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학적 분석과 신화비평(I) * 조성애(연세대학교) *
서론
20세기의 놀라운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폭로되는 인간의 야수성은 인간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행복신화에 불안한 그림자를 던져주며,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떨쳐 버릴 수 없게 만든다. 신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인간의 욕망과 행동의 기원과 그 진행방향을 설명해주는 열쇠를 찾고자 하는 이런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들어와서 상상력 혹은 상징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부터 신화라는 개념이 인식론의 차원에서 재평가되고 더욱 힘을 얻게 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1). 게다가 신화 분석은 미르치아 엘리아데, 앙리 코르뱅, 조르즈 뒤메질, 레비-스트로스 같은 뛰어난 종교사가, 민속학자, 문헌학자, 인류학자들을 만나면서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제 신화는 더 이상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죽고, 태어나고, 변화해가는 우리의 삶 자체로써, 우리의 생각뿐만 아니라 한 민족, 한 국가의 삶을 결정짓고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화에서부터, 인간의 상상적인 표현이 가장 고도로 발휘된 최초의 문화형태로서의 신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선 하에서 조명된다.
본 논문 1부에서는 신화학적 연구들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나갔는지 보기위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신화학적 연구 경향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 다음, 서구에서 특히 19세기와 20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신화연구의 영향과 기능을 20세기 주요 신화학자들을 중심으로, 즉 구조주의 인류학의 레비-스트로스, 현실에 내재된 신화와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조명한 롤랑 바르트, 욕망이론의 르네 지라르의 핵심점 등을 중심으로 고찰할 것이다. 이들 신화학자들로 대표되는 ‘신화학적 분석critiques mythologiques’은 20세기 정신분석학이나 심리비평의 영향 하에서 ‘신화비평mythocritique’으로 한 단계 나아감을 보여준다.
2부는 신개념의 신화학을 내세우며 이들 신화학자들의 ‘신화학적 분석’에 대해 비평하는 질베르 뒤랑과 그의 ‘신화비평’에 대해 언급될 것이다. 심층심리학의 융과 상상계의 위대한 모험가인 바슐라르를 계승하면서, 신화 속에 나타난 인간 상상력의 근본적 원형들을 연구하면서 기존의 신화학적 비평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 뒤랑의 신화비평의 중요 이론들과, 그리고 그의 신화비평을 사회역사적 맥락으로 확장시킨 ‘신화분석mythanalyse’의 중요 개념, 그리고 이를 계승하고 있는 현대 신화학자들에 대한 소개가 될 것이다.
1) ‘조르주 소렐의 정치적 사상들, 막스 베버의 유형학적 사회학, 니체와 바그너의 미학, 에른스트 카시러의 상징적 형태의 철학,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방향전환 (만하임, 아도르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융의 심층 심리학 등에서 파급된 영향의 결과’이기도 하다: 진형준, 『상상적인 것의 인간학』, 문학과 지성사, 1992, 68쪽.
1. 신화학적 분석
1.1 신화학mythologie이란 무엇인가
신화학은 우선 신화들의 총체나, 신화들의 연구를 의미하며, 더 넓은 의미로는 문화와 종교, 특별한 주제와 연결된 신화적인 이야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첫째, 신화학을 신화들 총체로 볼 때, 사회-종교적 문화차원에서 고대사회의 종교적 체계나 태초의 문화체계를 설명하는데 쓰이며, 보통은 종교들의 신성한 이야기를 지칭한다. 수많은 고대 종교들은 신화적 이야기를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둘째, 신화학이 신화들의 연구로 이해될 경우, 신화학은 신화들의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의미를 넘어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
본고에서는 둘째 의미에서의 신화학적 연구에 대해 말하고자한다. 고대에는 신화의 주인공들이 인간이며 사후에 성화되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에베메로스 설처럼 비유적인 의미를 찾거나 플라톤처럼 교훈적 차원에서 신화를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신화학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빛의 세기의 철학자들, 특히 인류학을 비롯해, 사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발전되며, 19세기에 와서는 전문적인 신화연구자, 신화학자가 나타나게 되며, 예전의 신화연구 방식을 넘어 신화를 태어나게 한 사회내에서의 신화의 위치에 관심 갖게 된다.
19세기 신화학자는 주로 문헌학자들이었으나, 인류학의 발달과 더불어 신화연구에서 인류학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신화학은 인류학자가 주가 되어 한 민족의 신화연구와 다양한 문화의 신화들 간의 관계를 연구하거나, 한 공동체의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의, 관습, 기술 등과 비교되면서 연구되기 시작한다. 이런 발전에서 20세기의 신화학적 연구의 중요 흐름들인 의식연구 차원의 해석, 심리분석적 접근, 구조주의적 접근이 나타난다.
1.2 신화학 연구사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신화적 연구의 흐름들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신화연구들이 어떤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는지 보고자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실임직하지 못한 신화들은 부도덕적이라고 간주하면서, 신화 이야기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어 부조리한 면을 제거하고 수정해서 더 사실임직한 면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기원적 6세기부터 진실하고 합리적인 로고스보다 낮게 평가되는 뮈토스는 허구적 이야기라는 비하적인 함의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런 경향 속에서도 신화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속에 숨겨진 비유를 이해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고자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플라톤은 자신의 추상적인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동굴 신화’2) 같은 비유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헬레니즘 시대의 신화학자 에베메로스는 신들은 처음에는 실재 인간이었는데 그들이 죽은 후에 신성화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화실재설을 태동시킨다.
신화는 이처럼 신화적 이야기에서부터 실제 사건들을 재구성하려는 역사적 설명을 부여받게 된다. 에베메로스 이후, 신화연구는 이야기 뒤에 숨겨진 제 2의 의미를 찾고자 하며, 다시말해 신들, 영웅들, 신화적 인간들의 모험이 자연의 힘이나 추상적 개념(철학적 해석)을 비유한 것으로 여겨진다.
2) 참조: Le mythe de la caverne, Platon, La République, Livre 7 (http//fr.wikipedia.org):
동굴 신화는 인간과 진정한 빛과의 관계를 비유한 것. 지하에 사슬에 묶여 갇혀 사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벽에 반사되는 희미한 그림자와 소리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어렴풋한 이미지, 울리는 소리를 현실로 알고 살고 있다. 여기서 동굴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감각세계이고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모든 절대 권력을 의미한다. 우리는 동굴에 매여 있는 노예들로써. 바깥에 있는 빛을 찾아, 동굴을 뛰쳐나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고통과 두려움을 참아내야 함을 플라톤은 말하고자 한다. 물론 빛을 보려고 하는 이는 철학자이지만 그는 동굴 속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된다.
<중세에서 18세기까지>
이런 신화적 해석 경향은 중세까지 계속된다. 르네상스와 18세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신화에 접근한다. 게오르크 피토리우스Georg Pictorius는『신화적인 신학Theologia mythologica』(1532년)에서 신화들을 비유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18세기 초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는『신과학La Science nouvelle』(1725년)에서 역사의 순환이론을 발전시킨다. 즉 모든 문화는 신성, 영웅, 인간이라는 3 세대를 따라 발전한다고 본다. 1724년 프랑스 철학자 퐁트넬Fontenelle은『신화의 기원에 대해Del'origine des fables』에서(당시 fables은 신화를 지칭한다) 신화의 부조리함을 밝히고 신화는 최초의 인간들이 무지해서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은 것이라고 본다.
<19세기>
19세기의 신화연구는,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영향 하에서, 인간사고의 진보 개념을 확신하는 신화학자들의 신념을 기반으로 발전된다. 그러나 서구 문명을 발전된 문화로 보며, 글이 없는 이민족들의 신화들을 원시적이고 열등하다고 보는, 자민족 중심주의의 시각은 식민지화와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3) 19세기 신화학자들은 인류학과 사회학에서 자신들의 토대들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어권에서는 진보의 개념이 진화론의 흐름과 더불어 발전된다.
미국인 인류학자 루이스 모건Lewis Henry Morgan(1918-1881)도 진화론자 중의 하나이며, 영국인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Tylor(1832-1917)는『원시문화Primitive Culture』(1873-74)에서 문화의 개념을 민족학적으로 정의한다.
타일러는 종교적 사고가 발전한 세 개의 연대기적 단계를 애니미즘, 다신교, 일신교로 구분한다. ‘신화·철학·종교·언어·예술·관습의 발전에 대한 연구’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에서 타일러는 문화의 개념을 밝히고, 문화의 발전과 진화를 논했는데,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종교는 애니미즘에서 시작되고, 사령(死靈)과 정령(精靈) 신앙으로 나아갔다가,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진화한다는 종교의 애니미즘 기원설이다. 이것은 그 당시 유행한 진화론을 문화에 응용한 것인데, 후에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이 책에 의해서 처음으로 인류의 다양한 문화가 학문의 대상으로서 체계적으로 파악되었다. 인류학의 초석을 세운 주요한 저서 중 하나이다. 20세기 초,『황금가지』의 저자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1854-1941)도 이런 사고의 흐름과 일치한다.
1890년에서 시작해서 1937년에 완성된 신화와 종교에 대해 기술한『황금가지』는 종교를 신학적 관점이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프레이저는 미개인의 신앙이나 풍습을 비교 연구하면서, 인간의 문명이 미신, 주술에서 종교로 그리고 종교에서 과학으로 진행되어왔다고 역설하였다.
다른 한편 독일에서는 언어학의 발달로 문법과 문헌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비교문법이 발달되고 다양한 민족들의 종교적 사고를 비교하게 된다. 산스크리트 언어 연구, 인도 고대어 연구는 독일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이룬다.
산스크리트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로, 인도유럽어 연구에 가장 중요한 언어로, 언어의 기원의 문제에 답할 수 있는 언어로 간주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문헌학자이며 동양학자, 인도연구의 창시자에 속하는 막스 뮐러Max Müller(1823-1900)는 다양한 민족들의 신화들 간의 관계를 세부적으로 연구하면서 비교신화학의 토대를 세우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사회학이 시작된 이후, 19세기 후반에는 인류학이 발전된다.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1858-1917), 마르셀 모스Marcel Mauss(1872~1950)의 연구들은 사회적 현상과 모든 사회적 현상의 개념을 논하며, 특히 사회에서의 종교와 마술의 위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신화학적 연구의 범주를 재정의하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과 인류학 형성에 크게 기여한 뒤르켐은 교육, 범죄, 종교, 자살, 사회주의 등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수많은 사회학 연구서를 출간했다. 모스는 사회학, 종교학, 철학, 인류학, 심리학을 넘나드는 ‘총체적인’ 연구를 시도했던 학자로 그 역시 프랑스 사회학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저술 대부분 공동작업의 산물로, 앙리 위베르와 함께『희생제의:본질과 기능』(1899),『주술의 일반 이론』(1904), 에밀 뒤르켐과 함께『원시적인 분류체계』(1903)에 대해 연구했다. 대표저술『증여론Essai sur le Don』(1925)은 각기 다른 집단을 서로 연결시키는 힘의 원천인 선물에 관한 연구이다.
고고학자 살로몽 레나크Salomon Reinach(1858-1932)는『제의, 신화, 종교Cultes,mythes et religions』(1905)와『오르페우스, 종교사Orpheus, l'histoire des religions』(1909)에서 종교사를 다루면서 고대 이교도의 종교들과 현대적 일신교를 같은 차원에서 제시한다. 그의『제의, 신화, 종교』는 터부의 개념, 토템이즘의 개념을 통해 프레이저와 같은 계보에서 신화들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프로이드의 토템과 타부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4)
3) 이런 전제들과 해석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야생적 사고』에서 완전히 부정된다.
4) 참조 : http//fr.wikipedia, http//fr.yahoo.com (mythologie)
<20세기>
20세기에 들어와서, 조르주 뒤메질Georges Dumézil,5)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6) 레오 프로베니우스Leo Frobenius,7) 제임스 프레이저, 앙리 코르뱅Henry Corbin,8) 로저 바스티드Roger Bastide9) 등에 의해 빛의 세기에서는 감히 인용할 수조차 없었던 꿈, 환상적 이야기, 최면적 황홀상태, 신들림의 현상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인간에 대한 이런 재발견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발견, 융의 심층 심리학이 합류하면서,10) 20세기 신화학적 분석들은 심리분석적 접근으로 나아간다. 20세기의 몇몇 중요 신화분석이론과 이들에 대한 뒤랑의 비평적 관점을 살펴본 후에 뒤랑의 신화비평과 신화분석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5) 조르주 뒤메질(1898-1986)은 인도-유럽 종교들을 연구하면서 의례, 신화, 집단언어와 같은 상징의 범주들을 구성하는 기능적, 사회학적, 문헌학적 동기부여를 밝히고자 한다.
인도 유럽어권 민족들의 고대 신화학과 종교들이 비슷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음을, 즉 로마의 건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양한 건국 신화 속 인물들과 동일하다는 점에서, 로마의 역사가 인도유럽어권 신화의 아주 오래된 태고적 이야기임을 밝혀내었다. 그는 신화학, 고대 로마의 건국 이야기나, 사회제도들은 3가지 기능에 따라 구성된 사회의 개념, 즉 신성함과 통치권의 기능, 전사의 기능, 생산과 재생산의 기능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앙시엥레짐은 성직자, 귀족,제 3계급으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뒤메질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실증주의적 관점을 상대화시키는 동시에 의문을 제시하면서 모든 인간의 이야기에 신화적 깊이를 돌려주었다(질베르 뒤랑,『신화비평과 신화분석』, 유평근역, 살림, 1998, 49쪽).
6) 미르치아 엘리아데(1907-1986)는 현대 종교사를 세운 이들 중의 하나로써 종교적 경험에 ‘성聖’의 개념을 설정한다. 그는 신화연구를 통해 종교들에 대한 비교주의적 관점을 발전시키면서, 각각 다른 문화들과 역사적 순간 사이에 인접관계 즉 유사관계가 있음을 찾아낸다. 문학텍스트와 신화 텍스트간의 상응원칙, 상호침투성을 뚜렷이 보여준 이가 미르치아 엘리아데이다(질베르 뒤랑,『신화비평과 신화분석』, 265쪽). 또한『종교형태론』(이은봉 역, 한길사, 2007)에서는, 신화와 상징을 천상의 상징과 지상의 상징으로 구분한다. 하늘, 태양, 달, 두 개의 커다란 천체와 별들, 대기 ,화산, 물, 지하세계, 천재지변등과 관련지어 신화, 인류의 역사 및 상징체계를 설명한 크라프 (신화의 기원)와 거의 같은 구도를 따르지만, 보다 깊이 있게 천재지변, 화산, 대기 등과 관련된 신화와 상징들을 좀 더 일반적인 범주 속에 통합시키면서, 우라노스 의례와 상징, 태양, 달과 달에 대한 신비신앙, 그리고 물과 권능발현 및 대지 등에 관해 광범위하게 설명한다.
그의 영원회귀의 신화에 관한 성찰은『영원회귀의 신화』(심재중 역, 이학사, 2003)에 잘 알려져 있다.
7) 독일 민속학자 레오 프로베니우스(1849-1917)는, 문화는 인간에게서 독립된 존재로 인간이나 동식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유기체적 발전을 거쳐 문명의 단계에 도달한다는 학설을 주장한다. 민족학에서 처음으로 문화권 개념을 제창한다.
8) 프랑스 철학자, 동양학자인 앙리 코르뱅(1903-1978)은 계시적 이야기, 영적존재, 천상의 세계, 천사학, 마호메트 후계자학 같은 주제들이 그가 명명한 예시철학philosophie prophétique (성서의 영성적 해석에 토대를 둔)의 근본을 이루는 창작물들이라고 본다. 이런 예시 철학은 인간에 내재된 계시적 능력과 이성적 능력을 통합시킬 수 있는 접신론théosophie(모든 종교들은 인간이 신성을 알고자 하는 투사이며 시도라는 이론)으로 간주 되어야한다고 본다. 그의 분석들은 역사적 해석을 넘어 이런 계시적 전통이 세속화로 인한 치명적인 위험을 겪게 되는 영성과 신성의 상실에 대항하는 보루처럼 간주될 때 새로운 차원을 갖게 된다.『이슬람의 철학사』(1964),『이란의 이슬람교: 영적 철학적 측면』(1978),『아비센과 계시적 이야기』(1999),『숨은 마호메트 후계자』(2003) 등의 저술이 있다(참조 : http//fr. wikipédia).
9) 로저 바스티드(1898-1974)는 프랑스 사회학자, 인류학자로 상파울로 대학 재직시 브라질과 아프리카의 종교들에 대해 연구한다. 이어 소르본 대학에서 인류학과 종교 사회학 교수로 재임하면서『사회학과 심리분석』을 발표한다. 그의 최종작업은 프랑스 거주 아프리카인들과 안틸라 제도 주민들의 정신병을 다루고 있다(참조 :fr. wikipédia).
10) 질베르 뒤랑, 유평근 역, 『신화비평과 신화분석』, 살림, 1998, 43쪽.
1.3 20세기 중요 신화분석이론
a. 프로이트와 융
1890-1900년대에 심리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는 말년에 인류학과 종교사로 심리분석의 영역을 넓힌다. 그는 몇몇 신화들을 심리분석적 사고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설명한다.『토템과 타부』(1913)에서 원시사회의 심리를 분석하는 동시에 신화학적 해석으로 나아간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선형적인 설명을 내세우는 고전 심리학과 현상학적 심리학을 단호히 거부하고, 동기부여를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일조하지만, 상징의 동기를 ‘쾌락원칙’에 국한시키는 한계를 보여준다.
‘구강기, 항문기, 생식기 과정’을 통해본 리비도의 동기부여는 고착의 메커니즘, 심적 억압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데, 상징체계의 풍요로움은 억압의 좁은 영역을 훨씬 넘어서며, 검열에 의해 금기가 된 대상들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억압의 산물이기는 커녕 억압 제거의 원천이기 때문이다.’11)
오이디푸스, 프로메테우스 신화, 성경의 창세기 신화에 대한 프로이트의 해석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장-피에르 베르낭Jean-Pierre Vernant, 피에르 비달-나케Pierre Vidal-Naquet 같은 신화학자들에게서도 신화들의 의미를 ‘성적인 코드’로만 축소시켰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분석은 이후 다양한 신화분석을 이끌었고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신화연구에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귀스타브 융(1875-1961)은 심층 심리학을 내세우며 정신의 구조와 문화가 만나 만들어내고 표현한 것과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융에 의하면 한 개인의 심리는 그의 개인적 역사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문화가 전달하는 표현에 의해서도 영향 받는다.
융이 내세운 원형과 집단 무의식의 개념, 특히 신화에 나타날 수 있는 집단무의식에 의해 뒤섞여진 상징적 범주의 공시성 개념들은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인류학, 꿈의 연구, 신화학, 종교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인류학자, 신화학자들과 같이 공동연구하면서 20세기 인문학과 인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융의 원형이론에 영향 받은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셉 켐벨Joseph Campbell(1904-1987)은 원형신화(monomythe:모든 신화에 공통된 구조12))와 더불어, 신화들에서 보편적인 것을 찾아, 이들 보편적인 것이 어떤 보편적 상징체계를 가진 유일한 서술 구조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융의 원형론은 문학연구에서도 발전되어 나타나는데(원형비평), 문학은 역사적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신화적 패턴 또는 원형을 구체화한다고 본다. 대표적 분석으로는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1912-1991)의『비평의 해부Anatomy of criticisim』가 있으며, 프라이는 융의 원형이론을 그대로 참조하면서, 융의 원형들은 문학적인 주제들의 모델이며, 신화란 문학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원칙들로 본다.
경제학 교수이며 사회학자인 유진 뵐러Eugen Bőhler(1893-1977)는 융의 이론과 대중의 행동유형을 접목시킨다. 그는 경제적 삶은 국가의 이해관계보다는 환상과 신화에서 나온 집단적 충동에 의해 더 좌우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융의 이론이 상상계에 대한 일련의 사고들, 즉 가스통 바슐라르와 질베르 뒤랑의 연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며 아주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온다.
가스통 바슐라르13)는 융의 심리분석과 원형의 상징학에 영향받아『불의 심리 분석Psychanalyse du feu』에서 상상력의 이론을 발전시킨다.
융의 원형학에서 출발해서 신화분석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질베르 뒤랑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뒤랑 이외에도 미셀 카즈나브 Michel Cazenave,14) 피에르 솔리에Pierre Solié15)는 문화 분석에 융식의 심리분석을 적용하며 융을 계승하고 있다.
11) 질베르 뒤랑, 진형준 역,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문학동네, 2007, 45쪽.
12) 이 원형신화는『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윤기 역, 민음사, 2004)에 잘 설명되어 있다.
13) 뒤랑에게 큰 영향을 미친 바슐라르에 대해서는, 그가 신화학적 측면의 인류학자라기보다 상상계의 위대한 모험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자 한다. 뒤랑은 바슐라르가 과학과 상상력을 분리하고 상상력이 과학과 이성에 억압받는 서구 정신사 흐름에서, 상상력에 자주성을 부여함으로써 시학과 상상력에 대한 과학과 이성의 침투를 막았다는 것 자체로 높이 평가받을만하며, 바슐라르 이후 과학과 상상력 사이에는 상반되는 것들의 공존이 아니라 화해와 상호침투가 어우러지고 있다고 본다(송태현,『상상계의 위대한 모험가들』, 살림, 2005, 46쪽).
14) 미셀 카즈나브:『사랑의 묘약과 사랑Le philtre et l'amour-La legende de Tristan et Iseut』, José Corti, 1969,『영혼의 전복,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의 신화분석La subversion de l'âme, Mythanalyse de l'histoire de Tristan et Iseut』, Seghers, 1981,『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et Iseut』, Albin-Michel, 1985.
15) 피에르 솔리에(1930-1993): 본질적인 여성La femme essentielle, Seghers, 1980;『심리분석과 이마지날Psychanalyse et imaginal』, Imago, 1981,『융식의 신화분석Mythanalyse junginne』, ESF, 1982.
b.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1908-2009)
레비-스트로스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로만 야콥슨에 의해 탐구된 언어의 구조 분석을 인류학에 적용한다. 언어란 수만 개의 소리 중에서 가장 차이성이 큰, 즉 대립이 두드러진 몇 몇 소리들을 조합하여 단어 수십만 개를 만들고, 이 단어들을 결합해 문장을 구성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의미없는 대립적 차이성만을 가진 소리인 음소를 바탕으로 의미있는 단어(의미소)를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언어라는 상징체계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의 구조주의 신화학은 신화에 숨겨진 유일한 의미를 찾는 대신 같은 이야기의 다른 버전들이 서로 간에 연결되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신화의 모든 버전은 같은 파롤의 행위 즉 랑가주의 표현이라고 보면서, 신화를 이루는 기본단위 즉 신화소를 찾고자 한다. 그는 다양한 현상 속에 숨어있는 이원적 무의식 구조가 바로 신화라고 보며, 신화의 이항대립의 변환 혹은 치환그룹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따라 다양한 신화로 나타난다고 보면서 신화에 존재하는 대립적 관계를 바탕으로 인간 심층에 존재하는 문화형성 원리, 즉 구조적 무의식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했다. 헤겔의 영향으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이항 대립과 이들의 통합 (정반합)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구성하며, 의미는 이런 구조로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즉 신화는 이항 대립이 해결되었다는 환상 혹은 믿음을 이끌어내면서, 양립할 수 없는 이항 대립을 양립할 수 있는 이항 대립으로 변화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본다. 레비-스트로스가 찾으려는 구조적이고 일반적인 무의식은 결국 차이성과 유사성의 관계를 통해 상징과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와 같은 원리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방대한 신화를 네 권의 ‘신화론’을 통해 분석한다.
그러나 이런 연구 방식은 신화의 역사적인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너무나 비시간적인 설명을 제시한다는 점과, 발화라는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신화를 단순한 이야기망으로 환원한다는 점이 비난된다.
이런 비난 이후 문학, 예술, 문화라는 상황에서 신화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모습에 주의하는 화용론적인 접근이 나타난다. 레비-스트로스 이후, 구조주의 신화학은 고대사회 비교연구소인 루이 제르네 연구소Centre Louis Gernet, 장-피에르 베르낭Jean -Pierre Vernant이 이끄는 프랑스 사회과학 대학원EHESS, 피에르 비달-나케Pierre Vidal-Naquet,16) 마르셀 데티엔Marcel Détienne,17) 프랑수아즈 프롱티지-뒤크루Francoise Frontisi-Ducroux18)에 의해 이어진다.
장피에르 베르낭의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고Mythe et pensée chez les Grecs, Etude de psychologie historique는 신화들을 사고체계의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역사, 인류학, 심리학, 언어학의 기여와 비교하면서 그리스 신화연구를 깊이 있게 변화시키는데 공헌한다. 이런 새로운 접근 방식 덕분에 신화연구는 해석학적 접근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학에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이들 구조주의 신화학자들에 대해 뒤랑은 이들이 신화를 언어와 동류시하고 신화의 상징적 구성물들을 음소와 동일시한다고 비평한다. 뒤랑은 신화는 언어의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관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의미화들로 이루어진 세계이므로, 신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줄거리뿐만 아니라, 각 용어의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16) 피에르 비달-나케(1930-2006) : 프랑스 사학자, 그리스 문명 연구가로 장 피에르 베르낭과『고대 그리스La Grèce antique I, II, III』(1991-1992), 『오이디푸스와 신화Oedipes et ses mythes』(2001),『고대 그리스에서의 노동과 노예제도Travail et esclavage en Grèce ancienne』(2002)을 공동 저술한다.
17) 마르셀 데티엔(1935, 벨기에), 그리스 문명연구가, 비교 인류학자로 60년대에 파리로 와 피에르 베르낭과 같이 일함. 특히 고대 그리스의 말과 토착성을 연구함.
18) 프랑수아즈 프롱티지-뒤크루:『미로. 고대 그리스의 장인의 신화학Dédale. Mythologie de l'artisan en Grèce ancienne』, Maspero, 1975.
c. 르네 지라르René Noël Théophile Girard(1925-)
자칭 폭력과 종교성의 인류학자라고 하는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모방이론19)은 종교성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하면서 신화의 기원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제시하며 새로운 인류학의 토대를 마련한다.
『폭력과 성스러움La violence et le sacré』(1972,민음사, 20000),『세계 창조 이래 감추어진 것들Les choses cachées depuis la fondation du monde』(1978)은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놀라운 특징들을 밝힌다. 그는 정상적인 체제는 그 이전에 항상 위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같은 대상을 원하는 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대상은 빨리 잊혀지고 모방적 경쟁관계만이 확산된다. 모방욕망에서 나온 분쟁은 일반화된 적대관계로 변하고, 혼란, 무차별화, 모두가 모두에게 맞서는 전쟁, 즉 모방적 위기가 만연해진다. 모두가 모두에게 적대적인 이런 위기 상황은 속죄양을 통해 집단의 파멸을 막는다. 공동체 전체의 적대감은 희생자를 제거하면서 급속히 사라지고 공동체는 일체가 된다. 희생물은 위기를 불러일으킨 책임자인 동시에 평화를 되찾게 해준 장본인이 된다. 희생물은 신성해진다. 바로 이것이 고대 종교성의 기원이라고 지라르는 본다.
희생제의는 기원적 사건의 반복이며 신화는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신화는 사회체제가 설립될 때 실제로 일어난 사건, 즉 전반화된 폭력의 위기 속에서 희생물의 추방이나 살해라는 사건을 변형시켜 이야기한 것이라고 본다. 지라르의 신화에 대한 생각은 레비-스트로스와는 반대이다. 구조주의적 생각은 신화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흔적을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창조 이래 감추어진 것들』에서 지라르는 기독교의 성경을 다른 신화이야기와 같은 차원에서 접근한다 : 집단에게 만장일치로 죽임을 당한 희생물- 신, 그리고 영성체로 상징되는 희생제의로 재생되는 사건. 여타 신화와 다른 단 한 가지는 희생물이 죄가 없다는 점이다. 죄없는 희생물은 희생적 체제를 파괴하는 씨앗이 된다. 이미 구약에서도 아벨, 요셉, 욥 같은 무죄한 희생물의 이야기가 나타나지만, 폭력이 완전히 사라진 신약의 존재는, 살해를 바탕으로 세워진 세상, 욕망을 품은 자이든, 욕망된 자이든 그 누구도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여지를 보여준다. 지라르에 따르면 신약 성서적 희생은 한 체제를 해체시키는 효소로 작동된다고 할 수 있다.
19) 1961년에 발표된『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erité romanesque』(한길사, 2001)은 희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욕망의 모방이라는 인류학적인 측면을 밝힌다.
지라르는 대작가들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인물에게서 공통된 관계들, 욕망의 모방적 특성을 찾아낸다. 이들의 욕망은 자율적이기는 커녕 자신들의 모델이 되는 인물이 욕망하는 대상을 똑같이 욕망하는데서 생겨난다. 항상 욕망의 삼각형이 형성되는데, 사물은 끌어당기는 중개자일 뿐이고,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모델이라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욕망의 자율성을 믿는 것은 대부분의 문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낭만적 환상이다. 욕망의 현실을 발견하고 중재자를 밝혀내는 것은 바로 위대한 작가들이 한 일이다. 모방 욕망의 논리는 기꺼이 실패를 향해 나아가려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프로이드는 이것을 죽음의 본능으로 가정한다.
d.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와『현대의 신화 Mythologies』(1957)
소쉬르와 옐름슬레우의 기호학적 방법론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바르트는『현대의 신화』에서, 신화라는 개념을 내세워, 현대의 대중문화 속에 숨어 있는 기호의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면서, 현실이란 완벽히 역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연으로, 자명한 진실로 혼동되는 거짓을 설명하고자 했다. 현대세계의 가치체계, 즉 현대적 신화는 집단 표상과 유사해서 언론과 광고 매체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결정된 것을 반영한 것이며, 부르주아지가 세상에 부여한 자신의 이미지라고 본다.
부르주아지의 문화와 윤리라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들이 신화를 통해 자연적인 것으로, 초역사적인 것으로 가장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 바르트식 신화해석의 본질이다.
예를 들자면, 파리 마치 표지에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청년이 펄럭이는 삼색기를 올려다보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사진의 이미지는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 모든 프랑스의 아들들은 피부색의 구분 없이 그 국기 아래 충성한다는 것으로, 식민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명쾌한 답변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20) 그러나 흑인 병사의 경례는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이미지들 중의 하나이다. 신화의 소비자인 독자에게는 이런 이미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프랑스 제국주의는 자연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존재하기 시작하는 신화의 본질적인 기능은 ‘자연화naturalisation’인 것이다.
이처럼 부르주아 계급이 만들어내는 표상의 신화적 의미작용은 모든 일상에 개입되어있다. 그러나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신화란 거짓 자연으로의 이행인지라 인간은 언제나 소외된다.
뒤랑은 바르트의 신화해석이 신화의 지평선을 현대로 확장시키는데 공헌했다고 보지만, 신화란 바르트식의 기호체계가 아니라 상상계의 상징체계들이 하나의 이야기 형식으로 서로 묶인 상징체계라고 본다. 다음 뒤랑이 지적한 구조주의적 신화분석의 오류를 보면서 뒤랑의 신화비평에 접근해 보도록 하자.
20) 롤랑 바르트, 이화여대기호학연구소 역,『현대의 신화』, 동문선, 2007, 274쪽.
2. 질베르 뒤랑(1921- )의 신화비평과 신화분석
2.1 질베르 뒤랑이 본 신화와 신화의 구조 : 기호체계가 아닌 상징체계로서의 신화
뒤랑은 신화해석의 폭을 확장시킨 레비-스트로스나 바르트 같은 구조주의 신화학자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들이 신화해석에 사용한 구조 개념이 지나치게 환원적 내지는 정태적이며, 신화를 언어와 동류시하고 신화의 상징적 구성물들을 음소와 동일시하면서 인간주체의 표현을 소통을 위한 기호로만 보는 오류를 범한다고 지적한다. 뒤랑은 융, 엘리아데, 코르뱅이 보여주는 심층인류학anthropologie des profondeurs,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학을 토대로, 신화를 더 이상 기호체계로 간주하지 않고 상징 체계로 보고자 하는 기의의 인식론을 천명하면서, 신화란 그 자체 의미를 지닌 하나의 상징화표현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의미의 운반자는 기호체계가 아니라 주체의 방향성이며, 그때 찾아야할 의미는 교환의 차원이 아니라 사용의 차원에 있으며, 의미는 이해의 대상이지 소통의 대상이 아니며, 이해가 우선이며 소통은 이해의 한 결과라고 말한다.
뒤랑은 인간의 표현을 소통 차원이 아니라 이해 차원에서 살피려면, 피상적인 언어학적 고리로부터 주체가 해석행위로 참여하는 깊은 의미론의 고리로 옮아가야하며, 언어는 순수 소통도구로서의 기호가 아니라. 징후적인 지표indice이거나 상징적인 표준 critère이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뒤랑은 구조주의 언어학자의 잘못은 소통 기구로서의 인위적, 자의적 언어와 자연 언어를 혼동한 것이라고 말한다. 자연 언어에서 소통은 부수적인 결과이고, 표현과 상징화 능력 등이 우선시된다. 그 때의 대화란 단순한 기계적 소통이 아니라, 주체적 발화끼리의 만남이다.
뒤랑은, “대화란 그 자체 소통이 아니다. 그것은 이중의 생성, 이중의 산파술이다.”라고 말한다.21)
‘자의적인’ 언어적 기호로서가 아니라 상징으로서 존속하는 신화적 담론의 세계는 포괄적인 의미화들로 이루어진 세계이므로, 이야기의 줄거리를 넘어, 각 용어의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즉 신화의 구문적 형태보다 의미적인 접근이 더 중요하다. 신화적 담론은 기호적이고 구문적인 구조로는 설명될 수 없는 담론으로, 순환적 구조들에 의해 배열된 의미의 무리, 즉 의미의 반복성을 통해 본의를 드러낸다. 모든 이야기에서 변하지 않는 공통 법칙, 의미상의 반복과 중첩을 통해 동위적인 일관성을 찾아내는 것, 이미지와 상징들을 같은 질적 친화성을 가진 그룹으로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의미화는 분리할 수 없는 의미론적인 두께와 무게를 품고 있는 복합적인 ‘층상으로’이루어져 있어서,22) 신화적 담론 미토스는 담론의 합리성에서 벗어나며, 철저히 선형성을 중요시하는 로고스나 에포스처럼 설명될 수 없다. 꿈과 마찬가지로 부조리성을 보여주는 신화는 그 동기가 다원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화연구가 할 수 있는 일은 신화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를 유동적이고 다원적인 수많은 경우들이 그 안에 포착되는 구체적인 ‘틀’로 분류하는 정도일 것이다.
뒤랑의 신화적 구조에 좀 더 접근해 보도록 하자. 우리 인간이 구조자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그 표현은 더 이상 기호나 구문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형태적 구조가 아니라 형상적 구조structure figurative23)라고 할 수 있으며, 닫힌 개념적 형태가 아니라, 열려있는 역동적 실체라고 할수 있다. 이 형상적 구조과정을 뒤랑은 인류학적 도정이라고 이름 붙인다.
인류학적 도정이라는 개념은 구조화와 구조화된 대상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으로 개인적 텍스트와 사회적 콘텍스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교류작용이다. 상징에서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같다고 할 수 있다.24) 인류학적 도정의 이론은 바슐라르의『공기와 꿈』에 이미 함축적으로 내포되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와 같은 인류학적 도정의 중심축을 한정하기 위해서는 아주 실용론적이고 상대론적인 수렴방법을 사용해야한다.
유추가 서로 다른 관계들 사이의 유사성을 인지하는 것이라면, 수렴은 상이한 사유 분야에서 항목별로 유사한 이미지 성좌들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상동homologie관계를 찾아나간다.
즉 a와 b의 관계는 c와 d의 관계가 유추라면, a 와 b의 관계가 a'와 b'의 관계로 나타나는 상동적 수렴방식이다. 상동은 기능적 등식이라기보다 형태론적 혹은 구조적 등식이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유추는 푸가의 음악적 기법에 비교될 수 있고, 수렴은 테마 변주 기법에 비교 될 수 있다. 상징들이 성좌를 이루는 것은 그들이 동일한 원형적 테마를 전개시키는, 즉 하나의 원형에 대한 변주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원형학이 상상력의 모든 인간적 발현을 가로질러 밝혀내도록 애써야 할 것은 바로 그 집합들, 구성적 중심을 향해 이미지들이 수렴되는 그 성좌들이다. 이런 수렴방식을 알아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나, 뒤랑의『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에 제시된 분석들이나 이 책에 소개된 보두엥의 빅토르 위고의 정신분석Psychanalysede V. Hugo 같은 예들을 통해 익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위고의 시는 7가지의 이미지 범주들의 편극화 현상(낮, 광명, 창공, 광선, 통견, 위대함, 순수함 등은 동형적이며, 한정된 변형의 주제)을 보이는데, 이런 구조가 수렴을 통한 상상력의 구조를 드러낸다25)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화의 이야기 구조는 a라는 테제와 반-a라는 안티테제가 b라는 새로운 테제로 종합되는 그런 로고스적 체계로 설명될 수 없으며, a와 b는 상호대립적으로 공존하면서 a->a'->a''로 b->b'->b''로 진행되며, 한 대립 항이 강화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항은 약화되는 그런 구조이다.
예를 들어 뒤랑의『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에서 설명된 신화적 수렴방식들은, 인간의 상상계에서는 시간으로 인한 파괴와 죽음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상상계가 항상 나타나는데, 죽음을 이기는 구조도 죽음을 거부하는 구조도 아니며,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죽음을 약화시키는 그런 구조를 보여준다고 설명된다.
신화에 내재된 그런 모순은 결코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일치한다. 신화란 대립되는 힘들 사이의 긴장이나 싸움으로 구성되어있어, 모순되고 대립되는 특질들이 심하게 충돌할지라도, 한 쪽이 완전히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충돌을 통해 한쪽이 강화되거나, 혹은 약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약화된 쪽은 다시 언제나 강화될 수 있는 여지 속에 남겨진다. 이처럼 신화에 내재된 상상력의 세계는 역할과 가치의 다원성을 받아들이는 세계이다. 인간 사회는 이처럼 최소한 두신화 위에서 살고 있다.
두 신화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는 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회의 초자아가 그와 대립되는 신화적 힘을 억누르기만 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격렬한 반발과 위기가 오게 된다고 뒤랑은 역설한다.26)
그러나 뒤랑의 이 책이 주로 서양의 신화들에 할애되었다는 한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동양의 신화들에서 이미지들의 수렴을 통한 상상력의 구조들을 찾아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보여진다.
21) 진형준,『상상적인 것의 인간학』, 문학과 지성사, 1992, 79-80쪽.
22) 신화의 의미의 두터운 층을 표현하기 위해 병의 징후나 징조 같은 비유로 설명될 수 있으며, 메아리나 거울로 된 궁전이라는 은유로 설명될 수 있는데, 각각의 단어는 전 방향으로 겹쳐지고 누적되어있는 의미화들과 상호 연관을 맺고 반향한다고 본다(질베르 뒤랑,『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진형준역, 문학동네, 2007, 548-550쪽).
23) 뒤랑의 형상적 구조는, 인간 표현의 의미 내용을 역사적 맥락에서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역사적 구조이며- 정태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진보주의적 믿음에 대한 거부로서-, 합리적 문맥에서 구조의 설명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는 반합리주의적 구조이며 (합리적 인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만이 옳고 인간적이라는 태도를 거부하는 것), 대립되고 모순되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그것들을 통합해줄 원칙을 설정한다는 의미에서는 일원적 다원주의의 구조이다(진형준,『상상적인 것의 인간학』, 문학과 지성사, 1992, 79-88쪽 참조).
24) 질베르 뒤랑, 진형준 역,『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문학동네, 2007, 49쪽.
25) 위의 책, 49-52쪽.
26) 질베르 뒤랑, 유평근 역,『신화비평과 신화분석』, 살림, 220-222쪽.
2.2 신화비평
신화비평이란 용어는 샤를 모롱이 사용한 심리비평에서 뒤랑이 차용한 것이다. 신화비평이 인간의 심리현상과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심리라는 용어 대신 신화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작품을 태어나게 한 개인의 심리과정보다 인간의 집단 심리에 대한 이해로 시선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프로이트 대신에 융이나 바슐라르를 높이 평가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롱의 대표작인『강박적 메타포에서 개인적 신화로Des Métaphores Obsédantes au Mythe Personnel』는 아주 좋은 방법론적인 밑그림을 제공해준다.
모롱은 하나의 텍스트에서 반복에 의해 강박적으로 자주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가려낸 후 그런 강박증세를 저자의 전기, 그가 저자의 개인적 신화라 부른 것에 비추어 입증하려고 시도한다.27)
신화소를 찾는 뒤랑의 방법의 핵심도 이와 같은 강박적인 반복에 있다.28) 반복은 모든 신화적 해석의 열쇠요 신화적 절차의 지표이다.
뒤랑은 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작품들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방과 여행의 이미지, 침대, 안락 의자 실내복의 정적이고 안락한 몽상, 먼 곳에 추방된 자들의 몽상적 이미지들 속에서 상징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모롱의 방법에 따라, 메스트르의 자서전, 편지들과 이 상징들을 연관 지어 심리비평적 차원에서 상징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심리비평으로서는 충분히 설명해낼 수 없는, 에고나 이기주의보다 더 강력한 동기들을 설명할 수 있기 위해, 신성한 가치를 세우고자하는 세계로서의 텍스트, 하나의 신화학을 부여받는 위대한 신화들을 갖춘 세계로서의 텍스트를 되찾아가는 신화비평적 여정을 보여주고자 한다.29)
그것은 자전적 무의식에 게재된 개인적 모험보다 더 심층적인 인류학적인 자산과 관련된다. 이 원초적인 자산은 문화, 말, 사상, 이미지에서 물려받은 것이며 인간의 근본적인 태도와 행동들의 구조에 뿌리를 둔 것이다. 에고에서 그친 심리비평과는 차별적으로 신화비평은 문화적 유산과 관련된 원초적 신화에 대해 질문한다.30)
이처럼 신화비평은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뒤랑이『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에서 보여준 것처럼, 신화나 예술을 그 자체 수많은 구조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있는 독특하고 개별적인 구조물로 이해하면서, 구조들간의 상보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판별하고자 한다. 즉 작품들과 신화에 내재된 구조적 긴장 자체가 창조적인 결단 혹은 나름대로의 구조적 형상화를 이룬 요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구조의 설명 자체가 작품의 이해라는 점에서, 그 안의 모순을 환원 설명할 수 있는 의미론적 틀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순들이 대립적 긴장에 의해서 의미화할 수 있는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화비평은 신화나 예술 작품에서 신화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나 상황, 혹은 수식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속에서 대립하고 있는 상이한 구조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역동적인 위상, 즉 새로운 신화적 변형을 구조적 긴장 내에서 이루어내는 것을 포착하는데 있다.31)
27) 위의 책, 273쪽.
28) 일련의 공시태적인 묶음들 즉 반복에 의하여 특징이 드러나는 최소 의미의 단위들인 신화소들은 오르다, 싸우다, 추락하다, 이기다 등의 동사에 의해 표현된 행동일 수도 있으며, 근친관계, 유괴, 살인, 근친상간 등의 상황들에 의해 표현될 수도, 삼지창, 쌍날 도끼, 비둘기 등의 상징적 도구로 표현될 수도 잇다. 이와 같이 하나의 신화는 입구가 둘인 하나의 일람표가 된다. 하나는 수평적인 것으로써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르는 통시적인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수직적인 것으로서 반복되는 것들을 네 댓가지의 공시적 기둥으로 쌓아놓은 것이다(위의 책, 275쪽).
29) 질베르 뒤랑, 신화적 형상과 작품의 얼굴-신화비평에서 신화분석으로Figures mythiques et visages de l'oeuvre-de la mythocritique à la mythanalyse, ch 5 : De la psychociritiqueà la mythocritique : le voyage et la chambre dans l'oeuvre de Xavier de Maistre, 159쪽.
30) 위의 책, 168-169쪽.
31) 진형준,『상상적인 것의 인간학』, 문학과 지성사, 1992, 71-74쪽.
2.3 신화분석mythanalyse
한 작품에서 드러난 신화적 의미는, 신화 자체가, 혹은 상징적 의미자체가 한 개인에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표현을 둘러싸고 있는 집단적 문화와 관련 맺고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사회역사적 맥락 속으로 확산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뒤랑의 신화비평은 쓰여진 혹은 말해진 텍스트 속에서의 신화의 진단을 넘어 사회역사적 컨텍스트 속에서의 신화의 진단 (신화분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작가의 작품은 그 시대의 것이지만 특히 그 시대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화비평은 한 텍스트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그보다 넓은 영역, 즉 사회적 실천, 제도, 역사적 기록 및 기념물에 적용하는 신화분석으로 넘어가야한다. 즉 한 신화의 시퀀스들이나 신화소에서 출발하여 어느 사회, 어느 역사적 순간에 그것이 반향되고 있는 모습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뒤랑은 신화비평의 개념과 차별화하면서 신화분석의 개념으로 충분히 나아갔다고 볼 수 없으며 신화분석을 현 사회에 적용시키는 분석도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신화분석을 계승한 이가 에르베 피셔Hervé Fischer 이다. 피셔는 파리 V 대학 조교수였을 때 사회학에 전념했지만 사회학과 심리분석에서 출발해 예술의 신화와 1970년대의 아방가르드파의 이데올로기를 밝히기 위한 신화분석으로 새롭게 나아간다.
신화분석의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 흐름을 대표하는 피셔는 신화분석이란 집단 이데올로기들을 포함해 우리들의 힘의 사회적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며, 심리분석가의 자전적 개인적 성격을 넘어 사회적 즉 집단적 상상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만큼이나, 우리들의 종교적, 이성적, 정치적 믿음 속에서, 우리들의 말, 언어의 은유 속에서, 표출되는 신화적 재현에 의존한다고 본다. 우리를 지배하는, 본래 이데올로기적인 신화는 우리들의 사회구조, 가족구조의 발전을 반영하면서 우리와 같이 태어나고 죽고 변화된다. 그는 한 개인이 부모와 문화적 모태에서 초기를 보내는 동안 기억이 생물학적으로 형성된다고 본다. 신화분석은 사회언어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면서 우리들의 가치들과 우리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신화들을 맹목적으로 남용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면서 사회와 문화차원에서의 치료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뒤랑과는 달리 자신을 신화학자로 보지 않지만 무엇보다 현재 신화들에 관심 가진다.32) 뒤랑이나 피셔 둘 다 신화분석을 심리분석으로 편입시키지 않지만, 뒤랑이 신화학의 분석에 속한다면 피셔의 신화분석은 심리분석에 대해 아주 논쟁적으로 응대한다고 할 수 있다.
신화분석의 피셔 이외에도 뒤랑을 이어서 융식의 심리분석차원에서 문화를 분석하는 흐름에 동참하는 이로는 미셀 카즈나브, 피에르 솔리에가 있다. 솔리에는 특히 치료차원에서이며, 카즈나브는 실바네스 수도원에서 신화분석이라는 주제로 “피에르 솔리에와의 만남”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현재 점점 더 많은 분석가들이 특히 문화생산품의 영역에서 신화분석적 접근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프랑스의 그르노블 3대학, 퀘벡의 셔부룩 대학에 주연구소가 있다.32)
32) 참조 : Hervé Fischer, 『미래의 신화분석Mythanalyse du futur』, “Passage de la psychanalyse
à la mythanalyse”, 59-74쪽.
에르베의 다른 저서로는『사이버프로메테우스, 디지털시대의 힘의 본능Cyberpromethée, l'instinct de puissance à l'age du numérique』, 2003,『우리가 신이 될 것이다Nous serons des dieux』, Montréal, 2006 등이 있다.
결론
태생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신화는 이제 더 이상 종교적 형태의 신화로만 머물 수 없으며 우리의 정신과 문화의 무의식적 근간을 형성하는 원형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집단, 한 민족, 한 국가의 망탈리테와 행동유형을 결정짓고 만들어내는 기본단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질베르 뒤랑이 제시한,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통해 ‘기호 차원의 기본 단위가 아닌 상징차원의 기본단위’를 찾아가는 여정, 이미지들 간의 유추관계가 아닌 수렴의 구조를 통한 의미의 확장과 해석, 대립된 구조들의 긴장과 갈등을 역동적 위상 속에서 포착하려는 열린 태도 등등은 신화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 텍스트 분석의 여정에 유익한 개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들의 최종 목적은 대립적인 신화들의 긴장이 존재하는 사회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야기된 한 집단이나 사회의 병든 의식과 문화를 치유하는데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신화학적 분석의 흐름과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화학자들 그리고 그 이론들을 통시적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고대에서부터 뒤랑에 이르기까지의 신화학 연구사는 신화 분석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 단계로써 신화학적 분석 경향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상당히 요약적이며 이론적 접근에 그친 소개일 수밖에 없는 한계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 논문 “신화학적 비평과 신화비평 II”에서는, 실제 작품과 현상들에 대해 접근하고자 하며, 질베르 뒤랑의 신화비평 분석들과 그의 신화분석을 계승하는 에르베, 융식의 신화비평가들인 솔리에와 카즈나브의 신화분석 예들을 설명하면서 신화비평과 신화분석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 가고자 한다.
특히 한국에 소개된 뒤랑의『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이 서구 문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이런 차원의 연구가 한국이나 동양문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겨진다. 동양 문명의 핵심들은 어떤 수렴적 구조들을 통해 드러나며 그 구조는 어떤 의미화를 낳게 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동양 문화권의 행동유형들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이며 다음 논문이 여기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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