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周易) 大畜卦第二十六
: 산천대축
선대 학자의 말에 의하면 "축(畜)에는 세가지 뜻이 있는데, 온축(蘊畜)이라 한 것은 덕(德)을 쌓는다는 말이고, 축양(畜養)이라고 한것은 어진 이를 기른다는 말이고, 축지(畜止)라고 한것은 강건(剛健)함을 중지시킨다는 말이다 강건하고 독실함은 온축의 큰것이고, 어진이를 숭상함은 축양의 큰것이고 강건함을 중지시킴은 축지의 큰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단전(彖傳)을 고찰해 보면 그 뜻이 명백하다. 그러나 程傳과 本義의 여러 설명은 다만 蘊蓄과 蓄止의 측면으로만 주로 논의하였고 蓄養의 뜻에는 약간 소략한 것 같은데 그것은 어째서인가? (이익진(李翼晉)이 대답하였다) 이 괘가 蓄이 된 의의는 象으로 말하면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되므로 지극히 큰 것을 축적하는 뜻이 되며, 덕(德)으로 말하면 지극히 강건(剛健)함을 중지시키는 것이니, 지극히 올바름을 축적하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이를 나누어 말하면 축양(蓄養)과 축지(蓄止)와 온축(蘊蓄)의 항목이 있으나 합하여 말하면 "어진 이를 숭상한다"고 하는 것과 "어진 이를 기른다"고 하는 것도 모두 덕을 축적하는 일 중의 한가지이며, 온덕(蘊德)이니 축덕(蓄德)이니 하는 것도 축지(蓄止)가운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축(蓄)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고 한 것은 정여해(鄭汝該)의 주석에 나오는 말인데, 비록 단전(彖傳)을 조목별로 풀이하려는 뜻에 근본한 것이기는 하나 사실은 하나의 축(蓄)자의 뜻일 뿐입니다. 程傳이나 本義의 해석이 상세하기도 하고 소략하기도 한 것과 괘와 효의 개념이 때에 따라 의의가 성립된 까닭은 그 분명하고 비근한 것만을 취하여 지극히 크고 지극히 온축된 오묘함을 나타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홍재전서 제102권 경사강의 대축괘) 축에는 축지를 받아들여 스스로 멈추는 것도 있고 상대를 축지시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고 서로를 축지시키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것도 있는데 이를 다 차근 차근 지적하여 분명하게 말해 줄수 있는가? 구이(구이)에서 "수레의 복토(복토/수레 상자와 굴대의 연결목)가 빠졌다"고 한 것과 구삼에서 "좋은 말로 쫒아감이다"한것과 육사에서 "송아지 뿔에 빗장 나무를 묶음이다"한것과 육오에서 "불깐돼지의 어금니이다"라고 한 것의 상에는 각각 뜻이 있고 그 뜻에는 각각 취한 것이 있을 것인데, 수레가 어찌하여 구이에 속하며 말이 어찌하여 구삼에 속하는가? 초기에 견제해야 하는 물건으로는 어찌 송아지만 그러하며, 악을 막는 것의 중요함을 어찌 반드시 불깐 돼지에 비유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한다 (윤행임(尹行恁)이 대답하였다) 축지를 받아들여 스스로 멈춘다는 것은 초구가 육사에 대해서 그러한 것이고 상대를 축지시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육오가 구이에 대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서로를 축지시키지 않고 함께 나아간 것은 구삼이 상구에 대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대개 초구는 비록 육사와 상응관계이기는 하지만 육사는 자기를 억제시키는 것이므로, 축지를 받아들여 스스로 멈춘다고 한것은 초구를 가리킨 것입니다. 육오는 윗자리에 있으면서 구이를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상대를 축지시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한것은 육오를 가리킨 것입니다. 구삼은 지극히 강한 자리에 있고 상구는 축(蓄)의 마지막에 있으면서 서로를 축지시키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것이므로 서로를 축지시키지 않고 함께 나아간다고 한 것은 구삼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를 종합하여 말하면 상괘의 세 효는 간(艮)으로서 축지를 하게 하는 자이고 하괘의 세효는 건으로서 축지를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구이가 육오에게 축지를 당하여 나아갈 수 없으니 이는 마치 수레의 바퀴살이 벗겨져서 나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고 구삼은 상구의 구하는 바가 되어서 위로 나아가려고 하니 마치 말이 달려가는 것과 같아서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소의 강한 힘은 뿔에 있는데 송아지를 예로 든 이유는 아마 초구의 양은 기르기가 쉬움을 말한 때문일 것이고 돼지의 맹렬한 힘은 어금니에 있는데 불깐 돼지를 예로 든 것은 아마 구이의 강함은 견제하기가 어려움을 말한 때문일 것입니다 구이에서 수레의 상을 취한 이유는 나무로 수레를 만들고 나무는 강한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양효에서 수레로 비유를 한 경우로는 소축괘의 구삼에서 '수레의 바퀴통이 빠졌다"고 한것과 대유괘의 구이에서 "큰 수레에 싣는다"고 한것과 비괘(賁卦)의 초구에서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고 한것과 곤괘(困卦)구사에서 "쇠 수레에 곤혹을 당함이다"라고 한것과 기제괘의 초구에서 "수레바퀴를 끌어당긴다"고 한것과 미제괘구이에서 "수레바퀴를 끌어당긴다"고 한것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그러나 곤(坤)이 큰 수레에 배속되므로 음양이 상응되어야 반드시 수레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구삼에서 말을 상으로 취한 것은 건은 좋은 말의 상징이 되며 말은 굳건하게 가는 것이므로 반드시 말로써 비유를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송아지와 불깐돼지로 비유를 취한 것은 이는 비록 음물(陰物)이기는 하나 뿔과 어금니가 강한 것이기 때문에 陽의 비유로 취하였을 것입니다] (홍재전서 경사강의 제102권 대축괘) 건하간상(乾下艮上/山天大畜卦)으로 하늘이 山 가운데 있음을 형상한다 단전(彖傳)에 "大畜은 강건(剛健)하고 독실하고 빛나서 날로 덕을 새롭게 한다"하였는데, 이것은 끊임없이 수양하여 덕을 날로 새롭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산이 어찌 하늘을 저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늘이 산 속에 있고 보면 온축(蘊畜/마음속에 깊이 쌓아둠, 오랜 연구로 학식을 많이 쌓음)되는 바가 큰 것이다. 이는 "임금의 욕심을 저지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畜君何尤)"라고 한것과 비슷하다 대축괘는 하늘을 상징하는 乾과 산을 상징하는 艮이 모여 이루어 졌는바 학문을 많이 쌓는 상(象)이 된다 无妄이면 誠實함이 있으므로 따르는 자가 있으며 따르는 자가 있으면 모이는 것이다 하늘이 산중에 있는 것이 대축괘이니 군자는 이것을 보고 옛 언행을 많이 배워서 그 덕을 기른다 하였다 정자가 말하기를 "하늘은 지극히 큰 것인데, 산중에 있으니, 쌓은 것이 지극히 큰 형상이다 군자가 이 형상을 보아 그 깊이 쌓아 둔 것을 크게 한다 사람의 마음에 쌓이는 것은 학문을 통해 커지는데, 옛날 성현의 언행(言行)을 많이 듣고 남긴 자취를 생각하고 그 행실을 보고 말을 샆펴서 그 마음을 구하여, 거기서 터득하여 그 덕을 길러 이루는 것이 바로 대축(大畜)의 뜻이다"하였다(程子) 朱子가 말하기를 "本心이 타락한 지 오래되어 의리가 투철하게 통하지 못하거든 글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기를 항상 끊임없이 하면 물욕이 이기지 못하여 본심의 의리가 편안하고 견고해질 것이다 천하의 이치는 미묘하고 정미(精微)하여 각각 마땅한 바가 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바꿀 수가 없다. 오직 옛 성인만이 이치를 다 밝힐 수 있어 그 언행이 전하여 후세에 바꿀 수 없는 규범이 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나머지도 이치를 따른 이는 군자가 되어서 길(吉)하고 ,이치를 저버린 이는 소인이 되어서 흉해졌다. 길한 것이 많은 이는 사해(四海)를 보전하여 모범이 될 수 있지만 흉한 것이 심한 이는 제 몸도 보전하지 못하여 경계할 바가 되니, 이 분명한 자취와 틀림없는 공효가 경전의 가르침과 사책(史冊)가운데 갖추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천하의 이치를 궁구하려고 하면서 여기에 나아가 구하지 아니하면 이는 담앞에 선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궁리가 반드시 독서하는 데 있다는 이유이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사람이 학문하는 까닭은 나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지 못하기 때문에 이치를 밝히는 데 밝지 못하여, 기준이 없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서, 높은 이는 지나치고 낮은 이는 미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지나치고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반드시 앞에 나아간 이의 말로써 성인의 뜻을 구하고 성인의 뜻으로써 천지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구할 적에는 얕은 곳에서 깊은곳으로 미치고, 이를 적에는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 미쳐야 할 것이니, 차근차근 순서대로 해야 하며 서둘거나 절박한 마음으로 구해선 안된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글을 읽되 좋아하지 않는 이는 게을러지고 소홀해지며, 지속성이 없어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글 읽기를 좋아하는 이는 많은 것을 탐(貪)하고 널리 읽으려고 힘써서, 종종 그 실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그 끝을 찾으려 하고, 이것을 궁구하지도 못한 채 문득 다른 데에 뜻을 둔다. 그러므로 비록 종일토록 쉬지도 못하고 수고롭히고도 마음이 바빠 항상 분주하게 쫒기는 것과 같아서 고요히 배운 것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없으니 어찌 스스로 얻는 것을 깊이 믿어서 오래도록 질리지 않아 게으르고 소홀하여 지속성이 없는 이들과 다를 것이 있겠는가. 공자께서 이른바 "서두르면 도달하지 못한다"한것이나 맹자께서 이른바,"나아감이 빠르면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한 것이 진실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진실로 이것을 거울로 삼아 반성하면 마음이 하나로 가라앉아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아서 글을 읽으면 문의(文意)가 이어지고 혈맥(血脈)이 관통(貫通)하며, 자연히 점점 배어서 푹 젖어 들어 마음과 이치가 맞아 떨어져, 선한 것을 권하는 것이 깊어지고, 악한 것을 경계하는 것이 절실해질 것이니, 이것이 순서대로 정밀하게 하는 것이 독서하는 법이 되는 이유이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글을 읽어도 의심이 없는 것은 처음 배우는 이의 공통된 병통이다. 이는 평소에 많이 얻는데만 힘쓰고 자세하게 연구하지 않고 바삐 읽어 넘긴 데서 비롯된다. 지금 이 일을 깊이 경계하여 깨끗이 씻어 내고 따로 규모를 세워 문자를 볼적에 더욱 정밀하고 가장 급한것을 가려내야 한다 또 한 책을 보되, 하루에 힘닿는 만큼 한 두단(段)을 보고 한 단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한 단으로 바꾸고, 한 책을 다 마치고서야 다른 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먼저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르게 한 다음에 숙독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글자마다 구절마다 모두 와 닿는 것이 있고 여러 어진 이의 주해(註解)도 일일리 꿰뚫어 이해하고 난 뒤에야 그 시비를 비교하여 성현이 말씀하신 근본 취지를 구할 수 있다. 이미 얻는다 하더라도 되풀이 하여 완미해서 그 의리가 살에 배이고 골수에 젖어 든 뒤에야 학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윤화정(尹和靖)의 문인이 그 스승을 칭찬하여 말하기를 "훌륭하시도다. 성현의 가르침이여, 육경(六經)의 편(編)을 거슬림 없이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체득하여 자기의 말을 외우듯이 하였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지위에 이르러야 비로소 독서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하였다 또 말하기를 "처음 독서할 적에는 의문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다음에 점점 의문이 생기고 중간에는 마디마디 의심스러우니, 이런 고비를 지난 뒤에 의문이 점점 풀려서 자세히 이해하고 이치를 꿰뚫어서 전혀 의심스러운것이 없어야 비로소 배운 것이 된다"하였다 程子가 말하기를 "문자를 볼 적에 먼저 반드시 그 문장의 뜻을 깨달은 뒤에야 그 의미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니 문장의 뜻도 깨닫지 못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자는 없다"고 하였다 구산 양씨(龜山楊氏/楊時)는 "독서하는 법은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경험하여, 한가하고 고요한 가운데 조용히 마음 속으로 이해하고 책에서 말한 것과 나타내는 뜻을 막힘없이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니, 이는 내가 스스로 이와같이 했던것이다"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독서할 적에는 반드시 몸가짐을 가다듬고 단정하게 앉아 눈으로 가만히 보고 나지막이 읊조리면서 마음을 비운 채 푹 젖어 들어야 한다 자기 몸에 절실하게 성찰하여 한 구절의 글을 읽으면 그 한 구절을 어디에서 쓸 수 있을까를 깊이 살펴야 한다"하였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평소에 글을 읽을 때에는 소견이 있는 것 같다가도 책을 놓고 나면 또 별만 다를 게 없으니 병통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하니 주자가 대답하기를 "이것은 몸에서 구하지 않고 전적으로 책에서만 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와같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일상생활하는 사이가 도(道)가 아닌 것이 없으니 글이란 것도 이 마음을 대 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몸에서 구한 뒤에 책에서 구하면 글을 읽는 데 맛이 있을 것이다"하였다 大畜, 利貞, 不家食吉, "크게 기름은 곧은 것이 이로우니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니 利涉大川.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라" <학술과 도덕을 많이 축적하여 이를 세상에 널리 펼 수 있는 상이다> 彖曰, 大畜, 剛健篤實,輝光日新其德, 단에 "대축은 강건하고 독실하고 빛나서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 <대축은 건괘의 체가 강건하고 간괘의 체가 독실하다, 그래서 광채를 발하며 날로 그덕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浦渚集) 剛上而尙賢, 강이 위에 있으니 어진이를 높이는 것이고 能止健, 大正也. 강건한 것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크게 바르다 “不家食吉”, 養賢也.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다."는 것은 어진이를 기르는 것이다 <天地養萬物,聖人養賢以及萬民,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어진이를 길러서 만민에게 미치게 한다(頤卦 檀辭)> <국가에서 맡은 직책이 없어서 봉록을 받지 않고 집에서 한가히 거하는것을 가식(家食)이라 하고 국가가 현인에게 봉록을 주어서 길러 주기때문에 不家食吉 養賢也라고 한것이다> “利涉大川”, 應乎天也.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하늘에 응하는 것이다 象曰, 天在山中, 大畜, 상에 "하늘이 산 가운데 있는 것이 대축이니 君子以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 군자는 옛 성현들의 언행을 많이 알아 자신의 덕을 키운다" 初九, 有厲, 利已. 초구는 위태로움이 있을것이니 나아가기를 중지하는 것이 이롭다 象曰, “有厲利已”, 不犯災也. 상에 " 위태로움이 있을 것이니 나아가기를 중지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재앙을 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九二, 輿說輹. 구이는 수레가 바퀴통이 빠졌도다(빠져서 나아가지 않는다) (여(輿)는 坎의 상이다,복(輻/바퀴살)은 수레바퀴사이에 가로지르는 나무이다, 구이가 변하면 가운데가 허해져서 탈(說)상이 있다. 쌍호 호씨가 말하기를 탈(說)은 간(艮)의 지(止)상이다. 九二가 변하면 艮이다"하였다 (芝山集/역상설) 象曰, “輿說輹”, 中无尤也. 상에 "수레의 바퀴통이 빠졌다"는 것은 중에 잘못은 없는 것이다 九三, 良馬逐, 利艱貞, 구삼은 좋은 말이 달려가는 것이니, 어렵게 여기고 貞함이 이로운바 曰閑輿衛, 利有攸往. 날마다 수레 타는 것과 호위하는 것을 익히면 가는 바를 둠이 이롭다 閑/한 : 한가하다,법,법도,보위(保衛)하다 象曰, 利有攸往, 上合志也. 상에 "가는 것을 두는 것이 이로운 것은 상과 뜻이 합하기 때문이다 六四, 童牛之牿, 元吉. 육사는 어린 소에 곡(牿)을 가한 것이니 크게 선하고 길하다 牿/곡 : 우리(마소를 기르는곳),소뿔에 가로댄 나무,기르다(우리에서) <곡우의 곡은 소뿔로부터 손상을 피하기 위해 소뿔에 씌운 기구이다 소의 성질은 본시 뿔로 잘 들이 받으므로, 횡목(橫木)으로 곡을 만들어 뿔에 씌워서 그 들이받음을 막는다는 뜻인데, 뿔이 아직 나지 않은 동우(童牛)때부터 서두르면 힘은 작게 들고 功은 크므로 크게 吉하다 하였다> 象曰, 六四“元吉”, 有喜也. 상에 "육사는 크게 선하고 길하다"는 것은 기쁜일이 있다는 것이다 六五, 豶豕之牙, 吉. 육오는 멧돼지를 거세하여 이빨을 쓰지 못하게 하니 길하다 (거세한 돼지의 어금니이니 길하다) 豶/분 : 불깐돼지 豕/시 : 돼지 <돼지는 굳세고 조급한 짐승인데 어금니가 사납고 예리하게 되어있으니, 만약 억지로 그 어금니를 제어하려 하면 힘만 쓰고, 그 조급하고 맹렬한 힘을 제지하지 못하여, 이리 매고 저리 매고 하여도 능히 변하게 하지 못하나, 만일 거세하여 버리면 비록 어금니가 있더라도 굳세고 조급한 성질이 저절로 그치게 된다, 그 효용이 이와 같으므로 길하게 되는 것이다> 象曰, 六五之吉, 有慶也. 상에 "육오는 길하다"는 것은 경사가 있는 것이다 上九, 何天之衢, 亨. 상구는 "저 하늘 거리이니 형통하리로다" <구름이 오가는 하늘의 길을 드넓게 통하여 막힘이 없다> 衢/구 :네거리,갈림길,기로,서로 엉킨 나뭇가지,가다(行) 天之衢/하늘의 네거리,걸릴 것 없는 공중,벼슬길이 훤히 트임을 비유 象曰, “何天之衢”, 道大行也. 상에 "저 하늘 거리"라는 말은 도가 크게 행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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