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문화와 시대욕망:
라깡의 ‘욕망의 그래프’와 외모욕망에 대한 정신분석
정 경 훈
다이어트, 몸짱, 얼짱, S라인, V라인, M라인, 성형미인, 자연미인, 식스팩 복근, 메트로섹슈얼, 180cm 이하 남 루저, 성장판, 화장하는 남자, 지방흡입수술,거식증, 선풍기 아줌마. 이들은 요즘 ‘외모’란 기표를 생각했을 때 필자의 머리에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말들이다. 외모, 특히, 몸에 대한 관심과 관리가 한국인의 일상적 삶의 한복판을 점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되어 이 기표들이 필자의 머리와 감각에 각인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인의 특징으로 여겨졌던 “달덩이 같은 얼굴”이 요즘은 긴 머리카락으로 양옆을 가려야할 기피대상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요즘 한국에서 모나리자 그림을 그린다면 뚱뚱한 모나리자가 아닌 마른 모나리자를 모델로 써야할 것이다.
통계데이터를 보면, 2003년 11-17세 대상으로 실시된 보건복지부 의뢰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저체중 여학생의 29.3%, 정상체중 여학생의 64.9%가 살빼기 경험이 있었고(임인숙, 「다이어트」165-66), 2003년 여대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다른 조사에서 저체중자의 84%. 정상체중자의 95%, 과체중이나 비만에 해당하는 여성의 100%가 몸매관리를 할 의향을 나타냈다(176-77). 자신의 체중과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다이어트 등 몸매관리를 할 의향이 있는 것이다. 2001년 보건복지가 실시한 조사에서 성인 여성의 45%, 성인 남성의 21%가 외모 때문에 체중 조절했다는 반응을 보였다(166).
가부장제 문화에서의 젠더 이데올로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 갖추기에 많은 관심과 관리를 보여 왔던 남성들도, 여성 비율의 절반이지만, 이젠 외모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조사 때보다 10년이 지난 지금 2011년엔 훨씬 더 많은 비율의 남자들이 몸관리에 일상적으로 신경 쓰고 있으리라 추측된다.
이렇게 외모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는 것을 감안하면, 뚱뚱한 여가수가 전신 성형수술로 미인이 되어 인기를 누리다가 발각되어 위기에 처하지만 눈물로 성형 사실을 고백을 함으로써 용서를 받는다는 스토리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개봉 당시 7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흥행을 하고, 2008년에 뮤지컬로 만들어지자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5%, 평균 일일 티켓 판매 수 1500매를 달성해 공연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2011년엔 아시아투어에 나서게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1)
외모 문화가 이제는 한국의 지배적인 문화의 하나가 되었다. 외모가 우리들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가 되자 부정적인 양상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한참 잘 먹어야 할 청소년들조차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져, “주름살이 많아지고 피부트러블이 일어[나고] . . . 손톱, 발톱, 머리카락의 윤기가 사라지고 거칠어지고 갈라지거나 탈모가 일어나기도 하고 생리불순, 골다공증, 성장부진, 위장병, 빈혈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김지경 30). 성인의 경우, 몸매를 비관하여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다이어트 때 여성 2%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정재철 308). 더 심각한 병적 현상으로는, 성형 중독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거나, 섭취장애인 거식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거식증, 성형중독, 청소년의 과도한 다이어트 등 외모문화의 병적인 현상이 알려지자 외모지상주의, 외모중시, 외모차별주의 현상은 물론 외모문화 자체에 대한 비판이 여성(주의)적 관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비판 담론은 주로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TV등 대중매체의 이미지 중시 현상, 이에 편승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뷰티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성주의 이론가 임옥희는 신체를 미학적으로 꾸미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뷰티산업이 여성이 도무지 완성에 이를 수 없을 것 같은 마른 몸을 이상적인 몸으로 제시하며, 몸을 이상에 맞추는 프로젝트로 만들고 있으며(11-13),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몸은 “그 자체가 육체 자본으로 기능”하며(14), “여성의 몸에는 계급의 지표가 잔뜩 실려”있어(15), 계급 상승이나 유지를 원하는 여성들이 인공적인 관리를 통해 고부가치의 자연미인을 만들려하지만, 이는 “의료 가부장제의 욕망에 종속된 것”이라 비판한다.
박주영은 여성의 “날씬함은 능력 · 절제력 · 지성과 동일시되며, 뚱뚱함은 무능력· 의지박약 · 멍청함으로 여겨[지는]”(56) 남성중심적 사회 문화관점을 비판하며, 거식증 환자의 음식거부는 가부장적 문화가 강요하는 ‘날씬함의 윤리’에 대한 저항적 실천이라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의 입장을 소개한다(72-75).
한국의 외모중시현상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해 온 한국의 대표적 외모문화전문가 임인숙은 기업의 외모차별적 고용관행, 대중가요 가사 등 외모차별적 대중문화 콘텐츠, 이상적인 몸매를 기준으로 낙인찍는 몸관리 산업의 몸매불안조장을 지적하며, 외모차별주의의 희생자는 여성이며, 남성의 “외모불안지대는 데이트나 미팅 등 비교적 가벼운 이성관계로 국한될 뿐”이라고 주장한다(「외모차별주의」 2).
외모 관리에 대한 긍정적인 담론도 있다. 2005년 8월 11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 “몸의 시대, 살빼기와 성형 열풍”>에서 몸가꾸기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에 선 주장도 크게 나왔는데, 이들은 여성의 다이어트에 대해 “몸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몸에 대한 자유 추구,” “미의 추구는 편견보다 본능,” “몸짱 열풍은 우울증 해소[에 좋다],” “몸 열풍은 취직, 경쟁사회, 좋은 아내 만들기 위한, 즉,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란 의견을 보였고, 성형에 대해서는 “성형과 같은 몸의 관심은 자신감의 회복, 성형은 정신중심주의[에 대한] 반동,” “몸을 가꾸는 것은 육체적 충족[이며] . . . [외모가 문제가 되면] 유전자 변형해[서라도] 미인 미남 만들어 줘야 함,” “성공한 사람들은 몸매가 표준화 되어 있음(자신의 절제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란 반응을 보였다(정재철 301).
외모문화에 대한 부정담론과 긍정 담론은 각기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모두 중요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 긍정담론에서처럼 여성이 운동 등을 통해 건강한 몸짱이 되어 우울증을 벗고 자신감을 갖는 것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지만, 이들 긍정담론 주장자들은 몸을 가꾸는 여성들의 욕망 근저에서 그 욕망의 형성과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사회문화적 요소에 분석의 눈을 제대로 주지 못하며, 그럼으로써 몸 열풍 현상을 하나의 실용적 실천 현상으로만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여성주의 입장에서 외모문화를 비판하는 이들의 문제점은 외모문화가 요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급속하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외모문화를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에 강요하는 사회현상으로 진단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외모문화를 너무 폭 좁게 접근한 것이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 열풍이 한국보다 더 일찍 시작되었던 영미에서 남성거식증자의 숫자가 최근 급증2)하고 있는데, 남성거식증은 가부장적 젠더 이데올로기만으로 진단하기 어렵다. 또한 여성주의자 임옥희가 몸만들기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이런 형태의 몸만들기가 의료 가부장제의 욕망에 종속된 것이자 타자의 욕망임을 지적한다고 해서 여성들이 그런 욕망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14)라고 실토하거나 “의식적인 올바름과 무의식적인 욕망 사이에 드러난 균열을 어떻게 할 것인가?”(11)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데서 드러나듯이, 여성의 외모욕망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유산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제공하는 미인 이미지와 자아 이미지를 이미 무의식 깊숙이 동일시한 여성들에게 “그것은 타자의 욕망에 종속되는 것이야!”라고 지적한다고 해도 그 여성들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라깡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이고, 자아(ego)는 원래 타자의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환상, 즉, 타자에 의해 매개된 이미지이기 때문이며, 증상은 고통임과 동시에 향유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모문화는 가부장적 젠더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계급, 대중매체, 시각문화, 서구 이미지의 식민화, 유교적 출세주의, 집단획일주의, 인간 주체의 구조, 욕망, 향유 등의 요소가 중층결정된 것이다.
외모욕망은 한두가지 관점에서 비판함으로써 제거시킬 수 있는 단순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외모 욕망은 부자되고 싶은 욕망처럼 이미 이 시대의 지배적인 욕망인 시대욕망(Zeitwunsch)3)의 하나가 되었다.
부자 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것처럼, 외모의 시대욕망도 몸짱 만들기 같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뿐만 아니라, 거식증, 성형중독 등 심각한 증상도 유발하고 있다. 이런 증상은 외모문화에만 일어나는 특별난 현상이 아니라 어떤 주체가 시대욕망에 지나치게 고착(fixation)될 때 일어난다. 본 논문에서는 외모문화 현상을 이 시대의 다층적 요소들이 중층작용하는 시대욕망현상으로 보고, 라깡의 주체와 욕망 이론을 분석틀로 삼아 그 현상의 다양한 양태와 심리적 문화적 메카니즘을 탐구하고자 한다.
1) <미녀는 괴로워>(2006)처럼 투자비용에 비해 흥행에 크게 성공한 미국의 코미디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Shallow Hal, 2001)도 <미녀는 괴로워>처럼 뚱뚱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뚱뚱한 몸매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미녀는 괴로워>와 다르게,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대한 부정적 시선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뚱뚱한 몸매를 날씬한 몸매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미국관객들보다 한국관객에게 더 강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2) Men’s Health Forum의 기사 “Men get anorexia too. Thousands of them”
(http://www.malehealth.co.uk/eating-disorders/18993-men-get-anorexia-too-thousands-them)
와 USA Today의 기사 “Men now falling victim to eating disorders”
(http://www.bulimia.com/client/client_pages/usatoday.cfm) 등 Google에 관련 자료가 많이있다.
3) 필자가 여기서 처음 사용하는 개념인 시대욕망(Zeitwunsch, the desire of the age)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욕망을 가리킨다. 그것은 절대정신(Spirit)의 역사적 발전 단계에서 나타나는 헤겔의 시대정신(Zeitgeist)처럼 목적성을 가진 어떤 것이 목적(telos)을 향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배적인 욕망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 다층적 상징코드들과 욕망들이 궁극적 목적 지향 없이 중층적으로 작용하여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욕망을 말한다.
I. 외모문화 현상
외모를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만드는 외모 가꾸기는 이 시대의 일상생활을 형성하는 지배적인 문화 중의 하나가 되었고, 바람직한 자신의 외모를 갖고자 하는 욕망 또한 시대욕망의 하나가 되었다. 외모는 몸과 이에 더해지는 옷 등의 장식물로 구성되는데, 몸은 머리, 몸통, 사지, 피부로 나눠진다.
요즘 몸만들기 문화에서의 주요 관심 대상은 몸매, 즉, 몸통과 사지의 모양 그리고 머리 부분의 얼굴, 그리고 피부이다. 본 논문에서는 얼굴과 몸(몸통, 사지)와 관련된 외모만 논의하고자 한다.
얼굴 외모 만들기는 눈꺼풀, 코, 턱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인은 외꺼풀 눈을 가진 북방계통과 쌍꺼풀 눈의 남방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조용진 22-23), 해방이후 쌍꺼풀눈을 가진 서구인/미국인의 이미지와 여성의 부드러운 외모를 중시하는 젠더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영향으로 쌍꺼풀이 바람직한 이미지가 되어, 외꺼풀의 눈을 가진 많은 여성들이 쌍꺼풀로 수술해 왔다. 코의 경우도, 높고 오똑한 서구인의 코 이미지의 영향으로, 오똑한 코가 이상적인 코로 간주되어, 낮거나 뭉툭한 코를 가진 여성들이 수술로 코를 오똑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쌍꺼풀 만들기나 오똑한 코 만들기는 시작된 지 이미 오래되어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다. 최근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코와 눈 성형도 증가했다. 요즘 성형외과 고객의 1/3이 남자들이다.4) 이들은 대개 매부리코, 휜 코를 반듯한 콧날의 “조각 코”로 만들거나, “눈매를 시원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조각 코 만들기나 시원한 눈매 만들기에는 서구적인 코와 눈의 이미지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태일에 의하면,
“다른 코카시안 인종에 비해 코가 너무 큰 유대인은 코를 작게 만드는 수술을[하고] . . . 한국 등 동양인 사이에 코를 높이거나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것은 코카시안 인종보다 작은 코를 크게 보이게 하고 옆으로 찢어진 눈을 동그랗게 보이게 만들려는 것이다”(8).
최근에 얼굴에 V라인 만들기가 유행되었다. V라인 만들기는 통통한 살 때문에 턱의 양쪽이 두툼하거나, 각진 턱뼈 모양으로 양턱 부분이 발달한 경우, 다이어트로 살을 빼거나, 아래 그림에서처럼 수술로 턱부분을 V자 모양으로 갸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 문화에 깊이 녹아 있는 관상학에서 하관의 각진 턱은 “남성적이고 무뚝뚝하며 제멋대로”인 성격을 의미하기 때문에(오현리 387), 여성의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젠더 이데올로기하의 여성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V라인 만들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쌍꺼풀, 오똑 코, V라인을 만들기 위한 수술은 요즘 매우 널리 시행되고 있는데, 부작용 없이 잘 이루어진다면, 이에 대한 일반인 대부분의 거부감은 별로 크지 않아, 이미 외모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헬스케어 제품 제조회사인 유니레버가 2006년 15~45세 아시아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여성의 53%가 “성형을 받고 싶다”고 답한5)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형에 의한 얼굴 만들기 욕망이 널리 퍼지면서 성형수술에 중독된 병리적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2004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보도된 이후 “선풍기 아줌마”로 불린 한혜경 씨가 대표적인 예이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은 젊은 때, 가운데는 방송에 보도될 때, 오른쪽은 방송 후 재활치료를 받는 중의 모습이다.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한씨는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성형수술을 시작, 얼굴에 칼을 대는 횟수가 늘어났고 이로 인해 정신분열증까지 얻게 됐다.
‘넣어라’는 환청이 들릴 때마다 직접 콩기름과 파라핀 등을 얼굴에 집어넣었다.”6)
한씨는 재활치료를 위해 성형수술과 정신치료를 받았다. 한씨의 외모만들기는 일반적인 외모가꾸기와 차원이 다른 중독의 특성을 갖는다. 성형 중독은 왜 일어나는가? 여성의 예쁜 얼굴의 가치를 강조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때문인가? 이것은 일반적인 가벼운 일회성 성형보다 단지 집착의 강도가 심한 것인가? 그녀의 욕망에는 일반적인 성형수술자들의 욕망과 다른 심리적 메카니즘이 작용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잠시 뒤로 미루고 외모문화 현상을 더 보자.
몸통과 사지를 중심으로 한 몸만들기는 살빼기와 몸매 만들기로 크게 구분된다.
다이어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두 번은 시도 해보거나 실행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주 의식해야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직간접으로 강력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2003년 여대생들은 거의 모두가 살빼기를 통해 몸매관리를 하고자 했다. 살빼기에 대한 사회의 엄청난 관심 때문에, 100kg을 57kg으로 감량한 최미욱(왼쪽 그림)씨의 스토리처럼 다이어트 성공의 경험 담론은 물론, 채널방송인 스토리온의 고정 프로그램 “다이어트 워”시리즈를 비롯한 많은 다이어트 방송 담론도 양산되고 있다. 단순 살빼기를 넘어 몸의 라인과 근육을 만드는 몸만들기 문화도 널리 퍼져있다.
‘몸짱 아줌마’라 불리며 유명인사가 된 정다연 씨(왼쪽 두 번째)처럼 S라인을 추구하는 여성들뿐만 아니라 식스팩 복근이나 M라인을 만들려는 남성들 그리고 어린이, 노인에게까지 몸만들기는 유행하고 있다.
적당한 운동과 절식으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식스팩, M라인, S라인을 만들려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보내거나, 최미욱 씨처럼 고통스런 다이어트를 끝없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흡입수술이나 성형을 통한 몸매 만들기도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시도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부작용의 위험성이 높은 전신성형까지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이어트는 섭취장애인 거식증(anorexia)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국에는 약 1만 여명의 거식증 환자가 있으며, 대부분 10대 및 20대의 젊은 여성이 주를 이루고, 이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7)
아래 왼쪽은 거식증으로 사망한 여성모델 이사벨 카로(Isabelle Caro)이고, 가운데는 남성모델 제레미 질리처(Jeremy Gillitzer), 오른쪽은 소녀 거식증자이다.
거식증은 왜 일어나는가? 단순히 강도가 지나친 다이어트인가? 여성주의자등은 거식증을 “마른 몸”을 선호하는 남성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에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하더라도, 이들은 요즘 남성거식증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카로의 경우처럼, 거식증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음식을 거부하는데, 죽음의 공포를 넘어 이들을 이끄는 욕망은 무엇인가?
4) http://www.kormedi.com/news/article/1187315_2892.html
5) “각 국 별로는 대만 여성 중 40%가 성형수술을 받고 싶어 했으며 일본은 39%, 태국37%, 베트남 30%, 필리핀 17%”였다(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5/06/00700000020050 6102108912.html).
6)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4/005000000200504081327001.html
7)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20108592008067
II. 라깡의 ‘욕망의 그래프’: 기표, 주체, 욕망, 향유
원하는 외모의 추구, 외모 중시, 외모지상주의, 성형 중독, 거식증 등의 외모 문화현상을 이해하는데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여 간과하기 쉬운 문제는 이 현상이 집단적 사회현상임과 동시에 개별 주체의 욕망과 행위라는 점이다. 외모 중시 현상을 분석함은 외모에 대한 욕망을 갖는 사람, 즉 주체는 무엇이며 그의 욕망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를 검토해야 한다.
라깡에 의하면, 주체(subject)는 무엇보다도 기표(signifier)의 생산물이다. 아이가 엄마, 간호사, 보모 등 타자와 언어, 제스처 등의 기표를 통해 관계를 맺기전, 즉 상징계에 진입하기 전 그 아이는 주체가 아니라 인간 존재(being)이다.
사실, 아이는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이 세상으로 나와 의사, 간호사와 만나기 전에,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가 들려주는 음악과 말소리에 노출되면서부터 이미 기표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몸을 순수한 자연으로 생각하지만, 아이의 몸조차도 순수한 자연의 몸이 아니라 출생 전 자궁에서부터 엄마의 목소리의 기표로 희미하게나마 이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기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순수한 자연 존재로서의 아이는 신화인지도 모른다.
자궁 밖으로 나오면 아이는 상징계에 본격적으로 노출되어 기표에 의해 각인되기 시작한다. 의사, 간호사, 엄마 등은 “아이가 건강하다, 잘 생겼다” 등등 아이의 몸에 대한 기표들을 발하고, 아이는 이 기표들의 세계인 대타자(the Other)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아이의 몸은 대타자의 기표에 의해 인식되고 재현되면서 순수자연의 생물체가 아니라 인간의 몸, 즉 생물학적 자연과 상징계의 문화의 결합체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런 점에서 몸 만들기, 즉, 자기 몸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목표(개념기표)로 삼아 몸을 가공하는 행위는 많은 순수 자연의 몸의 옹호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 주체에게 부자연스럽거나 지탄할 만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엄마를 중심으로 한 대타자의 상징계에 진입하면 기표의 특성으로 인하여 근원적인 소외(alienation)를 겪게 된다. 아이가 엄마와 울음소리, 제스처, 말등의 기표로 소통하는 동안, 기표의 특성, 즉, 기표는 몸의 욕구 자체를 직접 표현, 소통시킬 수 없고, 기표와 의미/기의는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일대다의 비결정적(indeterminate) 관계이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에는, 아래 왼쪽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표화되지 않는 비(非)의미(non-meaning)가 발생하고 소외가 일어난다.
소외는 분열(Spaltung, split)이며, 주체의 탄생은 분열된 주체의 탄생으로, 분열은 말하는 존재(parlêtre)인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오른쪽에 있는 라깡의 <욕망의 그래프 I>(Écrits 303)은 분열된 주체의 탄생을 나타내는데, △은 상징계에 들어가기 전의 존재, S-S'는 기표(signifier)의 연쇄, 아래 왼쪽의 S는8)기표에 의해 탄생한 분열된 주체를 가리킨다. 소외와 분열은 결핍을 낳고 이들은 욕망의 근원이 된다.
8) 그래프의 빗금친 S를 필자의 컴퓨터에서 나타낼 수 없어, 이후로 S로 표기하겠다.
라깡에 따르면, 아이가 자아(ego)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보통 생후 6-18개월(Écrits 1-2) 거울단계에서부터이다. 아이가 거울 앞에서 자신이 움직임에 따라 거울에 비친 자기의 이미지도 움직이는 것을 보며 매우 즐거워하는데, 이 즐거움은 아직 몸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가 자기 몸의 움직임과 거울에 비친 이미지의 움직임 사이의 일치를 보며 자신의 통일성을 느끼는 데서 일어난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아이가 즐거워하는 동안, 아이와 거울 사이에 방해물을 놓으면 아이는 그것에 공격적 태도를 보인다. 아이가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자신의 이미지를 동일시하는 것을 라깡은 상상적 동일시(imaginary identification)라 부른다.
상상적 동일시와 여기서 느끼는 쾌감이 자아 형성의 기초가 된다. 이처럼 자아는 본질을 가진 생래적 실체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가기로부터 벗어난, 소외된 이미지를 자기로 착각 인식(méconnaissance, misrecognition)함으로써 구성된다.
라깡의 <욕망의 그래프 II>(Écrits 306)에서 분열된 주체 S(오른쪽 하단)가 i(o)쪽을 향하는데, 이것은 거울이라는 타자(other)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상상적 동일시(identification) 함을 나타낸다.
왼쪽에 있는 e는 자아(moi, ego)인데, 오른쪽의 i(o)에서 왼쪽의 e로 향한 화살표(←)는 상상적 동일시가 자아의 구성 요소가 됨을 의미한다.
거울은 아이가 그 앞에 선 물질적인 거울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아이의 이미지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은 그의 주변 사람들, 타자(others)의 반응이다.
타자는 그의 얼굴 생김새, 몸매, 피부, 키, 몸무게, 몸짓, 말, 목소리 등에 대하여 “잘 생겼다” “너무 먹어 뚱뚱하네” 등등의 기표를 발하고, 이 기표의 재현은 그에 대한 재현 이미지나 담론이 되고, 아이는 자기에게 떨어지는 이 담론의 내면화와 동일시를 통해 자아를 구성하게 된다.
이를 그래프에서 보면, O는 주변 타자(other)를 통해 발해지는 기표연쇄(signifier→voice)인 대타자(Other)이고, S(O)는 대타자 기표의 의미작용(signification)을 말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예쁘다”라고 말하며 귀여워하거나 “너무 많이 먹는다”고 말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타자의 의미작용이다.9) 주체가 대타자(그리고 대타자의 의미작용)과 동일시하는 것을 상징적 동일시(symbolic identification)라 부르는데, 이는 이미지와의 상상적 동일시와 더불어 자아를 구성한다. O→S(O)→e의 화살표는 이를 나타낸다. 아이의 엄마뿐만 아니라 주체에게 기표를 발하는 대중매체, 학교 교육, 광고, 문화이데올로기 등은 모두 대타자(Other)이며, 이들은 의미작용과 상징적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자아를 구성한다.
9) 그래프에서 화살표가 O에서 S(O)로 가는 것은 언어의 의미작용이 기표연쇄의 흐름이 끝난후 뒤로(retrospectively) 작용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문장 “네가 가지 말라고 내가 말한 것은 아니야”의 의미는 문장이 다 끝난 다음에 마지막 단어가 앞의 단어들과 다시 뒤로 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상징적 동일시와 상상적 동일시의 관계를 짚고 넘어감이 좋겠다.
아이델츠타인(Eidelsztein)의 아래 그림(121)에서 그래프는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위쪽의 네모(□)부분은 상징적 동일시, 아랫쪽의 부분(⊓)은 상상적 동일시를 의미한다.
여기서 자아(m)와 상상적 자기 이미지{i(a)}10)는 주로 상상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영역이지만 상징적 동일시의 영역에도 들어가 있다. 상징적 동일시는 상상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바탕인 매트릭스이다.
예를 들어, 소녀가 거울 앞에서 자기의 날씬한 몸매를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다고 하자.
소녀(자아)에게 날씬한 몸매는 바람직한(desirable) 외모/이미지여서 자신의 몸매를 보며 만족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상적 동일시이다.
그런데 소녀가 날씬한 몸매를 바람직한 외모로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그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그의 사랑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아빠/엄마—나아가, 소녀가 선망하여 그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싶어 하는 학교 선생님, 대중매체 등—이 여자의 날씬한 몸매를 바람직한 외모로 직간접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아빠/엄마와의 동일시는 아빠/엄마라는 대타자와의 동일시, 즉 상징적 동일시이다.
소녀가 날씬한 몸매의 자신의 이미지를 보며 만족해하는 것은 아빠/엄마와의 상징적 동일시를 전제로 한다. “상상적 동일시 i(o)는 언제나 이미 상징적 동일시 I(O)에 종속되어 있다”(Žižek 108).
10) 아이델츠타인(Eidelsztein)의 그림에 나오는 i(a)는 라깡의 <욕망의 그래프 II>의 i(o)와 같고(불어 autre는 영어 other), I(A)는 I(O)와 같다(Autre=Other).
그래프의 I(A)는 상징적 동일시(identification)를 나타내는데(Žižek 108),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체가 동일시하는 대타자(Autre, Other)의 기표(the one of the Other)11), 예를 들면, 아빠/엄마의 기표이며, 이는 자아가 이상으로 삼는 기표, 자아 이상(ego-Ideal)이 된다.
위의 예에서, 아빠/엄마가 자아 이상이라면, 자아 이상의 매트릭스를 배경으로 소녀가 자신의 바람직한 이미지라고 믿는 날씬한 몸매는 이상 자아(ideal-ego)이다.12) 이상 자아는 주체가 상징적 동일시를 하는 대타자의 담론이 재현하는 이미지와 상상적 동일시를 함으로써 형성된다. 이상 자아는 자아를 이끌어 가는 바람직한 자아의 모습으로, 주체의 무의식에 깊게 자리 잡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 멋지거나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모습(이상 자아)를 자신에게서 발견할 때 만족감을 느끼는데, 이것이 자아감이다. 그러나 자아는 주체의 참된 본질이 아니라 주변의 상징 대타자의 기표 재현과의 동일시, 즉 허상적(misrecognized) 관계에 의해 구성된 구성물이다. 하지만 자아가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라 할지라도, 자아는 주체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이상적 자아에 못 미치는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할 때, 예를 들면 날씬한 몸매가 이상자아인데 현실의 몸은 뚱뚱할 때, 우리의 자아감은 상처를 받는다. 이상자아와 현실의 주체 사이의 분열이 심리적 고통을 낳는다.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날씬한 몸매라는 이상 자아에 자신을 맞춰 몸을 날씬하게 하거나, 이상 자아를 뚱뚱한 몸매의 자아로 바꾸어, 뚱뚱한 몸매를 보면서 참다운 만족감을 얻어야한다.
날씬한 몸매의 이상 자아를 가졌지만 몸이 뚱뚱한 사람이 지속적인 다이어트를 통해 날씬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자신의 이상 자아를 뚱뚱한 몸매의 이미지로 완전히 바꾸는 것은 자아의 무의식 구성을 급진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 또한 매우 어렵다. 임옥희의 말처럼, 날씬한 몸매를 이상으로 여기고 그에 따라 몸을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의 욕망에 종속된 것이자 타자의 욕망일 뿐이라고 여성주의자들이 지적해도 여성들이 그런 욕망에서 자유롭기 힘든 것이다.
합리적 비판을 통해 자신의 이상 자아와 현실 자아를 일치시켜 행복을 찾으면 될 텐데, 왜 그것이 그렇게 힘든가? 여기에는 단순히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향유의 문제가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계에서 널리 알려진 “악어 사나이” 이야기를 살펴보자.
정신분석 초심자A씨에게 내담자B가 찾아와 “자기 침대 아래에 악어가 사는데, 때로 입을 크게 벌려 나를 잡아먹으려 해서 살 수가 없다” 고 말하자 분석가A는 “그것은 당신이 만들어 낸 환상이니,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지내라”고 말한다. 내담자B는 “잘 알겠다”고 말하고 돌아가서 다시 분석가에게 오지 않았다.
분석가는 자신이 환자를 치료했다고 믿었다. 어느 날 분석가A가 길에서 분석가C를 만났다. C가 자기 환자가 죽어 그의 장례식에 가는 중이라 말했다. A가 환자가 누구냐고 묻자 자기 침대 밑에 악어가 살고 있다고 믿는 “악어 사나이”인데, 그가 어제 악어에게 잡아먹혀 죽었다고 말했다. 그 악어 사나이는 분석가A에게 왔던 내담자로, 그에게 다시 오지 않는 동안, 증상의 악화로 죽었던 것이다.
초짜 분석가A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은 내담자의 환상을 떠받치고 있는 욕망과 향유의 차원이다.
11) 이는 또한 “대타자의 기표로서의 나”(the I as the one of the Other)이다(Eidelsztein 108-9).
12) 자아 이상(ego-ideal)과 이상 자아(ideal-ego)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Eidelsztein (116-122), Žižek(107-109), Pluth(50-54) 참고.
라깡의 <욕망의 그래프 완결판>(Écrits 315)을 보며, 자아의 욕망, 환상, 향유의 문제를 짚어보자.
그래프에서 d는 욕망(desire), S◇D는 기표화되지 않는 실재계의 욕동(drive), Jouissance는 실재계의 향유, Castration은 상징적 아버지의 법(Law)에 의한 거세, S(Ø)는 대타자의 결핍의 기표(the signifier of the lack of the Other) 또는 실재계의 절대적 대타자, S◇a는 환상(fantasy)을 나타낸다.
욕망은 생물학적 욕구(need)와 달리 아이가 상징계에 진입하여 소외와 결핍을 갖게 되면서 발생한다.
엄마와의 상상적 통일인 이자적 관계를 가질 때 아이가 누리던 완전한 향유는 아이가 상징계에 진입하여 소외뿐만 아니라 이자적 관계를 금지하는 아버지의 법에 의해 거세된다. 거세된 주체가 완전한 향유는 아니지만 결핍을 채워주는 듯한 만족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은 대상a와의 만남, 즉, 환상이다.
그래프의 최상단에 있는 Jouissance→S(Ø)→S◇D→Castration부분은 실재계의 영역인데, 욕동(drive,S◇D)은 욕망처럼 상징계 진입의 결과로 생겼지만, 욕망과 달리 기표화되지 않는 실재계의 리비도이다.
욕동처럼, 욕망은 기표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욕동과 달리, 기표와 밀접한 관계를 통해 운동한다. 라깡의 유명한 명제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는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거나 일류대학이나 일류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갖는 것은 많은 타자들이, 상징계의 대타자의 담론들이, 그것을 욕망하거나 바람직한(desirable) 것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의 가치는 그 자체로 (사용)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타자가 그것에 대한 욕망을 갖기 때문이며, 그것의 향유의 가치는 그것을 욕망하지만 향유하지 못하는 (대)타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라깡에게 가치는 사용가치(use value)라기 보다는 향유가치(jouissance value)이다. 모두가 다 S라인 몸매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S라인에 대한 욕망은 강하지 않을 것이다. S라인 몸매가 바람직한 것으로 재현되지만 그것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몸매를 가진 소수의 주체는 즐거움/향유를 느끼는 것이며, 그 향유가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S라인 몸매를 갖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다시 그래프에서 욕망은 상징계의 대타자(O)와 욕동(S◇D)사이에 위치하는데, 이는 욕망이 대타자의 기표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과 더불어, 욕동은 욕망의 실재의 영역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다시 말하면, 좁은 의미의 상징계적 욕망은 실재계의 욕동과 구분되지만 넓은 의미의 욕망은 양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욕망d가 왼쪽 상단에 있는 실재계의 S(Ø)와 연결되고, 욕동(S◇D)도 S(Ø)로 연결되는 것은 욕망에도 욕동처럼 실재의 차원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넓은 의미의 욕망은 욕동과 좁은 의미의 욕망을 모두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주체가 대상a를 만나는 환상(S◇a)을 주목하면, 환상 쪽으로 욕망이 향하고 있고, 위쪽에서는 욕동이 또한 S(Ø)을 지나 환상 쪽으로 향하고 있다.
대상a는 욕망을 일으키는 원인이자 대상(cause-object of desire)임과 동시에 욕동의 대상이다. 욕망과 욕동을 함께 작동시키는 대상a와의 만남인 환상의 순간, 주체는 결핍을 잊고 충만감을 느낀다. 환상을 경험하고 있는 동안 주체는 욕망과 욕동이 동시에 만족되어지는 강한 향유를 얻는다.
화살표가 S◇a→S(O)→e로 나 있는 것은 자아(e)에 대타자 기표의 의미작용{S(O)}이 환상(S◇a)의 강력한 힘과 결합하여 작용하며, 여기에는 상당한 나르시스적 향유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프에서 자아에 세 가지 차원, 즉 자기 이미지{i(o)}의 상상계, 대타자 기표의 의미작용{S(O)}의 상징계, 그리고 S◇a, S(Ø), S◇D의 실재계 차원이 모두 작용함을 볼 수 있는데, 자아는 비록 본질적 실체가 아니지만 주체에게 매우 강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아가 강한 이상 자아를 가진 경우, 여기에는 그럴 듯한 자기 이미지와의 동일시(상상계), 그 이미지를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는 매트릭스인 대타자(의 담론)(상징계), 이상자아와 자신의 동일시에서 오는 향유(실재계)가 중층적으로 작동한다.
이상자아와 현실의 자아 간의 불일치로 고통을 겪는 주체가 있다면, 비판담론을 통한 이상자아의 해체는 매우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 친구, 친구 부모, 친척들, 선생님, TV, 그림, 동화책, 광고, 영화, 인터넷 등등을 통해, “날씬한 몸이 예쁘다”라는 기표를 끊임없이 훈습(薰習)13)받았다면, 날씬한 몸매의 이상 자아를 형성하고 그것에 대한 강력한 환상을 갖기 쉬운데, 실제의 몸이 뚱뚱하다면, 자아는 상당한 상처를 받을 것이다. 날씬한 몸매의 이상자아가 대중 매체 등의 담론에 의해 상징계의 수준에서만 형성되었다면, 이 담론의 비판으로 이상자아를 해체, 재구성할 수 있지만, 여기에 상상계, 실재계의 차원이 모두 작용하는 강력한 환상이 있다면, 사태는 매우 복잡해진다.
날씬한 몸매의 이상자아가 초자아(superego)로 작용하며, 뚱뚱한 주체를 처벌, 예를들면, 음식섭취를 거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자아와 이상자아와의 관계가 모든 주체에게 동일한 종류와 강도의 관계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주체A와 주체B가 같은 한국사회의 일원이라도, 주체A에겐 날씬한 몸매가 이상자아의 주요 요소이지만 주체B에겐 뛰어난 지성이 이상자아의 핵심을 구성할 수 있다.
외모문화가 외모획일주의, 외모차별주의로 되지 않으려면, 이러한 이상자아의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주체A와 주체C의 이상자아에 날씬한 몸매가 주요 요소라 하더라도 주체A에겐 날씬한 몸매와 이상자아의 관계에 상상계,상징계, 실재계 모두가 작동하는 강력한 관계일 수 있지만, 주체C에겐 실재계의 향유가 약하게 작동하는 관계일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 몸매 만들기 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적은 반면, 전자에게는 매우 크다. 특정한 이상자아와 현실자아와의 관계에 이러한 종류와 강도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각 주체의 개인적 삶의 역사의 차이 때문이다. 이것이 몸매 만들기 중독 등을 젠더 이데올로기 등 집단적 사회현상의 관점에서만 분석해서는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이다.
13) 훈습(薰習; vãsanã)은 경험하는 모든 것, 특히, 반복적인 행위의 결과(業)가 인격의 근저인 아뢰아식에 점차로 쌓이는 것(김명우 99)을 의미하는 불교용어이지만, 필자는 여기서 반복을 통해 기표가 무의식에 축적되고 여기에 리비도가 함께 투사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III. 외모 문화와 욕망의 중층구조
외모문화현상에는 대타자의 다층적인 담론 기표라는 집단적 차원과 개별 주체의 욕망이라는 개인적 차원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라깡에 따르면, 개별 주체의 욕망은 환유(metonymy)와 은유(metaphor)를 통해 움직인다. 환유는 보통 “한 사물을 나타내기 위해서 한 사물의 속성 혹은 그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어떤 것을 사용하는” 수사법인데, 예를 들면 정부를 구성하는 한 부분인 “청와대”가 정부 전체를 대신해서 사용되는 것이다(서혜련 140). 라깡은 『세미나3』(Seminar III)에서 환유를 “하나의 사물이 그것의 용기, 부분, 또는 그것과 연관되는 다른 것에 의해 이름 지어지는 것”(221)이라 정의하지만, 나중의 『세미나5』(Seminar V)에서는 약간 수정하여, “환유에서 중요한 것은 기호연쇄에서의 인접성이지, 개념상이나 실제의 사물관계에서의 인접성일 필요는 없다”(재인용, Pluth 34)고 말한다.
『세미나5』의 라깡에게, 환유는 인접성에 의해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로 대체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인접성은 반드시 두 기표의 지시대상들 간의 인접성이나 두 기표의 기의들 간의 객관적인 의미적 인접성일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주체가 사용하는 기표의 연쇄에서 두 기표애 대한 주관적 인접관계이다.
라깡은 또한 『세미나3』에서 환유는 일반적으로 프로이트가 전치(displacement)라 말한 것과 같다(221)고 말했는데, 꿈 작용 등에서 전치는 두 기표의 현실 또는 개념 상의 인접성 때문이 아니라 꿈꾸는 주체의 마음속에 만들어진 기표들의 연쇄 상의 인접성 때문에 작동한다는 것을 환기하면, 이미 『세미나3』에서 라깡은 환유를 기표간의 인접관계에 의한 대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라깡에게 있어 환유는 전치처럼 주체의 마음에서 하나의 기표가 인접관계에 의해 다른 기표로 연상, 대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소녀가 날씬한 몸매에 대한 선망을 갖는데, 그 이유가 어려서 매우 사랑했던 이모의 두드러진 특성이 날씬한 몸매 때문이었다면, 날씬한 몸매에 대한 그녀의 현재의 욕망은 그녀의 욕망 대상이 이모에서 이모의 특성의 한 부분인 날씬한 몸매로 환유적으로 운동한 결과이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f (이모, 날씬한 몸)S ≒ 날씬한 몸(-)s
등식의 왼쪽은 기표(S) “이모”가 다른 기표 “날씬한 몸”으로 움직인 것의 함수, 즉, 기능(f)을 나타낸다.
오른 쪽에서 기표 “이모”를 환유적으로 대체한 새 기표 “날씬한 몸”만 표면에 보이지만, “날씬한 몸”은 소녀에게 어떤 기의효과(s)를 가지며, 이 기의 효과는 “날씬한 몸”에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소녀에게 의미 있게 작용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소녀가 날씬한 몸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환유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은유는 문학사에서 매우 다양하게 정의되어 온 복잡한 개념인데, 그것은 보통 “한 단어나 구절이 일반적인 용법으로부터 새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맥락으로 이동하게 하는 수사법”(Encyclopedia 760)이다.
예를 들면, “인생은 굶주린 동물이다”(서혜련 129)에서 “인생”이란 말이 그것과 일반적으로 연상되지 않는 말인 “굶주린 동물”과 연결되는 맥락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것이 은유이다.
“인생은 굶주린 동물이다”에는 기표 “인생”과 기표 “굶주린 동물”가 한 문장에 병치되어 있는데, 이런 형태의 은유는 “동격은유”(appositive metaphor)이다; 은유에는 이뿐만 아니라 대체은유(substitution metaphor), 확장은유(extention metaphor)가 있다(Grigg 160).
라깡에게 있어, 은유는 “기표연쇄에서 한 기표가 다른 기표를 대체하는 것(substitution)”(Pluth 33)이며, 여기서 대체 효과는 대체된 기표가 갖고 있던 “기존의 확립된 의미를 무효화 할 정도”로 크다(Lacan,Seminar III 218). 그리그(Grigg)의 해석에 의하면, 라깡이 말하는 은유는 대체은유인데, 환유도 대체은유의 일종이며, 환유와 은유의 차이는 두 기표 간에 어떤 관계(인접성 등)이 있으면 환유, 그런 것이 없으면 은유이다(160).
라깡이 은유와 환유를 어떻게 명확하게 구분했는가는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지만, 라깡의 환유 개념에서 강조되는 것은 인접성인 반면, 은유의 개념에서 강조되는 것은 대체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이름”(the Name of the Father)이 “엄마의 욕망”(the desire of the mother)을 대체하는 것을 라깡은 은유라 부른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the Name of the Father
the desire of the mother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를 대체하는 은유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 즉, “기표가 기의로 통과하는 것, 새 의미작용을 만드는 것”(Evans 112)이기도 한다. 이를 문화현상에서 보면, 외모지상주의에 흠뻑 젖어있는 어느 주체에게 “날씬한 몸”의 기표는 단순히 “지방이 적고 마른 몸”이란 일반적인 기의가 아니라 “최고의 선”이라는 새 의미작용을 나타내는데, 이 때 기표 “날씬한 몸”이 은유적으로 기의“최고의 선”을 대체한 것이라 볼 수 있다.14)
날씬한 몸
최고의 선
라깡은 『세미나3』에서 환유를 프로이트의 전치(displacement)개념과 등치시키는 동시에 은유를 압축(condensation)개념과 동일시한다(221). 은유는 하나의 기표가 다른 하나의 기표를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압축에서처럼, 하나의 기표가 복수의 기표를 대체하는 경우도 말한다.
예를 들면, 성공하길 열망하는 어느 소녀가 아이돌A를 우상시하는데 그의 두드러진 특성은 날씬한 몸매이고, 그녀가 매일 수 시간 씩 보는 TV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날씬하고 뚱뚱한 사람들은 낙오자로 제시되는 경우, 그녀에게 날씬한 몸매의 기표는 그녀가 열망하는 아이돌A와 성공의 기표를 모두 대체하는 은유가 된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날씬한 몸매
아이돌A 성공
개별 주체가 날씬한 몸매, 식스팩 복근, S라인, V라인, M라인 등 어느 종류의 몸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떤 방식(다이어트, 운동, 성형 등)으로 실천하며, 어느 양태(일반적이거나 중독 등)를 보이는가는 그의 개인 역사의 경험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때 주체의 욕망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환유와 은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많은 개인들에게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지금의 외모 만들기는 개별 주체들에게 사회의 다층적인 상징코드들이 은유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외모를 가꾸고자 하는 개별 주체의 욕망에 영향을 미치는 상징코드로 많이 지적되는 것이 대중매체의 담론이다. TV, 영화, 대중음악, 광고, 인터넷 등 대중매체는 획일적인 몸 이미지와 담론을 대량생산하고 몸만들기를 유행시키고 있다(임인숙, 「다이어트」 166; 박주영 68; 김지경 31).
대중매체는 날씬한 몸매, 탄력 있는 S라인이나 근육의 몸매, V라인의 갸름한 얼굴, 쌍꺼풀 눈, 오똑한 코를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외모가 좋은 사람이 더 성공 가능성이 많다거나 머리도 더 좋다는 학술 담론도 매중매체를 통해 유포되고 있다. 대중매체의 담론들이 “몸이 곧 자아로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개인들의 욕망과 불안을 자극”한다(임인숙 「다이어트」 168).
뚱뚱함은 무절제, 무능력, 멍청함으로, 날씬함은 절제력, 능력, 지성과 동일시되며(김지경 28; 박주영 56), 날씬한 몸매의 이미지를 누구나 본 받아야할 이상적인 미의 모습으로 매중매체가 반복 재현하는 동안, 기본적으로 대중매체라는 대타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그것으로부터 영향 받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 즉 대중매체와 상징적 동일시를 하는 사람들은 대중매체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반복 제시하는 날씬한 몸의 이미지를 자신의 이상 자아로 인식, 내면화, 동일시하게 되어, 대중매체의 미적 기준에 맞는 몸매를 가지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는 반면,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아감에 상처나 불안을 느낀다.15)
대중매체 자체나 대중매체의 미적 담론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과의 상징적 상상적 동일시를 안 하거나 미약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의 미적기준을 자아이상으로 구성하는 것도 희박하여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몸만들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그 열풍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여성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개인의 본질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몸으로 실천하고 수행하고 행하는 것”인데 “외모를 치장하고 가꾸는 성, 타자의 시선에 의해서 평가받는 성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었다(임인숙, 「남성의 외모관리」 89).
이러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젠더 이데올로기의 시선 하에서, 경제력 등 능력의 유무에 의해 규정되고 차별화되고 여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외모에 의해 규정되고 차별화되고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외꺼풀의 작은 눈을 가진 여성이 자신도 모르게 쌍꺼풀의 눈을 아름다운 눈으로 믿고 있고, 자신이 사랑받고 싶은 남성이 쌍꺼풀의 눈을 아름다운 눈으로 생각하며, 외꺼풀의 작은 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는 쌍꺼풀 수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녀에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나 남성의 욕망에 종속되지 말고 자기 몸의 순수한 자연미에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지라는 여성주의적 충고는 효력이 별로 없다. 그녀에게 여성의 외모는 단순히 이미지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망, 거기서 오는 환상, 환상에서 오는 향유 등의 중층적 요소들이 작용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시각문화, 특히, 카메라의 시각문화도 외모문화를 낳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상적인 몸 이미지의 확산은 주로 시각매체를 통해”(임인숙, 「몸 자아」 100) 이루어지는데, 시각매체에서 중요한 카메라는 육안에 의한 지각 때보다 몸을 더 크게 보이도록 재현하는 특성이 있어, 카메라의 시각매체인 TV, 영화, 광고, 사진 등에 나오는 배우나 모델의 몸은 마른 몸인 경우가 많다.
대중매체의 시각문화가 재현하는 몸은 날씬함을 넘어 “마른 몸”을 지향하게 되고, 시각문화의 대타자에 영향 받는 대중은 마른 몸을 이상 자아로 삼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 시각문화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마른 몸을 지향하게 만든다. 요즘 다이어트하거나 거식증에 걸린 남성의 숫자가 급증하는 것에는 시각문화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한국의 시각문화, 특히, 얼굴의 시각적 재현에 암묵적으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상문화이다. 예를 들어 대중 매체에 나오는 연예인 여성들이 각진 턱을 V라인으로 갸름하게 만드는 것은 카메라 특성 때문만이 아니라 각진 턱을 가진 여자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성격을 가졌다는 전통관상학(오현리367)적 문화가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 시각문화, 관상문화와 더불어 경쟁과 서열화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문화 또한 중요하다. 시각문화가 널리 퍼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은 단순히 자아가 아니라 자본이다.
재화와 서비스의 소유나 통제를 위해 다수를 경쟁시키지만, 소수만이 성공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 경쟁구조에서, 뛰어난 외모로 인정받아 향유를 얻는 자는 소수에게만 가능하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파트너를 배우자로 만나거나 더 좋은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믿어지고 있다.
실제로 1999년 공업계 교사 2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취업 시 여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학교 성적’(36.4%), ‘신체조건 및 외모’(24.7%)인 반면, 남학생의 경우는 ‘학교성적’(48.9%), ‘성격 및 인성’(25.6%)으로(임인숙, 「남성의 외모관리」 95), 남성의 외모는 중시되지 않았다.
1999년보다 더 최근(2002년)의 조사에 의하면,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받고있는 남성구직자가 9%, 여성구직자가 22%로(95), 여성보다 남성은 외모에 대한 영향을 취업에서 여전히 덜 받지만, 여성의 40%에 이르게 되었다. 남녀 모두에게 이제 “몸 관리는 육체자본을 생산하기 위한 목적지향적 행위”이다(93).
위에서 열거한 요소들 이외에 남녀평등과 성해방으로 인해 얼굴뿐만 아니라 몸의 섹시함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섹시코드, 지금도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지만 눈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 문화적 무의식이라 볼 수 있는, 성공을 부추기는 유교적 출세주의, 오똑한 코 등 서구의 미적기준의 식민화, 가족관계나 친구 관계는 물론 학교 등의 집단에서 개인의 독특함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한 집단획일주의 등이 외모 만들기 현상에 중층적으로 작용한다.
외모 만들기는 하나의 단순한 현상처럼 보이지만 이는 다층적 담론 코드가 작용하는 은유의 현상이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외모 만들기
대중매체, 젠더 이데올로기, 시각문화, 관상문화, 자본주의,
섹시코드, 출세주의, 서구이미지, 획일주의
위와 같이 외모만들기에 다층적인 대타자 담론의 기표들이 작용하지만, 외모 만들기는 개별 주체가 대타자 담론에 의해 형성된 외모 이미지를 이상자아로 내면화/동일시할 때 일어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주체가 담론의 재현을 이상자아로 받아들이지만, 내면화와 동일시에 리비도가 많이 투자되지 않아, 이상자아에 대한 강한 환상이 없는 경우이다. 상징계와 상상계의 차원에서만 주로 작동하는 이 경우에, 주체가 몸만들기에 적극 참여하고, 바람직한 자기 몸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의 기쁨을 얻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신성형수술을 받거나, 성형 중독에 걸리거나, 거식증 같은 섭식장애를 일으킬 만큼 몸만들기에 집착하진 않는다.
이들은 몸만들기에 열중하기도 하지만, 몸만들기에서 자기보존의 자아욕망을 해치는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거나, 몸만들기가 감내하기 힘든 고통(예를 들면, 40-50kg을 감량을 해야 하는 경우 등)을 동반하여, 이상자아에 자기를 맞추는데서 오는 기쁨보다 고통이 더 크면, 몸만들기를 멈추게 된다.
다이어트에서 흔히 보는 요요현상은 이들에게 많이 발견된다. 또한 이들은 몸 담론이 형성한 이상자아에 대한 리비도 투자가 많지 않아, 외모지상주의 비판 등 반대담론을 많이 접하면, 몸만들기로부터 거리 두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외모 만들기
이상자아
대중매체, 젠더 이데올로기, 시각문화, 관상문화, 자본주의,
섹시코드, 출세주의, 서구이미지, 획일주의
외모 담론에 의한 이상자아를 형성하는 다른 양태는 주체가 이상자아에 대한 강한 환상과 그 환상에서 향유를 크게 느낄 때 일어난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외모 만들기
환상, 향유
이상자아
대중매체, 젠더 이데올로기, 시각문화, 관상문화, 자본주의,
섹시코드, 출세주의, 서구이미지, 획일주의
이것은 상징계, 상상계뿐만 아니라 실재계의 향유의 차원이 작동하는 경우이다.
여기에도 다시 두 양태가 있다.
첫째는 외모이상과 현실의 자아 사이에 고통이나 증상을 동반하는 불일치가 없고, 외모이상에 따라 자기 몸을 만드는 행위에서 주체가 나르시스적 환상과 기쁨을 향유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대타자와 주체가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두 번째는 외모 만들기에 집착하지만 그것이 심각한 고통이나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이상적 외모의 이상자아는 자아를 지배하는 강력한 주인 기표이며, 주체는 이 주인 기표에 깊이 각인되어, 그것에 복종하지만, 고통을 동반한다. 심각한 부작용의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형에 의존하거나, 성형 중독에 걸리거나,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선풍기 아줌마 한혜경씨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계속 성형수술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부작용의 위험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가수로 대성공한다는 이상자아에 대한 환상과 그 환상의 순간에 느끼는 환희/향유가 위험에 대한 우려나 평소에 느끼던 결핍감을 다 가려줄 만큼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성형중독은 그녀의 증상(symptom)인데, 정신분석에서 잘 알려진 것처럼, 증상은 고통임과 동시에 향유이다. 재활치료에서 그녀가 성형수술과 더불어 정신치료를 받는 것은 그녀가 이 환상을 가로질러(traversing fantasy), 그것이 주는 향유를 격감시키기 위함이다. 다른 증상처럼, 향유가 격감되거나 제거되지 않는 한, 그녀의 성형의존이나 외모우상은 반복된다.
이사벨 카로나 제레미 글리처처럼, 거식증자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거식증자는 여성주의자들이 낭만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단식투쟁이나 패러디(박주영 72-73)가 아니다. 거식이라는 같은 증상을 나타내지만 거식증자들의 심리적 원인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주체(여성이든 남성이든)가 마른 몸의 기표를 이상자아로 받아들임은 물론 마른 몸의 이상자아를 구현하는 것이 초자아(superego)의 지상명령이 된 경우이다. 거식증자가 섭취를 거부하거나 섭취한 음식을 토하면서 자신의 몸을 마르게 하는 것은 한편으로 고통스럽지만, 정신적으로는, 금욕적인 수도사처럼, 초자아의 지고한 윤리적 명령에 따라 이상적인 자아를 만들어간다는 숭고한 실천이기에 도덕적 기쁨을 동반한다. 거식증자가 흔히 보이는 자부심이나 수도사적인 정신성을 보이는 것(박주영 61-62)은 이 때문이다.
그의 거식은 단순히 강도가 센 다이어트가 아니다. 일반 다이어트와는 달리, 그것은 초자아와 자아의 일치에서 오는 지고한 향유의 증상이다. 거식의 치료 또한 이러한 향유의 제거 없이는 어렵다.
두 번째로 거식증자는 자학증적 도착자(pervert)일 수 있다. 도착은 대타자의 근원적 결핍을 주체가 대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됨(a◇S)으로써 부인하는 것으로, 거식증자로서의 도착자에게 거식으로 몸을 마르게 하는 것은 자기를 대타자에게 봉헌하는 숭고하고 진지한 예식적 행위(ritual)이며, 거식은 단순히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이 아니라 자학(masochism)적 쾌락을 준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도착자의 삶의 방식이 신경증자인 일반인들의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타자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한,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도착적 거식증도 무조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주체가 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거식증을 통해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하는 참된 향유를 얻는다면, 거식은 그에게 나름의 훌륭한 삶이다. 타자에게 무엇이 절대선(絶對善)인지 누가 100% 확신할 수 있겠는가?
타자의 절대적 타자성(absolute alterity) 앞에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중지하고 그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외모문화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의 하나이고, 외모 욕망은 이 시대의 시대욕망, 외모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남을 살펴보았다. 문명 속에 사는 우리의 몸은 순수 자연물이 아니다. 몸은 자연생체와 문명의 기표가 함께 작용하는 결합체이다. 외모 만드는 문화는 고대에서부터 있어온 화장술, 패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문명과 더불어 탄생한 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최근의 외모만들기 문화는 그것의 현대 버전일 따름이다. 인간은 자기 시대의 몸담론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이를 내면화하고 자아이상으로 동일시하여 그에 따라 몸을 가꾼다.
푸코식으로 말하면, 담론은 주체를 억압함으로써 지배하기 보다는 내면화를 통해 자발적인 복종을 낳는다. 그러나 인간은 담론에 복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거부도 담론의 효과의 하나이다.
하지만 주체는 담론에 의해 단순히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주체에겐 담론의 기표로 환원시킬 수 없는, 실재의 향유의 차원이 있어, 담론 비판만으로는 때로 주체의 행위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실재의 향유는 기표화될 수 없어 재현적 시시비비(是是非非)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주체에 고유한(singular) 것이어서, 주체 자신이 증상, 고통 등으로 스스로 요청하지 않는 한,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한, 우리는 그의 향유를 존중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자본주의문화를 거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는 한, 규칙을 지키며 온전한 방식으로 부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처럼, 외모문화의 사회에서 어떤 담론으로 영향을 받았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증상이나 고통 없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거기서 즐거움과 자신감을 갖는다면, 그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몸만들기 담론에 따라 몸을 잘 가꾼 주체가 그렇지 않은 타자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사람마다 이상자아가 다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듯이, 몸의 외모는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외모는 그 사람의 개성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외모문화가 날씬한 몸매 등 어느 특정한 이미지의 기표만을 기준화, 표준화하여, 뚱뚱한 몸 등 다른 이미지를 차별하고, 억압한다면, 그것은 문화전체주의이며 독재이다.
또한 이웃이 부자가 되어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어느 가난한 사람이 부자되는 것을 이상자아로 삼고 그 욕망에 집착하여 가난한 자기 처지를 비관하고 스트레스 속에 산다면, 부자되기 담론이 그에겐 불행한 삶이라는 증상을 낳는 병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처럼, 체질적으로 좀 뚱뚱한 편인 사람이 날씬 몸매의 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다이어트 하느라 심한 고통을 겪는다면, 그 몸매관리는 불행한 증상이다.
대타자의 담론에 따른 자아상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자아상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형 중독이나 거식증처럼, 몸 가꾸기가 병리화하여 주체 자신도 받아들이는 못하는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 물론 거식 도착자처럼, 그 길만이 자신의 진정한 행복의 길이라고 한다면, 누가 무슨 권리로 막을 수 있겠는가?
외모의 시대욕망이 그 증상적, 병리적인 형태로 발전하지 않고, 건강하고 다양한 외모문화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각 주체가 자기에게 참된 기쁨을 주는 외모를 추구할 수 있고, 각자의 외모가 존중되는 다양성의 외모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외모문화가 외모차별주의 없이, 각자가 나름으로 외모를 향유하는 외모민주주의, 외모 향유의 시대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14) 앞서 말한 것처럼, 은유와 환유의 구분은 애매한 측면이 있는데, 필자의 단견으로는, 꿈작업에서 전치가 압축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것처럼, 때로 은유는 환유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위의 소녀의 예에서, 그녀의 “날씬한 몸”에 대한 욕망은 환유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지만, 그녀에게 기표 “날씬한 몸”이 일반적인 날씬한 몸이 아닌, 굉장한 어떤 것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은유적이다.
15) 널리 알려진 것처럼, 푸코(Foucault)에 따르면, 권력은 금지, 봉쇄, 자격박탈 등의 억압적 방법으로뿐만 아니라 담론화와 일상의 쾌락화를 통해서 가장 개인적인 행동까지도 통제한다(35). 대중매체의 권력도 그러한 담론화와 쾌락화를 통해 대중을 통제한다.
▸주제어: 외모, 몸, 문화, 욕망, 라깡, 욕망의 그래프, 정신분석
인용 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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