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심리학

영혼의 세계 – 아니마(anima)

rainbow3 2020. 3. 4. 23:51

 

 

anima / animus

 

 

영혼의 세계 – 아니마(anima)

 

 

1. 별 여신 이야기

 

마을에서 제공한 오두막집에 한 총각이 살고 있다. 지붕 위에 난 구멍을 통해 그는 예쁜 별 하나를 본다. 밤마다 그 별을 본 총각은 결국 별과 함께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그는 잠에서 깨어나 예쁜 한 여인이 침대 발치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가 “당신이 날 불렀나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사는 것에 동의하고, 매일 밤 여인으로 나타나 그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낮이 되면 그녀는 매우 작아져서 그는 작은 병에 그녀를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모른다. 사람들은 병 속을 들여다 본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작고 하잘 것 없는 작은 눈을 가진 벌레처럼 보이는 구역질나는 한 동물을 볼 뿐이다.그것은 낮에 볼 때는 진부하고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밤에 볼 때는 아름다운 여인이다.1]

 

폰 프란츠의 아니마 이야기에서 발췌한 ‘별 여신 이야기’는 젊은 총각이 하늘의 별과 사랑에 빠진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 별이 어느 순간에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총각의 침대 발치에 와 있다.

밤에만 반짝이며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 그녀는 누굴까?

그녀는 낮에는 볼품없는 동물 모양을 하고 작은 병 속에 갇혀 있다.

낮의 모양과 밤의 모양이 다른 그녀는 누굴까?

총각의 영혼이 밤에는 별이 되어 나타나고, 그 별은 여인으로 변하여 그와 일체를 이룬다. 남성의 아니마는 이처럼 밤으로 상징되는 무의식에 내재한다.

깊은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그녀는 낮으로 상징되는 의식의 눈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원초적 동물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의식의 시간이 되면 그녀는 제 모습을 되찾아 남성을 사로잡는다.

집단 무의식에 내재된 아니마는 이처럼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경이로운 모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보잘것없는 벌레의 모습으로 의식에 다가온다.2]

 

이어지는 별 여신의 이야기에서 젊은 남성은 그녀가 떠나간 곳에 대한 호기심에 빠진다. 그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구한다. 그녀와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가자, 거기서 그는 그녀가 해골 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본다. 그녀는 혼자다.

충격적인 장면으로 그는 다시 땅으로 내려 보내 달라고 그녀에게 요구한다. 그녀가 그렇게 해 주지만, 그 충격이 커서 그는 뇌출혈로 죽고 만다.3]

 

이야기는 별의 세계, 야신의 세계, 영혼의 세계, 아니마의 세계를 경험한 남성이 그 충격 때문에 심리적, 육체적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의식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의식은 영혼의 세계인 무의식을 통제하거나 설득할 수 없다. 오직 무의식의 전언을 겸손하게 인식할 뿐이다. 이것은 마치 꿈의 전언과도 같다. 의식의 계획대로 꿈은 발생하지 않는다.

무의식의 자율성은 꿈의 임의성처럼 스스로를 드러낸다. 남성의 내면 영혼인 아니마도 의식의 태도에 대응하여 자율적으로 반응한다. 때로는 보상적으로,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의식을 혼란에 빠뜨리는 마녀나 미지의 여인으로 인격화되어 꿈과 환상의 세계에 나타난다.4]

 

1]박종수 「융 심리학과 성서적 상담」 ( 서울 : 학지사, 2009 ) , 243

2]Ibid, 244

3]Ibid, 244-245

4] Ibid, 245

 

 

2. 아니마는 무엇일까

 

아니마는 종종 집단 무의식의 인격화된 표상으로 드러난다. 동시에 수많은 원형 가운데 하나로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집단 무의식은 의식의 눈으로 볼 때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전혀 다른 세계다.

원형으로서의 아니마는 알려지지 않은 태곳적 인류의 정신적 삶을 의식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미지의 조상들이 지난 사고와 감정방식, 삶의 경험 양식 그리고 선과 인간에 대한 세계관들이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통해 의식에 전달된다. 융에 따르면,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재탄생과 선재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 담겨 있다. 거의 원시림에 가까운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집단무의식의 내용이 의식에 배치될 때,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정신증이나 분열증 등의 심각한 심리적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융은 이런 관점에서 집단무의식이 의식에게 거의 생소한 인격으로 다가오는 제2의 정신체계라고 말한다.

 

융은 집단 무의식 영역에 있는 내적인 인격을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로 불렀다.

아니마는 라틴어로 ‘영혼’을 의미한다.

페르소나가 사회 적응을 위한 외적 인격이라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는 내적 인격이다. 남성에게는 여성적 요소인 아니마가, 여성에게는 남성적 요소인 아니무스가 내적 인격으로 작용하여 인격의 성숙을 유도한다.

 

 

"여성은 남성적 요소에 의해 보상받는다. 따라서 여성의 무의식은 소위 남성적 흔적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상당한 심리적 차이점을 초래한다.

아니무스는 아버지 로고스로 비유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아니마가 어머니 에로스와 동일시되는 것과 같다. 남성에게는 대게 관계의 기능인 에로스가 로고스보다는 덜 발달되어 있다.

반면에 여성에게는 에로스가 그들의 진정한 본성의 표현인 반면, 로고스는 가끔 후회될 만한 사건에 불과하다." 6]

 

 

남성의 아니마는 꿈이나 환상에서 주로 여신으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여성의 아니무스는 주로 남성으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남성의 아니마는 대체로 여성에게 투사되며, 반면에 여성의 아니무스는 남성에게 투사된다.

아니마가 투사된 대상이 마치 원형 그 자체로 여겨질 때, 아니마는 현실적 여성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아니마는 실제의 여성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무의식에 내재된 원형 가운에 하나로서 남성의 내면 인격을 대변한다. ‘남성안의 여성’인 아니마는 현실적인 여성과 분명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성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남성의 영혼은 여성적 성향을, 여성의 영혼은 남성적 성향을 띤다는 것은 융이 말하는 대극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남성이 매력적인 이성에게 순간적으로 사로잡혀 이성을 잃는 현상은 아니마의 원형적 속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니마가 일단 의식화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여 개성화를 위한 안내자가 된다.

내적 인격인 아니마는 외적 인격에 대한 보상기능을 수행한다.7]

 

아니마는 남성의 내면 인격, 즉 영혼의 대변자로서 남성의 행동이나 사고에 다양한 영향을 끼진다. 아니마는 대체로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를 통해 그 성향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목회자가 신도로부터 설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들었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설교자가 그 비난에 대해 신경증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내면의 아니마가 그의 감정을 주도한 경우라고 가정할 수 있다. 8] 그 목회자는 자신의 분노가 사회적 지위가 침해당한 것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친 감상적 분노는 대게 아니마의 배치에 의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융에 따르면, 아니마는 모성적 에로스로 대변되는 남성의 내면 인격이다. 아니마는 남성의 정신 안에 있는 원형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콤플렉스를 보여준다. 아니마는 남자 아이에게 천부적으로 부여된 여성성으로서, 처음에는 개인적 어머니와 동일시되다가 성장과정에서 다른 여성(딸, 누이, 연인, 여신 등)으로부터 경험된다.

 

원형으로서의 아니마는 남성의 삶 속에서 다양하고도 광범위하게 사고, 태도, 정서 등에 영향을 미친다. 원형들은 행동의 근거를 위한 쳬계이면서 동시에 상이자 감정들이다. 뇌구조 속에 전수된 원형들은 뇌의 정신적 측면을 대변한다. 한편으로 원형은 매우 강한 본능적 보수주의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능적 적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9]

정신세계의 어두운 부분에 있는 원형은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 심리적 작용은 원형적 이미지나 동기를 통해 드러난다. 원형적 이미지는 집단무의식으로부터 파생된 보편적 형태나 동기들로서 주로 종교전통, 신화, 전설, 민담 등에 나타난다.

 

5]Ibid, 246

6]Ibid, 246-247

7]Ibid, 248

8] Ibid, 249

9] Ibid, 250

 

 

3. 아니마는 어떻게 경험되는가

 

아니마는 남성의 꿈이나 환상 속에서 주로 여성으로 인격화되어 사랑의 대상이나 유혹적인 영적 인도자로 나타난다. 아니마/아니무스는 오직 이성과의 관계를 통해 인식된다.

왜냐하면, 아니마/아니무스 투사는 오로지 이성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아니마가 동성인 남성에게 투사될 때, 현실 속의 남성에 대한 감정이 꿈속에서 낯선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은 가끔 동성애적 감정을 느낄 때 발생된다. 융은 동성애를 아니마 동일시보다는 자웅동체 원형으로부터의 불완전한 독립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10]

 

아니마는 의식화되기 이전에는 대체로 부정적인 형태로 의식에 표출된다. 아니마는 대상 혹은 자신의 일과 관련된 모든 정서적 관계를 격렬하게 하거나 과장시키며, 오류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긍정적 측면에서 내적 인격인 아니마는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에 대한 보상기능을 수행한다.

삶의 원형적 힘인 아니마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드러내어 지배적인 의식 태도를 보상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아니마는 외적으로는 강한 남성에게 내면에 있는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통해 균형 있는 인격을 지니도록 인도한다.11]

 

아니마의 원형적 이미지는 어머니, 자매, 연인, 아내, 유혹하는 매력적인 영적 안내자, 창녀, 샤먼 혹은 새나 꽃 등의 동식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융은 에로스 제의에 나타나는 4단계의 아니마 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단계: 첫 번째 아니마는 이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때 아니마는 육체적 어머니와 구별되는 여성으로 경험된다.

2단계: 두 번째 아니마는 역사적 인물은 트로이의 헬렌으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이때 아니마는 집단적이며 이상적인 성적 이미지로 경험된다.

3단계: 세 번째 아니마는 종교적인 감정과 지속적인 관계성 안에서 마리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4단계: 네 번째 아니마는 지혜의 여신인 소피아로 나타난다. 이때 아니마는 의식을 무의식의 내용과 중재함으로서 내적 삶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된다.

 

"에로티시즘의 4단계는 고전주의 후기시대에 알려졌다. 그것은 하와, 트로이의 헬렌, 동정녀 마리아, 그리고 소피아다.

 ......첫 번째 단계(하와, 이브, 땅)은 순전히 생물학적이다. 이때 여성은 어머니와 동일시되며, 수태를 위한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두 번째 단계 (헬렌)은 여전히 성적인 에로스에 의해 지배되지만, 여성이 이미 개인적은 것으로서의 가치를 회득한 심미적이면서 로맨틱한 수준의 상이다.

세 번째 단계(마리아)는 에로스를 종교적 헌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결국 남성을 영적으로 인도한다. 이때 하와는 영적인 모성에 의해 대치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 (소피아)는 세 번째 단계를 거의 능가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벗어나는 어떤 것을 설명한다.

 ......이 단계는 헬렌의 영성화를 드러내 결국 에로스의 영성화로 이어진다. 이것이 사피엔시아(지혜)가 아가서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과 동등하게 간주된 이유다." 12]

 

10]Ibid, 251

11]Ibid, 252

12]Ibid, 245

 

 

4. 아니마의 심리작용

 

1) 투사

 

페르소나와 동일시된 상태에 있는 남성의 아니마는 완전히 어두움에 남게 되어 일단 외부로 투사된다. 따라서 아니마의 성격은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를 통해 드러난다.

예를 들어, 페르소나가 지적이면 아니마는 확실히 감상적이 된다.

아니마가 외부 대상에게 투사되면, 그 남성은 외부 대상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아니마와 보호적인 어머니 상이 우선적으로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아니마는 파트너 여성에게 투사되어 이미 예상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때 남성에게 이상적인 결혼은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가 보여 주었던 마술적 역할을 넘겨받는 형식으로 표출된다. 결국 그는 아내의 소유적 본능의 손에 놀아나게 되어 내적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거나 파국에 이르기도 한다. 아버지가 외부세계의 위험을 보호해 주는 대상이라면 어머니는 정신의 어두운 부분에서 밀려오는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청소년을 위한 제의는 이런 어머니의 보호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융은 아니마가 어머니 상 안에서 아내에게 전이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13]

 

"그 결과는 아니마가 어머니 상의 형태로 아내에게 전이된다.

남성은 결혼하자마자 어린애처럼 되며, 감성적이고 의존적이며 추종적이 된다. 혹은 호전적이고 독재적이거나 과민해져서 항상 그의 우수한 남성성의 위신에 대해 생각한다."

 

13]Ibid, 254-255

 

 

2) 배치

 

융은 ‘생각들의 고조된 콤플렉스’를 단순히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콤플렉스의 영향을 ‘배치’ 혹은 ‘활성화’라고 부른다. 갈등이 생각을 자극할 때 우리는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 혼돈의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우리에게 인내심이 요구된다.

이런 중지 상황은 무의식의 내용들이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에 따라 무의식은 그 초월적 기능을 수행하여 의식으로 표출된다. 14]

 

"아니마가 강하게 배치되면, 유악해진 상태에서 과민하거나, 쉽게 흥분하거나, 감상에 젖거나, 질투에 사로잡히거나, 공허하게 느끼거나, 적응력이 떨어진다. "

 

아니마는 감정과 정동이 작용하는 곳에서 남성 심리학 가운에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아니마는 격렬해지게 하거나, 과장시키며, 오류에 빠지게 하며, 자신의 일 혹은 남녀구별 없이 다른 사람과 관련된 모든 일을 신화화한다. 그 결과 발생하는 환상과 혼란은 모두 아니마의 작업이다.

아니마가 강하게 배치되면 남성의 성격이 부드러워지고, 예민해지며, 쉽게 흥분하거나 감상에 젖고, 시기심이 많아지며, 공허하고 적응력이 떨어진다. 이때 그는 불만 상태에 있게 되며 자기 주변에 불만을 확산시킨다. 가끔 그 남성의 아니마를 포착한 여성과의 관계성은 이런 증세를 설명해 준다.15]

 

14]Ibid, 256

15]Ibid, 256

 

 

3) 동화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의식에 동화될 때 무의식의 내용이 개인을 지배하게 되어 집단적 상징을 내포하는 환상을 발전시킨다. 융은 아니마, 아니무스의 동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우리 문제의 출발점은 아니마 현상과 아니무스 현상을 일으키는 무의식적 내용들이 충분히 의식으로 동화되었을 때 뒤따르는 상태다.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즉, 무의식적 내용은 개인의 영역에 해당되는 일차적인 것, 아마 앞서 인용된 남성 환자가 가졌던 환상의 종류와 비슷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 뒤에 비개인적 무의식의 환상이 전개되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집단적 상징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의 환자들의 환상과 같은 종류다. 이런 환상들은 사람이 순진하게 생각하듯 투박하고 무질서한 상태가 아니고 오히려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특정한 무의식적 방향성을 따르고 있다." 16]

 

16]Ibid, 257

 

 

4) 동일시

 

자아가 페르소나와 동일시 될 때 자동적으로 아니마와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자아가 페르소나로부터 분화되지 못할 때 무의식과 더 이상의 의식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개인의 길을 가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니마와의 비극적 연합을 보여 준다. 융은 아니마와의 결혼이 심리적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완벽한 동일시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태는 심리적으로 자신을 알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서 약간은 원시적 성향을 띠게 마련이다.17]

 

17]Ibid, 257

 

 

5) 사로잡힘

 

아니마에 의한 사로잡힘 상태는 아니마와 동일시된 상태와 같으며, 이때 아니마의 매력이나 긍정적 가치는 상실된다. 의식화되지 않은 아니마는 자아의식을 다음과 같은 상태로 인도한다.

변덕, 감정의 기복이 심함, 감상적, 무절제, 감정적, 사악한 직관, 무례함, 부당함, 불신, 음란함, 이율배반, 신비적 상태로 인도한다. 이런 심리적 현상은 남성에게 다소 불합리하거나 어색한 여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융은 아니마에 사로잡힌 남성이 스스로 거세하여 자신을 여성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아니마에 의해 사로잡힌 현상은 주로 페르소나, 즉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남성의 자아가 페르소나와 동일시될 때, 페르소나의 대극인 아니마가 의식활동을 지배하게 된다. 18]

페로소나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남성은 자신의 내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페르소나의 역할이 강하면 강할수록 아니마의 보상기능이 커져서 무의식의 억압은 가중된다.

아니마는 이처럼 페르소나에 대응하여 간접적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자아가 동일시될 때 내면세계에 대한 통찰력은 약화되어 모든 것을 합리화하게 된다.

 

18]Ibid, 258

 

 

6) 보상

 

아니마는 남성적 의식의 결핍을 보상한다. 남성적 의식에 대한 보상작용은 또한 페르소나와 아니마의 보상적 관계를 형성한다. 아니마는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담당한다.

페르소나에 대한 아니마의 보상기능은 페르소나와 자아 사이의 건강한 관계가 형성될 때 유효하다. 만약 그렇지 않고 페르소나가 자아와 동일시될 때 아니마의 악한 성향이 자아를 지배하게 된다.

 

 

5. 아니마의 의식화

 

아니마를 의식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꿈과 환상 속에서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며 다른 인격요소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아니마의 심리작용을 엿볼 수 있다. 꿈과 더불어 융이 소개한 아니마의 심리작용이 나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가를 조심스럽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니마를 의식하기 위해 자신의 언어, 행동, 신념, 감정이 대인관계 속에서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경험하고 관찰해야 한다. 아니마는 의식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율적 콤플렉스의 악한 힘이 상실되어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는 중재자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의식 활동이 강화되는 인생의 전반기에는 심리적 어머니인 아니마로부터 독립하여 온전한 남성성을 확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생 후반기에 아니마와의 의식적인 관계가 없으면 ‘영혼의 상실’, 즉 내면 인격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아니마에 대해 무관심함으로써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남성은 미성숙한 완고함, 까다로움, 아집, 열광적 일방성, 고집셈, 학자연함, 체념, 권태, 편향, 무책임성 그리고 결국 알콜 중독 성향과 함께 어린애 같은 토라짐이 잦게 된다.

융은 아니마와의 관계 단절에 의해 무의식의 보상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신경증이나 정신증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19]

 

남성의 심리발달 측면에서 그림자와의 대면이 수습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아니마 경험은 심리적 숙련단계에 해당된다. 원형적 콤플렉스인 아니마는 남성의 정신영역에서 생소한 심리적 사실들로서 어머니의 지배적인 힘 속에 숨어 있다.

 

" 아니마와의 관계는 또한 일종의 용기에 대한 시험, 즉 남성의 영역이며 도덕적인 힘을 위한 일종의 불에 의한 고된 시련이다. 아니마를 다룰 때 우리는 이전에 한 번도 남성에게 속하지 않는 심리적 사실들을 다루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그의 정신영역 밖에서 , 즉 투사 형태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아니마는 어머니의 지배적인 힘 속에 숨어 있다. 아니마는 가끔 일생동안 계속되어 성인의 운명을 심각하게 해치는 민감한 애착 속에 그를 남겨 둔다. 반면에 아니마는 그를 자극하며 가장 높은 곳으로 날게 한다. 고대인에게 아니마는 여신이나 마녀로 나타나는 반면, 중세인에게 여신은 하늘의 여왕과 어머니 교회로 나타났다. 프로테스탄트의 비상징화된 세계는 건강하지 못한 감상주의를 산출했으며, 그에 따라 도덕적 갈등을 첨예화했다." 20]

 

투사, 배치, 사로잡힘과 같은 아니마의 심리작용 외에도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수단으로 적극적 상상법이 있다. 이것은 아니마와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내적 인격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적극적 상상의 첫 번째 단계는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우선 꿈이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상에 집중하여 주목한다. 그 상들이 무엇을 산출하여 어떤 상이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는가를 관찰한다.

명상하면서 그 상을 관찰하면, 그것이 점점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변화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동화과정을 관찰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자아의 의식적인 참여를 통해 무의식의 내용을 겸손하게 판단한다. 이때 마치 환상 속의 인물처럼 인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무의식의 보상작용을 경험한다. 자율적 콤플렉스인 아니마가 스스로 자아를 향해 말을 할 수 있도록 의식의 눈과 귀를 여는 작업이 곧 적극적 상상이다. 무의식의 보상작용은 자아가 무의식에 대해 열린 태도를 견지할 때 발생한다.21]

 

"온전한 정신치료 경험은 이런 질문에 대해 결정하기를 요구받는다. 기억할 것은 원형적 이미지들과 환상들이 그 자체로 병리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리적 요소는 개인이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실체를 드러낸다. 병리적 반응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원형과의 동일시다. 동일시는 뜻밖의 내용에 의해 발생하는 일종의 팽창과 사로잡힘 현상을 야기함으로써 어떤 치료도 멈출 수 없는 급류에 빠지게 한다. "

 

융은 자서전 『 회상, 꿈, 그리고 사상 』 (1961)에서 아니마와 대화하는 법을 소개한다.

우선 자신이 본 환상을 자세하게 기록한 다음에 내면의 영혼인 아니마에게 편지를 써서 무의식의 음성을 듣는 방법이다.22]

 

무의식 분석의 직접적 목적은 무의식의 내용이 더 이상 무의식의 영역에 머물지 않게 함으로써 아니마가 더 이상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게 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니마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순간순간 표현의 기회를 줌으로써 가능하다.

아니마의 말을 듣는 것은 꿈이나 환상 분석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동시에 외부로 드러난 행동이나 감정 양태를 세심하게 관찰함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은 자아가 무의식에 주도권을 위임해서 무의식이 스스로 환상의 형태로 의식에 동화되게 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에 사로잡혔을 때 우울증을 잊어버리거나 피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대신 그 우울증을 받아들이고 우울증으로 하여금 말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불면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인 불면증은 일종의 인격이 되어 무언가 말하고자 한다. 그 불면을 회피하고나 쫒아내려 하기보다는 불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귀를 기울일 때 부정적 힘은 사라지게 된다.

무의식의 자율성이 의식의 수용성과 결합할 때 그 초월적 기능은 활성화되어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무의식의 내용들이 의식화될 때 먼저 개인 무의식 안에 있는 경험적 내용들로 나타난다.

그 다음에는 집단 무의식의 환상들로 표현된다. 이때 환자는 콤플렉스의 뿌리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아니마의 영향이 의식화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초월적 기능은 유지되어 여전히 우리의 인식과 의지 영역 바깥에 있다. 따라서 아니마와 같은 원형은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경험되어야 할 심리적 인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