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상/노장자

장자) 마음 비움의 계보학

rainbow3 2019. 12. 7. 15:58


마음 비움의 계보학
- 장자의 ‘심재’와 ‘좌망’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


이 종 성(충남대 철학과 교수)



[논문개요]


장자는 마음 비움의 방편으로 ‘심재’와 ‘좌망’ 등을 제시한다. 이들 ‘심재’와 ‘좌망’에 관련된 철학적 사유의 내용은 서로가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상호간의 관계가 사상적인 측면에 있어서 상호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주장 자체에 대하여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심재’와 ‘좌망’에 대한 사상적 특질이나, 사상사에 나타난 그 역할수행의 측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요청된다.


‘심재’와 ‘좌망’이 전혀 이질적인 사유구조를 지녔다고 평가한 것은 풍우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좌망’은 장자철학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인정할 수 있으나, ‘심재’는 비장자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평가한다. ‘심재’는 오히려 송윤학파에 의하여 주장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본고는 이러한 풍우란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 ‘심재’나 ‘좌망’의 방법이 다 같이 장자철학적 사유를 대변하는 것이며, 양자는 그 사상내용의 유사성까지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따라서 본고는 자연스럽게 비장자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심재’의 방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논의된다. 그리고 장자의 ‘심재’와 유사성을 보일만한 단서들을 순자와『관자』 4편, 송윤학파라 명명되는 학술유파의 주장들에서 찾아보고, 그 사상적 계보를 추적하여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심재’의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는 ‘허일이정(虛一而靜)’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 결과, ‘심재’의 사상사적인 계보가 송윤학파로부터 찾아질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점과 더불어 ‘심재’의 학술연원은 오히려 노자에게서 확보되어야 함을 논증하였다. 이는 ‘심재’가 황로학적 통치술에 사상적 기원을 두기보다는 순수 도가철학적인 사유로부터 연유되어야 하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심재’의 방법을 도가철학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동시에 장자적인 철학적 방법으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장자가 논의하는 ‘좌망’과 동일한 사유의 맥락에서 독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될 것이다.
‘심재’나 ‘좌망’의 철학적 목표는 다 같이 존재와 자아의 근원적 소통에있다.


* 주제분야:중국고대철학, 도가철학
* 주 제 어:심재, 좌망, 허일이정, 소통, 황로학



1. 문제의 제기: ‘심재’는 비장자적인 것인가?


동양적 사유의 전통에 있어서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을 묻는 것은 ‘진리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묻는다는 것은 곧 진리와 함께 살겠다고 하는 강한 실천의지가 이미 그 물음 안에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그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진리란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도리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하여 담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장자에게서 ‘도’에 도달하는 방법은 ‘심재’와 ‘좌망’으로 대표된다. 『장자』의 「인간세」와 「대종사」편에서 각각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심재’와 ‘좌망’의 논의는 장자가 공자와 안회의 대화방식을 빌어 서술하고 있다.

필자는 이에 관련된 각각의 논문을 이미 발표한 적이 있다.1) 따라서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분석은 본고에서 다루어질 성격이 아니다.

본고에서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심재’와 ‘좌망’의 방법이 서로 이질적인 것인가? 아니면 이들은 다 함께 상호 공통적인 문제의식의 토대 위에서 논의된 것인가? 또는 이들이 모두 장자적 사유방식을 대변하는 것이기는 한 것인가? 라는 등의 주제적 측면의 상관성에 관한 문제이다.


피상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문제에 유의하고자 하는 것은 ‘심재’와 ‘좌망’을 독해하는 풍우란의 견해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심재’와 ‘좌망’의 관련성을 문제 삼으며 ‘좌망’만이 장자나 또는 그와 생각을 공유하였던 장자학파의 방법일 뿐 ‘심재’의 방법은 태생적으로 장자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2) 여기에서 생각 외로 단순해 보이는 문제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왜냐 하면, 풍우란은 ‘심재’의 방법이 ‘허일이정(虛一而靜)’ 의 심리적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는데, 이것은 장자가 아니라 송견(宋鈃)과 윤문(尹文)에 의해 제기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3)


이 지점에 주목하게 될 때, 우리는 참으로 해결하기 곤란한 인물ㆍ시대ㆍ저작 등에 관한 고증작업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송견과 윤문의 인물과 시대가 그러하며, 그들의 유작이 전하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근거로 삼을만한 텍스트의 문제가 그러하며, 이들의 사상적 실체성의 규정문제가 또한 그러하다. 논의의 출발선상에서 이러한 한계를 감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심재’와 ‘좌망’의 상관성의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하는 이유는 고전이라는 텍스트 안에서 논의되는 철학적 진술의 내용들이 텍스트 자신과 전연 무관하게 논의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장자?의 텍스트 안에서 논의되는 철학적 개념들은 장자의 독창이 아니라면 타자의 사유를 빌려온 것들 일 것이다. 이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고 또한 상대적으로 배제한다고 해서 장자의 철학적 원의가 돋보이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점을 토대로 필자는 본고에서 장자가 논의하는 ‘심재’와 ‘좌망’ 의 방법을 모두 장자적 사유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그 상관성을 구체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1) 이종성, 「장자철학에 있어서 마음 닦음의 해체적 성격」, 『철학논총』, 제21집, 새한철학회, 2000.

이종성, 「장자의 ‘좌망’론」, 『대동철학』, 제24집, 대동철학회, 2004.

2) 馮友蘭, 「論莊子」, 『莊子哲學討論集』(北京: 中華書局, 1961), 119쪽 참조.
3) 馮友蘭, 앞의 논문, 119쪽 참조.



2. 순자와 ‘허일이정’


중국철학사에 있어서 ‘허일이정’이라는 철학적 개념은 순자에 이르러 완성된다. 시기적으로 장자보다는 후대에 태어나 활동한 순자는 유학의 학술사상을 존숭하면서도 당대의 유학적 사유의 영역에서 잘 논의되지 않았던 개념들까지 사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진술해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순자는 진리를 밝히는 자의 마음가짐이 ‘허일이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에 있어서 ‘허’라든가 ‘전일함’ 내지는 ‘고요함’이라는 개념들은 다 같이 유학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가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들로 비쳐질 만하다.


순자는 “인간은 무엇을 통하여 도를 인식하는가? 그것은 바로 마음을 통해서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도를 인식하는가? ‘텅 비고 전일하여 고요함’으로써 인식한다”4)라고 하면서, 마음의 인지적 과정의 한 측면으로 ‘허일이정’을 내세운다.

우리가 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텅 비게 하여야 한다. 비우면 외부 사물이 아무 편견 없이 들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을 한 군데 쏟아 ‘전일’하여야 한다. ‘전일’하면 모든 사물의 무궁한 변화에 알맞게 응할 수 있어 사물을 깊고 정통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을 ‘고요함’에 이르게 해야 된다. 고요하면 사물의 이치를 깊이 알게 된다. 순자는 마음이 ‘허일이정’할 수만 있으면 ‘크게 맑고 밝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우리의 마음이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사물의 전체적인 이치를 파악하여 가리고 막히는 병폐를 면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마음이 ‘허일이정’하여 ‘크게 맑고 밝은 상태’에 도달하면 도를 파악할 수 있어 정확하게 외부의 사물세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5)

이러한 순자의 생각에 의하면, 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른 생각들로부터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한결같이 도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고, 또한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 의미를 새길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를 위하여 욕망과 의지와 지식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순자의 ‘허일이정’의 방법은 장자의 ‘심재’와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 순자는 주로 지식론적 측면에서 ‘허일이정’을 설명하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그의 지식론은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인위적 노력을 통한 지식의 축적을 강조한다. 이 지식의 축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방해가 될 수 도 있다. 이 때문에 순자는 ‘허’를 중요시한다. 그는 종래의 ‘허’의 뜻을 이미 간직한 것으로 앞으로 받아들일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바꾸어 놓았다.

순자는 장자와 달리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쌓음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6) 마음이 비록 지식과 의지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텅 빔이 존재하며, 또한 마음이 가득 차지(滿) 않은 적이 없지만(또는, 두 가지(兩)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에 집중할 수 있으며, 마음은 움직이지 않은 적이 없지만 또한 고요함의 측면이 있다.7)


순자의 ‘허일이정’에 관한 이러한 사유는 전적으로 유가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8)

반면에 장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날마다 덜어내는 작업을 통하여 마음이 가득 차거나 두 가지 생각이 개입될 여지가 없어야만 한다고 본다. 그래서 장자는 ‘심재’ 안의 ‘허일이정’을 적극적인 지식 축적의 한 과정으로 보지 않고, 철저한 내적 수렴의 반성적 과정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욕망과 의지, 감정, 지식 등과 같은 일체의 방해요소들은 제거되어야만 한다고 보는 것이다.9)
장자에 있어서 ‘심재’, 또는 그 내용을 구성하는 ‘허일이정’은 형상적 자아로부터의 탈피와 동시에 근원적 자아로의 회귀를 지향한다. 즉, 마음 비움의 결과로 말미암아 소박 순수하게 되고, 전일함으로써 인위적 작위를 쌓지 아니하며, 고요함의 상태에서 외물에 동요되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다.

장자는 마음 비움의 문제를 통하여 염세주의적인 심리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기 퇴영적 공허나 허무에 도달하려는 목표를 갖지는 않는다. 또한 신비주의적 직관을 내용으로 하는 극단적 정적주의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장자적 마음 비움의 방법은 존재와 자아의 근원적 소통을 가능케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4)『순자』, 「해폐」, “人何以知道? 曰: 心. 心何以知? 曰: 虛壹而靜.”
5)『순자』, 「해폐」, “人生而有知, 知而有志,. 志也者, 臧也, 然而有所謂虛, 不以所已臧害所將受謂之虛. 心生而有知, 知而有異, 異也者, 同時兼知之. 同時兼知之, 兩也, 然而有所謂一, 不以夫一害此一謂之壹. 心, 臥則夢, 偸則自行,使之則謀. 故心未嘗不動也, 然而有所謂靜, 不以夢劇亂知謂之靜. 未得道而求道者, 謂之虛壹而靜, 作之, 則將須道者之虛則入, 將事道者之壹則盡, 盡將思道者靜則察. 知道察, 知道行, 體道者也. 虛壹而靜, 謂之大淸明” 참조.

6) 정인재, 「순자의 지식론」, 『榴軒 李鍾厚 博士 華甲紀念論文集』(대구: 이문사,1981), 376쪽 참조.
7)『순자』, 「해폐」, “心未嘗不臧也, 然而有所謂虛; 心未嘗不滿也, 然而有所謂一; 心未嘗不動也, 然而有所謂靜.”
8) 알프레드 포르케, 양재혁ㆍ최해숙 역주, 『중국고대철학사』(서울: 소명출판, 2004),336쪽.
9) 알프레드 포르케는 순자가 이런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고 본다(알프레드 포르케, 앞의 책, 336쪽). 그러나 순자가 장자의 철학적 방법이나 내용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기보다는, 그 특징을 잘 알아서 오히려 이를 유가적인 것으로 변용하여 전개하였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3.『관자』 4편과 ‘허일이정’


『관자』안에서도 「백심(白心)」, 「심술 상(心術上)」, 「심술 하(心術下)」, 「내업(內業)」의 4편은 다른 어느 편보다도 강한 도가적인 사유의 성향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관자』4편의 도가적 사유 성향은 순수 도가의 철학사상과는 구별되는 유사 도가적 특징을 보인다.『관자』 4편은 이미 당시대적 문제의식의 일단이 자신의 텍스트 안에 깊이 잠입되어 있는 일종의 사상적 변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황로학적 변용’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서, 노자나 장자와는 전연 다른 문제의식의 발로 때문에 일어난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관자』 4편이 도가적 사유의 편린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로서는 도를 ‘허’, ‘무’, ‘무형’ 등으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10) 또한 『관자』 4편에는 ‘허일이정’의 사상적 성향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이러한 점 역시 도가적 사유와 무관하지 않다. 다음의 인용문은 마음 비움과 전일함, 그리고 고요함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① “마음이 욕구로부터 비워지면, 신묘함이 장차 들어와 머문다. 모든 부정한 것이 제거되면 신묘함이 체류하게 된다.”11) “텅 비지 않으면 사물에 거스르게 된다.”12)
② “뜻을 온전하게 하고 마음을 한결같이 해야 하니 … 능히 온전하게 하고 능히 한결같이 할 수 있겠느냐?”13)

③ “자신의 마음과 고요함을 잃지 않으면 그 덕이 날마다 새롭게 되어 전체 세계를 알고 밝게 비치며 사방의 끝까지 관통한다.”14)

“마음이 고요함을 지키면 도가 장차 스스로 자리할 것이다.”15)


인용문①은 ‘마음 비움’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서, 마음 안에 주관적인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 지혜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항상 마음을 비워 선입견을 배제하여야만 외부의 사물을 아무런 마찰 없이 받아 들이게 된다. 반대로 마음이 주관적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으면 외부 사물에 거스르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노자적인 사유라기보다는 순자적인 사유와 가깝다. 왜냐 하면『관자』4편에서의 마음 비움의 내용은 기존의 주관적인 선입견 때문에 장차 받아들일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16)


인용문②는 ‘전일함’에 관련된 진술로서, 온 마음을 치우치지 않게 한결같이 모아 사물에 집중하라는 주장이다. 마음이 전일함을 견지해야만 만물의 변화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고, 감각기관과 마음이 모두 혼란스럽지 않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관자』는 “온 마음을 기울여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거듭 생각하라”17)고 한다.


인용문③은 ‘고요함’에 관련된 내용으로서, 사물이 마음에 이르기 전에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능히 얻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관자』 ?관자? 4편에서 마음은 감각기관을 통제하는 군주의 지위에 있지만,18) 만약
조급하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위를 잃게 된다.19) 그리고 마음이 자신의 지위를 상실하면, 외부의 사물은 감각기관을 혼란시키고 감각기관은 마음을 교란시켜서 제대로 사물 자체에 응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고요함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무위’하고 ‘무욕’하여야 한다.


10)『관자』, 「심술 상」, “虛無無形, 謂之道, 化育萬物, 謂之德.”
11)『관자』, 「심술 상」, “虛其欲, 神將入舍; 掃除不潔, 神乃留處.”
12)『관자』, 「심술 상」, “不虛則仵於物矣.”

13)『관자』, 「심술 하」, “專於意, 一於心 … 能專乎? 能一乎?” 특히, 『관자』4편의 이 문장과 바로 이어서 연결되는 문장(“能無卜筮而知吉凶乎? 能止乎? 能已乎? 能勿求諸人而得之已乎?”)은 『장자』 「경상초」편의 내용(“能抱一乎? 能勿失乎? 能無卜筮而知吉凶乎? 能止乎? 能已乎? 能舍諸人而求已乎?”)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에 주목된다.
14)『관자』, 「심술 하」, “正靜不失, 日新其德, 昭知天下, 通於四極.”
15)『관자』, 「내업」, “心能執靜, 道將自靜.”
16) 北京大學哲學系 中國哲學敎硏室,『中國哲學史』(北京: 北京大學出版部, 2002), 80쪽 및 胡家聰, 『管子新探』(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496-498쪽 참조.『관자』4편에 내재된 마음 비움, 전일함, 고요함의 논의는 뒤에 순자와 한비자에게 계승되어 보다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허일이정’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완성해내는 것이 바로 한비자의 스승이기도 한 순자임을 상기할 때, 순자의 주요 활동무대이기도 했던 ‘직하’(순자는 젊은 시절 ‘직하’에 유학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이곳에서 세 번의 좨주를 지내기도 한다)라는 공간적 장소성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왜냐 하면, 이것은 ‘허일이정’에 대하여 비슷한 사유를 공유하였던『관자』4편의 저자가 ‘직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17)『관자』, 「내업」, “思之, 思之, 又重思之.”

18)『관자』, 「심술 상」, “心之在體, 君之位也.”
19)『관자』, 「심술 상」, “動則失位, 靜乃自得” 참조.



초국성은 장립문이 주편한『현경』에서, 관자4편이 송윤학파의 저작이라고 주장하면서, 특히 송윤학파를 도가의 한 지파로 간주하고 있다.20)
그러나 순자가 주장한 ‘허일이정’의 내용이 장자의 ‘심재’와는 질적으로 달랐던 것처럼 또한 송윤학파에서 주장한 ‘허일이정’의 내용 역시 장자의 ‘심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초국성은 송윤학파가 ‘허일이정’의 방법을 통하여 도달하고자 한 실제적 목적은 장자의 그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송윤학파에서는 양기(養氣)를 통하여 신체에 충실함으로써 천수를 누리고자 하는 ‘장생구시’에 그 실제적 목표가 있었으나, 장자의 방법은 이른바 양신(養神)을 통하여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파악한다.21) 이것은 의도적으로 인도된 사상내용이22) 그 목적의식이 무엇이냐에 의하여 근원적으로는 상호 일치될 수만은 없었던 점을 잘 지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초국성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허일이정’의 사상은 장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 당시의 학술계에 있어서 오로지 송윤학파만이 독점적으로 주장한 것일 수만은 없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선진시대, 특히 전국시대의 직하학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학술적 주제였을 것이다. 즉 그것은 당시에 직하를 중심으로 하여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하나의 유행 사조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장자와 순자가 주장하는 ‘허일이정’에 담겨진 철학적 의미내용이 전혀 상반된 것과 같이 전국시대 당시에는 이 ‘허일이정’이라는 철학적 개념 하나를 가지고도 각 학파의 사상적 기저에 따라서 그 의미내용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였던 것이다. 물론 장자는 그의 저서 속에서 ‘허일이정’이라는 말을 직접 사용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23) 그러나 그 사상의 내용면에 있어서 장자의 ‘심재’는 ‘허일이정’의 방법과 전혀 무관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 하면 장자가 말하는 ‘심재’의 의미는 마음 비움과 고요함, 전일함으로써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관자』4편의 작자문제와 관련하여 초국성이 주장한 것처럼『관자』4편이 과연 송윤학파에 의하여 저술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관자』의 작자가 제나라의 재상이었던 관중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과24) 더불어『관자』4편의 실제 작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확정적으로 논의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국성을 비롯한 일부의 학자들이『관자』4편을 송윤학파의 저작이라고 보는 것은 모두 곽말약의 영향 때문이다.

일찍이 곽말약은『관자』4편이 송견과 윤문의 유작이라고 주장하였는데,25) 초국성은 곽말약의 이러한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풍우란은 곽말약의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관자』를 직하 학자들의 논문집 내지는 직하 학당의 학보라고 간주한다. 관중은 당시 제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나라의 직하에서 활동하던 사상가들은 그의 이름에 의탁하여 자신들의 학보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26) 또한『관자』가운데 「백심」을 비롯한 4편의 저작은 송견과 윤문의 저작이 아니며, 그 계통은 직하 황로학의 체계를 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황로학의 요점이 다름 아닌 ‘치신ㆍ치국’에 있다고 파악한다.27)


실제로『관자』의 일관된 학술적 목적의식이 부국강병을 위한 정치ㆍ경제론에 있었던 점을 염두에 둘 때, ‘허일이정’과 관련된 ‘허정’, ‘무위’, ‘무욕’ 등의 내용은 순수 도가적 사유의 참된 ‘허정’이나 ‘무위’ 내지는 ‘무욕’일 수 없다. 즉『관자』는 ‘인군 남면의 통치술’에다 이를 응용하였을 뿐이다.

도는 ‘허정’이니 인군도 역시 ‘허정’하지 않으면 안 되며, 도는 ‘무위’이므로 인군도 역시 ‘무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도는 ‘무욕’이므로 인군도 역시 ‘무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관자』가 주장하고자 한 실제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28)


20) 焦國成, 「道學與倫理學」, 『玄境 - 道學與中國文化』(張立文 主編, 北京: 人民出版社, 1996), 85-87쪽 참조.
21) 焦國成, 앞의 책, 85-87쪽 참조. 『관자』의 “몸이 바르지 않으면 덕이 오지 않는다”(「심술 하」, “形不正者, 德不來” 및 「내업」, “形不正, 德不來”)라는 말은 특히 사물을 통해 신체 조직이 교란되고 또한 이를 통해 마음이 교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한 것으로서, 신체를 강조한 대표적 예에 해당한다. 신체에 충실할 때 내적인 덕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이『관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22) 이는『관자』4편이 도가적 사유를 빌어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려는 태도를 견지하였음을 지적한 말이다.

23) ‘허일이정’을 하나의 철학적 개념으로서 직접 거론하는 것은 순자일 뿐이며, 장자나『관자』등의 사상내용 안에서 ‘허일이정’은 ‘마음 비움’, ‘전일함’, ‘고요함’이라는 각각의 덕목으로만 제시될 뿐이다. 이것은 시기적으로 뒷시대를 살았던 순자에게서 그 철학적 개념이 보다 완결성을 갖추고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4)『관자』는 당연히 제나라 관중의 저작일 것이라는 일반의 통념을 깨고, 관중의 저작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은 일찍이 주자로부터 비롯되었다(『주자어류』, 권137, 「戰國漢唐諸子」, “管子之書雜. 管子以功業著者. 恐未必曾著書” 및 “管子非仲所著” 참조).
25) 郭沫若, 「宋銒尹文遺著考」, 『靑銅時代』(北京: 人民出版社, 1982), 547-572쪽 및 郭沫若, 「稷下黃老學派的批判」, 『十批判書』(北京: 人民出版社, 1982), 157쪽 참조. 곽말약은『관자』 4편 중 「백심」은 윤문의 유저이며, 「심술 상」과 「심술 하」, 「내업」편은 송견의 저작이라고 본다.

26) 馮友蘭, 『中國哲學史新編(上)』(北京: 人民出版社, 2004), 118쪽.
27) 馮友蘭, 앞의 책, 500쪽 참조. 이 밖에도 오광은 『관자』4편이 직하도가의 학자인 전병ㆍ신도학파나 그 후학의 작품으로 전국시대 말기 황로학이 형성되기 이전에 저술되었다고 보고(吳光, 『黃老之學通論』(杭州: 浙江人民出版社, 1985), 93쪽), 장대년은『관자』4편이 송견과 윤문의 저작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신도의 작품도 아니며 제나라 관중학파의 저작이라고 주장한다(張岱年, 「管子的「心術」等篇非宋尹著作考」, 『道家文化硏究』(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2), 제2집, 320-325쪽).
28) 狩野直喜, 오이환 역, 『中國哲學史』(서울: 을유문화사, 1988), 234-235쪽 및 北京大學哲學系 中國哲學敎硏室, 『中國哲學史』(北京: 北京大學出版部, 2002), 76쪽 참조.



4. 송윤학파와 ‘심재’ 또는 ‘허일이정’


풍우란은 1961년 3월 26일『인민일보』에 상재한 글을 통하여 장자가 말한 ‘심재’의 방법이 장자학파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송윤학파의 방법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는 ‘심재’란 무지와 무욕을 통해 ‘허일이정’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것이며, 또한 ‘정기의 집중’을 위해 사려와 분별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29) 이러한 풍우란의 주장은 ‘허일이정’과 ‘정기의 집중’을 함께 논의한다는 측면에서 그가 비판했던 곽말약의 주장, 즉『관자』4편의 저자가 송윤학파라는 관점을 은연중 반영한 것이라고 여겨지게 한다. 적어도 그가『중국철학사신편』을 쓰기 이전까지 이러한 생각은 유효하게 작용하였던 것 같다.30)


장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송견과 윤문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중국철학사에서는 언젠가부터 이들의 사상을 함께 병칭하여 ‘송윤학파’라고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곽말약의 주장에 따른다면, 송견과 윤문은 제나라의 직하에서 함께 활동하였던 학자들로서 송견은 맹자보다 그 연배가 약간 위였을 것이며 윤문은 그 후배였을 것이다. 또한 그에 의하면, 이들은 함께 송윤학파라고 명명되며 이 학파는 선진 제자백가 중 중요한 하나의 학술유파에 해당한다고 본다.31) 그런데 곽말약이 송견과 윤문을 선진 제자 백가의 중요한 학술유파의 하나로 파악하는 근거는『장자』 「천하」편 때문이다. 그는 「천하」편에서 논의되는 유가 이외의 나머지 7대 학술유파 가운데에 송윤학파가 당당히 하나의 지위를 점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를 근거로 송견과 윤문의 학술사상이 공통의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32)
『장자』 「천하」편은 송견과 윤문을 함께 거론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세속적인 일에 폐를 입지 않고, 사물을 꾸미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일도 없고, 세상 사람들에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천하가 평화로워 백성이 살 수 있고 남도 나도 함께 모두 의식이 충족하기를 바라며,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명백하게 한다(白心). 옛날의 도술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송견과 윤문은 이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며 위아래가 균평한 모양의 화산관을 만들어서 자기네 학파를 상징하였고, 만물을 대할 때 ‘선입견의 배제(別宥)’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사람의 마음인 내면에 관해 명확히 하고, 이를 ‘마음의 행위(心之行)’라고 이름 붙였다.

부드러운 태도로 사람들의 기쁨을 한데 합쳐 놓고 이것으로 나라 안을 조화시키며 화합의 마음이 으뜸이 되기를 바랐다. 남에게 모욕을 당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백성의 싸움을 멈추게 하며, 공격의 금지와 군대의 해산을 통해 세상의 전쟁을 없애려고 하였다. 이 학설을 들고 널리 천하를 돌며 윗사람을 설득하고 아랫사람들을 교화시켰다.33)"

33)『장자』, 「천하」,

“不累於俗, 不飾於物, 不苟於人, 不忮於衆, 願天下之安寧以活民命,人我之養畢足而止, 以此白心, 古之道術有在於是者.

宋鈃尹文聞其風而悅之, 作爲華山之冠以自表, 接萬物以別宥爲始; 語心之容, 命之曰心之行,

以聏合驩, 以調海內, 請欲置之以爲主. 見侮不辱, 救民之鬪, 禁攻寢兵, 救世之戰. 以此周行天下, 上說下敎.”



곽말약은 「천하」편에 소개된 송견과 윤문의 학술사상의 설명내용에 등장하는 ‘백심(白心)’과 ‘심지행(心之行)’이라는 용어가『관자』4편 중 「백심」과 「심술(상ㆍ하)」편의 편명과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학술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천하」편의 ‘백심’이란 다름 아닌『관자』4편의 한 편명인 ‘백심’과 합치되며, ‘심지행’은 ‘심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만 보더라도『관자』4편이 송윤학파의 저술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곽말약의 생각이다.34)


그러나 순자는 일찍이 송견을 묵자와 함께 거론함으로써 그 사상의 유사성을 묵자로부터 찾은 바 있다.35) 이러한 점을 상기한다면, 송견과 윤문의 학설을 일방적으로 어느 특정한 하나의 학파로서 규정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송윤학파를 가리켜 소설가라고 하거나, 또는 묵가, 명가, 혹은 외적으로는 묵가이지만 안으로는 도가라고 하는 등 논하는 사람에 따라 그 견해가 각각 다르게 주장되기도 한다.

그런데 송견과 윤문의 사상 속에는 이들의 사상적 요소가 다 들어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송견과 윤문의 사상은 또한 이들과는 분명히 다른 커다란 사상적인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상황이 이와 같다 보니 사실상 송견과 윤문의 사상을 어느 하나의 특정한 학파로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36)

그것은 송견과 윤문의 사상이 일치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도 그러하지만, 송견과 윤문을 각각 별도로 논의할 경우37)에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후외려는 당시의 학술경향을 분석하여 “각 학파의 학사들이 한 곳에 모여 오랫동안 강의하고 토론하는 동안 자연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 자신의 본래의 학파적 성격이 희박해지고 다른 학파의 영향을 받아 심지어 조화의 색채를 가진 절충파가 형성되기도 하였다”38)라고 하였는데, 송견과 윤문의 사상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를 송윤학파라 규정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성격은 제자백가의 어떤 특정한 하나의 학파적 이념을 강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후외려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절충파적인 성격에 비교적 부합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유사 도가적인 발언들에 주목하여 이들을 도가철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것은 송윤학파를 ?관자? 4편의 실제적인 저자라고 인정하는 경우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적 근저에 설정된 ‘법’과 ‘일상사’의 원리 등은 도가적 ‘무위자연’의 사상과는 태생적으로 접목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송윤학파의 사상은 순수 도가적 계열의 철학사상과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천하」편의 설명에서 이들은 ‘널리 천하를 돌며 윗사람을 설득하고 아랫사람들을 교화시켰다’고 하는데, 이러한 적극적인 삶의 행위방식은 오히려 ‘말 없는 가르침’을 통하여 세상을 대하고자 한39) 도가적인 삶의 방식과는 다른 점이 발견된다. 이러한 점은 오히려 송윤학파나『관자』4편의 저자를 다 같이 ‘황로학’적 사상으로 규정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40)


그러므로 설혹 이들이 ‘심재’나 ‘허일이정’의 철학사상을 주장했다고 가정한다 할지라도, 그 사유의 맥락을 장자적 사유의 연장선상에서 직접적으로 논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편에서 논의되는 ‘백심’이라든가 ‘선입견의 배제’와 같은 논의가 장자의 ‘심재’적 사유와 유사성을 갖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이러한 간접적인 단서만을 가지고 송윤학파를『관자』4편의 실질적인 저자로 규정한다든지, 장자의 ‘심재’가 이들의 이른바 ‘허일이정’이라는 사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철학사상이라고 간주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지나친 견강부회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래이엄(A. C. Graham)이 간파한 것과 같이 송윤학파의 사상이 ‘주관성의 발견’ 이라는 측면에서 그 사상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41) 이것은 ‘주관성’과 ‘대상성’의 변별 자체를 철저하게 무화하고자 하는 장자의 ‘심재’적 사유와는 근원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29) 이 글은『장자철학토론집』안에 재편집되어 출간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이에 근거한다.

馮友蘭, 「論莊子」, 『莊子哲學討論集』(北京: 中華書局, 1961), 119쪽.
30) 이러한 관점은 그가 『중국철학사』(1934)를 발간한 이후 새롭게 『중국철학사신편』(1964. 6. 초판발행)을 출간해내는 바로 전 단계에서 주장되는데, 특히 그가 이 시기에 중국철학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유물주의와 유심주의 간의 사상적 투쟁이었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연유로는 모택동과 사인방 체제, 그리고 문화대혁명 등으로 인한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여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꺾어야만 했던 그의 비운의 인생행로가 작용한다. 이로 인하여 그는 중국에서 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철학자라는 칭송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철학 연구의 ‘변색용’ 이라는 극단적인 비판을 감내해야만 하였다.
31) 郭沫若, 「宋銒尹文遺著考」, 앞의 책, 548쪽.
32) 郭沫若, 「宋銒尹文遺著考」, 앞의 책, 547쪽.

34) 郭沫若, 「宋銒尹文遺著考」, 앞의 책, 553쪽.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장대년의 다음 논문을 참조할 것. 張岱年, 「管子的「心術」等篇非宋尹著作考」, 『道家文化硏究』, 제 2집, 323-325쪽. 사실상 곽말약의 주장은 간접적인 관련밖에 없으며 명증적인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35)『순자』, 「비십이자」, “不知壹天下建國家之權稱, 上功用大儉約而僈差等, 曾不足以容辨異縣君臣, 然而其持之有故, 其言之成理, 足以欺惑愚衆. 是墨翟宋鈃也.” 송견과 윤문을 묵가의 지류이거나 묵자사상의 후예로서 파악하는 것은 풍우란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관해서는 풍우란의『중국철학사신편』, 385-392쪽을 참조할 것.

36) 劉蔚華ㆍ苗潤田, 『稷下學史』(北京: 中國廣播電視出版社, 1992), 135쪽.
37) 국내에 소개된 독일의 알프레드 포르케 같은 학자는 송견과 윤문의 학설이 서로 일치할 수 없다고 보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는 윤문을 명가의 철학자로 규정하는 반면 송견을 ‘분류되지 않는 철학자’로 본다. 우리가 그의 형이상학을 알지 못하며, 제자백가의 근본원칙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이에 관해서는 알프레드 포르케, 앞의 책, ‘송견’과 ‘윤문’에 대한 해설부분을 각각 참조할 것). 또한 『한서』 「예문지」에 근거할 경우, 송견은 소설가로 분류되는 한편 윤문은 명가라고 규정되기도 한다.
38) 侯外廬 主編, 『中國思想通史』(北京: 人民出版社, 1980), 제1권, 352쪽.

39) 『노자』, 제2장, “是以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참조.
40) 이러한 점은 『한서』 「예문지」에 소개된 송견과 윤문의 설명 부분에서 보다 분명하게 확인된다. 물론 학파규정에 있어서 반고는 송견과 윤문을 도가계열로 분류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송자』가 황로의 설과 같다고 했는데(“宋子, 其言黃老意”), 이러한 생각은 「천하」편의 저자들이 송견과 윤문을 의식적으로 노자와 장자에 그 맥락을 대려고 하였던 취지와 유사한 점이 있다.
41) A. C. Graham, Disputers of the Tao: Philosophical in Ancient China, La Salle, Illinois, Open Court, 1989, 95-100쪽 참조.



5. ‘심재’의 도가철학적 연원


‘심재’와 연관성을 갖는 ‘허일이정’의 내용은 그 성격상 지식론적 측면이나 수양론적 측면, 또는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각각의 논의가 가능하다. 순자나 ?관자? 4편, 또는 송윤학파라 일컬어지는 일군의 사상가들에게서 이러한 논의의 단서는 충분히 찾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자나『관자』 4편, 송윤학파에서 논의되는 ‘허일이정’의 개념적 동일성이나 그 방법의 유사성만을 가지고 우리는 이를 곧 장자의 ‘심재’와 동일성을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다소 의도적이나마 ‘심재’ 의 도가철학적 계보성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장자』 「천하」편은 장자의 사상과 가장 깊은 관련성을 지닌 사상가로 관윤과 노담을 제시한다.

“관윤과 노담은 … 스스로를 ‘공허’하게 하여 만물을 손상하지 않음을 마음의 실질로 삼았다. 관윤은 말한다. 일정한 입장이 없고 외물에 따라 응하면서 스스로를 나타낸다. 움직임에는 물과 같이 자연스러움을 따르고, 고요함에는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를 비치며, 사물에 응함에는 메아리와 같이 하였다.”42)

성현영이 주장한 것처럼 관윤과 노담을 다 같이 도가적 지식인으로 인정한다면,43) 이들의 사상은 장자의 철학적 사유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보다 큰 권능을 마련하게 된다.
관윤과 노담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은 바로 ‘허심’의 범주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장자의 ‘심재’적 사유의 맥락과 서로 맞닿아 있다.


장자의 ‘심재’나 또는 그 안에 내함된 ‘허일이정’의 사상적 연원은 노자로부터 비롯된다.

장자의 ‘심재’가 ‘허심’의 논의 구조를 갖추어내는 것이라면, ‘허심’의 문제에 대해서 일찍이 노자보다 먼저 이 문제를 명시적으로 제시한 철학자는 아직 없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노자와 장자를 함께 병칭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문제는 사상적 연원의 측면에서 선차성을 갖는다는 점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일찍이 “그 마음을 비워라”44) 내지는 “현묘한 거울(마음)을 닦아라”45)라고 하여 마음 비움의 상태인 ‘허’에 도달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고 한다”46)라거나 “내가 고요함을 좋아해야 인민이 저절로 바르게 된다”47)라고 하여 ‘고요함’의 상태를 유지할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마음 비움을 지극히 하고, 고요함 지키기를 돈독히 하라”48)고 하여 마음 비움과 고요함의 상태를 동시에 강조하기도 하였다. 노자의 이러한 논의들은 모두 존재론적 ‘허’의 범주를 마음의 영역에 접목시켜 마음의 상태를 텅 비고 고요하게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장자의 ‘심재’적 사유와 무관하지 않다.

장자는 ‘심재’ 를 설명하면서 ‘도’는 오로지 ‘허’에서 소통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49) 특히 계보학적으로 노자를 장자철학의 선구로서 인정한다고 할 때, 노자의 ‘허심’과 관련된 논의들은 장자의 ‘심재’에 결정적인 영향을 제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대만의 학자 진여계는 장자의 ‘심재’뿐만 아니라 『관자』4편에 나타나는 ‘허일이정’의 사상은 모두 노자가 말한 ‘허정’의 본지가 변화 발전된 것이라고 평가한다.50)


노자는 이 세계가 어떠한 의지나 목적의식을 갖지는 않는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허’는 일상적 자아의 유목적적이며 유의지적인 태도에 대한 부정이다. ‘허’는 고정성이 없고 늘 자기 개방적이며 타자 소통적이다.

그러나 자아의 고정된 마음은 무언가를 항상 채우고자 하지만 늘 한계가 있고,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존재세계로부터 멀어지는 특징을 지닌다.51) 따라서 ‘허’는 이러한 자아의 폐쇄성과 한계에 대한 부정을 요청한다. 장자는 노자가 자아 내적인 무화작업으로 제시한 몇 가지 개념들을 자신의 사유 체계 안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심재’의 직접적인 사상적 기반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허심’이 자아의 욕망과 분별적 지식에 대한 부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범주에까지 연관되어 통치자의 마음 가짐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52)


장자 역시 노자의 이러한 특색을 잘 계승하고 있다. 특히 ‘심재’의 논의가 장자가 설정한 공자와 안회의 대화내용 중 정치참여의 현실적 문제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안으로서 제시된다는 점은 장자의 ‘심재’ 역시 노자가 말하는 ‘허심’처럼 정치문제의 해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 경우의 정치는 사실상 정치라고 할 것도 없다. 정치가 ‘허’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장이 정치적 문제에 관하여 담론하였음을 인정한다고 할 때 그것이 일종의 정치적 목적의식에서 나온 정치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제도와 규범을 부정한 노장에게서 정치술이란 무의미하다. 범과 같은 행위의 정치적 행태를 버리라는 것이 노장의 정치적 담론에서 중요한 것일 뿐이지, 노장은 결코 범(군주)에게 정치적 지배기술을 연마하라는 의도된 목표를 전제하지는 않는다.

노장의 정신 안에서는 통치한다는 것과 통치된다는 것의 분별 자체가 반자연이다.53) 정치적 문제의식에 관련된 이러한 노장적 특징은『관자』4편을 저술한 저자의 문제의식과는 상호 차별된다. 그리고 그 차별성은 순수 도가적 사유와 황로학적 사유의 현실적인 거리감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장자는 ‘허심’과 연계된 노자의 철학적 개념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노자의 철학적 개념의 범주 안에만 머물려고 하지는 않았다. 장자는 당대의 제자백가의 사상을 개방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 폭넓게 비판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범위를 넓혀 나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장자는 ‘심재’의 개념과 관련하여 계보학적으로 노자의 사상적 특징을 받아들이면서도, 당시 사상계에 유행하였던 ‘허일이정’의 방법을 자신의 철학적 범주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한 후 이를 새로운 형태의 논의로 전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42)『장자』, 「천하」, “關尹老聃 … 以空虛不毁萬物爲實. 關尹曰: 在己无居, 形物自著. 其動若水, 其靜若鏡, 其應若響.”
43) 성현영은 관윤이 함곡관의 관지기인 윤희이며, 노담은 그의 스승인 이이 곧 노자라고 한다(『장자』, 「천하」, 성현영 소, “姓尹, 名喜, 字公度, 周平王時函谷關令, 故謂之關尹也. 姓李, 名耳, 字伯陽, 外字老聃, 卽尹喜之師老子也”).
44)『노자』, 제3장, “虛其心.”
45)『노자』, 제10장, “滌除玄覽.”
46)『노자』, 제16장, “歸根曰靜.”

47)『노자』, 제57장, “我好靜而民自靜.”
48)『노자』, 제16장, “致虛極, 守靜篤”
49)『장자』, 「인간세」, “唯道集虛.”
50) 陳麗桂, 『戰國時期的黃老思想』(臺北: 聯經出版事業公司, 1991), 131쪽 참조.
51) 이종성, 「허」, 『21세기의 동양철학』(서울: 을유문화사, 2005), 243쪽 참조.
52)『노자』, 제3장,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참조.

53) 이종성, 「허」, 앞의 책, 242쪽 참조.



6. 결론을 대신하여: ‘심재’와 ‘좌망’의 상관성


대부분 장자철학 연구가들은 ‘심재’와 ‘좌망’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심재’와 ‘좌망’ 사이에 비록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 두 가지는 그 방법적인 내용면에 있어서 거의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의식의 지향성으로 인하여 왜곡된 실상을 무화하는 방식이라든가, 또는 그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적 목표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심재’와 ‘좌망’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한다면, ‘좌망’은 그 안에 ‘심재’의 의미까지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54) 따라서 ‘좌망’의 범주는 ‘심재’보다 넓은 외연을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풍우란은 ‘심재’와 ‘좌망’의 사유가 그 내용이나 지향점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고 본다.

“‘심재’는 송윤학파의 방법으로서 무지와 무욕을 통해 ‘허일이정’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것이며, 정기의 집중을 위해 사려와 분별을 제거하는 것이다. 반면에 ‘좌망’은 장자학파의 것으로서 모든 분별지의 부정을 통해 심리적 혼돈 상태에 도달하려는 것이다.”55)

즉, 계보학적으로 볼 때 ‘심재’는 송윤학파의 방법인 반면 ‘좌망’만이 장자의 철학사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심재’가 정기의 집중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좌망’이란 심리적 혼돈상태에 도달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곧 ‘심재’가 일종의 양생적 수련의 방편임에 비하여 ‘좌망’은 자기 퇴영적 공허나 허무를 추구하는 방법이라고 폄하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이 같은 풍우란의 주장은 온당한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 ‘심재’와 ‘좌망’은 모두 장자철학의 사상적 중추를 이루는 개념들로 이해하여야 한다.
풍우란의 주장 중에서 송윤학파가 ‘허일이정’의 방법을 채택하였다는 주장은 일면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허일이정’을 통한 ‘심재’의 방법을 마치 송윤학파의 사상적 전유물인 것처럼 파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와 유사한 방법이 순자의 텍스트를 비롯하여『관자』4편 안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관자』4편의 저작이 송윤학파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관자』4편은 송윤학파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논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저자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현재의 상태에서 이를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헌고증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볼 경우에 있어서, 각 사상유파에서 논의하는 ‘허일이정’이라는 용어의 동일성 자체가 그 심층에 놓인 철학적인 의미내용의 동질성까지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 또한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장자는 자신의 철학적 개념 중에서 ‘심재’의 방법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으면서도 선진시대 당시에 다른 사상가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바로 ‘좌망’이다.

‘좌망’은 지식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일상적 지식의 부정과 관련된 방법이다. 장자가 ‘좌망’을 통하여 일상적 지식을 부정하는 이유는 일상적 경험지가 이분법적인 성격을 지닌 까닭에 분석적이고 사변적이면서도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참된 지혜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일찍이 노자도 학문을 하는 것은 날마다 모르는 것을 쌓아 가는 것이지만 도를 체득한다는 것은 모든 선입견과 차별의식을 덜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철두철미한 부정의 방법을 제시하였던 것이다.56)

이에 장자도 노자와 같이 버리고 또 버리는 일이 곧 도를 체득하는 방법이라고 보고, 그것은 학문의 차원과는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57)


장자가 도를 체득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심재’와 ‘좌망’이다. 그리고 이들의 철학적 목표는 다 같이 존재와 자아가 근원적으로 소통하는 데에 있다. ‘심재’와 ‘좌망’을 통한 존재와 자아의 소통은 지식론적 계열에서는 ‘비분별지’의 영역이며, 따라서 ‘자연지’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수직관의 세계이다.

 이러한 지식이란 사실상 ‘지식 아닌 지식’이다. 왜냐 하면 이는 존재와 자아의 근원적 소통을 통한 즉각적이며 직접적이고 직증적으로 체득되는 순수한 세계인식일 뿐, 경험적이며 추론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내세워 세계와 자아를 철저히 구분하는 이항대립적인 성격의 분별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순수직관의 세계에서는 지식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선 자체가 없고, 주객은 하나의 미분화된 상태에 그 자체로 통일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오경웅은 장자의 ‘심재’와 ‘좌망’을 불교의 선과 상호 비교하여, ‘심재’와 ‘좌망’의 자증법은 순수직관에만 머물 뿐 선불교처럼 ‘본질에 대한 수련’에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한다.58)

이것은 ‘본질’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느냐, 아니면 ‘수련’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지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장자의 ‘심재’와 ‘좌망’이 실천적인 측면을 다소 결여하고 있다는 해석임에는 분명하다. 이는 아마도 ‘수련’의 구체성이 장자에게는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정확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경웅의 해석은 그가 불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옹위하는 관점을 가지고 장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듯이 보인다.


장자의 ‘심재’와 ‘좌망’을 순수직관의 영역에 머무는 사변적인 것으로만 볼 수는 없다. 장자는 “천지는 개별적 자아와 더불어 살아 있고, 만사만물의 다양함도 개별적 자아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59)고 한다.

개별적 자아와 존재사물이 하나의 존재구조 안에서 근원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다.

이택후는 ‘심재’와 ‘좌망’으로 도달하는 이 ‘만물제동’ 의 경지가 유가에서 강조하는 ‘동구문합(同構吻合)’, ‘천인감응’에 비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물ㆍ아와 주ㆍ객의 완전한 민멸을 강조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것은 지식주관과 지식대상이 상호 부합하는 대응으로서의 ‘동구(同構)’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주관과 지식대상이 이미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물화(物化)’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객의 동일성은 오직 순수의식의 창조적 직관 중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60)


장자가 도를 체득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심재’나 ‘좌망’은 모두 인간의 이성적 지식으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순수경험의 세계에 관여한다. 이것은 개별적 자아와 천지만물이 서로 ‘덕’의 공능을 매개로 하여 혼연일체가 되는 ‘물화’의 경지이다. 그러나 장자의 순수직관은 단지 의식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적인 삶 그 자체와 분리되지 않는 특질을 지니고 있다.61) 이것은 이성을 통한 세계의 동일성이나 자아의 동일성을 찾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성적 절대화를 통하여 세계와 인간의 합일을 추구하는 의식의 이념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장자의 순수직관은 이성적 직관과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장자의 순수직관은 오히려 이성의 절대화를 부정하여 자연의 흐름 자체에 하나가 되는 주객미분의 본질적인 소통을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54) 邵漢明, 『儒道人生哲學』(張春: 吉林敎育出版社, 1992), 90쪽.
55) 馮友蘭, 「論莊子」, 앞의 책, 119쪽.

56) 『노자』, 제48장,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57) 『장자』, 「지북유」, “爲道者日損. 損之又損之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也.”
58) 吳經熊, 조영록ㆍ정인재 역, 『선의 향연(상)』(서울: 동국대학교부설 역경원, 1988),14쪽.

59) 『장자』, 「제물론」, “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60) 李澤厚, 『華夏美學』(香港: 三聯書店有限公司, 1988), 74쪽.
61) 생활세계 속에서의 ‘좌망’의 역할과 의의에 대해서는 이종성, 「장자의 ‘좌망’론」, 앞의 논문집, 594-597쪽을 참조할 것.



참고문헌 -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