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셸리 케이건

1강 : 죽음

rainbow3 2019. 9. 17. 13:42


1강 : 죽음(Death) : 강의 개요 - 죽음 : 케이건 교수 예일대학

 

1. Course introduction


* 영어 유튜브-제외..ㅎ 


Death (PHIL 176)

Professor Kagan introduces the course and the material that will be covered during the semester. He aims to clarify what the class will focus on in particular and which subjects it will steer away from. The emphasis will be placed on philosophical questions that arise when one contemplates the nature of death. The first half of the course will address metaphysical questions while the second half will focus on value theory.

00:00 - Chapter 1. What This Class Is NOT, and What This Class Is
06:38 - Chapter 2. Common Views on Death Are Wrong: How This Class Is Taught
14:20 - Chapter 3. Course Requirements, Materials, and Format
21:03 - Chapter 4. on Grading Thoughts on Death
38:50 - Chapter 5. Student Eval!uations and Invitation

Complete course materials are available at the Open Yale Courses website: http://open.yale.edu/courses

This course was recorded in Spring 2007.

 

 

케이건 교수가 강의 및 강의 교재에 대해 소개하며, 강의에서 중점적으로 소개할 주제와 다루지 않을 주제에 대해 언급한다. 각 강의에서는 죽음의 본질에 대해 심사숙고할 때 떠오르는 철학적 질문들을 주로 다루게 된다. 강의 전반부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이 논의되고 후반부에서는 가치론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1. 강의 개요

 

셸리 케이건 교수: 좋아요, 이번 시간은 철학 176, 죽음에 대한 강의입니다. 제 이름은 셸리 케이건입니다. 제가 제일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나를 셸리라고 부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건 말이죠, 만약 우리가 길에서 만난다면 여러분은 강의 시간에 나에게 말을 걸어 올 것이고, 질문을 할 것입니다.

나는 셸리라는 이름에 반응합니다. 맞아요, 나는 ‘케이건 교수님’이라고 불러도 그에 응답하지만 반응하는 시간은 좀 더 오래 걸리죠. ‘케이건 교수님’은 내가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니까요. 저는 수 년 간 저를 셸리라고 부르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학생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저를 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의 저는 회색빛 머리를 가진 나이 많고 기품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나를 셸리라고 부르는 것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려는 강의는 앞서 말했듯이 죽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철학 강의이기도 하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이 수업에서 다루게 될 강의 주제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수업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첫 번째로 여러분이 죽음에 대한 강의에서 상당수가 듣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다루지 않을 주제들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수업이 여러분이 찾던 강의와 다르다면 나가셔서 다른 수업을 들으셔도 좋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배우지 않을 것이지만 죽음에 대한 강의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죽음의 본질에 대한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질문들 혹은 죽음의 현상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강의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여러분들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학박사. 1926.7.8-2004.8.24의 스위스 태생 정신과 의사이다. 《 인간의 죽음(원제: on Death and Dying) 》의 저자이며, 이 책에서 처음으로 현재 ‘퀴블러 로스 모델’로 알려진 것을 주장했다.)의 이른바 ‘죽음에 이르는 다섯 가지 단계’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부정과 비난, 그리고 협상의 여지 또한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다섯 단계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수업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장례 산업과 수많은 장의사들이 어떻게 슬픔에 빠져 약해진 사람들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을 생각입니다. 또한 가족을 잃은 슬픔에 도달하는 과정,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사회학적 시각, 남은 우리들이 어떻게 죽음을 회피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모두 중요한 주제들이지만 이 수업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이 강의에서 공부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배울 것은 사람들이 점점 죽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하면서 떠오른 철학적 문제들입니다. 이것처럼 전체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첫 번째 강의의 절반 정도는 몇 가지 철학 용어들에 익숙한 분들을 위하여 형이상학적 내용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대략 나머지 절반 정도는 가치 이론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따라서 첫 수업으로써 죽음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어떤 종유의 독립체가 인간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 수업에서 영혼에 대해 논할 때 제가 이야기하게 될 것들은 일부 철학적인 용어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무형의 것, 우리 신체와 분리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형태가 없는 영혼, 즉 우리의 신체적 죽음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만약 영혼이 없다면, 죽음의 본질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요?

죽음은 과연 어떤 종류의 사건인 것일까요?

내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죽음에서 살아남은 것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오늘 밤에 살아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목요일에 강의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오는 것이고, 아마도 그건 제가 되겠죠. 목요일에 이곳에 오는 사람과 여기에 앉아서 여러분에게 강의하고 있는 사람은 같은 사람일까요? 이것들이 인간 속성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매우 분명하게, 죽음과 지속적인 존재와 생존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 속성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한 학기의 절반동안 이러한 유의 문제에 대해 공부할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 가치 이론에 대해서 학습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죽음은 나쁜 것일까요? 지금, 물론 우리들 중 대다수는 즉각적이며 확고하게 죽음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일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이 어떻게 나쁠 수 있는지에 관한 일련의 철학적 수수께끼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빠른 답변을 주자면, 만약 내가 죽은 뒤에 내가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모든 것들이 나에게 나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하여 어떻게 죽음이 나쁠 수가 있는 걸까요?

내가 결과적으로 여러분에게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납득시키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죽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학습이 필요합니다.

죽음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 하나 이상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이후에 배울 예정입니다.

만약 죽음이 나쁘다면, 하나의 강력한 불가사의가 필연적으로 좋은 것이 되는 것일까요?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아니면 더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합니까? 무엇이 나를 내 죽음으로 향하게끔 합니까?

예를 들어, 제가 제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해야만 합니까?

제가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에 절망해야 합니까?

 

마지막으로는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 중 상당수는 자살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치 있고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살아갈, 오직 그 삶만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는 자살의 합리성, 도덕성과 연계된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수업의 절반은 형이상학에 대해,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가치 이론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다음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간략하게 말해서, 특히 이번과 같은 강의 개요 시간과 같이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여러분이 간단하게 찬성과 반대 양 편으로 나뉘고, 교수는 중립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수의 지식은 일종의 힌트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접근법 1입니다.

그리고 저는 때때로 개요 시간에 접근법 1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다른 접근법, 그리고 여러분이 주의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이번 학기, 이 수업에서는 좀 더 다른 방법을 취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본 강의에서 제가 발전시키고, 밀어붙이고, 여러분이 원한다면 혹은 옹호하게 되는 어떤 체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토론하고자 하는 쟁점에 대해 제가 어떤 관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수업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시각들에 대한 논의입니다. 그런 시각이 올바르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확신시키고자 합니다.

 

그러한 시각이 무엇인지 알려주기에 앞서, 저는 여러분이 아마도 믿고 있을 일련의 관점들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그런 관점들에 대한 자료를 드릴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해서, 여러분은 그 관점들 중 몇 가지를 믿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들 중 상당수가 믿고 있을, 그리고 제가 여러분들 중 대다수가 적어도 몇 가지 정도는 믿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관점들을 모은 것입니다.

 

여기에 일반적인 시각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단지 육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단지 뼈와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의 근본적인 일부일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육체 이상의 어떤 것, 우리의 비물질적인 부분,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기로 한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들 중 대다수, 여러분들 중 대다수는 영혼에 대해 믿을 것입니다. 분명히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무형의 영혼과 같은 것들에 대해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형인 영혼의 존재를 고려해 볼 때, 그것은 가능성, 정말로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상당한 가능성이 될 것입니다.

죽음은 신체의 파괴가 되겠지만, 영혼은 무형이므로 죽음 뒤에도 계속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실제로 영혼에 관해 믿고 있든지 아니든지, 여러분은 죽음이 나쁠 뿐만 아니라 너무 끔찍해서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고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우리가 영혼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적어도 불멸의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불멸은 멋질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이 불멸의 경우인지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것은 불멸입니다. 그것은 죽음이 나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혼은 우리에게서 영속성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영혼이 없다면, 죽음이 삶의 끝이라면, 만약 영속성이 없다면, 그건 유일하게 압도적으로 나쁜 것이어서 당연한 반응, 자연스러운 반응, 일반적인 반응은 공포와 절망으로 얼룩진 죽음의 가능성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바대로, 죽음은 너무 끔찍하고 삶은 정말 아름다워서 삶을 내던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한편으로는 비도덕적이고 또한 비상식적인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또한 자살은 항상 비이성적인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제가 죽음의 본질에 대해 일련의 일반적인 관점들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려고 하는 것, 이 수업에서 논의해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시각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혼은 없다고 여러분들에게 주지시키고자 노력하려고 합니다.

불멸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실제로 죽음에 적절한 반응이 아닙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죽음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보통의 시각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상당 부분 오류가 있습니다. 그것이 최소한의 제 목표이고 지향점입니다. 그것이 제가 강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저는 제가 믿고 있는 시각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들이 맞는 사실이고, 여러분들이 종래에는 진실을 믿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이번 학기가 끝날 때 여러분이 저에게 동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웃음]

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제 의견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올바르고, 냉정하고, 확고한 시각을 가지도록, 그리고 죽음과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우리들 중 대다수와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학기가 끝나도 이런저런 저의 특정한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시겠다면 그건 그대로 두십시오. 저는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러분이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와 관련해 찬성과 반대, 각각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신다면 저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카렌, 아마도 이건 당신이 이번 강의를 수강하는 데 있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군요.

 

다음 입문 관련 이야기: 수업 방식/학점/교수 평가 등에 관한 것은 제외..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