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upāyāsa)
재산의 손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몰락이나 실패를 맛보면 절망(upāyāsa)이 일어나는데 이 절망은 격분을 뜻한다. 일반적인 성냄은 폭력과 살생을 행하게 하지만 절망은 극도의 걱정과 화를 일으킨다. 가슴속의 걱정과 격분의 불길은 몸을 순환하는 피가 끓어오르게 한다. 격분하는 사람은 실수하거나 발작하거나 심하면 의식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당하면 목 놓아 우는데 이것이 바로 비탄(parideva)이다. 이 비탄이 심해지면 더 이상 울지 못하고 발작하거나 의식을 잃게 된다. 하지만 절망(upāyāsa)은 비탄보다도 훨씬 더 심하다. 근심(soka)은 프라이 팬 속의 뜨거운 기름과 같다. 비탄은 기름이 끓어 넘치는 것과 같으며 절망은 남아있던 기름마저 완전히 타서 증발한 것과 같다.
절망은 나약한 마음을 지닌 사람과 남에게 너무 의지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약한 여성도 절망으로 고통을 당하기가 더 쉽다. 여성의 몸과 마음은 남자만큼 강하지 않고 마음을 굳건히 하는 지혜와 지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기가 쉽다. 여성은 근심과 비탄으로 쉽게 고통을 당하는데 이 근심과 비탄은 예민한 여체를 쉽사리 제압하고는 절망으로 발전된다.
남자도 몸이 허약해지면 극도의 걱정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영양 있는 음식을 섭취하여 몸을 강하게 하여 절망해서 생기는 괴로움을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 모든 사람은 먼저 근심과 비탄을 시급히 없애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이 절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근심과 비탄을 없애는 방법은 앞전에 이미 언급한바 있다.)
9. 질투(Issā)
우리가 미모, 재산, 교육, 덕성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에 대해 듣거나 만나면 종종 질투(issā)가 일어난다. 남들의 좋은 면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모든 새는 올빼미처럼 아름답다.”라거나 “그런 토끼는 관목 숲에만 가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이러한 비난과 비아냥거림은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다.(질투하는 마음을 가진 시골 사람은“야자나무 밑에만 가면 비슷한 야자 껍질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당신을 능가할 때 질투가 생기고 엇비슷한 대상에겐 적의가 커나간다.”라는 격언이 있다. 자신이 동료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질투를 가지고 있다. 특히 같은 직위나 계층의 사람이 질투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어묵 장수는 일반적으로 보석상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어묵 장수와 보석장수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붙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질투를 느끼거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비구들 사이에도 질투가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설법가와 큰 스님도 중상모략과 질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질투를 느끼고 중상모략을 하면 현명한 사람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기 때문에 자기 무덤을 팔 뿐이다. 그리고 질투하는 사람은 윤회를 하면서 사악처에 떨어지지만 정작 질투를 받은 사람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질투(issā)는 우리 모두가 혐오하고 제거해야 하는 불선한 마음의 작용이다.
멧돼지와 에메랄드 동굴
한때 커다란 사자 한 마리가 히말라야 산의 에메랄드 동굴에 살고 있었다. 그 동굴 근처에는 한 무리의 멧돼지가 무서운 사자를 끊임없이 무서워하며 살고 있었다. 멧돼지들은 자신들의 불행이 동굴의 에메랄드 빛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멧돼지들은 먼저 진흙 연못에서 뒹굴고서 진흙으로 에메랄드 동굴을 문질러 댔다. 하지만 에메랄드 동굴은 더욱 밝게 빛나고 반짝였다. 이와 같이 남을 중상하고 질투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실제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당한다. 즉 스스로 어려움만 당하고 정작 자신이 중상하고 질투하고 비아냥거렸던 사람은 더 잘 살게 된다.
자찬(Attukkaṁsana)과 남을 비하함(Paravambhana)
자찬(attukaṁsana)은 말이나 글로 자신을 칭송하는 것이며, 남을 비하함(paravambhana)는 남을 비하하거나 얕잡아 보는 것이다. 자찬을 할때에는 자신의 지위에 대해 자만(manā)과 탐욕(lobha)이 일어난다.남을 비하할때에는 질투(issā)와 성냄(dosa)이 일어난다.
과시
어떤 사람은 으스대며 자기 능력을 과시한다. 즉 자신이 학식 있고 잘 배웠으며, 돈이 아주 많으며, 친척이 고위직에 있으며, 학력이 아주 높으며, 남보다 뛰어나다는 등으로 말할 것이다. 또 지금은 별 볼일 없지만 한때는 아주 잘나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일부 비구도 자신이 힘이 있고, 우아하며, 돈 많은 신자가 많고, 여러 종교시험에 합격했으며, 법문과 강연을 잘하며, 연금술로 금과 은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사실이든 거짓이든 과시하는 말을 하길 좋아한다. 어리석은 사람이나 그러한 허세를 믿을까 현명한 사람은 어림도 없다. 우리는 알아차림(sati)으로 말이나 글로 하는 자찬(attukaṁsana)을 삼가야 한다.
시기적절한 공표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과 사상에 대해 적절한 대접을 받기위해 자신의 능력과 덕성을 드러내야 하는 적당한 때가 온다. 그때는 자신의 능력과 덕성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당신을 얕볼 것이다. 이것은 자만(māna)이 아니고 상황에 맞는 시기적절한 계획이다.
비난
어떤 사람들은 알아차림(sati)이 결여되어 인쇄매체에 비평하는 글을 써서 남을 비난한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가 부당하게 상처를 입기 때문에 나쁜 행위이다. 반면에 비평을 꼭 해야 할 때는 비평을 하여 올바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반드시 나쁜 사람을 들추어내야만 할 때는 당연히 비난과 비평을 할 필요가 있다. 나쁜 사람은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며 대중들도 잘못된 이해를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매우 존경하는 인물과 맞설 때에는 믿을만한 근거를 가지고 신중하게 비난과 비평을 해야 한다.
어느 때 절을 후원하던 신자가 있었는데 신자는 아내와 함께 주지스님을 매우 존경하였다. 하루는 그 신자가 주지스님이 저녁식사를 위해 계란을 직접 튀기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주지스님의 특이한 행동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아내는 주지스님에게 큰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내는 도리어 남편이 제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이웃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남편을 조롱하였다. 그래서 남편은 침묵을 지켜야 했다. 잠자리에 들어 남편은 그 소식을 또 이야기 하였지만 여전히 아내는 남편을 믿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미쳤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기가 한말을 취소해야 했다.
실제하고, 사실에 입각한 비난도 부적절한 시기, 상황, 장소 등으로 인해 남에게 나쁜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시기와 상황에 맞게 비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시기적절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고, 그 비난이 정당할 때에는 믿든 안 믿든 친한 친구와 친척에게 진짜로 나쁜 사람에 대한 좋지 못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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