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위빠사나 수행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수행법입니다.
위빠사나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고행을 버리고
무상정등정각의 깨달음을 얻으실 때 사용하신 수행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승 없이 홀로 찾아내신 수행법으로,
붓다(아는 자. 覺者)라는 명호를 얻게 한 수행방법이 위빠사나입니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 이전에 있는 모든 수행법은
마음의 일시적 안정을 얻는 사마타 수행뿐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출가를 하시고 선정수행을 하는 스승을 만나 선정수행을 하셔서
색계 4선정인 비상비비상처정까지 얻으셨지만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할 수 없음을 경험하시고 그곳을 떠나십니다.
그리고는 다시 그 당시의 수행법인 고행을 6년간 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 해볼 수 있는 최고로 극심한 고행을 다 해보신 뒤에
고행도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를 줄 수 없는 수행법임을 아시고
다시 고행하는 수행방법을 버리십니다.
그리고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받으신 뒤 홀로 찾아내신 수행방법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위빠사나 수행법입니다.
역대의 모든 부처님(25분)이 모두 스승없이 홀로 위빠사나 수행법을 찾아내시고
그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 방법을 중생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방법을 통해서 연기와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신 뒤,
이 통찰지혜가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을 놓게하여 모든 번뇌를 소멸한 누진통을 얻으시고
무상정등정각(아뇩다라삼막삼보리)자 즉 일체를 아는 자,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이 수행법을 도성제 8정도로
그 당시의 수행자들에게 직접 지도하셨습니다.
최초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중도 수행법을 설하자
꼰단냐 비구(교진여)가 깨달음을 얻고
이어서 수많은 비구들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 당시에 이미 수많은 성자(아라한)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비록 부처님을 직접 만나는 인연은 없었지만,
부처님의 직접 말씀하신 빨리어 경전을 만나서
그것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알 수 있고,
또 번뇌를 소멸하는 4념처 수행법을 설하신 대념처경을 만나서
부처님의 수행법을 알 수 있고,
또 부처님의 수행법을 지도하실 수 있는
큰 스승들이 계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전통을 이어받은 상좌부 전통의 수행법이
우리나라에 남방불교라는 이름으로 들어왔고,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장소도 여러군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이 다 공개되어 있고 열려있습니다.
누구라도 해탈 열반에 대한 믿음을 내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해탈 열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가는 사람들입니다.
8) 위빠사나 수행은 어떤 경전에 근거한 수행인가요?
위빠사나 수행은 붓다께서 직접 설하신
빨리어 경전인 대념처경(마하사띠파타나 숫타)을 근거로 수행합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수많은 대승경전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말씀을 기록한 경전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에 시대적 요구에 의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에 대승사상을 첨가하여 만들어진 경전들입니다.
그래서 100%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원음인 대념처경 첫머리에
8정도 수행인 4념처에 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중생들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고,
아픔과 고뇌를 사라지게하고,
숭고한 길에 도달하게 하고
닙바나를 실현하게 하는 길,
즉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그는 느낌에 대하여 느낌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그는 마음에 대하여 마음을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그는 담마에 대하여 담마를 관찰하며,
열심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은
상좌부 불교 경전(빨리어)으로 전해져 내려온 대념처경에 근거한 수행법입니다.
그동안 금강경을 비롯한 수많은 대승경전들은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초기 불교의 경전들은 접할 기회가 없어서 대념처경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전은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전해진 경전이며
디가니까야(장부경전)에 속해있습니다.
실제로 초기불교 경전들을 읽어보면
대승불교 경전에서 듣지 못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게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빨리어에서
바로 우리말로 번역된 초기 경전들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수행자가 이런 초기 경전들을 읽을 수 있다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9)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란 무엇인가요?
부처님께서 대념처경에 말씀하신
네 가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이란
신수심법 4념처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해야하는 대상이
현재 자신의 몸(身)과 마음(心)인데
그것을 아는 것은 느낌(受)을 통해서입니다.
이렇게 느낌으로 알게 된 대상을 단지 알아차릴 대상인 법(法)이라고 받아들여
그 법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4념처에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vipassna(위빠사나)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자는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합니다.
몸과 마음을 벗어난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부딪치는 밖의 대상인 6경에 마음을 두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현재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외출하기 위하여 대문 밖을 나갈 때 피부에 닿는 바람에 대하여
현재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차릴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시원하다고 좋아하거나 춥다고 싫어하면
사실 그대로 그런 정신적현상이 있다고 아는 것이
이 순간에 수행자가 해야할 알아차림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면 피부에서 느끼는 느낌은
단지 지수화풍 4대의 물질적 현상이라고 지켜볼 수 있게 되고,
그동안 마음이 날씨에 대하여 좋다거나 싫다는 마음이 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현재의 상황을 사실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날씨에 대하여 번뇌를 일으키고 그 마음은 다음 순간의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날씨가 좋으면 더 좋은 날씨를 즐기고 싶어 놀러가고 싶고,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짜증을 내게 됩니다.
수행자는 이때라도 날씨에 반응한 자신의 상황을 다시 알아차리면
마음은 알아차림에 의해 다시 평온해집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어느 단계에서라도 하기만 하면 됩니다.
알아차림은 그 순간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어
더 이상 대상에 휘둘리지 않게 합니다.
이런 알아차림의 힘이 모이면
부처님께서 대념처경에 말씀하신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내게 됩니다.
10) 위빠사나는 무슨 뜻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위빠사나는 무슨 뜻이며,
대념처경에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으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낸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위빠사나( vi + passana)라는 말은
부처님 당시의 언어인 빨리어 입니다.
빨리어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직접 사용하신 언어입니다.
그 당시에 보통 사람들의 언어는 빨리어였고,
소수의 상류층 사람들만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였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법을 만날 수 있도록
빨리어로 법문을 하셨고, 제자들에게도 빨리어로 법문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기 불교 경전(부처님의 원음)들은 빨리어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부처님의 말씀을 한자(漢字)를 통하지 않고
빨리어에서 직접 우리나라 언어로 번역하여 출판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바른 불교, 부처님의 직설가르침,
제대로 된 불교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성숙되어있습니다.
4념처 위빠사나 수행은 4념처라는 네 군데 알아차릴 대상을
사마타가 아닌 위빠사나로 수행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vi 는 '분리하다' '여러 가지' 라는 뜻이 있는데
'여러 가지'에는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뜻,
즉 삼법인을 의미하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passana 는 통찰한다. 꿰뚫어 본다. 직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네 가지 알아차릴 대상을 분리해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네 가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품인
여러 가지 면(무상, 고, 무아의 측면)이 통찰된다는 뜻 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로 생긴 지혜를
있는 그대로 직관하여 본 통찰지혜라고 합니다.
네 가지 알아차릴 대상(4념처)이란
지금 이 순간, 즉 현재의 몸과 마음인데,
이것은 느낌으로 알게 되고, 그 느낌을 법(담마, 마음의 대상)으로,
알아차릴 대상으로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오직 현재의 몸과 마음이 대상이 되며,
그 이외에 다른 대상들은 일차적인 알아차릴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즉 이 순간의 몸(身) 느낌(受) 마음(心) 법(法)이란 네 가지 대상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분리해서
현재의 마음이 직접 알아차리는 마음의 행위입니다.
즉 알아차림을 하고 또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이 4념처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몸과 마음이
실제로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그 실상을 바르게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이해는 지금까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나'라고 집착했던 잘못된 견해를 깨주는 것이며
그 결과로 자신에 대한 잘못된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욕망과 고뇌를 버리고 지내게 됩니다.
잘못된 집착에서 벗어난다는 것의 의미는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자유와 해탈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와 수많은 수행법이 있지만,
인간을 모든 번뇌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친 종교는 불교이며
그 수행법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가르친 위빠사나 수행법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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