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설명 드린 대로 좌선을 해보셨는지요?
알아차림은 우리의 의식을 맑게 하는 필터입니다.
대상을 만날 때 알아차림과 함께 있으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만,
알아차림을 놓치고 대상을 만나면 마음은 이미 탐진치로 오염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대상에 대하여 번뇌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번뇌를 소멸하는 불교 수행의 핵심은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림으로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아서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그래서 생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일차적 목표입니다.
이 평온한 마음은 곧 선업으로 이어집니다.
매 순간의 마음은 즉시 신구의 3업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하면 일단 그 순간에 번뇌가 없어서 행복하고,
또한 알아차림이 이어지면 계속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선한 마음은 즉시 선한 물질과 정신을 만듭니다.
또한 이런 평온한 마음상태에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 열려 통찰지혜가 나옵니다.
즉, 몸과 마음이 지닌 진정한 성품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통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이런 통찰지를 가져오는 최고의 선업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좌선을 한 시간 하였다면 한 시간 동안 가장 수승한 선업을 쌓으신 것입니다.
만일 이 시간에 좌선을 하지 않고 누구를 만났다면 상대에 빠져서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마음에 좋아 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에 번뇌를 걸러주는 알아차림이라는 필터가 없이
상대에 대하여 탐심이나 성냄을 일으킨 것으로 불선업이며
불선한 과보를 예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라도 좌선을 하였다면
그동안은 탐심이나 성냄이 전혀 없는 선한 마음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이미 최고의 선업을 행한 것입니다.
즉 선한 과보가 올 씨앗을 심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을 몸에 붙여 잠간이라도 몸의 움직임이나 느낌을 알아차려보면
우리는 그 순간에 번뇌가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의 마음만 일어나기 때문에,
한 순간에 마음은 선심이거나 불선심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알아차림을 하는 마음은 선심이므로
현재 마음이 선심이면 그 자리에는 불선심이 일어날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몸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는 미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무엇을 갖고 싶다는 생각, 아만심 등이 일어날 틈이 없습니다.
즉, 알아차리는 마음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탐진치라는 도둑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마음은 몸의 움직임이나 느낌을 대상으로 하여
현재를 아는 깨끗한 마음상태입니다.
이런 순간은 바로 탐진치가 전혀 없는 최고의 선한 마음이며,
그 마음에 의해 최고의 선업을 행하게 되고,
이 선업을 일으킨 마음은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그 마음의 업은 반드시 저장되어 선한 과보를 불러오는 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린 선업의 힘이 모여서 때가 되면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값어치 있는 일은
보시와 계율을 지키는 것과 수행뿐이라고 합니다.
5) 경행(經行. 行禪)은 어떤 이익이 있나요?
우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움직이면서 삽니다.
가고 서고 눕고 구부리고 돌고 허리를 펴고 등등으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알아차림을 가지고 움직여야 수행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면서 움직이면 몸과 마음이 가볍고 평온하며,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리는 수행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들은 일상에서 어디를 갈 때,
마음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의 몸에 있지 않고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벌써 마음이 현재를 놓치고 미래로 달아나버립니다.
그리고 도착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망상을 하면서
들뜨거나 근심걱정을 하면서 걸어갑니다.
이것은 불선심의 상태입니다.
깨어있지 못하고 망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를 갈 때 걸어가는 자신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가면,
마음이 현재에 와 있는 것으로 마음이 들뜨지 않고 안정되어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고
고요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을 착오없이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평온한 마음상태는 저절로 가장 바르고 지혜로운 행위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움직일 때도 마음을 현재의 몸에 붙여 알아차림을 이어가야 합니다.
수행자가 선원에서 경행을 하면서 움직임에 대한 알아차림을 숙달하면
실제 일상생활 속에서 움직일 때도 마음이 몸에 붙어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는 좌선과 경행을 1:1의 비율로 수행하도록
시간표가 짜여져 있어 그대로 수행을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비밀이 경행에 있다고 할 만큼 경행은 중요합니다.
경행은 움직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므로 순간순간의 집중력을 길러줍니다.
경행으로 생긴 집중은 좌선으로 생긴 집중보다 훨씬 잘 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행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수행하게 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건강을 위한 특별한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오직 경행으로 몸의 근력을 키우고, 소화를 돕고, 혈액순환을 돕고 체력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탁발이나 전법여행을 나갈 때도 알아차림을 가지고 경행을 하였답니다.
그만큼 경행은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행과정입니다.
선원에서 경행하는 법은,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고
바르게 서서 손은 마주 잡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현재 수행하려는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서 있는 자세를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죽 알아차려 내려가서, 마음이 발바닥으로 가면,
이제 한 발을 내밀면서 발에 마음을 기울여 발바닥의 닿음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잘 이어지면 한 발 전체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잘 되면 그 다음 단계로 들고 놓음으로 좀더 세밀하게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벽에 가까이 가서는 섬을 알아차리고,
또한 몸을 회전하면서는 돌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한 순간도 마음을 몸에서 떠나지 않도록해서
마음이 현재를 알아차리는 일을 계속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6. 경행은 이렇게 해보세요.
** 경행 **
경행도 좌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하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섬의 자세
몸의 자세를 바르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선다.
손은 앞으로 깍지를 끼거나,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는다.
혹은 뒤로 뒷짐 지듯이 잡는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보통 속도로 걸으며
앞으로 나갈 때는 반듯하게 일직선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섬을 알아차린 뒤에
다시 돌아서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앞을 향해 걸으면서 알아차린다.
섬의 자세에서는 먼저,
(1) 마음이 머리에서 발까지 몸의 느낌을 죽 느끼면서
서있는 몸의 전체적인 느낌을 알아차린다.
이것은 몸과 마음이 긴장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2) 이제 마음이 발에 오면 발바닥이 바닥에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2) 걸을 때
단계별로 나누어 한다.
이 경우에도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만 알아차린다.
(1) 한 발을 들어서 놓으면서 발바닥이 바닥에 "닿음"을 알아차린다.(1분절)
오른발 왼발이 닿을 때 닿는 것 하나만 마음이 직접 느끼면서 알아차린다.
이것이 잘 진행되면 그 다음은 좀 더 길게 한 발 전체를 알아차린다.
(2) "오른 발, 왼발"의 나아감을 알아차린다.(1분절)
먼저 움직임을 알고, 다음 느낌을 알아차린다.
(3) "들어서, 놓음"을 알아차린다.(2분절)
이 때에는 발을 들 때의 가벼움, 놓을 때의 무거움을 알아차린다.
(4)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알아차린다.(3분절)
시작과 중간과 끝의 전체를 알아차린다.
또한 발을 들 때의 화대, 움직일 때의 풍대,
내려놓을 때의 수대, 닿았을 때의 지대 등을 알 수 있다.
(5) "뒤꿈치 들고, 발을 들어서, 앞으로, 놓고, 누름"을 알아차린다.(5분절 알기)
더 집중을 하고자 할 때는 발의 움직임 하나를 5분절로 나누어서 할 수 있다.
(6)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린다.
갈 때 가려는 의도, 설 때 서려는 의도, 돌 때 돌려는 의도를 알아차린다.
(7) 집중이 잘 되어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차츰 발목, 무릎, 넓적다리, 허리의 움직임까지도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이렇게 경행을 여러 단계로 알아차리지만, 이것은 이론이고
실제로는 자신의 알아차리는 힘만큼 알아차립니다.
수행자가 한번에 너무 많은 대상을 다 알려고 욕심을 내지 말아야합니다.
즉 마음에 과잉의 힘을 주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긴장하면 마음은 들뗘서 몸에 붙어있지 못하고 자꾸 달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려지는 만큼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입니다.
길을 빨리 걷거나 혹은 운동장에서 걷기 운동을 할 때에는
다리의 동선(풍대)을 주시하는 것이 알아차림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집중이 되면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선원에서 경행을 할 때 시선은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2-3미터 전방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알아차리기에 알맞게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은 일정한 거리를 반복해서 왕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섬과 도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상기의 위험이 있을 수 있으며,
마음에 힘을 너무 주었기 때문에 좌선하려고 앉으면 잠이 올 수도 있습니다.
3) 돌아 설 때
이 때에도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1)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모두 알아차린다.
(2)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린다.
경행을 하면서 생긴 집중력은 좌선을 해서 생긴 집중력보다 강하여
집중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이익이 있습니다.
먼저 경행으로 어느정도 알아차림을 유지하다가
좌선에 들어가면 좌선에서도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잘 유지됩니다.
경행은 노력이 부족하여 게으르거나 졸음이 많은 수행자들에게
해태와 혼침을 극복하는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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