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명상과 심리치료
강미자(경성대학교)
Ⅰ. 서언
Ⅱ.『반야심경』명상과 심리치료적 요인
1. 『반야심경』명상
2. 심리치료적 요인
1) sati를 통한 지금-여기에 대한 자각
2) 空통찰을 통한 여실지견
Ⅲ. 空통찰과 심리치료
1. 空통찰과 정신분석치료
1) 의식과 무의식의 空통찰
2) 자아의 空통찰
2. 空통찰과 인지치료
1) 전도몽상과 인지오류
2) 연기론에 기반한 인지치료
Ⅳ. 결언
Ⅰ. 서언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고 한다. 이러한 자살과 같은 사회문제는 사회구성원들이 급변하는 새로운 상황에 원만하게 적응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즉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면서 현대인들은 소외감 등을 포함한 극도의 고립감을 느낀다. 급변하는 주변 상황과 인간관계에 대한 부적응과 소외감에서 비롯되는 우울감과 불안이 심해지면서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존 카밧진(kabat-Zin, J. Z.)1)은 관계의 고립감에서 벗어나려면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연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연습은 자각을 키워 사고와 정서 반응에 사로잡히지 않는 방법인데, 불교에서는 이를 智慧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트레스가 만연한 사회상황 속에서 마음이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에 대한 자각이 중요하다. 자각력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준다. 자각을 바탕으로 사고와 정서반응에 사로잡히지 않는 지혜를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불교에서는 명상이라는 수행법이 있다.
명상은 이미 서양에서 심리치료를 하는데 많이 활용되어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명상 치료 프로그램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우선, 집중명상으로 만트라를 활용하여 하버드대 벤슨 박사팀이 개발한 이완반응법(Relaxation Response)이 있다. 다음으로는 통찰명상으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인 MBSR과 우울증 재발방지를 위한 MBCT2) 등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등지에서 심리치료적인 효과가 검증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 활용되고 있다.3)
집중명상(止명상)인 ‘이완반응’ 은 소리나 단어와 같은 진언 또는 만트라나 기도문과 같은 언어적 방법을 통해 엄습해오는 잡념과 공상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마음에 휴식을 가져오게 하는 방법이다. 고요히 만트라 또는 진언을 반복적으로 읊조려 주의를 집중할 대상을 갖게 되면 쓸데없는 공상에서 벗어나게 된다.4)
통찰명상(觀명상)으로 Mindfulness에 근거한 명상은 위빠사나(vipassana)명상으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하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관찰을 중시하는 수행법이다.
또렷한 의식상태로 모든 현상이 생기고 머물며 변하여 사라지는 生‧住‧異‧滅을 철저하게 관조하여 그 변화의 본질적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는 통찰명상의 대표적인 방법으로서 초기불교에서 身受心法을 명상하는 四念處 수행법이 있다.
1)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교 의료원의 행동의학교수로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위빠사나명상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과 MBCT (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위빠사나 명상에 기초한 인지치료) 에서의 Mindfulness는 빨리(Pali)어 ‘sati'의 번역어로서 이 논문에서는 위빠사나 명상이라고 정의한다.
3) MBSR은 미국내 240개 이상의 병원과 클리닉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며, MBCT는 우울증의 재발방지를 위해서 개발되어, 현재 영국정부의 보건기관인 NICE에 의해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공인받아, 우울증 재발률 감소에 효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치유프로그램이다.
4) 장현갑, 마음 vs 뇌, 불광출판사, 2009. p. 175.
위와 같은 수행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에서는 명상을 하는데 있어서『般若心經』을 활용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반야심경은 중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불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독송되고 있는 경전으로서 불교의 핵심 사상이 함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경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승불교가 보급된 지역에서는 어느 종파, 어떤 행사이건 반야심경이 독송되어 종교의식 속에 중요 절차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미 모두 알고 있거나 외우고 있는 대중성을 획득한 경전을 심리치료에 활용한다면, 효과는 보다 커질 것이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반야심경의 보살사상에 주목하였다. 이것은 사념처의 수행방법에 보살사상인 자비심이 덧붙여진다면 심리치료의 효과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즉 究竟涅槃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비가 토대가 되어야 함을 반야심경은 보여주고 있다. 보살이 추구하는 上求菩提 下化衆生은 지혜를 증득하고 난 뒤 자비심으로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염원하게 된다. 이러한 염원이 담긴 보살의 서원은 반야심경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가세 가세 피안의 세계로 가세. 피안의 세계에 완전히 도달하세. 깨달음이여! 행복이 있으라!……)”라는 주문으로 깨달음이 중생에게 회향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보살의 원력이 표현되어 있는 주문을 가지고 만트라(주력)를 하거나 또는 반야심경 자체를 독송하는 집중(止)명상을 한다면 보살의 마음인 자비심이 더욱 커질 것이다. 반야심경의 주문에 내포되어 있는 보살사상인 자비심은 우리가 지향해야할 마지막 귀결점이라는 점에서 주문을 止명상에 활용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셋째, 반야심경의 핵심인 空사상을 觀명상에 활용해보고자 하였다. 空은 불교사상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개념으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중요한 사상적 토대로서 작용하였다.
‘색[五蘊]은 곧 공이며[色卽是空], 공은 곧 색이다[空卽是色]’는 대승 반야경의 공사상이다. 즉 핵심사상이 空인 반야심경을 명상한다는 것은 곧 五蘊, 十二處(十八界), 四聖諦가 무상하고 苦이며 무아라는 空性5)을 통찰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때의 空은 非有非無의 중도적 성격으로 붓다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사성제와 연기를 보다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연기와 공’ 의 관계는 항상 ‘연기하기 때문에 공이다’로 귀결된다.6) 이것은 개체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모든 존재가 의존적으로 상호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반야심경을 활용한 空 통찰명상은 연기를 전제한 곧 ‘연기적 공’을 통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적 공이 가지는 상호의존성은 개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상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심신장애의 원인은 개체와 전체와의 연결성이 단절되는 고립화, 파편화 현상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결국 질병은 전체와의 관계 단절에 기인하며, 건강은 전체와의 연결과 관련이 있다는 모형도가 제시되어 있다.7)
이상과 같이 반야심경은 만트라와 독송의 止명상과 空사상을 활용하여 법을 관하는 觀명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止觀명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경전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반야심경을 활용한 명상과 그것이 가지는 심리치료적인 요인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연구로는 김경일‧천성문에 의한 「반야심경의 공사상 연구」(2000), 이병욱의 「般若心經과 정신분석」(2002), 강영철의 「후기 중관학파 관점에서 본 반야심경 해석」(2007), 김호성의 「『般若心經』의 진언(mantra)에 대한 고찰-인도 찬술 주석서들을 중심으로-」(2007) 등의 연구가 있다.
그러나 위의 연구들은 반야심경을 사상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어서, 반야심경에 함의된 명상적 요소와 그것이 가지는 심리치료적인 요인 분석 등 심리학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아니다. 따라서 반야심경을 활용한 止명상[만트라와 독송 명상]과 觀명상[空통찰명상]이 가지는 심리치료적 요인에 대한 분석은 반야심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5) 텐진갸초(달라이라마), 주민황 역,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 무우수, p 45.
어떤 것이든 모두가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겨난다는 사실은 세상에 본래부터 자립해서 존재하는 실재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겨나는 것들은 그 자체 속에 내재하는 실재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성질을 ‘공성(空性)’이라고 표현한다.
6) 中村元(이재호 역),『용수의 삶과 사상』, 서울: 민족사, 1995, p 164.
7) 장현갑,『마음 vs 뇌』, 불광출판사, 2009, p242. 모형도는 아리조나 대학교의 게리슈 왈츠(Gary schwartz) 박사에 의해 제시되었다. (1983, 1989)
Ⅱ. 반야심경 명상과 심리치료적 요인
1. 『반야심경』 명상
불교와 심리치료의 출발점은 모두 인간의 고통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마음들을 치유하고자한다. 인간은 상호 의존된 사회적 존재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부적응과 부조화로 인한 내적 갈등은 갖가지 고통을 낳게 된다. 따라서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갈등의 해결과정은 중요하다.
이에 여기서는 심리치료의 방법을 명상에서 찾아보고자하는 것이며, 명상 가운데서도 sati와 止觀의 심리치유적 기능을 통해 명상과 심리치료의 상호연관성과 명상의 심리치유적 요인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반야심경에서의 照見은 ‘반야[慧]수행’으로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 명상이므로, 곧 지혜수행이 갖는 ‘직관적 통찰’ 또는 ‘내적 관찰’을 의미하는 명상이 갖는 심리치료적 효과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 명상 가운데『반야심경』명상은 알아차리기 또는 마음챙김 등으로 불리워지는 sati(念)를 바탕으로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 과정 없이 바로 존재의 실상을 통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먼저 마음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 자각이 있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존재의 실상을 통찰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대상에 집중하는 능력이 첨가된다면 명상의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반야심경』명상을 sati(念)를 바탕으로 하면서 집중(止, Samatha)을 통해 대상의 실상을 통찰하는 명상(觀, Vipassana)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을 활용하여 명상을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야심경의 止명상의 방법으로는 반야심경에서 일체 苦를 없앤다는 반야바라밀다 주문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라는 만트라(진언)를 염송하거나 또는 반야심경 독경을 통해 집중명상을 한다. 독경은 그 자체가 집중명상 방법이면서 한편으로는 법을 觀하게 되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만트라(mantra)’의 의미는 ‘마음을 보호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다를 얻음으로써 마음에 잘못된 믿음과 그런 믿음이 일으키는 번뇌와 그 번뇌가 일으키는 고통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할 수 있다.8) 반야바라밀다를 ‘위대한 지혜의 진언’이라고 하는 것은 반야바라밀다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탐욕과 미움과 어리석음의 3毒을 근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보살의 주요 수행은 6바라밀다로 지혜와 방편을 닦는 것이다. 공성을 깨닫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면,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돕는 것을 방편이라고 한다. 보살이 가지는 자비심의 뿌리는 공성이다. 공성은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인 동시에, 번뇌를 제거한 후에 도달하는 결과적 상태이기도 하다.
반야심경은 보통의 수행자에게 공성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 최상의 소질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진언(만트라)의 형태로 공성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9)고 한다. 결국 반야심경을 활용한 止명상인 만트라와 독송을 통해 보살의 자비심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8) 텐진갸초(달라이라마), 앞의 책, p 159-160.
9) 텐진갸초, 위의 책, p 159.
둘째, 반야심경의 觀명상은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空性을 관하는 것이다. 일체 현상의 空性을 관하기 위해서 반야심경에 나오는 5온, 18계, 4성제의 空性을 관하고 공성에 대한 체득은 결국 6바라밀의 행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空性 통찰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구애받는 것, 집착과 갈등으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유자재한 진실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해 줄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보살을 반야심경에서는 ‘觀自在菩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0)
반야심경에서 空 통찰이란 있는 그대로 세계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으로, 그렇게 공 통찰을 하는 보살이 다름 아닌 ‘관자재보살’이다. 즉 ‘관자재보살’이 照見[통찰명상]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일체의 구애됨, 집착으로부터 해방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서문에서부터 강조되고 있다.11) 이것은 곧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諸法實相]을 아는 것이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實有로 생각하여 ‘나[我]’, ‘나의 것[我所]’에 집착하지만, 空이 관조되어 존재의 진실된 존재방식을 알게 되면 집착에서 벗어나는 심리치유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항상 변화하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의 실상을 통찰하는 것이 결국 편견, 아집, 집착을 버리고 애증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반야심경을 활용하여 존재의 공성을 통찰하는 명상을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논문은 반야심경을 활용하여 경전을 독송하거나 만트라[주력]를 통해서 집중력을 키우는 止명상[집중명상]과 반야심경의 핵심 사상인 空을 통찰하는 觀명상을 주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止명상을 통해서는 삼매의 경지에 들어감으로써 자비의 에너지인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내 마음이 보살의 마음인 자비심을 가지게 되는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觀명상을 통해서는 자각력을 키워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깨어있음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오온과 18계, 사성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如實知見, as really it is)’를 통찰함으로써 우리는 탐욕과 집착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내면의 변화를 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0) 奧野誠也, 『1日 10分 般若心經冥想法』, 東京, モダン出版, 1999, p8.
このことを『般若心經』では『觀自在菩薩』と表現しています。あるがままの世界をあるがままに觀ること
ができる菩薩という意味で,『般若心經』の 冒頭に 出てくる言葉です。
11) 奧野誠也, 위의 책, p8. “照見 五蘊 皆空 度 一切苦厄.” 瞑想することによつて一切のこだわり、とらわれから解き放たれた境地に達しようとする「觀自在」こそ、この本の目的なのです。
2. 심리치료적 요인
1) sati를 통한 지금-여기에 대한 자각12)
바르게 알아차림의 마음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명료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명상도중에 딴 생각이나 감정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배척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에 집중한다. 즉 마음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꾸준히 관찰한다. 시선을 놓지 않고 계속 바라봄으로써 더 명료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깨어있는 마음훈련은 우리를 느낌과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게 하고, 지금 겪는 일에서 지속적으로 깨어있는 법을 배우게 한다.
바르게 알아차림의 마음이 지닌 치유능력은 고통의 습관화된 감정패턴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을 감정적 고통과 동일화 시키지 않는 통찰이 생기면서, 고통을 그냥 고통으로 객관화 시켜 바라보게 된다. 다시 말해 감정과 생각이 그저 왔다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상과 실체 없음을 자각한다. 즉 조건에 의해 일어난 감정과 생각은 조건에 의해 다시 사라짐으로 해서, 그것이 자신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sati는 존재방식 혹은 관찰방식이라 볼 수 있고, 체계적 자기 관찰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더 친밀해지는 방법을 개발하고 정교화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구분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려는 충동을 의도적으로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sati명상에서 하는 주의집중수행과 그것 뒤에 숨어있는 의도는 자기이해와 자기수용을 깊게 해준다는 임상보고가 있다.13) 즉 sati명상을 수행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워도 비판단적인 자각과 함께 경험을 끌어안는 것을 토대로 보다 큰 자각 능력과 자기 이해를 배양하였다고 보고한다. 결과적으로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자유를 맛보게 해준다고 볼 수 있다.
12) 빠알리어 사띠(sati)와 영어번역어인 마인드풀리스(mindfulness)에 대한 우리말 번역을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여기서는 sati를 '알아차리기'로 쓰고자한다. 또한 sati의 영어번역어인 ‘mindfulness’는 ‘알아 차리기’라는 의미이상인 vipassana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통찰명상의 의미로 사용함을 밝혀둔다.
13) 이우경∙조선미∙황태연 공역, 『마음챙김명상에 기초한 인지치료』, 학지사, 2006, p 9.
2) 止觀명상을 통한 여실지견
반야심경은 ‘空’이라는 표현으로 붓다의 깨달음의 경지인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곧 존재에 있어서 苦의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사유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空性 통찰을 통해 존재와 현상의 空性을 체득함으로써,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이나 의식 등은 일시적 작용이나 현상에 불과할 뿐 아니라, 불변의 실체로서의 자기 자신[眞我]이 아니며 단지 관찰되어야할 대상[假我]에 불과하다[無我]는 것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의 신경증 등에 대한 연구에서, 그 근본원인이 생각이나 의식 등을 자기 자신과 동일화시키는 데에서 온다고 보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인 우리의 의식을 단지 관찰 대상으로 처리함으로써, 통찰명상을 마음 치유의 기제로 활용하고자 하는 견해와 유사한 것이다.14) 결국 이것은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空 통찰이 심리치료에 활용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명상은 ‘있는 그대로(as really it is)’에 대한 통찰을 통해 탐욕과 집착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내면의 변화를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욕망을 단순히 알아차리고, 욕망의 본래 속성을 알게 될 때, 그것은 단지 욕망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더 이상 욕망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통찰은 집착형성을 예방 해주고 결과적으로 괴로움이 소멸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오직 지금 깨어있음(mindfulness)으로 현실(정신적ᆞ신체적)을 통찰하여 자아가 실체 없음을 깨달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심리치유에서는 집중과 통찰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면서 직면하기 힘겨운 경험이 진정한 자신의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힘이 생기게 되면서 그 힘을 통해서 외부세계에 대한 지혜롭고 자비로운 안목을 가지게 해준다.
즉 ‘행위자’를 바라보는 ‘주시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능력, 즉 ‘관찰적 자아’의 힘이 ‘경험적 자아’를 통제 조절하는 건강한 힘이 생기면서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를 건강하게 대처하고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15)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자신이 겪는 경험 자체 때문이기보다는 그러한 경험을 바라보는 개인의 태도 때문이다. 즉 경험을 바라 보는 개인의 태도, 마음을 대하는 마음자세(메타 심리적 태도)가 심리치료에 있어서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서구의 심리치료는 심리적 경험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그 내용을 변화시키려는 조작적인 시도를 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이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즉시적 경험은 경시되어, 막상 문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과거의 부적응적 방식을 반복하거나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왜냐하면 매 순간순간의 체험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16)
그러나 sati 명상을 통해 매순간 자신의 감정과 생각, 의도를 알아차리는 자각능력을 키워 이전과는 다른 방식인 한걸음 물러서서 ‘지금 여기’의 자신을 여실지견 하게 바라보는 통찰의 힘을 가진다면, 이것은 곧 심리치료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14) 이것은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또는 인지적 탈융합 cognitive defusion 이라는 말들로 설명되고 있다. (마크 엡스타인, 존 웰우드, 켄 윌버, 등)
15) 최경희, 「정신역동적 집단심리치료 과정에서의 ‘마음 바라보기」, 『한국동서정신과학회지』, 2008,
11집 2권. p 93-94.
16) 권석만, 「위빠사나 명상의 심리치유적 기능」,『불교와 심리』, 2007, p 15-16.
Ⅲ. 空통찰과 정신분석치료
불교와 심리치료는 인간의 고통과 관련된 사고와 행동연구에 초점을 둔다. 즉 본질적으로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고통을 문제 삼고 그 해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불교와 심리치료는 공통적이다.
심리치료의 목표를 삶에서 불행과 고통을 초래하는 문제들과 연합된 정서, 사고,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고 본다면, 명상의 목표 역시 지혜의 체득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불교 특히 반야심경에서는 존재의 空性에 대한 진리를 체득함으로써, 지혜에 이르는 길이 있다는 것을 제시해주고 있다. 반야심경에서 지혜의 완성은 五蘊이 모두 空함을 깨닫는 것이다. 오온은 물질적인 것(色:地水火風)과 정신적인 것(受,想,行,識)으로 無明의 근원이 된다. 무명은 12연기의 시작으로, 四大를 자기 몸이라 생각하고 6경(색성향미촉법, 자극대상)의 그림자를 자기 마음이라 생각한다. 즉 무명은 진실을 진실대로 보지 못하고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바꿔 말하면 허구를 허구인줄 모르고 진실인줄로 믿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空 통찰은 생성(Becomeing) 또는 과정으로서의 모든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한다. 즉 모든 현상계가 다 空하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별과 번뇌 또한 空함을 체득하게 하여 결국 모든 집착과 대립을 떠나게 하는 걸림이 없는 세계에 대한 체득의 과정이다. 따라서 반야심경명상을 통해 존재의 공성을 체득하게 되면, 사유분별을 떠나 무집착으로 번뇌와 무명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게된다.
空통찰의 방법은 대상을 따라가면서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순간순간 생멸하는 대상(身受心法)에 대한 심리현상을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그대로’ 수용하고 지켜보는 것이다. 대상을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대상자체가 因果에 의해 일어나는 것[연기법]으로, 그것의 결과가 無常함과 無我함을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명상은 집착된 대상으로 부터 거리를 두고〔decentering, 탈중심화〕객관적으로 바라봄〔defusion, 탈융합]17)이라는 심리치료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결국 지금 관찰하고 있는 대상들에 대해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가치판단, 평가를 내리지 않음을 뜻하는 것으로 ‘비판단적인’ ‘수용의 태도’를 의미 한다. 즉 다만 존재하는 그대로 수용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은 반복적인 관찰을 통해 無常,苦, 無我라는 지혜를 얻는 수행이다.
통찰 명상이 심리치료의 대안이 된 것은 이러한 거리를 두는 ‘내려놓음’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수용’의 요소 때문이다. ‘내려놓음’은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면 단지 알아차려서 한 걸음 물러나는 관조적인 태도를 말한다. ‘수용’은 그런 감정들을 온전하게 그대로 허용하여 그것들이 지나갈 것임을 ‘분명한 앎’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을 말한다.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이고 그 생각들은 ‘자기 자신도’ 그리고 '현실‘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생각을 단순히 생각으로 인식하는 단순한 행위야 말로 가끔씩 그러한 생각들이 만들어 내는 왜곡된 현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며, 삶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주고,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18) 이것은 생각을 통제하려는 인위적인 행위를 내려놓고, 고통이 있는 삶 그 자체를 존재하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의미이다.
붓다가 열반을 이룬 것은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역시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실체가 없는 것은 실체가 없는 그대로 이해되었다. 붓다를 경외하는 추종자들이 “당신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붓다는 다만 “나는 깨어 있다”라고 대답했다.
17) 이것은 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또는 탈융합 defusion이라는 말들로 설명되고 있다.(켄윌버 등)
18) 이우경 외 역, 앞의 책, p 63.
1. 의식과 무의식의 空 통찰
반야심경에서의 空 통찰과 정신분석치료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한 방법에 있어서 통찰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물론 통찰의 대상이 반야심경에서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것이라면, 정신분석치료에서는 억압된 무의식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러나 반야심경의 空 통찰과 정신분석치료는 상호 보완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소통이 가능하다.
통찰명상에 대한 훈련은 심층의 억압되었던 내적인 무의식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즉 통찰명상을 통해 무의식은 의식화되어 정신분석작업을 통해 심층의 번뇌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반야심경의 空 통찰과 정신분석치료와의 관계 속에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정신분석이론은 ‘정신적 결정론’과 ‘무의식’으로 대변된다. 프로이트는 ‘원인이 멈추면 결과도 멈춘다’는 명제 하에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은 어떤 원인이 작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보았다. 이러한 정신적 결정론은 불교의 緣起論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불교의 인과론[연기론]과 연결되는 프로이드의 정신적 결정론의 관점은, 심리적 문제는 정신적 원인이 멈출 때에 비로소 사람들은 심리적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원인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프로이드는 사람들의 감정[受], 생각[想], 행동[行]을 결정하는 정신적 원인의 실체[識]를 의식과 존재하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이라고 했다. 정신분석에 의하면 깨어있는 의식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으므로,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는 무의식이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따라서 정신분석치료의 목표는 무의식적 동기를 의식화하는 것이며, 무의식을 의식화하는데 쓰이는 주요한 치료수단은 바로 통찰이다.
명상의 관점에서 ‘억압된 무의식’이란 계속적으로 반복되어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망상’이다. 이러한 망상에 대해 명상을 통해 통찰하는 것이 필요하며, 통찰명상은 내적인 무의식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된다.
즉 감정적인 문제의 망상을 그대로 개방하고 수용하는 止명상과 대상의 본질을 통찰[觀]하여 그것이 가지는 허구성 즉 실체 없음의 空性을 봄으로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止觀명상을 정신분석적인 관점에서 보면, 멈춤[止]이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id(원초아, 본능) ego(자아), superego(초자아)라는 인격내의 역동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반응, 억압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자신을 개방하여 대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에서 오는 안정, 심리적 고요함이다. 반면에 응시[觀]란 심리적인 변화를 알아채고 바라봄인데 그것은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통찰을 의미한다. 충분하게 느끼면서도 그 욕구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대상의 변화를 알아채는 능력으로 지혜를 의미한다.19)
정신분석에서는 자신의 “병적인 역동”을 통찰하는 것을 치료의 핵심으로 본다. 즉 핵심역동(Core-Psychodynamic)이 성격핵심을 이루며, 그로인한 각종 부적응 행동, 병리적ᆞ정신적 문제 등이 야기된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역동적 심리치료에서는 감정양식[受], 사고방식[想], 행동양식[行] 등이 그 사람의 ‘핵심역동’[識]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통찰하여 훈습하게 한다.
이렇듯 정신역동적 심리치료과정에서 무의식적인 조건화된 습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마음 통찰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통찰작업은 현실적인 상황을 알아채고 과거 관계의 방식으로 적응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서, 현실관계를 직시하여 현실감 있는 지혜로운 태도로 대처하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다.
현재의 가장 불편한 심리적 문제가 내면의 억압되었던 감정 즉 핵심역동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통찰하는 것은, 止觀명상에서 심리적인 문제를 알아채고[sati], 그것에 대해서 조건화된 습으로 무의식적인 반응을 하는 것을 멈추고[止] 그 변화를 조용히 응시하는 명상[觀]의 성격과 연결된다.
이처럼 정신분석치료에서는 과거관계와 현실관계의 분리를 주요한 치료적 관건 중의 하나로 본다. 개인적인 욕구나 감정 등은 자신과 세계를 일정한 방식으로만 보도록 조건화하고 선별함으로써 순간순간의 다양한 변화를 지각하고 경험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를 가장 건강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실관계와 과거관계의 정서적 분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건화된 맹목적인 충동은 알아차리기도 전에 감정에 휘말려 행동해 버리기가 쉽다. 무의식에서 자동화되어 올라오는 핵심역동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깨어 있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지금-현재 일어나는 감정과 마음을 잘 바라보고, 느끼고, 통찰하여 훈습하는 마음의 변화과정이 필요하다. 변화의 과정은 먼저 자기의 마음을 바라보고 자기의 감정, 느낌, 정서를 포착해야한다. 자기 정서를 포착하지 않고는 그 핵심적으로 작용되는 역동을 통찰할 수 없으며, 통찰하지 않고는 자기이해를 할 수 없다. 즉 바라보지[sati] 않고는 그 마음들이 어떻게 머물렀다[止] 변화하는가[觀]를 살펴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결국은 명상 수련을 통해 자신을 깊이 주시하고 느끼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현재를 가장 현재답게 살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즉 명상은 과거나 미래에 빼앗긴 마음을 지금 현재라는 이 시간에 초점 두게 하는 것이다. 현재를 가장 현재답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내면의 마음작용들, 즉 과거 성격이 발달되었던 시기에 일어났던 왜곡된 여러 가지 정서를 수정하는 것이 정신역동적 심리치료의 과제이다.20)
자기관찰의 힘은, 순간순간 일어나는 관계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떠한가, 내 상태가 어떤 모양인가에 대해 스스로를 알아차릴 때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기인식, 자기자각, 자기통찰의 작업은 ‘관계’속에서 이루어질 때 훨씬 정확하며, 자기통찰은 ‘관계’안에서의 자기를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서 많은 효율성을 가진다. 관계 안에서 지금-여기에서 올라오는 나의 느낌[受]을 잘 바라보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조건화되어 있는 나의 생각[想]과 행동[行]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알아차리기 위해 늘 깨어있지 않으면 바라보기도 전에 마음의 조건화된 감정[핵심역동]에 휘말려 말하고 행동해버리며 그 다음에도 똑같은 행위는 반복되기 쉽다.
어떤 상황에 대한 현재의 부적응문제는 과거의 관계가 현실의 관계인 것처럼 보이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으로, 과거의 마음은 무상하고 실체가 없어 현재에는 없지만 꼭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고와 그로인한 왜곡된 대인관계 패턴 등의 무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 관계에서 생겨난 감정이나 정서는 그 마음을 바라보고[sati], 머물러[止], 지켜보면 사라지는[觀]경험을 할 수 있다.
때로는 스스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서 저항하는 데에서 부적응 문제가 생겨난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상황에서 생겨난 감정이나 정서는 마치 연기와 같이 일어났다[生], 머물렀다[住], 흩어지면서[異], 지나간[滅] 무상(無常)한 것이나, 여전히 현재에 머물러 남아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감정[受]의 본질에 대한 무지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정신분석치료에서의 어린 시절의 억압된 기억들을 들추어내는 것 즉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만으로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한다. 과거의 사건과 그 때의 감정을 거의 영구적인 것으로 보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에 형성된 감정을 변하지 않는 실체로 보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고정관념에서 형성된 것이다.
핵심역동 때문에 생겨난 주요감정들[불안, 긴장 등]은 과거의 마음속에 있었던 감정흐름일 뿐, 그때도 지금도 본래부터 실재하지 않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이 실체처럼 존재한다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顚倒夢想]. 그 감정들은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감정의 본질에 대한 통찰 즉 존재의 空性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그 감정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자아를 지켜볼 수 있는 관찰적 자아의 힘이 커져서 내면에 흐르는 감정세력인 핵심역동에 휘둘리지 않고 경험적 자아를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 대부분 있는 그대로 대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과거의 미해결된 자신의 감정 때문이다. 그 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그대로 바라보고[sati] 머무르게 되면[止] 억압된 기억들과 감정이 실체가 없음[空]을 통찰[觀]하게 된다.
정신역동에서는 내면의 감정 중, 현재의 감정뿐만이 아니라 무의식의 감정까지 알아차려야하는 질 높은 감수성 훈련을 하는 장(場)이다.21) 결국 내면의 의식과 무의식의 고통이 그대로 잠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고 수용하는 것을 통해 그것의 空性을 통찰해야만 한다.
19) 인경, 「지관명상과 자아초월 심리치료」, 『한국불교학』, 제 33집, 2004, p 472.
20) 최경희,「정신역동적 집단심리치료 과정에서의 ‘마음바라보기’」『한국동서정신과학회지』, 2008, 11권, p 94.
2. 자아의 空 통찰
정신분석치료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주의를 집중해서 면밀히 관찰하고 파악한다. 이것은 자아의 기능을 강화하여, 강화된 자아의 힘으로 심리적 증상과 관련된 정신적인 원인을 해결함으로써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22)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경험하는 자아와 의식을 가지고 관찰하는 자아로의 치료적 분열은 치료에 필수적이다.23)
경험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의 치료적 분열은 경험의 무의식적인 왜곡으로부터 벗어나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한다. 이처럼 정신분석치료에서는 자신과 세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통찰을 증진시키려한다. 무의식에 대한 통찰은 자아의 강화를 가져오며, 결국 자기의 내부에 대한 의식의 확장을 가져온다. 의식의 확장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변화를 초래하여,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불안 없이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향상 시킨다.
이러한 경험하는 자아와 그것을 관찰하는 자아는 명상에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통찰명상과 연결될 수 있다. 空통찰 명상 역시 자아를 이용하여 자아 자체의 발현을 관찰하는 것을 훈습하는 것이다. 즉 성공적인 명상에 필요한 기술은 자아기능이 발휘되는 것으로, 매 순간 마음의 본질, 마음의 실체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개발하여 이상화나 소망적 판타지와 같은 왜곡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통찰명상 역시 프로이트적 자아가 발휘되어야 의식적으로 마음을 훈련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공 통찰명상에서는 이른바 인격체라고 불리는 에고(ego)라는 실체 또는 자아는 어디에도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다만 여러 가지 요건에 의해서 조건지어져있는 육체와 마음의 흐름뿐이라는 無我를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들은 전적으로 무상하며, 괴로움이며, 영원한 실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교에서의 자아는 강화된 자기를 격려하기보다는, 잠재적으로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는 무실체성(無我)과 無常의 경험을 통합[空]할 수 있는 유연한 능력을 의미한다. 이 점이 프로이드적 자아와 불교의 자아를 구분짓는 중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24)
위와 같이 정신분석에서는 주된 과업이 개인적 에고를 해소시키기보다는 이를 강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반해 명상에서는 최종의 자유에 방해되는 에고를 소멸시키는데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관점은 먼저 튼튼한 에고를 가질 수 있게 심리치료를 한 뒤에, 통찰명상으로 에고의 空性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심리치료의 방법으로 정신분석과 통찰명상은 서로 보완ᆞ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정신분석치료에서 중요시하는 진정한 통찰은, 우리가 잠시 느끼는 감정흐름은 현재에 실재하지 않으며 실체를 가진 자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空性을 명백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자아란 대상경험으로부터 형성된 구성물이며, 실재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과『반야심경』명상이 가지는 치료적 공유는 ‘자아’의 허구에 대한 통찰이며,자신을 개방하는 기술이다. 통찰은 진정한 의미의 ‘치료’이며 ‘치료적 수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신분석치료의 자아에 대한 통찰ᆞ분석과『반야심경』의 존재에 대한 통찰명상과는 서로 소통될 수 있으며, 이러한 소통은 서로를 한 단계 더 높은 심리치료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21) 최경희, 앞의 논문. p 110.
22) 이장호, 정남운, 조성호 공저, 앞의 책, p 60.
23) 윤호균,「정신치료와 수도 -정신분석과 선을 중심으로-」,『성심여자대학 논문집』제23집, 1991, p119.
24) Mark Epstein M. D., 전현수ㆍ김성철 옮김, 『붓다의 심리학』, 학지사, 2006, p 127.
Ⅳ. 空 통찰과 인지치료
1. 顚倒夢想과 인지 오류
인지치료는 이전의 정신분석치료, 행동치료, 인본주의적 치료의 한계와 단점을 통감하면서 새로운 치료이론과 기법에 대한 탐색의 결과 생겨난 것이다. 인지치료에서는 심리장애의 일차적 원인을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따라서 문제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과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문제가 되는 나의 역기능적 기본신념을 보다 긍정적인 순기능적 신념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지치료에서는 왜곡된 사고와 비현실적인 신념을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인지치료에서 심리적 장애는 세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 즉 인지 오류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불교에서 고통이 근원적으로 존재의 실상인 空性에 대한 무지와 무명에서 비롯된 그릇된 인식 즉 전도몽상에서 생겨난다고 보는 견해와 일치한다. 요컨대 불교와 인지치료는 고통과 심리장애의 원인을 전도몽상과 인지적 오류의 문제로 본다.
현대심리학에서는 경험을 추상화한 기억구조이면서 동시에 외부자극에 대한 정보를 선택하고 그 의미를 추론하는 인식의 틀을 인지도식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불교에서는 무지에서 생성된 망념은 번뇌의 근원인 말라식과 아뢰야식에 저장된다고 본다. 말라식과 아뢰야식에 저장된 망념은 인지치료에서 말하는 자기인지도식(self-schema)과 세상인지도식(world-schema)에 대응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25)
즉, 인간은 말라식과 아뢰야식에 근거하여 망념인 전도몽상을 체계화하고 확대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이 강화되어 고통과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리와 사고는 끊임없이 전도된 몽상을 발생시키는 그릇된 작용처이다. 심리 현상과 사고의 변화는 주위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 왜곡되는 전도몽상의 실체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든 전도몽상은 자신의 잘못된 사고와 정서에 의해 만들어진 실체 없는 환영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空인 것이다. 우리는 공 통찰을 통해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고의 흐름과 정서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전도몽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구의 인지치료에서와 같이 사고의 변화와 정서에 따른 새로운 인지치료적 틀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사고와 정서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통찰함으로써 왜곡된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공 통찰의 인지적 치료 효과인 것이다.
25) 권석만, 「인지치료의 관점에서 본 불교」,『심리학의 연구문제』, 1997. 4, p. 303 참조.
2. 연기론과 인지치료
반야심경명상은 오온, 삼법인, 사성제 등 존재의 실상에 대한 통찰명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照見이라는 통찰명상을 통해 존재의 실상인 空性을 깨닫는 것이다. 붓다의 교설에 의하면 고통은 무명, 즉 존재의 실상[空]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의해 발생한다고 한다. 존재의 실상을 알지 못하고 집착함으로써 심리적 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존재의 실상에 대한 설명인 緣起說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인연화합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즉 우주만유의 18계의 제법은 6근의 감관이 6경의 객관계를 대상으로 접촉되는 경지에서 6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실체가 없으며, 이 우주는 地水火風空識의 6大가 인연 화합하여 임시로 생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생성과 소멸[不生不滅], 더러움과 깨끗함[不垢不淨], 증가와 감소[不增不減] 그 어느 것도 그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존재와 인식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相依性에 근거하여 발생한다는 것을 밝힌 12연기설은 심리학적 교설로도 해석될 수 있다. 12연기론에서 고통이 근원적으로 존재의 실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부터 생겨난다고 보는 관점은 인지치료에서 심리적 장애는 세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는 점과 연결된다. 즉 연기론과 인지치료는 고통과 심리장애의 원인을 잘못된 인식의 문제로 본다.
즉 불교에서는 無明에서 생성된 망념과 그에 대한 집착을, 인지치료에서는 왜곡된 사고와 비현실적인 신념을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또한 망념과 집착은 세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그에 대한 확신[전도몽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지치료에서의 역기능적 신념의 특성과 유사하다. 이것은 곧 불교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잘못된 강한 신념인 아집과 법집이 인지치료에서 말하는 편향된 자기 지식과 세상지식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26)
그러나 불교와 인지치료는 고통의 근원이 인식의 문제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 하지만, 인식의 내용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 아집(자아에 대한 집착)을 구성하는 무지의 내용은 독립된 실체로서‘나’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또한 법집(대상에 대한 집착)을 구성하는 무지에는 외부세계가 실제 한다는 믿음과 외부세계는 나의 존재와 별개로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이렇듯 십이연기설은 무명으로 말미암아 의식이 자신과 세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잘못 지각하고 개인자신과 세계를 현실적인 실체로 보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전도몽상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인지치료에서는 나와 세상의 존재를 인정한 상태에서 그것에 대해 편향되게 지니고 있는 인식내용을 의미한다. 즉 ‘나’라는 것이 실재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나에 대한 비현실적 평가와 비합리적 행동이 부적응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자신과 세계의 실체성은 인정하면서 그 자신과 세계를 의식상에서 어떻게 보고 느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인지치료에서는 괴로움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나 자아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오히려 치료적으로 활용하려한다. 따라서 문제나 고통을 초래하는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과거경험, 기존관념 등을 투사하게 만드는 자기의 바람이나 두려움의 구체적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게 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하여 그의 생각, 감정 등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나 세계를 반영하기보다 자신의 과거경험, 기존 관념 등에 의해 크게 왜곡되어 생각이나 감정의 노예가 되었으나 그것들은 막연한 생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기론에서 인간의 고통이 근본적으로 무명[무지]이라는 인지적 요인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인지치료의 견해와 유사하다. 그러나 연기론에서는 모든 존재의 실상이 연기하기 때문에 空하다고 본다. 그러나 인지치료에서는 존재를 인정한 위에 잘못된 인지를 깨닫도록 한다는 점에서 상이하다고 볼 수 있다.
26) 권석만, 「인지치료의 관점에서 본 불교」, 앞의 책, p 300.
Ⅴ 결언
본 논문은 반야심경의 止觀명상과 명상의 심리치료적 요인 그리고 觀명상인 空통찰이 정신분석치료・인지치료와 어떻게 보완이 가능한지에 관해 고찰하였다. 이상에서 고찰한 연구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반야심경은 개인의 구원 뿐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개혁적인 대승불교가 전개된 배경 하에서 성립되어 자비심과 이타심이라는 보살사상이 내포되어있다. 이러한 보살사상의 근간은 空 사상이다. 이때의 空은 非有非無의 중도적 성격과 연기함으로 空 하다는 ‘연기적 공’의 의미이며, 無自性을 뜻하는 것이다.
둘째, 반야심경을 활용한 止명상으로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라는 만트라 명상과 독송을 통해 집중명상을 하였다. 집중명상을 통해서 삼매 또는 定을 얻을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한편으로는 대상에 몰입해 있는 마음에서는 3독심과 같은 번뇌들이 멀리 떨어져나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셋째, 반야심경의 觀명상은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空을 관하는 것이다. 오온, 18계(12처 포함), 사성제(팔정도 포함)의 공성을 관하고, 공성의 체득은 육바라밀 행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空통찰 명상의 심리치료적인 요인으로는 먼저 sati 명상을 통해 지금-여기에 대한 자각력을 높일수 있다.
깨어있음은 자신의 감정, 느낌, 생각을 명료화하여 결국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을 깊게 해주는 것으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sati 명상의 깨어있음은 觀명상으로 이어지는 기본이 된다.
空 통찰명상은 자신의 감정, 생각, 갈망 등을 간섭하지 않고 단지 바라보기만 함으로써 모든 현상이 空하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고, 그 체득함에 의해 대상에 대한 자아동일시에서 벗어나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결국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여실지견 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심리치료적 요인이다.
넷째, 반야심경의 觀명상과 정신분석치료는 무의식을 알기 위한 방법에서 통찰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보았다. 또한 정신분석치료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오온 가운데 수상행식에 해당된다고 보고, 수상행식의 空性은 의식과 무의식의 空性과 연결된다고 보았다. 또한 정신분석치료에서의 자아를 오온 가운데 色으로 보고, 자아의 강화가 곧 色의 공성을 통찰할 수 있는 힘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정신분석치료와 반야심경 空 통찰은 서로 소통, 보완될 수 있다.
다섯째, 반야심경에서 전도몽상과 인지치료에서의 인지오류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통찰명상과 인지치료의 결합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탈동일시’와 ‘탈중심화’를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생각과 감정 등의 空性통찰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반야심경 空 통찰명상과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의 결론은, 반야심경을 활용한 止명상을 통해서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자비심을 갖게 해줄 것이며, 觀명상을 통해서는 지혜를 증득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마지막 귀결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사상을 가지는 것이다. 지혜를 증득하고 자비심으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염원하는 보살의 서원이 담긴 주문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는 깨달음이 중생에게 회향됨을 보여주고 있다.
< 참고문헌 >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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