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일반

달라이 라마의 전법론(傳法論) 고찰

rainbow3 2019. 12. 11. 23:35


달라이 라마의 전법론(傳法論) 고찰


최동순*



Ⅰ 머리말.

Ⅱ 문명과 갈등에 대한 불교적 해법 모색.

Ⅲ 명상의 강조.
Ⅳ 대승 사상의 구현.

Ⅴ 맺음말.



요약문


달라이 라마의 저술 내용 수준은 대부분 평이하지만, 그 배경에는 철저한 교의 해석 및 논리학이 뒷받침한다.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 교양 분야이다. 불교가 생소한 서구 사회에 그의 저술이 많이 보급된 힘이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여론 조사를 통해 이 시대의 모범 인물(role model)로 꼽기도 했다. 국내에도 많은 종류의 책들이 번역되었다.


그의 법문 내용에서 자주 접하는 내용은 사성제의 설명과 이에 따른 전법 방식이다. 고(苦)의 현실을 설명하고 멸(滅)의 행복으로 안내하는 과정이다. 더불어 쫑카빠의 3단계를 적절히 응용하여 단계에 의한 가르침을 펼치며, 세계평화로 이끄는 논리적 전개를 보여준다. 폭력 등 갈등의 현실을 묘사하고 불교의 소개, 그리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이는 망명자 신분인 그의 체험에서 우러나기도 하지만, 엄청난 수학과정과 최고 과정의 토론까지 마친 배경을 가진다. 더불어 나란다대학으로부터 이어진 인도 후기대승불교 및 티벳불교의 역사적 기반을 동시에 담보한다. 그는 겔룩빠의 수학 과정은 물론 많은 논사들의 철학을 공부했다고 고백한다.


누구나 그의 저술을 읽을 수 있는 용이성이 있지만, 이면에는 인도 및 티벳의 불교와 전법 방식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그의 저술들 보이는 전법 방식에 대해 고찰할 필요성을 갖는다. 본 논고 역시 사성제 및 쫑카빠의 단계적 서술 방식을 참고하여 서술했다.


[주요어: 달라이 라마, 쫑카빠, 공성, 티벳불교, 사성제]

* 이 논문은 2008년도 정부재원(교육인적자원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KRF-2008-A00062).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Ⅰ. 머리말


제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이하 달라이 라마)의 저술들이 기록적 발행 부수를 보이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1989)에 대한 일시적 관심이 아니라 꾸준히 보급되고 있다. 하나의 현상에 비견된다. 세계평화를 위한 진정성이 묻어나며 장기적으로 티벳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이 서려있다.


티벳불교의 전통은 차제(次第)의 중시이다. 근기에 따른 단계적 교화 방식이다. 더불어 인도 후기대승불교의 원형이 반영된 티벳 불교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그의 저술들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의 저술은 겔룩빠(dGe lugs pa)의 사상적 전통을 배경으로 한다. 겔룩빠를 창시한 쫑카빠(1357~1419)는 용수, 미륵 등 수많은 논사들의 지혜를 도차제(lam rim, 道次第)에 담았다. 도차제는 티벳불교 전통이며 달라이 라마 법문의 근간이다. 더불어 그는 사성제(四聖諦)와 공성(空性) 설명을 통해 대승불교의 실천으로 전이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달라이 라마의 저술은 티벳불교의 전통을 담아내며, 겔룩빠 외에 닝마빠, 사꺄빠, 까규빠의 4대 종파의 교의 내용도 포함한다. 그러나 본 고는 달라이 라마의 대중포교를 위한 전법(傳法)론을 대상으로 하며, 사성제와 쫑카빠의 도차제 응용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Ⅱ. 문명과 갈등에 대한 불교적 해법 모색


1. 갈등에 대한 불교적 관점


달라이 라마의 저술 내용에는 세계가 안고 있는 전쟁, 기아, 범죄, 인종갈등, 환경오염 등의 문제와 더불어 이를 해결하고 치유하기 위한 불교적 모색, 그리고 불교적 실천을 담고 있다. 고에 대한 집제(集諦)적 성찰과 함께 치유를 위한 멸제와 도제의 형식으로 나아가게 됨을 볼 수 있다.


그는 티벳문제와 더불어 다양한 고(苦)의 내용들을 서술한다.
달라이 라마는 1999년 5월 10일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강연에 응했다. 런던에 위치한 로얄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 of Arts and Science)에서 그는 ‘새 천년을 위한 윤리(Ethics For The New Millennium)’라는 연제로 강연했다. 여기서 그는 21세기를 살아갈 세계인들을 위해 현안 문제들을 열거했다.1)


강연에서 드러난 내용은 전쟁을 비롯한 폭력문제, 티벳문제와 당시 발칸반도의 갈등을 거론함과 더불어 인종차별, 종교갈등,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들에 대한 대책 호소이다. 문제들의 원인과 대책으로서 교육제도와 환경문제 등 미래사회를 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사성제적 입장이다. 현실 갈등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입장을 네 가지로 알아본다.


첫째, 전쟁 등 국가 간의 갈등 해결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적극적이다. 고통스런 전쟁이나 대립에 대한 인과 관계를 규명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폭력이 비록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궁극의 해결방법이 될 수 없음을 호소한다. 폭력 행사는 가해자 또한 고통이 뒤따른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장해제를 위해 그는 점진적으로 군비를 축소하는 환경 조성에 매진했다.2)


달라이 라마는 분쟁 지역을 방문함으로써 폭력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하며 관심을 증폭시킨다. 그가 2000년 10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를 방문하여 평화를 위한 상징적 퍼포먼스들을 벌였다.3) 이외에도 그는 예루살렘과 일본의 원폭 투하지점 등 다양한 곳을 방문하여 갈등 해결을 호소했다.


폭력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대표적으로 이란의 예를 들었다. 이란을 무장시켰지만, 오히려 서방을 위협했고, 이에 대응하도록 이라크에 무장 지원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등 더 많은 폭력을 야기했다고 강조한다. 인과 관계로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4) 그러나 인간은 본래 폭력을 싫어함을 강조한다. 그는 간디의 비폭력 노선을 함께 하지만 그 정신은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등 보편적으로 숭앙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동식물은 물론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자비를 베푸는 아힘사(ahimsā) 정신을 내세우고 있다.5)


폭력의 발생은 무지로 인한 시야협착(視野狹窄)이라고 그는 말한다. 무기를 제조하는 사람들의 좁은 시야를 비판한다. 더불어 달라이 라마는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긍정적 속성을 폭력 해결의 실마리로 보고 있다. 아무리 폭력적인 사람일지라도 근본적으로 선(善)한 본성이 있어 이를 계발한다면 분노를 제어할 수 있다고 했다.6)


갈등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대처 방식은 쫑카빠7)의 저술에 근거를 두는 경우가 많다. 쫑카빠는 유명한 도차제광론(Lam rim chen mo)을 남겼다. 이 저술에서 쫑카빠는 다양한 근기의 중생들이 불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수행체계를 구성했다. 람림 즉 도차제(道次第)는 명상을 위한 지침서로 활용된다. 겔룩빠의 역대 달라이 라마들도 쫑카빠의 사상 및 실천 방법에 기반을 둔다.8) 14대 달라이 라마는 법문이나 저술, 강연, 대담, 인터뷰 등에서도 도차제의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1) 이거룡 옮김(2006) pp. 181-202 참조.

2) 도솔 옮김(2003) p. 207.
3) 류시화 옮김(2004) p. 62.
4) 도솔 옮김(2003) p. 216.
5) 김충현․김선정 옮김(1994) p. 212.
6) 한영탁 옮김(2003) p. 93.
7) 쫑카빠 롭상닥빠(Tshong kha pa blo bzang grags pa, 1357-1419)는 겔룩빠(dGe lugs pa)의 개조이다. 그가 남긴 람림의 가르침은 티벳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반야에 대한 학습으로 미륵의『현관장엄론)』과 그 주석, 그리고 미륵의 5부 논서를 배웠다. 그리고 다시『논리학칠론』,『입중론』,『구사론』, 『아비달마집론』등을 들었다. 또한『율전』과 그 주석을 배워 계율에 관한 지식을 모두 체득했다. 특히 인명학으로서『양평석주』등을 공부했으며 이후 중관학까지 섭렵하였다. 37세에 까담파의 도차제의 가르침을 전수받았으며,『현관장엄론』의 모든 내용이 도차제를 위한 가르침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쫑카빠는 아티샤(Atisa)의『보리도등론』에서 출발하여 용수와 무착의 견해를 결합한『보리도차제광론』을 구상할 수 있었다.
8) 쫑카빠 저, 양승규 옮김(2006) pp. 9-17 참조.



둘째, 인종문제 해결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평등에 기초한다.
자신부터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느 지역에서 거주하든, 다른 종교를 가지거나 신체적 모습이 다를지라도 감정이나 잠재력은 근본적으로 같다고 호소한다. 더불어 좋고 나쁜 경험들에 대한 자세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9)


빅터 챈은 그의 책『용서』에서 달라이 라마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와의 만남에서 인종 갈등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흑인해방단체에서 백인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고, 많은 사상자를 냈으며, 투투 대주교는 살아남은 한 백인여성을 방문했을 때 그 여성이 ‘용서’를 선언했고, 이는 인종 간의 화해가 가능함을 알렸다고 했다.10) 1989년 12월 11일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강연의 서두에서 달라이 라마는 인종의 평등을 언급했다. 옷이나 피부색 모두는 외적인 것일 뿐 근본적으로 같은 사람임을 강조했다.11)


9) 이거룡 옮김(2006) p. 183.
10) 류시화 옮김(2004) p. 84.

11) 김충현․김선정 옮김(1994) p. 20.



셋째, 갈등을 해결해야할 종교가 오히려 분쟁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비극이라고 보았다. 종교문제나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종교를 경제적으로, 혹은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데 비판의 눈길을 보낸다.


어느 종교든 동일하게 사랑과 자비, 인간성, 만족하는 마음, 자기 규율 등을 갖추고 있어 모두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자량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종교가 발생하고 발전하게된 동인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함을 말한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며, 쉽게 다른 종교로 개종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12)


자신이 직접 기독교도들과 교환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종교적 비폭력과 관용의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음을 말한다. 그는 1993년 프랑스의 루르드 성지,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사원을 방문했으며, 그리스도교인들과 불자들이 함께하는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13) 또한 종교 간 대화를 위해 각 종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교류는 물론 해당 종교의 수행자들이 모임을 열고 내적 경험의 교환을 주문했다.14) 다른 종교의 성지들을 순례할 것을 부탁하며 환경회의와 같은 종교인들의 회합을 주장했다.


12) 김석희 옮김(2008) pp. 92-96 참조.
13) 도솔 옮김(2003) p. 228.
14) 주민황 옮김(2007) p. 27.



넷째, 국제적․사회적 갈등 문제에 대해 비폭력을 호소하는 달라이 라마의 배경은 어려운 상황의 티벳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적(중국)을 용서를 하는 것만이 폭력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며, 폭력의 반대 감정을 키우는 것이 그 해결 방법이라 하였다.15) 중국의 침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사원들이 파괴되었지만 그는 비폭력 운동이 유일한 대안임을 인식했고, 세계평화를 위한 행보를 늦추지 않았다.16) 비폭력 노선에 대한 노력으로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그 바탕에 티벳이 곧 고(苦)의 상황이며 이를 부처님 가르침에 의한 해결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티베트 국민의 원수인 중국을 오히려 자신의 스승으로까지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자비와 인내를 계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원수는 가장 좋은 스승이라고 보기 때문이다.17) 범죄는 범죄로 갚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오히려 인과응보로 내생에 비천하고 비참한 생을 살아가게 될 중국인들을 행복으로 이끌어야 할 책무를 강조한다.18)


15) 류시화 옮김(2004) p. 90.

16) 김한규(2000) pp. 379-389. 달라이 라마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할 당시 6,259개의 사원 가운데에 8개만 남고 모두 폐허가 되었다. 59만 명의 승려 가운데 11만 명이 살해당했고 25만 명은 강제 환속 당했다. 많은 사찰들이 돼지우리나 감옥, 창고 등으로 바뀌었다. 1949년부터 1979년까지 30년 간 600만 명의 성인 가운데 86만 4천 명이 박해로 사망했고, 또한 기아로 34만 2천 명이 사망했다.
17) 심재룡 역(1991) p. 292.
18) 김철․강건기 옮김(1988) p. 182.



이 밖에도 인류가 안고 있는 기아, 식량문제,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들에 대해 고제로 인식한다. 고통의 원인을 알리며 행복의 길을 가르쳐주고 그 고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의 이러한 시각은 쫑카빠의 ‘작은 사람의 도차제’와 연관된다. 전쟁과 폭력이 행해지는 자체를 삼악도 즉 지옥계와 축생계와 아수라계로 보았다. 쫑카빠는 지옥의 고통들을 생생히 묘사한다. 더불어 축생계와 아귀계의 고통을 생각하도록 가르쳤다.19)

분노와 탐욕, 무지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의 전쟁이나 폭력과 갈등의 상태야말로 지옥도의 고통과 같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갈등의 발생은 이데올로기, 종교, 인종, 피부색, 그리고 부나 교육수준이라는 피상적 차이의 확대 때문이라고 보고, 행복을 원하며 고통을 싫어하는 ‘나’라는 보편 지성과 정서야 말로 세계평화를 위한 길임을 강조한다.20) 인간의 본성은 결코 공격적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이므로 평화로운 미래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19) 쫑카빠 저, 양승규 옮김(2006) pp. 124-135 참조.

20) 나혜목 옮김(2004) p. 82.



2. 현대 문명에 대한 고찰


앞 장에서 달라이 라마의 고제적 시각을 조명했다면, 본 장에서는 고를 유발시키는 집제(集諦)적 분석이다. 달라이 라마가 폭력에 대응했다면 이는 고제적 설명이며, 이와 달리 과학자들을 만나거나 환경문제, 교육문제 등에 대한 관심은 집제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다. 집제 분석을 통해 그는 고통을 벗어나 행복으로 나아가도록 주문한다. 학술이나 다양한 현안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고가 발생하는 원인을 규명하라고 한다. 그의 법문 중 집제의 형식을 지닌 과학, 환경문제, 교육문제를 중심으로 세 가지를 고찰한다.


첫째, 과학적 지성에 대해 달라이 라마의 관심은 매우 높다. 과학이 고를 유발시킴과 동시에 고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불교적 논리를 밝히기 위해 그는 많은 과학자들을 만나 토론했다. 과학 기술에 대한 선용이나 오남용에 대한 이분적 구분을 넘어 발명자나 사용자의 의식에 초점을 둔다.
과학자들이 번뇌의 힘에 지배되는 의식구조 분석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과학 기술에 대한 악의적 사용에 대처하는 방법은 결국 사랑과 자비뿐임을 천명한다.21)


그는 인류가 과학 기술의 진보에 따른 마음의 성장을 이룩했는 가를 반문한다. 객관적 진실을 두고 불교와 과학 사이에 이질감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특히 그는 물리학, 신경학,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학자들과 함께 과학과 불교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을 밝혔다. 그 목적은 결국 세계평화에 있음을 주저없이 말했다.22)


달라이 라마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명상 수행자의 뇌를 연구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의식(意識) 작용에 따라 육체가 변화하는 매카니즘을 입증했다는데 고무되어 있다. 의식이 몸을 인지하는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23)


1987년부터 2년마다 생명콘퍼런스를 개최하여 세계 각국의 석학들과 함께 불교와 과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1997년에 이르기까지 양자역학이나 신경학, 윤리학 등과 관련하여 불교와 만나는 다양한 주제들을 소화했다.24)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물질의 근원과 달라이 라마의 마음 설명들이 자연스럽게 교환되었다. 그는 특히 불교적 입장에서 인간 의식에 대해 과학적 분석과 설명을 시도했고, 환생에 대한 과학적 입장을 확보하려했다.25) 의식(意識)에 대한 인지적 설명을 통해 악의를 돌려 자비와 사랑을 추구하도록 하며, 마침내 세계평화라는 목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토론을 거듭하면서 달라이 라마는 마음과 물질의 근원에 분석을 넘어 마음 본성에 내재한 청정성(clarity)을 과학적 사유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려 하는 의도가 보인다. 특히 인도 불교논리학이 이룬 심식(心識)의 영역을 현대의 심리학 등 과학적 사유로 풀어내기가 부족하다는 면을 알리기도 했다.26)

더불어 달라이라마는 의식의 연속성이 윤회와 업, 공성에 대한 이해, 사성제의 분석 등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곁들이고자 하는 진전을 보인다. 인류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 정신적․물질적 모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21) 김석희 옮김(2008) p. 34.

22) 김석희 옮김(2008) p. 80.
23) 김석희 옮김(2008) p. 106.
24) 남영호 옮김(2007) p. 7.
25) 남영호 옮김(2007) p. 78.
26) 조원희 옮김(2003) p. 45.



둘째, 환경문제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과학이 낳은 또 다른 문제로 인식한다. 그는 1986년 ‘평화와 환경’을 주제로 한 환경의 날 행사에 메시지를 보내고 지구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엄을 언급했다.27)

그가 환경보전 및 생태학에 깊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광활한 티벳 고원의 자연이 중국에 의해 황폐화되었음이 직접적인 동인이다. 생태학과 불교는 상호의존을 근본 원리로 한다는 점에서 환경보전에 대한 그의 호소는 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실례를 들어 의존관계를 설명한다.

찰즈 다윈의 책 내용을 예로 들어, 고양이를 좋아하는 영국 여성들 때문에 쥐들이 번식하기 어려웠고, 이는 땅속 뒝벌들이 증가했다. 이 때문에 수분(受粉)이 증가하여 런던에 많은 꽃들이 피게 되었다고 했다.

또 종이를 예로 들었다. 구름이 없다면 비가 내리지 않고, 나무가 자라기 어렵고 이는 종이 생산이 어려워지게 됨을 의존성으로 설명했다.28)


달라이 라마는 육체와 정신과의 관계 또한 의존성으로 설명한다. 마음이 육체적 기관에 의존하듯이 정신의식(mental consciousess)은 뇌에 의존하는 생태적 기반을 갖는다고 했다.29)

맑은 빛의 본성이 존재하고 기능하기 위해서는 감각기관과 더불어 외부의 물체의 관계성을 기본적으로 향유해야 함을 강조했고, 이는 다시 자연환경으로 그 논리적 영역을 확대시킨다. 인간을 비롯하여 자연 환경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의존관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인간은 본래부터 온화한 성격을 내재했다고 하였다. 공격적인 이는 자신의 주변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며, 관대했던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종교든 어떤 사회건 그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동포애를 발휘할 수 있으며, 성공이나 불행, 슬픈 일, 어려운 짐 등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연민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증오로 대할 것이 아니라 선한 본성을 일깨워주는 교육적 태도가 필요함을 언급했다.30)


그가 환경 오염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데는 티벳의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많은 중국인의 티벳 이주, 그리고 각종 공장 건설과 가동에 따른 티벳고원의 황폐화를 우려하고 있다.31) 특히 중국은 티벳 암도 지구에서 40차에 걸친 핵실험을 진행했으며, 50만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전 핵무기의 3분의 1을 저장함과 동시에 화학 무기를 사용한 군사연습이 이루어졌다.32)

이에 따라 달라이 라마의 임시정부는 1989년에 ‘티베트에서의 평화와 인권의 회복을 위한 평화 5개 조항’ 이라는 평화안을 제출하였다. 그 항목은 가운데 ‘캄과 암도의 동부 지역을 포함한 전 티베트를 아힘사(비폭력)33)의 지역으로 바꿀 것’과 ‘티벳 자연환경의 복구와 보존’을 제안하고 있다.34)


특히 그는 티벳 고원을 자연공원이나 생물권을 지정하고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는 법을 제정하여 생태계 보호를 강조했다. 위험한 폐기물이 발생하는 공장 건설을 막고 기계류 제조 및 사용 금지를 제안했다.35)

이를 위해 티벳 고원의 환경생태 보전을 위한 단체들의 설립을 장려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1992년 6월에 개최
된 ‘리우 환경협약(UN환경개발회의)’ 시점을 전후하여 환경생태 보전에 대하여 다양하고도 많은 메시지들을 전달했다.


리우 환경협약에서 호소한 목적은 세계평화와 함께 티벳의 자연 환경과 문화 보전에 목적이 있다. 그는 1991년 6월 5일에 시작된 ‘국가 간 환경과 개발회의’에서 인간의 평등성을 먼저 주장했다. 국가, 문화, 종교,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추고 태어났음을 연설했다. 더불어 동식물 모두가 보호의 대상임을 강조했다. 그러한 의무감은 또한 북반부와 남반부의 빈부 격차, 자원배분의 불균형, 인종 갈등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함을 역설했다. 따라서 좁아진 지구의 환경 문제는 특정인이나 국가의 책임이 아닌 세계인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임을 강조했다.36)


27) 달라이 라마 홈페이지,http://www.dalailama.com/page.68.htm(2008.12.12 검색).
28) 류시화 옮김(2004) p. 142.
29) 조원희 옮김(2003) p. 43.

30) 이종인 옮김(2002) pp. 77-78 참조.
31) 심재룡 옮김(2007) p. 349.
32) 김한규(2000) p. 379.
33) 공경희 옮김(2002) p. 50. 달라이 라마는 아힘사(ahimsā)는 분별설부,경량부, 유식학파, 중관학파가 내세우는 불교철학임을 명시한다.
34) 고형일(2001) p. 9. 달라이 라마는 1988년 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그의 연설에 기초하여

① 캄과 암도의 동부 지역을 포함한 전 티베트를 아힘사(비폭력)의 지역으로 바꿀 것, ② 중국인 이주정책의
포기, ③ 티베트인의 기본적인 인권과 민주적 자유의 존중, ④ 티베트 자연환경의 복구와 보존, ⑤ 티베트의 장래와 티베트인과 중국인 사이의 관계에 관한 성실한 협상의 시작이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가 아시아 지역 사회 최초의 평화 권역(zone of peace)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35) Bstan dzin rgya mtsho, 강옥구 옮김(1999) p. 228-229 참조.

36) Aaddress on June 6, 1992 to the Parliamentary Earth summit (Global Forum) of the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he Environment and Development (UNCED), Rio de Janeiro, Brazil(http://www.dalailama.com/page.85.htm) (2008.11.29 검색).



셋째, 교육은 세계평화를 위해 종교적 설득과 함께 중요성을 말한다. 폭력과 차별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교육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가 가져오는 편리함과 행복감은 육체에 한정되며, 오히려 정신적 고통은 커져가는 문제점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비록 외면적 물질 향상을 꾀하더라도 마음 내면에 사랑을 키우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37)


달라이 라마는 물질주의가 세계평화를 저해했으며 지식 주입 교육이 화를 키웠다고 인식한다. 지식 교육은 결국 탐욕과 거만함, 그리고 무절제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종교 교육이 감소하면서 윤리에 대한 우려가 증가되었고 보았다. 선한 마음이나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었다고 보고, 이를 위해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행동 양식의 교육으로서 가정 내 부모의 모범적 생활을 꼽았고, 둘째는 교사의 윤리 교육에 대한 관점, 셋째는 자신의 문화적 자산과 종교를 사랑하되 편협한 민족주의나 종교적 배타성을 지양하도록 한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대중매체가 갖는 영향력을 순기능적으로 이용하여 시청자에 대한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38) 세계평화에 대해 교육의 기능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한 경우다.


불교와 관련하여 과학적 분석, 환경문제, 교육 등의 분석을 통해 현 시대가 고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전쟁이나 폭력의 원인을 알도록 한다는 점에서 사성제에 의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통과 그 원인을 알고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는 형식이며, 쫑카빠의 도차제(道次第)에 입각한다면 ‘작은 사람의 도차제’ 에 해당하며, 곧 ‘중간 사람의 도차제’로 나아가는 형식을 띠고 있다.


37) 김석희 옮김(2008) p. 29.

38) 도솔 옮김(2003) pp. 188-192 참조.



Ⅲ. 명상의 강조


1. 고에 대한 불교적 통찰


다음은 고에 대한 세속적 관찰이 아닌 불교적 성찰 단계이다.
앞 장(Ⅱ)이 갈등 상황과 그 원인 분석이 일반인 대상이라면, 본장(Ⅲ)에서는 불교인이 주 대상이다. 쫑카빠의 3단계 도차제에 적용한다면 ‘중간사람의 도차제’이다. 교의에 입각하여 고제를 알리고 고를 제거하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친다.


불자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주로 명상 체계가 중심이다. 다양한 불교관을 펼치되 철저히 경전과 논서에 기초한다. 그 대상이 티벳 국민이나 불자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대상이다. 이해가 쉬운 교의내용을 선택한다.


먼저 귀의를 강조하여 설명한다. 이는 세속적 고로부터 벗어나고자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들을 위한 가르침이다. 먼저 삼보에 귀의하되 진정의 마음으로 맹세할 것을 강조한다. 위없는 지혜를 갖추고 나를 열반으로 인도하는 불타를 믿되, 불타가 가르친 다르마(dharma)와 그 다르마에 의지하여 배우고 닦는 승중(僧衆)들, 즉 삼보에 귀의해야 함을 설명한다.

불타는 갖가지 방편을 갖추며, 완전한 자비와 평등심을 갖추고 있으며, 다르마에도 같은 자량이 내재되어 있다고 했다. 승가 역시 제한되긴 하지만 우리를 열반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한다. 그리고 삼보의 기능과 공덕이 분명함을 가르친다. 부처님에 귀의하면 구도의 길잡이가 생기며, 다르마와 승가에 귀의하면 도반을 얻음과 동시에 수행 동기를 부여해준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높은 단계의 환생과 더불어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인연을 갖추게 된다고 하였다.39)


또 달라이 라마는 삼보에 대한 실질적 귀의를 위해 제불 보살을 관(觀)할 것을 말한다. 그 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수승한 불신과 불어와 불심을 관하되, 그 분들이 도를 구하기 위해 전생으로부터 고행했고, 마침내 대자비인 측은지심을 갖추고 있음을 관하라는 것이다. 다르마는 고통을 멸하고 열반으로 이끄는 진귀한 보석으로 명상하라고 가르친다. 무오류의 뛰어난 자질이 있음을 마음으로 확신하라는 것이다.40)


쫑카빠는 귀의하는 원인으로부터 그 대상을 정하고 명확한 귀의 이유, 그리고 공덕을 세밀히 설했다. 큰 은혜를 생각에 떠올리고 항상 삼보에 공양하도록 하며, 진심어린 불자가 되었음을 확신하라고 한다.41) 달라이 라마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입으로 염송하며 완전히 의탁하는 인연을 강조한다.


귀의를 통해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면 고를 벗어나 행복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한다. 그는 지혜롭지 못한 무명의 중생이 업을 짓고 인과의 윤회로 내몰린다고 하였다. 전쟁이나 폭력 등 고, 즉 노병사의 상황은 무지로부터 초래했음을 말한다. 그가 12연기설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무명을 원인으로 의지와 의식 등의 순서로 고통이 발생하는 과정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무명임을 알고 이를 끊음으로서 노병사의 고를 끊을 수 있다고 하였다.42)


무명에는 탐욕, 분노, 자만심, 증오, 적개심 등이며, 특히 달라이라마는 탐욕과 적개심을 근본 무명으로 분류하였다. 갈등을 양산시키고 인류를 윤회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큰 적이라 하였다.43) 따라서 무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39) 진우기․신진욱 옮김(2001) p. 139.
40) 김은정 역(2003) p. 149.
41) 양승규 옮김(2006) pp. 151-162 참조.

42) 주민황 옮김(2007) p. 49.



다음으로 달라이 라마는 무지로부터 발생한 번뇌로 인해 다양한 업을 짓는 과정을 설명한다.

달라이 라마는 고통이나 쾌락과 같은 우리의 체험의 결과들은 이전의 원인 때문이었음을 알도록 한다. 원인과 조건들이 상호의존 관계라고 하였다. 도미노 놀이와 같은 현상임을 지적한다. 다른 생명을 취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다른 이의 물건을 훔쳤을 때, 그 과보가 분명히 존재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업인에 대해 네 가지를 밝히고 있다. 이는 과보의 증가, 상응하는 과보, 정확함, 사라지지 않는 업의 씨앗으로 규정했다.44) 악업과 선업에 대해 같은 과보로서 수행자는 반드시 인식해야함을 강조한다.

그는 ‘작은 사람의 도차제’에서 업인과 그 과보에 대한 판별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따라서 불자가 해야 할 기도, 경배, 봉헌 등을 행하고, 부정(不淨)행에 대한 절제를 생활화할 것을 주문한다.45) 십악업과 십선업을 대칭시키고 생활에서 지킬 것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더불어 그는 업을 수동적 결과로 보고 이에 안주하기보다 선인(善因)을 위한 능동적 해석을 당부한다.46)

이를 위해 그는 일곱 가지의 착한 생활을 제시한다.

첫째는 일체의 유정이 어머니라는 인식, 둘째는 중생에 대한 자애로운 명상, 셋째는 자애로움에 대한 보답, 넷째 유정에 대한 사랑, 다섯째 유정에 대한 측은한 마음, 여섯째 유정에 대한 책임감, 일곱째 발보리심이다.47)


그는 하계의 윤회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현재의 행동은 과거의 업인과 명확한 연기(緣起) 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신체의 무지와 망상을 가리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고통까지도 겪게 될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또한 마음의 청정을 더럽히는 장애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개인적 의지와 수련을 통하여 속박되었던 자신의 마음을 바꿀 수 있으며, 과거 행위로 인한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48)


달라이 라마는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하고, 그것은 인과 법칙을 넘어서 명상하라고 당부한다. 고통과 그 고통을 초래한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윤회를 벗어날 서원을 세우라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육도에서 윤회를 벗어나는 것과 같은 해방감을 맛볼지라도, 유정천 이하의 하계에 있는 한 그것은 고통이라 하였다. 또 중생들은 은밀하게 확산되는 고통을 떠안고 있으며 이는 오염된 행위와 망상의 영향이라는 것이다.49)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높은 단계의 환생(khul sku, 뚤꾸)을 통해 능동적 윤회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윤회와 환생을 구분한 것은 이미 쫑카빠의『람림 첸모』(도차제광론)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성문은 윤회를 벗어나려할 뿐이지만, 보살은 윤회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쫑카빠는『비밀부사의경』을 인용하여 보살은 성문과 달리 생로병사 등을 싫어하지 않고 발원과 대비의 힘으로 윤회를 이롭게 보며, 중생을 위해 화신한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또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부르며, 보살의 서원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다.50)


달라이 라마는 그러나 역대 달라이 라마들이 단 하나의 의식(意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더불어 네 가지로 윤회와 환생 개념을 설명한다.

첫째는 업보에 의한 일반적 윤회이며, 둘째는 부처가 중생 몸으로 화현하는 것이며, 셋째는 과거의 수행으로 인해 태어날 조건 및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며, 넷째는 축복된 환생으로서 일반적 능력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 하였다.51)

달라이 라마는 유가학파의 윤회 개념을 설명하면서 환생은 감각적 의식이 아니라 아뢰야식의 '나', 즉 '자아'의
흐름으로 본다고 하였다. 이는 제6식에서 말하는 ‘영혼’과 같은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회의 수동성과 환생의 능동 개념의 설명을 통해 달라이 라마는 고통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요구한다. 능동으로서 환생이 정신적 수행을 요구하는 것인 만큼 무지로부터 비롯된 고통은 명상에 의해 제어할 수 있음을 밝혀준다.


43) 김철․강건기 옮김(1988) p. 198.
44) 진우기․신진욱 옮김(2001) p. 159.
45) 김은정 역(2003) pp. 161-165 참조.
46) 류시화 옮김(2001) p. 175.

47) 김은정 역(2003) pp. 193-204 참조.
48) 지창영 역(2001) p. 284.
49) 김은정 역(2003) p. 168.
50) 양승규 옮김(2006) p. 236.

51) 김충현․김선정 옮김(1994) p. 147.



2. 사성제의 현실적 적용


달라이 라마는 세계인들이 처한 갈등상태가 고의 상태임을 알게 하는데 역점을 둔다. 곧 현안들을 사성제에 의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불교에 관심 깊은 불자나 학자, 그리고 자신의 저술을 읽는 독자들을 향해 사성제 내용을 삽입한다. 사성제를 통해 청중 및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폭이 넓기 때문이다.

사성제는 쫑카빠의 ‘중간 사람의 도차제’로 분류한다. 달라이 라마의 저술 강연 등을 사성제적 의미에서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현안 설명과 그 교감으로서 사성제 적용이다.

전쟁으로 인한 국가 간 갈등 혹은 내전은 그 자체가 고통이며 지옥세계와 다를 바 없음을 상기시킨다. 교의적 내용을 깊이 언급하지 않으며 해결 방안 모색에 중점을 둔다. My Land, My People(『티벳, 나의 조국이여』) 혹은 Freedom in Exile(『유배된 자유』), 그리고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Nobel Peace Prize Acceptance Speech)’ 등이 그것이다. 불교와 상관없이 세계인들에게 고통을 버리고 평화로 나아갈 것을 당부하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불어 그의 활동은 지구촌을 조망하면서 무지(無智)에서 발생하는 폭력, 인종차별, 환경문제, 빈부격차, 기아문제, 종교문제 등이 고통의 상태임을 설득시킨다. 그리고 그들에게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성제 구조를 알게 한다. 특히 지구 환경을 착취하여 벌어지는 환경고(環境苦)를 제시한다. 지구와 생명들의 의존적, 균형적 관계들을 파괴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발생할 환경 재앙들을 방지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사성제 교의를 말한다.52)


불자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위한 법문일 때도 사성제가 적합하다고 보았으며, 불교를 알리고, 귀의와 명상으로의 인도가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가 행한 대부분의 강연이나 저술에 삽입되는 이유이다. 고통을 알았다면 이를 싫어하고 행복을 추구하도록 동기 부여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52) 김은정 역(2003) p. 145.



둘째, 불자들을 위한 사성제 법문으로서 명상 수행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된 저술은 The Dalai Lama Four Noble Truths(삶의 네 가지 진리), ESSENCE OF THE HEART SUTRA(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 등이다. 더불어 다양한 명상의 실천을 권하는 저술에도 사성제 교의와 통찰 방법들을 설명한다.


무지의 노예로부터 벗어나는 길로서 달라이 라마는 12연기의 분석을 보여준다. 무지로부터 노사(老死)의 고통이 발생하는 12가지를 통찰하되, 다시 그 반대로 소멸하는 과정의 역순의 연기 과정 관찰을 제시한다. 사물 혹은 ‘나’ 라는 실체가 의존해서 나타난 결과일 뿐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다는 공성의 이해와 함께 무지가 만들어내는 번뇌들을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53) 더불어 그는 지(止)와 관(觀)을 수반한 37도품을 수행함으로써 다양한 근기들이 윤회의 고통을 벗고 참된 길의 열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54)


달라이 라마는 공성에 대하여 논리적 증명이 가능하다고 언급한다. 눈에 보이거나 물리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 또한 추론과 논증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공성에 대한 통찰을 통하여 해탈 또한 추리가 가능함을 인정해야한다고 하였다. 공성에 대하여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해탈의 가능성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55) 강고한 ‘나’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은 공성을 통찰함으로서 무지의 노예에서 벗어나며,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윤회를 버리고, 열반을 얻는 마음이라 하였다.56)


53) 김충현 옮김(1994) pp. 109-116 참조.
54) 지창영 역(2001) p. 296.
55) 진우기․신진욱 옮김(2001) pp. 240-243 참조.
56) 주민황 옮김(2007) pp. 54-57 참조.



셋째, 학자 혹은 지성인들을 위한 사성제 적용이 빈번하다.

불교적 설명은 물론 과학적 분석을 통해 고의 원인과 치유를 강조한다. The Dalai Lama at Havard(하바드의 달라이 라마)에서 그의 전법 방식을 잘 보여준다. 1981년 하바드대학에서 5일간 강연한 내용에서 그는 '집제와 도제', 그리고 '고제와 멸제'를 각각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설명했다.

고통의 원인을 아는 집제와 고를 끊고 열반에 이르는 도제를 다양하게 응용한다. 특히 ‘변화의 고통’을 제시하면서 일시적 행복이 다시 고통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다. 새 차를 소유한 행복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는 다시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참다운 행복이나 영원한 기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57)


그의 하바드대학 강연 일정은 고에 대한 인식과 그 원인을 찾는 과정, 그리고 열반과 해탈이 가능함을 알고 이를 위해 명상하고 지혜를 얻는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 불교학 전공자들을 위해 그는 윤회와 업, 번뇌, 종교와 과학, 명상법 등에 대해 강의했다.
교의와 명상 실천에 대한 다양한 질의가 있었지만 그의 강연은 사성제의 구조에서 펼쳐졌음을 볼 수 있다.58)


57) 나혜목 옮김(2004) p. 33.

58) 김충현 옮김(1994) p. 8.



넷째, 일반 독자나 청중들을 위한 사성제 적용하고 고통을 행복으로 전환할 것을 말한다.

The Art of Happiness(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에서 그는 무지를 제거하고 마음속에 내재한 지혜를 불러 일으키라고 한다. 강력한 자아에 대하여 논리적인 무아의 지혜로 대응하되 의식에서 망상을 분리하라고 하였다. 생활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마음들도 지혜로서 관조할 때 무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59)


사성제는 누구에게나 이해 가능한 주제이다. 달라이 라마는 사성제를 통해 불교의 우주관과 진리관 내세관 그리고 인간관을 전달한다. 또한 세계인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의로 본 때문이다. 또한 그는 사성제야말로 고를 이해하고 평화를 목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효과적인 주제로 인식했다. 더불어 티벳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로 본 것이다. 쫑카빠가 ‘중간사람의 도차제’에서 사성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그대로 달라이 라마의 저술로 연결됨을 볼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사성제를 ‘중간 사람’을 위한 가르침에 배당한 것은 보리심의 발현, 즉 보살행 이전에 고에 대한 세밀한 고찰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사성제를 듣는 사람은 불교에 귀의 했거나, 인연이 있거나, 교의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로 본 것이다. 또 종교와 상관없이 세계의 지성인들도 이 단계라고 본 것이라 할 수 있다.60)


쫑카빠는 집제로서 윤회에 들어가는 과정을 세밀히 설명한다.
번뇌가 생기는 구조, 번뇌로 인해 업을 쌓는 것, 그 업에 의해 태어남과 죽는 방식에 대한 것들이다. 특히 윤회의 주 원인을 번뇌로 보고 번뇌가 발생하는 10가지인 탐욕, 성냄, 거만, 무명, 의심, 살가야견, 변집견, 견취, 계금취견, 사견을 세밀하게 나열한다.61)
더불어 업의 쌓임을 통해 생사 및 중유의 방식이 결정되며, 이 과정에서 선․악․무기(無記)의 역할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62) 중간 사람의 분석적 입장을 설명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 역시 쫑카빠의 사상을 이어 ‘중간 사람의 도차제’ 성격으로서 명상 실천에 적용하도록 당부한다. 고통을 사무쳐보고 집제(集諦)로 나아가기 위해 번뇌를 고찰하라고 한다.

번뇌(kleśa)는 티벳어로 뇐몽(nyon mong)으로서 ‘내적 괴롭힘’이며 마음의 불안을 야기시키고 고통을 유발한다고 한다. 집착과 탐욕, 분노, 자만심, 질투 등 부정(不淨)적 경험의 상태들이 번뇌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탐욕과 미움과 무지는 또 다른 많은 번뇌를 유발시키므로 반드시 끊어야할 대상으로 지목한다.63)


59) 강도은 역(2002) pp. 158-159 참조.
60) 지창영 역(2001) p. 119.

61) 양승규 옮김(2006) p. 222.
62) 양승규 옮김(2006) p. 230.
63) 주민황 옮김(2007) p. 47.



Ⅳ. 대승 사상의 구현


1. 공성의 현실적 이해


달라이 라마가 목표한 바 세계평화와 개인의 행복 추구, 그리고 티벳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성(空性) 법문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와 관련된 저술에서 빠지지 않고 공성을 언급한다.
세계인들의 보편적 지성에 호소할 때 공성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내용임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종교이거나 타종교를 신봉하는 자에게 공성의 교의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음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을 시도한다. 경전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이면서도 용이하게 설명하려 한다. 서구인들이 공성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러한 점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유식학 계열과 중관학 계열의 ‘아(我)’의 부정을 종류를 말한다.

실체로서 자아란 성립하지 않는다는 아공(我空),언어적 표현이나 개념적 관념에 의해 성립할 수 없다는 법공(法空),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공, 특별한 실체적 방식에 의해 존재하는 대상이 없다는 네 가지이다.64)

유식학의 이원론적 부정에 이어 자립논증중관파(自立論證中觀學派)의 학설, 그리고 귀류(歸謬)논증중관파의 입장을 소개했다. 아울러 그는 모든 학파에서 공통의 견해는 ‘아’의 부정이 일상생활의 관습적 세계의 존재까지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업과 인과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는 것 또한 각 학파의 공통된 의견이라 했다. 이 부분에 있어 귀류논증중관파가 가장 성공적인 해석이라고 평가한다.65)


달라이 라마는 고제와 집제의 실체를 알았다면, 도제와 멸제로 나아가기 위해 공성을 이해하라고 한다. 이를 위해 오감과 의식에 자성이 없다는 강조를 통해 공의 견해를 키우도록 권유한다. 그는 먼저 어떤 물건을 앞에 놓고 색깔이나 형태, 혹은 재료의 부정을 통해 그 물건의 이름값이 본래부터 없었음을 차례로 논증한다. 더불어 산티데바의 ‘몸과 감각, 그리고 감정 등’을 예로 들어 그 실체 부정한다. 우리가 느낀 호오의 감정이나 지각했던 모든 것들이 오온이라 할 때, 그 오온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을 본질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66)


64) 김충현 올김(1994) p. 141-143 참조.
65) 주민황 옮김(2000) p. 109.



『반야심경』을 해설하면서 달라이 라마는 공성의 이해 이전에 진지하게 고(苦)를 통찰함과 더불어 37도품을 열거하고 이들을 주의 깊게 자각할 것을 주문한다. 더불어 그 고가 발생되는 원인으로서 무지에 이르기까지 12연기 과정들을 면밀히 관찰할 것을 강조한다.67)

그는『반야심경』해설에서도 공성의 네 가지 종류를 각 학파별로 상세히 설명한다. 더불어 사물들에게 내재하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타나 있는 현상과 대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넘어간다. 그는 용수의『중송』24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연기적 관점에서 현상과 공의 관계를 설명한다. 귀류논증파의 경우인 ‘의존’이라는 개념적 명칭 인용하여 현상이란 단지 이름값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68)


제1대 판첸 라마의 저술 가운데『무지를 논함』덕분에 달라이라마는 공성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중생과 사물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과 연기 및 공성의 지혜 사이에 벌어진 열띤 토론을 담고 있는데, 달라이 라마는 이를 쫑카빠의『보리도차제광론』에 나오는 위빠싸나 명상과 설명이 비슷함을 확인했다고 하였다. 그는 이 내용을 다시 중관학파의 관점으로 검토하고 자성으로 인식되던 자신의 무지를 없앴음을 경험적으로 밝히고 있다.69)


공성을 여러 가지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의존관계에 있어 달라이라마는 도자기를 예로 들어 공성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세 가지 중 첫째는 원인과 결과에 따라 점토에 물을 부어 다지고 굽는 과정의 원인에서 결과인 도자기라는 명칭이 주어진 다는 것이다. 둘째는 도자기의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 등 도자기 자체적으로 의존적 관계를 갖는다고 하였다. 셋째는 도자기와 주위의 다른 사물과 의존 관계를 덧붙였다. 이로써 도자기 하나에 다양한 상호의존관계를 설정한다. 결국 그것들은 인간이 붙인 명칭에 불과하며, 따라서 공임을 논증한다.70)


66) 김석희 옮김(2008) pp. 134-136 참조.
67) 주민황 옮김(2007) pp. 39-46 참조.
68) 주민황 옮김(2007) p. 136.
69) 이종복 옮김(2004) pp. 166-178 참조.

70) 도솔 옮김(2003) p. 48.



달라이 라마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공의 현실적 응용을 시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성제의 숭고한 진리를 우선적으로 통찰해야 함을 전제한다. 진정으로 고통을 살필 때 진정한 행복에의 추구가 시작되며, 멸제로 나아간다고 하였다. 사성제를 통한 상호의존의 공성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행복의 추구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하였다.71)


『용서』에서 달라이라마는 상호의존에 대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거나 강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는 상호의존의 원리는 더 넓은 시각을 갖도록 한다고 말했다.


“더 넓은 마음을 갖고, 분노나 미움과 같은 파괴적 감정에 덜 집착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더 많이 용서하게 됩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뗄 수 없이 서로 의존하며,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적이나 이웃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달라이 라마는 시사 문제에 상호의존의 원리를 적용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세계적으로 후세인을 비난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는 그가 홀로 독재자가 된 것이 아니라 이전의 헤아리기 어려운 상호의존적 관계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역설했고, 사담 후세인 역시 상황 변화에 따라 매우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또한 상호의존적 관계는 그대로 빈라덴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72)

더불어 중국에 대한 입장 또한 이와 같은 입장에서 견해를 피력했다. 한 소년 앞에서 달라이 라마는 중국을 일컬어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잔인하고 거짓말쟁이입니다.”라고 했고, 뒤이어 평등과 약자를 돕는 기본 이데올로기와 달리 자신들의 호주머니만 채운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라 할지라도 상황 즉 상호의존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생각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73)


달라이 라마는 공성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공의 견해를 키우는 수행 단계도 소개한다. 이를 위해 수행자는 듣고서 얻는 문혜(聞慧), 생각으로 얻는 사혜(思慧), 명상으로 얻는 수혜(修慧)를 키워야 할 것을 주문한다.

문혜를 통해 공의 설명을 듣고서 자량도(資糧道)를 얻고, 명상으로 가행도(加行道)를, 그리고 공을 직접 체험함으로 얻는 견도(見道)의 단계를 소개하였다.

보살10지의 단계에 접근하며, 초지에서 견도를, 나머지 9지가 수도임을 정리한다. 특히 8지, 9지, 10지는 청정 3지(三地)로서 무학도에 이르러 부처님의 자성신(自性身)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74)


공성은 불교적 이해를 요구하는 교의이며 명상법이지만, 달라이 라마는 쉽게 공성을 해석하고 응용하도록 도와준다. 다양한 비유와 예시를 들어보임과 동시에 자신 또한 공성에 의한 생활을 영위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두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이 착각이거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밝혀줌으로써 무서움이 줄어든다는 공성 응용을 여러 곳에서 보여준다.75)


티벳을 탈출하기 이전까지 달라이 라마 그는 제정일치의 지도자였다. 티벳의 독립과 문화를 지키기에 그의 생을 바치고 있다.
그 방법은 무력이 아닌 평화이고 그 사상적 이념은 불교이다. 공성(空性)의 보급이야말로 달라이 라마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임을 확신했다. 욕망과 증오가 발생하는 토대인 ‘나[我]’ 라는 집착 때문에 개인문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 국제간의 문제들이 발생한 이유로 본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 방법 역시 무아의 공성이 발현될 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71) 공경희 옮김(2002) pp. 51-55 참조.
72) 류시화 옮김(2004) p. 141; pp. 147-151 참조.

73) 류시화 옮김(2004) p. 100.
74) 김석희 옮김(2008) p. 146
75) 주민황 옮김(2000) p. 116.



2. 보살행의 요구


공성의 강조에 이어 달라이 라마는 그 공성 통찰에 기반하여 보살행을 하라고 말한다. 열반을 이루기 위하여 도제를 수반하되 공성의 체득이라는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76)


달라이 라마는 대승행을 위하여 보살을 반드시 공성에 통달해야 함을 말한다. 그는『반야심경』해설에서 ‘관자재보살이 철저히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한 수행을 했다’는 부분과 ‘오온이 실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는 부분을 인용하여 보살의 공성 통찰을 말한다. 더불어 관자재보살이란 위대한 자비심으로 중생에게서 절대로 관심을 떼지 않고 염려하며 지켜보는 존재라고 하였다.77) 보살은 곧 공성을 통찰함으로써 지혜와 자비를 갖춘다고 말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자비심과 결합된 공의 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는 ‘공+자비=행복’의 공식을 산출하고 투명한 시선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하며, 편견 없는 시선일 때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상과 사물들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반드시 공에 대한 진정한 통찰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78)

그는 수행자의 진정한 통찰은 이타주의를 수반한다고 하였다. 육바라밀의 실천 이전에 기본적으로 이타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산티데바가 ‘자타(自他) 교환’을 통해 평등을 실현한다고 말했듯이, 중생 모두가 내 몸의 일부와 같이 대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아가 달라이 라마는 자신 행복보다 지구 중생들의 행복을 우선하는 이타주의를 주문한다.79)


76) 황국산 역(2000) p. 202. 대승의 실행으로서 여섯 가지의 도라고 하였다.사성제 가운데 도제임을 밝히고 있다.
77) 주민황 옮김(2007) p. 99.
78) 류시화 옮김(2004) p. 159.
79) 김충현 옮김(1994) p. 227.



육바라밀을 행하기 위해 그는 보리심과 자비심을 발심하라고 한다. 대승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야 하며, 이는 아라한의 소승적 자비심이 아니라 일체지(一切智)를 얻으라는 정진을 요구한다. 그것은 모든 중생을 돕기 위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태도이며, 이 때 공에 대한 명상 또한 새로운 차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보리심이 필요하며 그것은 큰 자비와 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 하였다.80)
중생들을 위한 보편적 자비심이며, 이를 ‘위대한 자비심(maha karuna)’으로 표현한다. 달라이 라마는『현관장엄론』을 인용하여 진정한 자비심과 아울러 자신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보리심 발현을 위해 자신만의 해탈로는 부족하며 이타주의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81)


달라이 라마는 보리심을 나무의 몸통에 비유한다. 수많은 가지와 꽃을 피우는 근간이 되듯이 육바라밀이 대승행이라는 것은 보리심 때문이라는 것이다.82) 대승행에 대하여 달라이 라마는 쫑카빠의『도차제광론』에 배경을 둔다. 쫑카빠는 발보리심을 ‘큰 사람의 도차제’에 배당하고 대승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띠샤에 전승된 7가지 인과의 가르침과 산티데바의 보리심 수습방법을 소개했다.

7가지 인과법이란, 원만한 깨달음←보리심←수승한 마음←대비←대자←은혜의 보답←은혜를 떠 올리는 것←어머니로 보는 순서이다.83)

쫑카빠는 또 산티데바의 논서를 배경으로 보리심의 수습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이타를 위해 자타(自他) 즉 자와 타의 위치를 바꿀 때의 공덕과 이를 수습하는 단계를 소개하였다.84)


80) 진우기․신진욱 옮김(2001) p. 204.
81) 주민황 옮김(2000) p. 126.
82) 진우기․신진욱 옮김(2001) p. 216.
83) 양승규 옮김(2006) p. 254.
84) 양승규 옮김(2006) pp. 272-278 참조.



달라이 라마는 자비심의 발현을 위해 현실적 실천을 요구한다.

대승행을 위해 반드시 연민을 느낄 것이며 그 개념을 개인적 차원이 아닌 지구 공동체로 넓힌다. 인간 지성은 문자와 언어, 그리고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편리성을 확보했지만 동시에 많은 갈등을 야기했고 이것들이 연민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대상을 보살피는 연민의 마음, 즉 자비심에 의한 개인의 변화야말로 지구공동체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그는 자비심 발현을 위해 여섯항을 열거하고 그 방법을 일깨운다.

첫째, 자비란 집착도 동정심도 아니며, 둘째, 자비는 내면에 힘이 생기도록 하며, 셋째, 인간본성은 본래부터 자비심을 내재하고 있으며, 넷째, 자비심도 훈련이 필요하며, 다섯째, 자비심은 폭력을 대화로 유도한다고 하였다.85)


그 가운데 현실적 인욕바라밀을 중시하고 또 강조한다. 인욕은 적(敵)에게 배우는 것이며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티데바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설명한다.86)

그는 산티데바뿐만 아니라 쫑카빠의 가르침과 여러 논서들에 근거하여 여러 상황에 육바라밀을 적용한다.

쫑카빠는 육바라밀을 ‘큰사람의 도차제’로 설정하고 여러 경론에 근거를 추출하고 해설한다.87) 여섯 바라밀에 대한 상세한 제시와 더불어 실천에 따른 공덕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 더불어 사섭법을 설하고 육바라밀의 보조행으로 실천하도록 하였다.88)


85) 주민황 옮김(2000) pp. 143-144 참조.
86) 김충현 옮김(1994) p. 234.
87) 양승규 옮김(2006) p. 319.
88) 양승규 옮김(2006) pp. 350-353 참조.



달라이 라마는 육바라밀에 대한 경론적 근거를 중시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으로 응용이 가능하도록 설명하는데 비중을 둔다. 응용적 내용을 중심으로 달라이 라마의 육바라밀의 해설을 살펴본다.


① ‘남에게 너그러움을 베푸는 수행이다.

자기가 가진 것, 자기의 몸, 선한 행동 등 남에게 기꺼이 주려는 태도. 소유욕인 탐욕을 다스리는 공덕이 생긴다. 자신에게 쌓인 공덕까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자비로운 마음이며 관용이다.’

달라이 라마는 남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확고하고도 강렬한 동기를 주문한다.


② ‘도덕적 계율 수호는 크게 세 가지이다. 선을 유발시키고, 잘못된 행동의 회피, 그리고 절제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겠다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최고의 수준까지 끌어 올릴 때 완성된다. 그리고 집착, 증오, 분노의 불길을 끌 수 있다.
계율 수행은 집착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으며, 올바른 견해를 갖고자 함이다.’ 계율을 지키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존경받을 뿐만 아니라 그가 밟는 먼지조차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그는 계율은 부정정인 감정과 싸울 수 있는 토대라고 하였다. 또한 신체에 비유할 때 계율은 강한 힘을 가진 역사(力士)라 하였다. 수행을 위한 방어 도구로서 부정적 감정의 지배를 받을 상황을 막아주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윤리적인 생활을 한다면 생활의 질이 개선되며 궁극의 행복과 더불어 존경받게 된다고 했다.

가족과 공동체에 다양하고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며 개인이 건강한 정신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준다고 하였다. 특히 명상 생활에서 고요한 마음을 유지시키는 손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89)


③ 참고 견딤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다른 사람이 해를 끼쳐도 당황하지 않는 자세, 닥쳐온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 다르마를 수행하는데 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인욕은 수행자가 화를 냄으로서 그 간 쌓아온 공덕들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상황을 모면해준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화를 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끊임없이 망상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과거의 카르마로 얽힌 인과이다.’

적(敵)은 오히려 선지식이며, 자비심과 연민을 가지고 성낸 사람을 대할 것을 당부한다.
더불어 사성제가 가리키는 다양한 고통들도 즐겁게 인내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말한다.


④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것은 선한 행동을 즐거워 한다는 것이며, 낮은 윤회계에 떨어지지 않도록 수행의 토대를 제공한다.’
정진은 피로감, 낙담, 무력감 등을 느끼지 않도록 하며 목표한 바를 완수하도록 도와준다고 하였다.


⑤ ‘깊은 명상을 통한 집중이다. 실재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생사의 순환에서 오는 고통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나 생사에 매달려 있는 우리 자신들의 상태는 아주 산만하여 억제가 되지 않는다. 선한 어떤 대상에 골똘히 집중시킴으로서 전념할 수 있도록 하며, 이는 보살 수행의 기초가 된다.’ 달라이 라마는 쫑카빠의 말씀을 인용하여 ‘누구나 망상의 영향아래 있지만 명상을 통한 마음의 조절 기능’이 있다고 하였다.

효과적인 명상을 위한 지(止)와 관(觀)의 방법들을 잘 숙지할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항상 특정한 목적을 향한 명상이 되어야 함을 당부한다.


⑥ ‘지혜바라밀은 계율 등 다른 바라밀을 닦는데 큰 힘이 된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심오한 방법이며, 모든 경전에서 찬탄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왕과 같아서 집착이나 욕망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 모두가 지혜 덕분이다.

또한 무지(無智)에서 발생한 극단적 사고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지혜는 무지에 대응하여 다르마를 수행하며, 현상의 본질을 구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천임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한다.90)


89) 공경희 옮김(2002) pp. 87-88 참조.

90) 달라이 라마는 육바라밀 실천에 대한 해설에서 산티데바의『입보살행론』, 쫑카빠의『보리도차제광론』 등에서 근거한다. 황국산역(2000) pp. 202-213에서는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 강도은 옮김(2002) pp. 198-224에서 육바라밀에 대한 현실적 응용을 해설했으며, 김충현 옮김(1994) pp. 227-238에서는 논리적 접근이 보인다. 김충현․김선정 옮김(1994) pp. 113-119에서는 육바라밀을 정의적 설명이 돋보인다. 김은정 옮김(2003) pp.239-246에서는 육바라밀을 육원(六圓)으로 번역하고 그 여섯 가지를 관용․덕행․인내․즐거운 노력․집중․지혜라고 하였다.



위에서 열거한 육바라밀에는 반드시 보리심을 이끄는 이타주의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것은 공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더불어 실천적 명상이 더해진 상태의 이타이다. 이타 정신은 사바세계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사색과 명상의 기반에서 길러지므로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타적 정신이 수반될 때 보리심을 통한 자비가 가시화되며, 그것이 육바라밀로 나타나게 됨을 설명한다.91)


달라이 라마의 저술들 대부분은 현대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지성에 초점을 맞춘다. 교의적 설명이나 자세한 수습법보다 오히려 육바라밀 실천이 강렬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저술 대부분에 육바라밀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이는 현실 생활 및 사고(思考)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육바라밀 설명을 위해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세밀함과 더불어 교의에 근거한 논리적 서술로 이어진다. 특히 승의제(勝義諦) 입장에서 세속제를 깨우친다는 측면에서 달라이 라마는 공성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주문한다.


달라이 라마의 활동으로 라마교로 치부되던, 고립적 티벳불교가 세계에 소개되었고, 교의와 실천을 일상생활과 연결하는 혁신을 가져왔다. 달라이 라마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이면에는 고도의 불교적 논리와 분석적 접근, 용이성, 간명성, 적절한 비유 등으로 인해 불교권이 아닌 서구인들도 반갑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의 여러 저술에서 육바라밀 부분은 후반부에 배치한다. 결국 교의와 명상은 발보리심, 자비, 용서, 연민, 인욕, 관용 등의 바라밀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평화를 위한 길이며, 티벳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크나큰 힘으로 보았던 것이다.


91) 김충현(1994) p. 227; 주민황 옮김(2007) p. 175; 이거룡 옮김(2006) p. 63; 나혜목 옮김(2004) p. 46.



Ⅴ. 맺음말


티벳불교는 과거 라마교로 알려졌고, 독특한 고립문화로 인식했다. 달라이 라마의 활동으로 인해 티벳불교의 실상이 널리 알려졌고, 더불어 인도 후기불교의 전통을 간직했음이 드러났다. 그는 이 시대의 현자이며 모범적 인물로 거론된다. 또한 교의와 명상을 누구에게나 이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의 가르침은 평이하지만 티벳논사들의 지혜가 서려있다. 세계를 향한 그의 전법론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는 사성제이다. 사성제는 또 쫑카빠가 제시한 3단계의 도차제 방식에 포함된다.
이 두 가지의 구조를 따라 고(苦)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다음으로 공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의존성, 즉 연기의 예시를 충분히 이용한다. 공의 이해를 바탕으로 육바라밀의 현실적 응용을 강조하는 순서이다.


교의와 명상이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 보았고, 보복이 아니라 적(敵)을 스승으로 삼는 교화 방식을 보여준다. 티벳불교가 새로운 정신문화를 창출함과 동시에 미래사회를 구원할 보고(寶庫)임을 시사한다.



참고 문헌 -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