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일반

젠더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무(巫)

rainbow3 2020. 1. 22. 00:13


젠더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무(巫)

:내림굿과 마을굿을 중심으로



차 옥 숭*1)



국문초록l

본 논문은 젠더에 관한 문제의식을 무(巫) 연구의 주요 관점으로 도입하여 무와 여성의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수동적 객체로 억압받기도 하고 동시에 능동적 주체로 역할하기도 한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며, 나아가 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문화 전반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첫째, 내림굿과 무당들의 경험을 살펴보고 무당들이 지향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찰해 보았다.

둘째, 마을굿의 의미를 분석하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통치계급의 금법에 저촉되어 추방되었던 여성의 놀이정신이 무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았으며, 셋째, 무에서 구연되는 서사 무가의 주를 이루는 여성신화의 텍스트에 숨겨진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신화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긍정 또는 부정되는지를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무에서 보여주는 여성은 단지 가부장제가 틀지어 놓은 정체성과 역할에만 안주하지 않고, 그 틈새에서 주체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또한 마을굿에서는 놀이 문화를 통해서 가부장제의 억압과 종속을 비껴가는 많은 여성들의 일탈과 저항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성신화는 단지 지배 계급이나 중심 계층의 이데올로기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이나 주변 계층의 저항과 일탈의 흔적과 욕망을 담고 있기도 하고 가부장적 목소리 외에 여성에게 힘을 실어 주는 목소리도 함께 담고 있다.


핵심어l젠더, 여성, 내림굿, 마을굿, 놀이, 여신신화

* 車玉崇. 이화여자대학교 HK연구교수
논문투고일:2012. 5. 7. 심사완료일:2012. 5. 21. 게재확정일:2012. 5. 30.
이 논문은 2007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조성비)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07-361-AL0015)



Ⅰ. 들어가는 글


19세기 이후 유럽 중심의 배타적이고 오도된 역사의식은 제국주의의 확산과 함께 서양 문명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우월성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키고, 다른 이질 문화를 파괴하고 유럽 문화에 동화시키는 것이 인류 이성의 보편적 실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50여 년간의 동아시아 역사 공간에서의 동서 문명 대립은 서양 문명의 척도에 의한 동양 문명의 일관된 자기 부정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자기 전통문화에 대한 부정을 통한 자기 변신과 근대화는 바로 서구화라는 등식이 대부분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 사회 발전의 지표로서 통용되었다.1)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유럽인 선교사들이 우습게 여기는 무(巫)는 그 무엇보다 일찍부터 타파의 대상이었다.2) 그리고 무에 대한 연구는 불균형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졌다.


흔히 무를 여성 종교라고 한다. 다른 종교들과 다르게 사제라 할 수 있는 여성무당의 수가 박수무당의 수 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굿장 어느 곳에 가던지 여성들이 많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암묵적으로 특정한 가부장적 통념이 담겨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통념은 여성을 자연에 속박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인 한 자연의 제약에 속박되어 있기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은 자연의 속박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반면, 유독 여성만은 자연의 굴레 안에 갇혀있다고 여겨진다.3)

문명을 남성과, 그리고 자연을 여성과 결부시키는 것은 가부장제의 주된 전략으로, 여기서 자연과 여성은 서로의 은유이자 상호 대체 가능한 것으로 동일화된다. 이 동일화에 따라 여성과 자연은 문명의 주체인 남성에 대한 객체로, 남성-문명에 의해 지배되고 정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타자화한다. 그 결과 여성은 자연의 굴레에 속박된 본질적 한계를 지닌 존재가 되고, 여성의 열등성과 남성의 우월성은 확고부동한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4) 여기에 문명화 되지 않은 무와 여성이라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젠더에 관한 문제의식을 무(巫) 연구의 주요 관점으로 도입함으로써 무와 여성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무는 오래된 만큼 한국인의 종교 심성을 잘 간직하고 표현한다.

무와 관련해서는 첫째, 내림굿과 무당들의 경험을 살펴보고 오랜 세월 억압과 멸시 속에서 철저하게 타자화 되었던 무당들이 지향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둘째, 마을굿의 의미를 분석하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통치계급의 금법에 저촉되어 추방되었던 여성의 놀이정신이 무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셋째, 무에서 구연되는 서사 무가의 주를 이루는 여성신화의 텍스트에 숨겨진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신화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긍정 또는 부정되는지를 읽어내려고 한다.

끝으로 이러한 분석을 통해 수동적 객체로 억압받기도 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능동적 주체로 역할하기도 한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며, 나아가 여성과 남성을 아우르는 문화 전반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1) 송영배,  『동서 철학의 교섭과 동서양 사유 방식의 차이』, 논형, 2005, 212쪽.
2) 박노자는 오늘날 한국에서 개인의 독립성과 소수자 집단의 인권을 보장하는 탈근대형 다원주의적 시민사회로 나아가는데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의 맥을 근대적 사회의식의 근저가 된 개화기의 국민담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짚어 보고 있다.
동서양, 주변부와 중심부 국가들이 배제와 억압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국민의 결속을 강화했던 경로나 형태 등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외부적 타자 보다 내부의 타자 배척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며 조선의 초기 내셔널리스트들에게 개화 담론에서의 내적 배제의 대상(단결을 방해하는 타자)은 개화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 되는 무당, 풍수지리사, 탁발승, 동학군 등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배제와 억압의 메커니즘은 대상은 변하지만 오늘날에도 이어오고 있다고 본다. 박노자, 「개화기의 국민 담론과 그 속의 타자들」,  『근대계몽기 지식개념의 수용과 그 변용』,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소명출판, 2004, 223~256쪽.

3) 시몬느 드 보봐르, 조흥식 역,  『제2의 성』, 을유문화사, 1993, 12~13쪽.
4) 차옥숭·김선자·박규태·김윤성,  『동아시아 여신 신화와 여성 정체성』,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0, 24~25쪽.



Ⅱ. 굿을 통해서 본 여성 해방성-내림굿과 마을굿, 여신신화를 중심으로


굿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일상적인 삶 속에 용해되어 면면히 이어져 왔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마디마디에서 맺힌 것을 굿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조화와 평온을 되찾고자 했다. 거기에는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외경심이, 끈질기게 삶을 이어 온 생명력이 담겨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아래 분석한 굿들은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채록한 내용과 그 밖의 자료들을 참고하였다.

먼저 내림굿과 무당의 경험을 통해서 내림굿을 받고 살아가는 무당들이 자신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 다음에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통치계급의 금법에 저촉되어 추방되었던 여성의 놀이정신이 규제의 틈새에서 마을굿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서사 무가에 나오는 여신들의 분석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에서 신화속의 여성성이 여성들의 삶에 어떻게 작동을 하는지 분석해 보겠다.



1. 내림굿을 통해서 살펴본 무당의 역할과 무당의 경험


‘내림굿’이란 입무제(入巫祭)이다. 내림굿은 일종의 통과의례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양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양태로 전환되는 분기점에서 드려지는 제의이다. 대부분의 강신무들은 성별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신병(神病)이라고 하는 원인 모를 병을 앓는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시도해 보지만 결국 내림굿을 통해서만 치료가 가능하다.


김열규는 무당들의 성무(成巫) 과정을, 입무자들이 겪어야 했던 생의 상처를 집약적으로 극화하고 있으며 상처받은 아픔이 신행의 소명(召命)이나 빙의(憑依)를 통해 전형화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5)

평범한 사람이 내림굿을 통해서 무당이라는 사회적 공인이 되고, 특수한 직업인으로서 삶의 질적인 전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당은 강신(降神)의 전문가라는 것 외에는 다른 종교의 사제들과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억압과 천대 속에서 외롭게 지내왔다. 그래서 필자는 편협하고 왜곡된 선입견으로 무당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긍정적 또는 부정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으로 내림굿에서 무당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몇 가지 내용과 무당의 경험을 분석하여 무당의 역할과 무당들이 지향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5) 김열규, 「한국 여성의 전통적 종교 심성의 원형」,  『한국 여성의 전통상』, 대우학술총서, 민음사, 1985, 118쪽.



1) 무당의 역할:사제, 예언자, 치병자(治病者), 화해자(和解者)


내림굿에서 무당이 신이 내리고 나면 입무자(入巫者) 모르게 무구(巫具)를 감추어 두고, 입무자의 신기를 시험하기 위해, 무구인 방울과 부채를 찾게한다. 무구는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물이며 무업(巫業)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물이다. 입무자가 찾아낸 무구를 신어머니로부터 받음으로써 새로운 무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내림굿에서 신어머니는 방울과 부채를 신딸에게 던져주기 전에 무당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길인가를 그리고 무당이 가져야 되는 마음가짐을 무가를 통해서 전해준다.


"외기러 가세 불리러 가세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 굽어 보살펴 잘 도와줄제
/ 정한 마음으로 원수가 있거든 / 내리 사랑하고 잘 도와주어라 / (……)

건너다 지치면 / 힘을 내고 용기를 얻어라 / 모든 시련과 싸워 이기고 극복하여라
/ 멀리 보고 힘을 갖고 결심하여라 / 네가 가고 있는 길을 잊지 말고 / 명심하여야 한다 /

높이 보고 가거라 / 깊이 생각하며 가야 하느니라 / (……)

지치면 넘어간다 / 넘어가면 일어나거라 / (……)

수없이 넘어지고 수없이 일어나거라 / 넘어지고 넘어지다 보면 / 네가 설 곳이 있느니라 /

이리 오너라 가까이 오너라 / 이만치 오너라 / 잘 받아라 잘 받아야 한다.6)"


위에 소개한 내용은 오랫동안 황해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가다.
위의 내용은 무당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당은 무당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굳게 서서 옳은 길로, 바른 길로, 선한 길로, 착한 마음으로 모든 역경을 이기고 나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을 잘 보살펴야 하는 길이 바로 무당의 역할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위의 내용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한 마음으로 원수가 있거든 내리 사랑하고 잘 도와주어라.”는 내용이다. 입무 과정을 통해서 무당은 지금까지의 삶이 전혀 새로운 삶으로 전환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입무자에게 신어머니는 무당이 되기 전에 원수가 된 사람이 있더라도 바른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신어머니가 신딸의 머리를 올려주면서 내리는 공수의 내용 속에서도 무당의 역할과 기능은 잘 나타난다.

신어머니가 신딸의 머리를 풀어 다시 올려주면서 청수(淸水)를 소나무 가지로 축여 머리에 뿌리며(부정한 것을 깨끗이 씻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상징한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천상 옥황상제님, 천지신명 다 맑은 물에 내려주시니 마음이 편하고 욕심을 갖지 말지어다. 한없이 맑은 마음을 가지고,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마음의 부정을 풀어내야 한다. 길 모르는 사람 길 가르쳐 주고, 불쌍한 사람 도와주고, 외로운 사람 벗이 되고, 배고픈 사람 배 불려주고, 병든 사람 고쳐주고(……).”7)


위의 내용을 보면 무당은 먼저 욕심 갖지 않고, 없는 사람, 불쌍한 사람 도와주고, 병든 사람 고쳐주고, 길 모르는 사람 길 가르쳐 주고, 외로운 사람 벗이 되고, 배고픈 사람 배 불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하면 무당은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사제로서의 역할이나 예언자로서의 역할은 물론이고, 치병자, 화해자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오래전부터 황해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가나 공수 내용에서 무당의 역할을 살펴보았다면 또한 앞으로 새로 태어날 무당의 앞날의 능력을 점쳐 보는 녹타기에서도 무당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내림굿을 할 때 굿당 왼쪽 구석에 있는 녹타기 상 위에는 뚜껑을 덮은 주발 일곱개가 놓여 있다.

그 주발 속에는 각각 청수‧쌀‧잿물‧돈‧흰콩‧여물‧뜸물이 들어 있다. 맑은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면서 항시 뒤가 맑다는 뜻이고, 재는 부정을 씻어내며 동서남북에 재 불리듯 이름이 나겠다는 뜻이고, 쌀은 만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녹으로서 여러 사람을 고치고 잘 보살피는 무당이 된다는 뜻이며, 뜸물은 마음의 부정을 다 씻어 내린다는 뜻이다.콩과 여물은 가축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녹으로서 소가 건강하게 되어 부자가 된다는 뜻이다.


새로 태어난 무당이 청수녹을 먼저 타면 신어머니를 비롯한 선배 무당들이 좋아하고 돈이 담긴 주발을 먼저 열면 욕심이 많다고 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도 무당이 욕심을 멀리하고 마음을 정하여 신령님들의 힘을 빌어 만백성을 먹여 살리고, 병도 고치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는 무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내림굿 중 몇 가지 의례를 통해서 무당의 역할과 기능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다음에는 무당이 직접 내림굿을 받을 때의 경험과 그 이후의 경험사례를 통해서 무당의 마음가짐과 역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6) 차옥숭,  『한국인의 종교경험:巫敎』, 서광사, 1997, 29~30쪽.

7) 차옥숭, 위의 책, 31쪽.



2) 무당들의 경험


사례 1:김금화8)


"외할머니를 신어머니로 모시고 내림굿을 받았다. 내림굿을 받는 중에 나는 구석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가난하고 불쌍한 우리 식구들(……).
나는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외로웠을 어머니와 한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부황난 얼굴로 일을 하던 동생들이 불쌍해서 서럽게 울었다.
제석굿에서 외할머니는 내 손을 꼭 쥐고서 나에게 정성들여 공수를 주었다.
(……)

외할머니는 공수를 채 끝내지 못하고 나에게 기대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동안 무섭게만 느껴졌던 할머니의 몸이 너무 작고 가볍게 느껴져서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맺혔던 마음을 풀어 서로를 감싸안는다는 것이 따뜻하고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나를 무당이 되게 해주신, 외할머니의 신딸이 되게 해주신 신령님께 깊이깊이 감사를 드렸다.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설움과 한을 다 풀어 헤쳤다. 설움과 배고픔과 아픔과 원망이 뜨거운 눈물을 타고 녹아내렸다. 그동안 나를 내치고 미워하던 외할머니도, 동네 사람들도, 친구들도 모두 한식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족집게처럼 잘 맞추는 무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에 미련이 없다. 사람이 잘 살도록 돕는 무당이고 싶다.
허황된 믿음을 갖는 것보다 현실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며 살도록 이끌어주고 싶다.

무당은 세상의 갈라진 것을 모으고, 찢어진 것을 아물게 하며, 뜯어진 것을 꿰매는 사람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눌 때, 예를 들면 무의탁 노인들에게 무공해 음식으로 따뜻한 밥 한끼라도 대접하고 나면 너무나 기뻐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신령님께 아무 허공에나 대고 합장하면서 감사를 드린다.

남과 나눌 때의 기쁨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지.9)"


8) 김금화는 1985년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었다.



사례 2:김경란10)


"나는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서 존재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어려서부터 ‘내가 왜 여기에 왔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인지’ 늘 궁금했어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태평양 전쟁 말기에 천황이 피할 수 있는 터널을 파다가 상당히 많은 희생을 당했다고 해요. ‘고향에 가고 싶다’는 등, 지금도 그 동굴에 남아 있는 그들의 낙서가 한맺힌 절규를 대변해 주고 있죠.

내가 그곳에서 진혼굿을 했어요.

동굴에 들어서자 눈물이 흘러내리며 나도 모르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어요. 나는 그것이 내 무의식 속에 들어와 있는 그 사람들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죽은 사람이 오더라구요.

(……)

나중에 나는 원혼들이 제 입을 통해 자기의 신상명세를 밝힌 것이 사실인지 조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말들이 내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에 나는 무의식의 상태에 들어갔던가 봐요. 춤을 출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거든요. 말하자면 무아지경 상태에서 나 자신과 외부 세계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강하게 느끼는데, 굿도 마찬가지예요. 이는 경험적인 것은 다 잊어버리고 마음의 어떤 구분도 없는 순수한 의식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어야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하려고 하죠. 그 사람이 어떠한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삶을 살아가든 누구나 다 자기의 인생은 소중하잖아요. 자기를 비우는 것이 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사람도 있고, 또 무조건 채우려는 사람도 있어요.

옛날에는 전자가 좋아 보였는데, 이제는 양쪽 다 필요하다고 느껴요. 어차피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인데,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내면적 욕구가 불투명하거나 사회 또는 외부의 요구와 자신의 욕구가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갈등하면서 나를 찾아오지요. 이럴 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 배울 점이 많아요.

나는 사람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이러이러한 흐름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는 충고를 해주죠. 쉽게 말해 주로 사회화된 욕망을 자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려고 해요.

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편이죠. 웃지 못 할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많지만, 그들과 상담을 하는 동안 그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 내면적인 치유가 되는가 봐요.

상담자와 서로 동화되어 울고 웃다 보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아무튼 한 사람 한 사람 존중하면서 연민을 가지고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다 보면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 삶에 대해 긍정적이 되곤해요.11)"



김금화는 내림굿을 받으면서 그동안 맺혔던 서러움을 다 풀어내고 해방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김금화는 가족들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웃들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을 통해서 깨달음 이전에 이웃 간의 단절되어 있는 의식의 지평이 새롭게 넓혀져 가족과 이웃과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가 된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생명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고 함께 울고 웃고 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김경란은 상담을 하는 동안 찾아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치유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9) 차옥숭, 앞의 책, 1997, 33~39쪽 참조.
10) 김경란은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였으며 신병을 앓고 김금화를 신어머니로 내림굿을 받았다.

11) 차옥숭, 앞의 책, 1997, 48~63쪽 참조.



2. 굿에서 살펴 본 여성의 놀이 정신-마을굿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굿은 마을 공동체의 맺힘을 풀어내어 조화를 회복하고 협동을 다짐하는 마을의 축제이다. 마을굿은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동체의 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축제에는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흥과 멋과 신명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밝고 따뜻한 삶에 대한 갈구가 큰 만큼 좌절과 상처의 아픔도 컸을 것이며, 시련과 좌절을 딛고 이겨내면서 좌절과 슬픔의 아픔도 쌓여갔을 것이다. 그리고 밝은 삶을 그리는 마음이 간절한 만큼 삶의 어두운 그늘도 깊었을 것이다.

한국인의 삶의 특징은 한과 신명의 어울림에 있다. 사무치는 한의 아픔과 장쾌한 활력, 구슬픈 애조와 흥겨운 가락이 공존한다. 이러한 삶의 특징은 오랜 시련과 고난의 역사 속에서 주어진 삶에 충실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한민족에게 한의 아픔과 신명의 활력이 어울려 있는 것은 삶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12) 이러한 한의 아픔과 신명의 어울림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굿이다.


필자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마을굿을 관람했다. 주름살이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굿이 진행되는 마당 한가운데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모습, 가지고 온 음식을 정답게 서로 나누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 이것저것 가지고 와서 마을 어른들에게 대접하던 젊은이들의 모습(후포에서),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져 공동체가 신명에 빠진 놀이판, 굿장에 모여든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에 번져가던 해맑은 모습(김포 어촌계 대동풍어제), 굿이 끝나갈 무렵 닻 감는 노래인 서우제소리에 맞추어 참여자 모두가 흥겨운 춤판을 벌이던 모습(제주도 영등굿) 등을 보면서 굿은 닫힌 의례가 아닌 열린 의례라는 것을 알았다. 마을굿에서는 흥겨운 놀이 속에서 복을 빌어 주고 아픔을 나누며, 같이 울고 웃는 공동체의 삶을 나누는 것이다.13)


굿장은 경건한 제의가 드려지는 장소이고, 놀이판이며 또한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굿판은 만남을 중재하는 장소다. 신과 인간의 만남, 이웃과의 만남, 가난과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와의 만남(……)굿판은 여러 사람이 모여 놀 수 있는 쉼터이자 놀이터이며 일터이다. 민중의 생활 현장이며 나아가서는 민중의 의사를 집결하는 마을의 집회소인 것이다.”14)


고대 사회에서는 놀이가 제의 가운데 포함되었다. 모든 굿에서는 놀이적인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놀이는 인류의 보편적 문화 현상이다. 하늘에 고사를 드리면서 우리의 조상은 굿판을 벌였다. 그 ‘판’에서는 제수상의 음식을 나누는 음복 행위와 가무를 즐기는 놀이판이 벌어진다. 제의가 끝나고 제상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신성(神性)의 은총을 나누는 것이요, 원초적인 근원적 활력과 생명력을 나누어 먹는 행위이다.

이러한 음복 행위는 ‘신의 먹임’을 의미한다.15) 오늘날에도 굿장에서 제의가 끝나면 복을 받으라는 덕담과 함께 제상의 음식을 구경한 모든 참여자들과 함께 나눈다. 제상의 음식을 나누는 것은 복을 나누는 것이요, 신성의 은총을 나누는 것이다.
무에서는 “한은 풀고 복은 나누시게”라는 말이 있다. 개인 굿을 해도 복은 혼자서 독차지 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누는 것이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넉넉한 심성을 굿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음복 후 가무의 놀이판에서는 신화적 융합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그곳은 신과 인간이, 하늘과 땅이, 삶과 죽음이, 남성과 여성이 거리도, 모순도 없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사는 세계이다.”16)


마을굿은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마을 공동체의 묵은 것과 낡은 어둠을 떨치고 새로운 빛과 희망으로 나아가려는 공동체의 집단 행위를 통해 제의 자체의 해방력을 잃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해방력은 굿놀이라는 제의를 놀이로 풀고, 노동을 놀이로 풀어내어 제의의 신성성을 속(俗)으로 승화시키고 노동의 중압감을 극소화시키면서 나타난다.17) 또한 공동체가 신명에 빠짐으로써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간의 일체감이 불러일으키는 영적인 상태에 빠져 원한의 맺힘을 풀고 닫힌 것을 열게 되는 것이다.

굿은 곧 풀이인 바 굿을 통하여 재앙이나 질병 등의 맺힘의 상태가 풀어지고 굿장은 곧 사회적 응어리, 생리적‧심리적 응어리 등이 발산되는 신명의 현장이며 바로 신명이 일으키는 신바람은 해원(解怨)의 성취감과 해방감에의 발현이다.18)
이러한 신명은 굿의 신명을 통하여 얻어지고 공동체적 유대 없이는 불가능하다.19)

필자는 신과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 풍요롭고 평화로운 해방된 삶을 창조하려는 고대 한민족의 종교 제의의 궁극적 목적이 마을굿을 통해 잘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굿의 바탕을 이루는 구조와 원리는 조화에 있다고 본다. 하늘과 땅과 인간(天‧地‧人) 사이에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는 것에 굿의 목적이 있다.


12) 이경숙‧박재순‧차옥숭,  『한국 생명사상의 뿌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2,58~61쪽.
13) 차옥숭, 앞의 책, 1997, 180쪽.

14) 문무병, 「제주도 굿운동의 실천과제」,  『민족과 굿』, 민족굿회 편, 학민사, 1987,192쪽.
15) 이상일, 「놀이 문화 속의 버너쿨러 젠더」,  『한국 여성의 전통상』, 민음사 1985,125쪽.
16) 柳東植,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2, 352쪽.
17) 주강현, 「마을공동체와 마을굿‧두레굿 연구」,  『민족과 굿』, 민족굿회 편, 학민사, 1987, 69, 98쪽.

18) 김열규,  『한국인의 신명』, 도서출판 주류, 1982, 7~50쪽.
19) 주강현, 앞의 책, 1987, 61쪽.



여기에서 필자는 특별히 놀이문화가 고갈된 여성과 굿을 연결시켜 살펴보고자 한다.

개인굿은 물론이고 남성들이 주도하는 마을굿에 있어서도 굿장을 매우고 있는 다수는 여성이다. 여성에게 있어서 굿장은 갈등과 긴장, 한과 고통의 응어리를 풀어내어 참된 화해와 근원적인 해방을 경험하게 하는 장소이다. 또한 남성 위주의 억압된 사회 속에서 여성의 놀이정신을 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상일은 놀이문화의 활성적인 움직임은 생명력이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연한 움직임을 증명하는 놀이, 그 놀이를 주도한 것은 여성적인 힘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20)

우주 창생신화는 창조의 신화이며 창조는 잉태와 출산의 생명력에 대한 서사시이며, 풍요제의가 그것을 증명한다. 풍요는 다산(多産)과 관계되고 생명을 잉태한 모체와 관련된다. 대모신(大母神)과 지모신(地母神)의 신화는 그가 어떻게 우주의 핵심이 되었는가를 증언한다.
따라서 남성신을 위한 제의와 놀이의 공양이라 하더라도 그 원형의 자리에는 지모신의 에로스의 풍요와 다산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또한 그 제의를 계승하고 그 놀이를 전승, 효과적으로 운영한 굿의 주역은 무당들이었다. 따라서 놀이문화에는 원래 여성다움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21)


유동식 교수는 한국문화를 이룬 곡신문화(穀神文化)는 죽음과 재생을 상징하는 생산신인 여신과 관련되며, 곡신신앙은 곧 생명력에 대한 신앙이라고 밝히고 있다. 생명력에 대한 신앙은 보다 풍부한 삶을 촉구하는 신앙으로 풍요한 생산과 수명을 기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본다.22)


그러나 조선조 중엽 이후 실제로 놀이문화를 언급할 때 한국 여성의 기여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여성의 놀이세계는 거의 폐쇄되어 있었다. 상고시대를 거쳐 삼국시대, 고려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융통성이 있던 남녀 관계의 사회적 통념은 그만큼 놀이문화의 보편적 확산과 놀이 일반에 대한 여성참여와 기여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조에 와서 내외법(內外法),남녀격리법 등 금법(禁法)에 의해서 여성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놀이로 통하는 길은 좁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금법에 따른 놀이문화의 폐쇄는 양반 여성들만 막을 수 있었지 일반 서민층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으며 양반 여성들 또한 완전히 규제할 수는 없었다. 그 놀이의 길로 들어서고 싶어 하는 본능은 다양한 방식으로 음성적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23)


조선조 양반 여성들의 금지조항을 살펴보면 핵심은 외출과 노출에 대한 규제였으며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 모여서 노는 것에 대한 금지였다. 규방 여성들은 형제들이 볼 때에는 문지방을 넘지 않고 이유없이 중문 밖을 벗어나지 않아야 했으며 행동범위는 규방에 제한되었다.24)
그러나 규제의 틈새에서 여성들은 문지방을 넘어 뜰을 넘어 중문을 넘어 나들이를 하고 놀이 공간을 확보했다. 또한 여성 문화 속의 억압된 놀이정신은 남성 우위의 통치체제 아래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왔다. 양반가 여성들이 공식적인 승인 하에 단체로 야외에 나가 즐길 수 있는 경우는 화전놀이이다.
화전놀이는 청명한 봄 꽃지짐(花煎)을 해 먹으며 꽃구경도 하고 정담을 나누며 가사도 지어 부르며 즐기는 모임이다.25)


그밖에도 간혹 여성들은 산과 계곡을 찾아 갖가지 놀이를 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어울렸다.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줄 것을 요청하는 기록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26)

또한 유교가 통치이념이었던 조선조에서 불사와 굿은 규제 대상이었다. 대사헌 신개(申槩) 등이 상소한 내용을 보면 “부녀자들이 매 봄과 가을이 되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산에 가서 제사하며 풍악을 치고 즐기며 밤을 지내고 돌아오면서 노상에서 떠들며 자랑하고 광대와 무당과 더불어 놀이를 행하니 이에 부녀자의 실덕이 큼을 지적하고 명산과 신사에 부녀자들의 내왕을 금하고 어기는 자는 처벌할 것을 간하고 있다.”(『세종실록』13년 6월 25일)27)


이처럼 규제에도 불구하고 틈새에서 여성들은 불교의 사찰을 왕래하고 명산을 찾아 굿을 행하였다. 불사와 굿은 금하고자 하나 금할 수 없는 여성들의 종교적 행사며 산과 계곡을 오가며 즐길 수 있는 여성들의 축제였다.28)


그러나 공적인 행사에서 여성 중심의 놀이문화는 쇠퇴하고 세시행사(歲時行事)와 마을 공동체의 축제에서 풍요제의의 믿음과 주체인 여성이 밀려남으로써 축제와 놀이가 빈약한 민족이 되어버렸다.29)

놀이문화의 고갈은 한과 고통에 대한 순화를 망각하게 한다. 놀이 억제에 따른 불가시적인 영향은 난장판의 억센 활력과 생명력을 마멸시키고 그만큼 결과적으로 건강한 문화의 원천에서 멀어지면서 불건전한 사회현상으로 나타난다.30) 생산과 노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놀이는 전체주의적 통치 사회일수록 통치계급의 금법에 저촉되어 추방되었다.31)


20) 이상일, 앞의 책, 1985, 126쪽.

21) 이상일, 위의 책, 127쪽.
22) 유동식, 앞의 책, 1992, 349쪽.
23) 이상일, 앞의 책, 1982, 127~128쪽.
24) 정지영, 「규방 여성의 외출과 놀이:규제와 위반, 그 틈새」,  『한국의 규방문화』, 국제문화제단 편, 도서출판 박이정, 2005, 130, 132쪽.

25) 김경미, 「규방공간의 형성과 여성문화」,  『한국의 규방문화』, 국제문화제단 편, 도서출판 박이정, 2005, 29쪽. 여성들의 화전놀이 장면을 잘 보여주는 화전가는 안동 권씨녀(1718~1789)가 지은 <반조화전가(反嘲花煎歌)>가 있다. 여성들의 화전놀이를 문제 삼은 안동권씨녀의 6촌 되는 남성 홍원당이 지은 <조화전가(嘲花煎歌)>에 대응해서 지어진 것으로 여성들 자신의 문화의 정당성과 자부심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혜란, 「조선시대 규방의 일상문화」,  『한국의 규방문화』,국제문화재단 편, 도서출판 박이정, 2005, 59쪽.
26) “사족의 부녀가 친지를 전송한다며 산간의 계곡에서 놀이를 하고, 취한 뒤에 부축을 받으며 돌아오는 등 그 방탕함이 심하니(……)”(『성종실록』3년 1월 22일);“요즘 사족 부녀자들이 친척을 맞이하고 전송하느라 풍악을 울리며 즐겁게 술 마시고 마음대로 노니는데(……)엄하게 금단하시기 바랍니다.”(『연산군일기』 9년 4월 1
일);정지영, 앞의 책, 2005, 143~144쪽.
27) 정지영, 위의 책, 149~150쪽.
28) 이상일, 앞의 책, 150쪽.

29) 이상일 위의 책, 137쪽.
30) 이상일, 위의 책, 132, 136쪽.
31)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에서 중국 고대의 남녀 젊은이들의 봄, 가을의 축제에서 볼 수 있었던 성스러운 활력과 기능은 봉건사회에서 제후에게 집중되었으며, 무질서와 혼란을 낳는 중심에 여성을 위치해 놓음으로써 남녀 젊은이들의 축제를 통속적인 관습으로 격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유로 여성을 모든 공공생활에서 멀어지게 하고 규방에 칩거시켰으며 여성이 축제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나게 되었음을 잘 서술하고 있다. 마르셀 그라네, 신하령·김태완 옮김,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살림, 2005, 286쪽.



놀이란 제의의 엄숙함과 진지함, 그리고 신성함 속에서 그것을 폭발시키는 인간적인 본능과 싱싱한 건강을 그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32) 놀이는 모든 개체들의 자발성이며 원형적 생명성이기도 하다.33) 이러한 놀이정신은 지금도 굿에서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굿에서 중요한 거리가 끝나고 나면 극화된 놀이가 끼어든다. 거기엔 여러 가지 해학과 웃음이 있다.

지금까지 다른 거리에서 보여주는 진지함과 달리 전혀 신을 모시는 춤이나 청배가(請拜歌)없이 곧장 놀이가 시작된다. 별신굿이나 영등굿 외에도 배연신굿의 영산할먐, 하라뱜 거리, 황해도 대동굿과 진적굿에서 볼 수 있는 말명도산의 방아놀이굿을 들 수 있다. 그밖에도 굿에서 많은 연극적인 놀이가 끼어든다. 재담도 하고 덕담도 나누면서 웃고 즐긴다.

필자가 본 별신굿에서는 굿의 거리와 거리 사이에 노인들을 위한 공연무대가 펼쳐지고 그때마다 주민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다음에 주목할 만한 것으로서 필자는 무감에 관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무감은 신의 덕을 얻는다고 해서 평소에는 무당만이 입을 수 있는 신복을 입고 제가집 식구들이 춤을 춘다. 악기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어 신을 즐겁게 해드려 신덕을 입을 뿐만 아니라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면서 맺힌 한과 두려움과 고통을 다 풀어 버리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 사이의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별신굿이나 영등굿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김포에서 있었던 풍어제에서는 너도 나도 신복을 입고 무감을 서서 춤을 추었다. 나중에는 신옷을 입은 사람이건 아니건 모두 나와 남녀노소가 하나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마을굿뿐만 아니라 개인굿에서도 무감을 서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굿인 천신굿이나 진적굿에서 보면 대감거리가 끝나고 난 후에 제가집 식구들이 신복을 입고 장단에 맞추어 번갈아 춤을 추어 보는 무감이 진행된다. 요즘엔 제가집 식구들뿐만 아니라 거기에 참석한, 즉 그 굿판에 초대된 제가집 친척들, 이웃 아낙네들, 그리고 같은 단골 무당에게 다니는 가까운 단골들이 참여한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거나 다른 이유로 춤을 추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무당들이 자꾸 권한다.

“몸이 아프다는데 한번추어보지 그래”, “가슴 답답한 일도 많은데 한번 추어 보지 그래”하고 주위 사람들이 거든다. 한 명, 두 명, 추고 난 후에는 스스럼없이 참여한다.

처음에는 장단에 맞추어 서서히 춤을 추다가 흥겨워지면서 차츰차츰 장단이 빨라지고 거기에 따라 춤도 빨라지고, 나중에는 엑스타시에 오르기도 하고 결국 지쳐서 물러나게 된다.

옛 부터 “며느리 무관 쓰고 춤추는 꼴 보기 싫어서 굿 못하겠다.”라는 말이 있다. 무감은 전통사회의 가부장적 사회체제의 보편적 놀이문화에서 제외된 여성들의 좁아진 놀이문화의 한 양태라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은 굿거리에도 속하지 않는 거리 사이 막간을 이용해서 뛰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맺힌 한과 고통을 풀어내는 분출구를 찾아내고 놀이가 갖고 있는 흥과 멋을 통해서 일의 중압을 견디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마을굿의 의미와 공동체의 축제에서 밀려난 여성 문화 속의 억압된 놀이정신이 빈약하지만 다양한 굿을 통해서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32) 이상일, 앞의 책, 1982, 142쪽.
33) 하이데거는 그의 책 Der Satz vom Grund에서 헤라클레토스의 단편 52를 인용하여 다음 얘기를 한다.

“어린아이의 왕국에서 놀고 있는 아이가 존재이고 곧 우주다. 아이가 노는 것은 이유가 없다. 아이는 놀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놀고 있다. 최상이면서 가장 심오한, 우리에게 운명으로서 존재와 이유(Sein und Grund)를 던져주는 놀이를 노는 어린 아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놀이는 모든 개체들의 자발성이며 원형적 생명성임을 밝히고 있다. Martin Heidegger, Der Satz vom Grund, Neske in Tuebingen:Germany, 1971, p.188.



3. 무가에 나타나는 여신들


신화는 인간의 원초적 무의식적 심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신화의 언어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신화의 언어는 상징적인 언어들로 구성된다. 신화의 내용에는 한 집단의 꿈과 희망, 불안과 절망 등이 녹아 있다.


한국의 신화는 문헌 신화와 구비 신화로 나눌 수 있다. 문헌 신화는 개국시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반면, 구비 신화는 무에서 구연되는 서사 무가가 주를 이룬다. 구전되어 온 서사 무가에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 심성이 잘 담겨 있다. 더욱이 구비 신화는 일반 대중의 마음에 살아서 활동하는 신화이기도 하다. 특히 구비 신화에는 여성신화가 많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필자는 신화 속의 여신들의 분석을 통해서 오랜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여성성이 어떻게 긍정 또는 부정되는지를 읽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구비 전승된 여성신화 속에는 여성의 경험에서 나오는,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하는 비판과 항거 정신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신화적 요소들이 억압구조를 합리화시켜 주는 장치로 추가되고 윤색되어 은밀히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신화를 읽는 데 중요한 것은 여성의 눈으로 텍스트에 숨겨진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여성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담겨져 있는 신화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긍정되는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무가에 등장하는 여신들 중에는 마고할멈, 선문대할망, 자청비, 가믄장아기, 원천강 등 창조적이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신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신들, 당금애기(생산 신), 바리공주(죽은이를 천도하는 신), 칠성신(蛇神, 부의 신), 영등할미(바람의 신), 조왕할미(불의 신)34) 등등은 가부장적인 지배질서의 희생된 여인들이다. 여기에서 몇몇 여신들의 구체적인 신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4) 차옥숭·김선자·박규태·김윤성, 앞의 책, 2010, 45~76쪽 참고.



1) 바리공주


전국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대표적인 신화로 바리공주 신화를 들 수 있다.

바리공주 신화는 죽은 이를 좋은 곳으로 천도하는 넋굿에서 읊어진다. 넋굿에서 바리공주는 바로 죽은 자를 좋은 곳으로 천도하는 여신이다.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려진 바리공주는 결국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부모를 살려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바리공주 신화는 삶과 죽음과 재생이라는 원형적 패턴을 바로 보여주는 신화이다. 무에서 바리공주는 죽음의 장애를 극복하도록 하는 원초적 힘을 가진 만인을 위한 저승 인도자이다. 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은 바리공주가 겪는 시련들이나 수행하는 역할이 대개 여성의 일상적 삶과 결부된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부과된 요구이기도 하지만, 바리공주는 그 요구를 자신의 의지에 따른 적극적 실천으로 승화해낸다.
이러한 바리공주의 모습은 여성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자아를 완성하고 타자를 살리는 주체적 용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당금애기


당금애기 신화의 내용은 남녀 간의 만남과 결합, 그로 인한 잉태와 출산, 이에 따른 박해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외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고 부모님과 오빠들의 보호 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당금애기는 부모님과 오빠들이 외출한 사이에 집에 찾아 들어온 남자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된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당금애기는 천길 굴속에 갇힌 상태에서 혼자서 외롭게 아들 삼형제를 낳아 양육하게 된다. 여기서 무엇보다 강조된 것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양육하기까지 여주인공이 겪는 고난이다. 당금애기의 시련은 여성이라는 몸을 가졌기에 잉태하고 출산하며 양육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들들을 키워낸 당금애기는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삼신할머니가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어머니-여신에 관한 신화들과 더불어 모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미화하며 신비화할 경우 여성에게는 모성만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가치 있는 역할로 남겨지고, 여성은 결국 모성의 굴레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강요된 모성이 아니라 창조의 원천이자 자녀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감당하는 어머니로서 가부장적 제도를 능가하는 주체적인 모성을 표상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신들과 더불어 여성들은 모성을 자신의 고유한 힘으로 긍정하고, 주체적인 여성 정체성을 구성해 가는 토대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3) 조왕할머니


여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가까이 모셨던 신은 조왕할머니이다. 불의 신인 조왕할머니에 대한 신화의 내용은 첩에 의해 죽임을 당한 여인의 이야기다. 물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살려낸 아들들은 어머니가 춘하추동 사시사철을 물속에서만 살았으니 몸이 얼마나 추웠겠는가 하는 안타까움에 어머니를 따뜻한 부뚜막의 조왕할망으로 좌정하게 한다. 전통 사회의 일상적 공간중에서 부엌은 여성 전용의 공간이다.

불의 신이면서 재물신이기도 한 조왕신은 주부들의 신이다. 주부들은 매일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 놓고 가정의 수호신인 조왕신에게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고하고 집안의 안녕을 기원했다.


4) 영등할머니


바람의 신인 영등할머니 신화는 제주도뿐 아니라 영남 일대에도 비교적 넓게 분포되어 있다. 영등할머니의 신화 내용은 이렇다.


옛날, 영동 고을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한 사람 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변방에 수자리를 살러 갔기 때문에 젊은 며느리와 딸을 데리고 살았다. 어느 날 집 앞을 지나가던 고을 원님이 딸과 며느리를 보게 되고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반한 원님은 그녀들을 데려다가 강제로 범하게 된다.

결국 며느리와 딸은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었다. 이튿날 아침 이들의 죽음을 본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 뒤로 갑자기 큰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온 고을을 휩쓸었다.

원님을 비롯한 모든 마을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무당이 나타나 마을을 휩쓸고 있는 바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그들의 억울함은 낱낱이 밝혀진다.
결국 영등할머니는 바람의 신으로 좌정한다. 영등할머니가 이 세상에 내려올 때에는 며느리나 딸을 데리고 내려온다고 한다. 바람의 신인 영등할머니는 육지에서는 농작물을, 바다에서는 전복, 소라, 미역 등 해산물의 씨앗을 뿌려주는 여신이다. 영등할머니는 해녀들의 안전과 선박의 안전을 지켜주는 여신으로 해녀들의 사랑을 받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여신들은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지고 무책임한 남성 또는 권력에 의해 성적인 수탈을 당해온 여인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가부장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억압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면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여신들은 고난을 극복하고 원한을 풀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승화시켜 새로운 창조의 역사로 끌고 나가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신들이 고난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시련 속에 서 있는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굿에서는 많은 신들의 내력을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여신들의 원한은 그곳에 모여든 여인들의, 아니 이 땅의 여인들의 아픔이요 한이었다.

 딸이어서 버림받고, 권력에 의해서 짓밟혀 죽어가고, 남성들의 단순한 호기심에 희생되고, 버림받고 한 맺힌 힘없는 여인들의 죽음은 여인들에 의해 새로운 여신으로 탄생되고 숭앙됨으로써, 어렵고 힘든 현실을 꿋꿋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인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의 여신들은 그들이 받은 상처와 아픔을 상대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승화시켜 그들과 똑같은 아픔을 당할지도 모르 는 뭇 여성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여신이 된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35)
이러한 신화의 내용 분석을 통해서 필자는 여성들이 지향했던 어진 품성, 강인한 생명력, 평화와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 더불어 사는 지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긍정적인 면에서 한국 여성신화를 분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휴이트의 지적처럼 여성적 신성성이라는 개념들은 그 창조물을 여성에게 도로 덧씌우기 위해 의도된 것일 수도 있고, 여성들의 열악한 현실을 은폐하고 여성들이 더 잘 참아내게 함으로써 그런 억압의 조건들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36)


한국여신들의 특징에는 은총, 생산, 양육, 희생, 순종, 인내 등의 요소들이 부각되어 있다. 여신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희생과 헌신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정형화된 모습의 반영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여신들의 특징은 여성들의 일반적인 헌신과 인내만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억압 조건들을 강화시키고, 여성들의 예속적 삶을 미화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35) 굿에서 모셔지는 남신들의 경우에도 산신이나 부락 수호신이나 당신(堂神)을 보면 국가 권력으로부터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신으로 좌정을 한다. 예컨대 이방원에게 죽은 정몽주, 남이 장군, 최영 장군, 임경업 장군, 이순신 장군, 영월 백성들에 의해 태백산의 산신령으로 모셔진 단종 등이다. 힘없는 백성들이, 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죽음의 무고함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집권 세력의 횡포를 말없이 고발하고 저항하는, 그리하여 잊지 않고 전승해 가는 삶의 지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36) Marsha Aileen Hewit, “Do Women Really Need a ‘God/ess’ to Save Them?:An Inquiry into Notions of Divine Feminine,” Method and Theory in the Study of Religion, Vol.10, No.2, 1998, pp.155~156.



Ⅲ. 나오는 말


지금까지 마을 공동체의 맺힘을 풀어내어 조화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협동을 다짐하는 마을의 축제인 마을굿, 일종의 통과의례로써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양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양태로 전환되는 분기점에서 드려지는 입무제(入巫祭)인 내림굿, 굿에서 모셔지는 여신들의 분석을 통해 젠더의 관점에서 한국의 무를 살펴보았다.


오랫동안 무(巫)는 멸시와 천대 속에서 왜곡되어 왔다. 또한 흔히 무를 여성의 종교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문명화 되지 않은 무와 여성이라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즉 거기에는 무의 비하와 여성 비하가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굿의 바탕을 이루는 구조와 원리는 조화에 있다. 조화는 여성성의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과 인간 사이에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는 것에 굿의 목적이 있다. 이러한 원리는 앞에서 살펴본 굿 이외의 굿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반 사람들이 기복적이라고 비난하는 재수굿도 조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모든 굿의 기본이 되는 재수굿에서는 단순한 기복이 아닌 인간이 살아 가는 삶의 마디마디에서 부조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얽힌 문제들을 신령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 회복을 통해서 문제 해결이 가능해 진다. 또한 복은 혼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복을 받으라는 덕담과 함께 제상의 음식을 구경하는 모든 참여자들과 함께 나눈다. 제상의 음식을 나누는 것은 복을 나누는 것이요, 신성의 은총을 나누는 것이다.

무에서는 “한은 풀고 복은 나누시게”라는 말이 있다. 개인굿을 해도 복은 혼자서 독차지 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누는 것이다. 복을 독차지할 경우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가 깨어지는 것이다.


우환굿에서도 병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잘잘못이 드러나는 사회 고발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폭로하고 전승해 가는 기능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굿을 통해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밝힘으로써 죽은 자의 무고함을 비호(庇護)하고 그들의 원한을 풀어내어37) 저승의 좋은 곳으로 천도하여 죽은 자만이 아니라 산 자를 치유하는 것이다. 즉 굿은 죽은 자와 산 자, 산 자와 산 자의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37) 김성례는 제주도의 특정한 지방 역사에 비추어 제주도의 무속이 하나의 역사적 담론으로서 존재하는 양식을 그의 박사학위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1948년 4월 3일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은 그 사건에 대한 기억마저 억압당하고 있던 오랜 세월 동안 간접적인 방법, 즉 굿에서 무당의 입을 통해 원혼의 죽음과 관련된 폭력과 공포의 역사를 폭로하고 담지해가는 기능을 했으며 여기에서 제주도 무(巫)는 억누르는 정치체계에 대항하는 또 다른 저항의 힘을 잠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Seong Nae Kim, Chronicle of Violence, Ritual of Mourning:Cheju Shamanism in Korea, The University of Michigan, 1989.



넋굿은 가족들로 하여금 망자에 대한 애착과 슬픔을 거두어내고 현실로 돌아와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들은 이 의례를 통해서 망자가 이승에서의 모든 한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가족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미련 없이 떠나 저승의 좋은 곳으로 천도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넋굿의 제차 하나하나를 통하여 가족들은 망자의 죽음을 확인하고 재(再)체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던 그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의 재체험 과정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남아 있는 남모르는 무의식적 감정, 죄의식과 갈등 등을 의식의 표층에 노출시켜 그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게 하여 스스로의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넋굿은 죽은 자를 위한 굿인 동시에 산 자를 위한 굿이다. 이처럼 굿의 구조와 원리는 깨어진 조화의 회복에 있다.


또한 지금까지 살펴본 무에서 여성은 단지 가부장제가 틀지어 놓은 정체성과 역할에만 안주하지 않고, 그 틈새에서 주체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림굿과 무당들의 경험을 통해서 보여준 무당이 지향하는 길은 기성 종교들의 사제들의 역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또한 마을굿의 놀이 문화를 통해서는 가부장제의 억압과 종속을 비껴가는 많은 여성들의 일탈과 저항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굿에서 베풀어지는 억압된 놀이 문화 속에서도 여성들은 일의 중압감과 맺힌 한들을 풀어내고 굿장은 해방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화는 단지 지배 계급이나 중심 계층의 이데올로기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이나 주변 계층의 저항과 일탈의 흔적과 욕망을 담고 있기도 하고 가부장적 목소리 외에 여성에게 힘을 실어 주는 목소리도 함께 담고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무는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들과 함께 해왔다.
여성들은 삶이 너무 고달파서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선문대할망, 금백조할망, 자청비 같은 창조적인 슈퍼 우먼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외지에서 흘러들어와 외롭게 죽은 여인, 가부장적인 지배질서의 희생된 여인 등을 여신으로 좌정시키기도 하면서 그 한 맺힌 아픔들을 보듬고 삶을 살아갔으리라 생각한다.

때로는 본향당신을 위한 마을굿은 출가한 딸들까지 다 모이는 축제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통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고 마을 여성 전체의 화합과 상생을 다지고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며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며 풀어나갔으리라 생각한다. 그래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신화에서 보여주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힘 있는 여신들의 모습이 은연중에 여성들로 하여금 강인하고 근면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살아낼 수 있다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할 점은 무에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읽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는 오랫동안 왜곡되게 평가되어왔다. 그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무에서 여성이 어떻게 긍정되는지를 읽어내려고 노력했음을 밝힌다.


끝으로 “나는 족집게처럼 잘 맞추는 무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에 미련이 없다. 사람이 잘 살도록 돕는 무당이고 싶다. 허황된 믿음을 갖는 것보다 현실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며 살도록 이끌어주고 싶다. 무당은 세상의 갈라진 것을 모으고, 찢어진 것을 아물게 하며, 뜯어진 것을 꿰매는 사람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는 김금화 무당의 말로 이 글을 맺는다.



참고문헌 -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