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물을 들이킴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부모, 친척, 친구등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또 아이는 커가면서 놀이친구와 벗을 좋아하고 애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원초적 본능을 따라가면 마치 짠물을 들이키듯이 사랑에 대해 더욱 목말라 한다. 그러면 그 짠물을 계속해서 들이키게 되고 갈증은 더욱더 심해진다. 감각적 쾌락을 목말라 하기 때문에 닥쳐올 괴로움을 보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고, 사랑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며 시시닥거린다.
“사랑해라! 사랑해라! 마치 바닷물을 들이키면 들이킬수록 갈증이 더해지듯이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사랑을 찾는다. 애정(pema)과 갈애(taṇhā)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의 결점을 애써 무시하고 사랑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사랑을 키운다. 이것이 사랑의 방식이고 사랑의 본성이다.”(옛 미얀마 시)
어떻게 로바(lobha)로 인해 사악처에 떨어지는가?
가장 조그만 돌조각도 물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사소한 탐욕으로 인해 사악처에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임종 때 배우자, 아들, 딸, 재산에 집착을 가졌기 때문에 죽어서 아귀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처님 당시에도 새 가사에 너무 집착하다 죽어서 몸에 기생하는 이가 된 비구가 있었다. 그 비구는 칠일이 지나서야 겨우 이의 삶을 벗어났다고 전한다.
선업의 도움을 받는 경우 로바(lobha)로 인해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는다.
비록 집착, 애정(pema), 갈애(taṇhā)가 있다고 해도 선업의 도움을 받는 경우에는 사악처에 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돌은 물속으로 가라앉지만 배에 실으면 물위에 뜨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본생경에는 갈애와 애정에 젖어 살면서 동시에 바라밀을 닦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깊이 생각해봐야 할 점
금실 좋은 남편과 아내는 서로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한 부부는 함께 바라밀을 닦아 열반에 이르고자 한다. 수미따(Sumittā)라는 선한 아가씨는 보살인 수메다(Sumedha)와 언제나 함께 있고자 하는 서원을 세웠고, 훗날 마하까사빠와 밧다가 될 사람들도 그러한 서원을 세워 수많은 겁 동안 함께 바라밀을 닦았다. 그러면 이러한 예는 소망, 열의(chanda)일까 아니면 갈애(taṇhā)와 애정(pema)일까? 이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소견
사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선한 사람들이다. 선한사람과 사귀고자 하는 바램은 선한 열의(kusala-chanda)이다. 이들은 바라밀을 닦으며 계행이 구족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빨리삼장에는“선한 사람의 바램은 언제나 성취된다. 열의(chanda)를 통해서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므로 비록 이들이 서로를 붙들어 매는 갈애와 애정이 있었더라도 강력한 열의(선한 바램) 때문에 보살등은 자신들이 지은 선업이 정한대로 함께 바라밀을 닦으며 동반자가 되었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계행을 지키는 사람의 소원은 이루어진다.(증지부)
나꿀라삐따와 나꿀라마따
부처님 당시에 장자 나꿀라삐따와 부인 나꿀라마따가 살고 있었다. 부부는 많은 생을 함께 지내왔는데 부처님에게 처음 예배를 드릴 때 수다원이 되었다. 부부는 수많은 과거전생에도 보살의 부모, 숙부와 숙모였다. 부부는 마치 친아들인 것 마냥 부처님을 매우 좋아했고 친근하게 여겼기 때문에 부처님에게 무엇이든 질문을 드렸다. 어느 때 장자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세존이시여,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나꿀라마따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실제로 바람 피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러한 생각조차도 품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생에서 항상 나꿀라마따와 함께 하기를 원하고 윤회 속에서 항상 그렇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나꿀라삐따의 이 말을 들은 아내도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다.“세존이시여. 저는 어렸을 때 이 사람의 집에 시집을 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다른 남자를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생에서 항상 제 남편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윤회속에서도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만약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남편과 아내가 내생에도 함께 지내기를 바란다면 동일한 믿음(saddhā), 계(sīla), 관대함(cāga)과 지혜(paññā)가 있어야 한다.
남편이 깨끗한 믿음을 지닌 것처럼 아내도 그와 같은 믿음을 지녀야 한다. 남편의 계행이 청정한 만큼 아내도 청정해야 한다. 부부 중 한명이 보시를 하려고 한다면 다른 한명은 거기에 따라줘야 한다. 만약 아내가 보시를 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격려해줘야 한다. 만약 남편이 보시를 한다면 아내는 이를 기뻐해줘야 한다. 또한 부부의 지혜와 지식은 반드시 같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다 명확히 하기위해 다음과 같이 번역되는 미얀마 시 빤짜우다 표(Pañca-vudha Pyo)를 인용해본다.
“ 남편과 아내가 인간계에서 금실이 좋으며 함께 있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똑같은 관대함, 계행, 믿음,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부부는 천상에서 함께 사는 영광스러운 천인과 천녀처럼 윤회 내내 함께 있을 것이다. ”
이야기에서 살펴봐야 할 점
이미 수다원이 된 남편과 아내간의 사랑을 먼저 고찰해봐야 할 것이다. 부부는 서로 진정한 사랑을 하였으므로 바람을 핀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윤회 속에서 언제나 함께 있고자 했다. 그렇게 함께 있고자 하는 바람은 탐욕(lobha), 갈애(taṇhā), 애정(pema)에 기초한 열의(chanda)이고 이러한 선하고 고귀한 사람들의 탐욕은 서로를 묶어놓지만 그러한 모든 공덕행으로 부부는 선처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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