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기타

회의적 의심이 아닌 일반적인 의문

rainbow3 2020. 4. 13. 14:35


회의적 의심이 아닌 일반적인 의문

 

단어나 문장의 뜻에 품는 의문이나 여행을 갈 때 어떤 길을 가야 할지에 대한 의문 등은 회의적 의심(vicikicchā)에 속하지 않는다. 아라한도 때로는 어떠한 행위가 율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며 율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 경우는 회의적 의심(vicikicchā)이 아니다.

 

회의적 의심이나 의문이 일어나면 학식 있는 이에게 물어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삼보에 대한 완벽한 믿음과 존경심이 생길 수 있다. 

 

결론 

 

이 장에서는 마음을 더럽히는 불선한 마음의 작용(akusala-cetasika)을 살펴보았다. 이 불선한 마음의 작용은 모든 중생의 마음의 흐름(bhavaṅga)속에 내재한다. 우리는 종종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나쁜 힘을 듣거나 본다. 이 불선한 마음의 작용으로 인해 세계에는 소란과 잔학행위가 끊이질 않는다. 심하면 우리는 그러한 악을 직접 마주치기도 한다. 

 

마음을 더럽히는 불선한 마음의 작용의 본성을 명확하게 해설한 나의 노력의 공덕으로 나에게 있는 불선한 마음의 작용의 힘을 약해지기를!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나의 도반과 벗들이 선한 마음을 계발하게 되기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선한 마음, 선한 태도, 선한 생각을 키우게 되기를!

 

불선한 마음의 작용에 관해 쓴 나의 해설서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나쁜 마음(태도)을 좋은 마음(태도)으로 바꾸게 되기를! 그리고 내가 내생의 모든 불선한 마음의 작용, 불선법, 번뇌를 제압하게 되기를! 그리고 나의 벗들이 선한 마음을 계발해서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열반을 실현하게 되기를! 

 

제 3장

 

선한 마음의 작용(Kusala-cetasika)

 

이 장에서는 선한 마음의 작용(kusala-cetasika)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은 마음을 선하게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1. 믿음(saddhā)

2. 알아차림(sati)

3. 양심(hiri)

4. 수치심(ottappa)

5. 탐욕 없음(alobha)

6. 성냄 없음(adosa)

7. 어리석음 없음(amoha)

8. 자애(mettā)

9. 연민(karuṇā)

10. 더불어 기뻐함(muditā)

11. 평온(upekkhā)

12. 바른 말(sammā-vācā)

13. 바른 행위(sammā-kammanta)

14. 바른 생계(sammā-ājīva)

 

이 열 네 가지 선한 마음의 작용은 마음을 청정하고 선하게 한다. 

 

1. 믿음(saddhā)

논리적인 것을 믿으면 삿다(saddhā)가 계발되는데 삿다는 믿음과 마음을 맑게 하는 두 가지 기능을 지니고 있다.

 

믿음

 

삿된 믿음은 업과 그 과보의 진리, 전생과 내생이 존재한다는 진리, 일체를 아는 부처님과 그 분의 가르침인 법, 그리고 승가를 부정한다. 그러한 부정은 반신반의하는 회의적 의심(vicikicchā)과는 구별되는 완전한 불신이다. 

 

여기서의 믿음은 업과 그 과보에 대한 신념을 뜻한다. 믿음은 철저한 믿음에 근거한 결의인 신혜(saddhādhimokkha)라고도 한다. 그래서 오직 진정한 성질의 법에 대한 믿음만을 선한 마음의 작용인 믿음(saddhā)이라고 한다. 

 

마음을 맑게 함

 

믿음의 두 번째 특성은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다. 보시를 하거나 계를 지키거나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마음은 믿음으로 충만되고 청정해진다. 마치 전륜성왕의 루비를 흙탕물속에 넣으면 오물과 찌꺼기가 침전되어 물이 투명해지듯이 믿음도 모든 의심과 회의, 기타 번뇌를 제거하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특성이다.

 

믿음의 첫 번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와 일부 애완동물도 어른과 선생님을 본받아 선행을 한다. 그래서 그들도 삼보를 공경하고 보시를 행하고. 남에게 봉사한다. 그러한 선행을 하는 동안에 믿음의 두 번째 특성의 과보를 누린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가끔은 병원, 고아원, 경로원 등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는 자선행을 함으로써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믿음의 기질(saddhā-carita)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기질(carita)의 장에서 진정한 믿음에 대해 공부하길 바란다. 

 

그릇된 믿음

 

진정한 믿음은 마음의 청정과 법의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거짓된 믿음도 있다. 예를 들면 일부 파렴치한 사람은 불상이나 파고다는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보시를 하게 하려고 빛을 발산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가짜 성골사리를 믿게 된 사람과 그릇된 교리를 믿는 외도는 진정한 믿음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 어리석음, 단순 무식함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기 때문에 불선한 마음의 작용(akusala-cetasika)인 어리석음(moha)으로 분류된다.

 

요술과 마법을 잘 부리고 병을 잘 고치는 우아한 외모와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달변가나 비구나 도인에게 믿음을 가진 사람은 진정한 신자가 아니다. 이는 탐욕과 친분에 기반을 둔 어리석음(moha)이다. 그러한 그릇된 믿음은 경에서 어리석은 믿음(muddhappassana)으로 분류된다.

 

믿음의 힘만으로 애매모호한 지혜를 구족함은 어리석은 믿음으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아니다. 마치 외도의 무리처럼 뿌리 없는 곳에 믿음을 일으킨다.  (앙구따라 니까야 제 1경 복주석서) 

 

주의를 촉구하는 주

 

오늘날의 세상에는 거짓말쟁이와 사기꾼이 득실댄다. 어떤 종교에는 새롭고 주목할 만한 교리가 많다. 불교에도 일부 모방하는 사람들이 소설과 같은 교리, 새로운 명상법, 신비의 영약을 만들어서 무지한 신자와 순진한 사람들을 속인다. 사람들이 그러한 거짓말쟁이와 사기꾼에게 시주하고 돈을 바친다면 그러한 그들의 행동은 진정한 믿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그러한 협잡꾼을 반대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나날이 늘어간다. 

 

오늘날 여성들은 종종 적절한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보시와 종교적인 의식과 관련된 문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 사려 깊은 사유가 믿음과 신앙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성 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종교적 지식을 넓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믿음과 사랑 간의 혼돈 

 

오늘날에는 선한 사람조차 사랑이나 애정을 믿음과 혼동한다. 많은 신자들은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좋은 목소리와 인격의 소유자인 법사를 존경한다. 만약 선한 덕성 때문에 존경하고 숭배한다면 그것은 믿음(saddhā)이다. 하지만 법사를 자신의 친척처럼 생각하며 애착한다면 이는 믿음과 사랑이 뒤섞인 것이다. 

 

고따마 부처님 당시에 박깔리 존자와 찬나 재상과 같은 제자는 부처님을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가슴속에 비록 믿음은 있었지만 불선법인 속박(sayojana)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애착 때문에 법문과 가르침을 받아들이는데 그러한 애착은 때론 바라밀의 완성을 돕는 지식과 지혜를 증장시킨다. 만약 선한 마음의 작용이 개인적인 애착 때문에 계발된다면 이는 유익한 일이다. 

 

빳따나(Paṭṭhāna)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불선법은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親依止緣)으로 선법을 지원한다."Akusalā dhammā kusalassa dhammassa upanissaya-paccayena paccayo” 

 

그러므로 작은 불선한 애착도 선한 마음의 상태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승과 법사는 그러한 계발이 일어나도록 열정과 선의를 가지고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제자와 신자도 배운 것을 잘 실천해서 유익한 결과를 얻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