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잡편) 우언 1 - 친아버지는 아들의 중매를 설 수 없다
내 글에 우언이 열에 아홉이고, 중언이 열에 일곱이다. 그리고 치언은 날로 새롭게 자연의 나뉨을 조화시킨다.
십분의 구나 되는 우언은 밖의 사물을 인용해 도를 논한 것들이다. 친아버지는 아들의 중매를 설 수 없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칭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들의 잘못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입장이면 순응하지만, 자기와 다른 입장이면 반대를 한다. 자기와 같은 생각은 옳다고 인정하고, 자기와 다른 생각은 부정을 한다.
십분의 칠을 차지하는 중언은 사람들의 논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늙은 고로(故老)의 말을 인용하여 가능한 것이다. 나이가 앞서면서도 일에 대한 경위와 이치를 모른다면, 고로라고 불려진다 해도 진실한 선배로서의 고로는 못되는 것이다. 선배이면서도 남에 앞 설 덕을 지니고 있지 못하면, 사람으로서의 도가 없는 것이다. 선배이면서도 사람으로서의 도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런 사람을 진부한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에 따라 매일 같이 한 말들인 치언은 자연의 분계와 잘 조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을 따라 무궁함으로써 영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비를 말하지 않으면 사물들과 조화되게 된다. 조화와 시비를 말하는 것은 조화되지 않으며, 시비를 말하는 것과 조화도 조화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비를 말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말을 하되 시비를 말하지 않으면 평생토록 말을 해도 말을 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평생토록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안한 일이 없는 것이 된다.
모든 일은 까닭이 있으면 가하게 되고, 까닭이 있으면 가하지 않게도 된다. 까닭이 있으면 그렇게도 되고, 까닭이 있으면 그렇지 않게도 된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어째서 그렇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어째서 가하게 되는가? 가하기 때문에 가하게 된 것이다. 어째서 가하지 않게 되는가? 가하지 않기 때문에 가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물건은 본래부터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물건은 본시부터 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은 물건이란 없고, 가하지 않게 된 물건도 없는 것이다.
일에 따라 매일 같이 한 말들이 자연의 분계와 조화되지 않는다면 누가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물은 모두 종류가 다르며 각기 다른 형체로써 무궁히 변화하는 것이다. 처음과 끝을 둥근 고리의 처음과 끝처럼 구분할 수 없고, 그 이치는 터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을 자연의 조화라는 뜻에서 천균(天均)이라 부르는 것이다. 천균이란 자연의 분계에 합치되는 것이다.
♣ 장자(잡편) 우언 2 - 시비의 경지를 초월해야 한다
장자가 혜자에게 말했다.
“공자는 나이 예순이 되도록 예순 번이나 사고 방식이 변했습니다. 처음에 옳다고 하던 것을 나중에는 부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지난 오십구년 동안 부정하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혜자가 말했다.
“공자는 그의 뜻을 성실히 하고 지혜로써 일했기 때문이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공자는 뜻이나 지혜를 버렸습니다. 그는 시비를 논한 적이 없었습니다. 공자는 위대한 근본으로부터 재질을 타고서 영기를 품고 살아가면 우는 소리도 법도에 들어맞고, 말을 해도 법칙에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익과 의로움을 자기 앞에 늘어놓고서 좋아하고 싫어하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오직 사람의 입을 수고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공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복종하여 감히 거슬러 대립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는 천하의 안정 속에 안정되게 살았습니다. 나는 아직 공자에게 미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 장자(잡편) 우언 3 - 일이나 물건에 마음이 끌리면 안 된다
증자는 두 번 벼슬살이를 했는데, 두 번 모두 마음이 변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벼슬하여 삼부의 녹을 받았으나 마음이 즐거웠다. 뒤에는 벼슬하여 삼천종의 녹을 받았으나 부모님을 모실 수가 없어서 마음이 슬펐다.”
공자의 제자가 그 말을 듣고, 공자에게 물었다.
“증삼은 그의 녹에 의해 마음이 끌리지 않는 사람이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미 마음이 끌리고 있지 않느냐? 마음이 끌리는 데가 없는 사람이라면 슬픔이 있을 수가 있겠느냐? 그는 삼부나 삼천종의 녹을 보기를 마치 참새나 모기가 그의 앞을 날아 지나가는 것을 보듯 할 것이다.”
♣ 장자(잡편) 우언 4 - 근원 모를 삶과 죽음에 집착하지 마라
안성자유가 스승인 동곽자기에게 말했다.
“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일 년만에 헛된 마음을 버려 소박해졌고, 이 년 만에 밖의 사물에 순종하게 되었고, 삼 년만에 모든 사물들에 통달하게 되었고, 사 년만에 저 자신과 물건이 합치되게 되었고, 오 년만에 모든 물건이 저를 따르게 되었고, 육 년만에 신명으로 모든 사물에 대해 깨우치게 되었고, 칠 년만에 천지자연과 합치되게 되었고, 팔 년만에 죽음도 모르고 삶도 모르게 되었으며, 구 년만에 위대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살아서는 행동을 하지만 죽으면 모두가 그만이다. 사람의 죽음은 모두가 그 까닭이 있지만, 삶은 양의 기운이 움직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근원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떻게 가는 곳이 없을 수 있는가? 하늘에는 천체운행의 법도가 있고, 땅에는 평평하고 험한 상태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서 생사의 문제를 알아볼 것인가? 생명이 끝나는 곳을 알 수가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천명이 없다고 하겠는가? 생명이 시작되는 곳을 알 수가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천명이 있다고 하겠는가? 물건과 정신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 있다면 어째서 귀신이 없다고 하겠는가? 서로 호응하는 것이 없다면 어째서 귀신이 있다고 하겠는가?
♣ 장자(잡편) 우언 5 - 사람은 의지하는 대상이 없어야 한다
망양(罔兩)들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는 몸을 굽히고 있었는데 지금은 젖히고 있고, 조금 전에는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지금은 풀어헤치고 있으며, 조금 전에는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일어나 있고, 조금 전에는 걷고 있었는데 지금은 멈춰 서 있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림자가 말했다.
“어째서 그런 쓸데없는 것을 묻습니까? 나는 존재하고 있지만 그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매미 껍질이나 뱀의 껍질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것들과 비슷하면서도 형체가 없으니, 다른 것입니다. 불과 햇볕 앞에서는 존재하지만, 그늘이나 밤에는 사라집니다. 불과 해는 내가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그러니 하물며 의지하는 대상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들이 오면 나도 따라서 오고, 그것들이 가면 나도 따라 갑니다. 그것들이 움직이면 나도 따라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것에 대해 왜 내게 묻는 것입니까?”
♣ 장자(잡편) 우언 6 - 뽐내는 마음을 버려야 올바른 도를 배울 수 있다
양자거가 남쪽 패땅에서 여행을 할 때, 노자도 서쪽으로 진나라 일대를 여행하고 있었다. 양자거는 패땅의 교외로 영접을 나가, 양땅에 이르러 노자를 만났다.
노자는 오는 도중에 하늘을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그대를 가르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안되겠다.”
양자거는 대답도 하지 않고 숙사로 돌아와 세숫대야와 양치질 물과 수건과 빗을 노자에게 올린 다음, 문 밖에 신을 벗어놓고 무릎걸음으로 가서 말했다.
“조금 전에 저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여쭙고자 하였으나 선생님께서 틈이 없으신 것 같아 여쭙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한가하신 듯하니 그 까닭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자가 말했다.
“그대는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누가 그대와 더불어 지내겠는가? 크게 결백한 사람은 더러운 것 같이 행동하고, 덕이 큰 사람은 덕이 부족한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양자거는 송구스러운 듯이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전에는 같은 여관에서 묵는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고 전송하였고, 여관 주인은 방석을 날라왔고, 주인의 처는 수건과 빗을 갖다 주었으며, 여관에 묵는 사람들은 그를 보면 자리를 피했고, 불을 때던 사람들도 그를 보면 아궁이 앞을 피해갔다. 그러나 그가 다시 돌아가자 여관에 묵는 사람들이 그와 자리를 다투면서 어울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