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때’와 ‘남은 시간’*1)
-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 나타난 성스러운 구원의 시간 연구
김영룡 (서울대)
Ⅰ. 들어가는 말 : 바오로 서간과 역사철학테제의 메시아적 시간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의 생애에서 신학적 사유와 정치적 사유의 대립은 이제껏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1) 특히 벤야민 최후의 저술로 여겨지는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2)는 생애의 마지막 10여년 동안 벤야민이 지속적으로 되묻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소위 ‘역사철학테제’로 일반화되어 불리는 이 저술은 벤야민의 비평적, 철학적 사유의 정수이며,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의 순간을 예감한 벤야민의 마지막 기록이자 유언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에서『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오로의 일화와 견주어 이야기되어지기도 한다.3) 특히 불치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자유 베를린 대학의 유대계 철학자 타우베스 Jacob Taubes는 마치 ‘유언을 집필하는 심정으로’ 1987년 1월 일주일간에 걸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신학부에서 행한 강연에서『로마서』8장과 벤야민의 「신학적- 정치적 단편 Theologisch-politisches Fragment」(GS II-1, 203 f.) 사이의 2000여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유사성을 설파한바 있으며,4) 이 논집에 영감을 받은 아감벤 Giorgio Agamben은 다시금 바오로서간과 벤야민의 역사철학 테제 사이의 ‘피구라적’ 유사성을 기록하고 있다.5)
이 지점이 바로 본 논문의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벤야민이 살았던 20세기 초반의 시기는 종교적 논쟁과 더불어 성(聖)과 속(俗)의 문제가 문화계의 화두를 장식하던 시기였다.6)
주지하다 시피 서구의 모더니즘은 세속화과정 Säkularisierung, 즉 종교적 영성의 사멸과 함께 시작한다.
‘신은 죽었다’7)라는 니체의 유명한 명제는 기독교문화의 전통에 기반 한 유럽의 신학과 철학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일반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다.8) 20세기 초기 서구의 종교성을 강타한 이러한 ‘세속화 논쟁’은 역설적으로 1917년 저명한 마르부르크 대학의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 Rudolf Otto의 기념비적 연구를 필두로 하여, ‘성스러움 das Heilige’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논의로 발전하였다.9)
주지하다시피 ‘성스러움’에 대한 인류학 혹은 민속학적 관심 뿐 아니라 종교학 및 종교사회학적 관심은 20세기 초반 기존의 인문학 및 사회과학과 더불어 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성스러움’은 무엇보다도 예술이론 및 철학적 논의 뿐 만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데, 특히 문학의 경우에는 다양한 캐릭터와 독자적 시학으로 형상화되기도 하였는 바, 본 논문에서는 ‘역사철학테제’를 중심으로 한 벤야민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성스러움과 구원의 모티브와이에 내재된 메시아적 시간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벤야민이 생각하는 역사의 시간은 흘러간 지난 시간 혹의 과거의 흐름들을 관류하는 연속성이 파괴되어 이미지화된 ‘지금 이때 Jetztzeit’의 시간관이라 할 것이다. 이 정지된 현재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역사적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시간이며, 진리가 섬광처럼, 마치 구원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열렸다가 다시 사라지는 메시아적 시간이라 할 것이다.
*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5B5A07043685).
1) Vgl. Lindner, Burkhardt (Hrsg.): Benjamin Handbuch. Leben-Werk-Wirkung. Stuttgart 2006, S. 294.
2) Benjamin, Walter: Gesammelte Schriften. Bd. I-2. Frankfurt/M. 1991.S. 691-704. 이후 벤야민의 전집은 GS로 표시하고자 한다.
3) Vgl. Taubes, Jacob: Die Politische Theologie des Paulus. München 1995; Agamben, Giorgio: Die Zeit, die bleibt. Frankfurt/M. 2006.
4) Taubes(1995), S. 97.
5) Vgl. Agamben(2006).
6) 김영룡: 성스러움의 토폴로지. <거룩한 소녀 마리아>에 나타난 희생과 성현(聖顯)의 내러티브 연구. 독어교육 제63집 2015, 257-277쪽, 참조.
7) Nietzsche, Friedriech: Die fröhliche Wissenschaft. In: Ders.: Sämtliche Werke. München 2003, S. 343-651, hier S. 481.
8) Weidner, Daniel(Hrsg.): Profanes Leben. Walter Benjamins Dialektik der Säkularisierung, Frankfurt/M. 2010, S.19.
9) Otto, Rudolf: Das Heilige. München 2004, S. 1.
Ⅱ. 허무주의적 메시아주의 : ‘신의 분노’와 ‘남겨진 시간’
벤야민의 역사철학에 기저하는 시간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적인 시간과는 다른 시간 개념일 것이다. 차라리 통상적인 시간 개념에 대한 비판이라 읽혀진다. 역사라는 구조물을 형성하는 것은 동질적이거나 지속인 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실체가 없는 공허한 시간 개념도 역시 아니다. 주지하다 시피 벤야민의 역사관은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당대 사회민주주의가 지닌 낙관적인 진보관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다.
벤야민의 일생을 관류하는 신학적 모티브와 정치적 모티브의 상관관계는 메시아적시간 개념에서 완결된 모습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벤야민 보다 이미 2000여년 전에 살았던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확신과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의 고난과 영광을 설파한다.10)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
31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로마서? 8, 19-33, 밑줄은 이 글의 필자가 한 것임.)
(사진 1: 한나 아렌트 소장본의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 벤야민 친필수고)
타우베스의 견해에 따르자면 이 대목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미 고발을 당한 상태에서 자신이 행한 선교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으며, 언제인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의 행위와 자신이 믿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11)
그러나 이 대목에서 타우베스를 위시한 유대학자들이 주목하는 점은 ‘디아스포라-유대인’이었던 사울/바오로의 ‘가치의 탈가치화’라는 명제로 설명되는 기존의 당시 유대사회에 만연한 ‘율법’에 대한 지나친 맹종에 대한 비판이라 할 것이다. 이단자 사울이 바오로로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보여주는 바와 같이 사도 바오로의 의연한 믿음은 하느님이 아니라면 ‘누가 과연 자신을 고발하고 단죄할 수 있을까’하는 결론을이끈다.12)
‘그들’에게 ‘양처럼 도살’될지언정, 그 어떤 누구도 심지어 죽음마저도 자신의 믿음을 방해하지 못하리라는 유언이라 할 것이다. 머지않을 죽음의 순간, 순교의 순간을 기다리면서, 바오로 사도가 바라보는 세계는, 따라서 혈연에 기반 한 친족 관계가 아니라 구원의 믿음에 기반한 친족관계 Verheißungsverwandtschaft(‘에클레시아 ecclesia’)일 것이며, 바오로의 사명은, 타우베스의 견해를 빌리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세우고 이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13) 이는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의 분노 orgetheou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타우베스는 적고 있으며, 「출애굽기」 32-34장과 「민수기」 14-15장의 일화를 제시하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철학자 타우베스는 사실상 순교의 순간을 향해가는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의 탄식’이라는 화두를 꺼내어 벤야민 생애의 마지막 텍스트인 「역사철학」에 드러나는 소위 ‘니힐니즘’적 요소와 접목시킨다.14)
벤야민과 바오로 사도의 글에서는 성서해석학적인 자구(字句)상의 일치가 아니라, 동일한 삶의 경험이 잉태한 동일한 지향점이 두 사람의 텍스트에 나타난다.15)
죽음을 앞둔 혹은 종말을 잉태한 현실에 대한 두 사람의 ‘메시아적 시간’은 단순히 미래 지향적이지 않다. 구원의 순간을 기다리는 자의 태도는 결코 미래와 영원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때’가 과거와 현재의 응축이라는 말로써 이해되는 한, 바로 그 순간, 지난 시간의 빚을 청산해야 함을 의미한다.
10) 이 논문에서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2005년 발간한『성경』을 기반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11) Taubes(1995), S. 40.
12)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 34-39)
13) Taubes(1995), S. 42.
14) Taubes(1995), S. 97ff.
15) Taubes(1995), S. 103.
타우베스는 다음과 같은 벤야민의 텍스트에서 바오로 사도와 유사한 벤야민의 역사관을 읽어내고, 니힐리즘에 기반하여 미학화된 메시아주의라고 칭하고 있다.
"메시아가 스스로 모든 역사적인 행위들을 마무리지우는 바, 이는 그 자신 메시아적인 것과의 관계를 우선 구원하고, 종결하고 또 창조한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리하여 어떤 역사적인 것도 그 스스로 메시아적인 것에 관계 하려 않는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나라는 사적 역동성의 목표가 아니다. 그 목표로 설정될 수 없다.
사적으로 볼 때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종말이다. 그리하여 세속적인 것의 질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에 덧붙여 건설될 수 없으며, 신정정치는 아무런 정치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단지 종교적 의미만을 지닌다.(...) 세속적인 것의 질서는 행복 Glück의 이념에 기대여 세워진 것이다.
메시아적인 것에 대한 이 세속적인 질서의 관계는 역사철학의 가장 본질적인 교훈중의 하나이다.
(...) 왜냐하면 그 영원하고 총체적인 무상함 Vergängnis의 자연은 메시아적이다. 이에 다다르고자하는 것이,(...), 세계정치의 과제이며, 이것의 방법론은 니힐리즘이라 불릴만 하다.
(GS II-1, 203 f., 밑줄은 이 글의 필자가 한 것임.)"
타우베스는 벤야민의 사유에서 행복과 무상함을 동일시하는 점에 착안하여,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8장 19-21절에 나타나는 ‘피조물의 허무’와 대칭적인 독법을 설파한바 있다.
타우베스는 무엇 보다도 사도 바오로의 「고린도서」와 「로마서」에 나오는 ‘없는 듯 hos me’ 살아라! 라는 주장과 벤야민의 사유의 일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에 아감벤이 쓴『남겨진 시간』의 견해에 따르자면,16) 이 구절에서 타우베스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바오로에게 창조는 아무런 의도 없는 덧없음과 파괴에 종속되어 있고, 구원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지만, 벤야민에게 있어서 자연은 이미 덧없는 것이라서 메시아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벤야민은 ‘메시아적 자연의 리듬이 바로 행복’이라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죽음’으로 시작된 20세기가 지속적인 세속화 과정을 통해서 도달한 귀결이,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의 헤테로토피아적인 ‘예외적 상황 Ausnahmenzustand’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는 작금의 이론적 논구들 속에서 벤야민이 ‘세속적인 것의 질서’혹은 ‘행복’으로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성스러운 것/메시아적인 것의 질서에 대한 반대 개념은 아니라는 점은 벤야민의 위의 글의 첫 문장이 언급하고 있듯이 ‘메시아가 모든 역사적인 것을 종결지우기’ 때문이라는 데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할 것이다.
벤야민의 경우 주지하다 시피 정처 없는 망명의 길을 준비하던 1932년부터 아마도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할 고향 베를린에 대한 추억들을 글로써 남길 결심을 한다.17) 주체할 수 없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기약 없는 오디세이를 목전에 두고 벤야민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우연적인 전기적 사실 보다는 필연적인 사회적인 측면에서 시간의 비회귀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고향’과 ‘화해’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을 은폐하면서, 신화적인 세계를 ‘시간’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행위는 마치 문명이 선사시대에 대해 행하는 복수와 같이 끔찍한 것이리라.
지나간 재난을 회상 속에서 계속 붙잡아 둘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호머가 지니는 ‘탈출’의 법칙을 읽어 낼 수 있다고 한다.18) 벤야민은 이야기의 시간, 즉 연대기적 기술법칙을 무시하고 있으며, 각기 에피소드들은 다른 에피소드들과는 무관하고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지니는 에피소드들이 극도의 절제되고 능숙한 언어 이미지들로서 상호 병렬적으로 나타난다. 벤야민은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유년기의 그때와 그곳에 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은 기억의 편린으로 그려낸다.
"학교 운동장의 시계는 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망가진 듯 보였다. 그 시계는 ‘너무 늦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스쳐지나가는 교실 문들에서는 비밀회동의 중얼거림이 복도로 새어나왔다.
저 문 너머에 있는 교사와 학생들은 한 통속인 것이다. 아니면 어떤 한 사람을 기다리는 듯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살그머니 소리 나지 않게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다.
태양이 마치 내가 서있는 자리의 반점을 삼켜버린 듯하다. 들어가야 했기에 나의 그린 데이를 욕보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마치 악마가 페터 슐레밀의 그림자를 그렇게 했듯이, 선생님은 수업 시작할 때에 나에게서 내 이름을 유보했다. 난 더 이상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길 바랬다. 조용히 종이 칠 때 까지 버텨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진 않았다.(「너무 늦게 오다 Zu spät gekommen」)"
지각한 아이가 이러한 치욕감 속에서도 복도을 지나 교실에 가야하는 이유는, 마지막 종이 칠 때 까지 버티기 위함일 것이다. 마치 바오로 사도가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지 않았다는 대목은 마치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19)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잠겨있는 우리네의 삶에서 그 시간의 흐름에 저항 할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죄책감마저 드는 것이 아닐까? 이는 벤야민의 허무주의적 메시아니즘의 발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6) Vgl. Agamben(2006).
17) 벤야민의 『1900년 무렵 베를린의 유년시절 Berliner Kindheit um neuzehnhundert』(1932ff.)은 여러 겹으로 감싸진 매우 개인적인 체험의 아카이브이자, 동시에 언제고 일반화되어 경험의 시학으로 탈바꿈 가능한 기억의 저수지라 할 수 있다. 1981년 발견된 벤야민의 타이프원고에 충실하기에 아래 판본을 본 논문의 저본 텍스트로 사용 한다. Vgl. Benjamin, Walter: 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Frankfurt/M. 1987.
18) Horkheimer, Max/ Th. W. Adorno : Dialektik der Aufklärung, Frankfurt/ M.1994, S.86.
19) 참을성 없음, 그것이 오르페우스의 죄이다. 그의 잘못은 무한을 고갈시키고자 했다는 것, 끝나지 않는 것에 끝을 맺으려 했다는 것, 심지어 자기 잘못의 몸짓조차 끝없이 참고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을성 없음, 그것은 시간의 부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의 오류이다. 오르페우스의 신화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창작을 한다는 것은 오로지 깊이의 무절제한 경험과 하강의 기억이 그 경험 자체로만 추구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이다.
깊이는 혹은 지하세계로의 하강은 자신을 그 어둠속에 담글 때, 제 작품 속에 제 모습을 감출 때에 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기의 부재를 감추지 않는 베일에 싸인 존재, 그녀의 무한한 부재의 현존인 망령이라는 부재 속에 오르페우스는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았으며, 온전한 상태 그대로의 그녀를 만졌던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녀를 끌어당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지금 거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선 속에는 오르페우스 자신도 부재이다. 오르페우스 또한 그녀만큼 죽은 상태인 것이다.
즉,“희생의 원리는 그 비합리성으로 말미암아 덧없는 것임이 증명되지만 동시에 희생의 원리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합리성’에 힘입어 계속 존속한다.”(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Vgl. 김영룡: 기억의 토포스와 생활세계의 토폴로지. 독일문학 제130집 2014, 107-129쪽.
Ⅲ. ‘미 약 한’ 메시아적 힘 : ‘내면의 곱추 난장이’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의 첫 번째 테제는 다음과 같은 알레고리적 비유로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자동기계가 하나 있었다 하는데, 이 기계는 매번 체스 게임에서 매번 반대 수를 두어서 언제나 게임을 이기도록 제작되었다고 한다.
터키 전통복장을 하고 입에는 물담배 파이프를 문 이 인형은 넓은 책상위에 놓인 체스 판 앞에 앉아 있다.
거울들로 이뤄진 시스템에 의해 책상 안이 사방으로 모두 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 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책상 안에는 체스의 명인인 난장이 곱추가 있어 줄을 당겨 인형을 조종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장치에 대응되는 것을 철학에서 상상할 수 있다. (GS I-2, 693)"
벤야민의 텍스트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대목에서 곱추 난장이는 신학의 알레고리로서, 역사유물론과 신학의 관계를 체스 자동기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알레고리에 따르자면 언제나 체스를 이기는 소위 역사유물론이라는 체스 인형은 실제로는 못생기고 등이 굽은 난장이라는 신학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적 유물론이라는 신학을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서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일까?
연이어지는 두 번째 테제에서 벤야민은 사적 유물론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신학적 이념은 실은 구원과 행복의 이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함으로써 초기의 「신학적- 정치적 단편」에서 주장한 바 있는 세속성에 대한 예찬으로 회귀한 듯 하다.
"우리들이 품고 있는 행복의 이미지라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현재적 삶의 진행과정을 한 때 규정하였던 과거의 시간에 의해서 채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달리 말하자면 행복의 이미지 속에 구원의 이미지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함께 꿈틀 거리고 있는것이다. 역사가 관심을 가지는 과거의 이미지도 이와 동일한 양상을 지닌다.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는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 만약 그렇다면 과거의 인간과 현재의 우리들 사이에는 은밀한 묵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고 또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구원이 기대되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앞서 간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미약한 s c h w a c h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고, 과거 역시 이 힘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GS I-2, 694)"
아감벤은 이 대목에서 벤야민이 단어 ‘미약한 schwach’이 타이프원고에서 간격을 두고, 즉 s c h w a c h의 형태로 기록된 점에 주목한다. 벤야민의 논문 「서사극이란 무엇인가?」에서 벤야민이 서사극의 한 특성으로 기록한 ‘인용 가능한 제스처’의 식자공과 배우의 연기와의 비유를 상기시키면서, 아감벤은 이 인쇄상의 약속 sperren의 목적이 ‘과잉 독해’를 유발 시키고자 함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과거를 구원하여 현재를 더불어 구원하고자 하는 메시아적 힘이 왜 미약한가에 대한 해답은 사도 바오로의 다음 편지 구절에서 찾고 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2』 12, 9-10)"
온갖 환난 속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으로 부터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라는 응답을 들은바, 내가 미약할 때 더 강하다는 신념에 찬 사도 바오로의 응답은 아마도 벤야민이 바오로 사도의 글에서 선취하고자 했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였으며, 벤야민에게 구원의 메시지로 작용 했을 것이다.
타우베스와 아감벤의 논지를 굳이 쫒지 않더라도 바오로 사도 일대기와 벤야민의 삶의 단편이 지닌 유사성은 여러군데서 관찰된다 할 것이다. 허나 소위 역사철학테제에 드러난 바오로 서간의 인용이 제시되었기에, 우리는 벤야민의 역사철학 테제에 나타난 메시아관이 유언적 특성을 지닌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적 유물론의 체스인형을 조종하는 책상밑의 곱추 난장이의 참모습을 이해 할 수도 있다. 벤야민의 사유의 틀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이미지 Bild라는 개념의 경우 제5테제에서의 경우,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확 스쳐지나간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인식되어지는 찰나에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리는, 마치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로서만 과거를 붙잡을수 있을 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가의 임무는 아마도 이러한 지나가는 이미지를 포착하여 다시금 구원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체스 기계의 곱추 난장이에 비견할 만한 이미지는 벤야민의 다른 글에서도 나타나는데, 가령 ?유년시절?의 경우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하실에 살고 있는 ‘곱추 난장이 Das bucklichte Männlein’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자신의 유년시절의 회고를 마감하고 있다.20)
"사람들은 임종을 앞둔 사람의 눈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간다고 하지만, 그것은 곱추 난쟁이가 우리들 모두에 대해서 간직하고 있는 이미지들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그를 본적이 없다. 단지 그만이 나를 항시 바라보고 있었다. 숨바꼭질하던 나, 수달의 우리 앞에 있던 나, 그 겨울날 아침에도, 부엌 복도 앞 전화기 앞에서도, 나비 잡던 맥주공장에서도, 금관악기 음악이 울려 퍼지던 스케이트장에서도 그는 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그는 소임을 다했다. 다만 마치 가스등불이 타는 듯 한 목소리의 그의 음성만이 세기말의 문턱을 넘어서 여전히 속삭이고 있을 뿐.
<귀여운 아가야, 아 제발, 이 작은 꼽추 아저씨를 위해 같이 기도해 주렴!>21)
기억의 공간을 규정지우고 저장하고 계속적으로 반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아 정체성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자의식의 언어적 특성이 이 단락에서는 마치 꼽추 아저씨와 같은 ‘왜곡된 이미지의 근원적 모습’으로 상징화되는 것이다. 아우라와 통제된 시선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마치 천을 짜듯이 텍스트를 구성하는 계기들을 토해내고 있으며, 이는 바로 기억의 공간을 규정 지운다.22)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은 주지하다시피 주체의 사회적 차원으로의 확장을 낳기도 한다. 상징의 조화로운 통일성이 파괴됨으로써 동시에 경험한 인식의 주체와 객체의 몰락을 미학적으로 그려내려는 시도는 알레고리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아니면 일그러진 왜곡된 모습으로 유년기의 자아를 반추하려 시도하고 있다.
일그러진 모습의 작은 곱추 인간의 모습은 왜곡되어 언어적으로는 재현 불가능하지만, 구성적인 망각의 시점을 규정지우는 상징성의 차원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곱추 난장이가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매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이미지의 모습으로 최후의 순간에 주마등처럼 다가온다면, 우리들 내면의 심연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이 작은 곱추 아저씨는 체스기계의 신학이라는 이름의 곱추 난장이와 더불어, 과거의 순간과 현재의 순간이 하나의 성좌배열적인 관계속에서 현재의 의미를 승인하는 그 어떤 근원적 이미지라 할 것이다.23)
20) 죠르쥬 바타이유가 벤야민의 요청으로 파리 국립도서관에 감춰두었던 원고 뭉치가 1981년에 다시 발견되기 이전에도 ‘곱추난장이’의 이야기가 『베를린의 유년시절』의 가장 마지막 순서를 차지할 에피소드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능동적인 회상 Eingedenken’의 일례로 유명한 이 단락은『베를린의 유년시절』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회고조의 기억을 통해서 자서전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Vgl. 김영룡(2014).
21) Benjamin(1987), S. 79.
22) 언어적인 재현의 경우에서, 이렇게 뒤틀리고 왜곡된 이미지들을 다시금 언어적으로 묘사하려 시도한다면 그의 유년기는 ‘언어적으로 올바르게‘ 제시될 수 없다. 분절적이고, 알레고리만이 남은 조각난 유년기의 회상이 이야기되어지는 지점이다. 마치 일그러진 글자의 흔적을 되새기는 것과 같은 망각의 기억에 대한 시학이 그려내는 유년기의 모습은 어쩌면 모든 매개로부터 자유로운 실재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그의 시선’,즉 아우라적 시선은 항시 다른 기억의 층위들 속에서 아우라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벤야민의 추구와 기억의 작업은 망각의 분산을 야기하는 것이지, 어떠한 불변의 과거 이미지를 끄집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며, 그와 반대로 긍정적인 방황을 추구하는 것이다.Vgl. 김영룡(2014).
23) 이러한 근원적 이미지를 바오로의 경우에서는 튀포스 typos로, 아우어바흐의 용어를 빌려 피구라 figura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를 선취하려는 벤야민의 역사관은 19세기적 역사주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다. 이러한 근원적 이미지 혹은 ‘미 약 한’ 메시아의 눈으로 보자면, 역사주의적 사관이 주장하는 바, 즉, 역사의 모든 시기는 동일한 가치와 의미,그 나름의 특수성과 정당성을 지니며, 그리하여 역사가는 ‘과연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에 대해 실증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랑케 류의 역사인식은 문제적일 수 밖에 없다.
역사주의의 역사 인식은 소위 ‘감정이입’을 통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영웅들의 역사와 동일시함으로써 역사를 지배계급의 역사로만 이해하고자 한다. 역사주의는 구원의 손길과 행복을 향한 동경이 담긴 진정한 의미의 과거 이미지를 품어내지 못할 뿐 더러, 거짓과 불의를 서슴치 않는 것이라 할 것이다(제6-8테제 참조).
주지하다시피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벤야민의 역사철학 테제는 당시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비판적 논지를 제공한다. 라쌀르에서 시작하여 카우츠키에 이르는 독일의 사민주의의 역사관은 진보에 대한 기계적 믿음에 기초한 낙관적인 미래상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미래의 지향점에 비춰보는 이런 식의 나이브한 당대 진보진영의 낙관주의에 대하여 벤야민의 테제는 매우 부정적이다(제10-13 테제 참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주마등’처럼 그의 모든 생애가 획 지나쳐 가는 것처럼, 메시아의 기억 혹은 역사는 구원의 섭리에 국한되어 이야기되어 질 것이다. 기억은 혹은 역사는 구원의 예비단계로, 인간들은 시간의 충만 속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의 것으로 할 수 있으며, 메시아적 순간에 있어서만 인간들은 과거로부터 결별하고 과거 역시 반복 없는 영원으로 떠날 것이다.
‘그 과거를 잊음으로써 과거에 기초하여, 그 과거로부터 출발함으로써 미래에 이를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외침이 바로 여기에서 울리는 이유이다. ‘미 약 하지만’ 단호한 메시아의 부름을 바오로는 이미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남긴다.
"12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필리피서」 3,12)"
현대 사회가 태생적으로 갖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인문학의 전통에는 그 해답이 이미 선취되어 간직되어 있다. 철학의 이름으로 혹은 문학의 이름으로 그도 아니면 신학자들의 논쟁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지향성에 대한 질문은 이미 정답이 주어진 역사문제를 푸는 것과 같이 자명하다.
그러나 그 해답을 읽고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여전히 각자의 몫이다.‘미 약 한’ 메시아적 힘을 느끼면서 그럼에도 비관적인 타협주의나 낙관적인 모험주의적를 배척하면서, 이 무상한 세계의 삶이 종국에 다다르고 있다는 체험의 경험에서 벤야민이 바라보는 구원의 시간은 미래로 열려있지 않다.
구원의 순간인 바로 지금의 이 순간, 즉 ‘지금 이 때’가 과거와 현재의 수축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과거를 청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점이 세속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접점이지 않을 까 싶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고, 죽은자 들을 불러 세우고 또 산산히 부서진 것을 모아서 이를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에 천사는 그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해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GS I-2, 697)
세차게 불어오는 폭풍 속에서 서서히 떠밀려가는 메시아적 시간의 새로운 천사, 앙겔루스 노부스 Angelus Novus의 응시하는 눈 속에서 멀어져 가는 것이 바로 세속적인 시간의 잔해 더미인 것이다.
Ⅳ. 결론을 대신하며: ‘지금 이때’의 남겨진 시간
유대 묵시문학의 전통에 따르자면, 메시아적 시간과 종말론적 시간을 구분하고 있다한다. 미래로 향하는 예언이 아닌 시간의 종말을 관조하는 묵시문학의 저술자는 역사의 종말을 보고서야 기록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벤야민이 ‘과거가 완벽하게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인류가 구원되고 난후의 일이다’(제3 테제)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류 최후의 날에 자신의 시계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혹은 벤야민이 살았던 시간이나 사도 바오로가 살았던 세계는 종말론적인 상황이 아니다. 메시아적인 시간은 이 세계의 종말의 시간이 아니라, 종말에 이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는 그 어느 지점의 순간, 혹은 현시간과 종말의 사이에 있는 내가 살아가는 그 어느 시점이다 할 것이다.
고대의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자면 창조의 시간, 메시아의 도래의 시간, 종말의 시간, 종말 이후의 시간 등으로 성스러운 시간은 나눠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가 벤야민이나 사도 바오로의 메시아적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시간 개념은, 묵시문학적 종말의 순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연대기적인 기술도 아니다. 벤야민과 바오도 사도에게 관심이 있었던 시간은 메시아의 도래이후에 종말에 이르는 시간, 즉 ‘남겨진 시간’이라 할 것이다.
창조에서 메시아적 사건에 이르는 시간 -사도 바오로에게는 예수의 탄생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의 시간을 이른다 할 것이다-은 세속적인 시간이며 통상 크로노스 chronos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여기에서 시간은 수축하고 끝나기 시작한다. 마치 앙겔루스 노부스의 날개 짓 이후에 쌓이는 잔해들처럼 말이다. 이 지점이 바로 ‘바로 이때 ho hyn kairos’ 라는 사도 바오로의 표현이 드러나는 지점이며, 이는 메시아의 완전한 임재, 즉 종말의 시간 parousia에 이르기 까지 지속된다.
다음의 제 14테제에서의 인용문을 보자면 벤야민이 바라보는 역사관은 바로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메시아적 시간 개념과 일치한다.
"역사는 어떤 구성이나 구조물의 대상인데, 이 구조물이 설 장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때 Jetztzeit에 의해 충만된 시간이다. (...)
그것은 이를테면 과거를 향해 내딛는 호랑이의 도약이다.(GS I-2, 701)"
타우베스와 아감벤의 논지를 따르자면, 사도 바오로의 서간들과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는 2000여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을 넘어서 메시아니즘의 최고의 텍스트를 이루고 있으며, 양자 모두 근원적 위기감 속에서, 하나의 성좌배열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오늘날 우리는 그 ‘독해 가능성의 지금’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프루스트 문학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벤야민은 1929년『문학세계Die Literarische Welt』에 에세이 「프루스트의 이미지 Zum Bilde Prousts」를 발표한 바 있다.24)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삶과 작품의 상관관계를 다음과 같이 적극적인 회상Eingedenken의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 여기에서 기억하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가 체험한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체험의 기억을 짜는 일, 다시 말해 적극적인 회상Eingedenken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기억을 짜는 것이 아니라 망각을 짜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루스트가 비자발적 기억 mémoire involontaire 이라고 부르는 비자발적인 회상은 흔히 기억이라고 불리워지는 것 보다는 오히려 망각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기억이 씨줄이고 망각이 날줄이 되고 있는 이러한 무의지적 회상이라는 작업은 회상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회상하는 일의 반대가 아닐까?(GS II-1, 301)"
일찍이 벤야민은 서사의 전제조건을 서사가와 청중사이에 존재하는 경험의 공유 가능성에서 찾고자 했다.
전통적인 서사가들은 자신들의 서사의 기반을 의도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상기하는 자발적 기억 mémoire volontaire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유사한 구절이 바로 벤야민의 역사철학 테제의 부기 A에 이어진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이 계기를 마치 묵주를 하나 하나 세듯 차례 차례로 이야기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대신 그가 살고 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어느 특정한 시대와 관련 맺게 되는 상황의 배치로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메시아적 시간의 단편들로 점철된 ‘지금 이때’로서의 현재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된다.”(GS I-2, 701)
벤야민은 역사철학 테제의 마지막 테제인 부기 B에서 동질적인 시간의 누적이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닐 것이며, 유대인들에게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을 상기시키고, 단지 기억을 통해서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일찍이 20세기의 이론가들은 19세기의 시간적인 나열성의 논리연관에서 벗어나 지식을 병렬적으로 재배치 하고자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탈중심화된, 혹은 더 이상 ‘성스럽지 못한’ 세계의 공간개념 즉, 모더니티의 ‘공간’을 인지하고 창조해냈다.25)
무엇보다도 ‘성스러움’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점화시켰던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Homo sacer’라는 개념에 이르러서는 종교적인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이 서로 중첩되어 더 이상 분리되어지지 못한다.
살펴 본바와 같이 벤야민의 초기 저술인 「신학적- 철학적 단편」에서 최후의 저작인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 이르기 까지 벤야민의 사유를 관류하는 신학적 가치관과 세속적 가치관의 대립과 해소의 상관관계는 메시아적 시간관에서 그 마지막 표현을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지금 이때’를 살아가는 벤야민에게 ‘남겨진 시간’이란 매초 매초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설 수 있는 조그만 문(GS I-2, 704)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24) 벤야민은 이 에세이에서 ‘신비주의자의 침잠과 산문작가의 기량 및 풍자가의 열광, 그리고 학자의 폭넓은 지식과 편집광의 일방적인 자의식이 한데 어우러진 하나의 자전적 작품’의 이미지를 프루스트의 문학 세계에서 찾고자 한다. 허구와 자전적 사실의 모호한 교차가 낳은 의미의 미로를 찾아가는 과정이 현대의 화자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본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이미지는 시와 삶 사이의 걷잡을 수 없이 커가고 있는 간극이 획득할 수 있었던 최다의 인상학적 표현”이라고 쓰고 있다.
벤야민이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도출해 내고 싶었던 점은 무엇보다도 프루스트의 작품이 ‘실제로 일어났던 삶이 아니라 삶을 체험했던 사람이 바로 그 삶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삶을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Vgl. 김영룡(2014).
25) 일례로 벤야민의 ‘파사쥬’와 ‘일방통행’ 그리고 ‘대도시/베를린’, 아감벤 Giorgio Agamben의 ‘호모 사케르’, ‘예외상황’, ‘수용소’, 라투르 Bruno Latour와 울가 Steve Woolga의 ‘실험실’, 푸코 Michel Foucault의 ‘아카이브’, ‘병원’, ‘감옥’, 슬로터다이크 Peter Sloterdijk의 ‘스타디움’, 키틀러 Friedrich Kittler의 ‘차고’,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의 ‘집’의 경우를 실례로 들 수 있다.
더군다나 리요타르 J. F. Lyotard 의 ‘환초’, 데리다의 ‘토굴’과 ‘아카이브’ 모델들에서는 철학적 지식들이 공간화 되어 있다. 추상적인 사고 형태가 공간적 형상화로 환원되는 동안 자신들의 성찰을 공간화 시킨다.Vgl. 김영룡(2015).
참고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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