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장자

장자(내편) 소요유 1

rainbow3 2019. 10. 13. 15:50


<내편>은 장주 사상의 진수로 전해오는데, '양생주'의 경우 각 절이 독립되어 있어 연관성이 희박하며, '인간세'와 '응제왕'은 내용에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 장주 사상의 정수는 '소요유', '제물론', '덕충부', '대종사'의 4장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것은 장주 사상의 통일성을 찾기 위해 추구된 결과일 뿐, 결코 <장자> 전권의 가치를 부인할 만큼 중대한 결점은 아니다. 각 장의 제목은 그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

 

♣ 장자(내편) 소요유 1 - 일반적인 가치 기준을 깨라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을 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새의 이름을 이라 한다, 붕의 등도 넓이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붕이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을 덮은 구름과 같다. 붕은 태풍이 바다 위에 불어야 남쪽 바다로 옮겨갈 수 있다.

남쪽 바다란 천지이다.

기이한 일들이 기록된 제해에는「붕이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을 쳐서 삼천 리나 튀게 하고,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며, 6개월을 날고서야 쉬게 된다」고 적혀 있다.


☞ 존재라는 것은 저 홀로 위대할 수는 없다. 사람이 원초적 본성을 찾은 것이 붕새로 변해 날개를 가진 것과 다르지 않다.

    솟구쳐 오르는 것은 수행을 의미하며 남명은 초월적인 세상을 상징한다. 곧 남명은 신선계요, 열반이다.

    티베트에서는 완전히 자란 모습으로 태어나는 '가루다'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루다의 새끼는 알 속에 있을 때 이미 완전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는 결코 날 수가

    없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불성의 발현으로 이야기한다..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붕새의 비유와 닮아 있다.


  

장자(내편) 소요유 2 -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가

 

허공에는 아지랑이와 먼지, 생물의 숨결이 뒤섞여 있다.

하늘이 파란 것은 본래의 빛깔인가? 아니면 너무 멀고 끝이 없기 때문인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봐도 같을 것이다.

물이 깊지 않다면 큰 배를 띄울 만한 힘이 없다. 한 잔의 물을 오목한 곳에 채우면 겨자씨는 그 곳에서 배가 되어 뜨지만, 잔을 놓으면 바닥에 닿게 된다. 물은 얕은데 배는 크기 때문이다.

강한 바람이 두텁게 받혀주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다. 구만 리를 올라가면 바람이 그만큼 아래에 있게 되고 그렇게 된 다음에야 바람을 탈 수 있게 된다.

푸른 하늘을 등짐으로써 아무런 거리낌이 없게 되고 그렇게 된 뒤에야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붕새가 남명으로 날아가는 여정은 깨달음의 길, 소요유! 속된 세상을 초월하여 아무런 걸림없이 참된 자유의 세계에서

    노니는 지인(至人)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수 있고, 높이 솟구쳐야 바람을 탈 수 있는 법.   

    큰 고난과 큰 시련이 동반되는 험난 한 길일게다. 불행의 깊이가 깊지 않은 사람은 행복의 깊이도 얕은 법! 

    구만리를 솟구쳐 깊게 쌓인 바람을 타고 대도(大道)의 세상으로 날아가야 한다. 



장자(내편) 소요유 3 - 작은 것은 큰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매미와 작은 비둘기가 그것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날아서 느릅나무나 박달나무 가지에 간신히 오르는데, 어떤 때는 그곳에도 못 오르고  땅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무엇 때문에 9만 리나 높이 올라 남쪽 바다로 가는가?」

가까운 교외에 가는 사람은 세 끼 밥만 먹고 갔다 와도 배는 여전히 부를 것이다. 백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전날 밤에 양식을 찧어 준비한다.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양식을 모아 준비한다.

이 두 짐승이 무엇을 알겠는가? 


☞ 매미와 비둘기도 날개가 있다. 그러나 날개가 있다고 다 남명으로 갈 수 있는게 아니다. 낮은 식견에 붕새의 날개를

    제 가진 날개인 양 생각한다. 노자도, 공자도 조롱을 받았다. 예수는 죽임을 당했다. 본래 바둑고수는 하수를

    조롱하고 비웃지 않는다. 하수를 조롱하고 훈수를 두는 것은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급수들이다.

    장자가 일갈한다. 벌레같은 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까부느냐!


 

장자(내편) 소요유 4 - 짧게 사는 것은 오래 사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게 사는 것은 오래 사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하루살이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짧은 기간동안 사는 것들이다.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오백 년을 봄으로 삼고 오백 년을 가을로 삼았다 한다. 태고에 대춘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았다 한다. 이것들이 오래 사는 것들이다.

팽조는 지금까지도 오래 산 사람으로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이 그에게 자기 목숨을 비교하려 한다면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장자는 말한다. "까불지 말거라. 적어도 3만년을 넘게 산 대준 정도는 되어야 오래 살았다고 할만하지, 고작 8백년을 산

    팽조 따위를 오래살았다고 하느냐! 참고로 장자가 오래 사는 것을 높인다고 오해하여 '불로장생'사상이 도교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장자도 백년을 못 넘겼다. 많아야 80이라고 추정한다.

 


장자(내편) 소요유 5 -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

 

탕임금이 극에게 물었을 때도 그런 대답을 했다. 탕임금이 극에게 물었다. “상하사방에 그 끝이 있는가?”극이 말하였다. “끝이 없습니다. 궁발의 북쪽에 명해라는 바다가 있는데, 그것이 천지입니다. 그곳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넓이는 수천 리에 달하고, 그 길이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곤이라 합니다. 그곳에 새도 있는데 그 새의 이름은 붕이라 합니다. 그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을 덮은 구름과 같습니다. 빙빙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올라, 구름도 없는 높은 곳에서 푸른 하늘을 등진 다음에야 남으로 가는데 남쪽의 바다로 가려는 것입니다.

작은 메추리가 그것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저것은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나는 힘껏 날아 올라도 몇 길도 오르지 못하여 내려오고, 쑥대 사이를 오락가락 하지만 이것도 역시 날아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저것은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다.


장자(내편) 소요유 6 - 세상의 가치기준을 초월하라

지혜는 벼슬 하나를 감당할 만하고, 행동은 한 고을에서 뛰어나고, 덕은 한 임금을 받들기에 적당하고, 능력은 한 나라의 신임을 받을 만한 사람이 자신을 보는 것도 이 메추리와 같다. 

송영자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웃었다. 그는 온 세상이 칭찬을 한다 해도 즐거워하는 일이 없었고, 온 세상이 비난을 한다 해도 기죽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밖의 일의 분수를 잘 알고 영예와 치욕의 한계를 알고 있었으므로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세상일에 대해 급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완전하지 못한 부분은 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녔다. 한 번 나서면 15일이 되어야 돌아왔다. 그는 바람에 연연하여 마음 졸이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걸어다니는 비록 면했다 해도 아직도 의지하는 데가 있다.

만약 하늘과 땅의 참 모습을 타고 날씨의 변화를 따라 무궁함에 노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디에 의지하는 데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인(至人)은 자기가 없고, 신인(神人)은 이룬 공이 없고,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장자(내편) 소요유 7 - 각자 삶의 분수와 방식이 있다

 

요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고 허유에게 말했다.

 “해와 달이 나와 있는데도 횃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빛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때맞춰 비가 왔는데도 여전히 물을 댄다면 그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선생께서 즉위하시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인데도 제가 그대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으니 부디 천하를 받아주십시오.”

허유가 대답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려 천하는 이미 다스려졌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당신을 대신한다면 그것은 명분 때문에 하는 것이 됩니다. 명분이란 사실의 부수물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부수물을 위해 천하를 맡아야 되겠습니까?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우리를 튼다해도 한 개의 나뭇가지를 사용할 뿐이며,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해도 배를 채우는 데 그칩니다.

돌아가십시오, 제가 천하를 맡는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숙수가 비록 숙설간 일을 보지 않는다 해도 시축 술그릇과 제기를 넘어가 그의 일을 대신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장자(내편) 소요유 8 - 신인이란 자연과 하나된 사람이다

 

견오가 연숙에게 물었다.

“접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황당하고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놀랍고 두려워 은하처럼 끝없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크고 엄청나서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연숙이 말했다.

“그가 어떤 말을 했습니까?”

견오가 말했다.

“막고사산에 신인이 살고 있었답니다. 살갗은 얼음이나 눈과 같고 몸은 부드러워 처녀와 같았는데,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셨으며, 구름을 타고나는 용을 몰면서 세상 밖에 노닐었다 합니다. 그의 정신이 모이면 만물이 상하거나 병드는 일이 없고 곡식들도 잘 여문다는 것입니다. 나는 허황하게 여겨 믿지 않았습니다.”

연숙이 말했다.

“장님은 무늬의 아름다움과는 상관이 없고, 귀머거리는 악기의 소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어찌 형체에만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겠습니까? 지혜에도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당신 같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 신인이 지닌 덕은 만물과 함께 어울려 하나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스스로 다스려지도록 되어 있다면 누가 고생하며 천하를 위해 일하겠습니까?

어떤 물건도 그 신인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장마에 크게 홍수가 져 그 물이 하늘에 닿게 된다 해도 물에 빠지지 않으며, 큰 가뭄에 쇠와 돌이 녹아 흐르고, 흙과 산이 타도 뜨거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티끌이나 때 또는 곡식의 쭉정이와 겨 같은 것으로도 요임금이나 순임금을 만들어낼 정도인데, 무엇 때문에 물건을 위해 일을 하려 하겠습니까?” 

 

장자(내편) 소요유 9 - 신인에게는 정치가 맞지 않는다

 

송나라 사람이 장보관을 사 가지고 월나라로 팔러갔다. 그러나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 문신을 하고 지내므로 팔 수가 없었다.

요임금이 백성들을 다스려 정치를 평화롭게 했지만 분수의 북쪽 막고사산으로 가서 네 분의 신인을 만나 보고는 아득히 천하를 잊어 버렸다.

 

장자(내편) 소요유 10  - 물건의 쓰임이란 쓰기에 달린 것이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내게 큰 박씨를 주었습니다. 그 박씨를 심었더니 자라서 다섯 섬들이 박이 열렸습니다. 그 박에 물이나 장을 넣어 보니 물러서 들 수가 없었고,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어 보았지만 크게 넓기만 해서 쓸모가 없었습니다. 크기만 하고 쓸데가 없어 부수어 버렸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큰 것을 쓰는 방법이 서툴군요.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대로 솜을 빠는 일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서 그 처방을 백금에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 상의했습니다.

「우리는 대대로 솜을 빨았지만 약간의 돈을 버는 데 불과했다. 하루아침에 처방을 백금에 사겠다니 그에게 팔자.

그 처방을 산 사람은 오나라로 가서 임금을 설득했습니다. 때마침 월나라가 침범해 와서 오나라 임금은 그를 장수로 삼았습니다. 그는 겨울철에 월나라 군사들과 물에서 싸워 크게 승리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오나라에서 땅까지 봉해 받았다 합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방법은 같은데 한 사람은 나라의 땅을 봉해 받고, 한 사람은 솜 빠는 일을 면하지 못한 것은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다섯 섬들이 큰 박이 있다면 어째서 그것을 배로 삼아 강호에 띄워 둘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그것이 펑퍼짐하여 쓸 곳이 없다고 탓하고 있으니, 선생의 마음이 트이지 못한 것입니다.” 

 

장자(내편) 소요유 11 - 쓸모 없는 것이어서 쓸모가 있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가죽나무라 부릅니다.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칠 수가 없고, 작은 가지들은 뒤틀려서 자를 댈 수도 없습니다.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의 말도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으니 사람들이 동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삵쾡이를 본적이 없습니까? 몸을 낮추고 엎드려 튀어나올 먹이를 노리지만,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덫에 걸리거나 그물에 걸려 죽고 맙니다. 태우란 소는 크기가 하늘의 구름과 같습니다. 그 소는 큰 일은 할 수 있지만 쥐는 잡지 못합니다. 지금 당신은 큰 나무를 두고 쓸 데 없다고 근심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고장의 광막한 들에 그것을 심어 놓고, 일 없이 그 곁을 노닐거나 그 아래 누워 낮잠을 잘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그 나무는 도끼에 찍히지 않을 것이고, 무엇도 그것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쓸 데 없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괴로움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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