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일반

현대 한국사회의 이름짓기 방법과 특성에 관한 고찰

rainbow3 2020. 3. 3. 03:10


현대 한국사회의 이름짓기 방법과 특성에 관한 고찰

(『종교연구』제65집, 한국종교학회, 2011년 12월)

 

김만태 문학박사/서라벌대학교 풍수명리과 전임교수·학과장

 

 

Ⅰ. 머리말

Ⅱ. 이름이 갖는 의미와 기복성

Ⅲ. 한국사회에서 이름짓기의 변화와 경향

Ⅳ. 이름짓기의 여러 방법과 음양오행의 관계

Ⅴ. 기복적 이름짓기에 나타난 특성과 유형

Ⅵ. 맺음말

 

 

1. 머리말

 

이름은 개인을 타인과 구별하는 표지이자 지칭하는 언어부호이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듯이 이름은 인류의 보편적 언어현상이자 인류 공동체 특유의 사유체계를 잘 보여주는 문화현상이다. 언어는 인간이 집단 속에서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화 중의 하나이다. 언어의 기원 문제에 이름[명칭]이 논거로 제시되듯이 이름(name, 名)과 이름짓기(naming, 作名·命名)는 인류 역사의 여명기부터 인류의 창조적 사고와 더불어 전개되어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구별하는데 사용하는 언어부호인 이름은 공동체 언어를 이용한 표현 형식이라는 점에서 각 부족·종족·민족이나 국가 등 공동체만의 독특한 문화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1940년에 일제가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강제로 우리나라 사람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창씨개명(創氏改名)의 저의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므로 각 문화의 기본 요소이자 응집체인 이름과 이에 관련된 연구는 각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 창(窓)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에 따라 각 사회공동체 특유의 사유방식과 가치관·신앙·제도·관습 등을 이해하려는 한 방법으로 이름이나 이름짓기에 관한 연구가 꾸준하게 진행되어 오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의 대부분은 어문학계에서 수행되어 왔으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역학(易學) 분야에서도 점차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이름을 갖게 되지만 출생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름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이름 바꾸기, 새로운 이름짓기가 유행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0~2009년의 10년간 84만4615명이 개명신청을 했는데 이는 국민 60명 중 1명인 셈이라고 한다. 개명신청의 직접적인 사유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성명학적으로 이름이 나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신출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무병장수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명예롭게 영원히 남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에 대한 장차 희망과 기원을 담아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일단 한번 지어지면 수없이 불러지는 이름은 공감 원리(sympathetic principle)에 근거하여 이름에 담긴 뜻과 소리 등을 통해 당사자의 장차 입신출세와 부귀영화·무병장수·행복 등을 유도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단지 언어현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현상으로도 화현(化現)되고 있는 이름짓기에 관한 인식과 행위를 그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한자문화권인 한국이란 사회적 기반 위에서 널리 행해져 오고 있는 기복신앙적 관점에서의 이름짓기 방법과 특성·의미 등을 고찰함으로써 한국인의 심성 근저에 자리하는 인생관·운명관·신앙관·가치관·사유방식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2. 이름과 작명의 변화와 경향

 

2-1. 이름에 함축된 의미

 

보통 이름이라 하면 성(姓)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名]이지만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 즉 성명(姓名)이라고도 한다. 姓은 女와 生을 합친 회의(會意)글자로서 여자가 자식을 낳아 공동체를 형성하고 혈족을 계승하던 모계사회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다.

[許愼 撰, 段玉裁 注,『說文解字注』(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88), p.612, “姓 人所生也. 古之神聖人 母感天而生子 故偁天子. 因生以爲姓 從女生.”]

名은 夕에 口(입 구)를 합친 글자로서 저녁 때 어두워서 서로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불러 상대를 확인하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같은 책, p.56, “名 自命也. 從口夕 夕者冥也. 冥不相見 故以口自名.”]

 

그러나 현대 문자학의 발달로 ‘名’에 대한 해석이 요즘 달라졌는데, 名은 축문[口] 위에 제수 고기[夕]가 올려져 있는 모양으로 아이가 자라 씨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조상께 제사지내며 정식으로 이름을 지어 보고하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해석한다. 우리말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말하다”는 의미의 ‘이르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 같은 성명과 이름의 기원에서 이름이 갖는 기본적 의미를 알 수 있다.

 

노자(老子)의『도덕경(道德經)』에서 “이름이 없으면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이 있으면 만물의 어머니(로서 이후 모든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라는 표현과『구약성서』<창세기>의 다음 내용은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고 인식해서 존재에 어울리는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상징적 행위라는 맥락에서 이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 야훼 하느님께서는 (…)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 붙여 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이름은 사물의 본질을 표시하고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특성까지도 간파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사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 사물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하며 창조의 한 과정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이 갖는 일반적인 역할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聖經)에서의 이름은 그런 일반적인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그 이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성격과 특성, 그리고 운명까지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 이름이 부여되는 것은 그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곧 본인의 본성과 운명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이해하였다. 이런 인식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름을 짓는데 신중하며,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름에 담아내고, 이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개명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일단 한번 지어지면 수없이 불러지는 이름은 사람이 입고 있는 (좀처럼 벗기 어려운) 외투와 같고, 그 사람 외양의 일부가 되어서 본명인(本名人)의 특성과 정체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란 지구상의 이름을 다 합친 것보다도 자신들의 이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도 가장 듣기 좋고 가장 중요한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이름을 영원히 명예롭게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세 가지 이름, 즉 “인간에게는 이름 셋이 있다. 태어났을 때 부모가 지어준 이름, 우정에서 우러나 친구들이 부르는 이름, 생애가 끝났을 때 얻게 되는 명성이다.”라는 언술은 이름이 갖는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이름은 본 연구의 주 대상인 본명(本名)·성명(姓名)·아명(兒名) 등이며, 두 번째 이름은 별명(別名)·애칭(愛稱) 등이며, 세 번째 이름은 명성(名聲)·명망(名望)·명예(名譽) 등이다. 별명·명성 등 다른 두 이름과 달리 첫 번째 이름인 본명·성명·아명 등은 예부터 기복신앙적 의미로 채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별명·애칭의 대표적 예는 신라 자비왕(재위 458~479) 때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百結先生, ?~?)이다.

『삼국사기』열전 백결선생전에 따르면 백결선생은 “(이력을 알 수는 없지만)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해진 옷을 백 군데나 기워서[衣百結] 마치 메추라기를 달아 맨 것과 같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동쪽 마을의 백결선생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본명은 알 수 없고 단지 백결선생이라는 별칭만 전해진다. 사람의 외모나 성격 따위의 특징을 바탕으로 남들이 지어 부르는 이름인 별명이나 본래의 이름 외에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이름인 애칭은 기복신앙과 무관하다.

 

사람이 현세(現世)에서 행복을 희구(希求)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임과 동시에 최상의 목표이다. 철학과 종교에서는 마음 수양과 도덕적 성숙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들에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인의 전통생활 곳곳에서 보이는 길상 문자인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란 것도 결국 세속적인 복이다. 오래전부터 이름은 사람과 운명 간에 공명(共鳴)작용을 한다고 인식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가려 잘 지어줌으로써 본명인의 장래 운로(運路)를 좋게 열고자 했다. 이름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언어부호]이라는 본래 의미 외에 현세구복(現世求福)을 위한 개운(開運)행위의 신앙적 도구로도 인식되어 왔다.

 

수저 주머니. 앞은 학·소나무, 뒤는 이름이 수놓아져 있고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2-2. 성명의 초기 변화

 

오늘날 한국인의 이름, 즉 성명은 부계혈통을 나타내는 성(姓)과 개인을 가리키는 이름[名]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은 본관(本貫)과 결합하여 가문(家門)을 나타내고, 이름은 항렬(行列)을 통하여 가문의 대수(代數)를 나타낸다. 지배층에서 성명(姓名)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초기부터이며,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다변화되며 친족공동체가 분화됨에 따라 성과 본관도 세분화를 거듭해 왔다. 왕실과 국가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거나 귀화한 사람에게 성을 하사하는 사성(賜姓) 제도도 새로운 성씨가 생겨나는데 기여했다. 통계청이 지난 200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86개 성씨(귀화인 제외)와 4179개 본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귀화인의 경우는 대략 442개의 성씨로 파악되었다.

 

애초 한국인의 이름은 토착어인 알타이제어(Altaic languages)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한자(漢字)의 유입과 성의 보급에 따라 점차 한자식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삼국사기』에 “居柒夫 或云荒宗”이라 하였으니, ‘居柒’은 우리말 ‘거칠’을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荒’은 그 뜻을 따서 중국어로 번역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상당히 많은데『삼국유사』에도 “赫居世王 蓋鄕言也. 或作弗矩內王, 言光明理世也.”란 기록이 있는데, ‘弗矩內’는 우리말의 ‘뉘’를 음으로 표기한 것이고 ‘赫居世’는 뜻을 중국어로 옮긴 것이다.

 

『조선왕조실록』태종 13년(1413)의 다음 기사에 나오는 이름들에서도 이런 변화양상을 읽을 수 있다. 김영부(金英富)·임전(任腆)·김철(金哲)·용안(龍安)·이실(李實)·이의산(李宜山)·왕양귀(王陽貴)·이양(李陽)·홍의충(洪義忠) 등은 한자식 성명이며, 신가구지(申加究之)·이어구지(李於仇知)·왕거이두(王巨伊豆)·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거을금(○巨乙金)·○가물(○加勿) 등은 성에 토착어 이름이 붙여진 것들이다.

 

"태종 13년, 순금사(巡禁司)에서 아뢰었다. “전조(前朝, 고려) 익성군의 자손이 있는지 없는지를 김영부(金英富)·임전(任腆)·김철(金哲)·신가구지(申加究之)·용안(龍安) 등에게 물으니, 그 공장(供狀)에서 모두 말하기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모두 석방하라고 명하였다.

순금사에서 또 아뢰었다. “전조 왕씨(王氏)의 후손에 대하여 정상을 알고도 자수하지 않았던 자들 가운데 이실(李實) 등 21인은 처인현에 가두었고, 약비(藥婢)는 진위현에 가두었습니다.”

임금이 2등급을 감하여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또 아뢰었다. “이어구지(李於仇知)가 거이두(巨伊豆)의 성(姓)을 일컬어 왕씨(王氏)라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거이두를 석방하고, 이어구지의 죄를 자세히 조사하고 살펴서 2등급을 감하여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또 아뢰었다. “이의산(李宜山)은 왕양귀(王陽貴)의 아들 거이두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추고하는 일 때문에 옥에 갇혀 있습니다.” 임금이 이를 석방하라고 명하였다.

또 아뢰었다.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를 숨겨 준 자 가운데 거을금(巨乙金)의 죄는 참형에 해당합니다.” 임금이 2등을 감하라고 명하였다.

또 아뢰었다. “왕거을오미가 성과 이름을 바꾸어 이양(李陽)이라 하였으므로, 그 처형(妻兄) 가물(加勿)은 알지 못하였다고 고하였습니다.” 임금이 2등급을 감하라고 명하였다.

전 소감(少監) 홍의충(洪義忠)은 장(杖) 1백 대에 처하여 경성(鏡城)에 유배시키고 도형(徒刑) 3년을 더 하였으며, 전조 회원군 처 노씨(盧氏)는 장 90대에 처하여 도형 2년 반을 속(贖)받았으니, 바로 전조 수연군의 아들이 살아 있다고 무고한 까닭이었다."

 

앞과 마찬가지 예로 연산군 6년(1500)의 다음 실록 기사에 나오는 이름들 중 윤필상(尹弼商)·한치형(韓致亨)·성준(成俊)·이극균(李克均)·이극돈(李克墩)·김자정(金自貞)·채수(蔡壽)·최수산(崔守山) 등은 한자식 성명이며, 구자모지(仇自毛知)는 토착어 이름(구씨일 수도 있다), 김어눌지(金於訥只)는 성에 토착어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윤필상(尹弼商)·한치형(韓致亨)·성준(成俊)·이극균(李克均)·이극돈(李克墩)·김자정(金自貞)·채수(蔡壽)를 명소(命召)하여, 해랑도(海浪島)에 도망하여 거주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 사람의 여자를 얻어서 낳은 아이에게 아비를 따르게 할 것인가, 어미를 따르게 할 것인가 하는 일을 의논하도록 하니, 윤필상 등이 의논드리기를, “우리나라 사람 구자모지(仇自毛知)·김어눌지(金於訥只)·최수산(崔守山) 등이 모두 중국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과 딸을 많이 낳았는데, 5세 이하된 아이가 4인이나 됩니다.”

 

앞의 두 실록 기사를 통해서만 봐도 고려조에서 점차 후대로 올수록 토착어 이름을 짓는 경우가 줄어들며 한자식 성명을 짓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조까지만 하더라도 왕족도 토착어 이름을 갖는 경우가 많았으나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양반, 심지어 양민인 경우에도 한자식 성명을 짓는 경향이 강해졌다.

 

 

2-3. 작명의 경향성

 

한국에서 이름짓기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가문마다의 항렬자를 따라 짓기와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짓기이다. 항렬자를 따르는 방식은 주로 양민 이상의 남성들에게, 항렬자를 따르지 않고 짓는 방식은 노비나 여성들에게 적용되었다.

 항렬자를 따르는 경우도 다시 세분되는데, 오행(五行)을 기준으로 하기, 천간(天干)을 기준으로 하기, 지지(地支)를 기준으로 하기, 숫자(數字) 순서로 하기, 덕목(德目) 문구로 하기, 절충하기 등으로 나뉜다.

항렬자를 따르지 않는 경우는 출생 상황(태몽·시기·장소·서열)을 반영하기, 부모의 소망·감정을 반영하기, 외모·재능상의 특징을 반영하기 등으로 구분된다. 근래에 와서는 순우리말로 짓기, 믿는 종교의 인명을 빌려서 짓기,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여 영어로 말하기 좋게 짓기 등의 경향도 두드러진다.

 

항렬자의 일반적인 경향을 몇 가지 열거해보면 다음 표와 같은데, 대부분의 경우 오행의 상생 배열을 따르고 있다. 이는 씨앗에서 싹이 움터 자라 줄기가 뻗어나고(수생목·水生木), 나무줄기는 잎과 꽃들을 활짝 피어내고(목생화·木生火), 잎 사이로 핀 꽃의 암술과 수술이 서로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화생토·火生土), 음양 조화의 결실로서 성숙한 열매를 맺으며(토생금·土生金), 열매는 다음 생명을 기다리며 씨앗을 간직한다(금생수·金生水)는 일련의 생명 순환과정을 상징한다.

 

항렬자의 일반적 경향  

 ⊙ 오행 상생(木火土金水)

南陽洪氏(唐洪系) : 桂―熙―重―銖―淇―東―然―喆―商―求

 ⊙ 천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全州李氏(潭陽君派) : 愚―九―南―寧―盛―紀―康―宰―聖―揆

 ⊙ 지지(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喬桐印氏 : 敎―秉―演―卿―震―範―準―東―重―猷―成―夏

 ⊙ 숫자(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

潘南朴氏 : 雨―天―春―憲―吾―章―虎―謙―旭―平

 ⊙ 土水禾 교대

韓山李氏(戶長公系) : 在―承―稙―珪―求―馥―遠―濬․洙―䄷․禾―培․膺―淳․灝―來․穗

 ⊙ 水木 교대 → 오행 상생

高靈申氏 : 淸―權―祿―模―求―休―雨―植―浩―秀―熙―圭―鍾―永―相―燮

 ⊙ 덕목 문구 → 오행 상생

陽城李氏 : 聖―賢―仁―義―禮―智―洙―來―煥―奎―鎬―濟―柄―燦―基―鍾

 ⊙ 천간 → 오행 상생

高靈朴氏(副倉正公派) : 九―炳―河―成―紀―慶―新―重―癸―根―爀―奎―鐸―求

 

 

선호하는 이름자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대법원이 출생신고 된 이름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1945년의 경우 남자아이는 영수·영호·영식 등 ‘영(永)’자가 들어간 이름이 많았고, 여자아이는 영자·정자·순자·춘자·경자·옥자 등 ‘자(子)’자를 쓴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975년의 경우 남자아이는 정훈·성호·성훈·성진 등 ‘성’자가 인기였고, 여자아이는 미영·은정·은주·은영 등 ‘은’자가 유행했다. 2006년의 경우 남자아이는 민준·민재·지훈·현우·준서 순으로 인기가 많았고, 여자아이는 서연·민서·수빈·서현·민지 순이었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순수하고 친근감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1980년대부터 한글이름짓기가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그 영향으로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조아라우리고은이 등의 파격적인 이름부터 이슬·슬기·초롱·한별·별님·꽃님·엄지·반지·아람·우람·보람·힘찬·겨울·하늘·나루·나리·잔디 등의 다양한 한글이름이 특히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많이 지어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해서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부터는 오히려 놀림감이 되고 가벼워 보이고 한글이름이 너무 흔하고 사용에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한글이름은 민준·현우·서연·민서 등의 한자이름으로 개명이 되는 처지가 되었다.

 

한글이름이 아이에게는 깜찍하고 예뻐서 적합하지만 성인에게는 유치하고 권위가 없어 보여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기 쉽다. 그리고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 사회생활에서는 한자이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마다 불편하다. 더욱이 중국이나 일본 등 한자문화권 국가로 유학이나 출장을 갈 경우에는 한자이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글의 우수성과는 별개 문제로 우리나라에서도 한글이름은 한자이름에 비해 생활상 불편하다. 따라서 법원도 한글이름에서 한자이름으로 개명은 허가를 잘 해주는 편이나 한자이름에서 한글이름으로의 개명은 좀처럼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 사회적 여건상 부득이하게 한글이름보다 한자이름이 여전히 선호된다는 점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이름짓기의 특징적인 경향의 하나이다.

 

 

3. 작명법과 음양오행의 관계

 

3-1. 작명법 개관

 

이름은 우선 부르기 쉽고 듣기 좋으며 뜻있게 짓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작명가들은 그 외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수리(數理)·사주(四柱)·역상(易象) 등도 반드시 참고해서 길한 이름을 짓는다. 하지만 작명가들마다 이름짓는 방법이 제각기 다르며, 자신이 활용하는 방법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보니 같은 사람, 같은 이름을 두고서도 작명가들마다 그 길흉 판단이 서로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이름짓는 방법상의 모든 기준들을 빠짐없이 충족할 수 있는 좋은 이름이란 결코 존재 않는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이름짓는 방법에 관한 책 만하더라도 100여 가지가 훨씬 넘고, 인터넷상 작명관련 운세 사이트와 카페도 800여 군데를 훌쩍 넘긴다. 그만큼 길한 이름을 지으려는 작명에 관한 사회적 수요가 큰 반면, 이름짓는 방법에 대한 이견은 분분하다는 반증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활용되고 있는 이름짓는 방법들을 그 주요 특징에 의거하여 유형화해보면 대략 8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수리(數理)성명학, 삼원오행(三元五行)성명학, 발음(發音)성명학, 용신(用神)성명학, 측자파자(測字破字)성명학, 곡획(曲劃)성명학, 역상(易象)성명학, 신살(神殺)성명학 등이 그것이다.

 

① 수리성명학 : 성명 한자의 획수(劃數)를 계산하여 그 배합한 수로 4~5개의 이름 격(格)을 정한 후 81개의 영동수(靈動數)에 담긴 의미와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으로 삼원오행성명학, 발음성명학과 더불어 현재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다.

 

중국 남송시대 채침[蔡沈, 1167~1230, 자 중묵(仲默), 호 구봉선생(九峯先生), 채원정(蔡元定)의 셋째 아들이자 주희(朱熹)의 제자, 書集傳·洪範皇極 저술]이 수본론(數本論)·일실만분(一實萬分)의 논리를 세우고 그려낸 구구원수도(九九圓數圖)와 범수지도(範數之圖)의 81수(數) 관념에 근본을 두고 있다.

채침은 9를 궁극적 수, 즉 모든 존재의 본원적 수로 여기고 이를 논거로 하여 세계의 구도에 대한 수학적 연역 방식을 도출해내었다. 그 내용을 저술한 책이『홍범황극내편(洪範皇極內篇)』5권이다.

그는『주역』의 괘효상(卦爻象)과 「홍범」의 구주(九疇)에 입각하여 「홍범」의 수가 1을 바탕으로 하여 3이 되고, 그 3을 바탕으로 하여 9가 되며, 또 그 9를 바탕으로 하여 81이 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고 여겼다.

[蔡沈,『洪範皇極內篇』2, 「皇極內篇」중, “數始于一, 參于三, 究于九, 成于八十一, 備于六千五百六十一. 八十一者, 數之小成也. 六千五百六十一者, 數之大成也. 天地之變化, 人事之始終, 古人之因革, 莫不于是著焉.”]

 

81수에는 각기 상(象)·사(辭)·효(爻)가 있고, 효는 원(元), 대(大), 길(吉), 구(咎), 상(祥), 인(吝), 평(平), 회(悔), 재(災), 휴(休), 흉(凶) 등의 점사(占辭)로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제1수인 원(原)은 그 상(象)이 ┃┃이고 그 사(辭)가 “原, 元吉, 幾君子有慶”이다.

그 효(爻)의 변(變)은 원길(元吉)에서 시작하여 대흉(大凶)으로 끝난다.『홍범황극내편』의 81수 총 명칭과 구성은 표와 같다.

 

81수의 명칭과 구성 

 

그러나 본래 채침의 81수는 성명학과 전혀 무관하다. 1929년 일본에서 구마사키 겐오(熊崎健翁)가『성명의 신비(姓名の神秘)』를 발표하면서 4자(字)로 구성된 일본인의 한자 성명 풀이를 위해 81수를 원용했다.

이러한 구마사키 수리성명학이 1940년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대거 유입되면서 3자 성명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에 적용하려고 본래의 성(姓) 위에 가성수(假姓數) 1을 넣거나 하는 식으로 변형하면서 지금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본식 구마사키 수리성명학의 광고(매일신보 1940.3.16)

 

 

② 삼원오행성명학 : 수리성명학의 일종이다.

성명의 한자 획수를 오행으로 분류하고 성과 이름의 획수를 조합하여 천지인(天地人) 삼원으로 구분하여 그 오행의 배합이 상생상극인지에 따라 성명의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③ 발음성명학 : 사람의 소리도 오행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인식 하에 성명 한글의 소리를 오행으로 구분하여 각 성명자의 오행이 상생과 조화가 되도록 이름을 짓는 것이다. 말소리를 그대로 기호로 나타내는 문자인 한글을 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식 성명학이다. 경우에 따라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나 띠를 고려하기도 한다.

 

④ 용신성명학 : 먼저 사주를 분석하여 후천적으로 보완할 음양오행의 글자[용신]를 정하여 획수나 발음·자원오행 등으로 보완하는 작명법이다. 현존하는 이름짓는 방법들 중에서 가장 종합적이며 어려운 방법이다. 따라서 일반사람들이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⑤ 측자파자성명학 : 성명 한자의 자획(字劃)을 풀어 나누거나 성명 한자에 내포된 정보를 당시 상황을 참작하여 직관적으로 분석해서 운명이나 특정 사실을 추단(推斷)한다.

 

⑥ 곡획성명학 : 생년별 선천생수(先天生數)에 성명자의 필획수(筆劃數)와 곡획수(曲劃數)를 합한 수로 성명의 길흉을 판단한다. 길흉의 점사를 사언절구로 나타낸다.

 

⑦ 역상성명학 : 성명자의 획수로 주역의 대성괘(大成卦)를 작괘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동효(動爻)까지 산출하여 그 괘상(卦象)으로 성명에 담긴 운명을 해석한다.

 

⑧ 신살성명학 : 12신살(劫殺·災殺·天殺·地殺·年殺·月殺·亡身殺·將星殺·攀鞍殺·驛馬殺·六害殺·華蓋殺)이나 육효의 육수(六獸-靑龍·朱雀·勾陳·螣蛇·白虎·玄武) 등 신살을 활용하여 성명의 길흉을 해석한다.

 

이외에도 많은 유형의 이름짓는 방법들이 있으나 오늘날 이름 짓는데 있어 나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는 수리성명학과 발음성명학을 위시해 바로 이 유형들이다. 그러나 같은 유형들 안에서도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견해가 다른 경우가 많다. 이름짓는 각 방법들의 장단점이나 적부(適否)에 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으므로 별도로 언급하고자 한다.

 

 

3-2. 이름과 음양오행의 중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름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선 선천적인 사주(四柱)에 근거를 두고 사주의 부족한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보충하며, 사주의 옹체(壅滯)를 유통시키고 사주의 단절을 연결시키는 이름이라야 한다.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천간(天干)·지지(地支)의 육십갑자(六十甲子)로 나타낸 사주는 저울[秤]과 같다. 그러므로 사주는 저울이 균형을 이루는 모습인 평형(平衡)의 상태를 지향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주 안에서 음양오행과 한난조습(寒暖燥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상태인 중화(中和)로 표현된다.

그렇게 될 경우 그 사주는 마침내 부귀창성하고 무병장수하게 된다고 본다. 이것이 사주명리(四柱命理)의 기본 정리(正理)이다.[김만태, 「한국 사주명리의 활용양상과 인식체계」, 안동대 박사논문, 2010, p.126.]

 

중국 명대(明代)의 만민영(萬民英)이 찬술한『삼명통회(三命通會)』는 사주명리에 관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고법사주(古法四柱)로부터 자평사주(子平四柱)에 이르기까지 사주명리에 관한 가장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도 사주를 저울에 비유하면서 사주팔자의 중화 실현 여부가 곧 길흉화복의 요체라고 말한다.

 

사람의 팔자는 선천의 기(氣)인데 저울에 비유하면, 연(年)은 저울대[鉤], 시(時)는 저울추[權], 월(月)은 중심점[提綱], 일(日)은 눈금[銖兩]이 된다.

팔자는 일(日)이 주(主)가 되는데,

만약 재관인식(財官印食)이 왕상(旺相)하고 일간(日干) 또한 왕상한 지지 위에 있으면 저울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이 저울추와 상응하는 것과 같아서 그 명은 부귀하게 되며,

만약 재관인식은 왕상한데 일간이 휴수(休囚)하다면 저울 위에 있는 물건이 무거워서 저울추와 상응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그 저울은 수평이 되지 않으므로 그 명은 빈천하게 된다.

만약 재관인식이 휴수한데 일간이 왕상하면 저울 위에 있는 물건이 가벼워서 저울추와 상응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그 저울은 수평이 되지 않으므로 그 명은 순조롭지 못하고 막힘이 많게 된다.

[萬民英,『三命通會』, (臺北: 武陵出版有限公司, 1996), p.482,

 “人生八字, 爲先天之氣, 譬則秤也, 其年爲鉤, 時爲權, 月爲提綱, 日爲銖兩.

八字以日爲主,

中有財官印食旺相, 日干亦坐旺相之地, 如鉤綰物, 與權相應, 其命則富而貴.

如財官印食旺相, 日干乃値於休囚, 如以鉤綰重物, 與權自不相應, 其秤則不平, 其命賤而貧.

如財官印食休凶, 日干値於旺相, 亦若鉤綰輕物, 與權自不相應, 其秤自不平, 其命亦蹇滯.”]

 

사주와 대저울, 그리고 중화와 평형

 

 

선천적인 사주를 후천적으로 보완하여 중화에 이르게 하는 변수로는 당사자의 직업, 배우자와의 궁합, 풍수지리적 환경 등과 더불어 사주와 조화되는 이름이라는 성명학적 요소도 포함된다. 표면상으로 아무리 길수인 성명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선천적 사주에 배치되거나 상극이 되거나 조화가 안 되면 그 사람의 일생에 해는 안 끼칠지 몰라도 절대로 길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수리와 음양오행의 원리에 근거하여 길한 이름을 짓고자 한다면 본명인의 선천적인 음양오행의 기(氣)를 함축하고 있는 사주팔자와의 상통(相通)과 조화(調和)를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자 본 학자의 지론이다.

 

 

3-3. 이름의 음양오행 구성 원리

 

이름은 문자로 써지고 소리로 불리어진다. 우리나라의 이름짓는 방법들 거의 대부분이 문자는 한자(漢字)를, 소리는 한글을 기준으로 한다. 이름 문자는 한자의 획수(劃數)에 의해 음양과 오행이 구분된다.

이름 소리는 한글의 모음(母音)에 의해 음양이, 자음(子音))에 의해 오행이 구분된다. 오늘날 이름짓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도 수리성명학과 삼원오행성명학, 발음성명학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는데 수리성명학과 삼원오행성명학은 이름 한자의 획수, 발음성명학은 이름 한글의 소리를 대상으로 한다.

 

이름자의 음양 

 

이름자의 오행 

 

이름 한자의 획수를 계산하는 방법은 작명가들 간에 견해가 가장 크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한자의 획수 계산법 중에서도 원획법(原劃法)이 가장 통상적인 방법이다.

원획법은 한자는 상형문자(象形文字)이자 표의문자(表意文字)이므로 본래의 글자 뜻을 중시하여 원래 부수로 획수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글자를 실제로 쓸 때의 획수로 계산하는 필획법(筆劃法)과 획을 한 번 구부릴 때마다 한 획으로 계산하는 곡획법(曲劃法) 등도 있다.

 

한자 부수의 원획과 필획

 

이름 한자(漢字)의 획수 조합에 따라 이름에는 네 가지 격(格)이 있다.

원격(元格)·형격(亨格)·이격(利格)·정격(貞格)이 그것으로 이들 4격을 통하여 이름에 담긴 일생의 운세를 보게 된다. 원형이정이 가장 통용되는 명칭이나 지인천총(地人天總)이나 명주외총(名主外總)의 4격으로 부르거나 지인천외총(地人天外總)의 5격 등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이름 한자의 획수 조합으로 격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작명가들 간에 견해차가 심하다.

 

 

한자 획수의 비교 예

 

이름의 4격

 

채침의 81수 구조에서 살펴보았듯이 수리에서 획수는 1부터 81까지로 분류되며 해당 획수마다 고유한 특성과 길흉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각 수의 특성과 길흉에 대해서는 이름짓는 사람들마다 견해가 거의 일치된다.

술수(術數)에서는 숫자가 수량을 표시하는 부호가 아니라 일종의 신비한 실재가 된다. 숫자에는 신성한 성질이 있어서 인간은 이를 통해 신의 의지를 꿰뚫어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수리성명학과 삼원오행성명학은 이름 한자의 획수를 계산하고 조합해서 수(數)의 길흉을 가리거나 음양의 배합과 오행의 상생을 고려해서 이름을 짓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한자 이름의 획수이다. 그런데 이름 한자의 획수를 계산하는 방법도 작명가들 간에 의견차가 매우 심하고, 계산된 획수를 갖고 조합해서 원형이정 등의 격으로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견해가 많이 엇갈리고 있다. 같은 사람, 같은 이름을 두고서도 작명가들 사이에 이름의 길흉 판단이 극명하게 차이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곧 성명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수리오행과 발음오행 외에 자원(字源)오행을 고려하는 경우도 많다.

자원오행은 글자의 부수(部首)에 따른 오행과 자의(字意)에 따른 오행을 묶어서 말한다. 자원오행은 가문의 항렬자를 쓰기 위한 목적 뿐 아니라 본명인의 사주에서 결여된 오행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므로 자원오행으로 이름을 지으려면 먼저 본명인의 생년월일시로 사주를 세워서 풀이를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사주팔자에서 한난조습과 음양오행의 중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글자인 용신(用神)을 판단해서 이에 해당하는 오행의 글자가 이름에 포함되도록 하는 것이 자원오행을 고려한 작명법이다.

 

부수와 자의에 따른 자원오행의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그러나 같은 글자인데도 불구하고 부수에 따른 자원오행과 자의에 따른 자원오행이 서로 어긋나거나 오행의 구분 자체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명가들 사이에 같은 글자를 두고서도 자원오행에 대해 견해가 서로 다른 경우가 흔하다.

 

부수와 자의에 따른 자원오행의 예 

 

 

예를 들어, 華(꽃 화, 빛날 화)의 경우 부수(艸)로 보면 목(木)에 속하지만 자의(꽃, 빛남)로 보면 화(火)에 속해야 한다. 立(설 립)의 경우 사람이 팔다리를 크게 벌리고 서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므로 자원상 목(木)에 속해야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금(金)에 배속되고 있다.

載(실을 재)의 경우 수레(車)에 무기(戈)를 잔뜩(十) 실은 모습을 본뜬 글자이므로 자원상 당연히 금(金)에 속해야 하지만 오히려 상극관계인 화(火)에 배속되어 있다.

女(계집 녀)의 경우도 한편에서는 수(水)에 배속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극관계인 토(土)에 배속하고 있다. 그래서 娟(예쁠 연)의 경우 부수(女)로 보면 수나 토에 속하지만 자의(예쁨)로 보면 화에 속한다.

 

이처럼 같은 글자를 두고서도 자원오행상의 관점이 달라짐에 따라 화·수·토 등 두세 가지로 오행 배속이 나뉘는 경우가 흔하다. 谷(골 곡)의 경우는 女와 반대로 한편에서는 토에 배속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에 배속하고 있다. 康(편안한 강)의 경우 자원오행상 목에 배속되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자원오행상 금인 庚(일곱째 천간 경)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자원오행의 경우에도 명확한 오행 구분이 곤란하거나 상치되는 경우가 많아서 작명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3-4. 훈민정음과 소리오행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름 한자의 획수 계산, 획수 조합에 의한 격의 구분, 그에 따른 수리의 길흉 판단, 자원에 따른 음양오행의 구분 등은 작명가들마다 다르고 그 기준도 부정합(不整合)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신이 지은 이름조차도 시일이 지난 후에는 아주 좋지 않은 이름으로 판명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통용되어온 이름짓는 방법들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자 획수의 수리학 위주보다 한글의 소리오행에 주안점을 두는 방법이 점차 큰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한국인의 이름은 한글로 써지고 한글로 불리어진다는 점에서 한자의 획수보다는 한글의 소리오행에 준하여 이름을 짓는 것이 작명의 이치에 맞다고 한다.

 

한글의 소리 음양과 오행을 주안으로 이름을 짓는 오늘날 모든 작명가들이 활용하는 소리오행의 구분은 앞의 표 <이름자의 오행>과 같다.

 이를 다시 정리해보면, 어금닛소리[牙音]인 ‘ㄱ·ㅋ’은 목(木), 혓소리[舌音]인 ‘ㄴ·ㄷ·ㅌ·ㄹ(반설음)’은 화(火), 목구멍소리[喉音]인 ‘ㅇ·ㅎ’은 토(土), 잇소리[齒音]인 ‘ㅅ·ㅈ·ㅊ’은 금(金), 입술소리[脣音]인 ‘ㅁ·ㅂ·ㅍ’은 수(水)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그러나『훈민정음(訓民正音)』제자해(制字解)에 따르면 초성(자음)에서 입술소리 ‘ㅁ·ㅂ·ㅍ’은 오행상 토에 해당하고 목구멍소리 ‘ㅇ·ㅎ’은 수에 해당한다.

즉 토음(土音)과 수음(水音)의 경우『훈민정음』제자해의 내용과 현재 발음성명학에서 통용하고 있는 한글 소리 오행의 구분이 서로 정반대이다.

 

『훈민정음』제자해에서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음양오행이 우주만물의 유일한 원리이고 사람의 소리도 모두 음양오행의 이치를 가지므로 소리에 본래 담겨진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자연스레 훈민정음을 만들되 각 글자에 해당하는 모양을 상형해서 만들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자음인 초성의 기본 다섯 자(ㄱ·ㄴ·ㅁ·ㅅ·ㅇ)는 어금니·윗잇몸·이·혀·목구멍·입·입술 등 조음기관(調音器官)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고, ㆁ·ㄹ·ㅿ를 제외한 나머지 자음들은 소리가 조금 더 세게 나는 정도에 따라 획을 더하여 만들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사람의 소리는 모두 오행에 근본이 있으며 사계절 및 오음(五音)과도 합치된다고 하였다.

 

초성은 모두 17자이다. 아음(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혓소리)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본뜨고, 순음(입술소리) ㅁ은 입 모양을 본뜨고, 치음(잇소리) ㅅ은 이 모양을 본뜨고, 후음(목구멍소리)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뜬 것이다.

ㅋ은 ㄱ에 비하여 소리가 조금 세게 나므로 획을 더하였다. ㄴ에서 ㄷ, ㄷ에서 ㅌ, ㅁ에서 ㅂ, ㅂ에서 ㅍ, ㅅ에서 ㅈ, ㅈ에서 ㅊ, ㅇ에서 ㆆ, ㆆ에서 ㅎ으로 그 소리(의 세기)를 바탕으로 획은 더한 뜻은 모두 같다. 그러나 오직 ㆁ이 된 것만은 다르다. 반설음 ㄹ과 반치음 ㅿ도 혀와 이 모양을 본뜨긴 했으나 그 체(體, 바탕으로 삼은 기본 글자)가 다르며, (소리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한 의미는 없다.

무릇 사람이 소리를 내는 것은 오행에 근본이 있는 것이므로 제반 사시(춘하추동 사계절, 아침·낮·저녁·밤의 네 때)와 합하여도 어그러짐이 없고, 오음(궁상각치우)에 맞추어도 틀리지 않는다.

[『訓民正音』制字解, “初聲凡十七字. 牙音ㄱ 象舌根閉喉之形. 舌音ㄴ 象舌附上齶之形. 脣音ㅁ 象口形. 齒音ㅅ 象齒形. 喉音o 象喉形. ㅋ比ㄱ 聲出稍 故加劃. ㄴ而ㄷ ㄷ而ㅌ ㅁ而ㅂ ㅂ而ㅍ ㅅ而ㅈ ㅈ而ㅊ o而ㆆ ㆆ而ㅎ 其因聲加劃之義皆同 而唯ㆁ爲異. 半舌音ㄹ 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 無加劃之義焉. 夫人之有聲本於五行 故合諸四時而不悖 叶之五音而不戾.”]

 

훈민정음 초성의 상형 원리

 

ㄱ : 혀뿌리가 목젖에 닿는 모양

ㄴ :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 : 입 모양

ㅅ : 이 모양

ㅇ : 목구멍 모양

 

조음기관인 목구멍·어금니·혀·이·입술의 각 생태적 특징들을 해당 오행에 각각 연관시켰고, 그 소리의 특징들도 각 오행의 모습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이것들을 각 계절과 오음에도 관련지었다. 그리고 초성의 이치 속에 음양·오행·방위 등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고 하였다.

 

"목구멍은 깊고 윤택하니 (오행상) 수(水)이다. 그 소리가 공허하고 통하여 마치 물이 허명(虛明)해서 유통하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겨울이고 소리로는 우(羽)이다. 어금니는 어긋나고 기니 (오행상) 목(木)이다. 그 소리가 목구멍소리와 비슷해도 실하므로 마치 나무가 물에서 생하지만 형체가 있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봄이고 소리로는 각(角)이다. 혀는 날카롭고 움직이니 (오행상) 화(火)이다. 그 소리가 구르고 날리므로 마치 불이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여름이고 소리로는 치(徵)이다. 이는 단단하고 자르니 (오행상) 금(金)이다. 그 소리가 부스러지고 걸리므로 마치 쇠가 부스러지고 단련되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가을이고 소리로는 상(商)이다. 입술은 모나고 합해지니 (오행상) 토(土)이다. 그 소리가 머금고 넓으므로 마치 땅이 만물을 함축하고 광대한 것과 같다. 계절로는 늦여름이고 소리로는 궁(宮)이다. 그러나 물은 만물을 낳는 근원이고, 불은 만물을 이루는 작용이므로 오행 중에서 수(水)와 화(火)가 큰 것이 된다. 목구멍은 소리를 내는 문이고, 혀는 소리를 나누는 관이므로 오음 중에서 후음과 설음이 주가 된다. 목구멍은 뒤에 있고, 어금니는 그 다음이므로 목구멍소리는 북쪽, 어금닛소리는 동쪽이 된다. 혀와 이가 또한 그 다음이므로 혓소리는 남쪽, 잇소리는 서쪽이 된다. 입술은 끝에 있으므로 흙은 일정한 위치가 없고 사계절에 붙어 왕성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런즉 초성 중에 스스로 음양오행과 방위의 수가 있는 것이다."

[『訓民正音』制字解, “喉邃而潤 水也. 聲虛而通 如水之虛明而流通也. 於時爲冬 於音爲羽. 牙錯而長 木也. 聲似喉而實 如木之生於水而有形也. 於時爲春 於音爲角. 舌銳而動 火也. 聲轉而颺 如火之轉展而揚揚也. 於時爲夏 於音爲徵. 齒剛而斷 金也. 聲屑而滯 如金之屑瑣而鍛成也. 於時爲秋 於音爲商. 脣方而合 土也. 聲含而廣 如土之含蓄萬物而廣大也. 於時爲季夏 於音爲宮. 然水乃生物之源 火乃成物之用 故五行之中 水火爲大. 喉乃出聲之門 舌乃辨聲之管 故五音之中 喉舌爲主也. 喉居後而牙次之 北東之位也. 舌齒又次之 南西之位也. 脣居末 土無定位而寄旺四季之義也. 是則初聲之中 自有陰陽五行方位之數也.”]

 

『훈민정음』의 설명 내용을 정리하면 표와 같다.

우주만물의 구성·운행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소리 역시 오행에 근본이 있으므로 초성인 자음은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즉 목화토금수의 오행상생(五行相生) 순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조음기관의 위치에 따라서는 가장 안쪽(목구멍)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장 바깥쪽(입술)으로 설명하고 있다.

 

『훈민정음』제자해 초성의 내용과 작명 소리 오행

 

한자 획수에 근거한 수리성명학은 작명가들마다 획수 계산법이나 조합법이 분분한데다가 한국 사람의 이름은 한글을 주로 사용되므로 소리오행으로 이름을 짓는 발음성명학이 점차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발음성명학에서는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에 따라 후음과 순음을 훈민정음 제자해의 오행 분류와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이런 차이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3-5. 주요 작명법 비교

 

한국사회에서 가장 흔히 이름의 예로 드는 ‘홍길동(洪吉童)’과 홍길동의 선천적인 사주를 갖고서 지금까지 설명한 현재 통용되는 대표적인 이름짓는 방법들의 풀이를 예시해보면 다음 표와 같다.

 

홍길동이란 소설 속의 가상 인물의 사주를 알 수는 없으므로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許筠, 1569~1618)의 사주로 대치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허균은 자신의 문집『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문부(文部) 해명문(解命文)에서 자신은 “기사년(1569, 선조2) 병자월 임신일 계묘시에 태어났다(不佞生於己巳年丙子月壬申日癸卯時).”고 하였다. 따라서 홍길동의 사주를 허균의 사주인 己巳 丙子 壬申 癸卯로 가정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주요 작명법들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다음 비교를 통해서 같은 사주, 같은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각 작명 방법에 따라 이름의 길흉 풀이가 각기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어느 한 작명법만을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주요 작명법에 의한 ‘홍길동(洪吉童)’의 이름 풀이

  

 

 

4. 이름과 작명의 특성

 

4-1. 작명에 나타난 특성

 

이름에는 이름의 주인공인 특정 개인을 지칭한다는 개별성(個別性),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명이인이 다수 존재한다는 중복성(重復性), 성과 항렬자 등을 통해 가계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계통성(系統性)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름이라면 대부분 갖는 일반적 특성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기복신앙적 관점에서 나타난 이름짓기의 특성을 유형화하면 대략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주술성(呪術性)-역설(逆說)과 유사(類似) 주술, 음양오행의 중화(中和) 및 상생(相生) 중시, 상수역학(象數易學)의 길수(吉數) 중시, 고유성(固有性)과 운명성(運命性), 현세(現世) 중시 및 세속성(世俗性) 등이 그것이다.

 

첫째, 기복신앙적 관점에서 이름짓기 행위는 ‘주술성-역설과 유사 주술’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태어난 아기가 장차 잘되게 하기 위한 일념으로 부모는 우선 아기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려고 한다. 좋은 이름은 부를 때마다 잘되라는 축복이 되며 나쁜 이름은 망하라는 욕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천명위복(賤名爲福)이라 해서 귀한 아이일수록 오히려 아명으로 비천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사귀(邪鬼)들의 시기와 질투를 피해 잘살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선조 고종 임금의 아명은 ‘개똥이’였고 황희 정승의 아명은 ‘도야지’였다.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본래 소망대로라면 ‘길동(吉童)’이나 ‘귀동(貴童)’·‘금동(金童)’·‘옥동(玉童)’이가 ‘좋은 아이’, ‘귀한 아이’란 뜻의 이름이므로 적합하겠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개동(介同)’·‘계동(季同)’이란 이름을 붙여서 잡귀의 질투를 예방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몽골에서도 역신(疫神)을 속이기 위해 집에서 사용하는 ‘이상한’ 이름이 따로 있다. 남자 아이가 여자 이름을 가지거나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개의 이름을 가지기도 한다. 딸아이에게 ‘끝년’이나 ‘말숙’이 ‘종희’, ‘막녀’ 등으로 이름을 붙여 자녀의 출산을 중단하고자 하며, 아들이 귀한 집에서는 딸아이에게 ‘붙들이’나 ‘바래’, ‘후남(後男)’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끝’이나 ‘말(末)’, ‘종(終)’, ‘막(莫)’이 마지막이란 뜻이므로 단산(斷産)을 기원하고, ‘붙들이’나 ‘바래’, ‘후남’는 사내아이를 붙들어 오거나 바라며, 다음[後]에는 꼭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사(類似)주술의 일종이다. 이러한 주술적 이름짓기 풍속은 티베트에서도 있으며, 구약성서 시대에도 귀신들이 매력적인 아이들을 소유하려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혐오감이 느껴지는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주술(呪術)의 특성을 ① 공감―유사·전염―원리의 잘못된 적용으로 인한 비합리적인 사고의 결합, ② 초자연적인 존재와 초월적인 힘의 직접 조작·통제, ③ 주술행위를 통한 감정 표현과 심리적 안정, 미지세계에 대한 불안 해소, ④ 의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제액초복(除厄招福)이라는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의 지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천명위복(賤名爲福)의 작명행위는 초자연적 존재인 귀신을 사람이 직접 속이고 조작·통제하려는 주술행위이다. 예쁜 아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오히려 “그놈 밉게 생겼다.”고 반대로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딸아이에게 ‘말’, ‘종’, ‘후남’ 등의 이름을 붙여서 단산이나 득남을 기원하는 행위는 유사주술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이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언참(言讖) 사상과 말의 주력(呪力)을 믿는 관념이 농축되어 있다.

 

둘째는 음양오행의 중화 및 상생의 중시이다. 성명자의 배합에서 상생을 중시하는 관념은 굳이 기복신앙적 관점에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강조되었다. 즉 항렬자를 따라 이름을 지을 때도 오행을 따르는 경우 모두 오행의 상생 배열인 ‘木-火-土-金-水’를 따랐지 상극 배열인 ‘木-土-水-火-金’이나 ‘木-金-火-水-土’를 따르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이름에 음양오행의 중화와 오행의 상생을 중시하는 인식은 기복신앙적 관점에서 보다 구체적이며 체계적으로 이름짓기에 반영되었다.

 

이름에서 음양오행의 중화 및 상생을 중시하는 인식은 이름의 고유성·운명성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좋은 사주가 되려면 사주 중에 음양과 오행이 골고루 분배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사주 중에 음기(陰氣)가 강하고 양기(陽氣)가 약한 경우에는 양수(陽數)를 가진 이름자로 보완해야 하고, 오행이 편중된 사주라면 왕(旺)한 것을 억누르고[剋泄] 쇠(衰)한 것을 도와주는[扶助] 오행이 이름자에 보완되어야 당사자에게 진정 좋은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1634년 명(明)의 당금지(唐錦池)가 편찬한『연해자평(淵海子平)』은 현대 사주명리 이론체계를 완성한 사주명리서이다.『연해자평』도 “인명의 영고득실은 모두 오행의 생극 중에 있는 것이고, 부귀빈궁도 팔자의 중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碧淵賦>, 人命榮枯得失, 盡在五行生剋之中. 富貴貧窮, 不出乎八字中和之外.], “중화의 기를 얻어 취하면 복록과 수명이 편안하고 모든 일이 마땅하게 된다.”[<偏官詩訣>, 格中取得中和氣, 福壽康寧百事宜.], “오행의 귀함은 중화에 있으니 이치로써 귀함을 구할 것이지 삼가 구차하게 말하지 말라.”[<五行生剋賦>, 五行貴在中和, 以理求之, 愼勿苟言.], “오행은 매우 지나쳐서는 안 되고, 팔자는 모름지기 중화를 얻어야 한다. (…) 장수는 중화를 얻었기 때문이고 요절은 편고하여 잃었기 때문이다.”[<五行元理消息賦>, 五行不可太甚, 八字須得中和. (…) 遐齡得于中和, 夭折喪於偏枯.], “중화는 복이 되고 편당은 재앙이 된다.”[<金玉賦>, 中和爲福, 偏黨爲災.]고 하면서 중화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였다.

 

셋째는 상수역학에서의 길한 수를 중시하는 인식이다. 성명자의 획수를 계산하고 조합하여 원형이정ㆍ천지인총 등으로 격을 구분하여 이름에 담긴 평생의 운세를 추리 판단한다. 그리고 그 수를 가지고 64괘 가운데 대성괘를 작괘하고 384효 가운데 동효를 산출하여 그 역상(易象)으로 이름의 길흉을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 북송대의 도서(圖書)상수역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늘 변하여 바뀌며 일정하지 않은데 천도(天道)의 변(變)이다. 길흉회린(吉凶悔吝)은 늘 변하여 바뀌며 고정되어 있지 않은데 인도(人道)의 응(應)이다.”[邵雍,『皇極經世書』6, 「觀物外篇」하, “元亨利貞, 變易不常, 天道之變也. 吉凶悔吝, 變易不定, 人道之應也.”]라고 하면서 상과 수의 응용에 관해 말하기도 했다.

 

상수(象數)는 점서(占筮)체계에서 처음 생겨났다. 거북점에서 나타나는 조짐의 형상과 시초점에서 얻은 추상적인 숫자를 매개로 상제와 신명의 뜻을 헤아리고 세상사의 길흉을 읽고자 했다. 상이 수로 변환되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인식도 점점 심화되어갔다. 한대(漢代)에는 음양오행설과의 연관 하에 상과 수의 원리를 취하여 본래 점서(占書)인『주역』의 원리를 해석하였다. 송대(宋代)에는 도서학(圖書學)이라고 해서 태극도(太極圖), 선천도(先天圖), 하락도(河洛圖) 등『주역』에 관한 도상들을 그려내고 해석하면서 자연스레 상과 수와 같은 형식논리에 주목하게 되었고 자신의 이론적 사유의 단면을 함축적으로 담아내었다.

 

 

4-2. 이름의 고유성과 운명성

 

넷째는 이름의 고유성과 운명성이다. 이름은 개별적이기도 하지만 중복적이기도 하다고 앞서 말했는데, 이름 주인의 사주와 연관이 되어 이름이 지어지고 불리어질 때는 고유한 것으로 되어 그 사람의 운명에 간여하는 이름이 된다고 기복신앙적 관점에서는 말한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 운명은 생년월일시의 사주(四柱)로 정해지며, 이름은 그 선천명(先天命)의 범주 내에서 후천적으로 공(功)을 더하여 조화하는 유도력(誘導力) 작용을 한다고 한다. 이름이 인간의 지정된 운명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려면 그 사람의 사주와 서로 연관이 되면서 일상생활에 직접 관여하는 이름이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이름 그 자체의 길흉을 떠나서 그 주인의 선천적 사주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이름이 자기의 이름이며 곧 주체적인 성명이 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작명가도 이름이 타고난 선천 운명과 조화를 잘 이룬다면 더 강한 기운이 이름에서 나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음양오행에 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부모들이 직접 아이 이름을 짓는 경우에는 생년월일시, 즉 사주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부르고 쓰기 좋게 지으라고 간혹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작명에는 사주와 연관하여 조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만약 이 조화 관계가 잘못되거나 하면 사주의 운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수가 많으므로 이름은 당사자의 사주와 연관·조화되어 고유성·운명성을 띠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름의 고유성과 운명성

성명(개별성·중복성)+사주(생년월일시) ⇒ 고유성·운명성

 

다섯째는 현세 중시 및 세속성이다. 지금은 성별을 그다지 가리지 않고 한두 자녀만을 두는 경향이 일반적 추세라서 남아뿐 아니라 여아의 경우에도 이름을 지을 때 부모들이 정성을 많이 기울인다. 그러나 불과 30~40년 전만하더라도 여학생은 한 학반에도 같은 이름이 두어 명 겹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아의 이름을 지을 때는 남아만큼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남아의 경우에는 가능한 항렬을 따르고자 하며 사주와 음양오행을 계산하는 전문 작명가를 통해 이름을 짓는 부모가 많은 것도 자식의 이름 석자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남아선호 사상에 기반을 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름자의 획수·오행·역상 등을 가지고 이름에 담긴 운명의 길흉을 나타내는 점사에도 현세의 복을 기원하는 세속성이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81수 중 제1수의 풀이는 “일 두령운(一 頭領運): 삼라만상의 기본수이고 최고로 좋은 수이며 부귀공명하고 일생에 안락하며 태평하여 장수하고 명예를 얻으면 말년에 이르러 더욱 좋은 수리이다.”라고 해서 현세의 행복과 부귀공명, 무병장수를 말하고 있다.

삼원오행 중에서 ‘土火木’의 풀이는 “귀인의 도움으로 영화가 있으며 부부간의 정이 있고 자손 복이 있다.”라고 해서 영화와 가족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이름에 나타난 주역 괘상 중에서 ‘화산려(火山旅)’의 풀이는 “현재 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어주지 않는다. 기초적 운이 약한 때이므로 욕심을 부리지 말고 기초를 다지는 데 노력하라. 주거를 옮기는 것이 좋다. 유학을 가거나 집을 떠나 타지에서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 단 물질적 혜택은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 수동적 자세로 임해야 하는 시기이다. 적극적으로 나서다보면 실패가 따르게 마련이니 조심하라. 또한 불시의 화재를 당할 수도 있다.”라고 해서 당장의 현실과 직접 연관된 일의 길흉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세 중심의 작명관은 보다 적극적인 기복신앙 행위로 구현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사주나 점을 본 후 점사 내용에 따라 부적·굿·고사·이장·개명 등과 같은 주술적 개운 행위를 하는 까닭도 바로 강렬한 현세구복 의지 때문이다.

 

 

5. 맺음말

 

사람으로 태어나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름과 이름짓기는 인류의 보편적 문화현상이다. 그러나 이름을 갖게 되는 경위는 각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다. 이름을 짓는 과정에는 그 언어 공동체 특유의 사유방식과 신앙체계가 잘 나타난다.

 

현대 한국사회는 소리를 표기하는 소리글자인 한글과 모양을 본떠 그린 그림문자인 한자가 공존한다. 그래서 소리글자인 한글의 음(音)과 그림문자인 한자의 획(劃)을 준거로 이름을 짓는 풍속이 성행하고 있다.

음과 획을 음양과 오행으로 각기 구분한 후, 음양오행의 중화와 상생, 선천적인 사주팔자와의 조화, 상(象)과 수(數)의 길성(吉星) 추구 등으로 이름을 통해 현세에서의 복(福)인 부귀영화와 공명창달, 무병장수 등을 적극적으로 기원해오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면서 말의 주력(呪力)을 믿는 우리 관념 속에서 이름은 개별 호칭부호를 넘어 주술 언어부호로도 작용한다. 즉 한국인에게 있어 이름은 단순히 호칭 부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현세의 행(幸)·불행(不幸)을 좌우하는 주술적 부호의 역할도 한다.

 

본 연구는 이 점에 착안하여 기복신앙적 관점에서의 이름짓기 방법과 특성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와 이름짓기의 경향성도 함께 고찰하였다. 이름짓는 방법에 관한 분석은 음양오행의 중화 여부가 곧 길흉화복의 요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름자의 음과 획·수·상 등을 통해 음양오행의 중화와 상생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이름짓기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을 짓고자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견이 존재한다고 했다. 게다가 다양한 이견들을 조율할 수 있는 논의 과정도 그동안 전무하였다. 이 때문에 현존하는 이름짓는 방법상의 모든 기준들을 빠짐없이 충족할 수 있는 좋은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이름의 예로 드는 홍길동(洪吉童)이란 이름 하나만 가지고도 작명 방법이 무엇이냐에 따라 이름의 길흉 의미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현재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대표적인 이름짓는 방법들의 풀이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처럼 같은 이름을 두고도 길흉 판단이 서로 엇갈리는 작명 현실은 곧 이름짓기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소리글자인 한글로 이름을 지을 경우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현행 소리오행의 분류가 훈민정음 제자 원리와 다르게 적용되고 있음도 본 연구에서 분명히 밝혔다. 즉 조음기관을 본떠 만든 자음에서 입술소리 ‘ㅁ·ㅂ·ㅍ’은 오행상 토(土)에 해당하고 목구멍소리 ‘ㅇ·ㅎ’은 수(水)에 해당한다. 그런데 현행 발음성명학에서는 정반대로 적용하고 있다. 앞으로 이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름의 일반적 특성은 개별성·중복성·계통성이다. 이외 기복신앙적 관점에서 이름이 갖는 특성을 다섯 가지로 유형화했다. 주술성-역설과 유사 주술, 음양오행의 중화 및 상생 중시, 상수역학의 길수 중시, 고유성과 운명성, 현세 중시 및 세속성 등이다. 이들 중에서도 기복신앙적 관점에서 좋은 이름이란 부르기 쉽고 쓰고 듣기 좋은 이름만이 아니며, 길수로만 구성된 이름도 결코 아니라 본명인의 선천적 음양오행의 품기(稟氣)를 함축하고 있는 사주팔자와 상통·조화되는 이름이어야 한다는 게 한국사회에서 이름짓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