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따단따 경 - 참된 제사(D5)
바라문들은 유일신을 믿는다. 그들이 믿는 신의 이름은 브라흐마(범천)이다. 브라흐마는 세상의 창조자이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주재자(主宰者)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인간의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신을 달래거나 잘 보이기 위해 뇌물을 쓰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희생제이다.
불교를 제외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는 신을 믿는 종교이다.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고대의 인간들은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사건들이 모두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희생제를 지내 신을 달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올렸다가 양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가 인간희생에서 동물희생으로 바뀌었던 시대이다. 지금도 이슬람교의 희생제인 ‘이드 알 아드하(Eid al Adha)’에는 수많은 소와 양들이 도살되고 있다. 잉카와 마야문명은 사라지기 직전까지 인간을 제물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서는 많은 희생제가 행해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나 동물의 피와 살을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를 강력하게 비판하셨다. 그 후로 불교의 영향으로 인도에서 희생제가 사라졌으나 바라문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일부 힌두사원에서는 지금도 희생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바라문의 희생제는 두 가지 공정, 즉 얀뜨라(yantra, 기계)와 만뜨라(mantra, 주문)로 구분되어 있다.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는 하나의 부품이라도 빠지면 작동하지 않는다. 얀뜨라는 기계처럼 복잡한 제사 절차를 말한다. 제사의 절차를 하나라도 빠뜨리면 소원이 성취되지 않는다. 만뜨라는 제사를 거행할 때 외우는 주문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갖추어졌을 때 제사를 지낸 효력을 볼 수 있다.
희생제는 수백마리의 소, 송아지, 염소, 말, 양등을 제사기둥에 묶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사기둥은 희생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기둥으로 동물 한 마리당 하나의 기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700마리의 동물을 희생하려면 700개의 나무를 베어야 준비해야 한다. 힌두교에서는 지금도 기둥에 우유와 물과 기름을 뿌리며 주문을 외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바라문 꾸따단따는 희생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700마리 황소, 700마리 수송아지, 700암송아지, 700마리 염소, 700숫양을 도살하기 위해 끌려나와 제사기둥에 묶었다.
이때 붓다께서 유행하시다가 이 지방에 머무셨다. 바라문 꾸따단따는 붓다에게 나아가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 복잡한 제사보다 덜 복잡하고 더 간단하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주는 제사가 있습니까?”
“계를 지키는 출가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가져다준다.”
“이 복잡한 제사보다 덜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또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출가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사원을 짓는 것이다.”
“이 복잡한 제사보다 덜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다.”
“이 복잡한 제사보다 덜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5계를 받아 지니는 것이다.”
“이 복잡한 제사보다 덜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출가하여 계율을 구족하는 것이다.”
“이 복잡한 제사보다 덜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사선정(四禪定)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복잡한 제사보다 덜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더 많은 과보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또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위빳사나를 수행하여 통찰지를 구족하고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것이다.”
바라문 꾸따단따는 동물들을 풀어주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차제설법을 하셨다.
보시의 가르침, 계의 가르침,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욕망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됨, 출가의 공덕을 가르치셨다.
바라문 꾸따단따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청정한 믿음이 생겼을 때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가르치셨다.
바라문 꾸따단따는 수다원과를 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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