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심리학

무엇이 트라우마인가?

rainbow3 2020. 1. 27. 02:27


무엇이 트라우마인가?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 본 트라우마의 이해와 분류*



이 홍 석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이 흥 표  대구사이버대학교

권 기 준  대구사이버대학교

최 윤 경  계명대학교

이 재 호  계명대학교



본 연구에서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분류하고자 하였다. 생명체는 개체 보존과 종족 보존을 자연적 목표로 하며 트라우마는 유기체의 생존과 안전 및 번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건이다. 이에 대한 두려움-기억 회로 및 철수, 공격적 대응, 회피, 유화, 주의 부동, 긴장성 부동 등은 진화과정에서 내장된 트라우마의 핵심적 반응이자 대처기전이다.

본 연구에서는 중생대-신생대-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의 각 진화적 시기 별로 인류의 조상들이 진화적 적응환경에서 당면해 온 위협들을 적대적 자연에 의한 위협, 종간 경쟁에 의한 위협, 종내 경쟁-집단간 경쟁 및 집단내 경쟁에 의한 위협, 발달 외상 및 인위적 위협등으로 구분하고 각각에 따른 외상적 사건을 분류하였다.

DSM-5의 외상 및 외상후 스트레스 진단체계는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인간 종의 고유한 특성, 즉 심리적 안전의 중요도, 발달 외상과 관계 외상 및 개체의 취약성 등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 외상에 대한 치료적 시사점 및 본 연구의 한계점을 논하였다.


주요어 : 트라우마, 외상, 진화, 진화심리학

* 이 논문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3S1A3A2043448).
†교신저자: 이흥표, 대구사이버대학교,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내리리 15번지



서 론


Freud(1917)는 인간의 기본적, 자연적 본능으로 성과 공격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성과 공격 본능은 개체 보존과 종족 보존(Darwin, 1859)을 위해 존재하며 개체의 보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여 싸우고 도망가거나 혹은 얼어붙는 것 역시 인간에게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된 반응이다(Bolles, 1970). 인간의 육체와 뇌, 마음의 구조와 패턴은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형태로 설계, 선물 받은 것이 아니라(물론 현재의 설계도도 완벽하지 않다)

46억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만들어지고 수정되어 온 장치이며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다(Singer, 1981; Wilson, 1978). 인류의 선조들은 수천만년의 시간과 경험 속에서 위협에 대한 특정한 반응체계와 전략을 진화, 내장시켰다. 그리고 그 내장된 기제(built in mechanism)는 평상시에는 잠잠하다가 위협이 출몰하면 튀어나온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위협 앞에서 왜 그런 반응과 행동을 보였거나 보일 수 밖에 없는지 현재의 근접 공간을 벗어나 인간이 동물왕국과 공유했던 더 먼 곳까지(distal)행동의 기원을 찾아나간다(Cantor, 2005; Greene,1999).


본 연구는 위협에 대한 반응체계와 방어 전략이 ‘싸움-도주’(Cannon, 1932) 위주의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되었고 인간이 직면하는 위협의 본질 역시 다양성과 강도 및 인간의 고유한 반응 양식을 고려하지 못한 채 단일하게 개념화되어 트라우마 반응에 대한 이해를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현재 트라우마 분류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새로운 트라우마 분류 체계를 제안하고자 하였다. 즉 진화적 시기를 구분하고 인류의 조상들과 다른 종과 공유하였던 특성 및 차별화된 특성을 통합하여 각 시기별로 위협 요인들을 탐색, 분류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트라우마의 본질 및 반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현행진단체계, 치유 과정 및 치료 기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트라우마와 현재 분류체계의 문제점


트라우마의 기원과 진화적 적응환경


인류의 조상들이 과거 진화적 역사 속에서 당면했던 환경을 진화적 적응환경(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 EEA; Bowlby, 1969;Foley, 1996)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150~250만년전에서 1만 2천년전까지 지속된 신생대 홍적세(Pleistocene) 적응 환경에 머물러 있다. 현생 인류는 99%의 시간을 사바나 등에서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어 수렵채집생활을 하며 살았으며 응집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현재 인류의 심리적 기제는 홍적세 환경의 생존과 번식(재생산) 문제에 직면하고 적응하면서 생성되었고 그 작동 기전은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Symons, 1992). 현생 인류(homo sapiens)가 출현한 이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고유한 기전(과경계와 사건의 재경험, 과각성, 회피 행동 등) 역시 진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인간의 행동이 유전이나 생물학적 소인에 의해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이중 상속이론(dual inheritance theory; DIT)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은 유전적 진화(genetic evolution)와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의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이며 유전적 소인 역시 문화적 소인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McElreath & Henrich, 2007; Richerson & Boyd, 2005) 특히 현대에는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속도를 압도하고 새로운 인위적 위협들이 등장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3만명 이상이 총기에 의해 목숨을 잃고(경향신문, 2012) 한국에서는 매년 10만명당 14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데(자동차 신문, 2012) 교통사고나 총기에 의한 위협은 신생대나 구석기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선조들이 마주쳐야 했던 자연환경에 의한 위협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소하였을 뿐이며 일부는 문화적 환경에 의해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위협의 유형이 달라졌다고 해도 이에 대응하는 마음의 기제는 바뀌지 않았다(Wilson, 1978).

따라서 트라우마를 이해하고자한다면 선조들이 당면했던 진화의 위협들 및 이에 관련된 마음의 구조와 기전을 종단적으로 포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진화 과정에서 출현한 심리적 기제(evolutionary psychological mechanism; Tooby & Cosmides, 2000)라면 현재 마음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의 역사를 종단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심리치료에서 한사람의 증상과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현재의 마음과 환경적 요인들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성장 과정과 발달사를 종단적으로 해석하듯이 말이다. 외상에 대한 반응과 증상 역시 그러할 것이다.

진화과정에서 생식을 하는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숙제는 첫 번째 생존(survival)하고 두 번째는 번식(reproduction)하는 것, 즉 살아남고 짝짓기(mating)를 통해 자신의 유전형질을 후세에 남기는 것이었다
(Darwin, 1971; Singer, 1981; Symons, 1992).

인간의 조상들은 굶주림, 포식자, 적대적인 자연, 짝짓기 경쟁자 등 무수한 위협들에 직면하였고 오늘날의 인류는 이 과정에서 살아남고 짝짓기에 성공하여 번성한 존재의 후손이다. 오늘날의 인류가 변성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이러한 잠재적, 실제적 위협을 빠르게 감지하고 즉각적인 자기 보호 반응을 발달, 내장시켜 왔기 때문일 것이다. 트라우마를 이해, 분류하며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 및 대응기제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선조들이 당면했던 진화과정의 위협들 및 이에 관련된 마음의 기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트라우마 분류체계의 문제점


그러나 현재의 트라우마 분류 체계는 진화과정의 역사를 포괄하지 못하고 근접적 이해 및 횡단적 이해에 그치고 있다.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4th edition, 이하 DSM-IV;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94)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기준에서는 트라우마를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질병, 혹은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적(물리적) 통합에 위협이 되는 사건들을 경험하였거나 직면, 목격한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DSM-5(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에서는 실제적, 위협적인 죽음이나 심각한 질병, 성적 폭력 등에 노출되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외상 사건에의 노출은 외상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였거나 목격한 적이 있으며 친밀한 가족성원이나 동료에게 일어난 외상적 사건을 알게 되었고 외상적 사건의 혐오적인 세부사항에 직접 극단적이거나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 등 4가지 중 1가지 이상의 시나리오에 해당되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진단 기준을 살펴보면 그 종류나 내용에 상관없이 트라우마를 사건 중심으로 일반화되거나 사건을 경험하는 경로 위주로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DSM-IV(APA, 1994)는 트라우마를 신체적 통합이나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의 사건으로, ‘결과’ 측면에서 정의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사건의 종류나 내용은 제시하고 있지 않다.
DSM-5(APA, 2013) 역시 성 폭력을 제외하고 사건의 내용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기존의 외상후 스트레스 및 트라우마 척도들 역시 DSM(APA, 1994, 2013) 체계에 기초하여 트라우마 사건의 내용을 분류, 포괄하고 있으며 근접적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대표적 척도들을 몇 가지 살펴보면 Foa, Cashman, Jaycox와 Perry(1997)의 외상후 스트레스 척도(Post-traumatic Stress Diagnostic Scale; PDS)는 트라우마를 인위적 재해, 자연 재해, 폭행, 성폭행, 전투와 전쟁, 감금, 고문, 질병, 아동기의 원하지 않는 성적접촉 등으로 나열하고 있다. 또한 가장 괴로움을 주는 사건, 경과 시간, 외상적 사건과 연관된 상해나 생명의 위협, 무력감과 공포심의 유무 등을 분류 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Kubany 등(2000)의 외상사건 질문지(Traumatic Life Events Questionnaire; TLEQ)에서는 자연 재해, 교통사고 및 기타 사고(폭발, 화재, 독성물질이나 방사선 물질에 노출, 비행기 사고, 물에 빠질 뻔 함 등), 전투나 전쟁, 친밀한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 경험, 강탈, 학대, 스토킹 등으로 분류하고 그 빈도 및 주관적 경험(두려움과 무력감 및 공포심의 경험, 죽음이나 신체적 상해 및 부상 유무 등)을 기록하게 하고 있다.

Weathers 등(2013)의 삶의 사건 척도(Life Events Checklist; LEC) 역시 트라우마를 자연 재해, 화재나 폭발, 운송 사고, 신체적 공격, 성적 공격, 포로가 됨, 갑작스런 죽음 경험, 질병이나 부상, 독성 물질에의 노출, 심각한 고통 등 16개 사건으로 분류하고 그 경험과 목격 유무 등을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Kubany 등(2000)이 분류한 기타 사고에는 인위적 재해와 자연 재해가 구분되지 않은 채 혼재되어 있고 심각한 고통이라는 정의 역시 불명확하고 모호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외상 척도의 분류는 뚜렷한 이론적 근거 없이 경험적으로 빈번한 사건 위주로 외상을 나열하면서 현대인들이 자주 겪는 트라우마를 측정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와 달리 Kira, Templin, Lewandowski, Ashby, Oladele와 Odenat(2012)는 좀 더 이론적 근거에서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분류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Kira 등(2012)은 발달적 관점에서 앞에서 논의한 외상 사건 외에도 아동기에 부모에 의해 버림받음, 이혼, 위탁 경험, 양육자가 자주 바뀜 등을 추가하였고 사건의 발생 연령과 빈도 및 사건이 미친 주관적 경험 등을 기록하게 하고 있다.

Kira 등(2012)의 분류체계는 발달 이론을 채택함으로써 사건의 충격 외에 애착 관계에서 일어나는 관계 외상을
잘 포착해 낼 수 있고 발달이론에 근거한 ‘시간’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상의 외상후 스트레스 척도들은 DSM(APA, 1994, 2013) 체계에만 의지하거나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외상들을 중심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인류가 오랜 진화적 시간 속에서 경험해 온 외상 사건들이 포괄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Kira 등(2012)의 척도를 제외하고는 신체적 통합의 위협에 과도한 초점을 두고 심리적 위협을 간과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재 인류에게는 자연 환경에 의한 위협이나 포식자 등 다른 종에 의한 위협이 감소하였고 건물 붕괴, 공작 기계, 자동차 등 인위적, 문화적 환경에 의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조들이 당면했던 자연적 위협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소하였을 뿐이다. 지진, 화산 폭발, 태풍, 산사태와 같은 적대적 자연 환경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며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자연 환경이나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고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위협적인 자연 현상을 무수히 경험하면서 인류는 자연적 위협에 대한 반응과 준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이 출현한 인위적 위협들에 대해서는 아직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을 수 있다. 예컨대 어린 아이들은 사자와 호랑이, 악어 같은 포식자에는 금세 두려움을 보이지만 자신보다 덩치가 몇 배 큰 자동차나 로봇에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사고를 경험한 후에나 비로소 과각성, 과경계, 마비 및 회피 등의 증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진화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출현한 자동차나 로봇, 기계 등이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는 위협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과 위협이 연합된 역사가 짧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구석기 시대 이후로 별로 진화하지 않았다(Singer,1981; Wilson, 1978). 현생 인류가 출현한 20만년~7만년전 이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에 대응하는 마음의 기전(두려움과 같은 선천적 정서, 과각성과 같은 생리적 반응, 사건의 반복적 재생 등)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의 인류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1만년전의 인류와 유사한 본성과 능력에 의거해 현재의 자연적, 인위적 환경(자연과 문명)과 위협에 적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분류하고자 한다면 근접적 시간 뿐 아니라 진화적 시간 속에서 인류의 선조들이 어떤 위협에 직면하여 왔고 어떤 위협들에 취약한지, 위협에 대해 어떤 반응 및 대처양식들을 발전시켜왔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트라우마의 이해와 분류


트라우마의 진화적 근거


본 논문에서는 진화심리학적 관점과 자료에 의거하여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해하고 분류할 것인지 개념적 분류 작업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진화적 시간대 별로 인류의 조상인 호모 종과 포유류 조상이 진화적 적응환경에서 마주쳤던 선택압을 이해하고 이에 수반된 외상적 사건들을 이해, 분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들이 처했던 고대 환경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환경 및 위협에 대한 인류의 공통 반응, 인류와 유전자를 공유한 유인원 및 포유류의 적응 환경과 위협에 대한 반응 등을 함께 고려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 연구의 논의는 고고학과 인류학, 진화생물학과 뇌과학 등의 선행 연구 결과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트라우마는 인간을 포함해 유기체의 ‘생존’ 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건이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유기체들은 특정한 자기 보호 기제를 발달시킴으로써 위협에 대응하여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다.

인간은 위협에 대응하여 어떤 자기 보호 기제를 발달시켰을까?

그 중 하나는 정서적 반응을, 다른 하나는 대응 기제 혹은 방어 매커니즘의 작동을 들수 있다.


첫째, 정서적 반응에서 반응(response) 외적, 내적 자극에 대한 유기체의 자동적 행동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반응은 ‘자연적, 불수의적’으로 출현하며 여러 생리적, 정서적, 행동적 수준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Pavlov(1927, 1960)의 고전적 조건화 실험에서 음식을 본 개는 소화액이 분비되고, 먹고 싶다는 욕구나 반가움을 느끼며, 침을 흘리고 음식에 다가가는 접근 행동을 보인다. 어류도 먹이와 짝짓기 대상이 보이면 접근하지만 포식자가 보이면 도망가는 기본적 반응 체계를 발전시켰다. 인간은 낯선 침입자가 다가오면 심장이 뛰고 근육이 수축되며 놀라고 물러서는 회피 행동을 보인다. 이러한 반응들은 역치하 수준에서 빠른 순간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며 의식적으로 자각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기체는 자극에 대한 자동적, 비의식적 반응 체계를 발전시켰고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자극에 대한 반응 체계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런 반응체계 중에서도 Tooby와 Cosmides(2000)는 정서가 정신적 프로그램을 통제하는 상위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위협 상황에서는 안전이 가장 우선이 되며 이에 따라 두려움(fear)이라는 일차적 정서가 유발된다. 두려움은 위협이라는 자극에 대한 자동적 반응이다. 유발된 두려움은 위협적인 신호 탐지에 필요한 역치 수준을 낮추고 지각과 주의, 학습 및 기억 과정 등의 인지 과정과 신체 반응 및 행동 과정을 변화시킨다.

생리적 수준에서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에너지가 재배치되고 생체 내의 심장 박동과 혈액 공급이 증가된다. 인지적 수준에서는 위협 자극을 보다 잘 탐지하고 기억하기 위한 학습과 기억메커니즘이 활성화된다.

또한 정서는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적 반응 체계를 유발한다. 예컨대 두려움이 유발되면 공격자가 나보다 강하면 도망가거나 항복하고 나보다 약하면 싸워라 등의 행동적 반응 규칙(response rules; (Wenegrat, 1984) 혹은 심리생리적 반응 패턴(psychobiological response pattern; Gilbert, 1993)이 활성화된다.


특히 두려움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위협을 지각함으로써 발생하는 선천적이고 일차적인(innate, primary) 정서이다(Ekman & Friesen,1975; Izard, 1977; Plutchik, 1962; Tomkins,1963). 두려움이라는 정서는 학습된 정서가 아니며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위협들을 경험하면서 유전자 속에 내장, 전달된 정서이다. 어린 동물들은 배우지 않아도 포식자의 위협에 직면하여 두려움을 나타내며, 유아는 낯선 사람을 보면 울음을 터트린다.

인간과 영장류 동물들은 두려울 때 나타나는 안면 표정이 유사하다(Ekman, 1992). Ekman(1992)은 두려움이
다른 정서와 구분되며 기본적인 삶의 과제(life-task)를 다루기 위해 진화하였다는 의미에서 ‘기본적(basic) 정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두려움의 기본적 과제는 위협을 지각하고 대응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학습은 약탈자 탐지체계를 작동시키는데 최소한의 역할을 할뿐이다(Ohman, 1986).

요약하면 두려움은 진화과정에서 위협에 대한 선천적, 자동적 반응으로 생겨났고 일단 두려움이 일어나면 생존에 적합한 방향으로 인간의 지각, 인지, 행동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변화된다.

두려움에는 자기보호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고 생존을 증가시키는 적응적 가치가 있다.

외상은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며 두려움은(적어도 정서를 담당하는 변연계가 발달한 포유류 이상의 유기체에서는 모두 경험하는) 외상후 스트레스의 핵심적이고 공통된 반응이다(Cantor,2009).


반면에 대응체계(coping mechanism)는 반응과 다르다. 반응이 자동적, 연쇄적으로 인지적, 생리적, 행동적 수준에서의 대응 체계를 활성화시킨다면 대응(대처)은 스트레스나 외부 사건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를 의미한다(Lazarus & Folkman, 1984; Zeidner & Endler, 1996).

이러한 대응 기제는 반응과 달리 의식적 수준에서 작동할 수도 있으며 의식 이하에서 작동할 수도 있다. 의식적 수준에서는 상황을 이해하고 사건의 정체를 규명하며 가장 합당한 전략을 선택하여 행동에 옮기게 된다. 여기에는 인지적 숙고가 수반되고 문제 중심적, 정서 중심적, 평가 중심적 전략등이 동원될 수 있으며 행동이 느리게 나타나게 된다(Lazarus & Folkman, 1988; Taylor, 2006;Weiten, Lloyd, Dunn, & Hammer, 2009).

그러나 대처 기제가 역치 이하 수준에서 작동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격신호나 포식자가 탐지되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고 위협 자극에 민감해지며 도망가거나 싸우고 항복하게 하는 등의 반응 규칙(Gilbert, 1993; Wenegrat,1984)이 일어나며 이는 생리적, 정서적 반응에 이어 출현하는 의식 이하의 대응 기제에 속한다.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종 특유의 고유한 방어 기제를 공유하고 있다.


Bolles(1970)는 동물에 고유한 종 특유의 방어반응(species-specific defence reactions; SSDR)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투쟁과 도피 반응(fight-flight) 외에 위협 앞에서 잠시 얼어붙거나 죽은 척하게 되는 동결 반응(freezing)을 포함하였으며 이러한 대응 방식들은 인간에게도 나타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 기준에는 재경험(re-experiencing)과 과각성(over-arousal), 마비(numbing), 회피 반응(avoidance) 등이 포함되는데 위협 자극에 부딪혀 얼어붙거나 회피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은 적절한 강도와 방식으로 출현한다면 생존가를 높이는 자동적 대응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인류의 조상들이 위협 자극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런 신체적, 정신적 반응과 대처기제를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생존 가능성은 극히 낮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트라우마를 판단하고자 할 때 특정 사건이 얼마나 유기체의 생존과 안전에 위협적인가 하는 객관적 측면에서의 이해도 필요하지만 두려움이라는 핵심 정서 및 역치 이하의 자동적 대응체계가 어떻게 얼마나(어떤 강도로,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맥락에서) 작동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 때 성별이나 연령, 발달과정에 따른 취약성 등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컨대 어린이는 어른보다, 여성은 남성보다 위협에 민감하고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며 자기보호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나 여성에게 높은 두려움과 자동적 대응 체계는 남성보다 적응적 가치가 높았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Cantor(2009)는 두려움이 선천적 정서이고 외상후 스트레스의 핵심 정서임을 지적하면서 외상후 반응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반드시 해롭고 불필요한 장애가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발전된 적응의 산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류의 뇌에는 포유류가 위협에 당면하여 발전시킨 두려움 반응 및 이에 수반되는 대응과 방어의 역사들이 함께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처 반응은 계통발생과정에서 내장된 진화적 선택의 결과이며 인지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고 비연합적인(innate & nonassociative) 것들이다.

또한 ‘싸움 아니면 도피(fight or flight)’라는 대응 기제(Canon, 1932) 역시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며(Cantor, 2009) 인류의 조상은 위협에 대응하여 투쟁과 도피 외에도 다양한 대처기제를 발전시켰다. 예컨대 Marks(1987)는 위협에 대한 대응 기제에 철수(withdrawal)와 공격적대응(aggressive defence) 외에 부동성(immobility)과 유화(appeasement)의 네 가지 방어기제를 포함하였다.

Cantor(2009)는 이를 확장하여 철수(도망; withdrawal), 공격적 대응(aggressive defense), 회피(avoidance), 그리고 유화(appeasement), 주의 부동(attentive immobility; it freezes in order to better assess what to do about the situation), 긴장성 부동(tonic immobility; freezing in an attempt to confuse the predator) 등의 여섯 가지 대응기제로 재개념화하였다.

이러한 반응들의 대다수는 먼 옛날 생존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포식자(predator)에 대응하여 발전된 것으로 영장류 뿐 아니라 포유류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오늘날 인질로 사로잡힌 사람들이나 가정 학대의 희생자들이 흔히 나타내는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스톡홀름 신드롬에서는 ‘외상적 덫(traumatic entrapment)’에 사로잡혀 도망이나 싸움 반응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정 학대 피해자나 인질로 사로잡힌 경우 아직 긴장성 부동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고 유화책이 최선의 선택이 되는 상황을 뜻할 수도 있다.

유화책은 피해자에 대한 인지적 부조화를 불러일으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자는 가해자에게 타당한 이유가 있거나 좋은 사람이거나 자신이 그의 편이라고, 적어도 가해자에게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믿게 된(Cantor & Price, 2007).

인류는 공격과 도피행동 외에 유화, 부동 등의 다양한 방어적 능력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인류의 먼 조상인 포유류와 공유하고 있는 대응 기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DSM-IV와 DSM-5(APA, 1994,2013)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기준은 과도하게 단순화되어 있을 수 있다.

트라우마는 사건의 위협 정도 외에 인류의 진화 역사 속에서 두려움과 자동적 대응 기제를 유발해 온 사건들이라는 관점에서 조망될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트라우마의 분류


오늘날 위협의 대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이에 대한 반응이나 대응 방식은 변화하지 않았다. Cantor(2009)는 PTSD가 두려움 기억 회로(fear-memory circuitry)의 장애(Sullivan & Gorman,2002)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두려움 정서 및 여섯가지 방어를 중심으로 PTSD를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과연 어떤 사건들이 트라우마에 포함되어야 할까?

Bracha(2006) 역시 DSM 체계가 병인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신경진화적 관점과 신경학적 증거에 기반하여 외상후 반응과 공포 장애 등을 스트레스와 두려움 회로의 장애(stress and fear circuity disorder)로 개념화하고 이와 관련된 정신 장애들을 포유류에게 공통된 중생대-유인원에게 공통된 신생대- 호모 사피엔스에게 고유한 구석기 시대-유전과 문화의 공진화(co-evolution)가 일어난 신석기 시대 등에 따라 분류하였다. 이러한 진화적 시간대를 살펴보면 5억 7천만년에서 2억 2천 5백만년전으로 추정되는 고생대에는 삼엽충, 원시어류, 무척추 동물들이 번성하였고 후반기에는 최초의 육지동물(양서류)과 곤충이 출현하였다. 2억 2천 5백만년전에서 6천 5백만년전으로 추정되는 중생대에는 파충류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공룡이 번성하였다가 멸종하였으며 최초의 포유류 조상, 설치류가 출현하였다. 6천 5백만년에서 1만년전 시기의 신생대에는 포유류가 번성하였고 600만년전 아프리카 유인원으로부터 인류가 분화되었다.

260만년전에서 1만 2천년전의 구석기 시대에는 석기를 이용할 줄 아는 원시 조상이 출현하였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하빌리스-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를 거쳐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크로마뇽인)로 진화하였다.
오늘날의 인류는 호모 속(homo)에서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어 경쟁 끝에 살아남은 종의 후손이다. 이 시기에 인류의 조상은 군락을 이루어 이동생활을 하였으며 채집과 수렵이 주된 활동을 이루었다. 1만 5천년전에서 1만 2천년 전의 신석기 시대에는 간석기와 토기를 이용, 작물과 가축을 기르고 식량을 대량 생산, 저장하면서 수렵 채집에서 생산 경제로 전환되었다. 또한 정주생활이 정착되었고 문명의 진화가 일어났다(Dawkins, 2004; Maynard, &Szathmáry, 1997; Ruse & Travis, 2009).

본 연구에서는 Bracha(2006)의 구분을 참고하여 포유류의 조상이 출현하기 시작한 중생대부터 신생대-구석기-신석기 시대 별로 진화시기를 구분하고 이 시기에 새로이 출현한 위협을 중심으로 트라우마를 분류하고자 한다. 또한 호모종과 포유류 조상이 진화적 적응환경에서 마주쳤던 주요 위협들(선택압)을 기반으로 하여 트라우마를 이해, 분류하고자 한다.


이러한 위협에는 첫째, 적대적 자연에 의한 위협이 존재한다. Arvalez, Alvarez, Asaro 와 Michel(1980)은 중생대의 지배자였던 공룡이 운석 충돌로 인한 대기와 기후 변화로 인해 멸종하였다고 추정하였다.

이렇게 화산 폭발, 태풍, 홍수와 같은 적대적 자연은 모든 생명체에게 위협적이었다. 인류는 문명을 이루고
도시를 건설하여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였지만 적대적 자연 환경의 위협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두 번째로 종간 경쟁(interspecies competition)에 의한 위협이 존재할 것이다. 모든 종들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였다. 호모 사피엔스(크로마뇽인) 역시 네안데르탈인과 경쟁하여 살아남았다는 진화적 논의들이 있다(Ronald,2005). 종들은 서로 먹이사슬 관계에 존재한다.
중생대에 포유류의 원시 조상은 공룡과 파충류에게 포식자(습격자, 약탈자)였고 공룡의 멸종 이후 초식성 포유류는 육식성 포유류의 먹이 사슬 아래 존재하였다. 인류 역시 이러한 먹이사슬 안에 존재하며 인류는 종간 경쟁에서 승리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다.


세 번째로 종내 경쟁(intraspecies competition)에 의한 위협이 존재한다(Connell, 1983). 한 종내에서 개체는 적합도(fitness)를 증진시키기 위해 영역, 음식, 짝짓기 대상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한다. 이러한 종내 경쟁은 집단간 경쟁(intergroup competition)과 집단내 경쟁(intragroup competition)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석기 시대에 인류의 조상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무리(부족)을 이루어 생활하면서 다른 무리와 영역, 음식 및 배우자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였다(Braha, 2006; Keeley, 1996). Darwin(1871)은 ‘부족 안에는 애국심과 용기, 겸손함 및 연민으로 무장한, 서로를 돕고자 하는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공동의 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구성원들이 많은 부족은 다른 부족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자연선택이다’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인종, 종교 공동체, 국가 간의 갈등이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집단 간의 경쟁은 테러와 전쟁을 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다. 사람들은 소수의 집단으로 분화되는 경향이 있고 학교와 회사, 친구 그룹 등 소규모의 집단 사이에도 갈등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경향성은 계통 발생적으로 고대 조상의 집단간경쟁에서부터 진화한 것일 수 있다. 또한 집단은 안전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음식과 거주지, 지위를 얻고 배우자를 획득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근원이었다. 그러나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 안에서 각 개체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기 마련이며 오늘날 이러한 개체간의 경쟁은 진화의 가장 큰 원동력(Buss, 1983; Darwin, 1859)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체간의 경쟁은 특히 재생산에 중요하다.

성 선택(sexual selection; Darwin, 1871)에 의하면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수컷들은 다른 수컷들과 서열 경쟁을 벌인다. 인류 역시 집단 내에서 여성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지위와 자원을 놓고 다른 남성들과 경쟁을 벌여왔다(Buss, 2007; Buss & Shimmit, 1993).


네 번째로 발달 외상을 들 수 있다. 양육자, 가족 및 동료를 포함하여 집단에의 소속감과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Baumeister & Leary, 1995; Bowlby, 1969; Maslow, 1968).

Erikson(1950)은 개체 발생적인 발달 과정에서 기본적 신뢰와 안전감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는데 기본적 신뢰와 안전감은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를 통해 형성되며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없이는 정상적인 신체적, 심리적 발달을 이루지 못한다(Bowlby, 1969). 유아동기의 양육자의 상실, 방임과 학대 등은 애착 체계를 와해시켜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Briere, 1996).

여러 국내외 연구에서 유아동기의 양육자의 상실, 방임과 학대가 낮은 자존감, 충동성, 물질 사용 장애, 기분 장애, 성격 장애 등의 정신 병리를 유발한다는 것(이우경, 최은실, 2013; Baer & Martinez,2006)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유사하게 소속 집단에서 따돌림, 거부, 고립, 배척 등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경험하며(Mikkelsen & Einarsen, 2002) 정서적 안녕감과 우울감 및 자살 사고를 유발한다(이흥표, 2014; 이흥표, 이상규, 2012).

그러나 여기에는 계통 발생적 근원이 존재할 것이다. 포유류는 태생을 하고, 새끼에게 젖을 먹여 기르며, 어미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양육자의 보호 아래 발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였으며 이런 출산 및 양육 방식은 개체의 생존율을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인류를 포함해 유인원과 포유류의 경우, 양육자의 보호와 애착 관계가 없으면 정상적 발달은 물론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죽음에 처할 위험이 높다. 따라서 발달 과정에서 애착형성을 위협하는 반복적인 방임과 학대, 상실,거절 등은 생존과 번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그 부정적 영향은 양육자의 통제 하에 놓일 수 밖에 없고 자기 보호 능력이 취약한 유아동기에 더욱 더 심각하다(Herman, 1992; Kira et al., 2012).

Freud(1917)는 상실이 우울의 근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양육자의 상실은 슬픔 뿐 아니라 더 깊은 차원에서의 분리 불안, 죽음과 자기 소멸의 불안, 붕괴와 박해의 불안 등을 유발한다(Kline, 1946).

두려움과 슬픔의 경계선은 모호하며 서로 뒤섞이며(Cantor, 2005) 두려움은 슬픔보다 더 깊고 원초적인 감정일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인위적 환경에 의한 위협들이 존재한다. 신석기 시대 이후 문명이 진보하고 기술과 도구가 개발되면서 자동차나 선박, 비행기 등에 의한 사고, 교각과 건물의 붕괴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위협들이 등장하였다. 진화적 시간에서 볼 때 인류는 이러한 위협에 계통 발생적으로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인위적 위협은 오늘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상의 여섯가지 위협 요인을 중심으로 중생대-신생대-구석기- 신석기 시대 별로 현생 인류 및 인류의 조상이 적응해야 했던 선택압 및 이에 연관된 트라우마에 관해 논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생존과 안전의 욕구, 애착과 관계의 욕구, 힘에 대한 욕구 등(Baumeister, &Leary, 1995; Bowlby, 1969; de Wall, 1990;Hallow, 1964; Maslow, 1968)이 존재하는데 특정한 외상이 이런 기본적 욕구 중의 무엇을 위협하고 손상시키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중생대의 위협과 트라우마


적대적 자연환경에 의한 위협


포유류 조상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가 마주쳤던 가장 오래된 위협에는 적대적 자연 환경에 의한 위협이 존재한다. 자연환경의 변화는 중생대 이전부터 존재해 온, 모든 생명체에게 공통된 위협이었다. 학자들은 중생대 말기에 일어난 소행성 충돌후 발생한 지진, 해일, 파편, 열폭풍, 유독가스, 추위와 어둠 등으로 인해 공룡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75%가 멸종하였을 것(Alvarez, Alvarez, Asaro, & Michel,1980; Benton, 2005)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소규모로 발생하는 지진이나 산사태, 홍수, 산불 등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 환경의 변화 역시 위협적이었을 것이며 각각의 종들은 적대적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전략을 발전시켰다. 예컨대 작은 파충류와 포유류는 땅 속에 굴을 파 생활하거나 동면을 한다. 또는 몸집을 작게 하고 신진대사를 느리게 함으로서 적게 먹고도 생존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Benton, 2005). 인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인류를 포함해 동물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무리를 짓는 것은 포유류, 특히 영장류의 특성 중 하나이며 따라서 무리에 속한 사람이 적대적 자연의 위협을 동시에 함께 겪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므로, 이를 집단적 자연재해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에서 낙오되거나 실수 및 착오 등으로 인해 무리의 보호 없이 혼자 경험하게 된 개인적 자연 재해도 존재했을 것이다. 예컨대 개인적 트라우마 중에 고소 공포, 즉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포유류에게 보편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며 중생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Braha, 2006; Poulton et al.,1998).

이러한 개인적 재해의 경우는 무리의 보호나 안내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집단적 위협보다 트라우마의 강도가 더욱 클 것이다.
또한 모든 생명체의 기본적 명제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환경을 찾아 자고 생존하는 것이다.
동물들에게는 안전하고 먹을 것이 많은 곳을 찾아 이동하거나 자신의 영역과 거주지를 고수하는 습성이 있다. 추위와 배고픔, 보호 공간의 결핍 등 안전한 환경의 결핍 역시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인이다.


종간 경쟁: 파충류 포식자 및 맹독성 동물에 의한 위협


모든 생명체, 특히 작고 약한 초식성 동물들은 포식자에 의한 위협에 시달린다. 중생대의 지배자였던 공룡과 포식성 파충류는 작은 설치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다. 중생대 중후반에 존재했었을 것으로 보이는 단공류(알을 낳지만 젓을 먹여 기름)나 잘람달레스테스, 메가조스토로돈 등은 오늘날의 쥐를 닮은 소형 포유류로 지렁이나 곤충을 잡아먹고 살았다(Wikipedia, 2013). 이들 원시 포유류는 파충류보다 몸집이 크거나 근력이 뛰어나지도 못했으며 이빨이나 발톱 같은 강력한 무기도, 위장 전략도 없었으며 따라서 포식자의 사냥감이 되기 쉬웠을 것이다.


또 다른 위협으로는 맹독성 파충류와 양서류, 거미(거미강 절지동물) 등에 의한 위협이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은 인체에 치명적인 위협을 끼칠 수 있는, 독이 있는 뱀이나 거미등의 맹독성 양서류와 파충류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성인의 1/3에게 뱀 공포증이 있으며 뱀이나 거미를 보기만 해도(이전에 보거나 물린 적이 없는 경우에도) 두려움을 경험하는데 이러한 두려움은 파충류가 지배하던 중생대에 생성된 것이다(Isbell, 2009).
Braha(2006)는 오소리 같은 포유류가 뱀을 사냥하도록 진화하였고(오소리는 두터운 가죽과 독에 대한 면역력을 진화시켰다) 포유류에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뱀 공포증의 기원을 신생대에 포함하였다. 그러나 포유류가 뱀을 사냥하도록 진화한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다수의 설치류는 뱀의 먹이이다.

이렇게 영장류 원숭이와 인간을 포함해 대부분의 포유류가 여전히 뱀 공포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 기원은 중생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육자의 상실과 고립


양육자와의 상실이나 고립은 사소하고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포유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트라우마에 속할 것이다. 단공류를 포함해 원시 포유류가 진화적으로 파충류와 구분되는 가장 고유한 특징은 태생을 하고 새끼에게 젖을 먹여 기르며 어미와 깊은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는 데 있다.

Bowlby(1969)는 애착 체계가 없으면 신체적, 정서적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 한다고 하였다. 포유류에게 애착 체계는 생존의 근원이다. 유대류는 출산 후에도 육아낭에서 새끼를 키우며 영장류는 젖을 먹일 수 있는 어미의 가슴과 가장 가깝고 안전한 공간인 배에 새끼를 키운다. 포유류의 새끼는 파충류와 달리 저항 능력이 없는 매우 약한 상태로 태어나며 양육자의 상실이나 양육자로부터의 헤어짐, 분리는 곧바로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위험에 처하기 쉽다.
MacLean(1985)은 양육자와의 분리 불안이 유대류를 포함하여 태반 동물들에게 공통된 것이며 파충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발달적 외상의 기원은 적어도 포유류의 조상 및 애착 체계가 출현하기 시작한 1억만년전 중생대로 소급될 수 있을 것이다(표 1 참조).


표 1. 진화적 관점에 의거한 중생대의 위협과 트라우마



신생대의 위협과 트라우마


종간 경쟁: 포유류 포식자


신생대에 초식성 포유류가 다양해지자 이를 먹이로 하며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근력과 큰 몸집을 갖춘 포스파테리움, 우안테테리움등의 몸집이 큰 육식성 포유류가 등장하였다.
육식성 포식자가 아니더라도 거대한 무게와 근력, 뿔 등의 무기를 갖춘 거대 포유류는 몸집이 작은 포유류에게 위협적인 대상이었다(Braha, 2006; Cantor, 2005). 오늘날의 하마나 코뿔소는 초식성 포유류이지만 무게가 크고 근력이 강하며 물리거나 뿔에 받히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된다.

침팬지는 인간보다 키와 몸무게가 작지만 그 힘은 성인 남성의 네배가 넘는다(de Wall, 1982).

진화적 무기 경쟁에서 소형 포유류는 포식이나 약탈의 위협에 당면하여 공간 회피, 행동 싸이클의 시간 변화, 활동 줄이기, 위장 등의 적응적인 대응 전략을 발전시켜왔다(Havel, 1987). 그만큼 식육성 포유류와 거대 포유류는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종내 경쟁: 집단간 경쟁에 의한 위협


신생대에 등장한 원원류와 진원류(영장류)는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작은 무리를 지어 살았고 다른 집단과 끊임없이 경쟁하였다. 침팬지와 보노보 같은 유인원은 50~200마리로 구성된 소집단을 이루어 생활한다(Barchas, 1986;Dunbar, 1993). 소규모의 집단은 영장류와 유인원에게 가장 중요한 적응 단위였다.

소집단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원을 지키고, 자신과 자녀, 가족을 보호하며, 음식과 자원을 공유하고, 짝을 제공하며, 자손을 양육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를 위해 한 무리에 속한 개체들은 서로 협력하였다. 다른 집단은 경쟁 상대였고 집단 간의 경쟁에서 패배한 집단은 도태되었다.

Mitani, Watts, Sylvia 및 Amsler(2010)는 아프리카 곰베 국립공원에서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침팬지들을 연구하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집단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고 수컷이 불균형적으로 많아지자 침팬지들이 이웃 집단을 공격하여 18마리를 살해하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다.

탄자니아 곰베국립공원에서 47년간 침팬지의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질병을 제외하고 가장 큰 원인은 집단간, 집단내 싸움을 포함한 동종간의 경쟁으로 그 비율이 전체 사망률의 20%를 차지하였다(Williams, Lonsdorf, Wilson, Schumacher-Stankey, Goodall, & Pusey, 2008).

침팬지 집단 간의 전쟁은 수컷들이 힘을 합해 상대를 공격하는 등 집단 내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주로 자신이 속한 무리에게 더 많은 영역과 자원(음식과 암컷)을 차지하고 재분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단 간의 경쟁은 오늘날의 인간에게도 지속되고 있어 현대에도 인종, 종교, 국가 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은 민주당과 공화당, 보수와 진보, 이슬람과 기독교 등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기를 좋아하며 집단내의 갈등을 외집단으로 돌림으로서 집단내의 협력을 강화한다(Brewers, 1999; Tajfel,Billig, Bundy, & Flament; 1971). 인간의 습성이나 사고방식에도 두 편씩 나누어 시합을 벌이고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거나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으며(Beck, 1972) 그 뿌리는 인류의 포유류 조상이 집단을 이루어 경쟁하기 시작한데 있다고 할 것이다. 집단 간의 경쟁에서 기인하는 싸움(전투와 전쟁),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약탈, 죽음의 위협, 인질이 되는 것, 학대, 강간, 성 폭력 등은 영장류에게 생존과 번식을 위협하는 치명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영장류 원숭이나 유인원들은 다른 집단을 공격하여 새끼들을 살해한다(Hausfater, 1984).
Braha(2006)는 사회 불안이 친족이 아닌 동료나 남성에 대한 불안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원이 구석기 시대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영아들의 경우 남아나 여아 모두 여성보다는 낯선 남성에 대한 불안을 더 많이 보인다(Greenberg, Hillman, & Grice, 1973). 또한 영장류를 포함해 포유류의 대다수가 영아 살해 행동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 기원은 신생대에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모르는 사람, 특히 남성에 의해 벌어지는 죽음의 위협, 상해, 신체적/언어적 폭력, 부상, 납치와 감금, 학대, 강간, 성 폭력 등은 집단 간의 경쟁에서 기인하는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충격은 자기보호 능력이 부족한 유아동의 경우에 더욱 클 것이다.


종내 경쟁: 집단내 경쟁에 의한 위협


영장류와 유인원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지만 그와 동시에 집단 내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수컷들은 항상 서열, 음식과 암컷을 둘러싸고 서로 경쟁을 벌인다. 서열이 높을수록 암컷을 먼저 차지하고 음식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침팬지들은 서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과시행동을 벌이고 이 때 강한 힘과 체력을 지녀야 하지만 도구를 사용하고 지략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제 삼자와 연합하여 우두머리를 몰아내기도 한다(de Wall, 1982).
침팬지들의 서열 경쟁과 정자 경쟁(sperm competition; Parker, 1970)은 암컷들의 가임기에 특히 격화된다(de Wall, 1982; Harcourt, 1997). 그러나 새끼를 키우는 암컷 침팬지들 사이에도 분명한 서열과 경쟁이 존재한다(de Wall,1982). 인류 역시 무리 안에서 다른 개체와 경쟁한다. 인간은 높은 지위와 권력,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며 이를 위해 제 삼자와 지속적이거나 일시적인 연합군을 형성한다.
권력과 부, 지위, 미모 등은 높은 지위와 우월함의 표시이고 이는 생존과 짝짓기의 기회가 높아지는 것이 된다(Betzig, 1986; Buss, 2007,1993). 오늘날에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서열이나 힘이 약한 약자를 신체적, 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일들은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긴꼬리 원숭이의 경우 이전의 우두머리 수컷을 몰아내고 새로운 우두머리가 생기면 새끼들을 살해해 버린다. 이런 행동은 사자에게서도 나타나는데(Hrdy, 1997; Pusey & Packer,1994) 수컷으로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은 새끼를 키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포유류 수컷들은 자기 새끼가 아닌 어린새끼들과 관계를 맺고 돌보는 법을 진화시키지 못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자기보호 능력이 취약한 암컷, 특히 새끼의 경우에는 집단 내의 권력자 및 남성에 의한 학대와 신체적/언어적/성적 폭력이나 죽음에 매우 취약하다. 곰베 국립공원에서 침팬지의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집단간, 집단내 싸움의 가장 큰 희생자는 어린 새끼들이었다(Williams et al.,2008). 또한 자녀를 잃은 암컷은 새로운 수컷과 짝을 짓고 새끼를 다시 임신해야 하는데 암컷에게 새끼의 상실은 큰 충격일 수 있다.
애착 상실의 외상은 새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암컷이 새끼와 깊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만큼 자녀의 상실은 두려움과 슬픔의 근원일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한 무리에서 지위가 높거나 힘 센 성인 남성은 여성이나 유아동에게 잠재적인 위협의 근원이며 자녀와 깊은 애착관계를 형성한 여성들에게 자녀의 상실은 큰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발달 외상


영장류와 유인원에게 양육자의 상실이나 죽음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죽음에 처할 운명을 뜻하지만 양육자가 존재해도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외상이 누적될 수 있다(Bowlby, 1969).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에서 4명의 침팬지 새끼들이 죽었는데 이는 암컷의 질병과 부상 외에도 미숙하거나 부적절한 양육방식, 양육 경험의 부재에 기인한 것이었다(Goodall, 1986; Williams et al., 2008).


인간의 경우 양육자에 의한 학대나 폭력, 방임 등이 자주 발생하며 이런 부적절한 양육은 자녀의 정서적, 사회적 발달을 방해한다. 발달 과정에서 양육자에게 학대나 방임을 당한 아동들은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게 되고
(Barnett, Ganiban, & Cicchetti, 19991) 우울이나 무력감, 위축, 공격적 행동, 품행 문제, 또래 관계의 갈등, 사회적 문제해결능력의 결함Dubowitz, Papas, Black, & Starr, 2002; Graham etal., 2010; Kim & Cicchetti, 2010), 호르몬 이상, 해마나 편도체 등 뇌 기관의 발달 이상을 나타낸다(Hart & Rubia, 2012).

양육자나 가족, 가까운 혈족에 의해 일어나는 폭력이나 학대, 방임 등이 누적되면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포함해 광범위한 정신과적 장애를 보이게 된다(Follette, Polusny, Bechtle, & Naugle, 1996). 이렇게 유아동기에 양육자나 친족에 의해 신체적, 언어적, 성적 폭력과 학대를 경험하는 것은 자기보호능력이 결핍된 유아동에게 신체적 상해나 죽음의 위협 및 두려움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발달 외상이자 충격 외상에 속한다.


그러나 충격 외상이 아니라 돌봄이나 상호 작용의 결여와 같은 발달상의 손상이 포유류와 인간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Goodall(1986)은 늙은 암컷 어미 플로(Flo)와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새끼 플린트(Flint)가 엄마가 죽자 3주 만에 죽은 사례를 보고하였다.

Harlow(1964)는 철사로 만든 가짜 어미에게서 성장한 암컷 붉은털 원숭이들이 어른이 된 후 동료와 수컷을 거부할 뿐아니라 출산 후에도 자녀를 돌보지 못하거나 학대하고 물어 죽이는 등의 현상을 보고하였다. 포유류 새끼들에게 양육자의 보호와 돌봄을 받지 못하고 애착형성이 훼손되는 것은 신체심리적 발달과 사회성 발달을 손상시키고 집단내 적응을 훼손하는 심각한 외상이었다.
이와 동일하게 인간의 유아는 애착에 대한 강한 동기를 갖고 태어난다(Ainsworth, 1973;Bowlby, 1969). Schore(2003)와 Gabbard(2005)는 발달 초기의 방임이나 애착 결손이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반응 및 교감신경계의 활동을 조절하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ypothalamicpituitary-adrenal; HPA) 축을 활성화시켜 과각성 상태를 일으키는 등 학대보다 더 큰 손상을 입힌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반응성 애착 장애(reactive attachment disorder, RAD; APA, 2013)는 학대나 폭력과 같은 충격 외상이 아니라 양육자의 잦은 교체나 변동, 미숙한 보살핌, 양육 기술이 부족한 경우 등 발달 초기의 애착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즉 부모가 발달 초기에 유아의 위로, 자극, 애정 등 정서적 욕구에 반응하지 못하고 무시하거나 친밀한 상호 작용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APA, 2013). 애착의 결핍은 발달 외상에 속하며 이는 인류의 조상이 영장류와 공유하는 특성이었을 것이다(표 2 참조).


표 2. 진화적 관점에 의거한 신생대의 위협과 트라우마




구석기 시대 및 신석기 시대의 위협과 트라우마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는 유인원과 분화되어 인류의 조상이 출현하고 언어와 뇌가 진화하면서 문명이 시작된 시기로 연속성이 존재한다. 또한 신석기 시대는 진화적 시간이 매우 짧으므로 본 연구에서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트라우마를 함께 논의하였다.
Braha(2006)는 구석기 시대 후반에 인간 종에 고유한 두려움 회로가 출현, 자리를 잡았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반-정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포식자 및 사람 속의 습격이나 약탈에 대한 공포가 항상 존재하였으며 식량을 훔치고 병균을 옮기는 설치류와 곤충 등에 대한 불안, 강박적 저장과 확인 행동 및 편집적 특성이 출현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본격적인 정주생활이 시작된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설치류와 곤충에 대한 불안, 강박적 불안과 행동 등이 구석기 시대 인류의 유전자 속에 내장되었다고는 보기는 어렵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목축과 농업을 통한 생산 경제 활동이 일어났고 정주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유전-문명의 공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외상이란 측면에서 볼 때 구석기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간접 외상의 출현 및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의 변화를 들 수 있다. Braha(2006)가 간과한,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유인원과 분화되면서 이룬 가장 큰 변화는 언어와 두뇌의 진화가 폭발하였다는 점이다. 현생 인류는 FOX P2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혀와 성대, 입을 정교하게 움직여 복잡한 발음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으며 그 시기는 대략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12~20만년전과 일치한다(Lai, Fisher, Hurst,Vargha-Khadem, & Monaco, 2001).

인류의 조상들은 언어와 두뇌의 발전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래를 사고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언어를 통해 상상력이 증폭되었으며 사고와 언어, 의사소통, 도구 조작 등을 통해 상상한 것들을 현실로 구체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트라우마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나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들을 목격하는 등의 간접 경험 및 상상만으로도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간접 외상의 충격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집단 구성원 간의 유대감과 의사소통이 많을수록, 양육자와 자녀간의 애착이 강할수록, 무엇보다 사고와 감정 및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두뇌(감정과 사고의 중추를 이루는 변연엽과 신피질)가 발달할수록 강할 것이다. 이러한 계통발생학적 특징들은 유인원에게서도 나타나지만 특히 인류에게 부합된다. 아직 우리는 영장류와 유인원에게서 다른 개체의 위협적 사건을 목격하였을 때 외상후 증상과 유사한 반응이 나타내는지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집단내 구성원들간의 교류가 많고 감정 이입 능력과 상상력이 발전한 인류에게서는 간접 외상의 충격이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집단간 경쟁이나 집단내 개체간의 경쟁등을 목격한 경우에 발생하는 간접 외상들을 구석기 시대 후반에 인류의 조상들이 언어와 뇌를 발전시킨 결과로 보고자 한다.


또한 뇌와 언어의 폭발적 진화로 인해 포유류 공통의 신체-생리적 반응 외에도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이 상징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Braha(2006)는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에 두려움으로 인한 심인성 졸도, 미주신경성 실신, 전환 증상 등 인류 종에게만 고유한 정신신체 증상이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자극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 의식화되고 반영적 평가 및 의미가 포함되면서(Greenberg & Paivio, 1997) 불안, 슬픔, 자부심, 수치심, 죄책감과 같은 상징적이고 심리적 정서, 복합적인 정서들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생리적 정서가 심리적 정서로 분화되었고 위협적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두려움은 심리적 불안 및 예기 불안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외상에 대한 반응이 외상에 고유한 스트레스 증상 뿐 아니라 해리 장애, 신체화 장애와 전환 장애, 우울 장애, 공포 장애 등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거나 적어도 여러 정신장애 증상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과 공존하거나 연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집단간 경쟁 및 집단내 경쟁


구석기 시대의 사람 속들 간에 분화가 일어나면서 종간 경쟁 및 집단간 경쟁이 격화되었다. 이들은 공동으로 사냥을 하였고 초보적인 언어와 신호체계를 사용하여 서로 교신을 하였다. 호모 하빌리스는 무리를 이루어 동종을 습격하고 잡아먹었으며 호모 사피엔스 역시 다른 사람 속에 대한 약탈자였다(Braha, 2006).
인류의 집단간 경쟁은 후기 구석기 시대에 보편적인 현상이었다(Keeley, 1996). 인간 종은 다른 인류 종에게 살해자였고 특히 여성과 어린자녀는 습격과 위협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집단간 공격이나 영아 살해는 포유류와 영장류에게서도 보편적인 행동이지만 구석기 시대의 사람 속들 사이에 집단간 경쟁과 습격이 가속화되면서 외집단 성원, 특히 남성의 습격에 대한 두려움이 강화되었으며 이는 유전자 속에 더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또한 구석기 시대에는 남성과 여성 간의 결속력이 강화되었다. 연구자들은 사회적 일부일처제의 탄생을 대략 1,600만년전 신생대로 보고 있으며 영장류의 27%가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다. 인류의 결혼 형태 역시 일부다처제이거나 연속적 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에 가깝다(Robin, 1997). 인류에게 영아 살해를 방지하고 자녀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성의 자원 독점 및 다른 라이벌 남성에 의한 짝짓기 방지를 위한 여러 목적에서 남성-여성 간의 배타적 독점 체계가 강화 되었다는 점은 여러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바이다(Hrdy, 1999; Lovejoy, 1981; Marlowe, 2000; Reno, Meindl, McCollum, & Lovejoy, 2003). Reno등(2003)은 일부일처제가 구석기 시대 초기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부터, 즉 인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존재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신석기 시대 이후에는 관습적 일부일처제가 발전, 정착되었다. 남성-여성간 독점체계가 인류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석기 시대 이후 문명에 의한 압력이 연속적 일부일처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은 확실하다.

일부다처제의 고릴라를 제외하고 유인원의 경우에는 대개 부계가 확실하지 않은 모계사회를 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이며 암컷이 다른 수컷의 성적 요구나 성교를 위협으로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 오히려 보노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암컷이 다른 수컷과 자유로운 혹은 몰래 짝짓기를 즐기며(de Wall, 1990) 따라서 다른 수컷의 강제적 성적 요구나 짝짓기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 부계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한 수컷과의 짝짓기는 자원 획득과 돌봄의 가능성을 높이거나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새끼를 임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 여성이 한 남성과 배타적 계약 및 애착 관계를 형성하도록 진화하였다면 다른 남성의 성적 폭력이나 강간은 생존을 위협하고 자원을 상실하게 만들며 양육한 자녀를 잃을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Buss,2007; Buss & Schmitt, 1993; Daly & Wilson,1985). 따라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선조 여성들에게 외집단 및 내집단 남성에 의한 강간, 성적 폭력, 성적 위협 등은 매우 위협적인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남녀간의 결속이 강화되면서 부모-자녀간의 애착, 특히 남성과 자녀간의 애착이 강화되었다. 사회적 일부일처제가 정착되면서 남성이 양육에 참여하고 자녀와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현생 인류 초기에 일부 남성들은 아이들을 운반하거나 씻기고 먹이고 함께 놀아주는 등 육아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짝짓기 기회를 제공받음으로써 일부일처제와 현대식 가족 구조를 발달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현생 인류의 자식 터울이 짧으면서도 양육 기간이 긴 것은 아버지의 양육 참여가 없었으면 불가능하였다(Hrdy, 1999;Marlowe, 2000; Reno et al., 2003). 구석기 시대 이전에 유인원 수컷에게 새끼의 상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영장류 사회는 대부분 모계 사회로,부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일부다처제의 고릴라는 하렘을 이루지만 새끼의 양육은 암컷이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인류 조상의 경우에는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남성과 자녀간의 애착 관계가 발전, 강화되었다. 이 시기에 비로소 여성 뿐 아니라 자녀와 애착관계를 상실한 남성에게도 자녀의 죽음이나 상실은 큰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발달 외상


앞에서 사회적 일부일처제가 정착되면서 남성이 양육에 참여하고 자녀와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였다고 하였다. 고릴라의 경우를 제외하고 유인원의 경우 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새끼들이 수컷과 애착 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매우 낮고 새끼에게 수컷의 상실이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인류 조상의 경우에는 남성과 자녀간의 애착 관계가 강화되었고 자녀 역시 아버지와 애착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 조상의 자녀에게 깊은 애착관계가 형성된 아버지의 상실이나 죽음은 발달 과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외상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인위적 재해에 의한 위협


신석기 시대 이전에 인간은 자연 환경 및 소규모 무리 안에서 생활하였으며 무리간의 경계선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에 생물학적 진화의 속도를 문화적 진화가 압도하면서(Wilson, 1978) 인간이 처한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인류는 전 지구로 퍼져 나갔고 급격한 문명과 문화, 산업 발달이 진행되었다. 도구가 발명되었고 농업과 목축 및 정주생활이 발전되었으며 도시와 국가라는 새로운 인위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진화는 이전 환경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트라우마를 낳게 되었다. 예를들어 구석기 시대 후반과 신석기 시대에 인간은 목축과 농업에 의지하였으며 이들에게 오랫동안 일군 가축의 상실이나 작물 피해는 생존의 위협이었을 것이다. 또한 신석기 시대 이후 인류는 자연 환경을 벗어나 스스로 인위적 환경을 구성하였고 이에 의지해 살게 되었다. 국가와 도시의 건설, 산업사회의 발전,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을 포함하는 인터넷 문명의 진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에 따라 첫째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자연환경에 의한 위협과는 다른 집단적인 산업재해, 개인적 산업 재해, 사고로 의한 재해, 붕괴와 고립 등이 크게 증가하였으며 이는 인위적 환경에 의한 외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현대 사회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인위적 환경에 의한 외상에 속할 것이다. 또한 맹독성 동물과 식물 대신에 가스와 기름 유출, 화학물질과 방사선 등 생명을 위협하는 독성물질에 의한 위협이 증가하였다.

둘째로, 도시의 발달은 집단과 집단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도시라는 인위적 환경 속에서 익명의 존재들과 뒤섞여 산다. 내집단과 외집단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것이다. 도시는 인간의 협력적 본성이 이루어낸 훌륭한 공간이지만 사기꾼과 무임 승차자, 정신병질자 등이 숨어 교묘한 방식으로 이타주의자를 착취하기 쉬운 위험한 공간이기도하다.

셋째로, 가장 최근에 이룬 통신과 인터넷 등 정보화 사회의 진보가 있다. 인류의 관계는 네크워킹으로 확장되었고 사이버 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인해 가까운 사람과 모르는 사람간의 구분이 더욱 모호해졌고 익명의 사람들에 의한 트라우마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익명성을 이용한 인터넷과 사이버 통신상의 악플, 악의적인 비방과 위협 등이 여기에 속한다.

Wilson(1978)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인위적 위협에 대한 방어와 대응 기전을 아직 발전, 내장시키지 못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현대인에게는 도시와 네트워킹이라는 익명의 공간속에서 사기꾼과 착취자를 구분해 내야 할 의무 및 이들에 의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표 3 참조).


표 3. 진화적 관점에 의거한 구석기 및 신석기 시대의 위협과 트라우마




논 의


유기체는 개체 보존과 종족 보존을 자연적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인간 역시 그 법칙에서 어긋나지 않는다. 진화 과정에서 트라우마는 유기체의 생존과 안전 및 번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오늘날의 인류는 문명과 도시를 건설하여 사상 최대의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인류의 조상들은 끊임없이 생존과 안전의 위협에 직면하여 왔으며 이러한 위협에 반응하는 특정한 심리사회적 반응 패턴(Gilbert, 1993) 및 두려움 정서와 기억 회로(Ekman & Friesman, 1975; Tomkins, 1963;Plutchik, 1962; Tooby & Cosmiedes, 2000)를 발전시켰다. 또한 철수, 공격, 회피, 유화, 주의 부동, 긴장성 부동 등 의식 이하에서 작용하는 대응기제가 내장되었으며(Cantor, 2009; Marks, 1987) 이러한 반응 및 대응 체계를 트라우마의 핵심적 기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첫째 사건의 특성 뿐 아니라 역치 이하 수준에서 작동하는 정서 반응 및 대처기제를 고려해야 한다. 둘째로 진화적 시기들에 따라 인류의 조상들이 어떤 위협에 당면하여 왔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두가지 축을 중심으로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분류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본 연구에서는 생명체의 진화 단계를 구분한 여러 관련분야들의 연구 및 Braha(2006)의 연구를 참고로 하여 중생대-신생대-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로 진화적 시기를 구분하였다.

Braha(2006)는 DSM(APA, 1994, 2013)과 ICD(WHO, 1992) 체계에 병인론적 이해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중생대(포유류)-신생대(영장류)-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인류 종에 고유한 두려움 회로(homo sapiens-specific fear circuit) 형성 단계로 진화적 시기를 구분하였다. 또한 스트레스와 두려움 회로 장애를 진화과정에서 형성, 내장되어 온 선천적 공포 및 개인적 경험에 의한 공포로 구분한 다음 이에 따라 현재의 진단체계를 재분류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Braha(2006)의 관점은 기존의 신경생리학적 관점을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진화적산물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통합하고 두려움과 관련된 정신장애 및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폭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Braha(2006)의 연구는 각각의 진화적 시기에 어떤 요인들이 위협적이었는지에 대한 Braha(2006)자신의 이론적 이해와 통합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어떤 요인이 두려움을 유발하는지 이해하려면 인류의 조상들이 다른 종들과 분화하여 발전시킨 욕구와 인지적, 정서적 특성을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Braha(2006)의 연구는 진화과정에서 인류 종의 생존과 번성에 위협적인 요인들이 무엇이었는지 트라우마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본 연구에서는 진화적 시간 속에서 트라우마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인류 종이 다른 종들과 공유하는 특성 및 차별화된 욕구와 특성을 통합하여 이론적 측면에서 트라우마의 근원을 여섯가지 위협 요인들로 구분하였다. 인류에게는 다른 종과 공통되는 욕구가 있고 진화 과정에서 다르게 분화된 고유한 욕구와 특성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생존과 안전, 번식, 힘에 대한 욕구 등은 다른 종과 공통되는 특성이지만 인류는 자녀와 양육자 간의 애착, 아버지와 자녀간의 애착, 남녀 간의 애착 등 다른 종과는 구분되는 고유한 애착 체계(Ainsworth, 1973; Bowlby,1969)를 발전시켰으며 유아동기 발달과정에서 이러한 애착 체계의 손상은 심각한 발달 외상과 두려움 정서를 유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진화적 시기별로 인류의 조상들이 당면하였던 위협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적대적 자연에 의한 위협, 종간 경쟁에 의한 위협, 종내 경쟁(집단간 경쟁 및 집단내 경쟁)에 의한 위협, 발달 외상 및 인위적 위협 등의 여섯가지로 구분하였다. 또한 어떤 외상이 생존과 안전, 힘, 관계와 애착 욕구 등 인류의 기본적 욕구 중 무엇을 손상시키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제시하였다.


인류의 조상들이 진화과정에서 부딪혔던 위협에는 중생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어 온 요인들도 있고 급격히 감소하였거나 변화한 요인들도 있다.


첫째로 적대적 자연에 의한 위협 및 다른 종에 의한 위협(종간 경쟁)에 의한 위협은 중생대부터 지속되어 온 외상 요인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러한 적대적 자연환경에 의한 위협으로는 지각 균열, 해일, 산사태와 홍수, 산불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종간 경쟁에 의한 위협으로는 중생대의 경우 육식성 파충류, 맹독성 파충류와 양서류 및 거미류 등에 의한 위협, 신생대에는 육식성 포유류, 거대 포유류, 무리를 이룬 영장류 등에 의한 위협을 들 수 있다.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다른 종에 대한 위협은 감소하였지만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내장되어 있다고 할것이다.


둘째로 다른 집단 및 개체와 부딪혀 경험하여 온 종내 위협이 있다. 인류의 조상인 영장류에게 다른 무리를 공격하여 자원을 약탈하고 구성원을 납치, 학대하고 새끼를 살해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이는 흔히 힘센 수컷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낯설고 힘센 수컷(남성)에 대한 어린 새끼(자녀)의 두려움은 이런 집단간 경쟁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사람 속들 간에 분화가 일어나면서 무리를 지어 다른 무리를 습격하고 약탈하였다. 또한 영장류 조상들은 무리 생활을 하면서 집단 내에서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서열 경쟁을 벌였으며 다른 개체를 무시하고 약탈하거나 죽이기도 하였다.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약탈, 폭력, 학대, 죽음의 위협뿐 아니라 무리에서 쫓겨나거나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은 생존과 안전, 보호를 상실하는 치명적인 요인이었다.

현대에도 이러한 집단간의 싸움 및 무리 내에서 일어나는 따돌림과 괴롭힘은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셋째로 인류의 조상은 양육자 및 남녀 간에 깊은 애착체계를 발전시켰다. 구석기 시대에는 남성과 여성 간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연속적 일부일처제가 출현하였으며(Hrdy, 1999; Lovejoy, 1981; Marlowe, 2000; Reno et al., 2003) 신석기 시대에는 남성과 자녀간의 애착이 강화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암수간의 유대 및 부성이 불분명하고 모계 사회를 이루는 유인원과 달리 구석기 시대의 선조 여성들에게 다른 남성에 의한 성폭력이나 강간은 매우 위협적인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또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남성 아버지에게도 자녀의 죽음이나 상실이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애착체계의 손상이 일으키는 발달 외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네 번째로 신석기시대 이후 문화적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를 압도하고(Wilson, 1978) 문명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위협들이 있다. 예컨대 목축 사회와 농경 사회 및 산업 사회를 지나면서 목축 및 농업 재해, 산업 재해, 사고 재해, 화학 독성 물질에의 노출 등의 새로운 위협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현대에는 도시와 정보화 사회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익명의 존재에 의한 착취, 비난과 위협 등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외상 사건들이 출현하고 있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Braha(2006)가 간과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인류의 조상이 유인원과 분화되면서 이룬 변화 및 그 의미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류가 유인원과 구분되는 가장 특성은 두뇌와 언어의 진화였으며 이에 따른 의사소통과 상상력의 발전, 생리적 반응에 대한 반영적 평가 및 의미의 포함이었다(Greenberg & Paivio, 1997). 역설적으로 이러한 진보로 인해 인류는 간접 경험이나 상상만으로도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될 위험성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생리적 과각성 외에도 심리적 불안, 수치심과 죄책감 같은 이차적 정서(Izard,1977; Plutchik, 1962), 예기 불안 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뿐 아니라 해리, 신체화, 우울 장애 등 여러 정신장애가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과 공존하거나 연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외상후 스트레스에 왜 그렇게 공병율 이 높은지, 그리고 트라우마가 여러 정신장애로 변형되어 나타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본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현재 트라우마에 대한 정의와 진단 체계의 문제점 및 치료적 의미를 살펴보자. 트라우마 및 외상후 스트레스를 이해할 때 우리는 위협 자극의 객관적 특성과 강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인류가 위협에 대응하여 발전시켜 온 고유한 반응 기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DSM 체계(APA, 1994, 2013)에서는 트라우마를 죽음, 질병, 성 폭행 등 신체적 통합이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는 위협 자극에 초점을 맞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신체적 손상에 우선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심리적 손상이나 발달적 손상에 대한 위협은 등한시하고 있다. 많은 외상적 사건들이 신체적 안전 뿐 아니라 심리적 안전을 위협한다. 집단이나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따돌림이나 비난, 방임등은 신체적 손상을 유발하지 않지만 그와 거의 동등한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며(Mikkelson & Einarsen, 2002) 신체적 고통에 반응하는 뇌 부위의 반응을 활성화한다(Eisenberger, Liberman, & Williams, 2003;Eisenberger, Matthew, & Lieberman, 2004).

심리적 안전의 위협이 누적되면 신체적 위협과 동일한 외상 반응이 유발되는 것이다. 또한 심리적 안전의 위협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아동들은 인지, 정서, 성격 및 사회성 등을 포함한 심리사회적 발달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Baumester & Leary, 1995; Bowlby, 1969).

무리를 형성하고 자녀 및 동료와 깊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도록 진화해 온 인류에게 양육자나 동료들에 의해 제공되는 심리적 안전은 생존과 발달의 기본 조건이었다. Kira 등(2012)의 분류체계는 이혼, 양육자가 바뀜 등 발달과정 및 애착 관계에서 일어나는 외상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심리적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는 측면에서 재정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DSM-5(APA, 2013)에서는 반응성 애착 장애를 스트레스 및 트라우마 관련 장애에 포함하였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학령기 이전 유형(preschool type)과 해리 유형(dissociative type)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성인기의 경우에는 소아의 반응성 애착 장애에 상응하는 외상 진단이나 유형이 결여되어 있다. 즉 심리적 안전이라는 개념 및 아동기의 애착 결핍이나 손상이 발전하여 성인기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DSM 체계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발달 외상이나 누적 외상 등의 하위 유형이 추가되거나 반응성 애착장애가 발전된 성인기의 장애가 포함되어야 할 것으로 시사된다. 그러므로 DSM의 트라우마 정의 및 진단체계만을 따른다면 Kira 등(2012)의 누적 외상은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외상 사건들을 간과함으로써 스스로 진단체계의 범위와 효율성을 축소시키는 우를 범한다고 할 것이다.


위협 자극의 특성 외에 유기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전시킨 반응 및 대처 기전을 중심으로 외상의 영향을 이해할 수도 있다. Sullivan과 Gorman(2002)의 두려움 기억 회로, 두려움 정서에 대한 Tooby와 Comsmides(1000)의 이해 및 특유의 방어 반응에 대한 이해(Bolles, 1970; Marks, 1987), Cantor(2009)의 외상 이해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러한 반응이나 대처과정은 명시적 수준이 아니라 암묵적 수준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많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반응이나 행동이 비합리적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외상에 빠지면 즉각적으로 예견되는 위협에 초점을 맞추게 되며 두려움/전율(fear/terror)이 의식을 지배하고 개인을 마비시킨다(Janis, 1982). 뇌의 언어 기능이 상실되고 ‘말을 잃어버린 전율(speechless terror)’ 상태에 빠져들며 대신에 비언어적 영역과 감각-정서 영역이 활성화된다(Bloom, 2010; Raugh et al., 1996). Le Doux, Romanski와 Xagoraris(1991)는 외상의 기억이 영원히 지속되는 정서적 기억과 같으며 Van der Kolk(1996)은 냄새나 촉각, 맛과 같은 신체 감각, 이미지, 그리고 고통과 강한 정서의 형태로 저장된다고 하였다.

외상은 위협에 반응하는 편도체를 과잉활성화시키고 이에 따라 언어 영역과 전두엽 기능이 마비된다. 또한 교감신경계 및 뇌의 비언어적 영역과 감각-정서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악몽이나 플레쉬백과 같은 반복된 이미지 및 이와 연결된 신체생리적 수준의 과각성 반응 및 신체감각으로 외상을 재경험하게 된다.


이는 임상적, 치료적 측면에서 볼 때 외상적 기억을 언어와 연결하고 의식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명시적 과정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생리적 반응을 풀어내고 변형시키는 암묵적 수준의 작업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체적 반응을 접촉, 자각하고 진정시키며 조절 능력을 습득하는데서 시작된다. 언어와 사고의 교정 이전에 두려움과 이에 수반되는 신체감각적 반응의 감소와 조절, 자기 진정 능력(Greenberg & Paivio, 1997)의 회복에 초점을 맞춘 치료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외상에 두려움 정서만이 유발되는 것은 아니다. 외상에 대한 반응에는 두려움과 더불어 분노와 슬픔 등의 일차적 정서 및 수치심, 자괴심, 자책감과 같은 이차적 정서들이 동시적, 병렬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Braha(2006)은 구석기 시대에 외상에 대한 반응으로 심인성 졸도, 미주신경성실신, 전환 증상 등이 출현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외상에 대한 반응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및 두려움 정서 외에도 대단히 포괄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외상에 대한 반응은 해리, 우울, 공포, 강박, 신체화, 전환 증상 등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거나 이런 증상들이 동시에 혹은 병렬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 치료적 측면에서는 한 개인에게서 나타나는 외상 반응의 다양성과 그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신체생리적 수준과 정서적 수준, 그리고 한 개인의 인생을 포괄하는 명시적, 언어적(이야기, 의미) 수준의 치료가 통합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DSM-5(APA, 2013)에서는 DSM-IV(APA, 1994)에서 고수하던 성격적 요인, 발달 문제, 신체적 문제, 심리사회적 스트레스 등의 다축 체계를 해체하였는데 이는 내담자 요인과 그 취약성을 고려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남성 성인에 비해 아동이나 여성은 구조적으로 트라우마에 취약하다.

이와 유사하게 외상 사건 이전에 성격적 내향성이나 발달장애, 스트레스 등의 소인이 있던 사람들은 동일한 트라우마에 높은 외상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오래 전 Engel(1977)는 생물심리사회적모형(biopsychosocial model)을 주장하면서 의학과 치료에서 인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즉 진단과 치료에서 외상의 강도와 특성, 외상에 대한 반응 뿐 아니라 개개인의 취약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DSM-5의 진단체계는 과거의 생물의학적 모형(biomedical model)으로 퇴보하였고 뇌가 환경 자극에 의해 영향받고 변화하며 마음이 뇌의 발현이라는 정신의학적, 생물학적 근거를 오히려 배신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지금까지 논의한 외상 분류체계를 수직(힘, 권력)과 수평(관계) 차원으로 범주화해 볼 수도 있다. 대다수의 트라우마는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해 일어난다. 이러한 힘의 요인에는 육체적 조건이나 무기, 지위 및 경제력 등의 차이, 자기 편의 숫자와 영향력의 차이, 지적 능력의 차이 등이 존재한다. 만일 서열이나 지위가 동등하다면 상대에게 위협적인 일을 행사하기 어려우며 피해자 역시 대응능력이 있으므로 쉽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와 방임도 육체적 조건, 경제력과 지위, 지적 능력 등 힘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수평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트라우마도 분명히 존재한다. 포유류는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였고 인간의 생존과 번성에는 유대감, 친밀감 및 신뢰 등의 관계 및 애착 요인이 필요하다. 아동은 부모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으며(Bowlby, 1969;Goodwall, 1986). 방임과 학대, 괴롭힘과 성폭행 등은 애착 관계에 있는 부모나 가까운 동료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익명의 존재보다 애착 대상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유대감을 형성한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외상 사건이 생존의 조건인 안전과 신뢰를 붕괴시킬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상 사건을 수직 축과 수평축 차원에 위치시키고 그 영향력의 강도 및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을 탐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자연 재해, 익명의 존재에 의한 트라우마 및 애착관계에서 일어나는 외상 등을 구분히고 그 영향력의 강도 및 상호작용이나 병리적 양상을 탐색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외상적 덫에 사로잡히는 스톡홀름 신드롬(Cantor & Price, 2007)은 이미 애착 관계에 있거나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사점에 대해서는 본 연구의 주제 밖이므로 추후 연구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진화과정에서 선조들이 마주쳤던 상당수의 위협들을 현재의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지 못하므로 이론적 논의와 가설에 머물고 있으며 경험적 검증이 대단히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진화심리학과 뇌과학 및 진화생물학, 고고학 등의 경험적 연구 결과들이 누적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본 연구의 가설적 분류도 수정, 검증될 수 있다.

둘째, 실용성의 문제가 있다. 본 연구에서 논의한 외상 사건들이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며 과거에 일어났던 특정 외상적 사건은 그 빈도가 현저히 감소하였을 수도 있는 바, 외상을 분류하고 진단하는데 있어 효용성이 제한될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중심으로 트라우마를 이해하던 근접적 시야에서 벗어나 종단적, 원거리적 관점에서 트라우마의 기원과 본질을 이해함으로서 심리학의 깊이와 폭을 확장시켰다는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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