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자(내편) 양생주 1 - 앎을 버려야 참된 삶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삶에는 한이 있으나 앎에는 한이 없다. 한이 있는 삶을 가지고 한이 없는 앎을 뒤쫓음은 위태로운 일이다.
그런데도 앎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위태로울 뿐이다.
♣ 장자(내편) 양생주 2 - 선과 악의 중간 바르고 자연스러운 길을 가라
선을 행함에 있어서는 명성을 가까이 하지 말고, 악을 행함에 있어서는 형벌을 가까이 하지 말 것이며, 중정(中正)을 따름으로써 법도를 삼는다면 몸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부양할 수 있을 것이며, 자기 목숨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 장자(내편) 양생주 3 - 자기도 대상도 없이 자연의 원리를 따라
포정이라는 백정이 문혜왕을 위해 소를 잡았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이나, 어깨를 대는 곳이나, 발로 밟는 곳이나, 무릎으로 누르는 곳에서는 뼈와 살이 떨어졌다. 칼이 지날 때마다 소리가 나는데 모두가 음률에 맞았다. 그의 동작은 상림의 춤과 같았고, 절도는 경수의 장단과 같았다.
문혜왕이 말했다.
“훌륭하다. 재주가 어떻게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있는가?”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서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았을 때는 소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삼 년 뒤에는 완전한 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천연의 조리를 따라 큰 틈을 쪼개고 큰 구멍을 따라 칼을 찌릅니다. 소의 본래의 구조에 따라 칼을 씀으로 힘줄이나 질긴 근육에 닿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찌 큰 뼈에 부딪히겠습니까?
훌륭한 백정은 일년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살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칼은 십구년이 되었고, 그 사이 잡은 소는 수천 마리가 됩니다. 그러나 칼날은 숫돌에 새로 간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는데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넣기 때문에 칼을 움직이는데 언제나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구년이 지나도 칼날은 새로 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뼈와 살이 엉긴 곳을 만날 때면 저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심조심 경계를 하면서 눈은 그곳을 주목하고 동작을 늦추며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살과 뼈가 떨어져 흙이 땅 위에 쌓이듯 쌓입니다. 그러면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기분에 젖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잘 닦아 잘 간수해 둡니다.”
문혜왕이 말했다.
“훌륭하다! 나는 너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 장자(내편) 양생주 4 - 분수대로 자연을 따라 살아라
공문헌이 우사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찌된 일인가? 어째서 한 발을 잘렸는가? 하늘이 그랬는가? 사람이 그랬는가?”
우사가 말했다.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이 한 일은 아닙니다. 하늘이 낳을 때 외발이 되도록 정해준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두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 외발도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지 사람의 짓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못 가에 사는 꿩은 열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쪼을 모이를 만나고, 백 발자국을 걸어야 한 번 마실 물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우리 속에서는 신경을 쓰느라 고생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곳에 사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장자(내편) 양생주 5 - 죽음과 삶에 초연해야 한다
노담이 죽자, 진실이 가서 세 번 곡하고는 나와버렸다.
그의 제자가 물었다.
“그 분은 선생님의 친구가 아니십니까?”
“그래, 친구였지.”
“그렇다면 이렇게 문상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다. 처음에는 나도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금 전에 내가 조상을 하면서 보니 노인들은 자기 자식을 잃은 것처럼 곡을 하고, 젊은이들은 그의 어버이를 여읜 것처럼 곡을 했다.
그들이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까닭은 반드시 조상해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조상을 하도록 만들고, 곡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곡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어기고 인정을 배반한 것이며 그의 분수를 잊은 것이다.
옛날에는 그런 것을 자연을 어긴 죄악이라 말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가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죽은 것도 죽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윤회하는 때에 안주하고, 주어진 운명에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은 파고들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것을 하늘의 속박에서의 해방이라 불렀었다.”
♣ 장자(내편) 양생주 6 - 자연에 의해 얻어지는 것은 영원하다
손가락으로 땔나무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불을 전파시키는 데에는 그것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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