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周易) 同人卦第十三
: 천화동인
동인괘는 밝음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 덕이 대유괘(大有卦)에는 미치지 못한다. 건상이하(乾上離下)
교(郊)와 야(野)는 같은 뜻인데, 동인(同人)을 야에서 하면 "형통하다"고 하고 동인을 교에서 하면 "후회가 없다"고만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동(同)에는 대동(大同)이라고할 때의 동도 있고 "구차히 함께하지 않는다(不苟同)"고 할 때의 동도 있어, 진실로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육이(六二)의 한 효(爻)는 괘체(卦體)로 말할 적에는 대동(大同)의 뜻이 있고 효의 뜻으로 말할 적에는 아부하고 편당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보였으며, 구오(九五)의 한 효는 단사(彖辭)와 상사(象辭)가 중직(中直)함과 중정(中正)함으로 응하는 것을 밝혔는데, 정전에서 "임금이 대동(大同)하는 도리는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장차 어느 것을 따라야 하겠는가?
(심진현(沈晉賢)이 대답하였다)
교(郊)와 야(野)는 다 같이 도시 밖에 있는 장소인데, 야자에 대해서는 "넓고 멀리 떨어진 곳이다(曠遠)"라고 풀이하고 교 자에 대해서는 "황폐하고 후미진 곳이다(荒僻)"라고 풀이하였습니다, 그러니 넓고 멀리 떨어진 곳은 그 같이함(同)에 있어 거리낌이 없는 것이고 황폐하고 후미진 곳은 그 같이함에 있어 응할 자가 없는 것이니, 그 점이 형통함과 후회가 없는 것의 차이입니다
육이(六二)의 상사(象辭)에서 아부하고 편당을 들어서는 안 되는 뜻으로 경계를 보인 것은 하나밖에 없는 음이 구오(九五)와 합쳐지기를 구하기 때문인데, 만약 괘체로 말한다면 다섯 양이 중정(中正)한 음 하나에게로 돌아가니, 그것이 대동(大同)이 되는 것입니다. 구오의 상(象)을 "대동하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한것은 같은 모든 양을 버리고 아래에 있는 음 하나에 응하기 때문인데, 만약 괘상(卦象)으로 말한다면 강한 양이 구오의 자리에 있어서 중정하고도 곧으니 그 점이 단사와 상사에서 찬양한 까닭입니다. 이는 진실로 역리(易理)가 서로 섞여 가며 변역(變易)하는 것으로서 그 이상 더 오묘함이 없습니다
동인(同人)의 내괘(內卦)는 이괘(離卦)인데 그 이괘는 건괘(乾卦)중에서 한 획이 변한 괘이니 이는 같은 데서 다른 데로 온 것(自同而異)이고 동인의 외괘(外卦)는 건괘인데 구오 한 효가 내려와서 내괘인 이괘의 음효(陰爻)와 응하니 이는 다른데서 같은 데로 간것(自異而同)입니다. 그리고 3.4두 효의 경우는 육이와 구오의 사이에 끼어서 위로도 따라가고 아래로도 따라 갈 수 있는 처지이기 때문에 구삼에서는 "숲속에 군사를 매복시킨 격이다"라고 하여 억지로 같음(同)을 구하려는 뜻이 있고 구사에서는 "담에 올라가서 공격해도 이기지 못하는 격이다"라고 하여 곤경에 처하자 반성의 뜻이 있으니, 이런 것을 가지고 연구해 보면 같고 같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선대 학자가 이르기를 "64괘는 이미 복희씨때에 갖추어졌으나 그 이름만 있었고 설명은 없었는데 문왕이 비로소 단사(彖辭)를 붙였으니 건(乾)자는 복희의 글이고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문왕의 글이다"라고 하였다. 진실로 그 말대로라면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履虎尾)"고 한 곳과 또는 "들에서 사람과 같이한다(同人于野)"고 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하여 배속시켜야 하는가?
(김계락이 대답하였다)
복희때에는 괘(卦)의 획만 있고 글은 없었는데 문왕이 비로소 설명을 붙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선대 학자들이 이미 자세히 논하였고 소자(邵子)의 선천도(先天圖)에 서도 설명하여 밝힌 바가 있습니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고 한것과 또는 "들에서 사람과 같이한다"고 한것에 이르러서는 다른 괘사(卦辭)에서 구분하여 말한 것과는 진실로 같지 않습니다. 대개 모든 괘 중에 혹 어떤 괘만을 말하면서 그 아래에 단사(彖辭)를 붙인 것도 있고 위 괘의 이름을 연관시켜서 그 괘의 뜻을 말한 경우도 있으나, 오직 이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고 한 것과 또는 "들에서 사람과 같이 한다"고 한 것만은 비괘(否卦)괘사에서 "비색할 때는 사람의 도가 없다(否之匪人)"고 한 것과 간괘(艮卦)괘사에서 "그 보이지 않는 등쪽에서 머무는 격이다(艮其背)"라고 한 것과 더불어 모두 다 위의 계사(繫辭)의 뜻을 연관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괘의 이름은 비록 복희씨의 시대에 나온 것이나 설명을 붙인 것은 문왕의 시대이니, 그 구분하여 배속시키는 것은 아마도 분변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이상 홍재전세 제101권,겨사강의,동인괘)
"건(乾)에 응한다"고 할때의 "건"에 대하여 程傳과 本義에서는 모두 구오(九五)를 가리킨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인괘(同人卦)는 이미 아래는 이(離)이고 위는 건(乾)으로 구성되었으니 경문(經文)에서 일컬은 "건"은 아마도 외괘(外卦)를 통틀어 가리킨 것 같은데, 정자와 주자는 반드시 구오(九五)만을 가리킨것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괘(離卦)에서 건(乾)에 응한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태(兌)가 건에 응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동인괘에서 건에 응한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구오만을 가리킨 것이라고 한 것은 과연 앞뒤가 안 맞는 것이 아닌가?
(한상신이 대답하였다)
단전(彖傳)에서 "유(柔)함이 정(正)을 얻었다"느니 "중(中)을 얻었다"느니 하는 것은 대개 육이(六二)를 가리킨 것인데,육이와의 상응(相應)은 구오(九五)입니다. 따라서 "건에 응한다"고 할때의 "乾"은 九五에만 해당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홍재전서105권)
단전(彖傳)에서 상(象)으로 취한 것 중에는 변체(變體),사체(似體),호체(互體),복체(伏體),반체(反體)가 있다. 예를 들면 소축괘(小畜卦)의 상구(上九)가 변하면 감(坎)이 되므로 비(雨)의 상을 취하였고, 이괘(頤卦)는 이괘(離卦)와 비슷하므로 거북의 상을 취하였고, 진괘(震卦)가 삼(三)에서 사(四)까지는 호괘(互卦)의 감(坎)이 되므로 마침내 빠진대는 말을 하였고, 동인괘(同人卦)의 하체(下體)이(離)에는 감(坎)이 잠복하여 있으므로 큰 강을 말하였고, 정괘(鼎卦)의 하체 손(巽)은 태(兌)를 뒤집은 것이므로 첩을 구한다는 말을 한것인데, 64괘에 이 의의(意義)가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그리고 육효(六爻)는 처음에는 꼭대기까지가 여섯인데,이를 삼재(三才)로 말하면 처음의 두 효는 지(地)가 되고 중간의 두 효는 인(人)이 되고 위의 두효는 천(天)이 된다. 또는 한 효를 한 래로 보기도 하고 한 효를 한 달이나 하루로 보기도 하고, 한 효를 한 사람과 한 물건으로 보기도 하여 괘마다 상을 취하는 것이 자연 같지가 않으니 여기에는 반드시 성인(聖人)이 효를 만들고 상을 취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도는 괘를 차례로 열거하면서 자세히 말하여 줄 수 있겠는가?
(안석임이 대답하였다)
괘사와 효사에서 상을 취한 것이 각각 같지 않음은 진실로 성상(聖上)의 하교와 같습니다. 그러나 삼가 생각하여 보면 이 세상의 지극히 복잡하고 변동하는 것들도 모두 괘효(卦爻)의 상이 되는 대상이니, 그 상으로 말하면 한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다만 그 한두 가지만을 취하여 괘사와 효사에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이 유추(類推)하여 넓혀 가게 한 것입니다
그 깊은 뜻에 대하여서야 신의 얕은 식견으로는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홍재선서 제106권 경사강의,역경)
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貞. 남과 함께 하는데 들에서 하면 형통할것이니
대천을 건너 가는 것이 이로우며 군자가 정한 것이 이롭다
彖曰, “同人”, 柔得位得中而應乎乾, 曰同人. 단에 이르기를 "동인은 柔가 正位를 얻었고
中을 얻어 乾에 응하므로 同人이라 한것이다"
同人曰“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乾行也. "남과 함께 하는데 들에서 하면 형통할 것이니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는 것은 건의 행실이요
文明以健, 中正而應, 君子正也. 문명하고 강건하며 중정한 道로 응하는 것은 군자의 正道이니
唯君子爲能通天下之志. 오직 군자만이 온 천하의 뜻에 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능히 천하의 일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象曰, 天與火, 同人, 君子以類族辨物. 상에 이르기를 "하늘과 불은 同人이니,
군자는 이로써 족속을 유별하고 사물을 구별한다"
<하늘은 위에 있고 불의 본성은 불꽃을 일으키며 위로 타오르는 것이므로 하늘과 불은 동류(同類)라는 뜻이다>
<하늘은 불과 그 성(性)은 같으나 그 질(質)은 다르다.군자가 그 성의 같음을 본받으면 그 족(族)을 나누고,그 질의 다름을 본받으면 그 사물을 분변한다.족을 나누고 사물을 분변하는 것은 다름을 살펴서 한 종류로 되게 하는 것이니
같음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지산집)
初九, 同人于門, 无咎. 초구는 남과 함께 하되 문을 나가서 하니 허물이 없다
象曰, 出門同人, 又誰咎也! 상에 이르기를 "문을 나가서 남과 함께 함을 또
누가 허물하겠는가"
<程傳에 문을 나가 밖에서 남과 함께하면 이는 그 함께하는 바가 넓어서 치우치고 사적인 것이 없다,사람이 함께 할 때 후박(厚薄)과 친소(親疎)의 차이가 있으면 허물이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데,이미 편당하는 바가 없으니 누가 허물하겠는가"하였다>
<상에 이르기를 문을 나가서 남과 함께 절제하지 못한 탄식을 또한 누구를 허물하랴/순암선생문집> 程子의 傳과 朱子의 本義에서 허물이 돌아갈데가 없다(無所歸咎)는 말을 가지고 풀이하였으므로 순암선생과 서로 다르다>
六二, 同人于宗, 吝. 육이는 남과 함께하되 종당(宗黨)과 함께하니 부끄럽다
<양은 음이 종당으로 삼는 바이다.신하가 임금에 대해서나 자식이 아비에 대해서나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는 모두 양을 종당을 삼는 뜻이 있다>(지산집)
象曰, “同人于宗”, 吝道也. 상에 이르기를 宗黨끼리만 어울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道이다"
<종족(宗族)끼리만 어울림이니 인색하다.이는 음과 양이 응하는 것을 가지고 도리어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심(私心)으로 여긴 것입니다,그러나 승괘(升卦)의 초육에서는 위에 정응이 없으니 나아감이 사심이 아닌 것이다>
(홍재전서102권)
九三, 伏戎于莽, 구삼에 "군사를 덤불 속에 숨겨 두고
伏莽/복망 : 국경의 분쟁
升其高陵, 三歲不興. 높은 언덕을 올라가 감시를 하나 3년이 지나도록
손을 쓰지 못하도다"
<융(戎)은 이(離)의 과병(戈兵)상이고,망(莽/우거지다)은 손(巽)의 초목(草木)상이다.이효부터 사효까지는 손(巽)이 되는데,이(離)가 손(巽)의 아래에 있으니 풀 속에 병사가 숨어 있는 복융우망(伏戎于莽)의 상이 있는 것이다.고(高)는 손(巽)의 상이다.쌍호 호씨가 말하기를,"구삼이 변하면 간(艮)이 되는 바 능(陵)의 상이 있다,구삼은 한 괘의 상효자리에 있으니 승(升)의 상이 있는 것이다"하였다
삼세(三歲)에 대해서 쌍호 호씨는 한 효를 일 년으로 보았다.불흥(不興)은 손(巽)의 복(伏)상을 취한 것이다>(지산집)
象曰, “伏戎于莽”, 敵剛也, 상에 이르기를 " 병사를 숲속에 숨겨두는 것은
적이 강하기 때문이다"
“三歲不興”, 安行也? "3년이 되도록 일어나지 못하니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九四, 乘其墉, 弗克攻, 吉. 구사는 담에 올라가나 공격하지 못하니 길하다
象曰, “乘其墉”, 義弗克也, 상에 이르기를 "담에 올라간다"는 것은 올라가려는
뜻을 이기지 못함이요(결국 못 올라간다)
其“吉”, 則困而反則也. 그 "길하다"는 것은 곧 곤궁하여 법칙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九五, 同人, 先號咷, 而後笑, 大師克 相遇 구오는 남과 함께하되 먼저는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웃으니 큰 병력으로 이겨야 서로 만난다
<협동하여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오는 즐거움을 말한다>
號咷/호도 : 울부짖는다
象曰, 同人之先, 以中直也, 상에 이르기를 "동인에서 먼저 울부짖는 것은
중심이 곧기 때문이요
大師相遇, 言相克也. 큰 군사로 서로 만남은 서로 이겨야 함을 말한다
上九, 同人于郊, 无悔. 상구는 남과 함께하기를 교외에서 한다.후회가 없다
<교(郊)는 오효가 바로 임금이 있는 것인데,상효는 오효의 바깥에 있으니 교(郊)의 상이 있는 것이다.도성(國)바깥을 교(郊)라고 한다>(지산집)
象曰, “同人于郊”, 志未得也. 상에 이르기를 "남과 함께하기를 교외에서 한다"는 것은
뜻을 아직 얻지 못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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