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 요인과 그 적용
이민용(강원대)
I. 들어가며
우리는 예로부터 이야기를 통해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정보를 얻고, 즐거움을 느껴왔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를 통해 서로 아픔을 위로하며 마음의 문제들을 해결하곤 했다.
원시 시대나 고대는 물론이고 중세 때까지도 사람들은 지금의 어린 아이들처럼 대부분 글도 읽을 줄 몰랐고 축적된 지식도 많지 않았고 학문적 개념이나 방법론도 풍부하지 않았었다. 이 시기에는 현대의 아이들처럼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삶의 문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 인류가 삶의 문제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과 노하우는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으로 계속 축적되어 왔다. 원래 이렇게 치료적 능력이 있던 이야기였기에 이야기는 프로이트 이래로 상담치료에서 중요한 수단(매체)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이야기 자체로 전문적인 치료를 하는 방법들이 등장하였으니 내러티브 테라피, 스토리텔링 테라피, 이야기 치료가 바로 그것이다.1) 이렇게 치료와 치유에 기여를 해왔던 이야기를 전통적으로 제일 많이 다루는 분야가 문학이었고 이것에 관한 학문이 서사학이다. 그래서 서사학은 테라피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다.
지금도 “치료적 이야기는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삶 안에 있고,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2) 그래서 이러한 치료적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이론과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치유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상담학이나 사회복지학, 간호학 등에서 다루어왔지만,3) 이것들은 문학과 서사학의 바깥에서 접근한 연구들이다. 반면에 필자는 이야기를 서사학의 기반에서 치유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치료라는 이름으로 연구하여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토리텔링의 치료적 효과와4) 그것의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보았고,5)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연구했다.6)
이제 이 글에서는 스토리텔링 치료의 주요 치료 원리와 메커니즘에 관해 고찰해 볼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다음 제 II 장에서는 스토리텔링 치료의 이론적 근거에 관해서 살펴보고, 제 III 장에서는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적 원리 중에서 중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제 IV 장에서는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적 원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메커니즘에 관해 살펴보고 이것을 실제적인 치료 스토리텔링에서 확인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 V 장에서는 연구의 결과와 향후 방향에 대해 언급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할 것이다.
* 이 논문은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KRF - 2007 - 361 - AM0056).
1) ‘내러티브 테라피 Narrative Therapy’는 호주의 마이클 화이트 Michel White와 데이비드 엡스톤 David Epston 등에 의해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주창되어 우리나라에 ‘이야기 치료’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내러티브 테라피’와 ‘이야기 치료’의 개념이 완전 동일하지 않고 차별적인 것으로 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스토리텔링 치료’는 필자가 처음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2) G. W. 번즈 (편저) / 김춘경ㆍ배선윤 (공역): 『이야기로 치유하기 -치료적 은유 활용 사례집』, 학지사, 2011, 25쪽.
3) 상담학에서의 연구는 양유성ㆍ박종수ㆍ김춘경의 연구가 있고, 사회복지학에서의 연구는고미영의 연구가 두드러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본 논문의 참고문헌 참고.
4) 「이야기와 스토리텔링의 치유적 기능」, 『독일언어문학』제43집, 2009. 3., 225-242쪽.
5) 「인문치료와 이야기치료 - 『천일야화』를 중심으로」, 『뷔히너와 현대문학』제32호, 2009.5., 259-284쪽. ; 「인문학의 치유적 활용과 스토리텔링 - 게르만신화를 예로 하여」, 『독일언어문학』제41집, 2008. 9., 135-158쪽.
6) 「서사와 서사학의 치유적 활용」, 『독일언어문학』, 2010. 3., 247-268쪽. ; 「이야기 해석학과 이야기 치료」, 『헤세연구』, 2010. 6., 249-273쪽.
II. 스토리텔링 치료의 근거
앞에서 스토리텔링이 역사적으로 줄곧 치유적 힘을 가지고 있었고 현대에 와서 스토리텔링 치료로 발전할 수 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러한 스토리텔링 치료가 가능하고 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근거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을까?
그 근거는 우선 『시간과 이야기』3부작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 Paul Ricoeur의 철학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7) 우리들은 자신의 삶을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여러 사건들을 만들고 체험해 가는 한편의 스토리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내면에 자기 스토리(self story)를 마련하고 그 이야기들을 전개시켜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로써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을 규정하기도 한다. 리쾨르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유지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스토리텔링은 ‘뮈토스 mythos’ 즉 플롯 plot을 핵심으로 하는데,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파편적인 나열 속에 있는 시간과 그속의 사건들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연결시켜주는 성질이 있어서 스토리를 내면에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을 제공한다.
스토리텔링에서 뮈토스 “이것은 흩어져 있는 복합적인 사건들을 함께 파악하여 하나의 완전한 전체 스토리로 통합해낸다. 그리고 이로써 이야기 전반에 수반된 이해 가능한 의미를 체계화 한다.”8)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기존의 이야기 정체성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게 되고 이것이 스토리텔링 치료가 가능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한편 스토리텔링이 치유적 힘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내면에 갖고 있는 억압되어 있는 욕망, 원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욕망, 그래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욕망들을 스토리텔링 속 인물을 통해 경험하고 해소할 수 있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9) 우리가 이야기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야기 속의 인물을 통해 자신의 소망과 욕망이 실현되는 느낌을 좋아하고 거기서 어떤 만족감과 위안, 용기, 깨달음을 얻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르네 지라르는 ‘욕망의 삼각형 이론’을 펼치면서, 독자가『돈키호테』를 읽는다는 것은 이를 통해 자신의 나르시즘을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한국의 드라마 <겨울연가>를 시청한 후 한국에까지 찾아와 그 감동의 여운을 마음 속 깊이 느끼려 한 것은 각박한 현대의 현실 속에서 쉽게 이루기 힘든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이 스토리텔링 작품 속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서 간접적으로 해소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스토리텔링 치료의 근거가 뇌과학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상상할 때와 직접 사물을 관찰할 때 사용하는 뇌 기관은 비슷하고 어떤 동작에 대해 상상했을 때 뇌에서 적용되는 부분도 실제 그 동작을 취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과 겹친다. 바로 이것이 정신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10)
그래서 상상의 것으로 현실에서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으로 그려진 상상의 구조물은 현실의 것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은 현실과 유사한 이미지와 감정을 우리의 뇌에서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현실의 그것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마음: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에서는 일본의 여자 세계 마라톤 선수권 대회 우승자, 역도와 유도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수상한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경기 준비에서 경기 상황, 우승 후의 금메달 수상 장면까지 이미지 트레이닝하여 실제로도 우승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고, 상상으로 의자를 들어 올리는 훈련만으로도 실제 팔의 근육이 강화된 연구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상상의 스토리텔링, 즉 스토리텔링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의료계에서 이미 많이 증명된 위약(僞藥) 효과, 즉 긍정적인 플라시보 효과 (placebo effect)와 부정적인 노시보 효과 (nocebo effect)와도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고, 교육심리학에서 연구된 로젠탈 효과 (Rosenthal effects)로도11) 증명된다. 또 덩치 큰 코끼리가 작은 말뚝에 묶인 상태에서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기 코끼리가 말뚝에 묶였을 때 머리 속에 박혔던, 도망갈 수 없다는 생각의 족쇄가 덩치가 엄청나게 커진 어른 코끼리에게도 실제 행동의 족쇄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상상의 스토리텔링으로 된 행동의 한계를 코끼리의 뇌에 심어둔 것이기 때문이다. 용맹한 개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려서 훈련시킬 때부터 절대 때려서는 안 되고 그래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 자체를 모르게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도 뇌에 심어진 스토리의 힘을 현실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상의 힘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분야가 문학과 예술이고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현실을 구체적으로 모방하여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두뇌의 해마에 있는 기억 세포를 통해서 기억 활동을 하는데, 이때 의미 있는 기억들을 연결해서 의미와 가치를 찾도록 할 수 있다. 그리고 영상이나 행동, 글로 표현된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뇌에 있는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의 활동을 통해 모델링의 기능을 해서 의미 있는 모델을 공감하고 영향 받을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 작품을 통해 우리가 공감하고 모방하고 그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뇌에 있는 이 거울신경 세포의 활동 때문이라는 것이다.12)
7) 이야기 치료의 근거가 되는 리쾨르의 철학은 다음과 같다.
Ricoeur, Paul: Time and Narrative, Volume 1, translated by Kathleen McLaughlin and David Pellauer, Chicago and London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1983].
Ricoeur, Paul: Time and Narrative, Volume 3, translated by Kathleen Blamey and David Pellauer, Chicago and London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8)[1985].
윤성우:『폴 리쾨르의 철학』, 철학의 현실사, 2004. ; 김선하:『리쾨르의 주체와 이야기』,한국학술정보(주), 2007.
그리고 이에 대해 필자는 리쾨르의 이야기 해석학의 관점에서 연구한 바 있다: 「이야기 해석학과 이야기 치료」(『헤세연구』, 2010. 6., 249-273쪽).
8) Paul Ricoeur, (1984)[1983] Time and Narrative, Volume 1, translated by Kathleen McLaughlin and David Pellauer, Chicago and London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 x.
9) 최예정ㆍ김성룡 공저: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 도서출판 글누림, 2005, 144-147쪽.
10) 이영돈: 『마음 :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예담, 2006, 345쪽.
11) 혹은 피그말리온 효과 (Pygmalion effects)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타인의 관심과 기대에 따라 자신의 성과가 좋아진다는 이론이다. 교육심리학에서 교사의 기대와 관심에 따라 학생의 성적이 향상될 수 있다는 연구 내용이 로젠탈 효과이다. 임의적으로 학생 집단을 선정해 지능지수가 좋다고 통보했더니 그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는 연구에 근거한 이론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그리스신화에서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을 사랑하고 극진하게 대하자 아프로디테 여인이 도와주어서 그 조각상이 실제로 여인 갈라테이아로 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12) 요아함 바우어 / 이미옥 (옮김): 『공감의 심리학』, 에코리브르, 2006, 25-47쪽.
III. 스토리텔링 치료의 원리 혹은 치료적 요인
필자는 앞선 연구에서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중요한 서사의 구성 요소들을 밝히고, 그것들이 문제적 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양상에 대해 연구했다.13) 이 글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스토리텔링 치료의 근거 위에서 이것들이 구체적으로 치료 효과를 어떻게 발휘하게 되는지, 그 치료 원리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떻게 치료 원리로 실현되는지 그 양상을 연구하기로 한다.
13) 「서사와 서사학의 치유적 활용」, 『독일언어문학』, 2010. 3., 247-268쪽.
1. 동일화/동일시(Identification)
스토리텔링이 치료적 효과를 발휘하는 원리는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원리들은 일반 심리상담치료나 문학치료, 예술치료, 인문치료등에서도 확인되는 공통의 어떤 것도 있고, 스토리텔링 치료에 고유한 것들도 있다. 이러한 것들 중의 하나로 우선 이야기 수용자가 이야기 속 내용과 자신의 상황을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심리적 유대감을 느끼는 ‘동일시’ 혹은 ‘동일화’의 원리’를 들 수 있다.
동일시는 독자나 청자ㆍ시청자ㆍ관객이 이야기 속 인물ㆍ사건ㆍ상황에 감정이입 하고 몰입하는 과정을 통해서 많이 이루어진다.
허재홍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일시란 다른 사람의 일부를 자기 내면에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로 인해 내 자신이 받아들인 외부인물과 유사해지는 것을 말한다.”14)
보통 개인상담 심리치료에서 동일시는 내담자가 치료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하지만, 집단상담에서는 동일시의 대상이 치료자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원이 되기도 한다. 치료 초기에 치료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이것은 치료자의 따스하고 수용적인 태도와 함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실증연구에서도 동일시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일관되게 나온다.15)
이런 동일시를 통해 내담자들은 자신의 잘못된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받아 들인다. 그리고 쉽게 치료자와 치료적 내용에 라포가 형성되고 공감할 수 있으며, 마음의 위로나 위안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욕망이 대리만족되고 해소될 수도 있으며, 주인공의 해결책을 더 쉽게 수용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다른 치료 원리가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동일시는 이렇게 실제 치료자나 집단상담 참석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 속의 인물과 상황에서 느끼는 동일시가 더 중요하다. 스토리텔링을 접하면서 우리는 스토리 속의 인물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생물체라는 점에서 동일시할 수 있는 기본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그 인물이 자신과 비슷한 인물일 경우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등을 쉽게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거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는 감정을 나누게 된다. 그럼으로써 주인공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느껴지고 주인공의 성공과 실패가 자신의 그것으로 느껴진다. 이를 통해 감정이입과 동병상련의 느낌, 대리만족의 느낌 등이 가능하다.
스토리에는 인물이 있어서 논증, 설명, 묘사에서와는 달리 우리는 쉽게 스토리의 주인공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동일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인물이 비슷한 여건에서 비슷한 사건을 경험해 갈 때 그 스토리를 접하는 독자나 청자, 관객은 그 내용에 관심을 쏟고 감정을 기울이게 되면서 자신을 스토리 속으로 몰입시키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스토리 속의 인물과 상황과 일치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문제들을 스토리 속 인물의 그것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것은 내담자의 감정 상태와 비슷한 정조의 음악이나 시등으로 치료하는 요법으로서, 음악치료에서 비롯되어 문학치료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동류 요법의 원칙(Iso-Prinzip)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16)
한편 ‘동일화’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차원에서 이야기 수용자의 인물ㆍ사건ㆍ시간ㆍ공간 등에 맞게 스토리텔링의 요소를 비슷하게 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동일시의 원리를 잘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의 인물이 독자나 청자ㆍ청중ㆍ시청자ㆍ관객과 나이나 상황, 성격, 이해 등에서 코드가 서로 잘맞을 필요가 있다.
즉, 동일화가 필요하다.
도리스 브렛 Doris Brett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야뇨증, 따돌림, 불안 등을 치료하는 이야기를 만들 때에 나이, 성별, 가족 관계 등의 면에서 스토리텔링 속 인물을 이야기 수용자와 비슷하게 일치시키고 있다.17)
이때 동일시는 인물뿐만 아니라 사건, 모티프, 시공간의 배경 및 분위기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확한 동일화가 오히려 스토리텔링의 장점인 내담자가 갖는 안도감과 편안함을 해칠 수도 있다.
정확한 일치를 통한 동일시보다는 비슷한 수준의 동일화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을 것이다.
14) 허재홍: 「심리치료의 치료요인과 인문치료 방법론」, 『인문치료』, 강원대학교 인문치료 사업단 2009, 231쪽.
15) 위의 책, 231f쪽.
16) Jack J. Leedy: Prinzipien der Poesietherapie. in: Hilarion G. Petzold, /Ilse Orth (Hgg.): Poesie und Therapie. Über die Heilkraft der Sprache, Bielefeld und Locarno: Aisthesis Verlag, 2005, S. 243f.
17) 도리스 브렛 / 김인옥 (옮김): 『은유적 이야기치료』, 여문각, 2009, 42쪽.
2. 카타르시스(Catharsis) 혹은 감정 표출(ventilation)
카타르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시학 Poetica』에서18) 비극의 원리나 효과로 강조한 이후 오랫동안 논의되었던 스토리텔링 효과의 원리이자 효과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치료적 베이스에서 다른 치료 요인과 연계되어 작용하면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 요인이 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스토리텔링 작품에서 우리는 내면의 감정이 다 배출되고 해소되면서 정화되는 느낌을 가끔 갖는다. 스토리텔링 작품을 접하며 같이 울고 웃고 애통해하는 사이에 증오, 분노, 억울함, 복수심, 슬픔 등의 감정이 해소되고 정화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찍이 카타르시스의 이런 효과는 프로이트의 친구 브로이어가 주도하고 프로이트도 잘 알고 있었던 안나 오(O.) 양의 치료 사례에서 “굴뚝 청소 효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19)
카타르시스는 앞서 말한 동일시 원리와도 연계되어 주인공의 죽음이나 비극 등을 접하면서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카타르시스가 치료 원리로서 그 효과를 충분히 보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는 편이다. 단독으로 치료 원리의 기능을 한다기보다는 보조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20) 그래서 카타르시스는 감정의 정화에 이어 인식의 변화, 신념의 변화와 같은 치료적 변화가 동일화, 일반화, 객관화, 통찰 등의 다른 치료원리들로 이어졌을 때 확실한 치료 원리로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위해서는 특히 인물, 사건, 모티프, 시점, 관점 등이 동일화ㆍ동일시 요인의 작용을 유도해서 스토리텔링의 내용에 몰입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처럼 시점이나 관점 등에서 관객에게 생소화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해서는 안 된다.
18) 아리스토텔레스:『시학』제6장, 1449b20 - 1450b20.
19) Josef Breuer and Sigmund Freud, Studies on Hysteria,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Translated from the German under the General Editionship of James Strachey, In Collaboration with Anna Freud, Volume II(1893-1895), London : The Hogarth Press and The Institute of Psycho-Analysis 1957, p.29.
20) 허재홍: 위의 책, 229f쪽.
3. 일반화(Universalising)와 상대화(Relativization)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일반화(보편화)의 원리는 자신의 상황적ㆍ심리적 문제가 오직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어 그 문제에 빠져 심리적 고통에 휩싸여 있는 내담자에게, 그 문제가 내담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도 비슷하게 고민하고 있거나, 고민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킴으로써, 내담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 문제가 치명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감과 위안을 느끼게 하고, 그 문제에 물들지 않은 자신의 다른 건강한 심리적 자원에 눈을 돌려 그것으로써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화의 원리는 내담자의 문제를 내담자 자신과 분리시켜 객관화시키는 데에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상대화(relativization, takingeasy)도 가능하다. 심리적 문제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가 바로 문제’라는 사실을 환기시킴으로써 사람 안에서 치료의 자원을 끌어오기 위해 꼭 필요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허재홍은 이것을 ‘보편성’이라고 규정하고 “여러 실증 연구에서 보편성은 매우 중요한 치료 요인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으나 이들 연구의 방법론상 문제로 아직 치료성과에 도움이 된다고 확실히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라고 말한다.21) 그러나 적어도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를 그에게서 분리해서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반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치료의 출발이라고 할 것이다.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일반화는 스토리텔링의 고유한 특성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상상력에 의한 수많은 인물과 사건, 모티프, 문제적 사건들을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내담자가 안고 있는 문제와 비슷한 내용의 스토리를 그와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제공하면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일반화함으로써 궁지에 빠져 문제에 스스로 짓눌려 있던 심리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샤리야르 왕이 왕비의 불륜을 보고 느낀 수치심과 분노 때문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그 나라의 무고한 처녀들을 욕보이고 죽이는 것으로 풀었던 심리적 병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샤라자드가 천하룻밤 동안 해준 이야기에 자신과 비슷한 일을 당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왕은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일반화함으로써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여 무고한 처녀들에 대한 복수만을 외곬으로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과 비슷한 일을 당한 수많은 남자들의 경우에도 눈을 돌려 그 문제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22)
물론 이 일반화는 요즘 치료 방법으로 큰 세력을 얻고 있는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의 메타이론에서 그 핵심 세 원리로서 일반화, 삭제, 왜곡이 잘못되었을 때 의사소통이나 현실인식에 문제가 생긴다고 -- 『천일야화』의 샤리야르 왕도 왕비 한 사람의 음탕함과 배신을 일반 처녀들 모두의 그것으로 일반화해서 무고한 처녀들을 죽인다. 잘못된 일반화를 한 셈이다-- 지적하는 것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졌을 때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희석화시켜서 문제가 문제인 이유를 망각하게 할 수도 있어서 해결책을 무망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치료에서도 치료자 본연의 촉매 역할이나 조종 역할이 적절히 필요할 것이다.
이 일반화의 요인이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잘 이루어지게 하려면 우선 스토리텔링의 서사 요소 중에서도 사건과 일부 모티프 등이 동일화의 요인을 잘 작동시키도록,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문제적 사건 및 모티프와 비슷하게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샤리야르 왕에게 배우자의 간통과 배신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달되어야지, 재산 문제로 형제 간에 갈등이 빚어지는 사건에 탐욕과 복수, 파멸의 모티프가 엮인 이야기를 전달하면 치료적 효과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화의 요인이 진정한 치료 요인으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인물과 일부 모티프의 구성에서 동일화의 원리를 벗어나 다른 해결책을 마련한 인물과 다른 해결책으로 나아가는 모티프로 구성된 이야기를 전달하고 객관화, 모델링, 통찰 등의 치료 요인과 연계되도록 하는 것도 한편으로 필요하다.
21) 위의 책, 233쪽.
22) 이 효과는 샤리야르 왕의 동생 샤자만 왕에게서 먼저 확인된다. 그는 자신의 왕비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남녀를 죽인 후 형의 나라로 가서도 크게 상심하여 식음을 전폐하며 중병에 걸린 것처럼 힘들었으나, 자신보다 뛰어난 형님도 형수로부터 배신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는 심리적 고통에서 많이 벗어나게 된다. 이 경우는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효과를 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진 효과라는 면에서 이 일반화 원리는 현실과 테라피 모두에 적용되는 치료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4. 객관화(Objectification, Objectifying)
객관화의 원리는 앞서 얘기한 동일시의 원리와는 대비되는 것으로서 문제를 객관화시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보편화와도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와 스토리 속의 문제를 비교하면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볼 기회를 갖는다. 이러한 객관화를 통해 통찰을 얻을 수 있고 문제의 해결책을 객관적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이러한 객관화의 원리를 실현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우선 인칭을 변화시킴으로써 객관화를 얻을 수 있다. 일인칭 주인공의 문제로 표현된 것을 2인칭 상대방의 문제나 삼인칭 제삼자의 문제로 표현해보면 자신의 문제가 객관화되어 보이게 된다. 이것은 시점 및 관점과도 연관된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문제를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면 문제가 훨씬 더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다. 관점도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좁은 시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넓게 조감하는 관점으로 보거나, 지금까지 보아 오던 방향과는 달리 문제의 옆이나 뒤의 다른 방향에서 보는 관점으로 보면 심리적 문제가 훨씬 객관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것은 거리의 치유적 변용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바로 코앞에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저 먼 곳의 문제로 상대화시켜서 보았을 때 훨씬 객관적으로 문제가 보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용을 통해서도 객관화의 원리를 실현시킬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심리적 문제를 현재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문제, 미래의 문제로 옮겨서 객관화시킬 수도 있고, 여기의 문제가 아닌 다른 곳의 문제로 옮겨서 생각할 수 있으며 이곳의 문제를 다른 곳에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담은 스토리를 말, 그림, 몸짓, 영화, 만화 등의 여러 스토리텔링 매체로 표현하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렇게 객관화 원리는 스토리텔링 요소의 치유적 변용을 통해 원래의 것에서 다른 것으로 바꾸어보고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객관화는 이렇게 변화된 인칭, 시점, 관점, 거리감 등의 스토리를 놓고 내담자와 치료자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얻어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브레히트의 서사극에서 시점이나 관점 등에서 관객에게 생소화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은 스토리텔링 치료에서도 매체표현의 측면뿐만 아니라 기법 면에서도 고려의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5. 추체험과 대리 학습(vicarious learning)
우리는 마음의 문제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쩔쩔매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의 고통을 야기하는 문제를 실제로 어떻게든 경험해보면 해결책이 떠오를 수 있는 경우에도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특히 소년기나 청소년기, 청년기에 많이 고민하는 발달 단계의 심리적 문제들은 더욱 그렇다. 인간은 몸을 지닌 존재로서 몸에 갇혀 있고, 시간적ㆍ공간적 한계를 지니고 사는 운명이다. 인간은 하나의 인생을 한 번밖에 살 수 없다. 그래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인물들을 통해 대신 경험하고 대리 학습함으로써 심리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다.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이야기를 필요로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사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스토리텔링 치료의 근거를 발견하고 스토리텔링 치료의 길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대표적인 것이 사랑의 문제이다. 사랑과 결혼은 인생이 걸린 문제이고 삶의 행복을 좌우하는 큰 문제이다. 우리는 이것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전통적으로, 개인적으로는 소년소녀 시절부터, 추체험하며 대리학습을 해왔다.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중요한 것이 사랑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마음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있는 것 중에서 찾아서 제공하거나, 맞춤식으로 만들어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리 학습은 스토리텔링 치료가 아닌 일반 심리상담치료에서도 치료사나 집단상담 중의 동료 내담자가 자신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해결책을 찾는 것을 보고 내담자가 그것을 자신의 문제에 적용하여 그 문제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많다. 스토리텔링 치료는 이러한 원리를 스토리텔링 요소의 치유적 활용으로 실현시켜 수많은 스토리텔링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대안 제시(suggestion for an alternative) 혹은 해결책의 모델링(Modelling)
스토리텔링을 통해 구체적으로 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안이 제공될 수도 있다. 대리학습이 스토리텔링에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행위라면, 대안 제시는 치료적 대안이 치료자나 이야기 서술자에 의해 스토리텔링 속에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을 말한다.
심리적 문제를 안고서 그 해결책을 모르는 내담자에게 해결책을 비유적으로 담은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다. 고구려의 감옥에 투옥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 고민에 빠진 신라의 사신 김춘추에게 그 해결책을 넌지시 토끼와 거북이의 동물 우화로 알려준 고구려 관리 선도해의 스토리텔링이 그 한 예이다.23)
이것은 창의적 이야기로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도리스 브렛 Doris Brett의 경우에서도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24) 이러한 경우들은 해결책을 모델로 제시해서 그것을 모방하고 창의적으로 변형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델링이 치유적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은 심리학자 코르시니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25)
일반적으로 치료적 이야기에서 공식처럼 제시되는 긍정적인 결말 제시도, 구체적인 대안 제시까지는 아니지만, 이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담자는 치료자의 상담 인도나 치료의 이론이 주는 희망에 근거해서, 그리고 다른 내담자가 나아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치료될 희망을 갖고 그 의지를 굳게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희망의 모델링은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에서 모두 중요한 치료원리로 작용할 수 있고, 치료의 조기 중단을 막는 원리이기도 하다. 이것은 개인상담보다는 집단상담에서 더욱 효과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치료에서는 스토리텔링 치료에 활용되는 이야기를 반드시 해피엔딩이나 희망을 고취하는 결말로 만듦으로써 내담자에게 치료될 희망을 고취하고 자발적 치료 의지를 강화하게 된다. 스토리텔링 치료 요소에서 플롯의 활용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3) 김부식:『삼국사기』제41권 열전 제1권 김유신 상. ; 김부식 (지음) / 성낙수 외(엮음):『삼국사기 열전』, 신원문화사, 2007, 14-18쪽.
24) 도리스 브렛 / 김인옥 (옮김): 앞의 책, 47쪽.
25) Corsini, Raymond J. & Wedding, Danny (edit): Current Psychotherapies, 8th edition, USA: Thomson Brooks/Cole 2008., p. 9.
7. 통찰(Insight)
통찰 혹은 깨달음 역시 일반 심리치료의 원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통찰이란 내담자가 자신의 행동이나 동기, 또는 무의식에 있던 것에 대하여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26)
내담자는 대개 개인상담에서는 상담자를 통해서, 집단상담에서는 상담자나 다른 집단상담의 참여자에게서 통찰을 얻고서 훈습을 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스토리텔링 치료에서는 내담자가 스토리텔링 치료를 하는 상담자나 거기에 참여하는 집단상담의 참여자에게서도 통찰을 얻지만, 스토리텔링 작품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서도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때 내담자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의도로 이에 적합한 스토리가 선택되거나 만들어져 제공된다.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에서 샤리야르 왕이 샤라자드가 천 하룻밤 동안 해준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행적에 대해 잘못을 깨닫고 무고한 처녀들을 욕보이고 죽이는 악행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이 통찰의 원리가 작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은 두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스토리텔링 작품 속 인물의 인칭, 시점, 관점, 거리 등을 통해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에 대한 시점, 관점, 거리감 등을 달리 하도록 유도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 내도록 하는 것이 그 하나라면, 상담자가 내담자의 자기 스토리를 분석해서 그 속의 인칭, 시점, 관점, 거리 등을 치료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플롯을 재구성하도록 상담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방향이다.
26) 허재홍: 위의 책, 229쪽.
IV. 스토리텔링 치료의 메커니즘과 실제
1. 스토리텔링 치료의 메커니즘
지금까지 스토리텔링 치료의 이론적 근거와 치료 요인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면 스토리텔링 치료가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이것은 스토리텔링 치료의 근거에 기초해서 그 원리나 치료적 요인을 실현시키는 방법, 즉 스토리텔링 치료의 원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요소를 치유적으로 실행시키는 방법으로, 내담자가 품고 있는 문제에 물든 내면의 스토리(I-story)를 건강한 대안적인 스토리(alternative story)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몇 단계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그 첫 단계는 내담자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단계이다. 여기서는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적 상황을 얘기하며 그 상황에 물든 자신의 내면의 스토리를 밝힌다.
둘째 단계는 치료자 주도의 상호적 스토리텔링(mutual storytelling) 혹은 리-스토리텔링(re-stroytelling)단계이다. 치료자는 내담자의 스토리텔링을 접하고 문제적 스토리를 해결할 새로운 스토리를 구상하며 스토리텔링을 주고받는다. 이 단계에서는 동일화와 카타르시스, 보편화, 객관화가 주된 치료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단계는 치료적 스토리텔링 모색의 단계로서 새롭고 건강한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 빌딩(story-building)의 단계이다. 여기서는 내담자의 스토리에서 문제된 서사 요소를 추출해서 서사 요소의 치유적 변용을 통해 건강한 서사 요소로 대체한다. 이때 스토리텔링 치료의 원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들을 변용시킨다. 플롯을 새롭게 구상하고 인칭, 모티프, 시점, 관점, 어조/논조/음조(tone) 등을 치유적으로 바꾼다. 이러한 작업은 일반화, 객관화, 대리학습, 대안제시, 통찰 등의 치료적 요인이 관철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담자 안에서 문제에 물들지 않은 내면의 다른 서사 요소와 자기 스토리를 찾는다.
넷째 단계는 대안적 스토리의 리텔링(retelling) 단계이다. 내담자의 문제적 내면 스토리를 치료적 대안 스토리로 대체하고 그것을 내담자에게 체계적 둔감법, 자기최면, 긍정적 자기 다짐의 혼잣말과 같은 여러 가지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심어준다. 여기서는 동일화, 대리학습, 통찰 등의 치료적 요인들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계들은 매 단계가 명시적으로 구분되지 않고 잠재적으로 진행되어 뚜렷한 겉보기 구분 없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일반적인 문학치료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방식, 즉 생산적 방식과 수용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27) 생산적 방식은 상담자 직접개입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내담자와 상담자가 표현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대안적 서사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스토리를 만들어 가면서 내담자가 기술하거나 구술한 것에 대해 내담자와 상담자의 상호작용속에서 내담자의 자기 스토리를 스토리텔링 요소의 적극적인 치유적 변용으로 건강한 대안적 스토리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이다.
반면에 수용적 방식은 상담자 간접 개입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내담자가 자발적으로 대안적 서사를 만들어가도록 치료자가 치료적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 방식이다. 내담자의 문제적 스토리에 대해 상담자가 스토리를 제공하는 방식에 따라 이것은 기성품 제공형과 맞춤 제작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주로 독서치료나 문학치료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기존의 민담이나 동화, 문학작품에 있는 이야기를 제공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치료적 스토리텔링의 경우에서 보듯이,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그 사람에게 적합한 치료적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들려주며 치료 작업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언급한 『천일야화』의 샤라자드와, 김춘추에게 <토끼의 간> 이야기를 들려준 선도해가 이미 자기가 들어서 알고 있는 기존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치료적 효과를 보았다면 전자의 경우에 해당되겠고, 손수 이야기를 맞춤형으로 만들어 들려준 것이라면 후자에 해당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토리텔링의 어느 요소를 치유적으로 활용하여 어떤 치료 원리를 실현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내담자의 상황과 문제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7) Hilarion G. Petzold / Ilse Orth (Hgg.): a. a. O. S. 27.
2. 치료 요인과 방식에서 본 스토리텔링 치료의 실제
앞에서 스토리텔링 치료의 원리와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이제 이것이 치료적 스토리텔링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 양상을 연구해보자. 스토리텔링 치료의 양상은 그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한 소녀 ‘아만다’의 경우를 상정하여 스토리텔링 치료의 시도를 제시하는, 호주의 임상심리학자 도리스 브렛 Doris Brett의 연구를28) 살펴보며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 원리와 메커니즘이 실현되는 양상을 구체적인 치료적 스토리텔링에서 연구해 보기로 한다.
스토리텔링 치료의 대상자로 선정된 소녀 아만다의 심리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두려움, 놀림 당함, 야뇨증, 강박증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어린 소녀 아만다는 엄마와 친숙한 가정을 떠나 낯선 유치원으로 들어가 낯선 애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는 유치원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고, 그 불안 때문에 고민하고 유치원 입학을 싫어한다. 그리고 밤에는 혼자 자기방에 가서 자기가 불안하다. 한편 아만다는 유치원에서 한 친구가 지속적으로 놀려서 괴로움을 당한다. 또한 그녀는 잠자다가 옷에 자주 오줌을 싸서 고민에 휩싸여 지낸다.
이런 상황에서 아만다에게 들려주는 치료적 이야기가 ‘안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는 안나가 아만다와 똑같이 두려움, 놀림 당함, 야뇨증, 강박증으로 고통을 받으며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안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심리적 문제들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밤에 잠잘 때 어둠 속에 괴물이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늘 불안하던 안나는 마법의 등으로 괴물을 제압하고 오히려 친구로 데리고 놀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어둠 속 괴물에 대한 공포를 불식시켜 나간다.
위와 같은 도리스 브렛의 치료적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 원리와 메커니즘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이러한 스토리텔링 치료의 핵심은 아만다가 안고 있는 심리적 문제들을 치료해주기 위하여 안나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치료적 이야기를 아만다에게 들려주며 치료적 대화를 함으로써 그녀가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적 이야기는 아만다가 안고 있는 심리적ㆍ상황적 문제들을 밝히고 그녀의 고통과 고민에 공감해 주며 그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들을 분석해주는 부분과, 그 문제에 대한 대안적 스토리를 마련하여 제시하는 부분으로 나뉜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치료적 스토리텔링의 전반부에서는 아만다의 괴물 공포증과 비슷한 안나의 심리적 문제를 서술하고 분석하며 그 문제에서 생긴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는 그녀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치료적 대안이 담긴 이야기가 제공된다.
우선 동일화/동일시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도리스 브렛의 치료적 이야기들인 ‘안나 이야기’ 중에서 유치원 불안증 치료 이야기는 처음에 그녀의 딸 아만다를 대상으로 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그녀는 동일화 원리가 작동되도록 고려하였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아만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이야기는 안나라는 작은 소녀에 관한 것이었다. 이야기속의 안나는 우리와 똑같은 집에서 살면서 우리처럼 개도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또한 남편과 나와 같은 아빠 엄마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안나 역시 유치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안나가 유치원에 처음 가는 날부터 시작되었는데, 안나는 유치원이 생각했던 것만큼 나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날이 갈수록 안나는 유치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마침내 그 주가 끝날 무렵 안나는 아주 재미있게 유치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29)
인물과 공간, 모티프, 사건의 동일화 원리가 배치되어 있고, 이야기 결말에 희망의 긍정적 모델이 잘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리스 브렛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동일화 요인을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의 설정과 묘사가 듣는 아동의 실제 환경과 매우 흡사할수록, 아동은 이야기의 메시지를 더 잘 받아들여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밝혀졌다.”30)
그런가 하면 다음의 언급에서는 모델링의 요인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모방할 대상으로 성공적인 모델과 성공적이지 못한 모델을 제시했을 때, 성공적인 모델을 모방한다는 것은 여러 연구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 기법은 아동들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하고 있다. 즉,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안나는 바로 성공적인 모델이며 따라서 그러한 안나의 성공을 모방하고자 하는 동기를 아이들에게 부여하는 것이다.”31)
28) 도리스 브렛 / 김인옥 (옮김): 『은유적 이야기치료』, 여문각, 2009, 127-158쪽.
29) 위의 책, 20쪽.
30) 위의 책, 24쪽.
V. 나가며
지금까지 스토리텔링 치료의 근거와 치료원리가 되는 요인들, 치료의 메커니즘을 살펴보고 치료적 스토리텔링에서 치료 원리의 요인들과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았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치료의 근거로는 스토리텔링이 스토리를 내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체성을 심어 주고 변화시켜주는 힘이 있어서 그 힘으로 치유적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내면에서 실현되기를 원하는 욕망들을 이야기의 인물과 사건 등에서 해소시켜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힘에 의해 치료적 효능을 가질 수 있음을 밝혔다. 또한 우리의 뇌는 현실의 것과 상상의 것을 따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 상상의 구조로서 제일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현실에서 치유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고, 그래서 여기서부터 스토리텔링 치료가 가능할 수 있음을 밝혔다.
한편 스토리텔링 치료가 이루어지는 원리로서 작용하는 주요 요인으로는 동일화/동일시, 카타르시스, 객관화, 보편화, 대리 학습, 모델링, 통찰 등의 치료적 요인들이 있음을 밝혔다.
내담자는 치료적 이야기를 접하는 과정에서 동일화를 통해 이야기 속 인물과 사건 등에 감정이입하고 공감함으로써 자신의 잘못된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치료적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증오심이나 분노ㆍ억울함ㆍ슬픔 등의 억눌린 감정들을 배출하고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과정을 거침으로써 치료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내담자는 치료적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자신에게만 치명적으로 심각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라는 보편화ㆍ상대화의 요인을 통해 치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내담자는 또한 치료적 이야기 속에서 대리 학습을 하고 긍정적 모델을 모방하고 통찰을 하게 되어 치료될 수 있다. 이러한 치료 요인들이 독자적으로 작동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야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 예컨대 동일화/동일시의 경우 독자적으로 치료 효과를 얻는 경우는 드물고 카타르시스, 보편화, 모델링, 통찰의 치료 요인과 함께 작용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마지막에 대리 학습과 모델링, 통찰의 치료 요인은 거의 필수적이다.
또 이러한 치료적 요인들이 서사 요소들과 함께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거에서 출발한 스토리텔링 치료가 치료적 스토리텔링 속에서 치료의 원리적 요인들과 치료적 메커니즘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키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원리적 요인들과 치료적 메커니즘은 필자가 앞선 연구들에서 밝힌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들, 즉 스토리의 핵심요소(등장인물과 모티프, 사건, 시간, 공간 등)와 서사 담화의 핵심 요소(플롯, 시점, 관점, 문체/어투, 시간 등) 그리고 매체의 핵심 요소들을 기본으로 해서 적용된다.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들이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적 원리 요인과 메커니즘을 통해 치료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스토리텔링 치료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스토리텔링의 구성 요소와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적 원리 및 메커니즘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치료 원리 중에는 심리치료에서도 인정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고유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이 원리들이 스토리텔링 치료에서 실현되는 메커니즘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었다. 지금까지 스토리텔링 치료의 치료적 요인과 메커니즘을 밝혔지만,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치료적 스토리텔링을 개발하고 이를 밑받침할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확충하는 연구가 앞으로 계속 축적되면 좋을 것이다.
31) 같은 쪽.
참고 문헌 -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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