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알 구스타브 융 C. G Jung (1875-1961) &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
1. 분석심리학의 인간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ov Jung, 1875-1961)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때문인지 소년시절에 많은 발작증세를 앓았다. 실로 마음은 감수성의 크기만큼 세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느낌은 오히려 자기만의 내면의 세계로 발걸음을 인도하게 하였으며 융에게 있어서 세계에 대한 고독은 내면에 대한 탐구로 전이되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또한 무의식적인 여러 조건에 근거하여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형성의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나는 과학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과학의 문제로서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의식에 속한다. 그것처럼 사람이 안다고 하는 것, 즉 세상 만물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의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은 그 의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의식으로 아는 것보다 의식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이 훨씬 많이 있다. 그것을 무의식이라고 하고 있다.
사람이 의식에 상주시킬 수 있는 용량이 한정되어 있어서 잊혀지게 된다. 그렇지만 자신이 경험되어진 바가 완전히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이동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었다고 할 때나, 평소에 까막히 잊고 있던 일들이나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꿈속에서 나온다는 것은 무의식의 작용이다.
사람의 행위를 설명할 때는 사람의 의식과 함께 그 밑에 숨겨져 있는 무의식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을 발견해 낸 사람이 프로이드이다.
융은 정신의학을 연구하다가 프로이드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어 함께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게 되었으나 프로이드가 개인의 모든 행위를 에로스(성본능)으로 만 설명하는 등 무의식을 지나치게 국한시키는 것에 반발해 독자적인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의식을 보편적인 영역으로 확장시켰으며, 무의식도 개인적 무의식과 더 깊이에 있는 집단적 무의식으로 구분, 보다 심화시켰다. 분석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파를 창시하게 되었다.
융은 ‘인본주의적, 개인 초월 심리학(humanistic and transpersonal psychology)의 아버지’로 간주될 수 있다.
융은 프로이드(freud)의 “개인 무의식”과 함께, 모든 인간들에 의해 공유되는 “집단 무의식”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개인 무의식이 콤플렉스(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해 조직되는 반면에, 집단 무의식은 꿈과 신화에서 추적해 낼 수 있는 “원형들”과 “행동과 지각의 본능적인 패턴들”에 의해 특징 지어진다.
융에게서 영향받은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모든 문화의 신화들에서 원형의 패턴들을 밝혀냈다. 융은 일반적으로 성적 욕동들을 덜 강조했다. 무의식은 “개별화”과정 전체와 초월적 힘을 통한 정신의 반대의 힘 사이의 균형을 향한 욕동으로 작동된다고 생각했다. 인본주의적 심리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융은 무의식이 단지 병리적인(pathological) 힘이라기 보다 오히려 건강과 생명력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융은 또한 무의식은 선뿐만 아니라 악의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융에게서 정신 구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형적 힘에 의해 조직된다. 그는 자아나 무의식 같이 포로이트(Freud)가 사용한 용어 중 같은 것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융의 전체 이론에 비추어 생각할 때 그것들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융에게 정신의 중요한 구조는 페르조나와 그림자로 이루어진 자아를 포함한다. 페르조나는 사람이 세상에 내놓은 ‘가면’이다. 반면에 그림자는 사람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는 자기의 부분들이다.
남성에게는, 아니마(Anima)가 정신의 여성적 측면을 나타낸다. 반면에 여성에게는 아니무스(Animus)가 남성적 측면을 나타낸다. 융에게는 인격의 원형적 조식의 통합체는 자기(self)라 불린다. 개성화 과정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는 전체의 통일성이다.
2. 마음의 구조와 기능
1) 분석심리학적 인간관
분석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고정불변하는 여러 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이루어져 일정 기능을 발휘한다는 해부성리학적 인 의미의 구조와 기능(structure and function)의 설명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러한 기계론적인 설명은 정신의 영역을 현재 인간의 인식 가능한 개념의 울타리에 한정시킴으로써 그 무한한 가능성을 박탈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관적이며 경험적인 방법에 의한 심리학설에 있어서 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개념의 설정과 전제를 명확히 하는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분석심리학의 마음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말로 표현을 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용어가 아니고’ 그 용어의 내용, 즉 ‘뜻’이다. 심리학설을 설명하는데 용어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며 이는 비록 그 용어가 현재 다른 분야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뜻’과 개인이 받아들이는 ‘뜻’이 있으나 그 명확한 ‘뜻’의 설정이 그 학문의 이해에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나 Ich, Ego, 自我
의식(意識) das Bewu tsein
무의식(無意識) das Unbewu te, 未知의 精神世界
외계(外界)와 내계(內界) external world and internal world
페르조나 persona, 面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 external personality and internal personality
마음, 넋 Seele
아니마와 아니무스 Anima and Animus
개인적 무의식 das pers nliche Unbewu te
집단적 무의식 혹은 보편적 무의식 des kollektive Unbewu te
상(像), 원초적(原初的) 혹은 근원적(根源的) 유형(類型), 원형(原型) lmago, Archetypus
의식화(意識化) Bewu twerdung
그림자 Schatten
자기실현(自己實現), 개성화(個性化) Selbsverwirklichung, Individuation
자기자신(自己自身) Selbst, 본연(本然)의 자기(自己)
2) 자아와 의식
(1) 자아 콤플렉스 Ich Komplex
자아란 사람의 경험적 모습으로서 의식의 중심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즉 내생각, 내마음, 느낌, 이념, 과거, 현재 세계 등의 외부세계에 대한 방향감각과 지각의 산물인 의식의 핵을 이루는 것을 말하다.
의식은 우리의 정신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으며 극히 자그마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아는 바로 그 일부 ‘의식’의 중심이다. 따라서 많은 콤플렉스 가운데의 하나로 보고 이를 자아 콤플렉스라고 한다.
(2) 意識
① 심리내용의 자아와의 관계성 : 자아에 대한 심리적 내용의 관계를 유지하는 기능과 활동으로 의식되었다는 것은 심리 내용이 자아 콤플렉스와 관계를 맺는 한 가능하다. 무의식을 말하고 탐구할 때에도 의식의 말로 무의식을 표현한다. “마치 (als ab) 그러한 것처럼”
② 자아에 대한 의식 : 유아기의 自我를 의식하지 않는 특이한 意識(10세 경)은 성장하면서 자아를 발견한다(12-14세경에 “내가 여기 있다”라고 인지하는 경험).
③ 의식의 단속성 : 우리의 삶에서 의식은 중간중간에 무의식적인 상태로 끊어지는 斷續的인 현상이다. 주어진 순간에 몇가지 내용을 동시에 파지(把持)할 수 있으나 모든 것은 그 순간 무의식적이다. 결국 의식적인 세계의 연속성 있는 전체적 이해는 개발적인 의식적인 순간의 연속을 통해 얻을 수 있을 뿐이다.
④ 무의식과의 비교 : 무의식은 거대하며 언제나 계속된다. 이에 비해서 의식의 영역은 순간적인 영상에 국한된 영역이다. 처음에 있던 것은 무의식적인 것이다. 의식은 무의식적인 상황에서 생겨났다. 유아기에 우리는 무의식적인 상태에 있다. 가장 중요한 본능적인 기능들은 모두 무의식적인 것이다. 의식은 다분히 외부세계에 관한 방향감각과 지각의 산물이다.
⑤ 의식은 첫째로 자기자체, 자기존재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둘째로는 일련의 기억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후 많은 것들이 의식을 구성하게 되며 정신적 기능의 분화, 여러 가지 개인적 분화 등이 뒤따른다.
⑥ 자아감각 sense of ego : '나, 내 自身
융의 논평 : “제일 먼저 신체와의 同體性이 생긴다. 몸을 누가 가져다 주었느냐 물으면 흑인은 ‘I brought it'(내가 가져왔다)라고 하는데 이는 Brought it(가져왔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어 어째서 ’네‘가 가져왔느냐고 되물으면 ’네가-내가-예-나-나 자신-이것-여기 이것‘으로 대답한다. 신체와의 동체성이 자아를 만드는 첫 번째 것이다. 자아의 개념을 유도하는 것은 신체라는 공간적인 차이 spatial separateness이다.”
⑦ 자아 콤플렉스는 마치 자석과 같은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의 내용을 우리가 모르는 어둠의 세계에서 끌어당긴다. 그것은 또한 밖에서 오는 여러 인상들을 끌어당긴다. 그것들이 자아와 관련을 가지게 되면 그것들은 의식이 된다.
⑧ 무의식의 의식화 : “그것은 결코 이미 완성된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워나갑니다.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자아의 새로운 작은 측면들을 해마다 발견하지 않는 때가 없을 것입니다.” 즉,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함으로써 의식은 그의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⑨ 개연적 의식 ein approximatives Bewu tsein의 가정 : 주체가 있는 것처럼 지각하며, 생각하며, 느끼며, 의욕하며 기도하면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나 꼭 의식과 같지 않으므로 의식적 상태와 무의식적 상태의 중간물을 가정
→ 무의식과 의식은 어느 순간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일련의 연속성이 있다.
무의식성이 우세한 의식이 있는 반면에 의식성이 우세한 의식이 있다.
⑩ ‘의식의 빛’은 우리가 직접적인 경험으로 아는 것처럼 여러 가지 명암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아 콤플렉스는 그 강조하는 정도에 많은 단계가 있다.
동물적인 원시적 단계에서는 단순한 광채 Iuminositas가 지배하며 이것은 해리된 자아단편들의 명암도와 구별되지 않는다. 후자는 유아나 원시인 단계에서 의식이 굳건하게 형성된 자아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모이지 못하고 외적 사건, 본능, 정감이 환기시키는 곳에서 여기저기에 불피어 오른다. 이 단계에서는 의식은 아직 통일성 Einheit을 이루지 못한다. 자아의식의 많은 작은 광채로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
3) 무의식의 내용과 기능
무의식의 정의, 존재여부 - 심리학설에 따라 견해차이
(1) 프로이드
히스테리 환자의 전환증상을 말치료로 해결되는 경험을 통해서 무의식의 내용이 되어 버린 체험군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신체 발현. 무의식화한 체험내용은 대게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억압된 것이며, 그것은 성적인 욕망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생각.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말실수, 망각, 공상, 꿈, 정신장애의 증상에서 찾았다.
(2) 융
프로이드가 강조한 성적인 행동에서 오는 서 뿐만 아니라 다른 도덕적인 갈등이나 그 밖의 많은 것이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모르고 있는 우리의 정신의 모든 것(미지의 정신계)”
(3) 무의식에 대한 증거
노이로제의 증상 - phobia, OC symptom 등 의식적으로 불합리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모르게’, ‘어쩔수 없이’, ‘이끌리는 듯한 기분’을 경험한다.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정신계 너머의 또 하나의 무엇이 존재한다. 이에 대하여 ‘귀신의 조화’라든가 ‘신의 권능의 결과’, ‘조상 탓’, ‘마귀의 장난’이라고 미루어 버린다.
이러한 의식의 한계를 넘는 초월적인 힘의 실체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내용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생각인 만큼 우리 마음속에 그 생각과 비길 만한 내용이나 그 생각을 낳게 하는 원천이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4) 무의식의 두가지 층
① 개인적 무의식 personal unconsicousness, das pers nliche Unberwu te
- 개인생활에서의 체험내용 가운데서 무슨 이유에서 잊어버린 것
- 현실세계의 도덕관이나 가치관 때문에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억압된 여러 가지 내용
- 반드시 성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 그것을 포함한 모든 그 밖의 심리적 경향, 희구, 생각들, 고의로 눌러버린 괴로운 생각이나 감정, 의식에 도달하기에 자극의 강도가 미약한 역하지각(subliminale-unterschwellige-Wahrnehmung의 내용)
- 개인의 특수한 생활체험과 관련되고 개인의 성격상의 특성을 이루는 것
② 집단적 무의식 das kollektive Unberwu te
- 개인적인 특성과는 관계 없이 사람이면 누구에게서나 발견되는 보편적인 내용
- 지리적 차이, 문화나 인종의 차이와 관련 없이 존재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동 유형으로 인류 일반의 특성을 부여하는 요소
- 인간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의 근원적 유형(원형) Archetype들에 의하여 구성
- 신화를 산출하는 그릇이며 우리 마음 속의 종교적 원천
(5) 무의식의 특성
① ‘샘물’과 같은 것 - 무한한 가능성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다. 방어해야 할 위험한 충동이기보다 체험하여 의식의 것으로 동화해야 할 것들이다. 이때 자아의 태도는 무의식이 지닌 지향적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진다.
② 자율성 autonomy - 자율신경과 유사하게 의식작용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무의식은 의식을 그 자율적인 힘으로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게 여러 가지 미래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6)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 代償的
무의식은 의식에 결여된 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그럼으로써 그 개체의 정신적인 통합을 꾀한다. 의식이 너무 일방적으로 지적이면 무의식은 정적인 특징을 띠며, 의식이 지나치게 외향적이면 무의식은 내향적인 경향을 띤다.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분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며 정신세계의 설명을 위한 편의적인 것이라고 봄이 옳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사실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개념, 뜻을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의식과 의식은 칼로 무 배듯 나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4) 그림자 Schatten
그림자 : ‘나 Ich'의 어두운 면(무의식적 측면) : 그림자는 의식의 뒷면에 있는 여러 가지 심리적 내용으로 열등한 인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다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못 살게 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면 할수록 나는 나의 약점과 나의 결점을 보는 장님이 된다. 무의식 속에는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어 나도 모르게 나로 하여금 실수로 하게 해서 내가 지향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순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전혀 자기가 모순을 감행하는지를 모르고 자기는 늘 정당하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자아의식이 강하게 조명되면 될수록 그림자의 어둠은 짙어지게 마련이다. 선한 나를 주장하면 할수록 악한 것이 그 뒤에서 짙게 도사리게 되며 선한 의지를 뚫고 나올 때 나는 느닷없이 악한 충동의 제물이 됨으로써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예)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 영화 “Face Off"의 트로이와 숀
(1) 그림자의 속성
① 의식의 바로 뒷면에 위치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 내용
② 의식화 될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미분화된 채로 남아있는 원시적인 심리적 경향, 심리적 특징
③ 외계에 투사되거나 자아가 의식하는 경우 자아가 자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 꺼리게 된다.
④ 그러나 그림자는 악하고 부정적이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버려져 있었을 뿐
⑤ 따라서 의식이 되면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⑥ 그림자의 존재는 그림자가 외계에 투사됨으로써 알 기회를 갖게 된다.
(2) 그림자의 투사
① 투사는 자아가 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되는 것이어서 단지 투사된 대상에 감정적으로 집착함으로써 무의식적 내용이 투사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② 이 경우 강렬한 감정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투사대상에 대하여 집착하게 된다.
③ 감정 : 긍정적 - 미혹, 감동 / 부정적 - 혐오감, 불쾌감
-그림자의 경우에는 부정적 감정반응이 많다.
④ 현상 - “왜 그런지 모르게”, “공연히” 특정 대상에 대하여 부정적 감정반응을 일으킨다.
⑤ 상당히 자아의식의 특징과 닮았으면서도 전혀 예기치 못하게 열등한 경향을 띤다.
⑥ 그림자의 투사는 곧잘 자아와 비슷한 대상에 향하는 것이 보통
- 동성의 친구, 형제 자매, 동료, 상사, 시누이와 올케
⑦ 비슷한 부류의 사람 사이의 갈등은 대개 그림자의 투사에 의한 오해 때문
⑧ 반대로 그림자가 긍정적인 성격을 띄게 되면 공연히 좋아지게 된다.
- 중고시절의 “짝”은 대개 이렇게 형성된다.
(3) 집단적 그림자 Collective shadow
① 그림자 : 개인적 성향
② 집단에 공통된 그림자 : 가치판단의 기준이 그 무리에 공통된다면 이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그 집단 구성원 모두에서 빼돌리게 되어 공통된 그림자를 무의식 속에 형성
→ 집단적 그림자의 형성
→ 집단적 편견을 강화시켜 집단의 결속과 타 집단과의 경쟁을 만들게 된다.
③ 비슷한 성격의 집단에서 발생 : 지역감정(영호남), 한국인과 일본인, 연고전, 몬태규와 캐플렛가 등
④ 민족적 또는 인종간의 갈등
⑤ 이념이나 주의주장간의 그림자 :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유물론과 유신론
예) 사도 바울, 성 어거스틴 등이 그리스도의 환영을 본 뒤 기독교인이 된 사건
정치적 지도자가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를 받기도 한다().
(4) 그림자 원형 Archetypal shadow(근원적 유형 Archetype으로서의 그림자)
① 개인적 그림자와 달리 투사 대상에 심각한 감정반응이 일어난다.
② 파괴적 본능 - 카인과 아벨 이후부터 인류의 근원적 그림자상
③ 전쟁과 대량 학살의 현상 : 근원적 그림자상의 집단적 투사를 바탕으로 실시되었다.
④ 인간이 귀신이나 마귀, 괴물로 보이는 경우 : 자아는 마치 정의의 화신, 가장 인간다운 자유의 투자로 생각 (그림자 원형의 투자)
예) 중세의 마녀사상 - 정신질환자를 원형적 그림자에 투사하여 마녀로 몰아 학살
인간이 하잘 것 없는 파리 새끼 정도로 보이는 경우 : 스슬가 초인이나 신의 권력과 동일시(그림자 원형과의 동일시)
예) 네로황제의 로마시내 방화사건
⑤ 정신분열증 환자의 피해망상 : persecutor의 내용은 달라지지만 피해망상 자체는 항상 존재해 온 것은 환자의 마음속에 있는 초인의 위치에까지 극대화 된 그림자가 여러 가지 탈을 쓰고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⑥ 초인적 속성 : 파괴와 정복, 승리를 지향하는 근원적 그림자
예) 007, 헤르메스, 이카로스
⑦ 이러한 근원적 그림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원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개체의 의식을 어느 정도 지배하고 있으며 의식이 그것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에 차이가 있다.
⑧ 프로이드의 죽음의 본능(Thanatos)과 유사 - 상당히 비관적인 개념으로 타나토스가 생의 본능을 파괴하려든다고 생각. 이에 비해 그림자 원형은 타나토스와 같은 개념이 아니며 선의 기능에 대응한 악의 기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 기능 또는 창조적 기능으로 바뀔 수 있는 요소로 파악
→ 창조적 기능이 억압될 때 파괴적 성격을 띤다.
⑨ 자아의식이 무의식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고자 노력하느냐에 따라 겉으로 보아 파괴적이며 위험하고 부정적인 작용을 나타내는 그림자가 창조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
(5) 그림자의 의미
① 원시민족 - 그림자는 생명력의 일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의미. 그림자가 희미하거나 없어진다는 것은 생명력이 약해지거나 죽음을 의미.
② 분석심리학 - 그림자는 인간 정신의 분화의 산물이며 인격발전의 필연적인 소산
③ 의식이 미분화된 유아기의 그림자는 상대적으로 희미하여 자아의 의식성이 뚜렷해 질수록 그림자가 확실해 진다.
④ 청소년기 - 나와 너를 구별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기 시작하는 시기로 자아의 도덕적인 순수성에의 지향과 병행하여 짙어지게 된다.
⑤ 그림자가 외계에 투사됨으로써 인격의 전체성을 실현하기 어려워지므로 외계에 투사된 그림자를 다시금 자아에게 되돌려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
5)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
인간 ┌ 사회적 동물 : 다른 사람의 마음(외부)과 반응 → 외적 태도(persona)
└ 정신적 존재 : 자신의 마음(내부)과 반응 → 내적 태도(seele)
(1) 페르조나 Persona
① Persona : 고대 그리이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
→ 인간이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여러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
예) 영화 ‘마스크’에서도 주인공이 가면을 쓰면 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급변한다. 주인공 스탠리는 로키의 가면을 쓰고 로키처럼 하고 장난스러운 성격으로 변해 평소 사모하던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이웃을 곯려주기도 한다. 가면을 씀에 따라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격은 가면 밑에 숨고 가면이 상징하는 인물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는 탈춤에서도 볼 수 있는데 광대가 양반 탈을 쓰면 체면을 중시하고 점잔을 빼고 위세를 부리는 반면, 천민의 탈을 쓰면 걸쭉한 음담패철이나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을 볼 수 있다.
② 엄밀히 말해서 ‘페르조나’는 참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다. 그는 어떤 이름을 받아들이고 칭호를 얻고 지위라든가 또 이것저것을 남에게 내보인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이기는 하나 그 사람의 개성에 비추어 보아서는 2차적인 현실, 그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참여한 타협형성에 불과한 것이다. ‘페르조나’는 하나의 가상 Schein, 농담삼아 규정하자면 2차원적 현실이다.
③ 많은 집단정신 가운데 그 사람이 무엇을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가 받아들인 것이 집단정신의 일부라는 것은 틀림없다.
→ ‘페르조나’는 집단 정신의 단면
사람들이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닌 남들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따라서 페르조나에 입각한 태도는 주위의 일반적인 기대에 맞추어 주는 태도이며 외계와의 적응에서 편의상 생긴 기능, 콤플렉스이다.
“집단적인 일반적 윤리를 대변” - 모름지기, …란
④ 페르조나와의 동일시 :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아는 차츰 자기도 모르게 집단정신에 동화되어 그것이 진정한 자기 개성인 것으로 착각
→ 집단이 요구하는 역할에 충실이 맞추어 주는 사람이 된다.
→ 심해지면 내적인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여 자기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존재를 잃게 된다.
<중례>
여러 해 동안 온몸이 나른하고 갑옷처럼 두터운 무엇이 가슴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에 입맛도 없고 쉬 피로해지는 증상을 가진 젊은 여성환자.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았으나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환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어머니가 갖은 고생을 다해 키었다.
어머니는 여장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통이 컸고 그만큼 딸에 대한 기대도 컸다.
환자는 어릴때부터 어머니에게서 “너만 아니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너를 희망으로 내가 지금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환자의 어머니는 사글세 방에 살며 가정부로 일하는 처지에서도 딸은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정도로 교육에 열성이었다.
그러나 전교생 중에서 그녀의 집이 가장 가난했으며 옷차림이 초라한 그녀를 급우들은 냄새가 난다며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선생님마저 학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할 것을 종용하였다. 반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그녀는 몇번이나 어머니에게 공립학교로 옮겨 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그때마다 야단만 맞고 묵살 당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명문 대학에 입학했는데 어머니가 바라던 법대는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지 얼마 후부터 환자에게 증상이 나타나게 되어 그로부터 모녀의 '병원 쇼핑'이 시작된 것이다.
환자는 어머니가 바라는, 그리고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식, 즉 딸의 페르조나에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고, 어려운 결정은 어머니가 다 해주며, 부모의 기대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가꿔 나가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환자는 어머니의 생각에 모든 것을 맞추어 살아왔다. 직장에 취직해서도 자기 또래의 동료들이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사입고 친구들과 사귀며 지낼 때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시계추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어머니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그녀의 자식으로서의 페르조나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고, 어머니가 좋아하고 칭찬하는 행동을 골라가며 해오다 보니 어느새 그와 같은 자식으로서의 페르조나가 형성되었으며 거기다가 사회가 바라는 ‘자식이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들’과 어우러져 그녀의 가면이 형성된 것이다. 환자는 이런 생각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지만 사실은 이것은 어머니나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자녀의 상이었지 자신의 진짜 모습은 아니었다.
환자도 때로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려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딸의 죄책감을 자극하면서 자신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였다. 딸도 자기 자신만의 생각이 있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딸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너만 아니었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니.” 어머니는 이렇게 화자의 죄책감을 자극하여 딸을 손아귀에 넣고 있었으며, 그녀 또한 ‘나를 키우느라고 재혼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어머니의 희생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가 바라는 여성으로 만들어졌다.
증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녀를 환자로 만든 주원인은 어머니와 사회가 부여한 ‘착한 따’의 페르조나에 자기를 완전히 동일시 시켜 본래의 자기는 억압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녀의 가슴을 짓누르는 중상은 곧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의 두께가 너무 두꺼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가면은 남들에게 자신을 확실히 보이게 하고,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해주지만 이게 너무나 두꺼워져 버리면 그 무게로 인해 도리어 휘둘리게 되며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진다. 즉, 이제 그녀의 본래 모습은 간 곳이 없어지고 오직 가면만이 그녀를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는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쓰고 있던 두꺼운 가면을 한겹한겹 벗기 시작하면서 행동의 변화를 나타냈다. 차츰 자신이 꼭두각시처럼 어머니의 기대에 맞춰 세상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나 둘 어머니에게 하기 시작하였고, 얼굴에도 화장을 했으며 원색의 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집과 직장만을 오가던 생활습관에서 벗어나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경제권까지 자기 것으로 갖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어머니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자신에게서, 아니 자신의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있던 착한 딸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머니에게는 여간한 충격이 아니었다. 윽박지르고 때리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찾아낸 길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가면이 얇아져 갈수록 그녀의 증상도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페르조나와의 동일시는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페르조나는 주변의 가치관이나 부모의 생각이 은연중에 주입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페르조나는 제거의 대상인가?
- 그렇지 않다.
⑤ 관계기능 Veziehungsfunktion : 자아로 하여금 외계와 관계를 맺게 해주는 기능
→ 페르조나는 가상이지만 없애야 할 것이라기 보다 구별되어야 할 것
- 페르조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외계, 즉 그 사회에 걸맞는 기능을 못하고 자기의 기분에 의해 행동하는 완고하고 무자비한 인격이 나타난다.
- 이러 인해 도덕적인 혼란을 유발
예) 박한상 사건
⑥ 사회적 역할과 페르조나
- 페르조나의 상실 → 사회에 부적응, 범죄
- 성역할과 페르조나 : 남자가 남자다운 페르조나를 갖추지 못하는 경우
→ 성도착이나 성주체성 장애
-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거나 직업을 천직으로 삼는 경우
페르조나와의 맹목적 동일시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자신의 길이라면 그 사람에 있어 개성화란 그렇게 사는 것(동일시 < 자각된 선택)
⑦ 개성화가 나에게 씌인 모든 칭호, 지위, 출신, 배경을 벗어 던지고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전체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페르조나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될 수 없는 것 - 페르조나는 주의의 일반적 기대에 부응하고, 외계와의 적응에서 편의상 생겨난 기능 콤플렉스이므로 진정한 자기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페르조나는 자아가 외계와 관계하는 연결기능을 하므로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구별’되여야 한다.
즉, 페르조나가 자아의 긍정적인 목표가 아니라 단지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임을 깨닫고 이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2) 아니마 Anima, 아니무스 Animus
남성과는 그렇게 다른 심리를 지니고 있는 여성은 남성이 전혀 눈뜨지 못한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실들을 가리켜 주는 원천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영감 Inspiration을 의미한다.
남성을 훨씬 능가하는 여성의 예감능력 Ahnungsverm gen은 남성에게 유약한 경고를 주며 개인적인 것에 관심을 둔 여성의 감정은 남성에게 그가 지니고 있는 별로 개인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감정으로는 찾기 힘든 길들을 가리켜 줄 수 있다.
①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특성
- 남성 : 능동적, 사회적 지위, 권위와 법, 명예를 존중. 정치․기업․국가․학문과의 관계, 합리적 사고와 판단, 이념이나 사상, 철학을 추구. 창조적 기품, 입김, 기 Pneuma, 아트만 Atman, 혼 Geist '아버지‘ 인간, 법, 국가, 이성과 정신에 대한 관계 결정, 동적인 힘, 바람, 폭풍, 뇌성, 번개
- 여성 : 수용적 느낌으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가정. 개인적 감정, ‘대지’ 생명을 잉태하고 죽음을 포용.
이러한 남녀의 관계는 외계와 관계를 맺으며 남성 혹은 여성의 페르조나를 형성하여 그 차이점이 두드러지지만 이러한 차이점은 의식적인 문제이며 무의식에는 다른 요소가 숨어있다.
예) 평소에 호기있고 용기있는 남성적인 사람이 정작 위기에 처해 안절부절하고 불안해 하는 경우,
평소에는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조용한 부인이 극한 상황에서 용단과 담력과 이성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경우
② 정의
┌ 아니마 :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남성의 무의식적 여성성)
└ 아니무스 :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여성의 무의식적 남성상)
→ 의식의 외적 인격으로서의 남성과 여성은 각기 다른 내적 인격의 특성을 갖추어 이것이 전인격에 보충되어 하나의 개체를 형성.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외적 인격으로 생긴 것이 아닌 본래 체험하게 준비된 원형에 해당, 동양의 음양설이나 기독교의 신지학파와 유사하지만 이론적인 이해라기 보다는 경험적인 관념이므로 경험적으로 이해하기를 강조.
③ 아님, 아니무스의 경험 ‘사랑의 느낌’ : 이성에게 강렬한 황홀감을 경험할 때(첫눈에 반한다?) 상대방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선녀, 현자, 영웅으로 인삭할 때 여기에는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의 일방적 혹은 상호 투사가 발생한 것. 상대 성에게 현실적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투사된 이성상을 보는 것(제눈에 안경?). 항상 황홀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불쾌감이나 공포감일 수 있다.
원형의 투사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감정은 일상적인 부정적 감정보다 더욱 강렬하고 강방적이다. 이는 반드시 인물에만 투사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아니마, 아니무스를 작품속에 형상화. 또는 이념, 물질에도 투사된다.
예) ‘님’ 우리 민족에 있어서 말에 내포되는 개인적인 감정의 성질과 척도는 다르다 하더라도 단순한 애인의 의미를 넘어선 종교적 의미를 내포. 성주님, 장군님, 대감님 이러한 샤머니즘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은 단순한 아버지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의 표현을 넘어선 종교적 신성력에의 강렬한 희구에 의해 매개. 무녀에 있어서 이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아니무스가 투사된 상.
④ 아니마, 아니무스의 투사 괴팍한 인물이 집단의 각광을 받는 현상 :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이 거기에 적합한 범상하지 않은 인물이 나타났을 때 사람의 무의식을 자극하여 집단적인 마음의 상을 투사.
예) 히틀러 신흥종교의 형성, 오빠부대
- 여성들의 아니무스 원형(영웅원형, 구제자 원형)의 집단적 투사. 이는 단순한 성적인 매력이나 호기심을 넘어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초인과 영웅에 대한 열정과 희구 물질에 대한 투사
아니마 예) 돈, 알코올(주정 : spiritus alcoholicus) 등, 병리현상 : 애정망상(아니마, 아니무스의 원형의 투사), 남녀신의 쌍의 주제 Syzygienmotives, Paarungsmotive
⑤ 원형상의 발생과 상실 4세 이전 : 의식의 단절적 불연속성
┌ 부모의 상 Elternimago는 현실적인 상이 아니라 풍부한 환상에 의해서
├ 신의 쌍 주제에 반영되는 부모 원형
├ 부모의 현실성이 신성 G ttlichkeit으로 덧입혀진 상
└ 신의 관념과 연관되는 강렬한 내용을 포함.
⑥ 내용과 성격
- 아니마 : 의식화 하기 쉽지 않은 내용
┌ 꿈속에 나타나는 활홀한 감동을 주는 이름모를 여인, 어둠의 베일에 사인 귀신 같은
│ 노파, 청순한 소녀의 상
├ 영원으로 향하는 이념에의 열정, 개인적인 성격
├ 미분화 상태 : 폭발적 분노, 여성화된 요변스럽고 변덕스러운 남자
│ 분방한 추측과 질투로 부인을 괴롭히는 남자의 경우 완전무결한
│ 호남의 페르조나 소유자가 많다.
└ 잘 분화된 아니마는 창조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 아니무스 : 복수의 성격, 다수의 재판관, 권위자들의 집회
┌ 굽힐 수 없는 당당한 이성적인 판단
├ 미분화 상태 : 따지는 버릇, 자기 생각이 정당하다는 것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의논
│ 으로 아무도 이론을 제기할 틈을 주지 않는 확고부동한 의견의 형태.
│ 자기의 의견을 증명하기 위한 궤변.
└ 잘 분화된 아니무스는 지혜의 원천
- 이러한 부정적 아니무스는 남성의 아니마를 유혹해서 토론장으로 끌어들이나 남성은 자기의 미분화된 아니마에 사로잡혀 화를내고 여성은 ‘무엇이나 바르게 아는 신’으로서의 아니무스로 하여금 ‘미안하지만 내가 또 옳았다’고 말하게 함으로써 파장
→ 결국 아니마는 비합리적인 감정이며 아니무스는 비합리적인 의견
⑦ 역사성
- 아니마 : 역사적 감정이 일어남. 영원불멸성과 신성성의 문제
- 아니무스 : 현재와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생각(역사성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생각지 않은 판단 ungedachtes Gedanken 영웅원형이 주변의 남성(아버지, 남편, 아들)에 투사되어 그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조정됨.
→ 역사성의 의미
⑧ 관계기능 : 자아로 하여금 무의식으로 눈을 돌리게 하며 깊은 층으로 인도하는 관계 기능
⑨ 인식과 객관화
- 아니마의 객관화 : 융은 자기의 내부에 있는 아니마와의 사적인 대화를 통하여 마음속에 있는 아니마 성향의 배경을 알수 있었다고 하였다.
- 아니무스의 인식 : 외형화를 경계
아니무스 의견은 곧잘 외계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일가견을 말하려고 한다.
→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 : 여성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안으로 향할 것이 밖으로).
→ 착상기능 Einfallsfunktion으로서 안으로 향하여 무의식의내용을 머리에 떠오르게 해야 한자.
⑩ 원형의 예
- 샤만 Shaman(영혼의 인도자, 동자, 신의 사자) : 아니무스 원형
- 성오거스틴의 어머니, 맹자의 어머니, 율곡의 어머니 : 아니마 원형에 해당
3. 자기와 자기실현
1) 자기(自己 : Self)원형
①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합친 하나인 그의 전부를 말한다. Jung은 인간의 무의식에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전체가 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전체성(Wholeness)은 의식의 인간 뿐 아니라 Anima/Animus, 그림자, 등 무의식의 모든 속성을 포함한 전체이다.
② 자기 자신(Self)이란 글자 그대로 그 사람 자신을 말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의 전체를 말한다는 뜻에서 진정한 의미의 개성(Individuality)과 같은 말이다. 이 개성은 의식-무의식을 합친 전체로서의 그 사람의 전체 성품을 말한다. 그 사람 있는 그대로의 전부이다.
2) 자기실현
① 인간은 자기실현을 지향해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의 결단과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Jung은 자기실현을 다른 말로 ‘개성화’(Individuation)라 말하였는데 진정한 개성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즉 그 사람 자신의 전부가 된다는 뜻이다.
② 자기실현을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인간 마음의 모든 체제가 충분히 발달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인생의 중반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 Jung은 40대 이후의 시기가 인간의 성장단계에서 결정적 시기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인생의 전반기는 외적 세계의 적응을 통하여 ‘자아’를 강화하는 시기이며, 인생의 후반기는 내면세계로 시선을 돌려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화하여 ‘자기’를 강화, 혹은 ‘자기’를 실현하는 시기이다.
4. 심리학적 유형론
Jung에 의하면 인간 정신에는 두 가지 상반된 대극이 존재하는데 이 두 가지 성향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로 통일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적인 경향의 유형을 의식의 차원에서만 보지 않고, 각 유형의 무의식에서의 경향을 관찰한데서 얻게 된 결론이다.
1) 일반적 기능의 유형
Jung은 사람들이 세계와의 관계에서 취하는 두 가지 일반적인 지향 혹은 태도를 기술하였는데 그 기준은 그 사람의 주체와 객체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1) 외향형(外向型 : Extraversion)
중요한 결정이나 행동의 대부분이 주체의 의견에 의하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에 의해 좌우되는 태도를 말한다. 외향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부단히 외부환경의 자극을 찾아 나서고 행동 지향적이고 때로는 충동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솔직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사교성이 많다. 외향형은 늘 객체에 맞추고 객체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판단해 가는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
(2) 내향형(內向型 : Introversion)
행동이나 판단의 결정을 할 때 객체에 의해서 보다도 주체를 중요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내향성이 주로 관심을 쏟는 것은 자기 내부 세계의 개념과 관념이다. 마음속의 개념과 관념을 분명히 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며, 사려깊고 주위와 떨어져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하고 고독과 사생활을 즐긴다. 그 반면에 내향형은 자아를 자기와 혼돈해서 뒤바꾸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즉, 독선과 자기중심주의적인 오만에 사로잡히고 객체에 대한 관심과 고려를 무시하게 된다.
2) 정신의 4가지 기능과 기능유형
Jung은 정신의 기능을 4가지로 분류하였다. 즉, 감각(Sensation, S), 직관(Intuition, N), 사고(Thinking, T), 감정(Feeling, F)이다. Jung이 제시한 4가지 기능을 일종의 지향기능으로서, 그는 이 기능을 다양한 조건 속에서도 동일한 원리로 반응하게 하는 특정 정신활동의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1) 두 가지 종류의 인식 : 감각(S)과 직관(N)
① 감각적 인식(S)
감각이란 인간의 감각을 통해 관찰하는 인식을 말하며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감각적 인식을 선호하는 사람은 직접적인 의식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며, 관찰능력이 뛰어나고 상세한 것까지 기억을 잘한다. 이것은 사고나 감정처럼 이성의 법칙을 통한 판단이 아니므로 비합리적인 기능이다.
② 직관적 인식(N)
직관이란 통찰을 통해 가능성, 의미, 관례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Jung은 직관을 무의식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는 인식으로 유도하는 사리적 기능으로 특징짓고 있다. 직관적인 인식을 선호하는 사람은 구체적인 현실을 보기보다 가능성을 추구한다. 이의 내용은 감각 내용과 마찬가지로 사고나 감정의 내용처럼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특징.
(2) 두 가지 종류의 판단 : 사고(T)와 감정(F)
① 사고적 판단(T)
사고는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연관시키는 기능이므로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인과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여러 관념을 결합시켜 일반개념 또는 문제해결에 도달하는 기능이다. 사고기능을 선호하는 사람은 사고와 관련된 특징을 발달시킨다.
② 감정적 판단(F)
감정은 상대적인 가치와 문제의 장점 등을 고려하여 의사를 결정케 하는 기능이며,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를 중시한다. 따라서 감정기능으로 판단하기를 선호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가치를 더 중히 여긴다.
5. 무엇을 문제로 보는가?
Jung이 본 인간, 인간의 본질이란 모든 생물학적이고 정신적인 일어남의 고유한 원동력인 정신의 전체성에 있다. 이것은 자기의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전체성을 이루고자 하는 자기 원형이 있어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이 되는 근원적 가능성을 획득하고, 이를 자아 의식이 받아들여 실천에 옮겨 자아실현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자기는 보상과 초월의 기능을 가지고 자기의 본성은 절대지, 절대의식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정신병리를 질병이나 ‘정상’ 상태로부터의 일탈로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정신병리 현상을 건강한 사람의 심리의 바탕 위에서 보고자 한다. Jung은 노이로제 환자의 심리가 다른 건강한 사람의 심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전제를 내세우지 않는다. 심지어 정신병 환자의 경우도 이른바 ‘병적 현상’의 내용이 결코 이른바 정상인과 다르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병적이라고 부르는 현상에 대한 심리적 이해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분석심리학에서 병, 또는 병적인 현상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에 대한 보편타당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한가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은 그러한 병이 신체의 병이 아닌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한 무의식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모르는 상태,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장님이 된 상태, 그것이 곧 병이며 병적인 현상의 온상이라고 본다. 즉, 콤플렉스가 병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라고 말하고 있다.
1) 정신병리관
정신병리 현상은 정신의 전체성에서 벗어나서 생기고, 또한 벗어난 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정신이 전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정신의 전체성은 의식화 혹은 자기가된 것이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개성화 과정이다. 인생의 전반기에는 자아 강화를 통한 사회적응이 개성화 과정의 과제가 되고, 인생의 후반기에는 자기 강화를 통한 내면세계의 적응이 개성화 과정의 과제가 된다. 그런데, 전반기에 자아가 약하다거나 후반기에 내면세계로의 관심의 부족으로 정신의 전체성에서 일탈이 되면 그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2) 신경증 및 그 밖의 정신장애
노이로제는 그 고통의 의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마음의 고통이라고 Jung은 말한다. 이러한 증상은 분명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그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 된다.
노이로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갔을 때 생기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소외인 것이다. 자아가 자기 자신과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인격의 해리를 일으킬 위험이 커진다. 이 때 노이로제의 고통은 자아를 자기에게로 편향하게 하여 하나인 자신으로 통일되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노이로제는 그의 인격의 변화, 성숙,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렇게 노이로제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환자의 무의식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이 의식의 일방성에 의해 소외되었으며, 무엇이 실천에 옮겨져야 하는가는 개인 개인의 무의식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자아의식의 일방성은 심리학적 유형론의 우월기능과 열등기능과도 관련된다. 극단적으로 우월한 기능에 대해 열등한 기능이 억압되면 여러 기능이 혼란을 일으켜 노이로제나 그 외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6. 분석심리학의 치료목표
분석심리학은 정신치료에 유일 절대의 이론과 방법이 있어야한다고 보지 않는다. 누구든지 자신의 치료 방법을 진실로 믿고, 진지하고 인내성 있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것을 환자에게 실시할 때 이러한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이 치료적인 효과를 가진다고 본다.
Jung은 치료를 자기 인식 과정, 성격의 재구성, 심지어는 교육 등으로 다양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특정한 이론에 짜맞추려는 어떠한 미숙한 시도에도 반대하였으며 모든 치료 접근법에 내재하고 있는 경험적인 장점적인 성질을 강조하였다. 그의 좌우명은 “효과가 있는 한, 그 어떤 것이라도 사용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의 치료 관점을 잘 설명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할 수 있는 한 이론을 배우라. 그러나 살아있는 영혼의 신비를 접할 때는 이론을 제쳐놓으라.”(Jung, 1954)
이 치료의 유일한 과제는 환자 개개인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정신의 정체성을 실현, 개인의 개성을 실현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것도 분석의 깊이가 다를 수 있고, 오히려 의식화 과정이 포기되어야 할 때도 있다. 환자가 개성화를 추구하듯 치료 또한 개성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개성화 과정은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에 이루어야 할 과제가 다르다. 즉, 전반기에는 자아를 강화함으로 인해 외적세계에 적응하고 집단화를 이루는 것이 그 과제이지만, 인생의 후반기에는 무의식을 의식화함으로써 자기를 강화 실현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세계에 적응하고 개성화를 이루는 것이 그 과제이다. 지나친 자아 강화는 자기의 실현을 저해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자아의 강화 없이는 자아 강화 혹은 실현도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인생의 전반기에는 자아를 생성․발달시키고, 태도유형을 형성, 의식 기능을 분화시키며, 페르조나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를 강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후반기에는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화함으로써 중심이 되었던 자아를 객체가 되게 하고, 자기가 주체가 되게 해야 한다. 이 때는 자아로 인한 그림자를 자각하고, 열등한 의식을 인식하며, 페르조나를 분화․발전시켜야 한다.
무의식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분석심리학에서는 꿈의 분석, 회화분석 및 적극적 명상을 들 수 있다.
7. 치료기법
1) 꿈의 분석
⑴ 꿈은 미지의 세계, 무의식이다. 꿈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알려주고자 하는 지향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꿈에 나타나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여러 가지 콤플렉스이고, 환자의 꿈은 꿈을 꾼 사람이나 치료사의 마음속의 콤플렉스를 자극하게 되므로 사람들은 꿈이 제시하는 실상을 보지 못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콤플렉스를 보기 쉽다.
⑵ 꿈의 정신기능은 현재의 의식상황으로 말미암아 무의식 속에 배열된 것이며 의식의 상황을 보충한다. 즉, 현실에 대한 보상기능을 하는 것이다. 꿈이 의식의 무엇을 보충하고자 하는지를 알려면 꿈꾼 사람의 의식의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⑶ 꿈은 일반적으로 제시, 위기 전개, 극치, 해소로 구성된다. 때로는 아무런 해결없이 교착상태, 혹은 난국(impasse)만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역동들은 백일몽, 환상, 동화 등과 같은 어떠한 무의식적 산물에 대해서도 똑같이 잘 적용된다.
⑷ 꿈의 해석은 하나의 체험이다. 지성, 감정을 포함한 정신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서 이해되고 깨우쳐야 할 대상이다.
⑸ 꿈을 어떤 숨어있는 것의 대치물로 보지 않고 꿈의 사실을 사실에 입각해서 보고자 했던 Jung은 꿈에 나타난 신화적인 요소를 인간의 무의식에 내재하는 본연의 구성요소로 이해한다.
꿈은 하나의 체험의 과정이지, 지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 해석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꿈을 꾼 사람과 꿈을 보는 사람이 아직 그 뜻을 분명히 모르는 정신적인 소산을 함께 살펴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통찰이다. 따라서 꿈의 해석은 꿈을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꿈의 해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 과정이다.
2) 회화분석
⑴ 그림을 그리게 하는 의의는 그림을 통해 무의식의 내용을 나타나게 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감정기능을 살리고 무의식의 창조적 기능을 자극하여 이를 발휘할 수 있게 한다.
⑵ 그림을 그리게 할 때의 원칙은 무의식을 가능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있다. 따라서 환상이나 꿈같은 무의식의 내용을 그리게 하거나 마치 연상처럼 붓이 가는 대로 무의식에 내맡기는 태도가 중요하다.
3) 적극적 명상
⑴ 무의식을 알아 나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체험이다. 이것은 분석가 없이도 할 수 있고, 꿈의 분석을 받은 뒤에 하거나 분석을 받으면서 할 수 있다.
⑵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정, 환상, 강박관념, 백일몽의 내용들을 전혀 경계하고 비판하는 의식없이 적극적으로 의식계에 떠오르게 하고 이러한 것들과 마치 그것들이 자기 밖에 있는 객체처럼 대화하는 것이다.
⑶ 인위적으로 무의식을 외재화함으로써 정신현상을 관조하고 무의식을 대면하는 ‘나’와, 내적인 충동에 의하여 스스로 발전해 가는 또 하나의 정신적 내용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므로 자아의 성실한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⑷ 무의식에 대한 외경과 그 창조성에의 기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겸허하게 찾아가고자 하는 자기 성찰에의 윤리적 의무, 그 종교적 태도를 먼저 갖추는 것이 모든 방법과 기술에 선행되어야 한다.
8. 상담자의 역할과 평가
⑴ 상담자는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내담자와 개인적인 발전과정을 함께 체험하는 사람이다.
⑵ 상담자는 대화의 과정(내담자와 상담자가 ‘서로의 소견’을 비교함)을 통하여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존재이므로 내담자의 꿈에 나타나는 상담자의 모습, 또는 상담자의 꿈에 나타나는 환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서로를 비추어 가며 내담자의 숨어 있는 개성을 발견하고 이를 보충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치료방법이나 기술보다도 대화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⑶ 상담자는 그의 방법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방법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정신치료가 실시된다”는 마음의 기본자세가 중요하다.
⑷ 상담자는 기술, 방법, 치료이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담자 그 자체가 우선되어야 하고 내담자에 맞는 이론과 기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⑸ 상담자가 인간적으로 가지는 경험 및 인격의 폭, 종교관, 세계관, 인간관이 매우 중요하다.
⑹ 상담분석가 자신이 먼저 스스로 분석을 받아야 한다. 즉 상담자가 스스로 교육 분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상담자가 권위자나 판사, 유식한 사람이거나 충고를 주는 사람으로서 치료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체험하는 사람’으로서 대화의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 정신치료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⑺ 상담자는 내담자에 대해서 어떠한 선입견도 갖지 말아야 한다. 즉 틀에 박힌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⑻ Jung은 자신의 치료는 의도적으로 비체계적이라고 하면서 그 가운데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은 상담자의 ‘인간 개성’과 그 ‘전체성에의 경외’의 태도라고 하였다. 이것은 상담자가 내담자에 대해 무의식적인 창조적 가능성에 대한 무한한 기대를 걸고 이를 고려해 나가야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9. 분석심리학의 평가와 비판 / 융의 의미
1900년 그는 취리히대학교 부설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에서 일했다. 당시 이 병원의 원장이었던 오이겐 블로일러는 오늘날 정신병의 고전적 연구로 평가되는 심리학적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부르크횔츨리에서 융은 이전의 연구자들이 시작한 연상검사를 매우 성공적으로 응용했다. 그는 특히 자극어에 대한 환자의 독특하고 비논리적인 반응을 연구하여, 그러한 반응이 정서적인 내용이 포함된 일련의 연상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상들은 불쾌하고, 비도덕적이며, 성적(性的)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식에서 억제된다. 그는 이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지금은 유명해진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Jung의 분석심리학은 철저하게 그의 일생을 통해 내적으로 경험한 내용들을 토대로 하여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에는 그의 인격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그의 분석심리학을 관통하고 있는 사고는 전체성(wholeness)이었다. 즉 분석심리학의 인간관은 전체성의 인간관, 정신 병리관은 전체성의 정신 병리관, 그리고 정신치료는 전체성의 정신치료였다. Jung은 전체성을 지향하기 위하여 무의식의 분석을 심화하여 특히 집단 무의식에 관한 개념을 발전시켜 여기서 파생된 원형, Persona, Anima/Animus, 그림자, 자기 등의 개념은 인간 내면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 것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본다.
치료과정에서 분석심리학이 가지는 특성은, 인간의 개개인을 중시하여 하나의 일관된 치료의 목표나 방법들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치료를 요구하는 한 개체의 무의식이 요구가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치료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새로운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Jung의 분석심리학은 다른 이론들에 비해 너무 철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집단 무의식의 개념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하기도 어렵고, 원형의 존재와 작용에 대해 증명하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분석심리학적 치료자들을 양성하는 것도 어려우며, 치료를 요구하는 환자들에게 많은 시간과 경비를 요구하게 된다.
Jung의 이론의 한 가지 Freud와 대조되는 것은 Freud는 정신병리에 대해 이것을 억압된 욕구로 인한 병으로 본 반면, Jung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은 타협한 자아가 용납하지 못한 영역을 수용하라고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로 보아 오히려 한 인간이 자신의 전체성을 지키는 데 필요한 건강한 기능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기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분석작업을 통해서 얻은 방대한 경험자료를 토대로 원시종족의 심성과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현상들을 비교 고찰한 결과, 인간심성에는 자아의식과 개인적 특성을 가진 무의식 너머에 의식의 부리이며 정신활동의 원천이고 인류 보편의 원천적 행동 유형인 많은 원형(原型)들로 이루어진 집단적 무의식의 층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의식의 일방성을 자율적으로 보상하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케 하는 핵심적인 능력을 갖춘 원형 즉, 자기원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의 학설은 병리적 현상의 이해와 치료뿐 아니라 이른바 건강한 사람의 뿌리를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하고 모든 인간의 자기통찰을 돕는데 이바지하고 있으며, 시대적 문화, 사회적 현상의 심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초로서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신학, 신화, 민담학, 민족학, 종교심리학, 예술, 문학은 물론 물리, 수학 등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융은 심혼(心魂)의 의사(Seelenarzt)로서 자기실현의 가설을 몸소 실천하였을 뿐 아니라 20세기 유럽이 낳은 정신 과학자 중에서 동양사상(東洋思想)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함으로써 동서(東西)에 다리를 놓았으며, 새 천년(千年)에 인류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사람이다.
? 칼 융이 주는 의미
첫째, 융은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중심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문명화된 의식이다. 의식은 자아의 세계이다. 이 <자아>라는 것은 <자기>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우리의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자아는 우리의 중심인 자기를 향해 나아가야 하겠다.
우리는 자아의 세계가 전부로만 착각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자기의 세계와 같이 설명되지 않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의 해리는 자아의 세계를 전부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의 자리에서 노예의 자리로 추방당하였다.
우리는 중심을 상실하였다. 현대인의 마음은 에덴동산을 상실한 보헤미안의 서글픈 운명이 맺혀있다.
융은 희미한 잔영으로만 남아 있는 자기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계속 해 왔고, 오늘 우리에게 그 세계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건네주고 있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자기의 세계는 너와 내가 서로 넘나드는 화해의 세계이고 통합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보다 보편적이며 진실한 세계이고 영원한 세계이다. 오히려 그곳은 그늘에 가리워진 세계가 아니라 빛의 세계이다. 그리고 중심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꿈을 통하여, 신화를 통하여, 상징을 통하여 자기의 세계에서 자아의 세계를 향해 건네주는 메시지에 우리는 귀를 모아야 하겠다. 왜냐하면 의식의 치명적인 손실은 꿈에 의해 보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저 깊은 내면의 무의식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하겠다.
둘째, 우리의 세계는 설명 가능한 세계만이 전부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특히 자아의 세계 안에서의 ‘이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으로는 마음의 전체성을 결코 파악할 수 없다.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판적 이성이 지배하면 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곤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우리가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삶을 통합할 수 있다.”
의식을 넘어선 세계에 대한 겸허함을 상실한 채 이성의 왕국으로만 전진하려는 현대문명의 기나긴 행렬은 사실 막대한 손실을 지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문명은 합리성에 의하여 바벨탑을 축조하였다. 완고한 탑의 벽돌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합리성의 질료는 비합리성을 신화로 매도하였다. 왜냐하면 바벨탑의 세계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시대는 비합리성이 사멸한 시대이다. 그렇다면 비합리성은 존재하지 않는가. 단지 이성의 등불이 건져내지 못하는 심연의 세계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바벨탑이 감내해야 할 불길한 징후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심연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마치 빛이 소멸하고 어둠에 깃든 저 밤하늘에는 단지 우리눈에 보이는 저 별만 존재한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연은 존재를 망각케 한다. 하지만 존재는 심연에 앞선다. 오히려 존재는 어둠을 품는다. 심연과 어둠에서 있는 존재는 비록 설명되지 않을지언정 자명한 존재이다. 그래서 은폐되어 있고 불가해한 존재(essentia absconditus et incomprehensibilis)는 모르는 존재(essentia ignotus)가 아니다. 사실 ‘비합리적인 것’은 모르는 것이나 인식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조차도 이름붙일 수 없을 것이다.
이름은 존재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실로 융의 동시성 이론이나 죽은 자와의 대화는 우리의 이성이 얼마나 빈약한 기능인가를 예증해 준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는 않고 설명되지도 않는 세계가 우리 가까이에 있고, 그리고 그 세계가 우리를 인도한다고 융은 말한다.
셋째, 융은 우리 각자의 生이 매우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 심성의 뿌리에는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 전체의 세계와 닿아 있다. 그렇다면 각자의 生은 결코 가볍거나 보잘 것 없는 生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生은 우주를 닮아 있다. 영원의 세계인 무의식의 현현이 각자의 生인 것이다. 플레로마의 세계에서 클레아투라의 세계로 띄어든 최초의 사건이 生이다. 우리의 生은 불멸의 무한한 세계가 유한한 세계 속으로 뛰어든 사건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生은 끊임없는 성숙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 지향이 바로 ‘개성화’인 것이다.
우리는 융을 통하여 살아있음(生)이 결코 예사스럽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제 생은 환희이고 생명은 경이로움이다.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펄럭거리며 비상하는 저 새를 보자. 새는 날기 위하여 얼마나 가난한 시간동안 새가 되려는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 얼마나 긴 계절을 인간의 꿈을 꾸었을까. 인간은 백년의 삶을 만나기 위하여 백만년 동안, 그 한 순간만을 꿈꾸어 온 존재이다. 백만년 겨울잠의 기나긴 제의를 통하여 우리의 삶은 주어진 것이다. 우리 삶의 밑둥에는 백만년의 지난 한 세월을 견뎌온 뿌리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백만년을 몸으로 살아가는 푸른 생명나무이다. 그 생명나무가 가장 찬연한 열매를 맺는 그 순간, 그 절묘한 순간이 바로 지금의 生이다. 그러기에 生은 저 영원의 빛의 드러남이다. 또한 지금의 生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구현(Individuation)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꿈은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에게 예언한다.
꿈이란 자기와 자아가 체험하는 두 지대의 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삶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중심의 소리이다. 꿈은 삶의 해리를 통합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고백하였다면, 융은 “꿈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지금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꿈을 타고 우리에게 건너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서늘하게 만났던 융에 대한 감정은 이제 따스한 할아버지로, 예리한 관조의 시선을 통하여 우리의 상한 영혼을 치유해 주는 영혼의 의사로, 오늘의 가난한 마음과 가난한 문명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하는 천상의 헤르메스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참 고 문 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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