에 순응하기만 했지 자기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은 자기 마음은 밖의 물건에 의해 변화하면서도 밖의 물건에 동화하지는 못한다. 물건과 더불어 함께 변화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자신의 마음은 변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연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고 변화하지 않기도 하는데, 언제나 자연의 변화를 따르기만 하며 반드시 자연에 대해 지나친 일이 없이 자기 분수를 지킨다.
희위씨는 동산을 만들고 살았고, 황제는 채소밭을 만들고 살았고, 유우씨 순임금은 궁전을 만들고 살았고, 은나라 탕임금과 주나라 무왕은 궁실을 짓고 살았다. 이처럼 후대로 올수록 노니는 범위가 좁아져서, 후세에는 군자라는 사람들이 유가와 묵가를 따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으므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서로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니 하물며 지금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성인은 물건을 따름으로 물건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물건을 손상시키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는 물건 또한 그를 손상시킬 수 없게 된다. 오직 물건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는 사람만이 자연을 따라 보내고 마중할 수가 없게 된다.
산림이나 평원에서 노니는 것은 우리들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러나 즐김이 끝나기도 전에 슬픔이 또 계속되게 되는 것이다. 슬픔과 즐거움이 닥치는 것은 우리로서는 막을 수가 없다. 그것들이 떠나는 것도 우리는 막을 수가 없다. 슬프다! 세상 사람들이란 바로 밖의 물건들이 머물러 슬프고 즐겁게 해주는 여관이라 할 수 있다.
지혜로써 경험한 것들은 알지만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한다. 능력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은 할 수 있지만 능력 밖에 있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것이 있고,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본래 사람으로서는 피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을 벗어나려고 힘쓰고 있다는 것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지극한 이론이란 이론을 초월한 것이며, 지극한 행위란 행위를 초월한 것이다. 지혜로써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려 하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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