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잡편) 서무귀 1 - 사람의 괴로움은 부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서무귀가 여상의 소개로 위나라 무후를 만났다. 무후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선생께서 병이 나신 모양입니다. 산림에 은거하는 것이 고되어 나를 만나러 오셨군요.”
서무귀가 말했다.
“제가 위로하고 싶은데 어찌 저를 위로하십니까? 임금께서는 욕망을 만족시키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에 따라 모든 일을 하시려 하기 때문에, 성명의 참모습을 해치고 있습니다. 욕망을 버리고 애증의 감정을 버리려 하시면 귀와 눈이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임금님을 위로하려 하는데 임금님께서 저를 위로할 것이 무엇이 있으십니까.”
무후는 언짢은 듯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서무귀가 말했다.
“시험삼아 제가 개를 감정하는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질이 낮은 개는 아무것이나 배가 부를 때까지 찾아 먹는데 이는 고양이의 본성과 같습니다. 중질의 개는 해를 바라보듯 뜻이 높고 먼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질이 높은 개는 스스로를 잊은 듯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개를 감정하는 것은 말을 감정하는 것만은 못합니다. 말 이빨이 먹줄을 댄 듯 곧고 목덜미는 고리가 휜 것처럼 구부정하고, 머리는 굽은 자를 댄 것처럼 모가 나고 눈은 그림쇠로 그린 듯 둥근 것이 국마라 할 만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국마는 천하마보다는 못합니다. 천하의 명마는 저절로 천성의 재질을 갖추고 있으며 고요하고 그 스스로를 잊은 듯 한결같습니다. 이런 말은 질풍같이 달려도 먼지를 일으키지 않고, 얼마만큼을 가서야 멈추게 될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무후는 크게 기뻐하며 웃는 얼굴이 되었다.
♣ 장자(잡편) 서무귀 2 -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그립다
서무귀가 나오자 여상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대체 어떤 말로 우리 임금님을 설득하셨습니까? 제가 임금님을 설득하는 방법은 횡적으로는 시, 서, 예, 악을 사용하고, 종적으로는 주서의 금판편·육도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사에 도움을 주고 공을 세운 일도 많지만 제 말에 대해 이를 드러내고 웃으신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무슨 말로 임금님을 설득하였기에 저렇게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단지 내가 개와 말을 감정했던 얘기를 했을 뿐입니다.”
여상이 말했다.
“그것뿐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월나라의 유배당한 사람 얘기를 들어 보지 못 했습니까? 나라를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아서는 그가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을 보기만 해도 기뻐했습니다. 나라를 떠난 지 수십 일이 되자 전에 자기 나라에서 스친 일밖에 없는 사람을 보고도 기뻐했습니다. 일년이 넘자 자기가 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만 보아도 기뻐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떠나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인적이 드문 황량한 고장의 잡초 우거져 족제비 다니던 길까지 가리는 곳에서 오랫동안 홀로 있게 되면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기뻐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형제나 친척의 웃음소리가 곁에서 들린다면 어떻겠습니까? 임금께서는 참된 사람의 말이나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들어 본 지 오래되었던 것입니다!”
♣ 장자(잡편) 서무귀 3 - 인위적인 정치는 모두를 괴롭힌다
서무귀가 무후를 만나니 무후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산 속에 살며 도토리와 밤을 먹고 파와 부추를 지겹도록 먹으면서도 나를 찾아오지 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를 찾아오신 것은 늙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술과 고기 맛을 보러 오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게 나라를 잘 다스릴 만한 복이 있어서 온 것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저는 빈천하게 나서 자랐기 때문에 임금님의 술과 고기를 감히 먹고 마시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임금님을 위로해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무후가 말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어떻게 나를 위로한단 말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임금님의 정신과 육체를 위로해드리겠다는 말입니다.”
무후가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하늘과 땅이 만물을 키우는 것은 한결같습니다.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더 존귀해지지 않고 낮은 곳에 있다고 해서 더 비천해지지 않습니다. 임금께서는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한 나라의 백성들을 수고롭게 해 자신의 귀와 눈과 코와 입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의 신명이 허락하지 않을 일입니다. 무릇 신명이란 남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운 것을 싫어하는 법입니다. 사사롭게 자신만을 생각하신다면, 이것은 이미 병이 됩니다. 그래서 그 점을 위로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임금께서 이런 병에 걸리게 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무후가 말했다.
“선생을 만나보려고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나는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위해 전쟁을 그만두려는데 어떻습니까?”
서무귀가 말했다.
“안됩니다.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백성을 해치는 시초가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면 좋은 정치를 이룰 수가 없으실 것입니다. 또한 의를 위해 전쟁을 그만두겠다는 것 자체가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정치를 하신다면 아마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훌륭한 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악의 바탕인 것입니다. 인의를 행하시더라도 아마 위선이 될 것입니다. 그런 형식을 갖추면 거짓 형식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갖추게 되면 자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이런 변화가 밖으로 전쟁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높은 누각 위에서 군대를 사열할 생각을 말아야 하며, 제사를 드리는 궁궐 앞에 보병과 기병을 집합시키실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덕을 저버리고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하셔도 안됩니다. 계교로 남을 이기려 해서도 안됩니다. 계략으로 남을 이기려 해서도 안됩니다. 전쟁으로 남을 이기려해서도 안됩니다.
다른 나라의 백성을 죽이고 남의 나라의 땅을 빼앗아 차지함으로써 자기의 육체와 정신을 만족시키려 하는 자는 그 전쟁이 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갖고 있더라도 과연 어느 쪽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으며, 설사 전쟁에 이긴다 해도 승리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디 마음 속의 정성을 닦음으로써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래야 백성들이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찌 전쟁을 그만 두시겠다는 생각조차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 장자(잡편) 서무귀 4 -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말을 기르는 것과 같다
헌원 황제가 대외를 만나기 위해 구자산으로 찾아갔다. 방명이 수레를 몰고, 창우가 참승이 되고, 장약과 습붕이 말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곤혼과 활계가 수레 뒤를 따랐다. 양성의 들판에 이르러 함께 가던 일곱 명의 성인이 모두 그만 길을 잃게 되었다. 길을 물을 곳이 없었는데 마침 목동을 만나게 되었다. 황제가 그 목동에게 물었다.
“구자산을 알고 있느냐?”
목동이 대답했다.
“예.”
“대외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느냐?”
목동이 대답했다.
“예.”
황제가 다시 물었다.
“신통한 아이로구나. 구자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외가 있는 곳까지 알고 있다니.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을 해줄 수 있겠느냐?”
목동이 대답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지금 저처럼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무슨 특별한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자연 속에 유유히 살다가, 눈이 안보이게 되는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한 노인께서 저에게 해가 뜨면 수레를 타고 양성의 들판에서 노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병이 조금 나았기 때문에 다시 자연 속을 유유히 살려고 합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도 바로 제가 병을 고친 일과 같을 뿐입니다.”
황제가 물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네 일은 아니겠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대해 알고 싶구나.”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제가 다시 묻자 소년이 입을 열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어찌 말을 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주면 될 뿐입니다.”
황제는 머리를 숙여 큰절을 두 번하고, 그 소년을 천사(天師)라고 부른 뒤 물러났다.
♣ 장자(잡편) 서무귀 5 - 사람들은 외물에 사로잡혀 본성을 잃고 있다
지식을 가진 선비는 지모가 쓰이는 변란이 없으면 즐거울 수 없다. 변설에 뛰어난 선비는 의견을 얘기할 기회가 없으면 즐거울 수 없다. 일을 잘 살피는 선비는 논쟁할 일이 없으면 즐거울 수 없다. 이들은 모두 밖의 사물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다.
세상에서 뛰어난 선비는 조정에서 출세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선비는 벼슬로 영화로운 생활을 하게 되고, 힘이 센 선비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실력을 발휘하고, 용감한 선비는 환란을 당하여 기개를 떨치고, 무술이 뛰어난 선비는 전쟁을 즐기며, 애써 노력하는 선비는 명분을 추구하고, 법률에 밝은 선비는 다스림을 널리 펴고, 예의와 음악에 밝은 선비는 용모를 공경하고, 인의를 숭상하는 선비는 인간관계를 귀중히 여긴다.
농부는 농삿일이 없으면 즐거울 수 없고, 상인들은 장삿일이 없으면 즐거울 수 없다. 서민들은 아침저녁으로 할 일이 있으면 부지런하고, 공인들은 좋은 기계와 기술이 있으면 빠르게 일한다.
돈과 재물이 쌓이지 않으면 탐욕이 많은 자들은 근심을 하고, 권세가 커지지 않으면 뽐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슬퍼하며, 형세를 잘 쫒는 무리들은 변란을 즐긴다.
이들은 때를 만나야 쓰일 곳이 있게 되며, 어떤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이끌리는 자들이며, 사물의 변화에 얽매이는 자들이다.
자기의 육체와 본성을 달리게 하고, 밖의 만물에 대해 몰두하며, 평생토록 본성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자들이다!
♣ 장자(잡편) 서무귀 6 - 자가당착에 빠져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장자가 말했다.
“활을 쏘는 사람이 미리 표적을 정하지도 않고 맞추었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 같은 명궁이 될 수 있을 것인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혜자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유가·묵가와 양주학파·공손룡학파의 넷이 있고, 선생까지 합하면 다섯이 되는데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입니까? 혹시 노거와 같은 입장입니까? 한번은 그의 제자가 노거에게 말하기를「저는 선생님의 도를 터득했습니다. 저는 겨울에도 나무 없이 솥의 물을 끓일 수 있고, 여름에도 어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노거가 말하기를「그것은 다만 양의 기운으로 양의 기운인 불을 불러오고, 음의 기운으로 음의 기운인 어름을 불러온 것뿐이지 내가 말하는 도는 아니다. 내가 너에게 나의 도를 보여주겠다」라고 말하고는 그를 위해 슬을 뜯었답니다.
슬 하나는 대청에다 놓고, 다른 하나는 방에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편 현의 궁음 줄을 뜯으면 다른 슬의 궁음 줄도 움직이고, 슬의 각음 줄을 뜯으면 다른 슬의 각음 줄도 움직이는데, 음률이 완전히 같았답니다. 시험삼아 한 줄의 음조를 바꾸어 다섯 가지 음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게 하고서 그 줄을 뜯으니, 다른 슬 스물 다섯 현이 모두 움직였습니다.
처음부터 그 음은 소리로서 특별한 것은 아니었는데, 모든 음을 지배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도 이와 같은 것입니까?”
혜자가 말했다.
“지금 유가와 묵가와 양주학파와 공손룡학파들은 나와 토론을 전개하며 말로써 서로 배척하고 소리를 높여 상대방을 위압하려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자기가 그르다는 이는 없는데 어찌 그와 같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제나라 사람이 자기 자식은 죄를 지었다고 송나라로 귀양을 보내고서, 그의 집 문지기는 죄를 져서 다리를 잘린 자를 임명했습니다. 그는 또 목이 긴 종을 구하여 목을 묶어두어 소리가 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려 하면서도 문밖에는 나가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모든 일을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초나라 사람 중에 남의 집에 묵으면서 문지기와 싸운 사람이 있었는데, 밤중에 아무도 없을 때 배 안에서 뱃사람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배가 물가에 닿기 전이라면 분명히 원한을 사서 위험에 놓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 장자(잡편) 서무귀 7 - 마땅한 상대가 있어야 한다
장자가 어떤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다가 혜자의 묘 앞을 지나게 되자 따르는 하인을 돌아보고 말했다.
“초나라의 도읍인 영에 흙을 바르는 장인이 있었다. 그는 자기 코끝에 백토를 파리의 날개만큼 얇게 바르고 석공인 장석에게 이것을 깎아 내게 했다. 장석은 도끼를 바람소리가 나게 휘둘렀으나 영의 장인은 그저 듣기만 하고 그대로 있었다. 백토는 모두 깎여 떨어졌지만 코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영의 장인은 선 채로 얼굴빛조차 바꾸지 않았다.
송나라의 원군이 이 얘기를 듣고 장석을 불러 말했다.
「시험삼아 내게도 백토를 바르고 깍아내보아라.」
장석이 말했다.
「전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술의 근원이 되는 사람이 죽고 없어서 불가능합니다.」
나는 혜자가 죽은 뒤로 나의 이론의 전개할 바탕이 없어졌다. 나도 이제 혜자가 죽었으니 더불어 얘기할 사람이 없어졌구나.”
♣ 장자(잡편) 서무귀 8 -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관중이 병이 나자 제나라 환공이 그를 문병하고 말했다.
“중부의 병환이 중하시니, 누구에게 나라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누구에게 맡기려 하고 계십니까?”
환공이 말했다.
“포숙아에게 맡기려 합니다.
관중이 말했다.
“안됩니다. 그의 사람됨은 결백하고 청렴하면서도 선하기만 한 선비입니다. 그는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습니다. 또한 한번 남의 잘못을 알게 되면 평생토록 잊지 않습니다. 그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면 위로는 임금님께 반기를 들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뜻을 거스를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는 임금님께 죄를 지을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좋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부득이 나라 일을 맡기려 하신다면 습붕이 괜찮을 것입니다. 그의 사람됨은 위로는 임금님의 존재는 잊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떨어지지 않게 합니다. 그는 황제와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자기만 못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기의 덕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성인이라 말하고, 자기의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현인이라 말합니다. 현명한 사람으로서 남 위에 군림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현명한 사람으로서 남의 아래에 처신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나라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집안에서는 모든 것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꼭 맡겨야 한다면 습붕이 좋을 것입니다.”
♣ 장자(잡편) 서무귀 9 - 재주만 믿고 잘난 체 하다가는 해를 당한다
오나라 임금이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원숭이들이 많이 사는 산으로 올라갔다. 여러 원숭이들이 그를 보자 놀라 모든 것을 버리고 울창한 숲 속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한 마리의 원숭이만이 유유히 거닐며 뱀을 집어던지기도 하면서 잔재주를 부렸다. 임금이 그 놈을 활로 쏘니 재빨리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버렸다. 따라온 사람들에게 명하여 계속하여 활을 쏘게 하니 마침내 원숭이는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임금이 그의 친구 안불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원숭이는 자기 기교를 자랑하고, 자신의 날램을 믿고서 내게 오만하게 굴다가 이처럼 죽음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네,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네. 자네들도 잘난 얼굴을 하고서 남에게 교만하게 굴어서는 안되네.”
안불의는 돌아와서 동오를 스승으로 모시고 잘난 체 하는 그의 얼굴빛을 고쳤다. 그리고 자기가 즐기는 일들을 버리고, 높은 지위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자 나라안의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게 되었다.
♣ 장자(잡편) 서무귀 10 - 모든 마음을 버리고 나면
남백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안성자가 들어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본래 육체를 마른 나뭇가지처럼 만들 수 있고, 마음을 식은 재처럼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남백자기가 말했다.
“나는 전에 산 속 굴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때 제나라 임금 전화가 나를 한번 만나러 온 적이 있었는데, 제나라 백성들은 그것을 세 번이나 칭찬했다고 한다. 그것은 반드시 내가 명성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그가 나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그렇게 팔려고 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나를 사려고 했던 것과 같다. 만약 내가 그런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면, 그가 어떻게 내가 그런 줄을 알 수 있었겠느냐? 내가 만약 그렇게 나를 팔려 들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그렇게 나를 사려고 했겠느냐?
나는 스스로의 본성을 잃고 있는 사람을 슬프게 여긴다. 나는 또한 남을 슬퍼하는 사람도 슬프게 여긴다. 나는 또 남을 슬퍼하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도 슬프게 여긴다. 그래서 뒤에 모든 마음을 버리고 나면 날로 모든 생각과 멀어져 마른 나뭇가지나 죽은 재처럼 될 것이다.”
♣ 장자(잡편) 서무귀 11 - 옛 방법을 따르되 합치시키려 들지 마라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초나라 임금이 공자를 위해 잔치를 열었다. 손숙오가 술잔을 들고 서 있었고, 시남의료가 술잔을 받아 땅에 부어 제사를 올리면서 말했다.
“옛날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 무엇이라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저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태껏 이것에 대해 말해 본 일이 없으나, 여기에서 그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남의료께서는 구슬놀이를 하여 초나라와 송나라의 전쟁을 해결했다 합니다. 손숙오께서는 깃부채를 들고 곤히 잠을 자면서도 영땅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을 무기를 버리도록 만들었다 합니다. 제게 석자 길이의 입이 있다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도라고 드러나지 않는 도이며, 공자의 말은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이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덕이란 도로써 통일되어 있는 곳에 총합되고, 이론이란 지혜로써 알 수 없는 경지에 머물러야만 지극한 것이다. 도가 통일되어 있는 곳이라면 덕은 함께 합쳐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혜로써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이론으로써는 밝혀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 없이 덕을 세우고, 알지 못하면서 이론을 내세워 명분을 찾는 유가나 묵가는 흉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다가 흘러드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고도 변함이 없는 것은 광대함의 극치인 것이다. 성인은 하늘과 땅을 아울러 포괄하고, 은혜와 혜택을 온 천하에 끼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아무런 벼슬도 없고, 죽어서도 아무런 시호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재물을 모으지도 않고, 명예를 세우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 부른다.
개가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말을 잘 한다 해서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위대함이야 말과 상관이 있겠는가? 스스로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위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야 덕이 되겠는가?
위대하게 갖추어져 있기로는 하늘과 땅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추구하여 위대하게 갖추어진 것인가? 위대하게 갖추어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없고, 잃는 것도 없고, 버리는 것도 없어야 하며, 외물로 말미암아 자기의 본성을 바꾸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옴으로써 자연스럽게 막히는 일이 없고, 옛 방법을 따르되 옛 방법에 합치시키려 들지 않는 것이 위대한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다.
♣ 장자(잡편) 서무귀 12 - 육체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자기에게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들을 앞에 불러 앉혀놓고 구방인을 불러 물었다.
“나를 위해 내 자식들의 관상을 보아주십시오. 누가 복을 타고났습니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이 복을 타고났습니다.”
자기는 기뻐하며 구방인에게 말했다.
“어떤 복을 타고났습니까?”
구방인이 말했다.
“곤은 임금과 같은 식사를 하면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자기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자식이 어찌 그런 불행을 당하게 된단 말입니까?”
구방인이 말했다.
"나라의 임금과 같은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은혜와 혜택이 온 집안에 미칠 것이니, 하물며 부모님이야 얼마나 그 덕을 많이 보시겠습니까? 지금 선생님께서 얘기를 듣고 우시는 것은 복을 차는 것입니다. 자식은 복을 타고났으나 아버지는 불행할 것입니다.”
자기가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 내 자식 곤이 행운을 타고났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저 술과 고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간다는 것인데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십니까? 가축을 기른 일도 없는데 암양이 방의 아랫목에 생겨난다든지, 사냥을 한 일도 없는데 메추라기가 방의 귀퉁이에 생겨난 것과 같은 얘기인데 당신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내가 내 자식들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는 것은 하늘과 땅에 노니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하늘을 따라 즐기고, 땅에 순응하며 살려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인위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계책을 쓰지 않으며, 괴상한 짓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하늘과 땅의 진실한 모습을 타고서 사물이 그들과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들과 더불어 한결같이 유유자적하고, 일이 합당한 것을 따지며 마음을 쓰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자식에게 세속적인 보상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모든 괴이한 징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괴이한 행동이 있게 됩니다. 나와 내 자식의 죄는 아닐 것이니,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곤을 연나라로 보냈는데, 도중에 도적들에게 잡혔다. 완전한 몸으로 팔려니 도망갈 우려가 있어 다리를 자른 다음 파는 것이 좋겠다고 도적들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잘린 다음 제나라로 팔려갔는데, 마침 대가집의 문지기가 되어 그런 대로 그 자신은 평생토록 고기를 먹으며 살다 죽었다 한다.
♣ 장자(잡편) 서무귀 13 -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이롭게 해주어야 한다
설결이 우연히 허유를 만나서 말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허유가 말했다.
“요임금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합니다.”
설결이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허유가 말했다.
“요임금은 부지런히 인에 힘을 쓰고 있으니, 나는 그가 하는 일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후세에는 아마도 사람이 사람을 서로 잡아먹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을 모여들게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을 사랑 해주면 친해지고, 그들을 이롭게 해주면 모여들고, 그들을 칭찬 해주면 일에 힘씁니다. 그리고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흩어집니다. 백성을 이롭게 하고 사랑하는 것은 인의로부터 나옵니다. 인의라는 명목을 버리고 정말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이는 적고, 인의라는 명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인의의 행동이란 성실성을 없앨 뿐입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이용하는 도구가 됩니다.
한사람의 전제가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것은 마치 물건의 한 면만을 언뜻 본 것과 같습니다. 요임금은 현명한 사람이 천하에 이롭다는 것만을 알았지, 그들이 천하에 해가 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현명함을 초월한 사람만이 그런 사실을 압니다.”
♣ 장자(잡편) 서무귀 14 -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세상에는 난주에 속하는 사람들과 유수에 속하는 사람들과 권루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한 선생의 이론을 배워 그것을 그대로 자기의 학설로 삼아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만족하고는 처음의 물건이 있지 않았던 상태가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을 주관이 없이 유연하다는 뜻에서 난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수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돼지의 몸에 붙어사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길게 털이 자라난 곳을 골라 스스로 넓은 궁전의 광대한 정원이라 생각한다. 발굽 모서리나 사타구니 사이 또는 젖통 사이나 넓적다리 사이를 스스로 안락한 방이나 편안한 장소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든 도살꾼이 돼지를 잡은 뒤 마른풀을 깔아 불을 붙이고 그 위에 돼지를 올려놓으면 자신도 돼지의 털과 함께 타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자기가 사는 구역 안에서 살고 죽는다. 그래서 그들을 일시적인 안락을 꾀한다는 뜻의 유수라 부르는 것이다.
권루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순임금과 같은 사람들이다. 양고기는 개미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개미들은 양고기를 좋아해서 모여드는데, 양고기에서는 노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순은 인의라는 노린내나는 행동을 하여 백성들이 그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순은 사는 곳을 세 번이나 옮겼으나 그 때마다 도시를 형성했다. 등이라는 고장으로 옮겼을 때는 십여 만 가호나 모여들었다. 요임금은 순이 현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등용하여 불모의 땅을 맡기면서 그 땅에 가서 은혜와 혜택을 베풀라고 했다. 순은 불모의 땅을 맡은 다음, 나이가 늙었고 귀와 눈이 어두워졌으나 돌아가 쉬지를 못했다. 그래서 이들을 꼽추와 같이 등이 굽도록 일한다는 뜻에서 권루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신인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모여드는 것을 싫어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도 이들과 친근하게 지내지 않는다. 친근하게 지내지 않으면 이익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아주 친한 사람도 없고, 아주 먼 사람도 없다. 덕을 지니고 조화된 마음을 기르면서 천하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진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개미로서는 양고기를 쫓는 지혜를 버리고, 물고기로서는 넓은 강물에서처럼 서로의 관계를 잊으며, 양고기로서는 개미를 모여들게 하려는 의식을 버린다.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을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들으며, 마음은 본성으로 되돌아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먹줄을 친 듯이 평평하며, 변화는 자연을 따르기만 한다. 이것이 옛날의 진인이다. 자연스러움으로 인간을 대할 뿐, 인위적인 것으로 자연의 변화에 참견하지 않는다. 이것이 옛날의 진인이다.
♣ 장자(잡편) 서무귀 15 - 감각이나 능력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한다
얻는 것이 생(生)이고, 잃는 것이 사(死)일 수도 있지만, 얻는 것이 사이고 잃는 것이 생일 수도 있다. 약이란 오두나 도라지나 계옹이나 시령 같은 것으로 지어지고, 이것들이 때에 따라 번갈아 가며 주된 약제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월나라 임금 구천은 싸움에 패하여 삼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회계산으로 도망했다. 그 때 월나라 대부 종 만이 다시 부흥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종도 그 자신에게 불행이 닥칠 원인이 됨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올빼미의 눈은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잘 보이고, 학의 다리에는 긴 마디가 있지만 이것을 없애주면 슬퍼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바람이 불어가면서 강물을 말리고, 햇볕이 비치면서 강물을 말리고 있다. 바람과 햇볕이 언제나 강물을 지키고 있지만 강물은 처음부터 그들과 충돌하지 않는다. 그것은 강물은 근원이 있고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본래 물이 흙을 적심에는 빈틈이 없고, 그림자가 사람을 따르는 것에도 빈틈이 없고, 물건과 물건의 관계에도 빈틈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눈의 시력은 위태롭고, 귀의 청력도 위태롭고, 마음의 작용도 위태롭기만 한 것이다. 모든 능력은 그것을 지니고 있다 해도 위태로운 것이다. 본성으로부터 떠나 위태로움에 이르면 고칠 겨를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화는 자라서 더욱 불어나기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본성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면 많은 공이 들며 그 결과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자신의 보물로 생각하고 있으니 또한 슬프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살육하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는데도 그 원인을 추구할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 장자(잡편) 서무귀 16 - 사람의 지능은 진리나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발이 땅을 밟는 면은 아주 좁다. 비록 밟는 지면은 좁지만 발이 밟지 않는 지면이 넓은 것을 믿고서야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이 아는 것도 적다. 비록 아는 것이 적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의지하고서야 자연이란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물의 근원이 하나라는 대일(大一)을 알고, 만물의 근원이 지극히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다는 일음(一陰)을 알고, 만물을 분별 없이 하나로 보는 대목(大目)을 알고, 자연의 조화가 균등히 작용한다는 대균(大均)을 알고, 자연이란 일정한 법도가 있다는 대방(大方)을 알고, 자연이란 진실하다는 대신(大信)을 알고, 자연이란 안정된 것이라는 대정(大定)을 알면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대일은 도로 통하게 해주며, 대음은 모든 분규를 해결하게 해주며, 대목은 자연을 달관하게 하며, 대균은 그의 본성에 따라 스스로 터득하게 하며, 대방은 모든 법도를 터득하게 하고, 대신은 모든 의혹을 없애주며, 대정은 자신을 안정되게 유지해 준다.
사람의 지능이 다 한 곳에 자연의 변화가 있고, 무(無)의 원리가 어둠 속에서도 작용하고 있고,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원리가 있고, 그런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법칙이 있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과 같고,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경지에 이른 뒤에야 그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파고들어 연구해 보면 한계가 있을 수도 없고, 한계가 없을 수도 없는 것이며, 뒤섞여 있는 듯하면서도 그 속에 실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손상된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에 위대한 원칙이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어째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가? 어째서 그렇게 미혹되어 있는가?
미혹되지 않은 마음으로 미혹을 풀어줌으로써 미혹되지 않은 경지로 되돌아가게 하면 바로 본성의 위대한 불혹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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