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시대에서의 비판적 합리주의(Ⅱ)
베이컨이 과학적 지식의 유용성을 강조한 이래 급격하게 과학과 기술이 만나게 됐고, 그 힘이 축적돼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정치혁명을 이루게 됐으며, 오늘날 이른바 ‘문화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이후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는 과학정신에 의해 단련되고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구인들에 의해 주도돼 온 것이 사실이다.
19세기 말 서구 문명이 동아시아로 밀려왔을 때, 중국에서는 ‘중체서용’, 일본에서는 ‘화혼양재’,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동도서기’의 논리를 내세웠다. 서로 강조하는 점이 다소 다르기는 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신은 우리가 우월하지만 기술이 쓸모 있으니 그것만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대체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서구 과학기술문명이 인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니 동양 고전으로부터 대안을 마련하자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기술을 가능하게 한 이른바 ‘과학정신’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신은 무엇인가. 과학정신은 오직 실험과 관찰을 통해 얻어낸 자료를 근거로 해서 논증이란 방식에 의해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려는 탐구 정신이다. 과학정신에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갖가지 요소와 요인이 들어있으며, 그것을 확인하고 극대화함으로써 보편적인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미래 사회에 희망과 번영과 행복이, 무엇보다 인간 생존이 보장받을 수 있다.
과학정신의 다섯 가지 특징
과학정신의 특징을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보자.
첫째 과학정신은 합리적 방식을 지닌다. 과학은 인간이 지닌 감각적 지각과 이성적 판단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가설 설정 과정에서 개인의 직관과 상상력, 때로는 영감 같은 것에 의존할 수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반드시 경험적 증거와 합리적 논증을 거쳐야한다는 점에서 합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둘째, 과학정신은 비판적 입장을 지닌다. 과학자의 세계에는 영원한 진리나 절대적 권위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이론도 항상 새롭게 검토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과학은 다른 과학자의 이론에 대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비판의 과정을 거쳐서만 새로운 형태의 포괄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과학정신은 개방적 자세를 지닌다. 과학은 탐구 과정에서 끊임없이 실수와 오류를 범하지만 그것이 검증되거나 반증되면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다. 과학자는 항상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자기가 도달한 결론에 회의를 품으며 결국 어떤 형태의 폐쇄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개방적 자세의 전형을 보여준다.
넷째, 과학정신은 보편적 성격을 지닌다. 과학적 탐구의 성과는 어느 시대나 지역, 혹은 특정한 국가나 민족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에 골고루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물론 과학자에게는 조국이나 자기 공동체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탈피하는 자세로 탐구에 임하는 것이 항상 과학자로서의 임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학정신은 자율적인 태도를 지닌다. 과학자는 과학적 공동체 안에서 관습을 준수하고 규범을 지키며 일정한 패러다임을 수용하거나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방법론상의 장치들일 뿐 거기에 갇혀있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은 결국 극복되기 위해서 과도기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태도는 진리에 임하는 자신의 자율성의 발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종교적 진리는 종교인 영혼을 자유롭게 할지 모르나 과학적 진리는 무지와 불편과 위험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진정한 합리주의는 지적 겸손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과학자라고 해서 반드시 과학정신으로 무장돼 있고, 과학의 시대에 산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정신을 구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과학정신이 반드시 과학자 전유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현대인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고 또 실현돼야 하는 보편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미래 사회가 과학의 시대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과학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시대를 제대로 산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이기 때문이다.
포퍼는 보편적 이성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을 정립했다. 그것은 비판적 이성에 기초해 인식과 실천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비판적 이성은 잘못을 범하면서도 비판적 논의에 의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실수로부터 그리고 실수의 계속적인 교정에 의해 의식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것’이 포퍼가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부르는 태도의 원리다.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원리는 포퍼에 의해 정립, 심화됐으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에 응용됐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오래된 탐구 방식을 정식화 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정초했고 근대에 와서 칸트가 그 이념을 재발견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과학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비이성적 요소가 많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도 그는 “옛날과 같은 기준을 학문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즉, 학문적 자세는 철저히 소크라테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퍼는 진정한 합리주의를 사이비 합리주의로부터 구별한다. 진정한 합리주의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우리가 얼마나 자주 오류를 범하며 우리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를 인지하는 지적 겸손의 태도다. 이것은 우리가 이성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태도이며, 논증이 배움의 유일한 수단이란 것을 인정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용인하는 태도다. 이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인 것이다.
이와 대립되는 사이비 합리주의란 지적 직관으로 뒷받침되는 합리주의로서 사물을 확실하고도 절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보는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이며 지적 오만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플라톤의 합리주의로서, 플라톤에 의하면 ‘의견’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지만 이성은 신들과 오직 소수 사람들에 의해서만 소유되는 특성이다. 따라서 ‘논증’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지식에 다가가는 방법일 뿐이며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는 이성을 지닌 소수의 전유물이 된다. 이런 의미로 플라톤 철학은 소크라테스적 비판적 합리주의의 입장을 독단적 합리주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구성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건설적 비판 이성과 열린 자세
미래 사회에서는 더욱 더 다양한 가치체계와 상충하는 가치요소들이 혼재해 개인적 신념 체계를 정립하기 어려워지고 자율적 인격체로 존립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특히 환경파괴, 유전자 조작, 세련된 로봇의 등장, 사이버 공간 확대 등으로 가치관과 세계관, 인간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신념체계 정립을 위한 내적 통합력이며 새로운 환경에 신축성 있게 대처하기 위한 외적 적응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를 관조하고 성찰하며 때로는 비판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이에 참여하고 순응하기도 해야 하는데, 여기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 근거 있고 건설적인 비판 이성이며 새로운 가치체계와 생소한 환경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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