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심리학

영혼의 세계 - 아니무스(animus)

rainbow3 2020. 3. 5. 00:40


 

 

Anima / Animus Aproximación a dos arquetipos junguianos

 

 

Diagram linking anima, animus and ego

 

 

 

 

아니무스(animus)

 

1. 지렁이 신랑 이야기

 

옛날에 한 부자가 광주 북촌에 살았는데, 그의 딸 하나가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 매일 자주색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합니다.”하니 , 그 아버지가 말하기를,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가지고 그 사람의 옷에 꽂아 두어라.” 했다.

그렇게 해 놓고 그 이튿날 실을 따라서 북쪽 담 밑에 가 보니 바늘이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부터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 일컬었다.1]

 

삼국유사에 실린 견훤 설화는 폰 프란츠가 소개한 별 여신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별 여신 이야기에서는 총각이 별과 사랑을 나눈 이야기라면, 견훤 신화는 처녀가 지렁이와 사랑을 나눈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심리적 사건이 환상적 이미지로 표현된 것들이다. 2]

 

용모가 단정한 딸의 상은 겉으로 보기에 남성과 은밀한 사랑을 나눌 것 같지 않다. 남성은 밤에만 찾아온다. 밤에 찾아오는 남성은 여성의 내면에 있는 연인상이다. 여성의 꿈이나 환상 속에 나타나는 남성은 대개 아버지 원형을 대변하거나 아니무스다. 자주색 옷을 입은 남성은 고귀한 혹은 신비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열정을 드러내는 빨강과 정신적 차가움을 상징하는 파랑이 혼합된 보라는 전체성과 완전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보라는 대극의 혼합물로서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밤에는 건강한 남성으로 낮에는 지렁이로 활동하는 연인은 아직 분화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새로 태어난 남아가 이야기 속의 남성을 대신하여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것이다. 이것은 분화되지 않은 아니무스의 원초적 모습을 상기시킨다.3]

 

연인은 낮에 지렁이로 드러난다. 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아니무스는 마치 지렁이처럼 징그럽고 볼품없는 무가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집단 무의식의 원형에 사로잡힐 때 어떤 외부적 힘이나 영에 의해 사로잡힌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다. 따라서 절대 타자로 다가오는 아니무스는 충분히 의식화되기 전에는 마치 외계인처럼 미물인 지렁이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지렁이는 뱀처럼 외형적으로는 남성의 본능적인 성적 에너지를 연상하게 한다. 뱀이 가끔 사탄으로 그려지는 반면, 지렁이는 지하세계의 상징은 죽음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지렁이 신랑에게 꽂힌 바늘이 큰 바위틈이나 우물바닥으로 이어져 살펴봤더니 지렁이가 바늘에 꽂혀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물 안의 지렁이나 병 속의 여신은 모두 아니무스와 아니마의 표상들이다.

이들 모두 자궁으로 상징되는 우물이나 병 안에 갇혀 있다고 하는 것은 아직 모성으로부터 분화되지 않은 상태, 즉 무의식으로부터 자아가 탄생하기 이전임을 암시한다. 4]

 

아니무스의 의식화와 함께 여성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와 분리된다. 아버지가 딸에게 신랑의 정체를 알게 해 주는 것과 그것으로 아들을 얻는 과정은 심리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딸의 성장과정을 보여 준다.5]

 

1]박종수 「융 심리학과 성서적 상담」 ( 서울 : 학지사, 2009 ) , 267

2]lbid, 267

3] lbid, 268

4]lbid, 268-269

5] lbid, 269

 

 

2. 아니무스는 무엇인가

 

여성의 영혼, 곧 내적 인격을 아니무스라 부른다. 여성의 무의식에 내재된 아니무스는 부성적 로고스로 대변되는 남성적 성향을 띤다. 여성은 남성 원리인 아니무스에 의해 의식적 인격을 보상받으며 심리적 균형을 추구하게 된다, 남성에게 로고스의 기능이 우세하면, 여성에게는 대체로 에로스의 원리가 우세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온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해서 이 둘의 기능은 서로 통합될 필요가 있다. 아니마와 마찬가지로 아니무스 또한 개인적 콤플렉스이면서 동시에 원형적 이미지다. 여성은 실제적 아버지로부터 남성을 최초로 경험한다. 이러한 현실적 남성 경험이 아니무스의 개인적 콤플렉스를 대변한다.

동시에 여성 조상들이 남성 경험을 전수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인류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보편적 남성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아니무스의 원형적 이미지는 여성에게 창조적인 출산 능력을 부여한다.6]

 

여성의 자아에 대한 아니무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첫째, 아니무스는 자아인격에 올바름과 정의에 대한 확고부동한 감정을 부여한다.

둘째, 아니무스는 대란 대상(주로 남성)에게 투사되어 그 대상의 내면이나 현실 인식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여성의 의식은 아니무스에 강력하게 매혹되며, 사로잡힐 경우 마치 최면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이때 자아는 도덕적 팽창을 느끼며 방어적 행동을 하거나, 그와 반대로 자신을 정당화함으로서 결국 열등감이 증가된다. 최악의 경우 여성의 자아가 아니무스의 지배를 받게 되면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며, 열등감 때문에 상호 교감이 불가능하게 된다.7]

 

6]lbid, 269

7]lbid, 270

 

3. 아니무스는 어떻게 경험되는가

 

아니무스는 주로 여성의 꿈이나 환상 속에서 주로 남성으로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아니무스는 현실 속에서 주로 남성과의 이성 관계를 통해 인식된다. 왜냐하면 아니마, 아니무스 투사는 오로지 이성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8]

하지만 여성의 아니무스를 인식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군대로 대변되는 아니무스는 주로 집단적인 복수 형태로 나타난다. 아니무스는 고정된 사고방식, 집단적 의견과 무의식 측면에서 의식화되기 전에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표출된다.

무의식의 심층에 내제된 아니무스는 그 원형적 특성에 따라 처음에는 일단 부정적으로 경험된다, 대체로 다양한 합리적인 말들과 의견 제시로 표출되는 아니무스가 강하게 활성화되거나, 그런 아니무스에 사로잡히게 되면 여성은 갑작스럽게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비판적이 되거나 논리적인 측면에서 공격적이 된다.

예를 들어, 한 여성 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 저런 저질적인 논문을 쓴 학생은 총으로 쏴 버리고 싶다.”라는 격한 말을 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조목조목 따지듯이 지적했다면, 그녀는 그 순간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상태로 볼 수 있다.

아니무스는 이성에게 투사되어 환상적인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구조화된 의견 제시를 함으로써 대인관계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여성이 무의식의 정신적 활동에 주목하지 않고 의식화에 무관심할 때 아니무스는 자동적으로 부정적이 되며, 대인관계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인도한다.

정신에너지인 리비도가 무의식의 포로가 될 때 아니무스가 활성화된다. 이에 따라 아니무스는 거대해지고 의식적 자아를 압도하여 결국 전인격을 지배하게 된다.9]

 

여성의 자신의 견해와 아니무스에 의해 제기된 의견을 구별할 수 있을 때, 아니무스는 도움이 되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 아니무스는 아버지 모습을 통해 일상적인 의견뿐만 아니라 ‘영적’ 혹은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견해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때 아니무스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재자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된다.

여성의 아니무스가 긍정적으로 활성화될 때, 그녀는 자신의 여성적 자아와 아니무스에 의한 의견 사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못할 때 대인관계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폰 프란츠는 여성의 아니무스 또한 4단계의 발달과정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1단계 : 첫 번째 단계에서 아니무스는 꿈이나 환상에서 육체적 힘의 화신, 즉 운동선수, 근육질 남성 혹은 흉한으로 나타난다.

 

2단계: 두 번째 단계에서 아니무스는 여성에게 주도권과 계획된 활동능력을 부여한다. 아니무스는 무의식 차원에서 여성의 독립과 자신의 사회적 경력에 대한 소망을 자극한다.

 

3단계: 세 번째 단계에서 아니무스는 꿈에서 주로 교수나 성직자로 인격화되어 나타나 여성의 의견이나 말을 대변한다.

 

4단계: 네 번째 단계에서 아니무스는 영적 화신으로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 소피아 아니마처럼, 아니무스는 여성의 의식과 무의식을 매개한다. 신화에서 네 번째 단계의 아니무스는 신들의 전령인 헤르메스로 나타난다. 꿈에서 아니무스는 여성에게 도움을 주는 안내자가 된다.10]

 

아프로디테와 사이키 신화 역시 여성의 개성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사이키는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와 결혼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사이키가 보완해야 할 것들은 주로 여성의 내면에 있는 아니무스의 성향들이다. 여성은 긍정적인 아니무스를 활성화시킴으로서 정신의 전체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존슨은 사이키가 수행한 과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첫 번째 과제 – 분별력 키우기 : 프시케는 온갖 종류의 씨앗이 산더미처럼 뒤섞여 있는 알곡더미 씨앗을 종류대로 분류해야 한다. 여성의 첫 번째 과제는 혼돈의 상태로 뒤섞여 있는 의견들을 하나하나 분별해 내는 작업이다. 프시케는 개미떼의 도움으로 섞여진 곡식을 분리해 낸다.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개미의 특성은 여성의 분별력이 비판적인 이성기능보다는 직관적 통찰력에서 비롯될 때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게 됨을 보여 준다.

 

두 번째 과제 – 바른 자세 갖추기 : 두 번째 과제는 숫양의 황금빛 털을 가져오는 것이다. 위대하고 본능적인 커다란 힘을 상징하는 숫양은 여성에게 위협적이다. 프시케가 좌절하여 자살하려고 하자 강가의 갈대가 황금털을 채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해질녘에 숫양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가시나무나 낮은 나무에 걸린 황금양털을 모아 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로고스를 상징하는 황금 양털은 숫양으로 대변되는 남성과의 직접적인 싸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우회할 때 자연스럽게 획득된다.

 

세 번째 과제 – 크리스탈 잔에 생명수 담기 : 아프로디테는 프시케에게 크리스탈 잔을 주며 그 잔에 스틱스 강의 생명수를 담아 오라고 명령한다. 지옥까지 흐르는 스틱스 강에서 물을 담아 오라는 것은 곧 죽음의 길이기도 하다. 프시케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독수리가 나타나 강물을 병에 담아 온다.

스틱스 강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이르는 삶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 안에서 생명수를 얻기 위해 독수리의 눈처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여성은 수평적인 관계 능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수직적인 통찰력도 동시에 필요하다.

 

네 번째 과제 – 지하 세계에서 묘약을 구해 오기 : 프시케는 지하세계의 여왕 페르세포나가 지닌 아름다운 묘약이 든 상자를 가지고 와야 한다.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처럼 죽음의 세계를 통과하기 위해 다양한 시험이 부과된다. 이때 동정심에 이끌리면 마법에 사로잡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다.

이 과정에서는 죽어 가는 사람이 구해 달라고 해도 “아니요.”라고 뿌리쳐야 한다. 이미 관대함을 경험한 여성은 이제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하세계에서 음식을 거절한 프시케는 결국 네 가지 과제를 완수한다.11]

 

‘콩쥐팥쥐’ 이야기에도 프시케 신화의 경우처럼 여성의 개성화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이 숨어 있다.

팥쥐 어머니가 콩쥐에게 내린 첫 번째 과제는 돌밭에서 자갈을 골라내는 일이다. 나무호미 자루가 부러져 울고 있을 때 하늘에서 검은 소가 나타나 주고 간 쇠호미로 콩쥐는 자갈을 골라낸다. 프시케의 경우처럼 여성의 분별력을 요구하는 시련이다.

두 번째 과제는 구멍이 난 독에 물을 채우는 작업이다. 구멍 난 독은 마치 여성의 리비도가 절제되지 못하고 외부로 흘러 나가는 것과 같다. 여성의 자궁으로 상징되는 독에 물을 채우는 것은 생명수를 내면에 채우는 작업이다. 내면의 인격이 허약하여 깨진 상태에서 두꺼비 아니무스가 구멍 난 독을 막아 준다. 여성에게 부과된 두 번째 과제는 여성성과 모성성으로 대변되는 정신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세 번째 과제는 베 짜는 일과 곡식을 말리는 작업이다. 씨줄과 날줄이 정교하게 맞물려 베가 되는 것은 여성의 관계능력을 상징한다.12]

 

세 번째 역시 새들이 와서 곡식의 껍질을 까 준다. 하늘의 황소, 두꺼비, 그리고 새 모두는 인격의 본능적 측면을 암시한다. 아직 분화되지 않은 내면의 영혼이 의식에 통합될 때 여성은 보다 건강한 정신활동을 하게 된다.13]

 

8]lbid, 271

9] lbid, 272

10]lbid, 273

11]lbid, 275

12]lbid, 275-276

13] lbid, 276lbid, 276

 

 

4. 아니무스의 심리작용

 

1) 투사

 

여성의 아니무스는 남성에게 투사된다. 아니무스 투사가 일어나면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비현실적인 기대와 표독성을 드러낸다. 아니마와 마찬가지로, 아니무스 역시 질투하는 연인이다. 아니무스는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과의 실질적 관계보다는 그 남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갖게 한다.

아니무스 의견은 집단적이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의 판단을 무시하고 사회적 이해관계에서 판단하게 된다. 아니무스 투사는 환상적인 사랑을 하거나 남성과의 악한 증오관계의 대극적 관계를 연출한다.

 

아니무스는 가끔 화가로 나타나거나, 어떤 종류의 투사기체를 소유하거나, 영화 기사 혹은 미술관 소유자로 나타난다. 이런 모든 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중재하는 아니무스 기능을 나타낸다. 무의식은 아니무스에 의해 전달되고 현시되는 그림들, 즉 환상들로 나타나거나 환자의 삶이나 행동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아니무스 투사는 환상적인 사랑관계를 일으키거나 영웅이나 악마를 증오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아니무스 투사의 대표적인 희생자들로는 테너 가수, 예술가, 영화 배우, 운동 선수 등이 있다.14]

 

 

2) 사로잡힘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은 본래의 여성성, 즉 사회적으로 적응된 여성적 페르소나를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다. 자아가 페르소나와 동일시 될 때, 페르소나와 보상적 관계에 있는 아니무스는 자아를 지배하게 된다. 그 결과 여성은 본래의 여성성을 상실하여 어색한 남성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마치 성전환을 한 여성처럼 보인다.

이러한 정신적인 성전환은 내부의 아니무스가 외부 인격을 지배하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이것은 외부세계에 강하게 매료된 페르소나가 강하면 강할수록 내면 인격인 아니무스의 보상적 영향력은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외부세계에 매이게 될수록 내면세계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결과적으로 무의식의 지배를 초래한다.

 결국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은 내면의 남성적 인격과 동일시되어 자신의 여성성을 상실할 위헝에 직면한다.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심리적 상태에 이른다.

그녀는 고집이 세고, 원칙을 고수하며, 매사에 규칙을 정하고, 교리적이며, 세상을 개혁하려고 하고, 이론에 밝으며, 소문을 잘 퍼트리고, 논쟁적이거나 지배적이다. 15]

 

융이 제시한 다음의 사례는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여준다.

철학을 전공한 지적인 여성 환자는 치료를 시작할 때 자신이 아버지에게 고착되어 있고, 그 결과 아버지를 닮은 남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여성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남성을 만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지성 (로고스) ,즉 아니무스가 원하는 남성을 만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지적인 인격은 인격이 통합되지 못할 때 대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판적이며, 작은 목소리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여성은 상대하는 남성으로 하여금 성질이 사나워지도록 유도하며, 비판은 항상 약점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 결과 생산적인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상대방을 지치게 한다.

이것은 결코 이 여성의 의도한 것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남성을 초능력자의 위치로 올려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한다. 결과적으로 남성은 자신이 영웅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 여성을 떠나가게 된다. 마침내 이 여성 옆에는 자신에 대한 어떤 확신도 없는 남성만 남게 된다. 16]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은 대게 “우리는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 라거나 “누구나 알고 있다.” 혹은 “항상 그렇지.”라는 식으로 말한다. 여성의 꿈속에서 대개 남성 집단이나 어떤 집단적 이미지로 등장하는 아니무스는 여성을 집단적 이상에 사로잡히게 함으로써 여성 본연의 감성보다는 보편적 원리나 의견을 중시한다.

신화, 동화, 민담에 출현하는 왕자들은 이런 성향의 아니무스가 어떻게 의식화되는가를 보여준다.

 

"많은 신화와 민담들은 마법에 의해 동물이나 괴물로 변하여 어떤 여성에 의해 구원받은 왕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아니무스가 의식을 향해 발전해 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가끔 여성 영웅은 그 신비한 연인에 대한 어떤 질문도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그녀는 어둠 속에서 단순히 그를 만나기도 한다. 그녀는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그 왕자를 구하려고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코 먹혀들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약속을 깨면서 단지 오랜 탐색 끝에 그 연인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삶 속에서 여성이 내면의 아니무스를 경험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며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 하지만 아니무스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게 될 때, 그 아니무스는 높은 가치를 지닌 내적인 동료가 된다. 이때 여성은 주도적이 되며, 용기와 지적인 명확성을 가지게 된다.17]

 

14]lbid, 276

15]lbid, 277

16]lbid, 278

17] lbid, 279

 

 

3) 보상

 

아니무스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여성성을 보상하는 기능을 한다. 무의식에 내재된 상들은 아니무스에 의해 환상이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삶의 양태나 행동을 통해 의식으로 전달된다. 무의식의 보완적이며 보상적인 기능은 신경증 환자로 하여금 위기를 모면하게 한다. 인간은 문명화될수록 더욱 의식적이 되고 심리가 복잡해져서 자신의 본능적(무의식적) 측면을 무시하게 된다. 문명화된 사람은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합리적 의견, 사회적 신념, 논리적 이론 그리고 집단적 성향들은 개인성을 추구하는 자아의식에 위험을 초래한다. 현대인의 무의식에 대한 진지한 관심만이 그 보상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아니무스는 아니마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측면분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모두 지니고 있다. 아니무스는 자아(ego)가 자기(self)를 경험하는 다리를 형성하여 새로운 창조기능을 형성한다.

 

" 회색 두건이 달린 망토를 걸친 두 사람이 현관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의 의도는 내 여동생과 나를 고문하려는 것이다. 내 동생은 침대 밑으로 숨지만 그들은 빗자루로 그녀를 끄집어 내어 괴롭힌다. 이제 내 차례다. 두 사람 가운데 지도자격인 남성이 나를 벽 쪽으로 밀친다. 그러나 갑자기 다른 사람이 벽에 걸린 그림을 끄집어 내린다. 그때 나는 내가 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얼마나 잘 그린 그림인지!” 그러자 그 두 사람 모두 나로 하여금 그들을 진정시키게 하면서 이내 친절하게 된다. "

 

꿈에 나타난 남성들의 이중성은 꿈꾼 사람의 이중적인 작업 성향을 보여준다. 이런 아니무스 존재들은 부정적인 생각 외에도 어떤 긍정적인 요소를 가져온다. 그들을 피해 도망가려는 여동생은 실제로 암으로 오래전에 사망했다. 그녀는 예술에 재능이 있었지만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꿈꾼 이가 꿈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자 남성들(아니무스)의 괴롭힘은 사라진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재능이 많았지만 항상 그것을 의심하며 살아왔다. 꿈은 동생의 모습에 투사된 자신을 보게 함으로써 예술적 재능을 발전시킬 것을 권하고 있다. 폴 프란츠에 따르면 , 꿈꾼 여성이 자신의 재능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때 아니무스는 긍정적으로 변하여 창조적인 힘을 제공한다.18]

 

18]lbid, 280

 

 

5. 아니무스의 의식화

 

아니무스가 의식에 동화될 때 무의식의 내용이 개인을 지배하게 되어 집단적 상징을 내포하는 환상을 발전시킨다.19] 치료과정에서 환상현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화하는 작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효과를 거둔다. 첫째, 수많은 무의식적 내용이 의식화됨으로써 의식이 확대된다. 둘째, 무의식의 주도적 영향이 점차 감소한다. 셋째, 무의식을 의식화함으로써 인격의 변화가 일어난다. 아니무스를 비롯한 원형의 규칙적인 배치는 심리치료서로 하여금 환자의 무의식 내용을 탐색하게 한다. 의식화 과정이 진행되면 무의식의 깊은 층에 있는 원초적 상들이 활성화되며 그 결과 의식의 태도, 즉 사고, 감정,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 융에 따르면, 신경증은 의식적 태도의 일방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일방적 태도에 변화가 생길 때 치료는 시작된다.20]

 

융에 따르면 아니무스는 일종의 기능이다. 아니무스가 그 성격상 상당한 수준으로 인격적인 성향을 띨 때 위험성을 내포한다. 큰 고기가 집단 무의식에 나타날 때 아니무스는 그것을 잡아먹는다. 뚱뚱해진 아니무스는 창자가 팽창해져서 큰 소리로 말한다. 우리는 그 말을 듣지 못한다. 이때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무의식의 논리로 사물을 다룬다. 갑자기 우리는 어떤 특정한 편견 때문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니무스는 마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어떤 의견으로써 표현된다. 마치 자신이 그 의견에 무조건 일치하는 것처럼 여성을 매료시키는 심리작용이 바로 아니무스 기능이다. 융은 아니무스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21]

 

" 하루는 말, 자동차 그리고 비둘기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들은 여관을 가려고 했다. 여행을 보다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여관을 목적지로 정하여 경주를 하기로 동의했다. 자동차는 홀로 질주해서 당연히 여관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그는 블랙커피를 주문하면서 기다렸다. 얼마 있지 않아 말이 헐떡거리고 땀을 흘리며 도착했다. 무더운 날씨여서 그는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둘이서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비둘기는 오기 않았다. 그 사랑스러운 늙은 비둘기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을 거라고 여기고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처음 출발했던 작은 길에서 얼룩처럼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먼지 속에서 매우 더럽고 흙투성이가 된 채 비둘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여기서 무얼 하고 있어요?”라고 묻자. 비둘기는 “ 난 우리가 걷고 있는 걸로 생각했어요.” 라고 말했다. 왜 비둘기는 그들이 걷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동차는 바퀴로 달리고, 말은 말굽으로 달리고, 비둘기는 발로 달려야 한다. 비둘기의 날개는 전혀 소용이 없다. 마치 핵심을 잘 피해 가듯이 말이다! 그것이 아니무스다." 22]

 

비둘기는 주로 여성으로 묘사된다. 비너스, 아스다롯, 성령 등이 주로 비둘기로 그려지곤 한다. 이야기 속에서 비둘기는 자신에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산다. 다른 이들과 경주를 해야 할 때도 그들의 입장에서 행동하고 느낀다. 자신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경주를 함으로써 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여성에게 아니무스는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원형적 잠재력이다. 여성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니무스를 의식하는 순간 내면의 힘은 강화되고 관계능력이 향상되어 건강한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아코비는 꿈 분석을 통해 부정적인 아니무스가 활성화된 사례를 소개한다.

23세의 여성 내담자가 두 번째 회기에 가져온 꿈 내용은 다음과 같다.23]

 

"나는 어떤 집 안에 있다. 그곳에 한 나이 든 남성이 나를 살해하려고 내 동맥을 자른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고 손수 상처를 싸매려고 노력한다. 그 다음에 나는 도망갈 수 있어서 의사를 찾는다. 그 남성이 나를 쫒아온다. 마침내 나는 의사와 함께 있는데, 그가 상처를 싸매 준다."

 

살해하려고 한 남성에 대한 내담자의 연상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경험이었다. 내담자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어머니는 지배적이었고 카톨릭 신자로써 자녀들에게 매우 엄격한 종교생활을 강조했다.

자녀들과 남편이 이런 방침을 거절하면 내담자의 어머니는 고통과 함께 그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울증을 보인 내담자는 사람에 대한 불신 때문에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한 내담자의 반항적인 태도는 일견 건강해 보였으나, 문제는 그럴 때마다 죄책감과 후회가 뒤따랐다는 점이다.

내담자는 점점 자신의 본성을 잃어 갔으며 점점 어머니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야코비의 견해에 따르면, 내담자의 초기 꿈에서 동맹을 자른 남성은 그녀 어머니의 부정적 아니무스를 대표한다.

어머니에게 투사된 내담자의 부정적 아니무스가 이제는 내담자의 내면에 내재화된 것이다. 어느 날 내담자가 꿈을 가져왔는데, 그 꿈에서 의사가 신적 아이에 대한 융의 책을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분석가는 그 꿈대로 실제로 융의 책을 내담자에게 주었다. 그런데 분석가의 의도와는 반대로 내담자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내담자는 그 책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자신을 어리석게 여겼다.이것으로 분석가는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등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꿈을 통해 발견된 사실은 내담자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의사인 분석가에게 투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분석가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는 치료자이면서 동시에 살인자 아니무스였던 것이다. 내담자는 분석가가 준 책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느꼈으며, 그것은 어머니의 억압적인 태도를 생각나게 함으로써 그에 대한 반항이 이어졌던 것이다.24]

내담자의 이런 반응은 건강한 것이며 독립을 향한 의지를 반영한다는 분석가의 해석으로 그녀는 크게 안정감을 느꼈다.

 

야코비의 분석은 우리에게 몇 가지 통찰력을 준다. 우선 꿈속의 인물을 성별에 따라 획일화된 상징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내담자를 죽이려고 한 남성을 무의식의 어두운 인격이라던지, 아니무스 혹은 아버지 원형의 표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우선 내담자의 감정의 흐름에 주목하면서 연상을 한 결과, 그 남성에 대한 감정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더 가깝게 있었다. 이를 통해 내담자는 어머니에게 살인자로 대변되는 남성상, 즉 살인자 아니무스를 투사하고 있었던 사실을 의식화할 수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모성성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로고스 남성상을 느낀 내담자는 비판적인 아니무스 이미지를 내사함으로써 자신의 여성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정적인 아니무스는 그녀에게 전수되어 내담자 역시 부정적인 아니무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이 꿈속에서 재연된 것이다. 야코비는 분석과정에서 발생된 전이와 역전이를 내담자와 함께 분석함으로써 그녀 스스로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25]

 

현대 여성은 가부장 사회에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려는 욕망이 있다. 그 결과 부정적인 아니무스에 사로잡혀 이성인 남성에게 연인의 감정보다는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자주 발생한다. 부정적인 아니무스는 여성으로 하여금 논쟁적이고, 고집이 세며, 가끔은 야수 같은 행동을 보이거나 집요하게 떠들어 대게 한다. 그 결과 아니무스의 영향 아래 있는 여성은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거짓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반복한다. 폰 프란츠는 현대 여성이 저항하고 있는 상대는 사회 속의 폭군이 아니라 사실 내면의 아니무스라고 주장한다.

 

그림자가 통합되면 동성과 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에 반해 아니무스가 통합되면 이성 사이에 놓여 있는 간격을 좁히게 되며, 불필요한 어린애 같은 행동에서 벗어나게 된다.

여성은 남성으로 하여금 완벽한 인간이 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여성이 바라는 완벽한 남성상은 현실적 인물이 아니라 아니무스가 투사된 대상이다.

강한 아니무스가 있는 곳에 강한 그림자가 있다. 개성화 과정은 일단 그림자와의 통합을 요구하며, 그 다음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의식화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향한 환상적인 투사를 철회하고 어린이 같은 편견을 포기할 때 자아는 자기를 향해 영적인 여정을 하게 된다.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