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적 인간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박만준(동의대)**
[한글 요약]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철학의 가장 오랜 과제였으며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이 물음을 외면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다시 이 물음을 묻고 있다. 오늘날 생물학의 영역에서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사회생물학을 중심으로 아주 생산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아힘 바우어의 말대로 인간의 본성 문제와 관련해 현재 서구의 자연과학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곧 에드워드 윌슨의『사회생물학』과 리처드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이며, 이들을 통해 새로운 인류학 모델이 탄생했다.
과연 사회생물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쟁과 투쟁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게 최우선의 원동력일까? 우리는 이들이 제시하는 인류학적 모델과 그 함축적 가정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글은 크로포트킨, 요아힘 바우어, 매트 리들리, 린 마굴리스, 프리초프 카프라, 화이트헤드 등을 통해 사회생물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올바른 인간학을 위한 새로운 발상과 사고실험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주제분류 : 인간학, 서양철학, 과학철학
검 색 어 : 인간학, 생물학, 인간사회생물학, 생존경쟁, 협력, 진화론, 합생, 공생
* 이 논문은 2008년도 정부재원(교육인적자원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KRF-2008-321-A00026).
** 동의대학교 철학윤리문화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인간이란 무엇인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물음을 묻고 답해 왔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은 논쟁의 대상이다. 왜 이 물음이 이처럼 지속적인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때문일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좀 더 관심깊이 들여다보면 금방 드러난다.1)
가령 인간의 성악설을 굳게 믿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대할 것이며, 이러한 태도는 그의 기본적인 교육 스타일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 스타일은 그의 교육 내용과도 직결될 것이다. 또한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회사 대표가 있다면 이는 그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모든 행동과 인사관리에 반영될 것이다. 상대방을 신뢰하는 태도와 불신과 부정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는 태도는 엄청나게 다르다.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사회적 관계를 비롯한 삶의 태도를 좌우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타인에게 무엇을 소망하고 기대할 수 있는지, 우리는 타인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수백 년 전까지 인간의 본성은 어떠하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교회와 신학자들에게만 주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약 2백 년 전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 . 교회의 권한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185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일
어났다.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이 출간된 것이다. 그리고 12년 후인 1871년 . . . 그의 두 번째 저서인 『인간의 유래』가 출간되었다2)."
다윈으로 말미암아 인간에 대한 해명이 생물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생물학의 시대”로 불리는 이 시대를 여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생물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하여 이처럼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 세계의 다른 생명체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경험적 연구를 통해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 특히 인간학에 대해 존재론적․가치론적 문제 해명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글에서는 특히 사회생물학을 주목한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은 왜 사회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생물학에 기반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3)’일 뿐 아니라, 필자가 보기에 사회생물학을 둘러싸고 가장 생산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케티스가 잘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듯이, 사회생물학은 다음과 같은 이론을 개진한다.
"인간과 동물의 공동생활은 저마다의 생존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으며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단계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생존에 유리한 것으로 입증된 사회적 행동 양식이 선호됨으로써, 생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행동 양식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살아남았다. 모든 사회적 행동들은 결국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으며, 인간에게나 다른 생물에게나 적어도 하나의 유전적 성향이 특정한 사회적 행동 방식에 깃들이게 되는데, 이들 행동 방식 역시 진화가 엮어내는 최적화 과정의 결과이다.4)"
한마디로 사회생물학적 입장은 인간 행동의 가장 고유한 특징들이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했고, 오늘날에도 특정한 유전자들이 그 종 전체를 구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이 말하듯이, “현재 우리가 습득한 정보에 비춰보더라도 인간도 그 행동에 미치는 유전적 다양성의 질과 규모 면에서 평범한 동물 종과 다를 바 없다.”5) 그야말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생물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를 중심으로 인간에 관한 사회생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6), 나아가 그것을 우리는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1) 요아힘 바우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2007) 참조. 앞으로는 바우어(2007)로 줄임.
2) 바우어(2007), 11-2쪽
3) Edward O. Wilson, 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Twenty-Fifth Anniversary Edition,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p. 4. 앞으로는 Wilson(2000)으로 줄임.
4) 프란츠 부케티츠, 『사회생물학 논쟁』(김영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1999), 6쪽. 앞으로는 부케티츠(1999)로 줄임.
5) Edward O. Wilson, on Human Na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8, p. 46. 앞으로는 Wilson(1978)로 줄임.
6)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는 사회생물학에 대한 학문적 및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두 인물이다.
2. 인간사회생물학
1) 에드워드 윌슨
에드워드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도대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주의 섭리를 설명하고 인간을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부각시키려는 최초의 글쓰기였는지도 모른다. 필시 과학도 이와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장선 위에 있을 것이다.7)"
윌슨의 인간사회생물학(human sociobiology)의 문제의식을 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그 문제의식의 전개는 윌슨의 인간사회생물학의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곤충의 사회들』과 『사회생물학』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통해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곤충의 사회들』은 사회성 곤충들과 그들의 견고한 체제를 설명하고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 윌슨은 사회성 곤충들의 체제를 설명해 온 집단생물학과 비교동물학의 원리들이 척추동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이며 그 장의 제목이 「통합된 사회생물학의 전망」이다.
『곤충의 사회들』은 이미 『사회생물학』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그는 여기서 진화생태학적 이론과 사회생물학의 이론이 어떻게 접목되는가를 그림으로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새로운 사회생물학에는 무척추동물학, 척추동물학, 집단생물학 등이 균등하게 참여한다고 말한다.8) 그리고 『사회생물학』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인간 : 사회생물학에서 사회학까지」이다. 『곤충의 사회들』이 『사회생물학』을 예고했듯이, 『사회생물학』은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출간이 계기가 되어 나는 인간 행동에 관한 책들을 더 폭넓게 읽게되었고, 사회과학자들과 많은 세미나를 하고 서신도 교환했다. 나는 마침내 두 문화, 생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현저한 거리를 줄일 시기가 도래했으며, 집단생물학과 진화론을 사회 조직에까지 확장시킨 일반사회생물학이 그런 시도를 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는 바로 저 주제에 대한 탐구이다.9)"
이 말의 함의를 보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인간사회생물학이다. 그렇다면 인간사회 생물학의 핵심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윌슨의 3부작을 관통하고 있는 사유체계는 어떤 것일까?
7) Edward O. Wilson,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Vintage Books, New York, 1998, pp. 6-7. 앞으로는 Wilson(1998)로 줄임.
8) Wilson(2000), p. 4.
9) Wilson(1978), ix-x.
(1) 에드워드 윌슨의 분류학적 사유
청년 윌슨의 지적 틀은 근대 생물학의 창시자인 카를 폰 린네의 분류 체계에 기반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고향인 앨라배마의 모든 개미를 분류해 보려는 ‘고귀한 목표’10)를 가졌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 틀은 에른스트 마이어의 『계통분류학과 종의 기원』에 대한 독서를 통해 급속한 진전을 보인다. 이 책과의 만남을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단조로운 파란색 표지로 덮여 있던 그 얇은 책은 19세기의 다윈 진화론과 현대 유전학을 한데 묶은 새로운 종합이었다. 자연사에 이론적인 구조를 덧입힌 그 책은 린네의 기획을 넓게 확장시킨 역작이었다. 한 줄기 빛이 내 마음의 한구석을 비추기 시작했고 신세계를 향한 문이 열렸다. 나는 이내 매혹되고 말았다.11)"
윌슨은 이 책에서 ‘진화’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매혹되고 감격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보기 시작했다. 철학은 물론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함의도 마찬가지였다. 고정적인 것이 유동적인 과정으로 바뀌고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돌연변이에서 종을 분화시키는 진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식물상과 동물상을 구성하는 종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각은 일련의 인과적 사건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자연사가 윌슨의 사유 속에서 진정한 과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윌슨의 분류학적 사유 체계이다.
윌슨의 사유구조는 ‘분류학적’이다. 그의 분류학적 사유 체계를 이해하려면 생물계의 근연 관계를 나타내는 계통수(系統樹)나 혹은 생물들의 계통 진화사적 관계를 먼저 머리에 그려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윌슨의 분류학적 사유 체계는 계통수의 뼈대를 중심으로 방법론적으로 ‘확장’과 ‘축소’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확장과 축소는 마치 저 계통수 나무를 오르내리는 것과 같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축소이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 확장이다.
계통 진화사가 보여주는 수없이 다양한 양상들을 총체적으로 체계화하거나 수백만 종의 생물을 자연적 친족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로 묶는 것은 방법론적인 축소이다. 그는 사회과학을 현대적 종합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사회생물학의 소임12)이라고 말하는데, 이 또한 방법론적으로 축소에 해당한다. 인간에 대한 탐구는 생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둔 학문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하면서 윌슨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 본성의 지침들은 복잡하게 배열된 거울들을 통해 탐구되어야 하므로, 그것은 늘 철학자들을 자충수로 몰아넣는 기만적인 주제가 되어 왔다. 그것이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학을 사회과학 및 인문학과 통합함과 동시에 인간의 본성을 자연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연구하는 길뿐이다.13)"
그의 사유구조에서 비롯된 방법론적인 축소가 어떻게 그의 전체 학문 체계로 발전하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가 주창하는 학문의 새로운 종합이나 학문 상호간의 접목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회생물학』의 새로운 종합이 종합의 범위를 생물학에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분명해지거니와 더 나아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각각 생물학의 한 분야로 간주한다.14)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학문적 계통수의 뿌리가 생물학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병사들은 분대로, 분대는 소대로, 소대는 중대로 편입되고 대대는 다시 합동 참모본부의 지휘를 받는다.”15) 이는 그의 분류학적 사유 체계에 대한 비유이며, 여기서 합동 참모본부는 곧 자연의 통일성을 가리킨다. 『곤충의 사회들』과 『사회생물학』이 소대 혹은 분대의 차원에서 분류학적인 ‘축소적 통합’ 혹은 ‘원리적 확장’을 시도한 것들이며, 윌슨에게 있어서 그 지휘 능력은 곧 자연의 통일성이다.16) 그러므로 사회생물학은 진화생물학으로, 진화생물학은 생물학으로 편입되고 생물학은 다시 자연학(혹은 자연과학)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통수를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곧 확장이다. 하나의 조상에서 수많은 생물 종이 분화하는 것과 같다. 사회생물학이 생물학의 한 분과 학문이면서 동시에 그 영역을 윤리학 내지 도덕철학까지 넓혀가는 것은 방법론적 확대이다.
그러나 윌슨의 전반적인 사유체계에서 보면 방법론적 확장보다는 축소의 경향이 훨씬 강하다. 그러므로 윌슨의 사유체계를 ‘축소적 통합’으로 해석하거나 설명할 여지가 많다. 이와 아울러 생물학주의 혹은 환원주의 논쟁이 이어진다.17)
그리고 이런 점에서 분류학적 사유체계와 그 방법론적인 축소 및 확장은 윌슨의 사상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10) Wilson(1998), p. 4.
11) Wilson(1998), p. 4.
12) Wilson(2000), p. 4.
13) Wilson(1978), p. 6.
14) Wilson(2000), p. 547.
15) Wilson(1998), pp. 3-4.
16) 여기서 말하는 ‘축소적 통합’과 ‘원리적 확장’이라는 표현은 윌슨의 용어가 아니라 필자가 윌슨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축소적 통합은 분류학적인 체계에서 하향적 방향에서 하나로 묶어가는 것을 말하고 원리적 종합은 축소적 통합에서 발견된 원리로부터 상향적 방향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17)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김동광 외 엮음, 『사회생물학 대논쟁』, 이음, 2011. 앞으로는 김동광(2011)로 줄임.
(2) 인간의 본성
윌슨의 인간 탐구는 사회생물학을 전제한다. 그리고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이상과 같은 분류학적 사유체계와 그 방법론적인 축소 및 확장으로 성립한다. 그는 동물의 사회, 동물의 개체군 구조, 카스트, 의사소통,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적응의 기초가 되는 모든 생리학적 현상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울러 초기 인간의 사회 행동은 물론 현대에 살고 있는 보다 원시적인 인간 사회의 조직상으로 본 적응 양상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윌슨이 볼 때 인간에 대한 탐구는 ‘현대적 종합’이 불가피하다.
‘현대적 종합’은 다윈 이론과 멘델 이론을 결합시킨 것이다. 피셔와 할데인이 수학적 이론으로 그 기초를 마련하고, 진화생물학의 중심을 개체간의 생존경쟁에서 개체군 내의 유전자 빈도로 옮김으로써 다윈 이론을 성공적으로 완결시켰다. 로렌츠와 헉슬리가 주도한 새로운 동물행동학은 동물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를 마련하고 인간행동유전학은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윌리엄스와 해밀턴은 동물의 사회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를 제공했다.18)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바로 이러한 ‘현대적 종합’을 배경으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사회생물학은 20세기 생물학과 진화론, 생태학, 생태지리학 이론의 연구 성과 등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해밀턴의 포괄적응도 개념에 기초한 사회생물학적 해법을 혁신적인 방안으로 보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생명체의 사회 행동과 조직에 대한 생물학적 기초를 분석하여 고도로 계량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태학적 압력, 개체군 변수, 개체군의 밀도, 유전자 변위, 출생률, 사망률, 계통 발생 관성 등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모든 종의 사회 조직의 특성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공통 변수와 계량적 이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 ‘윌슨의 꿈’19)이었다. 그리고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 『사회생물학』은 바로 이러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탐구를 ‘현대적 종합’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동물들에게 적용되는 생물학의 보편적 원리들을 인문과학으로 확장시키고 인간 탐구의 생물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회성 종의 목록을 작성한다고 할 때, 마치 다른 혹성으로부터 온 동물학자처럼 박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살펴보면 어떨까. 거시적관점에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은 각각 생물학의 특수한 한 분야로 볼 수 있고, 또 역사나 전기 그리고 픽션은 인간의 인성학 내지 생태학에 대한 조사 문헌이 되며, 인류학과 사회학은 단 한 종류의 영장류에 관한 사회학이 된다.20)"
그렇다면 윌슨의 인간 탐구, 즉 영장류에 관한 사회학이 말하는 ‘인간의 바이오그램 human biogram’21)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논지에서 보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다윈의 적응도를 증가시키는 규칙과 행동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윌슨은 다윈 진화론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이끌어낸다.
"인간의 본성을 형성하는 형질들은 인간 종이 진화해 온 기간만큼 적응을 거쳐 왔고, 그 결과 유전자들은 그 형질들의 발달 성향을 지닌 운반체 집단을 통해 퍼진다.
. . 적응이란 간단히 한 개체가 형질을 드러내지 않을 때보다 드러냈을 때 다음 세대에 그의 유전자를 발현시킬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본 개체들의 차등적 이점을 유전자 적합성이라고 한다.22)"
유전자 적합성은 개체의 생존능력 강화, 개체의 번식능력 강화, 공통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들의 생존 및 번식능력 강화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로 구성된다. 이 요소들 중 어느 하나나 그 조합이 강화되면 유전자 적합성은 증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곧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이 여러 세대에 계속된다면 적합한 유전자는 집단 전체에 퍼질 것이고 그 형질은 종의 특징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 역시 자연선택을 통해 형성된다.
예컨대 근친상간 금기는 세계 어디에서든 합리적인 유형의 강제에 해당한다.
근친상간 금기는 어떤 이점이 있는가? 근친강간에 수반되는 심각한 생리적 결함은 몸집, 근육조화, 학업 수행 등에 장애뿐만 아니라, 유전병을 일으키는 열성 유전자가 무려 100개가 넘는다. 그리고 미국인과 프랑스인 집단을 분석한 결과 개인이 평균 4개의 등가 치사 유전자와 동형접합체의 50퍼센트를 치사시키는 유전자 8개를 보유하는 등 근친상간이 치명적인 위험을 수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23) 그리고 이런 높은 수치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종들에게도 일반적이다.
근친상간의 병리학적 증상들은 자연선택을 집약적이고 명쾌하게 보여준다. 여성이 지위가 동등하거나 더 나은 남성과 결혼하는 상승혼(hypergamy)이나 안전한 투자 쪽으로 지향하는 번식전략도 마찬가지이다.24)
중산층 이상의 계급에 부와 여성이 집중되고 극빈 남성들은 짝짓기에서 거의 배제되고 있다. 그리고 안전한 투자의 번식 전략을 유도하는 유전자들이 다른 경쟁전락을 촉진하는 유전자들을 대체하면서 집단 전체에 퍼져나간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는 핵심 범주들이라고 해야 할 공격성25), 성(sex)의 진화26), 이타주의27) 등도 같은 원리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윌슨은 이러한 생물학적 원리를 우리의 지식과 마음의 문제로까지 확대시켜 나간다.
윌슨은 ‘마음을 만들어내는 물리 과정’을 설명하면서, ‘마음은 뇌의 작용’이며 뇌는 ‘생존하기 위해 조립된 하나의 기계’라고 말한다.28) 그리고 마음은 ‘우리가 알고 있으며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창조된 장소’29)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마음이 창조하는 지식의 존재 근거도 당연히 지금까지 설명한 생존 및 번식 전략과 직결되어 있다.
18) 하워드 L. 케이, 『현대 생물학의 사회적 의미-사회다윈주의에서 사회생물학까지』, 생물학의 역사와 철학 연구모임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8, 4장 참조. 앞으로는 케이(2008)로 줄인다.
19) 케이(2008), 154쪽.
20) Wilson(2000), p. 547.
21) Wilson(2000), p. 548.
22) Wilson(1978), p. 32. 사회생물학은 동물의 사회, 그들의 개체군 구조, 카스트, 의사소통과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적응’의 바탕을 이루는 모든 생리학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는 초기 인간의 사회 행동과 보다 원형적인 인간사회의 조직적인 ‘적응’ 양상에 대해서도 다룬다. Cf., Wilson(2000), p. 4.
23) Cf., Wilson(1978), p. 37.
24) Cf., Wilson(1978), pp. 39-41.
25) 영토의 방어와 정복, 조직된 집단 내에서의 서열 찾기, 성적인 공격성, 먹이를 향한 공격성, 포식자에 대항하는 방어형 역공, 사회 규범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도덕적인 공격성 등. 윌슨은 이러한 공격성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Cf.,Wilson(1978), ch. 5.
26) 성은 인간생물학의 핵심이며, 성이 진화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다양성의 창조이다. Cf.,Wilson(1978), ch. 6.
27) 인간의 이타주의는 대부분 궁극적으로 이기적인 속성을 지닌다. Cf., Wilson(1978), ch. 6.
28) Wilson(1998), p. 105.
2) 리처드 도킨스
인간사회생물학에서 에드워드 윌슨 못지않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리처드 도킨스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동물행동학 연구 그룹의 리더로 활동해 왔을 뿐 아니라 오늘날 사회생물학 논쟁이나 진화 논쟁에서 언제나 중심적인 위치에서 선도적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물학자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며, 그의 저서들은 아주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저서가 바로 『이기적 유전자』이다.30)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사회생물학을 대표하는 저작들 중 하나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특이하다. 이 책 서두에서 그는 “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묻고 있다.
즉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이 책은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도킨스에 따르면, 뒤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면 자연스럽게 앞의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두 물음의 해답을 연결시켜주는 핵심 개념이 바로 ‘진화’와 ‘유전자’이다.
"지구의 생물체는 그들 중의 하나가 진실을 이해하기 전까지 30억 년 동안 자기가 왜 존재하는가를 모르고 살았다. 진실을 이해한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이었다. . .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일관성 있고 조리 있는 설명을 종합한 사람이 다윈이었다.31)"
한마디로 다윈의 진화론이 그의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진화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이론이지만 다윈 혁명의 의미는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근본적인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을 통해 도킨스는 특정한 주제나 논점에서 진화론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를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진화론의 중요한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가 바로 유전자의 이기성이다. 유전자란 무엇이며 그것은 왜 이기적인가?32)
"40억 년이란 세월 속에서 고대의 자기 복제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들은 절멸되지 않았다. 과거 생존 기술의 명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바다 속을 유유히 떠다니고 있는 자기 복제자를 찾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들은 이미 먼 옛날에 자유를 포기하고 말았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 속에 안전하게 거대한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를 통하여 외계와 연락하고 원격 조정기로 외계를 조작하고 있다. 그것들은 당신 안에도 그리고 내 안에도 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 .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제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33)"
여기서 유전자는 많은 사본 형태로 존재하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를 의미한다.34) 유전자는 여러 세대에 존속하는 유전 단위이며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이다. 왜냐하면 유전자는 자연선택에 성공하는 단위가 가져야 할 특성, 즉 이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수준에서 ‘이타주의는 열세하고 이기주의는 우세하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생존 중에 그 대립 유전자와 직접 경쟁하고 있다. 유전자 풀 내의 대립 유전자는 다음 세대의 염색체상의 한 자리를 놓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대립 유전자를 희생하여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생존 기회를 증가하도록 행동하는 유전자는 어느 것이든 동어반복적인 의미에서 오래살아남는 경향이 있다. 유전자는 이기주의의 기본 단위이다.35)"
진화론에서 보면 모든 동물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되어 왔다. 그리고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가 유전자이므로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되어 온 것은 무엇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생물은 이러한 이기적 유전자가 창조한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두 생존 기계이다. 여기서 ‘우리’란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생존 기계는 종류에 따라 그 외형이나 체내 기관이 매우 다양하다. 문어는 생쥐와 전혀 닮지 않았으며 이 둘은 참나무와 전혀 다르다. 그러나 . . . 그들이 갖고 있는 자기 복제자, 즉 유전자는 박테리아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분자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종류의 자기 복제자를 위한 생존 기계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생활 방식이 있고, 자기 복제자는 갖가지 기계를 만들어 이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유전자를 유지하는 기계이며 물고기는 물속에서 유전자를 유지하는 기계이다.36)"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재생산해내기 위한 목적으로 유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들이다. 생물의 생존경쟁은 유전자 간의 살아남기 투쟁이다. 그리고 유전자의 이기성은 개체의 이기적인 행동의 원인이 되므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지휘본부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후속편인 『확장된 표현형』에서 이러한 논지를 더 확대시키고 있다.37)
이러한 도킨스의 입장은 ‘인간 행동은 유전자에 구속되어 있다’는 에드워드 윌슨의 유전자결정론과 정확히 일치한다.38)
29) Wilson(1998), p. 105.
30) 바우어에 따르면, 현대적 다윈주의인 사회생물학이 특히 유행한 것은 다윈주의 가운데 새롭게 등장한 창조물 덕분인데, 바로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이다. 요아힘 바우어,『협력하는 유전자』(이미옥 옮김, 생각의나무, 2010), 19쪽. 앞으로는 바우어(2010)으로 줄인다.
31)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 2002), 21쪽. 앞으로는 도킨스(2002)로 줄인다.
32)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킨스(2002), 22쪽.
33) 도킨스(2002), 48쪽. 여기서 말하는 자기 복제자는 생명체의 출발점이자 유전자의 선구자이다.
34)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에서 ‘자기 복제자’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고, 특히 이를 자연선택의 선택 단위 문제와 연관하여 폭넓게 논의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 2005), 5장 참조. 앞으로는 도킨스(2005)로 줄인다.
35) 도킨스(2002), 72쪽.
36) 도킨스(2002), 49-50쪽.
37) 리처드 도킨스(2005), 8쪽.
38) “다윈주의의 의미에서 볼 때 생물은 그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생물의 주요 기능은 결코 다른 생물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전자를 재생산하는 것이며, 유전자의 임시 운반자 역할을 한다”. Wilson(2000), p. 3.
3. 사회생물학적 인간학에 대한 비판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학(selfish genery)’39)에 대한 학문적 평가는 다양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사회생물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보다 오히려 생물학자와 과학철학자들로부터 나왔다.40)
물론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낡은’ 생물학주의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41) 또 그의 『사회생물학』의 과학성을 극찬하면서도 인간을 다룬 첫 장과 마지막 장은 논리적으로 모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42) 혹자는 『사회생물학』을 둘로 나누어 546쪽까지는 탁월한 과학이며 나머지 30쪽 분량만이 생물학주의에 물든 부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43) 사회생물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요목조목 반박하고 있는 요아힘 바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 문제와 관련해 현재 서구의 자연과학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책을 두 권 꼽을 수 있다. 이 책들은 이른바 사회생물학의 기본이 되었다. 한 권은 1975년 미국의 동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쓴『사회생물학』이고 또 한 권은 1976년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이다. 윌슨과 도킨스는 진화를 주도하는 것이 생명체가 아니라 유전자라고 주장한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존재이유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최대한 많이 증식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유전자의 목표라는 것이다.44)"
과연 사회생물학의 이러한 함축적인 가정은 옳은 것일까? 그들의 말대로 경쟁과 투쟁이 생명체에게 일차적인 원동력일까?
39) 도킨스(2002), 49-50쪽.
40) 대표적인 예가 Gould(1981), Rose, Lewontin & Kamin(1984), Kitcher(1985) 등이다. 김동광외(2011), 37쪽 참조.
41) 부케티츠(1999), 47-48쪽.
42) 케이(2008), 157쪽.
43) 케이(2008), 158쪽.
44) 바우어(2007), 16쪽. 부케티츠도 이와 비슷한 논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부케티츠(1999), 17 쪽 참조.
1) 협력하는 유전자
생명체의 탄생과정에서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유전자에게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을까? 바우어는 생명이 무엇인지에 관해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식들을 모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 물음에 접근하고 있다. 그가 일차적으로 주목한 것은 유전자의 역사와 생명의 두가지 원리, 즉 ‘협력’과 ‘소통’이다.
"생명은 소위 말하는 RNA 세계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생명은 자기 복제와 재생산이 가능한 RNA 분자들과 단백질 분자들이 협력하고 소통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은 생명체의 특징은 한마디로 ‘유대(connectedness)’였다.45)"
최초의 살아있는 시스템은 두 가지 생물학적 분자, 즉 RNA와 단백질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여 발생했다. 둘은 직선으로 연결된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각각 뉴클레오티드(인산염)와 아미노산으로 불린다.
이들의 협력은 단순히 상호 연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작용하면서 상대 분자를 변화시킬뿐 아니라 양자의 성분인 뉴클레오티드와 아미노산으로부터 서로 합성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둘이 서로 협력한 결과이다.
하나의 RNA 분자에 들어있는 4개 성분의 서열은 정보 소지자와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역할을 수행한다. 4개의 서열이 RNA 분자의 구조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일 뿐 아니라 단백질의 설계도를 저장하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 서열은 그 자체의 텍스트에 따라 해당 RNA 분자를 거울과 같이 그대로 복사할 수 있다. 이를 ‘거울 원칙’이라고 하는데, 이는 4개의 성분이 각각 2개씩 짝을 형성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이 거울 원칙은 다양한 RNA 분자들이 서로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만일 어떤 RNA 분자 내 어떤 성분이 다른 RNA 내
의 성분을 자신의 파트너로 발견하면 양자는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협력’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것은 생명의 기원이 될 수 있도록 해준 모든 중요한 전제를 설명해 준다.
‘RNA 세계’는 지속적으로 서로 교환하고 소통한다. 최초의 생명체가 막으로 둘러싸이고 이로써 세포가 된 후에도 구성 성분들 간의 소통과 교환은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협력’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생명과 함께 “생명 그 자체로 존재했던 것”46)이다.
그렇다면 유전자의 세계는 어떤가?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생명체의 출발점이자 유전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복제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47)
유전자는 진화의 초기 단계에 RNA 분자들의 안전을 위해 세포들이 안전 복제를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유전자는 안전 복제에 사용된 재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DNA이다. RNA와 DNA는 구성 성분이 조금 다르지만48) RNA의 거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 원칙은 RNA와 DNA 사이에도 또 디옥시리보스 분자들 사이에서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RNA 세계의 ‘정보 원칙’ 과 ‘소통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49)
다만 새로운 것은 RNA 세계에서는 오로지 RNA 분자에만 저장되어 있었던 정보 운반 서열이 기존의 DNA 안전 복제로서 영구히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유전자’라고 부르는 것들이며 ‘진화의 두 번째 단계에서 처음 생겨났다.’50) 그리고 생명의 세계는 RNA 세계에서 DNA 세계로 진화했다.
그 진화의 핵심 원리는 역시 ‘협력’ 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과 소통은 RNA 세계와 DNA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와 세포와 유기체 사이에도 지속적으로 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유전자를 포함한 생명체는 진화에 직접 참여하는 가담자이다. 생명체의 구성성분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예외없이 상호종속적이었으며 협력하지 않으면 진화 과정에서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었다.51)
그래서 바우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사회생물학적 사이언스픽션(Science Fiction)’52)이라고 말한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도 않고 독재자도 아니다. 도킨스의 말대로 유전자가 세포나 생물체의 독자적인 ‘지휘본부’라면 모든 세포들에게 ‘대재난’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DNA와 이 안에 들어 있는 유전자들이야말로 세포의 지휘를 받고 있다.
“세포들은 모든 유전자의 앞부분에 유전자 개폐장치를 두고 있는데, 이 장치는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DNA로 이루어져 있고 오로지 세포가 보내는 신호들을 받는 역할만 한다. 이 신호들은 유전자 개폐장치에 속한 유전자를 활성화시킬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꺼버려야 할지를 결정한다.”53)
이제 우리는 유전자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소통과 협력의 원리를 통해 유전자가 어떻게 진화에 가담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진핵생물의 세포가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 ‘세포 내 공생’도 그 생물학적 원리는 동일하다. 내포내 공생은 ‘협력’이라는 기본적인 원리를 따르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진핵생물의 세포들은 생물의 진화가 이루어지는 또 다른 출발점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산소를 소비하는 박테리아와 일체가 되어 훗날 동물세계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 산소를 생산하는 광합성 박테리아와 세포내 공생을 허용함으로써 훗날 식물 세계가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두 가지 진핵 생물 기본형을 탄생시킴으로써 진핵생물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산소를 생산하는 식물세계와 산소를 소비하는 동물세계가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세계에서 생물의 종들은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새로운 종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우연한 돌연변이의 축적이 아니라 세포에 의해 유발된 유전자가 직접 나서서 게놈 구조를 변화시킨 데 있다. 게놈 구조를 변화시킨 원인은 기존의 생물학적 행동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유전적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부분 요소들을 복제함으로써 보다 복잡한 시스템으로 확장함으로써 게놈 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 따라 식물과 동물은 물론이며 단세포 생물이 발생했다.54)"
새로운 종들이 발생하는 것은 게놈의 구조 내부에서 게놈 스스로 실행하는 개조 과정이며, 이 과정은 내재하는 원칙들에 따라 작동한다. 진화를 일어나게 하는 게놈 개조 과정은 . . . 생물학적 규칙들을 따른다.55) 이미 지적했듯이, 여기서 말하는 규칙이란 생명체의 성분들 사이에서 자연적인 상호 작용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화의 기본 원리는 모든 종들에게 유효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바우어의 논지에서 보면, 모든 생명은 하나의 진화적 발달을 통해 나왔고 공통된 계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진화는 개별 전사들의 발전’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생물학적 체계들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56)
45) 바우어(2010), 38쪽.
46) 바우어(2010), 39쪽.
47) 바우어(2010), 39쪽. 바우어가 말하는 ‘환상’은 도킨스 자신이 말하는 ‘사고 실험’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에 의하면, ‘현실 세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상상의 세계에서 노니는 것이 사고실험의 기법’이다. 리처드 도킨스(2005), 22-23쪽.
48) DNA도 RNA와 마찬가지로 4개의 뉴클레오티드 성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3개는 RNA의 성분과 동일하고 하나가 다르다. 바우어(2010), 40쪽 참조.
49) Cf., J. A. Shapiro, Genome Informatics: The role of DNA in celular copmpputaions, Biological Theory I: 288. 샤피로에 따른다면,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커뮤니케이션 분자’이며, 세포들은 ‘인지 능력을 가진 단위들’이다.
50) 바우어(2010), 46쪽.
51) ‘유전자가 이기적이다’라는 주장과 ‘유전자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한다’라는 주장은 경험적으로 서로 모순적인 주장이 아닐 수 있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바우어가 비판하는 핵심은 그 이기성의 원리적 측면, 즉 유전자는 독자적으로 스스로를 복제한다는 것과 유전자가 자기증식을 위해 생물체를 이용한다는 도킨스의 가설에 있다.
52) 바우어(2010), 41쪽.
53) 바우어(2010), 41쪽.
54) 바우어(2010), 81쪽.
55) 바우어(2010), 71쪽.
56) 바우어(2010), 54쪽.
2) ‘협력’의 생물학
인간의 본성에 관한 과학적 저술 가운데 널리 읽히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이다. 그는 이 책 서두에서 이렇게 묻는다.
"생존이 본질적으로 경쟁적 투쟁이라면 그토록 많은 협동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왜 그토록 협동 애호가인가?
인류는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인가 반사회적 동물인가?57)"
리들리는 피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을 염두에 두고, 그의 논지에 동의하면서 이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크로포트킨은 ‘자연은 이기적 존재들의 냉혹한 투쟁의 장’이라는 토마스 헉슬리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동물 사회는 경쟁보다 서로 돕는 것이 훨씬 더 본질적이다.58)
이는 크로포트킨이 자연세계에서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사실이다. 협력하고 서로 돕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동물들은 상호부조(mutual aid)와 상호지지(mutual support)를 통해 경쟁을 배제하고 오히려 보다 나은 생존 상태를 만들어간다.
“최소한의 에너지 소모로 최대한 생명의 풍요와 충실을 추구하는 중대한 생존투쟁을 통해서 자연선택이 부단히 추구하는 것은 곧 가능한 한 경쟁을 피하는 것이다.”59)
경쟁을 피하는 것은 적응의 형태로 변화된 사회적 행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많은 조류들은 겨울이 오면 남쪽으로 이동하거나 큰 무리를 지어 긴 여행을 한다. 그리고 설치류 가운데 대부분은 경쟁 개시의 시절이 다가오면 동면에 들어가거나, 그렇지 않은 설치류는 겨울을 대비하여 먹을 것을 저장한다. 사회성 동물들은 동면하거나 이주하거나 혹은 개미처럼 스스로 먹이를 사육함으로써 경쟁을 피하는 것이다.”60)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경쟁을 피하는 것이 최선의 경쟁이다. 리들리가 ‘협력의 생물학’을 지향한 까닭이 여기 있다.
"유전자가 협력해서 염색체를 만들고, 염색체는 협력해서 게놈이 되고, 게놈은 협력해서 새로운 세포를 형성하고, 세포가 협력해서 복합 세포를 만들고, 복합 세포가 협력해서 개체를 만들고, 개체가 협력해서 군체를 이룬다.61)"
리들리에 따르면, 협력이 생물학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곧 응집이다. 그의 『이타적 유전자』는 세 개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째는 협력적인 팀을 향한 인간 유전자들의 10억 년에 걸친 응집, 둘째는 협력하는 사회를 향한 인류 조상들의 100만 년에 걸친 응집, 그리고 마지막은 사회 및 그 기원에 관한 사상의 1000년에 걸친 응집이다.
"개체는 죽지만 군체는 거의 불멸에 가깝다.
. .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는 원자 수준의 개체였다. 이후 그것은 점차 응집되어 갔다. 응집이 시작되고부터 생존은 단식 경기가 아니라 팀 경기가 되어버렸다. 35억 년 전에는 몸의 길이가 백만분의 5미터이고 1000여 개의 유전자를 갖춘 박테리아가 지구상에 등장했다.
. . 16억 년 전에는 박테리아의 백만 배쯤 되는 무게에 1만 개 이상의 유전자를 갖춘 복합 세포인 원생동물이 지구상에 등장했다. 5억 년 전에는 1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더 복잡한 생물이 등장했는데 이 시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은 생쥐만한 크기의 절족 동물인 삼엽충이었다. 그때부터 덩치가 큰 것일수록 빠른 속도로 커져갔다.
. .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이미 새로운 차원의 응집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 응집이다. 1억 년 전에 이미 백만 마리 이상의 대집단으로 이루어진 개미의 복합 군체가 등장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집 설계 가운데 하나이다.
. . 포유동물과 조류도 사회적으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 . 응집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62)"
바우어가 말하는 ‘협력’과 리들리의 ‘응집’은 그 내포적 의미가 거의 같다. 리들리가 말하는 ‘응집’이란 결국 ‘협력적인 본능의 발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63)
생물계에서 이러한 협력의 위력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증거는 개미와 꿀벌 그리고 흰개미이다.
“홀로 있는 개미나 꿀벌은 마치 절단된 손가락처럼 연약하고 불운하다. 하지만 군체에 결합되면 그는 엄지손각락만큼이나 쓸모가 많다.”64)
이같은 협력 덕분에 개미와 흰개미와 꿀벌은 단일 생명체로서는 결코 불가능한 생태학적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10조 마리 정도의 개미가 살고 있으며 그들의 몸무게를 합치면 지구에 사는 인간의 총 중량과 맞먹는다.
벌과 개미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 사회의 협동을 은유하는 소재로 애용되어 왔다. 오늘날처럼 생물학적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사회와 인간 사회를 직관적으로 비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교를 통해 개미나 꿀벌은 ‘인간이 추구하는 것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을 공산주의라고 부르든 전제주의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의 사회는 인간 사회보다 더 조화로우며 공동선과 대의를 지향한다.”65)
57) 매트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신좌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 15쪽. 앞으로는 리들리(2001)로 줄인다.
58) Kropotkin, P.,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William heinemann, London, 1919, p. 15. 앞으로는 Kropotkin(1919)로 줄인다.
59) Kropotkin(1919), p. 61.
60) Kropotkin(1919), pp. 61-62.
61) 리들리(2001), 30쪽.
62) 리들리(2001), 25-26쪽.
63) 리들리(2001), 17쪽.
64) 리들리(2001), 23쪽
65) 리들리(2001), 23쪽.
3) 공생과 합생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어떻게 움직일까? 린 마굴리스는 과학(진화론)을 통해 이 ‘철학적인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66)을 취하고 있다. 그녀가 볼 때 해답을 찾아가는 길은 오직 진화론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67) 그녀는 주로 동물학적 영역에서 논의되는 진화 이론의 역사를 미생물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진화의 중요한 길들이 동물이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개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공생기원론(symbiogenesis)’이며 그 핵심적인 함축은 ‘협력’과 ‘융합’이다. 생명은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생과 협력을 통해 지구를 장악했다.68)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이후 10억 년이 끝나갈 무렵 지구는 온통 세균들로 우글거리게 되었다. 협력과 지속적인 유전정보 교환을 통해 그들은 전 지구의 생물조건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물들은 이 세균들로부터 진화했다. 그러므로 “세균에게는 종이 없다. 세균들이 서로 융합하여 식물과 동물의 조상들을 비롯한 더 큰 세포들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종이란 없었다.”69)
미생물들이 오랫동안 공생하여 비로소 핵을 지닌 복잡한 세포가 처음으로 생겨나고, 세포들이 서로 협력하여 군체가 되는가 하면 다시 군체는 더 높은 수준의 조직화가 이루어진 개체가 된다. 거기서 곰팡이, 식물, 동물 같은 생물들이 진화되어 나왔다. 그리고 식물과 동물에서는 생식 세포의 융합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된다. 동물과 식물은 성적으로 만나 서로 핵을 융합하여 배아를 만든다. 그들에게 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70)이다. 동물과 식물은 ‘진화 경기에 계속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을 지녀야 한다.’71)
마굴리스가 볼 때, 공생은 진화와 종의 기원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핵심개념이다. 간단히 말해서 “공생은 서로 다른 생명체들을 하나로 묶는”72) 것이다.
단순히 묶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곧 생명체들이 지닌 창조성의 근원이다. 다시 말해서 공생자들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공생 관계를 이룸으로써 새로운 조직과 기관이 생겨나고, 나아가 새로온 생물과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를 진화 용어로 ‘공생 발생(symbiogenesis)’이라
한다. 공생 발생은 ‘획득된 유전자 집합의 유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적 변화’73)이다.
"공생 발생은 서로 다른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서 더 크고 더 복잡한 생물을 만든다. 공생 발생으로 생긴 생명체의 부모끼리도 서로 다르지만 새로 탄생한 생명체는 부모와 더더욱 다르다. 개체들은 융합을 이루면서 번식을 조절한다. 그들은 복합 단위체인 공생하는 새 개체들이 되어 새로운 집단을 형성한다. 그들은 더 크고 더 포괄적인 통합을 이룬 새 개체들이 된다. . . 우리는 공생 세계에서 살고 있다.74)"
이러한 마굴리스의 공생 진화론에서 볼 때 윌슨의 인간사회생물학을 관통하고 있는 그의 분류학적 사유 체계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분류학은 생물을 찾고 이름붙이고 분류하는 학문이며, 대량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공생 진화론은 미생물들의 경이로운 생존 능력과 공생 진화를 깊이 탐구해 왔으며, 이러한 탐구가 분류 체계 변화의 토대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수정된 형태는 ‘2단으로 된 5계 분류 체계’75)이다.
생물을 가장 큰 범주인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을 첫 번째와 두 번째 단에 놓고, 그 아래에 세균들, 원생생물, 식물, 동물, 곰팡이 등 다섯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세균 외의 생물들은 모두 공생을 시작한 미생물 조상에서 나왔다. 공생진화론은 바로 이러한 진화의 역사를 반영할 수 있는 분류 체계를 목표로 삼고 있다. 모든 생물을 동물 아니면 식물로 분류하거나 분류 체계가 너무 경직되어 있으면 이러한 진화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진정한 생물 다양성은 식물과 동물 이외의 생물들에서 나타난다.”76)
생물의 분류는 단순히 생물들을 나누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의 분류체계는 생물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잘못된 분류 체계는 잘못된 가정이나 신념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학문적으로 잘못 인도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아래에서 위로 자라나는 나무 모양의 계통수가 그런 경우이다. 줄기 하나에서 계통들이 가지처럼 갈라지고 각 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는 공통 조상이 있다.
하지만 공생은 그런 나무들이 과거를 이상화한 것이라고 폭로한다. 종들이 합쳐지고 융합하여 새 생명체를 만들 때 그렇다. 그 생명체는 새롭게 출발한다.
그러므로 윌슨의 분류학적 사유 체계의 수정은 단순히 분류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에 대한 이해와 그 진화사와 직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유전자결정론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마굴리스의 공생 진화론을 들여다보면 앞서 살펴본 크로포트킨, 바우어, 리들리의 핵심 논리가 보일 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이해’를 다룬 카프라의 ‘생명의 그물’,77) ‘자연의 창조성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이야기되고 있는 화이트헤드의 ‘합생(concrescence)’ 개념도 함께 보인다. ‘더불어 성장한다’ 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에서 조어된 합생의 개념을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합생이란 다수의 사물들로 구성된 우주가 그 다자(多者)의 각 항을 새로운 일자(一者)의 구조 속에 결정적으로 종속시킴으로써 개체적 통일성을 획득하게 되는 그런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78)"
합생은 각 요소들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의 부분으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이다. 앞에서 살펴본 마굴리스의 공생이론은 이러한 합생이 진화사에서 실제로 일어났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동물과 식물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직계 조상 역시 처음에는 독립생활을 하는 세균이었다.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이 본래 세포 내의 존재가 아니라 바깥에서 침투해 들어온 세균이었던 것이다. 세포내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는 모든 동물과 식물의 세포에서 화학 에너지를 생산한다. 개체 수만으로 따지면 지구를 지배하는 생명체는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이다.79)
66)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이한음 옮김, 사인어스북스, 2007), 52쪽. 앞으로 마굴리스(2007)로 줄인다.
67) 린 마굴리스(2007), 16쪽.
68) 다음을 참조하라. 린 마굴리스(2007). Lynn Magulis and Dorion Sagan, Acquiring Genomes:
The Theory of the Origins of the Species, Basic Books, New York, 2002. Lynn Magulis and Dorion Sagan, What is Lif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and Los Angeles, 2000.
69) 린 마굴리스(2007), 23쪽.
70) 린 마굴리스(2007), 177쪽.
71) 린 마굴리스(2007), 163쪽.
72) 린 마굴리스(2007), 27쪽.
73) 린 마굴리스(2007), 27쪽.
74) 린 마굴리스(2007), 28쪽.
75) 린 마굴리스(2007), 106-107쪽.
76) 린 마굴리스(2007), 105쪽.
77) 프리초프 카프라, 『생명의 그물』(김용정 외 옮김, 범양사출판부, 1998), 17쪽. 앞으로는 카프라(1998)로 줄인다. ‘생명의 그물’은 연결망이라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생명 시스템을 말한다. 생명의 그물은 연결망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연결망들로 이루어진다. 생태계로서의 이 세계를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 연결망을 이해하는 것이다. 생태계는 여러 개의 접속점을 갖는 연결망이며, 그 각각의 접속점을 확대시키면 그 자체가 또한 하나의 열결망이다. 새로운 연결망 속에 들어 있는 각각의 접속점은 기관일 수도 있으며, 기 기관을 확대해 보면 그 자체가 다시 하나의 연결망이며, 생태계 전체는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져 있다. 카프라(1998), 56-57 참조.
78) 화이트헤드, 『과정과 실재』(오영환 옮김, 민음사, 1991), 387쪽.
79) 린 마굴리스(2007), 77쪽.
4. 결론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는 대체로 차이를 통해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었다.80) 그것은 다른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기 위해 인간의 존재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존재 규정이 아닐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근원적인 물음을 남겨놓고 있었다.
가령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나 ‘사회적 동물’로 규정할 때 인간의 종차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 인간은 왜 생각하는가, 혹은 인간은 왜 사회적인가를 다시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 물음을 묻지않고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본성을 규정하는 것은 극히 추상적인 정의에 불과하다.
사회생물학은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했으며 무엇이 진실인지를 진지하게 열심히 탐구해 왔다는 점에서 현대 인간론에 있어서 사회생물학의 기여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는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81)
하지만 오늘날 사회생물학은 폭넓은 대중적 인기와 격렬한 비판을 함께 감당하고 있으며, 그 비판에 대해 성실히 응답하고 있다.82) 우리는 사회생물학을 하나의 학문 분과로서 그리고 과학적 이론 체계로서 평가하기 위해 사회생물학의 생물학적 기초와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경험적 데이터를 사회생물학 분야를 대표하는 윌슨과 도킨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본문에서 이미 시사하고 있듯이 가장 눈에 띄는 비판은 역시 사회생물학을 ‘생명과 인간에 대한 낡은 기계 이론의 새로운 변종’83)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는 다분히 감정이 개입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비판자들이 보기에 인간이 유전자의 꼭두가시라는 주장은 인간과 원숭이의 조상이 같다는 명제보다 훨씬 더 모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원리와 법칙은 감정보다는 논리적 정합성과 경험적인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연 사회생물학은 이 점에서 자유로운가?
바우어가 볼 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호히 부정적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유전자에 관한 광범위한 이론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이론이 학문적 연구를 근거로 한 구체적인 자료들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84)
이기적 유전자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상상한 사람들은 한 번도 직접 유전자를 연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85) 그런데도 도킨스는 왜 유전자에 그렇게 집착했을까?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때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문제를 푸는 열쇠’86)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복제 과정에 복잡한 기구가 필요하고 또한 그 복잡한 기구가 생겨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적적인 자연선택밖에 없다는 것이다.87) 하지만 그것도 일단은 어떤 작용을 통해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명 탄생의 첫번째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도킨스는 태초부터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어떤 존재(유전자)가 있었다고 전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우어가 말하듯이,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인 복제자’(도킨스는 유전자의 선구자를 이렇게 불렀다)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 내에 있는 구성성분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이지 않았다.88) 그러므로 도킨스 스스로가 말한 그의 ‘사고 실험’과 ‘상상’은 더 이상 존속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생명의 기원에 관한 그의 설명도 순환논리에 빠져 있다. 생명의 기원을 푸는 열쇠는 누적적 자연선택인데, 이러한 누적적 자연선택이 일어나려면 복제를 위한 어떤 기구와 복제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복제 기구는 너무나 복잡해서 여러 세대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아니고서는 생겨날 수 없다.89) 전자는 후자를, 그리고 후자는 전자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또 하나의 핵심 명제는 ‘이기성’과 ‘경쟁’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유전자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번식할 수 있다. 그의 진화 시나리오에서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유전자의 독자적인 증식 능력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그의 시나리오 전체가 한 번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그 증식은 경쟁과 투쟁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회생물학적 ‘상상’이며 가상 시나리오이다.90)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를 비롯한 생물학과 의학 분야의 뛰어난 학자들에 따르면 투쟁이니 생존경쟁이니 하는 것은 경제학에서 파생되어 생물학에 적용된 인위적인 개념일 뿐이다.”91)
“유전자의 생산은 그 작동과 마찬가지로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92)
이를 우리는 본문에서 크로포트킨, 카프라, 바우어, 마굴리스, 리들리 등을 통해 다각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93)
그리고 이 문제와 연관해서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즉 무성생식만을 알던 진화가 어떻게 성이라는 현상을 허용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새끼를 양육해야하는 유성생식은 많은 투자를 요구하며, 따라서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려야 하는 유전자의 처지에서 보면 무성생식이라는 전략이 훨씬 능률적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사회생물학자들은 이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못하고 있을 뿐아니라, 유성생식이 이익이 되지 않는 장치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성 문제를 그들 나름의 자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94)
이밖에도 사회생물학적 관점이나 사유에 의해 게놈 전체의 조정적이고 통합적인 활동에 대한 연구가 크게 방해받아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적했듯이 마굴리스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진화의 창조성에 있어 중요한 길들이 동물이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마굴리스뿐만 아니라 가이아 이론도 사회생물학적 관점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들에 따르면, 진화의 구동력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생명의 고유한 경향 속에서, 그리고 복잡성과 질서가 자발적으로 증가되는 창발성 속에서 발견된다.
“생물은 생존을 위한 경쟁과 투쟁보다는 협동과 창조성을 통해 더 많은 승리를 거둔다. 실제로, 최초의 진핵세포가 창조된 이래로 진화는 협동과 공진화의 훨씬 더 복잡한 배열을 통해 진행되었다.”95)
우리가 화이트헤드의 ‘합생’ 개념에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글에서 지적한 사항들 외에도 사회생물학에 대해 많은 비판들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올바른 인간학을 위한 새로운 발상과 사고실험이 요청되고 있고, 그것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과학 모두의 과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크게 부족하지는 않을 듯하다.
서론에서 지적했듯이 인간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피해갈 수 없
는 과제이다. 이 글은 사회생물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이 절실한 과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80) 대표적인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류와 종차에 의한 정의’이다.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할 때 ‘이성’은 인간이 갖는 다른 동물과의 차이이다.
81)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박만준, 「인간은 왜 사회적인가?」, 『철학논총』제35집 제1권(2004년), 새한철학회. 박만준, 「새로운 인간학」, 『철학논총』제43집(2006년), 새한철학회. 박만준, 「인간의 사회성은 어디서 왔는가?」, 『동서철학연구』제60집(2011년), 한국동서철학회. 박만준 외,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산지니, 2005.
82) 특히 Wilson(1978)과 도킨스(2005)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83) 부케티츠(1999), 19쪽.
84) 바우어(2007), 115쪽.
85) 바우어(2007), 108쪽. 『이기적 유전자』의 초판 서문에서 도킨스 자신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읽혀야 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쓰여졌기 때문이다.” 바우어(2007), 115쪽 참조.
86) 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이용철 옮김, 사인언스북스, 2009), 234쪽. 앞으로는 도킨스(2009)로 줄인다.
87) 도킨스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에 관한 현대의 이론에서 핵심은 누적적인 자연선택이다. 그 이론들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결합한다. 도킨스(2009), 234-6쪽 참조.
88) 바우어(2010), 39쪽.
89) 도킨스(2009), 234-236쪽 참조.
90) 바우어(2007), 114-117쪽 참조.
91) 바우어(2007), 17쪽.
92) 바우어(2007), 126. 바우어는 진화 초기의 놀라운 협력을 ‘세포내 공생’으로 진핵생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여기서 그는 마굴리스의 공생진화론을 아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바우어(2007), 129-30쪽 참조.
93) 이들뿐 아니라 심지어 거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진화생물학자들조차도 유전자들이 서로 경쟁한다는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우어(2010), 19쪽과 특히 <주24>를 참조.
94) 바우어(2007), 122-23쪽 참조.
95) 카프라(1998), 320쪽.
참고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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